breeze255의 등록된 링크

키자드에 등록된 총 843개의 포스트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Naver Blog

[2003 노벨화학상] 피터 아그레 & 로드릭 매키넌 : 세포의 성벽에 뚫린 구멍, '물 통로'와 '이온 통로'를 발견하다

Previous image Next image "세포는 어떻게 물을 마시고, 전기를 켤까?" 우리 몸은 60조 개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세포는 '세포막(Cell Membrane)' 이라는 얇은 기름 막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이 막은 외부의 침입을 막는 성벽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모순이 생깁니다. 세포가 살아가려면 물과 영양분을 받아들이고 노폐물을 내보내야 합니다. 또한 신경 세포는 전기를 띤 이온(나트륨, 칼륨 등)을 들여보내 신호를 만들어야 합니다. "기름으로 된 성벽(세포막)을 뚫고, 어떻게 물과 전기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을까?" 오랫동안 과학자들은 물이 세포막 틈새로 알음알음 스며들어 간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콩팥(신장)이 하루에 180리터의 물을 정수하는 속도를 보면, '스며드는 것'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안 되었습니다. 분명히 '고속도로' 가 있어야 했습니다. 오늘 소개할 2003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들은 세포막에 숨겨진 비밀의 문을

Naver Blog

[2004 노벨화학상] 아론 치에하노베르, 아브람 헤르슈코, 어윈 로즈 : 단백질에게 '죽음의 키스'를, 유비퀴틴의 발견

Previous image Next image "너는 제거되어야 한다" 죽음의 표식 우리는 삶의 시작, 즉 탄생에 환호합니다. 생물학도 마찬가지였습니다. DNA가 어떻게 복제되고, RNA가 어떻게 단백질을 만들어내는지(합성)에 대해서는 수많은 연구가 이루어졌고 노벨상이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죽음' 은 외면받았습니다. 한번 만들어진 단백질이 어떻게 사라지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저 세포 안에는 '리소좀(Lysosome)' 이라는 쓰레기통이 있어서, 늙은 단백질은 거기 들어가서 녹아 없어질 거라고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1970년대 말, 이상한 사실이 밝혀집니다. 리소좀은 에너지가 없어도 작동하는데, 세포 안에서 단백질이 분해될 때 '에너지(ATP)' 가 소모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상하다. 건물을 짓는 데는 에너지가 들지만, 부수는 데는 그냥 두면 되는 거 아닌가? 왜 굳이 비싼 에너지를 써가며 단백질을 없애는 거지?" 오늘 소개할 2004년 노벨 화학상

Naver Blog

[2005 노벨화학상] 이브 쇼뱅, 로버트 그럽스, 리처드 슈록 : 분자들의 춤 파트너 바꾸기, '메타세시스'의 마법

Previous image Next image "춤추던 커플이 파트너를 바꾼다면?" 무도회장에서 커플들이 춤을 추고 있습니다. A군과 B양이 손을 잡고 있고, C군과 D양이 손을 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음악이 바뀌자, 갑자기 A군은 D양과, C군은 B양과 짝을 바꿔 춤을 춥니다. 이것은 사교댄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파트너 바꾸기'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화학 분자들의 세계에서도 이와 똑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화학자들에게 탄소 사이의 '이중 결합(=)' 은 아주 단단해서 끊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이 결합을 끊고 새로운 짝을 찾아주려면 엄청난 에너지나 복잡한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20세기 후반, 아주 우아하고 손쉽게 탄소들의 파트너를 바꿔치기하는 마법 같은 반응이 발견되었습니다. 오늘 소개할 2005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들은 이 반응을 이론적으로 규명하고,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도구(촉매)를 만들어낸 세 명의 연금술사들입니다. "금속이 탄소를 잡고 춤을 춘다"는 메커니즘

Naver Blog

[2006 노벨화학상] 로저 콘버그 : 아버지의 뒤를 이어 DNA의 목소리를 듣다, '전사'의 비밀

️ "도서관의 책을 대출할 수 없다면, 복사라도 해야 한다" 우리 몸의 세포 핵 속에는 'DNA' 라는 거대한 도서관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생명을 만드는 모든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이 소중한 원본 책(DNA)은 도서관(핵) 밖으로 절대 나갈 수 없습니다. 잃어버리거나 손상되면 큰일 나니까요. 그런데 단백질을 만드는 공장(리보솜)은 도서관 밖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도서관 안의 정보를 밖으로 전달할까요? 정답은 '복사' 입니다. 세포는 DNA의 필요한 부분만 복사해서 'RNA(사본)' 를 만들고, 이 사본을 밖으로 내보냅니다. 우리는 이 과정을 '전사(Transcription)' 라고 부릅니다. 이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복사가 잘못되면 엉뚱한 설계도가 나가고, 결국 불량품(암세포, 기형)이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오늘 소개할 2006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는 이 정교한 복사기의 작동 원리를 원자 하나하나까지 들여다본 미국의 구조생물학자입니다. 아

Naver Blog

[2007 노벨화학상] 게르하르트 에르틀 : 표면의 재발견, '하버-보슈'부터 '오존층'까지 화학 반응의 비밀을 풀다

"모든 중요한 일은 경계면에서 일어난다" 물과 공기가 만나는 수면, 땅과 하늘이 만나는 지평선. 자연계의 흥미로운 현상들은 대부분 두 세계가 만나는 '경계면(Surface)' 에서 일어납니다. 화학 반응도 마찬가지입니다. 녹이 스는 것은 쇠(고체) 표면이 산소(기체)를 만나는 것이고, 자동차 배기가스를 정화하는 것은 백금(고체) 표면에서 일산화탄소(기체)가 산화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20세기 중반까지 화학자들에게 '표면'은 골치 아픈 블랙박스였습니다. "고체 표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 같긴 한데, 너무 복잡하고 지저분해서 알 수가 없네." 공기 중의 먼지나 불순물이 표면을 뒤덮고 있어서, 순수한 반응을 관찰하기가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소개할 2007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는 이 지저분한 표면을 완벽하게 통제된 실험실로 바꾼 독일의 물리학자이자 화학자입니다. 인류를 먹여 살린 '암모니아 합성'의 비밀을 80년 만에 밝혀내고, 반도체 생산 공정과 오존층 파괴의 원리까지 규명

Naver Blog

[2008 노벨화학상] 시모무라 오사무, 마틴 챌피, 로저 첸 : 생명의 빛, '녹색 형광 단백질(GFP)'로 세포를 밝히다

Previous image Next image "세포 안을 비추는 살아있는 손전등" 생물학자들의 오랜 꿈은 살아있는 세포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두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이었습니다. "암세포가 어떻게 퍼져나가지?" "바이러스가 세포에 침투하는 순간은 어떨까?" "기억이 생길 때 뇌세포는 어떻게 연결될까?" 하지만 세포는 투명하고 너무 작아서, 그 안의 투명한 단백질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구별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염색약을 쓰면 세포가 죽어버리니 '살아있는' 상태를 볼 수 없었죠. 그런데 1990년대, 생물학 실험실에 '빛의 혁명' 이 일어납니다. 투명했던 세포 안에서 갑자기 초록색, 빨간색, 파란색 불빛이 반짝이며 단백질들이 움직이는 모습이 생중계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마치 어두운 밤길을 달리는 자동차에 'GPS 추적기' 와 '헤드라이트' 를 달아놓은 것처럼, 과학자들은 이제 세포라는 소우주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소개할 2008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들은 이

Naver Blog

[2009 노벨화학상] 벤카트라만 라마크리슈난, 토머스 스타이츠, 아다 요나트 : 생명의 단백질 공장, '리보솜'의 지도를 그리다

Previous image Next image DNA는 설계도일 뿐, 목수는 따로 있다 생물학의 중심 원리(Central Dogma)는 간단합니다. DNA(설계도) → RNA(작업지시서) → 단백질(제품). 1953년 왓슨과 크릭이 DNA 구조를 밝혔고, 2006년 콘버그가 RNA 전사 과정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단계, 즉 RNA의 정보를 읽어서 실제로 아미노산을 꿰어 단백질을 만드는 '최종 조립 공장' 의 정체는 오랫동안 베일에 싸여 있었습니다. 이 공장의 이름은 '리보솜(Ribosome)' 입니다. 리보솜은 수십 개의 단백질과 RNA 덩어리가 엉겨 붙은 거대하고 복잡한 복합체입니다. 과학자들은 리보솜이 중요하다는 건 알았지만, 그 구조를 밝히는 것은 포기 상태였습니다. "너무 크고, 너무 불안정하고, 모양이 제각각이다. 이걸 결정(Crystal)으로 만들어서 엑스선 사진을 찍는 건 불가능하다." 이것은 '구조생물학의 에베레스트' 라 불리는 난제였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

Naver Blog

[2010 노벨화학상] 리처드 헤크, 네기시 에이이치, 스즈키 아키라 : 탄소의 중매쟁이, '팔라듐 촉매'로 복잡한 분자를 조립하다

Previous image Next image "수줍은 탄소들을 이어주는 은색 중매쟁이" 생명체를 이루는 단백질, 우리가 먹는 약, 스마트폰의 OLED 화면. 이 모든 것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탄소(Carbon)' 가 뼈대를 이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유기화학은 기본적으로 탄소와 탄소를 연결해서 원하는 모양의 분자를 만드는 학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아주 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탄소 원자는 매우 안정적이고 무뚝뚝해서, 다른 탄소 원자와 좀처럼 손을 잡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1912년 노벨상 수상자인 빅터 그리냐르가 '그리냐르 시약'을 만들어 이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이 방법은 너무 거칠고 위험해서 복잡하고 섬세한 분자를 만들 때는 다 부서지기 일쑤였습니다. "좀 더 부드럽고, 정교하게 탄소들을 연결해 줄 수는 없을까?" 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귀금속 '팔라듐(Palladium)' 입니다. 팔라듐은 탄소들을 부드럽게 불러 모아 서로 손을 잡

Naver Blog

[2011 노벨화학상] 단 셰흐트만 : 불가능한 구조를 발견하다, '준결정'의 탄생

"교과서에 없는 물질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자연계의 고체 물질이 두 가지 중 하나라고 배웠습니다. 결정 (Crystal): 원자들이 규칙적으로 완벽하게 배열된 것. (다이아몬드, 소금) 비결정 (Amorphous): 원자들이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는 것. (유리) 그리고 결정학에는 절대 깨질 수 없는 수학적 법칙이 있었습니다. "결정은 2번, 3번, 4번, 6번 대칭만 가능하다. 5번 대칭(오각형)은 불가능하다." 정삼각형, 정사각형, 정육각형 타일로는 바닥을 빈틈없이 채울 수 있지만, 정오각형 타일로는 틈이 생겨서 바닥을 채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수백 년 동안 과학자들에게 진리였습니다. 그런데 1982년 4월 8일 아침, 미국의 한 실험실에서 이 진리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물질이 발견되었습니다. 전자 현미경 화면에는 분명히 '10각형(5번 대칭의 두 배)' 모양의 완벽한 별 모양 패턴이 찍혀 있었습니다. "이런 물질은 존재할 수 없다. 이건 기계 고장이거나, 내가 미친 것이

Naver Blog

[1998 노벨화학상] 월터 콘 & 존 포플 : 컴퓨터로 화학을 풀다, '양자화학'과 '계산화학'의 혁명

Previous image Next image "화학자에게 비커 대신 컴퓨터를 쥐여주다"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화학자의 모습은 하얀 가운을 입고, 알록달록한 시약이 든 비커를 흔들며, 가끔은 '펑!' 하고 폭발을 일으키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 전혀 새로운 유형의 화학자들이 등장했습니다. 그들의 실험실에는 시약 냄새 대신 커피 향기가 나고, 실험대 위에는 비커 대신 두꺼운 '컴퓨터 매뉴얼' 과 모니터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물질을 직접 만지지 않고도, 컴퓨터 화면 속에서 가상의 분자를 만들고 반응시켰습니다. "이 약물이 바이러스에 잘 붙을까?", "이 신소재가 열에 견딜까?" 이 모든 것을 실험하기 전에 수학적으로 계산해서 예측해 낸 것입니다. 오늘 소개할 1998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들은 화학을 '실험의 영역' 에서 '계산의 영역' 으로 확장시킨 두 명의 선구자입니다. 복잡한 전자의 움직임을 밀도라는 하나의 값으로 단순화시켜 계산 가능하게 만든 물리학자 월터 콘(

Naver Blog

[1999 노벨화학상] 아흐메드 즈웨일 : 1000조분의 1초, 찰나의 순간을 찍은 '펨토 화학'의 아버지

세상에서 가장 빠른 카메라 우리가 달리는 말의 다리 움직임을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맨눈으로는 너무 빨라서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초고속 카메라로 찍어서 느리게 재생하면, 말의 네 다리가 공중에 떠 있는 순간까지 선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화학자들에게는 더 어려운 숙제가 있었습니다. "분자들이 만나서 화학 반응을 일으키는 그 '결정적인 순간'을 보고 싶다." 화학 반응은 A와 B가 만나서 C가 되는 과정입니다. 하지만 그 사이에는 원자들이 서로 부딪히고, 결합이 끊어지고, 새로운 결합이 생기는 아주 짧은 '전이 상태(Transition State)' 가 존재합니다. 문제는 이 순간이 너무나도 짧다는 것입니다. '10억분의 1초(나노초)' 도 아니고, '1조분의 1초(피코초)' 도 아닌, 무려 '1000조분의 1초(펨토초, Femtosecond)' 라는 상상조차 힘든 짧은 시간에 모든 일이 끝나버립니다. "펨토초라니? 빛조차 1초에 지구를 7바퀴 반이나 도는데, 1펨토초 동안

Naver Blog

[2000 노벨화학상] 앨런 히거, 앨런 맥디아미드, 시라카와 히데키 : 전기가 통하는 플라스틱, '전도성 고분자'의 우연한 발견

Previous image Next image ️ "플라스틱 전선이 가능할까?" 상식을 뒤집다 우리가 전선을 만질 때 감전되지 않는 이유는 구리선(금속)을 '플라스틱' 이나 고무가 감싸고 있기 때문입니다. 초등학생도 아는 상식입니다. "금속은 전기가 통하고(도체), 플라스틱은 전기가 안 통한다(부도체)." 이것은 20세기 중반까지 과학계의 절대적인 진리였습니다. 플라스틱(고분자)은 전자를 꽉 붙잡고 있어서 전기가 흐를 수 없는 구조였으니까요. 그런데 1970년대, 이 절대 진리가 한순간의 '어처구니없는 실수' 로 인해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실수로 촉매를 1,000배나 더 넣어버린 실패한 실험에서, 은색으로 반짝이는 이상한 플라스틱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오늘 소개할 2000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들은 이 우연한 실수를 놓치지 않고 파고들어, 금속처럼 전기가 흐르는 플라스틱인 '전도성 고분자(Conductive Polymer)' 를 탄생시킨 세 명의 과학자입니다. 실수를 기회로 만든 일본

Naver Blog

[1992 노벨화학상] 루돌프 마커스 : 전자는 어떻게 점프하는가? '마커스 이론'으로 화학 반응의 속도를 풀다

️ "전자가 날아가려면, 주변 친구들이 비켜줘야 한다" 우리가 숨을 쉬고, 식물이 광합성을 하고, 스마트폰 배터리가 충전되는 모든 과정의 핵심은 딱 하나입니다. 바로 '전자의 이동(Electron Transfer)' 입니다. 전자가 A에서 B로 이동할 때 에너지가 생기고 화학 반응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1950년대까지 화학자들은 이 단순해 보이는 이동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습니다. 1983년 노벨상 수상자인 헨리 타우베는 "전자가 다리(Bridge)를 놓고 건너간다"는 것을 밝혔지만, 다리가 없는 경우(외권 전이)에는 도대체 어떻게 전자가 허공을 날아서 건너가는지, 그리고 "왜 어떤 반응은 빠르고 어떤 반응은 느린지" 를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그냥 전자가 가벼우니까 휙 날아가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하기엔, 실제 반응 속도가 너무나 다양했습니다. 오늘 소개할 1992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는 실험실의 비커가 아닌, 책상 위의 '수학 공식' 으로 이 난제를 해결한 이론 화학자

Naver Blog

[1993 노벨화학상] 캐리 멀리스 & 마이클 스미스 : DNA 복사기와 편집기의 발명, 생명공학의 혁명

Previous image Next image "범인은 이 안에 있다, 하지만 증거가 너무 적다?" 과학 수사 드라마(CSI)를 보면, 범죄 현장에 떨어진 머리카락 한 올이나 미세한 핏자국에서 DNA를 채취해 범인을 잡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런 일은 불가능했습니다. DNA 분석을 하려면 꽤 많은 양의 혈액이나 조직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DNA가 너무 적어서 분석할 수 없습니다." 이 말은 당시 유전학자들을 좌절하게 만드는 가장 큰 벽이었습니다. "문서 복사기처럼, DNA도 버튼 하나만 누르면 원하는 만큼 펑펑 복사해 낼 수는 없을까?" 그리고 또 하나의 고민이 있었습니다. "DNA 글자 중 딱 한 글자만 바꿔서(편집), 단백질의 기능을 개조할 수는 없을까?" 오늘 소개할 1993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들은 이 두 가지 꿈을 현실로 만든 현대 생명공학의 마법사들입니다. 고속도로를 운전하다가 섬광 같은 아이디어로 'PCR(유전자 증폭 기술)' 을

Naver Blog

[1994 노벨화학상] 조지 올라 : 찰나의 유령 '탄소 양이온'을 마법산으로 붙잡다

1조 분의 1초 만에 사라지는 유령을 잡아라 화학 반응은 마술과 비슷합니다. A라는 물질이 B라는 물질로 변할 때, 눈 깜짝할 사이에 중간 단계를 거쳐 갑니다. 유기화학자들은 아주 오랫동안 탄소 화합물이 반응할 때 '탄소 양이온(Carbocation)' 이라는 중간 물질이 잠깐 생겨날 것이라고 추측했습니다. 탄소(C)는 원래 전자 4개를 공유하며 안정적으로 결합하는데, 전자를 잃고 양전하(+)를 띤 탄소 양이온은 전자에 굶주린 상태라 미친 듯이 불안정합니다. 그래서 이 녀석은 생겨나자마자 주변의 아무 전자나 닥치는 대로 잡아먹고 다른 물질로 변해버립니다. 그 수명은 10억 분의 1초도 안 됩니다. "이론적으로는 존재해야 하는데, 너무 빨리 사라져서 본 사람이 없다." 이것은 화학계의 '유령'이었습니다. 그런데 1960년대, 이 유령을 산 채로 포획해서 병 속에 담아두고, 느긋하게 사진까지 찍은 천재적인 화학자가 나타났습니다. 오늘 소개할 1994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는 황산보다 1

Naver Blog

[1995 노벨화학상] 파울 크뤼천, 마리오 몰리나, 셔우드 롤런드 : 지구의 방패 '오존층'을 구한 과학자들

Previous image Next image "하늘에 구멍이 뚫렸다!" 우리는 매일 태양을 보며 살아갑니다. 태양은 생명의 원천이지만, 동시에 치명적인 '자외선(UV)' 을 뿜어냅니다. 만약 자외선이 여과 없이 땅으로 쏟아진다면, 피부암이 폭증하고 농작물이 말라죽으며 지구의 생명체는 타들어 갈 것입니다. 다행히 지구 상공 25km 지점에는 이 죽음의 광선을 막아주는 얇지만 강력한 방패가 있습니다. 바로 '오존층(Ozone Layer)' 입니다. 그런데 1970년대, 인류가 발명한 가장 안전하고 완벽하다고 믿었던 화학 물질이, 이 소중한 방패를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 물질은 바로 냉장고, 에어컨, 헤어스프레이에 쓰이던 '프레온 가스(CFCs)' 였습니다. 당시 산업계는 펄쩍 뛰었습니다. "프레온은 불도 안 붙고 독성도 없는 꿈의 물질인데, 그게 하늘로 올라가서 오존을 깬다고? 공상과학 소설 쓰지 마시오!" 하지만 과학자들의 경고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남극

Naver Blog

[1996 노벨화학상] 로버트 컬, 해롤드 크로토, 리처드 스몰리 : 축구공 모양의 탄소, '풀러렌'의 발견

Previous image Next image ️ "탄소로 만든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탄소(Carbon)는 생명의 근원이자 우리 주변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원소입니다. 20세기 후반까지, 과학자들은 탄소가 자연계에서 딱 두 가지 형태로만 존재한다고 믿었습니다. 다이아몬드: 탄소들이 3차원으로 단단하게 결합한 가장 투명하고 강한 물질. 흑연(Graphite): 탄소들이 2차원 육각형 판으로 층층이 쌓인 가장 검고 무른 물질. (연필심) "가장 단단하거나, 가장 무르거나." 이것이 탄소의 전부인 줄 알았습니다. 교과서에도 그렇게 쓰여 있었죠. 그런데 1985년, 미국 텍사스의 한 실험실에서 이 상식을 깨부수는 제3의 물질이 발견되었습니다. 그것은 다이아몬드도, 흑연도 아니었습니다. 탄소 원자 60개가 모여 완벽한 구형을 이룬, 마치 '축구공' 처럼 생긴 분자였습니다. 너무나 대칭적이고 아름다워서, 처음에는 "이런 게 실제로 존재할 리 없다"며 과학자들조차 의심했던 물질. 오늘

Naver Blog

[1997 노벨화학상] 폴 보이어, 존 워커, 옌스 스코우 : 생명의 에너지를 만드는 회전 모터와 이온 펌프

Previous image Next image ️ "우리 몸속에 터빈이 돌아가고 있다?" 우리가 숨을 쉬고 밥을 먹는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생명의 에너지 화폐인 'ATP(아데노신 삼인산)' 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매일 자기 몸무게만큼의 ATP를 만들고 소비합니다. 이 엄청난 양의 ATP를 찍어내는 공장은 세포 속 '미토콘드리아' 에 있습니다. 그런데 1990년대, 과학자들은 이 공장의 핵심 기계를 들여다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 기계는 화학 반응을 하는 비커나 시험관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댐의 수력 발전기처럼, 물리적으로 축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정교한 '회전 모터(Rotary Motor)' 였습니다. 나노미터 크기의 세상에서, 단백질로 만들어진 기계가 분당 수만 번 회전하며 에너지를 찍어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소개할 1997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들은 이 믿기지 않는 생명의 기계 장치를 찾아낸 사람들입니다. 에너지를 만드는 효소가 회전한다는 파격적인 가설을 세

Naver Blog

[1980 노벨화학상] 폴 버그, 월터 길버트, 프레데릭 생어 : 생명의 책을 읽고 편집하다, 유전공학의 빅뱅

Previous image Next image "신의 언어를 읽고 쓰는 법을 배우다" 1970년대 초반까지 생물학자들은 거대한 도서관 앞에 서 있는 어린아이와 같았습니다. 이 도서관에는 '생명의 책(DNA)' 이 가득 꽂혀 있었습니다. 1953년 왓슨과 크릭 덕분에 책의 겉표지(이중나선 구조)는 알게 되었고, 1968년 니런버그 덕분에 단어의 뜻(유전 암호)도 대충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책을 펼쳐서 "첫 번째 줄에는 뭐라고 쓰여 있고, 두 번째 줄에는 뭐라고 쓰여 있는지(염기 서열)" 를 읽을 방법이 없었습니다. 글자가 30억 개나 되는데, 너무 작아서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더 답답한 것은, 책 내용 중에 오타가 있어도 고칠 수 없고, 좋은 문장을 다른 책으로 옮겨 적을 수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읽기(Reading)' 도 안 되고 '쓰기(Writing/Editing)' 도 안 되는 상황이었죠. 오늘 소개할 1980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들은 이 답답한 상황을 단숨에

Naver Blog

[1981 노벨화학상] 후쿠이 겐이치 & 로알드 호프만 : 화학 반응의 운명을 예언하다, '오비탈'의 법칙

Previous image Next image ️ "왜 어떤 반응은 쉽고, 어떤 반응은 불가능할까?" 화학 반응은 A와 B가 만나 C가 되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화학자들을 괴롭히는 미스터리가 있었습니다. "왜 A랑 B를 섞으면 폭발하듯이 반응하는데, 비슷하게 생긴 A랑 C를 섞으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날까?" "왜 열을 가하면 반응하는데, 빛을 비추면 전혀 다른 물질이 생길까?" 20세기 중반까지 화학자들은 이것을 그저 경험적으로 외워야 했습니다. "해보니까 그렇더라"는 식이었죠. 분자 내부에서 전자들이 어떤 춤을 추는지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복잡한 화학 반응의 규칙을 '수학 공식' 처럼 명쾌하게 정리해 준 두 명의 천재가 등장합니다. 일본 최초의 노벨 화학상 수상자이자, 전자가 채워진 가장 끝부분인 '최전선'이 중요하다는 것을 간파한 후쿠이 겐이치(Kenichi Fukui). 그리고 20세기 최고의 유기화학자 로버트 우드워드와 함께 분자 오비탈의 대칭성이 반응을 지

Naver Blog

[1982 노벨화학상] 아론 클루그 : 바이러스와 DNA의 입체 구조를 꿰뚫어 본 '전자 현미경의 마법사'

엑스선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다 1960년대, 엑스선 결정학(X-ray Crystallography)은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DNA 이중나선, 헤모글로빈, 미오글로빈의 구조가 모두 이 기술로 밝혀졌으니까요. 하지만 엑스선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습니다. 반드시 시료를 '결정(Crystal)' , 즉 소금처럼 규칙적이고 딱딱한 고체 덩어리로 만들어야만 찍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생명체 안에는 결정이 되기를 거부하는 녀석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거대한 바이러스 입자, DNA가 단백질을 칭칭 감고 있는 염색체(Chromatin), 세포막의 복잡한 구조물들. 이들은 너무 크고 불규칙해서 엑스선으로는 도저히 찍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정을 만들 수 없는 것들은 어떻게 보지? 그냥 흐릿한 전자 현미경 사진으로 만족해야 하나?" 당시 전자 현미경은 배율은 높았지만, 입체감이 없는 2차원 그림자만 보여줄 뿐이었습니다. 마치 사람의 그림자만 보고 그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맞혀야 하

Naver Blog

[1983 노벨화학상] 헨리 타우베 : 전자는 어떻게 점프하는가? '전자 전달 반응'의 비밀을 풀다

️ 전자는 텅 빈 허공을 날아갈까? 우리가 스마트폰 배터리를 충전할 때, 식물이 광합성을 할 때, 그리고 우리가 숨을 쉴 때. 이 모든 현상의 공통점은 바로 '전자의 이동(Electron Transfer)' 입니다. 전자가 A에서 B로 이동하면서 에너지를 만들고, 화학 반응을 일으킵니다. 그런데 화학자들에게는 아주 오랫동안 풀리지 않는 근본적인 의문이 있었습니다. "금속 이온 A와 금속 이온 B가 물속에 있을 때, 전자는 도대체 어떻게 A에서 B로 건너가는 걸까?" 전자가 수영을 할까요? 아니면 텔레포트를 할까요? 유기화학(탄소)의 반응 메커니즘은 1950년대에 이미 많이 밝혀졌지만, 금속을 다루는 '무기화학(Inorganic Chemistry)' 은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었습니다. 복잡한 금속 화합물들의 반응은 너무 빠르거나 종잡을 수 없어서 "그냥 섞으니까 되더라" 수준에 머물러 있었죠. 오늘 소개할 1983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는 이 혼돈의 무기화학에 명쾌한 질서를 부여한 '현대

Naver Blog

[1984 노벨화학상] 로버트 브루스 메리필드 : 구슬 위에서 단백질을 조립하다, '고상 합성법'의 발명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단백질이나 펩타이드는 수십, 수백 개의 아미노산이 사슬처럼 연결된 물질입니다. 1900년대 초반 에밀 피셔가 펩타이드 결합을 발견한 이래, 화학자들의 꿈은 원하는 단백질을 실험실에서 인공적으로 합성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지옥의 레이스' 였습니다. 아미노산 A와 B를 연결해서 AB를 만듭니다. 그러면 반응하지 않은 찌꺼기와 부산물이 생기겠죠? 이걸 씻어내고 순수한 AB를 얻는 데 며칠이 걸립니다. 그다음 C를 붙여서 ABC를 만듭니다. 또 씻고 정제하는 데 며칠... 아미노산 하나를 붙일 때마다 수율(생산량)은 뚝뚝 떨어지고, 시간은 몇 달씩 걸렸습니다. 인슐린 같은 작은 단백질 하나를 만드는 데에도 수년이 걸렸고, 그 과정에서 화학자들은 지쳐 떨어져 나갔습니다. "좀 더 쉽고, 빠르고, 편하게 만들 수는 없을까?" 오늘 소개할 1984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는 이 지루한 화학 공정을 획기적으로 단축시킨 '아이디어 맨'입니다. 눈에 잘

Naver Blog

[1985 노벨화학상] 허버트 하웁트만 & 제롬 칼 : 수학으로 분자의 지도를 그리다, '직접 결정법'의 발명

Previous image Next image "화학 문제를 수학으로 풀 수 있을까?" 20세기 중반, 화학자들에게 가장 강력한 도구는 'X선 결정학' 이었습니다. 1962년 왓슨과 크릭이 DNA 구조를 밝힌 것도, 1964년 호지킨이 비타민 B12를 본 것도 다 이 기술 덕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엑스선 결정학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위상 문제(Phase Problem)' 였습니다. 엑스선이 결정에 부딪혀 튀어나올 때, 필름에는 점의 '밝기(세기)' 만 찍힙니다. 하지만 원래의 분자 모양을 복원하려면 밝기뿐만 아니라 파동의 '위상(Phase, 타이밍)' 정보를 알아야 하는데, 이 정보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립니다. 마치 오케스트라 녹음 파일에서 소리의 크기는 들리는데, 각 악기가 언제 시작했는지 박자 정보를 잃어버린 것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분자 안에 무거운 금속(수은, 금)을 억지로 끼워 넣어 기준점을 잡는 등 엄청난 고생을 해야만 했습니다. "금

Naver Blog

[1986 노벨화학상] 더들리 허슈박, 리위안저, 존 폴라니 : 화학 반응의 춤사위를 보다, '반응 동역학'의 탄생

Previous image Next image 분자들은 어떻게 만나서 사랑에 빠질까? 화학 반응식은 보통 이렇게 씁니다. A + B → C 이 식은 '시작(A, B)'과 '끝(C)'만 보여줍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그 '중간 과정' 이 미치도록 궁금했습니다. "A분자와 B분자가 만날 때, 정면충돌할까 아니면 스치듯 만날까?" "부딪히는 순간 에너지는 어떻게 변할까? 춤을 추듯 회전할까, 아니면 진동할까?" 분자들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반응은 1조 분의 1초 만에 끝나버리니 알 방법이 없었습니다. 화학자들에게 반응 과정은 캄캄한 '블랙박스' 였습니다. 오늘 소개할 1986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들은 이 블랙박스를 열어젖힌 사람들입니다. 진공 속에서 분자들을 대포처럼 쏘아 충돌시킨 미국의 더들리 허슈박(Dudley R. Herschbach) 과 대만 출신의 리위안저(Yuan T. Lee). 그리고 반응 직후 분자가 내뿜는 미세한 빛을 포착해 에너지를 분석한 캐나다의 존 폴라니(John

Naver Blog

[1987 노벨화학상] 찰스 페더슨, 장 마리 렌, 도널드 크램 : 분자들의 짝짓기, '초분자 화학'의 문을 열다

Previous image Next image "분자도 짝을 알아본다" 화학 결합(공유 결합, 이온 결합)은 원자들을 본드로 꽉 붙여서 분자라는 덩어리를 만드는 과정입니다. 아주 강력하고 단단하죠. 그런데 생명체 안에서는 좀 더 부드럽고 신기한 일이 벌어집니다. 효소는 자신의 짝인 기질만 정확히 끌어안고, 항체는 침입한 바이러스만 귀신같이 알아보고 달라붙습니다. 이들은 본드로 붙인 게 아니라, 마치 '열쇠와 자물쇠' 처럼 모양이 딱 맞아서 서로를 '인식(Recognition)' 하고 잠시 결합했다가 떨어집니다. 20세기 중반, 화학자들은 이 자연의 마법을 흉내 내고 싶었습니다. "우리도 실험실에서 특정 물질만 쏙 골라내어 잡는 '분자 집게' 를 만들 수 있을까?" 오늘 소개할 1987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들은 이 꿈을 현실로 만든 '분자의 건축가' 들입니다. 우연한 실수로 왕관 모양의 분자를 발견한 듀폰의 연구원 찰스 페더슨(Charles J. Pedersen). 그 왕관을 입체적

Naver Blog

[1988 노벨화학상] 요한 다이젠호퍼, 로베르트 후버, 하르트무트 미헬 : 광합성의 심장을 들여다보다, '광합성 반응 중심'의 구조 규명

Previous image Next image ️ "태양 빛은 어떻게 전기가 되는가?" 우리가 쓰는 태양광 패널은 햇빛을 받으면 전기를 만들어냅니다. 그런데 자연계에는 이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오래된 태양광 패널이 있습니다. 바로 식물의 잎사귀 속에 있는 '광합성 기계' 입니다. 과학자들은 식물이 빛을 받으면 전자가 튀어나와 에너지를 만든다는 것은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일어나는 '기계(단백질)' 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 이 기계는 세포막이라는 끈적한 기름 막 속에 푹 파묻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1982년 노벨상 수상자인 아론 클루그나 1962년의 페루츠, 켄드류도 물에 녹는 단백질만 연구했을 뿐, 기름 속에 박혀 있는 '막 단백질(Membrane Protein)' 은 감히 건드리지 못했습니다. 막에서 꺼내면 모양이 망가지고, 결정으로 만들 수 없어서 엑스선 촬영이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막 단백질의 구조를 밝히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것이 당시 학계

Naver Blog

[1989 노벨화학상] 시드니 올트먼 & 토머스 체크 : "닭이냐 달걀이냐"의 딜레마를 푼 열쇠, 스스로 자르는 RNA '리보자임'의 발견

Previous image Next image 생명의 기원, 닭(DNA)이 먼저인가 달걀(단백질)이 먼저인가? 생물학에는 아주 오랫동안 풀리지 않는 논리적 모순이 있었습니다. 생명체가 살아가려면 모든 화학 반응을 도와주는 '효소(단백질)' 가 필수적이다. 그런데 이 단백질을 만들려면 설계도인 'DNA' 가 있어야 한다. 반대로, DNA가 복제되려면 '효소(단백질)' 가 도와줘야 한다. 그렇다면 태초에 무엇이 먼저 생겨났을까요? 설계도(DNA) 없이는 효소를 못 만들고, 효소 없이는 설계도(DNA)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완벽한 '닭과 달걀의 딜레마' 였습니다. 과학자들은 고민했습니다. "혹시, 설계도이면서 동시에 효소 역할까지 하는 만능 물질이 있지 않았을까?" 1980년대 초반, 이 상상 속의 만능 물질이 현실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주인공은 바로 DNA와 단백질 사이에서 심부름이나 하는 줄 알았던 'RNA' 였습니다. 오늘 소개할 1989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들은 생물학 교

Naver Blog

[1990 노벨화학상] 엘리어스 제임스 코리 : 복잡한 분자를 거꾸로 분해하다, '역합성 분석'의 창시자

"완성된 그림을 보고 퍼즐을 맞춰라" 복잡한 미로를 탈출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무엇일까요? 입구에서 출구로 가는 길을 찾는 것보다, '출구에서 입구로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 이 훨씬 쉽고 빠를 때가 많습니다. 화학자들에게 '유기 합성(Organic Synthesis)' 은 미로 찾기와 같습니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복잡한 약용 성분(예: 은행나무 잎의 징코라이드)을 공장에서 만들고 싶습니다. 하지만 탄소 수십 개가 얽힌 이 복잡한 물질을 도대체 무슨 재료로, 어떤 순서로 만들어야 할까요? 1960년대 이전까지 합성은 '예술(Art)' 이었습니다. 로버트 우드워드(1965년 수상자) 같은 천재들은 직관적으로 "A랑 B를 섞으면 되겠군" 하고 알아냈지만, 보통 사람들은 수천 번의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습니다. 명확한 규칙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합성을 '예술'에서 '논리적인 과학' 으로 바꾼 위대한 설계자가 등장합니다. "목표물(Target)을 먼저 놓고, 그것을 거꾸로 쪼개

Naver Blog

[1991 노벨화학상] 리하르트 에른스트 : 피아노 건반을 한 번에 누르다, '고분해능 NMR'의 혁명

"모든 건반을 동시에 누르고, 무슨 음인지 알아맞힐 수 있을까?" 병원에 있는 거대한 도넛 모양의 기계, 'MRI(자기공명영상)' 속에 들어가 보신 적이 있나요? 윙윙거리는 굉음과 함께 우리 몸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이 기적의 기계는, 사실 화학자들이 분자를 분석할 때 쓰는 'NMR(핵자기공명)' 과 똑같은 원리입니다. 하지만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NMR은 화학자들에게 "유용하지만 너무나 답답한 도구"였습니다. 감도(Sensitivity)가 너무 낮아서, 아주 많은 양의 시료가 필요했고 분석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기 때문입니다. 마치 라디오 주파수를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천천히 돌려가며 방송을 찾는 것과 같은 지루한 작업이었습니다. "주파수를 하나씩 돌리지 말고, 그냥 모든 주파수를 한 방에 쏘면 안 되나?" 이 엉뚱하고도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NMR을 답답한 기계에서 '현대 화학의 눈' 으로 탈바꿈시킨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소개할 1991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는 수학과

Naver Blog

[1969 노벨화학상] 데릭 바턴 & 오드 하셀 : 분자는 종이 위에 있지 않다, '형태 분석'의 창시자들

Previous image Next image "분자는 의자 위에서 춤춘다" 화학 시간에 벤젠 고리를 그릴 때, 우리는 보통 종이 위에 평평한 육각형을 그립니다. 마치 거북이 등껍질이나 벌집 모양처럼 납작하게 말이죠. 하지만 20세기 중반, 화학자들은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똑같은 육각형 고리를 가진 물질인데도, 어떤 것은 반응이 빠르고 어떤 것은 느리며, 어떤 것은 안정하고 어떤 것은 불안정했습니다. 평면 그림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안 되는 차이였습니다. "혹시 우리가 분자를 너무 납작하게만 생각한 게 아닐까?" "분자가 만약 입체적으로 꼬여 있다면?" 오늘 소개할 1969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들은 분자를 2차원 평면에서 끄집어내어 '3차원 입체 공간' 속에 앉힌 인물들입니다. 분자가 가장 편안해하는 자세인 '의자(Chair) 형태' 를 밝혀낸 노르웨이의 화학자 오드 하셀(Odd Hassel). 그리고 그 입체 구조가 화학 반응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형태 분석(Conformat

Naver Blog

[1970 노벨화학상] 루이스 페데리코 를루아르 : 설탕에 날개를 달아준 남자, '당 뉴클레오타이드'의 발견

달콤한 포도당은 어떻게 몸속의 배터리가 되는가? 우리가 밥이나 빵을 먹으면 소화되어 '포도당(Glucose)' 이 됩니다. 이 포도당은 우리 몸의 에너지원입니다. 하지만 우리 몸은 포도당을 그대로 놔두지 않고, 간이나 근육 속에 '글리코겐(Glycogen)' 이라는 거대한 덩어리로 뭉쳐서 저장합니다. 식물은 '녹말(Starch)' 로 저장하죠. 여기서 아주 오랫동안 풀리지 않던 생화학의 미스터리가 있었습니다. "작은 포도당 알갱이들을 어떻게 연결해서 거대한 글리코겐으로 만드는가?" 당시 과학자들은 단순히 "효소가 포도당을 잡아서 본드로 붙이듯이 연결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실험실에서 아무리 포도당과 효소를 섞어도 글리코겐은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포도당끼리는 서로 손을 잡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무언가 빠졌다. 포도당을 활성화시켜서 반응하게 만드는 '기폭제' 가 필요하다!" 오늘 소개할 1970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끈질긴 호기심으로 이 기

Naver Blog

[1971 노벨화학상] 게르하르트 헤르츠베르크 : 찰나의 유령, '자유 라디칼'의 빛을 포착하다

화학 반응의 중간에는 '유령'이 산다 화학 반응은 A와 B가 만나 C가 되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시작 물질(A, B)과 결과물(C)은 잘 알고 있습니다. 안정적인 상태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반응이 일어나는 그 '찰나의 순간', 분자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A와 B가 부딪혀서 깨지고, 다시 조립되어 C가 되기 직전의 그 짧은 시간 동안, 분자들은 전자가 부족하거나 남아서 미친 듯이 불안정한 상태로 존재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자유 라디칼(Free Radical)' 이라고 부릅니다. 자유 라디칼은 수백만 분의 1초 만에 반응하고 사라져 버립니다. 그래서 화학자들은 이들의 존재를 이론적으로만 짐작할 뿐, 실제로 본 적은 없었습니다. "너무 빨라서 잡을 수도 없고, 너무 불안정해서 병에 담을 수도 없다. 이것은 화학의 유령이다." 그런데 이 유령의 지문을 채취한 과학자가 있습니다. 그는 현미경이나 핀셋 대신, '빛(Light)' 이라는 도구를 사용했습니다. 오늘 소개할

Naver Blog

[1972 노벨화학상] 크리스천 앤핀언, 스탠퍼드 무어, 윌리엄 스타인 : 단백질의 접힘과 구조, 생명의 입체 퍼즐을 풀다

Previous image Next image "단백질은 어떻게 제 모양을 찾아갈까?" 1950년대 후반, 프레데릭 생어(1958년 수상자) 덕분에 우리는 단백질이 아미노산들의 긴 사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슬만으로는 아무런 기능도 하지 못합니다. 이 긴 사슬이 꼬불꼬불하게 뭉쳐서 특정한 '입체 모양(3D Structure)' 을 갖춰야만 비로소 효소나 호르몬으로서 작동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긴 사슬은 어떻게 그 복잡한 모양으로 접히는 걸까요? 누군가 옆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왼쪽으로 돌려"라고 지시를 해줄까요? 아니면 별도의 '접기 기계'가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해 "아니오, 단백질은 스스로 접힙니다. 모든 정보는 이미 그 사슬 안에 들어있습니다"라고 대담하게 선언한 과학자가 있습니다. 오늘 소개할 1972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들은 단백질의 구조와 기능 사이의 비밀을 푼 세 명의 미국 과학자입니다. "아미노산 서열이 곧 입체 구조를 결정한다"는 '앤핀언

Naver Blog

[1973 노벨화학상] 에른스트 오토 피셔 & 제프리 윌킨슨 : 금속과 탄소의 기묘한 동거, '샌드위치 화합물'을 발견하다

Previous image Next image "철(Fe)이 빵 사이에 낀 햄버거가 되었다?" 화학에는 크게 두 가지 영토가 있습니다. 하나는 탄소를 중심으로 생명과 관련된 물질을 다루는 '유기화학' 이고, 다른 하나는 금속이나 광물을 다루는 '무기화학' 입니다. 오랫동안 이 두 영토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금속과 탄소가 결합하는 것은 매우 드물거나 불안정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1950년대 초, 화학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정체불명의 주황색 가루가 등장했습니다. 이 물질은 철(Iron)이라는 금속을 품고 있는데도 녹슬지 않았고, 300도의 고열에도 타지 않았으며, 산성 용액에 넣어도 끄떡없을 만큼 좀비처럼 단단했습니다. "도대체 이 물질의 정체가 뭐지? 철이 들어있는데 어떻게 이렇게 안정할 수가 있어?" 기존의 화학 결합 이론(공유 결합, 이온 결합)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안 되는 이 괴물질의 구조를 밝혀낸 것은, 서로 다른 나라에 살던 두 명

Naver Blog

[1974 노벨화학상] 폴 플로리 : 플라스틱의 무질서 속에 수학적 질서를 세운 '고분자의 아버지'

엉킨 실타래를 수학으로 풀다 1930년대, 나일론이 발명되고 플라스틱 산업이 막 태동하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화학자들에게 '고분자(Polymer)' 는 여전히 골치 아픈 존재였습니다. 물이나 소금 같은 작은 분자들은 크기와 성질이 일정해서 예측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고분자는 달랐습니다. 어떤 놈은 길이가 길고, 어떤 놈은 짧고, 어떤 놈은 꼬불꼬불하고, 어떤 놈은 펴져 있었습니다. 비커 속에는 수만 가지 서로 다른 모양의 분자들이 뒤섞여 있었죠. "이건 뭐, 도무지 규칙이라곤 없네. 그냥 끈적거리는 덩어리일 뿐이야." 공장에서 플라스틱을 만들 때도 운에 맡겨야 했습니다. 온도를 조금만 잘못 맞춰도 엉망이 되기 일쑤였으니까요. 이때, 이 혼돈의 도가니 속에서 '통계학(Statistics)' 이라는 지도를 들고 나타난 천재가 있었습니다. "분자 하나하나는 제멋대로인 것 같지만, 수억 개가 모이면 통계적으로 완벽한 질서를 따른다." 오늘 소개할 1974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는 플

Naver Blog

[1975 노벨화학상] 존 콘포스 & 블라디미르 프렐로그 : 분자의 왼쪽과 오른쪽, '입체화학'의 비밀을 풀다

Previous image Next image 거울 속의 나는 나와 겹쳐지지 않는다 여러분의 왼손을 거울에 비춰보세요. 거울 속에는 오른손이 보입니다. 왼손과 오른손은 얼핏 보면 똑같이 생겼지만, 장갑을 끼워보면 압니다. 왼손 장갑은 절대로 오른손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아무리 돌리고 겹쳐봐도 둘은 포개지지 않습니다. 이것을 '카이랄성(Chirality, 손대칭성)' 이라고 합니다. 놀랍게도 눈에 보이지 않는 분자의 세계에도 이런 '왼손잡이 분자' 와 '오른손잡이 분자' 가 존재합니다. 화학식(재료)은 똑같은데, 입체적인 모양만 거울상처럼 반대인 이들을 '거울상 이성질체' 라고 합니다. 문제는 우리 몸속의 효소들이 지독한 편식쟁이라는 점입니다. 효소는 자기 손에 맞는(입체 구조가 맞는) 분자만 골라잡습니다. 왼손잡이 효소에게 오른손잡이 분자를 주면? 아예 반응하지 않거나, 엉뚱한 독성 물질을 만들어냅니다. 오늘 소개할 1975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들은 이 미묘하고도 중요한 '입체화학

Naver Blog

[1976 노벨화학상] 윌리엄 립스컴 : 화학 결합의 규칙을 깬 붕소의 비밀, '3중심 2전자 결합'을 밝히다

️ "전자가 부족한데 어떻게 결합할까?" 1916년 길버트 루이스가 제안하고 1919년 어빙 랭뮤어가 확립한 '옥텟 규칙(Octet Rule)' 은 화학의 절대적인 헌법이었습니다. "원자는 가장 바깥쪽 껍질에 전자 8개를 채워야 안정해진다." 탄소(C), 질소(N), 산소(O) 등 대부분의 원소는 이 규칙을 충실히 따릅니다. 전자를 서로 공유해서(공유 결합) 8개를 맞추죠. 보통 원자 2개가 전자 2개를 공유하며 손을 잡습니다(2중심 2전자 결합). 그런데 주기율표에서 탄소 바로 옆에 있는 '붕소(Boron)' 라는 녀석은 아주 골치 아픈 반항아였습니다. 붕소는 전자가 3개뿐입니다. 수소 3개와 결합해 BH₃가 되어도 전자는 6개밖에 안 됩니다. 옥텟(8개)을 못 채우니 불안정해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자연계에는 '보란(Borane, 붕소 수소화물)' 이라는 물질들이 버젓이 존재했습니다. B₂H₆, B₄H₁₀, B₁₀H₁₄ 등등... 이들의 분자식을 계산해 보면 전자가 턱없이 부족합니

Naver Blog

[1977 노벨화학상] 일리야 프리고진 : 혼돈에서 태어나는 질서, '비평형 열역학'의 문을 열다

️ 무너져가는 우주 속에서 생명은 어떻게 피어나는가? 19세기 과학자들이 세운 '열역학 제2법칙' 은 우주에 대한 사형 선고와도 같았습니다. "엔트로피(무질서도)는 항상 증가한다." 뜨거운 물은 식고, 건물은 무너지고, 방은 어지러워집니다. 질서 있는 것은 결국 무질서한 상태로 변하며, 우주는 언젠가 모든 에너지가 균일하게 퍼져버린 차가운 죽음(Heat Death)을 맞이할 것이라는 법칙입니다. 그런데, 이 절대적인 법칙을 거스르는 존재들이 있습니다. 바로 '생명(Life)' 입니다. 수정란 하나가 분열하여 정교한 아기가 되고, 작은 씨앗이 거대한 나무가 되며, 인간은 문명을 건설합니다. 시간이 갈수록 무질서해지기는커녕, 점점 더 복잡하고 고도화된 '질서' 를 만들어냅니다. 과학자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물리학 법칙대로라면 생명체는 존재 자체가 불가능한 모순이다. 어떻게 붕괴하는 우주 속에서 질서가 생겨날 수 있는가?" 오늘 소개할 1977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는 이 거대한 모순을

Naver Blog

[1978 노벨화학상] 피터 미첼 : 생명의 배터리를 충전하는 원리, '화학삼투설'의 승리

샌드위치는 어떻게 근육을 움직이는가? 우리는 매일 밥을 먹고 숨을 쉽니다. 이 과정은 결국 우리 몸의 에너지 화폐인 'ATP' 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1960년대 초반까지, 생화학자들은 아주 심각한 딜레마에 빠져 있었습니다. 음식물(포도당)이 분해되면서 전자가 이동하고 산소와 만난다는 것은 알았습니다(산화). 그리고 그 결과로 ATP가 만들어진다는 것도 알았습니다(인산화). 하지만 도대체 "산화 과정에서 나온 에너지가 어떻게 ATP 합성에 전달되는가?" 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대부분의 과학자는 두 반응을 연결해 주는 미지의 '고에너지 중간 물질(High-energy intermediate)' 이 있을 것이라 믿고, 그것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수십 년을 뒤져도 그 물질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때, 영국의 한 괴짜 과학자가 충격적인 주장을 들고나옵니다. "중간 물질 따위는 없다. 미토콘드리아는 '댐(Dam)'이다. 수소 이온(양성자)을 댐 밖으로 퍼냈다

Naver Blog

[1979 노벨화학상] 허버트 브라운 & 게오르크 비티히 : 유기 합성을 레고 놀이처럼, '붕소'와 '인'의 마법

Previous image Next image "탄소를 내 마음대로 조립할 수 있다면?" 화학자들에게 '유기 합성(Organic Synthesis)' 은 건축과도 같습니다. 탄소라는 벽돌을 쌓아 올려서, 자연계에 있는 유용한 물질(약, 향료, 비타민)을 똑같이 만들거나 아예 새로운 물질을 창조하는 작업입니다. 하지만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이 건축 작업은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원하는 위치에 벽돌을 끼우고 싶은데 엉뚱한 곳에 붙거나, 기껏 쌓아 올린 벽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기 일쑤였기 때문입니다. 탄소는 너무나 까다로운 재료였습니다. "좀 더 쉽고, 좀 더 정확하게 탄소를 연결하는 도구는 없을까?" 이때, 탄소(C)가 아닌 엉뚱한 원소들을 들고나와 이 난제를 해결한 두 명의 마법사가 등장합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붕소(Boron)' 를 이용해 원하는 모양의 알코올을 뚝딱 만들어낸 미국의 허버트 브라운(Herbert C. Brown). 그리고 '인(Phosphorus)' 을

Naver Blog

[1959 노벨화학상] 야로슬라프 헤이로프스키 : 수은 방울로 물질의 지문을 읽다, '폴라로그래피'의 발명

"똑, 똑, 똑... 떨어지는 수은 방울의 리듬" 화학자가 미지의 용액을 받았을 때 가장 먼저 하는 질문은 두 가지입니다. "이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가?" (정성 분석) "그것이 얼마나 들어있는가?" (정량 분석) 20세기 초반까지 이 질문에 답하려면 복잡한 시약을 넣고 끓이거나, 앙금을 만들어서 무게를 재는 등 시간이 오래 걸리는 '노가다'를 해야 했습니다. 게다가 한 번 분석하면 시료가 망가져서 다시 쓸 수도 없었죠. 그런데 1920년대, 체코슬로바키아(현 체코)의 한 물리학자가 아주 독특하고 우아한 분석법을 내놓았습니다. 그의 실험대 위에는 수은(Mercury) 이 담긴 통이 있고, 아주 가느다란 유리관을 통해 수은 방울이 "똑... 똑... 똑..." 하며 규칙적으로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 수은 방울에 전기를 흘려보내는 것만으로, 용액 속에 구리가 있는지, 납이 있는지, 산소가 얼마나 녹아 있는지 귀신같이 알아맞혔습니다. 오늘 소개할 1959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는

Naver Blog

[1960 노벨화학상] 윌러드 리비 : 역사의 시계를 발명하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

️ "이 미라의 나이는 정확히 몇 살입니까?" 고고학 박물관에 가면 유물 옆에 이런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 "기원전 2500년경 제작됨." 그런데 잠깐, 우리는 저 숫자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유물에 제조일자가 찍혀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20세기 중반까지 고고학자들은 지층의 깊이를 보거나, 왕조의 족보를 뒤져가며 대충 짐작할 뿐이었습니다. 그것은 '상대적인 시간(이것보다 더 오래됨)' 일 뿐, '절대적인 시간(정확히 몇 년 전)' 은 아니었습니다. "과거의 시간을 재는 시계는 없을까?" 이 불가능해 보이는 질문에 답을 내놓은 것은 역사학자도 고고학자도 아니었습니다. 맨해튼 프로젝트에서 원자폭탄을 만들던 미국의 화학자였습니다. 그는 우주에서 날아온 보이지 않는 광선이 공기 중의 원자를 때리고, 그 원자가 우리 몸속으로 들어와 시계태엽처럼 작동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오늘 소개할 1960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는 고고학, 지질학, 인류학의 역사를 새로 쓴 '시간의 마법

Naver Blog

[1961 노벨화학상] 멜빈 캘빈 : 햇빛으로 밥을 짓는 식물의 비밀, '캘빈 회로'를 밝히다

️ "식물은 공기를 먹고 자란다?" 우리는 매일 밥을 먹습니다. 밥, 빵, 과일, 고기... 이 모든 음식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딱 하나의 지점에서 만납니다. 바로 '식물(Plant)' 입니다. 식물은 입도 없고 위장도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무럭무럭 자랄까요? 식물은 흙 속의 물과 하늘의 태양, 그리고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CO₂)' 를 재료로 삼아, 스스로 영양분(포도당)을 만들어냅니다. 이것이 바로 지구상 모든 생명체의 에너지 근원인 '광합성(Photosynthesis)' 입니다. 20세기 중반까지 과학자들은 광합성의 '입력(물+빛+이산화탄소)'과 '출력(산소+포도당)'은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중간 과정' 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있었습니다. "이산화탄소라는 기체가 식물 잎 속으로 들어가서, 도대체 어떤 마법을 부리길래 달콤한 설탕 덩어리로 변하는 걸까?" 이 과정은 눈 깜짝할 새보다 더 빠르게, 복잡한 화학 공장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도저히 관찰할 수가 없었

Naver Blog

[1962 노벨화학상] 맥스 페루츠 & 존 켄드류 : 보이지 않는 생명의 건축물, 헤모글로빈과 미오글로빈의 3차원 지도를 그리다

Previous image Next image "피는 왜 붉고, 근육은 어떻게 힘을 쓰는가?" 1950년대, 생물학계는 거대한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습니다. 왓슨과 크릭이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혀내며 유전 정보의 비밀을 풀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DNA는 설계도일 뿐입니다. 실제로 우리 몸을 움직이고, 숨 쉬게 하고, 소화시키는 일꾼은 바로 '단백질(Protein)' 입니다. 당시 과학자들은 단백질이 아미노산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1958년 생어의 발견)은 알았지만, 그것이 '어떻게 생겼는지' 는 전혀 몰랐습니다. 수천 개의 원자가 뭉쳐 있는 이 거대한 덩어리는 현미경으로도 보이지 않았고, 화학식으로 쓰기엔 너무 복잡했습니다. "단백질의 모양을 알 수 없다면, 단백질이 어떻게 일하는지도 영원히 알 수 없다." 마치 자동차 엔진의 내부 구조를 보지 않고서는 엔진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는 것과 같았습니다. 오늘 소개할 1962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들은 20년이 넘는 끈

Naver Blog

[1963 노벨화학상] 카를 치글러 & 줄리오 나타 : 플라스틱의 시대를 연 연금술사들, '치글러-나타 촉매'의 발견

Previous image Next image ️ 플라스틱은 원래 '물렁물렁'했다? 오늘날 우리는 플라스틱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습니다. 생수병, 자동차 범퍼, 밧줄, 식품 용기 등 단단하고 질긴 플라스틱 제품들이 넘쳐납니다. 하지만 195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플라스틱, 특히 '폴리에틸렌(Polyethylene)' 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당시의 기술로 만든 폴리에틸렌은 힘이 없고 흐물흐물했으며, 뜨거운 물만 부어도 녹아내렸습니다. 무엇보다 이것을 만드는 과정은 '폭탄 제조' 와 다름없었습니다. 에틸렌 기체를 강제로 뭉치게 하려고 무려 200도의 고열과 2,000기압이라는 살인적인 압력을 가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공장이 폭발하는 사고도 빈번했습니다. "압력을 낮추면서도, 강철처럼 단단하고 열에 강한 플라스틱을 만들 수는 없을까?" 이 불가능한 꿈을 현실로 만든 것은 100만 달러짜리 거대 장비가 아니었습니다. 독일의 한 실험실에서 우연히 발견된 '더러운 찌꺼기' 였

Naver Blog

[1964 노벨화학상] 도로시 호지킨 : 페니실린과 비타민 B12의 지도를 그리다, 엑스선의 여왕

"보지 않고서는 믿을 수 없다" 화학자들은 오랫동안 눈에 보이지 않는 분자의 모양을 '상상'해야 했습니다. "A랑 B가 반응해서 C가 나왔으니, 아마 이렇게 생겼겠지?" 이것은 마치 깜깜한 방 안에서 코끼리를 만져보고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았습니다. 간접적인 증거로 추론할 뿐, 진짜 모습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20세기 중반, 이 보이지 않는 미시 세계를 엑스선(X-ray)으로 사진 찍듯이 찰칵 찍어내어, 원자 하나하나의 위치를 3차원지도로 그려낸 과학자가 있습니다. 그녀는 심각한 관절염으로 손가락 마디가 퉁퉁 붓고 뒤틀려 있었지만, 그 아픈 손으로 세상에서 가장 작은 결정(Crystal)을 다루며 가장 복잡한 분자들의 비밀을 풀어냈습니다. 오늘 소개할 1964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는 마리 퀴리, 이렌 졸리오-퀴리에 이어 세 번째로 노벨 화학상을 받은 여성이자, 단독 수상의 영예를 안은 전설적인 인물입니다. 기적의 항생제 '페니실린' 의 구조를 확정 짓고, 악성

Naver Blog

[1965 노벨화학상] 로버트 우드워드 : 유기 합성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20세기의 연금술사

"화학은 창조다, 그리고 나는 물질의 건축가다" 자연은 위대한 화학자입니다. 식물은 햇빛과 흙으로 복잡한 약효 성분을 만들고, 동물은 세포 안에서 정교한 호르몬을 만들어냅니다. 20세기 초반까지 인간 화학자들의 역할은 자연이 만든 이 위대한 작품들을 '분석' 하고 '흉내' 내는 것에 그쳤습니다. 복잡한 천연물을 실험실에서 인공적으로 합성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 혹은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오만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스트리크닌이나 엽록소 같은 복잡한 분자를 인간이 만든다고? 그건 원자가 수십, 수백 개나 되는데, 그걸 어떻게 일일이 조립하나? 불가능해." 하지만 1940년대, 이 불가능의 벽을 깨부수고 등장한 한 천재가 있었습니다. 그는 분자의 구조를 보는 순간, 머릿속으로 그것을 만드는 수십 단계의 과정을 건축 설계도처럼 그려냈습니다. 그의 손을 거치면 불가능해 보이던 복잡한 물질들이 마치 마법처럼 플라스크 속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오늘 소개할 1965년 노벨 화학상

Naver Blog

[1966 노벨화학상] 로버트 멀리컨 : 전자는 누구의 것도 아니다, '분자 궤도 함수'의 창시자

️ "전자는 집에만 갇혀 있지 않는다" 1954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라이너스 폴링은 화학 결합을 '악수' 에 비유했습니다. 원자 A와 원자 B가 만나서 서로 손(전자)을 맞잡으면 결합이 생긴다는 '원자가 결합 이론(VBT)' 이었습니다. 이 이론은 직관적이고 이해하기 쉬워서 화학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이론에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산소(Oxygen)' 였습니다. 폴링의 이론대로라면 산소 분자(O₂)는 자석에 붙지 않아야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액체 산소를 자석 사이에 부으면, 철가루처럼 자석에 찰싹 달라붙습니다(상자성). "도대체 왜 이론과 실제가 다르지? 전자가 우리가 모르는 방식으로 움직이는 게 아닐까?" 이때, 화학자들의 상식을 뒤엎는 새로운 주장을 들고나온 물리학자가 있었습니다. "전자는 특정 원자에 속박되어 있지 않다. 전자는 분자 전체를 아우르는 거대한 구름(궤도) 속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오늘 소개할 19

Naver Blog

[1967 노벨화학상] 만프레드 아이겐, 로널드 노리시, 조지 포터 : 100만분의 1초, 찰나의 화학 반응을 포착하다

Previous image Next image ️ "눈 깜짝할 새"보다 더 빠른 세계 우리가 성냥에 불을 붙이면 순식간에 '확' 하고 타오릅니다. 식초에 소다를 넣으면 거품이 '보글보글' 올라옵니다. 이 화학 반응들은 얼마나 빨리 일어날까요? 19세기 말부터 화학자들은 시계를 들고 반응 속도를 쟀습니다. "A 용액과 B 용액을 섞는다. 시작! 색깔이 변했다. 끝! 10초 걸렸군." 하지만 이것은 느린 반응에나 통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산과 염기가 만나 물이 되는 중화 반응이나, 폭발 반응처럼 섞자마자 끝나버리는 '초고속 반응' 들은 잴 방법이 없었습니다. 당시 화학자들은 이렇게 결론 내렸습니다. "화학 반응 중에는 너무 빨라서 '측정 불가능(Immeasurable)' 한 것들이 있다. 그 찰나의 순간에 분자들이 춤을 추는지 악수를 하는지는 신만이 아실 것이다." 마치 총알이 날아가는 모습을 눈으로 볼 수 없듯이, 분자들의 빠른 움직임은 영원한 미지의 영역으로 남을 뻔했습니다. 하지만

Naver Blog

[1968 노벨화학상] 라르스 온사게르 : 쏟아진 물은 주워 담을 수 없다? '비가역 과정'의 법칙을 푼 천재

시간은 거꾸로 흐르지 않는다 우리가 뜨거운 커피에 찬 우유를 부으면, 둘은 섞이면서 미지근해집니다. 하지만 미지근한 커피우유가 저절로 다시 뜨거운 커피와 찬 우유로 분리되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비가역 과정(Irreversible Process)' 입니다. 자연계의 모든 현상—열이 흐르고, 전기가 통하고, 물질이 확산되는 것—은 한쪽 방향으로만 일어납니다. 19세기 과학자들은 열역학 1법칙(에너지 보존)과 2법칙(엔트로피 증가)을 통해 "결국에는 평형 상태(멈춘 상태)에 도달한다"는 것은 알았습니다. 하지만 "평형에 도달하기 전, 막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그 도중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에 대해서는 아무도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너무 복잡하고 혼란스러워서 수식으로 정의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소개할 1968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는 이 혼란스러운 흐름 속에서 우주의 숨겨진 대칭성을 찾아낸 천재 중의 천재입니다. 노르웨이 출신의 미국 이론 화

Naver Blog

[1952 노벨화학상] 아처 마틴 & 리처드 싱 : 종이 한 장으로 혼합물을 분리하다, '분배 크로마토그래피'의 발명

Previous image Next image 잉크 한 방울이 번지면 무지개가 된다? 우리가 어릴 때 학교에서 했던 과학 실험을 기억하시나요? 거름종이에 검은색 사인펜으로 점을 찍고 물에 담그면, 물이 종이를 타고 올라가면서 검은 점이 파란색, 빨간색, 보라색으로 번지며 분리되는 현상. 이것이 바로 '크로마토그래피(Chromatography)' 입니다. 너무나 간단해 보이는 이 원리가, 사실은 20세기 생화학 혁명을 이끈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20세기 초반, 과학자들은 식물 색소나 단백질 같은 복잡한 유기물을 연구하고 싶었지만, 그것들을 순수하게 분리해낼 방법이 없어 쩔쩔매고 있었습니다. 섞여 있는 물질을 나누지 못하면, 그것이 무엇인지 분석할 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소개할 1952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들은 이 골치 아픈 분리 문제를 '종이 한 장' 과 '두 가지 액체' 라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해결한 영국의 화학자 콤비입니다. 기계 만지는 것을 좋아했던

Naver Blog

[1953 노벨화학상] 헤르만 슈타우딩거 : 플라스틱 시대를 연 고분자 화학의 아버지

"분자가 그렇게 클 리가 없어!" 오늘날 우리는 플라스틱, 나일론, 고무 등 수많은 '고분자(Polymer)' 물질에 둘러싸여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분자량이 수십만, 수백만에 달하는 거대한 분자들입니다. 하지만 불과 100년 전만 해도, 화학자들은 이런 거대한 분자의 존재를 믿지 않았습니다. 당시의 상식으로는 분자량이 5,000을 넘는 물질은 존재할 수 없다고 여겼습니다. 고무나 셀룰로오스 같은 물질들은 그저 작은 분자들이 끈적하게 뭉쳐 있는 '콜로이드(Colloid)' 상태일 뿐이라고 생각했죠. "분자가 사슬처럼 길게 연결되어 있다고? 말도 안 돼. 그랬다가는 중간에 끊어져 버릴 걸?" 이 견고한 편견에 홀로 맞서 싸운 한 명의 화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동료들에게 "소설 쓰지 마라", "화학계를 떠나라"는 모욕을 들으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거대 분자(Macromolecule)' 라는 개념을 세상에 증명해 냈습니다. 오늘 소개할 1953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는 현

Naver Blog

[1954 노벨화학상] 라이너스 폴링 : 원자들의 악수를 디자인하다, '화학 결합'의 아버지

️ "화학은 폴링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레고 블록을 조립하려면 블록끼리 어떻게 끼워야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세상 모든 물질을 이해하려면 원자와 원자가 어떻게 손을 잡고 '분자' 가 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20세기 초까지 화학자들은 이 '결합(Bond)' 을 막연하게만 알았습니다. "탄소는 팔이 4개고, 산소는 2개야. 갈고리처럼 걸어서 연결되겠지." 마치 아이들이 그림을 그릴 때 선으로 연결하듯, 현상만 알 뿐 그 '이유' 와 '물리적 실체' 는 미스터리였습니다. 그런데 1930년대, 물리학의 가장 난해한 이론인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 을 가져와서, 화학의 가장 기본인 '결합'을 수학적으로 완벽하게 설명해 낸 슈퍼스타가 등장합니다. 오늘 소개할 1954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는 20세기 가장 위대한 화학자이자, 아인슈타인과 비견되는 천재입니다. 원자의 성격을 수치화한 '전기음성도', 분자의 모양을 결정하는 '혼성 오비탈', 그리고 단백질의 나선

Naver Blog

[1955 노벨화학상] 빈센트 뒤 비뇨 : 사랑의 호르몬 '옥시토신'을 합성한 생화학의 연금술사

"실험실에서 생명의 신호를 만들 수 있을까?" 우리가 사랑을 느끼거나, 산모가 아기를 낳을 때, 혹은 아기에게 젖을 먹일 때 우리 몸속에서는 특별한 신호 물질이 뿜어져 나옵니다. 바로 '옥시토신(Oxytocin)' 이라는 호르몬입니다.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호르몬은 신비로운 '생명의 즙' 으로 여겨졌습니다. 살아있는 동물의 몸에서 추출해서 쓸 수는 있었지만, 인간이 비커와 플라스크를 가지고 실험실에서 만들어낸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호르몬은 복잡한 단백질 덩어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생명체만이 만들 수 있는 물질을 인간이 화학적으로 조립할 수 있을까?" 이 불가능해 보이는 도전에 평생을 바친 한 화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지독한 냄새가 나는 '유황(Sulfur)' 에 미쳐 있었고, 그 유황이 생명 현상의 열쇠라고 믿었습니다. 오늘 소개할 1955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폴리펩타이드 호르몬을 인공적으로 합성해 낸 미국의 생화학자, 빈센트 뒤 비뇨

Naver Blog

[1956 노벨화학상] 시릴 힌셜우드 & 니콜라이 세미오노프 : 폭발의 비밀을 푼 두 남자, '연쇄 반응'의 메커니즘

Previous image Next image 성냥불 하나가 산을 태우는 이유 우리가 가스레인지를 켤 때나 자동차 시동을 걸 때, 연료는 순식간에 불타오르며 에너지를 냅니다. 때로는 이 반응이 너무 격렬해서 무시무시한 '폭발(Explosion)' 이 되기도 합니다. 20세기 초, 화학자들은 이 '속도' 의 미스터리에 빠져 있었습니다. 보통의 화학 반응은 분자 A와 분자 B가 얌전히 충돌해서 C가 되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폭발은 다릅니다. 처음에는 잠잠하다가 어느 임계점을 넘으면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져 걷잡을 수 없게 됩니다. "도대체 분자들 사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길래, 반응 속도가 1초 만에 100만 배로 빨라지는 걸까?" 오늘 소개할 1956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들은 이 폭발적인 반응의 지휘자를 찾아낸 두 명의 과학자입니다. 영국 옥스퍼드의 점잖은 신사 시릴 힌셜우드(Sir Cyril Norman Hinshelwood). 그리고 소련의 열정적인 물리학자 니콜라이 세미오노프(Ni

Naver Blog

[1957 노벨화학상] 알렉산더 토드 : DNA의 뼈대를 세우고 생명의 에너지 ATP를 규명한 유기화학의 거장

왓슨과 크릭의 모델은 누구의 어깨 위에서 탄생했나? 1953년,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은 'DNA 이중나선 구조' 를 발표하며 20세기 생물학 최고의 스타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DNA가 꽈배기처럼 꼬여 있다는 것을 밝혀냈죠. 하지만 여기서 간과하기 쉬운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나선 모양으로 꼬기 위해서는, 그전에 먼저 '긴 사슬' 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마치 레고 블록으로 멋진 회전계단을 만들려면, 먼저 블록 하나하나가 위아래로 어떻게 끼워지는지 그 연결 구조를 알아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DNA를 구성하는 당(Sugar), 인산(Phosphate), 염기(Base). 이 세 가지 부품이 도대체 어떤 순서로, 어떤 화학 결합을 통해 연결되어 긴 사슬을 만드는지 밝혀낸 사람은 따로 있었습니다. 왓슨과 크릭이 건물을 지을 수 있도록 벽돌과 시멘트의 사용법을 알려준 건축가. 오늘 소개할 1957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는 영국의 유기화학자 알렉산더 토드(Alexander R.

Naver Blog

[1958 노벨화학상] 프레데릭 생어 : 단백질의 암호를 푼 퍼즐의 제왕, '인슐린' 구조 규명

"생명은 무작위가 아니다. 정해진 순서가 있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근육, 피부, 효소, 호르몬. 이 모든 것의 재료는 '단백질(Protein)' 입니다. 20세기 초반, 과학자들은 단백질이 20가지 종류의 '아미노산(Amino acid)' 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까지는 알았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질문이 남아있었습니다. "이 아미노산들은 어떤 순서로 연결되어 있는가?" 당시 학계의 주류 의견은 비관적이었습니다. "단백질은 너무 복잡해. 아마 아미노산들이 칵테일처럼 뒤죽박죽 섞여 있거나, 통계적인 비율로만 존재할 거야. 정확한 순서 같은 건 없을지도 몰라." 마치 수천 개의 구슬이 꿰어진 목걸이가 있는데, 그 구슬 색깔의 순서가 정해져 있는지 아니면 그냥 무작위로 꿴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케임브리지 대학의 한 조용한 실험실에서 묵묵히 구슬의 순서를 하나하나 받아 적기 시작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오늘 소개할 1958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는 화학 역사상 유일

Naver Blog

[1948 노벨화학상] 아르네 티셀리우스 : 섞여 있는 단백질을 전기로 나누다, '전기영동'의 창시자

️ "피는 물보다 진하다. 하지만 그 안에 무엇이 있을까?" 우리가 병원에서 피 검사를 하면, 간 수치가 어떻고 항체가 있느니 없느니 하는 복잡한 결과지를 받습니다. 투명한 노란색 액체인 '혈청(Serum)' 속에 녹아 있는 수백, 수천 가지의 단백질들을 어떻게 일일이 구별하고 분석할 수 있는 걸까요?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이것은 불가능의 영역이었습니다. 화학자들은 혈청 속에 '알부민'과 '글로불린'이라는 단백질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았지만, 그것들을 따로따로 분리해낼 방법이 없었습니다. 끓이거나 화학 약품을 쓰면 단백질이 변성되어(익어서) 못 쓰게 되고, 거름종이로 거르기엔 너무 미세했기 때문입니다. "살아있는 상태 그대로, 아주 조심스럽게 단백질을 종류별로 줄 세울 방법은 없을까?" 오늘 소개할 1948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는 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기(Electricity)' 를 도구로 선택한 인물입니다. 스웨덴의 생화학자이자 1926년 노벨상 수상자 테오도르 스베드베

Naver Blog

[1949 노벨화학상] 윌리엄 지오크 : 절대 영도를 향한 질주, '자기 냉각'으로 엔트로피의 끝을 보다

️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곳을 찾아서 우리는 물이 어는 0만 되어도 춥다고 느낍니다. 영하 20가 되면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고, 영하 273.15인 '절대 영도(Absolute Zero, 0K)' 에 도달하면 우주의 모든 분자 운동이 멈춥니다. 20세기 초반, 과학자들은 이 절대 영도에 도달하기 위해 치열한 경주를 벌였습니다. 기체(질소, 수소, 헬륨)를 압축하고 팽창시키는 방법으로 온도를 계속 낮췄지만, '1K (영하 272.15)' 라는 거대한 벽에 가로막혀 더 이상 내려가지 못했습니다. "기체 냉각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 더 차가워지려면 새로운 물리학이 필요하다." 모두가 포기하려던 그때, 발상을 완전히 뒤집은 미국의 화학자가 등장합니다. "기체가 안 되면, 자석(Magnet)을 써보자!" 오늘 소개할 1949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는 자기장의 힘을 이용해 1K의 벽을 깨고, 인류를 절대 영도의 코앞까지 데려다 놓은 '극저온의 개척자'입니다. 캐나다 출신의 미국 화학자 윌리엄

Naver Blog

[1950 노벨화학상] 오토 딜스 & 쿠르트 알더 : 유기화학의 마법 고리, '딜스-알더 반응'을 발견하다

Previous image Next image "가장 우아하고 완벽한 화학 반응" 유기화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반응이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아마 열 명 중 아홉 명은 주저 없이 이 반응을 꼽을 것입니다. 복잡한 시약도 필요 없고, 골치 아픈 부산물도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그저 두 가지 물질을 섞고 열만 가하면, 탄소들이 서로 손을 잡고 완벽한 '육각형 고리(Ring)' 를 만들어냅니다. 마치 마술사가 링 두 개를 부딪쳐 하나로 연결하듯, 순식간에 복잡한 구조를 만들어내는 이 반응은 합성을 하는 화학자들에게는 신이 내린 선물과도 같았습니다. 오늘 소개할 1950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는 현대 유기 합성의 초석을 다진 스승과 제자입니다. 독일 킬 대학의 엄격한 교수 오토 딜스(Otto Diels). 그리고 그의 천재적인 제자 쿠르트 알더(Kurt Alder). 이들이 발견한 '딜스-알더 반응(Diels-Alder Reaction)' 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수만 가

Naver Blog

[1951 노벨화학상] 에드윈 맥밀런 & 글렌 시보그 : 우라늄의 벽을 넘다, '초우라늄 원소'와 새로운 주기율표

Previous image Next image 우주의 끝은 어디인가? 오랫동안 화학자들은 '우라늄(Uranium, 원자번호 92번)' 이 우주에 존재하는 가장 무거운 원소라고 믿었습니다. 주기율표는 1번 수소에서 시작해 92번 우라늄에서 끝나는, 닫힌 세계였습니다. "92번보다 더 무거운 원소는 없을까?" "신이 만들지 않았다면, 인간이 만들 수는 없을까?" 이 금단의 영역에 도전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거대한 기계인 '사이클로트론(입자 가속기)' 을 이용해 우라늄에 중성자를 대포처럼 쏘아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우라늄은 생각보다 복잡했습니다. 1938년 오토 한이 발견했듯이, 우라늄은 중성자를 맞으면 반으로 쪼개져 버리기(핵분열) 일쑤였습니다. 새로운 원소가 생기는 게 아니라, 부서진 조각들만 나왔죠. 그런데 그 부서진 조각들 틈바구니에서, 아주 끈질기게 살아남아 92번의 벽을 넘어선 '93번' 과 '94번' 원소를 찾아낸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 소개할 1951년 노벨 화학상

Naver Blog

[1943 노벨화학상] 게오르크 드 헤베시 : 보이지 않는 스파이, '방사성 추적자'로 생명의 흐름을 읽다

️️ 하숙집 주인의 거짓말을 잡아낸 화학자 "어제 먹다 남은 고기가 오늘 스튜에 들어간 것 같은데?" 우리는 식당이나 하숙집에서 이런 의심을 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심증만 있을 뿐, 이미 요리가 되어 나온 음식 속에서 어제 그 고기를 찾아내기란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런데 20세기 초, 영국 맨체스터의 한 하숙집에서 이 불가능한 추리를 과학적으로 증명해 낸 깐깐한 화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몰래 식당에 잠입해, 먹다 남은 고기 위에 눈에 보이지 않는 '표식' 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식탁에 올라온 요리에 기계를 갖다 대자, 기계가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삐-빅! 이 요리에는 어제 남긴 고기가 들어있습니다!" 이 기막힌 탐정 놀이는 단순히 하숙집 주인을 골탕 먹이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인류가 생명체 내부를 들여다보는 방식을 완전히 뒤바꾼 혁명적인 기술, '방사성 추적자(Radioactive Tracer)' 의 시작이었습니다. 오늘 소개할 1943년 노벨

Naver Blog

[1944 노벨화학상] 오토 한 : 원자핵을 쪼개다, '핵분열'의 발견과 리제 마이트너의 가려진 이름

"우라늄이 반으로 쪼개졌다!" 물리학의 상식을 깬 화학자의 발견 1938년 12월, 독일 베를린의 카이저 빌헬름 연구소. 이곳에는 나치 정권의 삼엄한 감시 속에서도 연구에 몰두하던 한 화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당대 최고의 방사화학자 오토 한(Otto Hahn) 이었습니다. 그는 우라늄(원자번호 92번)에 중성자를 쏘는 실험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과학계의 상식은 우라늄이 중성자를 흡수하면 조금 더 무거운 원소, 즉 '초우라늄 원소' 가 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실험 결과는 기괴했습니다. 우라늄보다 무거운 원소가 나오기는커녕, 우라늄의 딱 절반 무게밖에 안 되는 가벼운 원소인 '바륨(Barium, 원자번호 56번)' 이 튀어나온 것입니다. 오토 한은 당황했습니다. "이건 불가능해. 단단한 원자핵이 중성자 따위에 맞아서 반으로 쪼개진다고? 바위가 조약돌에 맞아서 두 동강 난다는 소리잖아." 그는 화학적으로는 바륨이 맞는데, 물리학적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이 상황 앞에서 혼

Naver Blog

[1945 노벨화학상] 아르투리 비르타넨 : 굶주린 소를 구하고 겨울 전쟁을 버티게 한 'AIV 사료'

겨울에도 신선한 우유를 마실 수 있을까? 지금은 한겨울에도 마트에 가면 신선한 우유와 버터를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불과 100년 전만 해도, 겨울철 유럽 식탁의 사정은 지금과 달랐습니다. 여름에는 풀이 무성해서 소들이 배불리 먹고 좋은 우유를 생산했습니다. 하지만 눈이 덮인 긴 겨울이 오면 소들은 먹을 풀이 없었습니다. 농부들은 여름에 베어 말린 건초나 곡식을 주었지만, 영양가가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결국 겨울철 우유는 맛이 없고 비타민도 거의 없었습니다. 소들도 영양실조에 걸려 비쩍 말라갔습니다. "여름의 그 싱싱한 풀을 겨울까지 썩지 않게 보관할 수는 없을까?" 농부들은 풀을 쌓아두고 발효시키는 '사일리지(Silage)' 를 만들려 했지만, 십중팔구는 썩어서 악취가 나거나 소가 먹고 병에 걸리기 일쑤였습니다. 이때, 북유럽의 핀란드에서 한 명의 화학자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습니다. "화학 지식으로 소의 밥상을 지키겠다." 오늘 소개할 1945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는

Naver Blog

[1946 노벨화학상] 제임스 섬너, 존 노스롭, 웬델 스탠리 : 생명을 결정(Crystal)으로 만들다, 효소와 바이러스의 정체

Previous image Next image "생명은 화학 물질인가, 아니면 신비한 기운인가?" 20세기 초반까지, 생물학자와 화학자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었습니다. 화학자들은 "세상 모든 것은 원자로 되어 있다"고 믿었지만, 생명 현상만큼은 예외로 두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밥을 먹고 소화하는 것, 효모가 술을 만드는 것, 병균이 사람을 아프게 하는 것. 이런 일들을 하는 주체인 '효소(Enzyme)' 나 '바이러스(Virus)' 는 너무나 복잡하고 신비로워서, 단순한 화학 분자가 아니라 '생기(Vital force)' 를 가진 어떤 영적인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살아있는 효소를 소금처럼 딱딱한 결정(Crystal)으로 만들 수 있겠어? 그건 생명을 죽이는 일이야." 하지만 여기, 이 고정관념에 도전한 세 명의 미국 과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콩을 갈고, 위액을 끓이고, 병든 담뱃잎을 짜내어 그 속에서 생명의 핵심 물질들을 '순수한 결정' 상태로 얻어냈

Naver Blog

[1947 노벨화학상] 로버트 로빈슨 : 식물의 독과 약을 요리하다, '알칼로이드' 합성의 대가

식물은 위대한 화학 공장이다 식물은 움직이지 못합니다. 그래서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혹은 벌과 나비를 유혹하기 위해 몸속에서 아주 강력한 화학 물질들을 만들어냅니다. 양귀비의 아편(모르핀), 코카나무의 코카인, 마전의 스트리크닌, 벨라돈나의 아트로핀. 이 물질들은 소량 쓰면 명약이 되지만, 과하면 치명적인 독이 됩니다. 화학자들은 식물이 만드는 이 질소 화합물들을 통틀어 '알칼로이드(Alkaloid)' 라고 부릅니다. 20세기 초, 화학자들의 꿈은 이 복잡하고 기묘한 알칼로이드의 구조를 밝혀내고, 실험실에서 인공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식물이 효소로 뚝딱 만들어내는 이 물질을 인간이 흉내 내려면 수십 단계의 복잡한 공정과 엄청난 비용이 들었습니다. "자연은 저렇게 쉽게 만드는데, 왜 우리는 이렇게 힘들게 만들어야 하지?" 오늘 소개할 1947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는 이 질문에 대해 가장 우아한 대답을 내놓은 영국의 화학자입니다. 복잡한 화학 반응을 마치

Naver Blog

[1941 노벨화학상] 수상자 없음 : 1급 기밀이 된 원소, '플루토늄'의 발견과 글렌 시보그

존재해서는 안 될 물질의 탄생 1941년, 제2차 세계대전의 불길은 전 세계를 집어삼키고 있었습니다. 나치 독일은 유럽을 유린했고, 일본은 진주만 공습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노벨 위원회는 1940년에 이어 또다시 "수상자 없음"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스웨덴의 시상대가 비어있던 그 시각,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UC Berkeley)의 낡은 실험실에서는 역사상 가장 은밀하고 위험한 실험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젊은 화학자들은 '우라늄(92번)' 너머의 미지 세계를 탐험하고 있었습니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가장 무거운 원소인 우라늄보다 더 무거운 원소, 신의 영역에 속한 '초우라늄 원소' 를 인간의 손으로 창조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1941년 2월 23일, 폭풍우가 몰아치던 밤. 그들은 마침내 94번 원소의 존재를 확인했습니다. 이 새로운 원소는 우라늄보다 훨씬 더 강력한 에너지를 품고 있었으며, 인류를 멸망시킬 수도 있는 '파괴의 신' 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발견은 즉

Naver Blog

[1942 노벨화학상] 수상자 없음 : 스쿼시 경기장의 비밀, 인류 최초의 원자로 '시카고 파일-1'과 엔리코 페르미

️ "이탈리아의 항해사가 신대륙에 도착했다" 1942년 12월 2일 오후 3시 25분. 미국 시카고 대학교의 버려진 스쿼시 경기장 관중석에는 코트와 넥타이 차림의 과학자 수십 명이 숨을 죽인 채 서 있었습니다. 그들의 시선이 향한 곳은 경기장 바닥에 쌓여 있는 시커먼 벽돌 덩어리였습니다. 높이 6m, 폭 9m에 달하는 이 거대하고 흉물스러운 흑연 덩어리는 마치 장작더미(Pile)처럼 보였습니다. 계기판의 바늘이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딸깍, 딸깍, 타다다다닥..." 가이거 계수기의 소리가 경기장을 채웠고, 그래프는 수직으로 치솟았습니다. 그 순간, 현장을 지휘하던 한 남자가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반응이 지속되고 있다. (The reaction is self-sustaining.)" 이것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인간이 '핵분열 연쇄 반응' 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제어하는 데 성공한 순간이었습니다. 태양이 타오르는 원리를 지구 위에서, 그것도 도심 한복판에서 재현해 낸 것

Naver Blog

[1931 노벨화학상] 카를 보슈 & 프리드리히 베르기우스 : 고압의 연금술사들, 공장을 실험실로 만들다

Previous image Next image "실험실의 기적을 공장의 현실로" 우리가 앞서 1918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프리츠 하버의 이야기를 통해, 공기 중의 질소로 암모니아를 만드는 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아주 큰 함정이 하나 있었습니다. 하버가 성공한 것은 아주 작은 실험실 장비에서, 고작 몇 방울의 암모니아를 얻어낸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전 인류를 먹여 살릴 비료로 만들기 위해서는 집채만 한 기계에서 콸콸 쏟아져 나오게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500도의 고열과 200기압의 고압을 견디는 거대한 강철 통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당시의 강철은 그 정도 압력을 가하면 폭발해 버리거나, 뜨거운 수소가 쇠를 갉아먹어 부서지기 일쑤였기 때문입니다. "화학 반응식은 완성되었지만, 그것을 담을 그릇이 없다." 이 공학적인 난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하버의 발견은 그저 종이 위의 기적에 불과했습니다. 오늘 소개할 1931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들은 바로 이 위

Naver Blog

[1932 노벨화학상] 어빙 랭뮤어 : 표면의 마법사, 전구에서 인공강우까지 세상을 바꾼 산업 화학자

"과학은 호기심에서 출발하여 유용함으로 끝난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물건들, 스마트폰의 액정 코팅, 비에 젖지 않는 방수 재킷, 그리고 밤을 밝히는 전구. 이 모든 것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물체의 가장 바깥쪽, '표면(Surface)' 에서 일어나는 화학 반응을 이용한다는 점입니다. 물체와 물체가 만나는 경계면, 기체와 고체가 부딪히는 그 얇은 막에서는 물질 내부와는 전혀 다른 기이한 현상들이 벌어집니다. 쇠가 녹슬고, 효소가 반응하고, 비누가 때를 씻어내는 것도 모두 이 표면의 마법입니다. 하지만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화학자들은 덩어리(Bulk) 전체의 성질에만 관심이 있었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얇은 표면 따위는 무시했습니다. "표면은 그저 껍데기일 뿐이야. 중요한 건 알맹이지." 이런 편견을 깨고, 단 한 층의 분자 막(Monolayer)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음을 증명한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소개할 1932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는 상아탑의 교수가 아닌, 거

Naver Blog

[1933 노벨화학상] 수상자 없음 : 무거운 물, '중수'의 발견과 해롤드 유레이의 기다림

물이라고 다 같은 물이 아니다? 1933년, 세계는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습니다. 독일에서는 아돌프 히틀러가 총리에 임명되어 나치 정권이 시작되었고, 과학계에도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습니다. 노벨 위원회는 그해 화학상 수상자를 선정하지 못하고 침묵을 지켰습니다. "적합한 후보가 없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사실 과학계에서는 이미 엄청난 발견이 이루어진 상태였습니다. 다만 그 발견이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확인하고 검증할 시간이 필요했을 뿐입니다. 우리가 매일 마시는 물(H₂O)은 수소와 산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보통의 물보다 10% 정도 더 무거운 물' 이 존재한다면 어떨까요? 이것은 단순히 무게만 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물에 물고기를 넣으면 죽고, 씨앗을 넣으면 싹이 트지 않았습니다. 겉모습은 똑같지만 생명을 거부하는 기이한 물. 오늘 소개할 이야기는 1933년의 빈자리를 가득 채우고도 남았을, 그리고 결국 1934년 노벨 화학상의 주인공이 되

Naver Blog

[1934 노벨화학상] 해롤드 유레이 : 무거운 수소의 발견, 그리고 플라스크 속에서 생명의 기원을 묻다

우주의 가장 단순한 원소에 숨겨진 비밀 우주는 수소(Hydrogen)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주 전체 질량의 75%가 수소이며, 우리 몸을 이루는 물(H₂O)의 핵심 성분 역시 수소입니다. 가장 가볍고, 가장 단순하며, 가장 흔한 원소인 수소. 과학자들은 수소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자부했습니다. 양성자 하나에 전자 하나. 이것보다 더 간단할 수는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1930년대 초, 이 단순한 수소에 '쌍둥이 형제' 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과학계는 충격에 빠졌습니다. 겉모습은 똑같은 수소인데, 몸무게가 2배나 무거운 녀석이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 '무거운 수소(Heavy Hydrogen)' 의 발견은 단순한 화학적 호기심을 넘어 인류의 역사를 두 갈래로 갈라놓았습니다. 하나는 원자폭탄과 원자력 발전이라는 '핵에너지의 시대' 로, 다른 하나는 생명이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밝히는 '생명의 기원' 연구로 이어졌습니다. 오늘 소개할 1934년 노벨 화학

Naver Blog

[1935 노벨화학상] 이렌 졸리오-퀴리 & 프레데릭 졸리오 : 어머니의 빛을 이어받아 '인공 방사능'을 창조하다

Previous image Next image ️ 연금술의 완성, 인간이 원소를 굽다 1930년대 초반까지 과학자들은 방사능(Radioactivity)을 '자연의 선물' 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우라늄이나 라듐처럼 땅속에서 캔 특별한 원소들만이 스스로 빛과 에너지를 낸다고 믿었죠. 인간은 그저 그것을 발견하고 정제할 뿐, 건드릴 수는 없는 신의 영역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신의 영역에 도전한 겁 없는 부부가 있었습니다. "자연이 주지 않는다면, 우리가 직접 만들면 되지 않을까?" "평범한 알루미늄이나 붕소를 방사능 물질로 바꿀 수는 없을까?" 이들은 실험실에서 원자에 입자를 쏘아대는 과격한 요리(?)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평범했던 물질들이 에너지를 내뿜으며 전혀 다른 물질로 변하는 기적을 목격합니다. 오늘 소개할 1935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는 과학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가문의 후예들입니다. 마리 퀴리의 딸이자 그녀의 총명함을 물려받은 이렌 졸리오-퀴리(Irène Jolio

Naver Blog

[1936 노벨화학상] 피터 디바이 : 분자의 마음을 읽다, '쌍극자 모멘트'와 엑스선의 마법사

️ 물(Water)은 왜 굽어 있을까? 우리가 매일 마시는 물(H₂O)을 생각해 봅시다. 수소 두 개와 산소 하나가 결합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분자는 어떤 모양일까요? 수소-산소-수소가 일직선으로 쭉 뻗어 있을까요(H-O-H), 아니면 산소를 중심으로 굽어 있을까요? 너무나 단순해 보이는 이 질문은 20세기 초반까지 화학자들에게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였습니다. 현미경으로 분자를 들여다볼 수도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눈에 보이지 않는 분자의 모양을 '전기(Electricity)' 를 이용해 알아맞힌 천재가 있었습니다. 그는 분자 양끝에 전기를 걸어주면, 마치 나침반이 북극을 가리키듯 분자들이 한 방향으로 정렬한다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그리고 그 회전하는 힘을 측정하여 "물 분자는 104.5도로 굽어 있다" 는 사실을 수학적으로 증명해 냈습니다. 오늘 소개할 1936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는 물리학의 도구로 화학의 지평을 넓힌 '물리화학' 의 거장입니다. 네덜란드 출신의 미국 물리학자이

Naver Blog

[1937 노벨화학상] 노먼 하워스 & 파울 카러 : 비타민 C와 A의 지도를 그리다, 생명의 화학자들

Previous image Next image 레몬 즙 속의 하얀 가루, 그 정체는? 대항해 시대, 선원들에게 폭풍우보다 무서운 것은 바로 '괴혈병(Scurvy)' 이었습니다. 멀쩡하던 사람들이 잇몸에서 피를 흘리고, 피부에 멍이 들며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갔습니다. 18세기 제임스 린드가 "레몬이나 라임 즙을 먹으면 낫는다"는 사실을 발견했지만, 도대체 과일 속의 '어떤 성분' 이 사람을 살리는지는 20세기 초까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과학자들은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이 미량의 물질들을 '비타민(Vitamin)' 이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비타민은 너무나 양이 적고 불안정해서, 그 실체를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비타민 C가 있다는 건 알겠어. 그런데 그게 어떻게 생겼는데? 탄소는 몇 개고 수소는 몇 개야? 모양을 알아야 공장에서 만들어서 사람들을 구할 거 아니야!" 오늘 소개할 1937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들은 이 미스터리 물질들의 '설계도(화학 구조)' 를 그려낸 인물들입니다.

Naver Blog

[1938 노벨화학상] 리하르트 쿤 : 자연의 색소와 비타민의 구조를 밝히다, 그러나 나치에 의해 거부된 영광

당근은 왜 주황색이고, 비타민은 어떻게 생겼나? 우리가 시장에서 보는 싱싱한 당근의 주황색, 가을날 붉게 물드는 단풍, 그리고 달걀노른자의 진한 노란색. 자연은 이토록 화려한 색깔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화학자의 눈으로 보면 이 색깔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생명을 유지하는 필수 영양소의 신호이기도 합니다. 20세기 초반, 과학자들은 '비타민(Vitamin)' 이라는 물질이 건강에 필수적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 실체에 대해서는 여전히 안개 속에 있었습니다. "비타민 B가 부족하면 각기병에 걸린다는데, 도대체 비타민 B는 어떻게 생긴 분자야? 색깔은 있나? 무게는 얼마인가?" 오늘 소개할 1938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는 이 보이지 않던 영양소의 얼굴을 세상에 드러낸 독일의 화학자입니다. 식물이 가진 천연 색소인 '카로티노이드(Carotenoid)' 를 분리해 내고, 우유 5톤을 끓여 '비타민 B2' 의 구조를 밝혀낸 유기화학의 대가 리하르트 쿤(Richard Kuh

Naver Blog

[1939 노벨화학상] 아돌프 부테난트 & 레오폴트 루지치카 : 남과 여, 그리고 매혹적인 향기의 화학식을 쓰다

Previous image Next image 무엇이 남성을 남성답게, 여성을 여성답게 만드는가? 우리는 겉모습만 보고도 남성과 여성을 쉽게 구별합니다. 목소리의 톤, 근육의 발달, 신체의 곡선 등 2차 성징이라 불리는 특징들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생물학적으로 이 차이를 만들어내는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요? 20세기 초, 과학자들은 우리 몸속 어딘가에서 분비되는 신비한 물질, 즉 '호르몬(Hormone)' 이 이 모든 마법을 부린다고 짐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물질은 너무나 미량이라서 실체를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마치 유령처럼 작용만 할 뿐,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여성을 여성답게 만드는 물질, 남성을 남성답게 만드는 물질. 그것을 순수한 결정으로 뽑아낼 수 있다면?" 오늘 소개할 1939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들은 생명의 가장 은밀한 비밀인 '성(Sex)'과 '향기(Scent)'의 화학적 실체를 밝혀낸 두 명의 과학자입니다. 수만 리터의 소변을 끓여서 성호르몬의 구조를 밝혀냈

Naver Blog

[1940 노벨화학상] 수상자 없음 : 왕수에 녹아버린 노벨상, 전쟁과 화학자 게오르크 드 헤베시

나치의 눈을 속인 주황색 용액 1940년 4월, 제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돌던 덴마크 코펜하겐. 닐스 보어(1922년 물리학상 수상자)의 이론물리학 연구소에 다급한 발소리가 울렸습니다. 나치 독일군이 덴마크를 침공하여 코펜하겐 시내로 진입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연구소에는 아주 위험한 물건이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바로 독일의 물리학자 막스 폰 라우에(1914년 수상)와 제임스 프랑크(1925년 수상)의 '노벨상 금메달' 두 개였습니다. 당시 히틀러는 독일인의 노벨상 수상을 금지했을 뿐만 아니라, 금을 해외로 반출하는 것을 사형으로 다스렸습니다. 만약 나치가 이 메달들을 발견한다면, 메달을 맡긴 사람도, 보관하고 있던 닐스 보어도 무사하지 못할 상황이었습니다. "땅에 묻을까요?" "아니, 나치는 금속탐지기로 정원부터 뒤질 거야." 절체절명의 순간, 연구소에 있던 헝가리 출신의 화학자가 나섰습니다. "내가 이 메달들을 눈앞에서 사라지게 만들겠소. 화학의 힘으로." 그는 바로 방사성

Naver Blog

[1926 노벨화학상] 테오도르 스베드베리 : 중력을 이기다, '초원심분리기'로 단백질의 무게를 잰 과학자

️ "지구 중력의 수십만 배를 만든다면?" 우리가 흙탕물을 가만히 두면 흙은 바닥에 가라앉고 맑은 물만 위에 남습니다. 중력 때문입니다. 무거운 것은 가라앉고 가벼운 것은 뜨죠. 하지만 단백질이나 바이러스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입자들은 어떨까요? 이들은 너무 가벼워서 지구의 중력만으로는 가라앉지 않고 물속에 둥둥 떠다닙니다(브라운 운동). 20세기 초, 화학자들은 단백질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단백질은 일정한 크기를 가진 분자인가, 아니면 그냥 덩어리들이 뭉쳐 있는 혼합물인가?"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단백질을 '무게별로 분리' 해봐야 했습니다. 하지만 지구의 중력으로는 어림도 없었죠. "중력이 약하다면, 우리가 인공적으로 엄청나게 센 중력을 만들면 되지 않을까?" 오늘 소개할 1926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는 이 무모한 도전을 성공시킨 스웨덴의 화학자입니다. 팽이처럼 회전하는 힘을 이용해 지구 중력의 수십만 배에 달하는 힘을 만들어내는 기계, '초원심분리기(Ult

Naver Blog

[1927 노벨화학상] 하인리히 빌란트 : 두꺼비 독과 소화제의 비밀, '담즙산'의 구조를 밝히다

삼겹살을 먹어도 배탈이 나지 않는 이유 우리가 기름진 고기를 먹을 때를 상상해 봅시다. 물과 기름은 섞이지 않습니다. 우리 몸속은 대부분 물로 되어 있는데, 기름진 음식이 들어오면 둥둥 떠다니기만 하고 소화가 되지 않아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고기를 먹고도 멀쩡하게 소화하고 에너지를 얻습니다. 그 비결은 바로 간에서 만들어져 쓸개(담낭)에 저장되었다가 나오는 녹황색 액체, '담즙(Bile)' 덕분입니다. 이 씁쓸한 액체는 일종의 천연 세제입니다. 지방 덩어리를 아주 잘게 쪼개서 물과 섞이게 만드는 '유화 작용' 을 하죠. 20세기 초, 화학자들은 이 담즙 속에 들어있는 '담즙산(Bile Acid)' 이라는 물질의 존재는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구조가 너무나 복잡해서 도저히 그림을 그릴 수가 없었습니다. "탄소와 수소가 잔뜩 뭉쳐 있긴 한데, 도대체 어떤 모양으로 결합해 있길래 이런 기능을 하는 거지?" 오늘 소개할 1927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는 이 끈적하고 복잡한 물질

Naver Blog

[1928 노벨화학상] 아돌프 윈다우스 : 햇빛 비타민의 아버지, '스테롤'과 '비타민 D'의 연결 고리를 찾다

"햇볕을 쬐면 뼈가 튼튼해진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유럽과 미국의 산업 도시에서는 아이들의 다리가 활처럼 휘고, 가슴뼈가 튀어나오며, 성장이 멈추는 끔찍한 병이 유행했습니다. 바로 '구루병(Rickets)' 이었습니다. 연기로 뒤덮인 공장 지대의 어두운 골목에서 자란 아이들에게만 유독 이 병이 찾아왔습니다. 의사들은 경험적으로 두 가지 치료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대구 간유(Cod liver oil)를 먹인다. (맛이 끔찍했지만 효과는 좋았습니다.) 아이들을 햇볕이 잘 드는 곳에서 놀게 한다. 여기서 과학자들은 거대한 모순에 빠졌습니다. "기름(간유)을 먹는 것과 햇빛(자외선)을 쬐는 것. 도대체 이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두 가지가 어떻게 똑같이 뼈를 고친단 말인가?" 어떤 물질이 약이 되려면 입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피부에 빛을 쬔다고 몸속에서 약이 생긴다는 건 당시 상식으로는 연금술이나 마법처럼 들렸습니다. 오늘 소개할 1928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는 이 마법 같은

Naver Blog

[1929 노벨화학상] 아서 하든 & 한스 폰 오일러-켈핀 : 효소의 도우미, '조효소'를 발견하여 발효의 비밀을 풀다

Previous image Next image "효모가 죽어도 술은 익는다, 하지만..." 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포도를 으깨어 두면 와인이 되고, 밀가루 반죽을 놔두면 부풀어 빵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 마법 같은 과정을 '발효(Fermentation)' 라고 합니다. 1897년, 에두아르트 부흐너(1907년 노벨상 수상자)는 살아있는 효모 세포가 없어도, 효모를 갈아 만든 즙(추출액)만으로도 발효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그는 효모 안에 있는 '치마아제(Zymase)' 라는 효소가 설탕을 알코올로 바꾼다고 주장했습니다. "아하, 효소라는 단백질 기계가 있어서 발효가 되는구나!" 과학자들은 이제 발효의 비밀이 다 풀렸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효모 즙으로 발효를 시키면 처음에는 거품이 보글보글 나다가 금방 멈춰버리는 것이었습니다. 효소가 멀쩡히 있는데 왜 반응이 멈출까? 오늘 소개할 1929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들은 이 멈춰버린 발효

Naver Blog

[1930 노벨화학상] 한스 피셔 : 피의 붉은색과 잎의 초록색, 생명의 색깔을 합성하다

붉은 피와 초록 잎, 그 놀라운 평행이론 우리가 손을 베면 붉은 피가 나옵니다. 숲을 거닐면 온통 초록색 나뭇잎이 보입니다. 빨강(Red) 과 초록(Green). 이 두 색깔은 색상환에서 정반대에 위치한 보색인 것처럼, 동물과 식물을 구분 짓는 가장 상징적인 색깔입니다. 피의 붉은색은 우리 몸에 산소를 배달하는 '헤모글로빈(Hemoglobin)' 때문이고, 잎의 초록색은 태양 에너지를 흡수하는 '엽록소(Chlorophyll)' 때문입니다. 하는 일도 다르고 색깔도 정반대인 이 두 물질이, 화학적으로는 '쌍둥이' 처럼 닮아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화학자들은 이 두 물질이 전혀 다른 기원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한 명의 집요한 화학자가 이 복잡한 분자들을 하나하나 뜯어보고 다시 조립한 끝에, 자연이 숨겨놓은 놀라운 '화학적 라임(Rhyme)' 을 찾아냈습니다. 오늘 소개할 1930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는 생명의 색을 지배하는 반지의 제왕입니다. 독

Naver Blog

[1919 노벨화학상] 수상자 없음 : 전자의 호텔을 지은 화학자, 어빙 랭뮤어와 '옥텟 규칙'의 확장

1919년, 전자를 위한 방을 배정하다 1919년, 세계는 제1차 세계대전의 포화가 멈춘 뒤 깊은 침묵에 빠져 있었습니다. 노벨 위원회 역시 이 해의 화학상 수상자를 내지 않고 숨을 골랐습니다. 하지만 과학의 시계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1919년 6월, 미국 화학회지(JACS)에는 화학의 역사를 바꿀 기념비적인 논문 하나가 실렸습니다. 제목은 <원자와 분자 내 전자의 배열>. 저자는 제너럴 일렉트릭(GE)의 연구원이었던 어빙 랭뮤어(Irving Langmuir) 였습니다. 그는 이 논문에서 원자 속의 전자들이 아무렇게나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마치 호텔 투숙객처럼 층층이 정해진 방(껍질)에 들어간다는 획기적인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첫 번째 층에는 2명, 두 번째 층에는 8명, 세 번째 층에도 8명..." 이것은 우리가 고등학교 화학 시간에 지겹도록 외웠던 전자 껍질 모형의 시초이자, 현대 화학 결합 이론의 실질적인 출발점이었습니다. 오늘 소개할 인물은 노벨상을 받지 못한 191

Naver Blog

[1920 노벨화학상] 발터 네른스트 : 절대 영도의 침묵 속에서 엔트로피의 비밀을 푼 열역학의 거장

️ 우주가 멈추는 온도, -273.15도 우리는 물이 100도에서 끓고 0도에서 언다는 것을 압니다. 온도가 내려갈수록 분자들의 움직임은 느려지고, 에너지는 줄어듭니다. 그렇다면 온도를 계속 낮추면 어떻게 될까요? 영하 100도, 영하 200도... 그러다 보면 이론적으로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한계점, 즉 모든 분자의 움직임이 정지하고 에너지가 사라지는 궁극의 차가움에 도달하게 됩니다. 바로 '절대 영도(Absolute Zero, -273.15, 0K)' 입니다. 19세기 말, 과학자들은 열과 에너지의 관계를 설명하는 '열역학 1법칙(에너지 보존)' 과 '열역학 2법칙(엔트로피 증가)' 을 완성했습니다. 하지만 절대 영도 근처에서 물질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절대 영도에서 엔트로피(무질서도)는 어떻게 될까? 완전히 0이 될까, 아니면 어떤 값이 남아 있을까?" 이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화학 반응이 일어날지 말지를 예측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마지막

Naver Blog

[1921 노벨화학상] 프레데릭 소디 : 주기율표의 혼란을 잠재운 '동위원소'의 발견자

"원소의 주민등록번호가 중복된다?" 19세기 말 멘델레예프가 만든 '주기율표' 는 화학계의 헌법과도 같았습니다. 모든 원소는 원자량(무게) 순서대로 나열되며, 각 칸에는 단 하나의 원소만 들어갈 수 있다는 규칙은 절대적이었습니다. 그런데 20세기 초, 방사능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이 완벽한 표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퀴리 부부와 러더퍼드 같은 과학자들이 우라늄, 토륨 같은 방사성 원소를 연구하다 보니, 정체불명의 새로운 물질들이 계속 쏟아져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아이오늄, 메조토륨, 라디오토륨... 이 새로운 녀석들은 분명히 무게(원자량)가 달라서 서로 다른 원소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화학적 성질은 기존 원소와 소름 끼치도록 똑같아서, 도저히 분리할 수가 없었습니다. "새로운 원소들이 너무 많아! 주기율표에는 빈칸이 몇 개 없는데, 이 녀석들을 다 어디에 집어넣지? 주기율표를 찢고 새로 그려야 하나?" 화학계가 대혼란에 빠져 있을 때, 이 복잡한 상황을 단 하나의 단어로 정

Naver Blog

[1922 노벨화학상] 프랜시스 애스턴 : 원자의 무게를 찍는 사진기, '질량 분석기'로 동위원소 사냥에 나서다

️ "네온(Neon)의 몸무게는 20인가, 22인가?" 1921년 노벨상 수상자인 프레데릭 소디는 우라늄이나 토륨 같은 방사성 원소들에게 '동위원소(Isotope)' 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무거운 원소들은 붕괴하면서 무게가 변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숨 쉬는 공기나 소금 같은 '평범한 원소(비방사성 원소)' 들은 어떨까요? 당시 과학자들은 "평범한 원소는 안정적이니까, 무게가 딱 하나로 고정되어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골치 아픈 녀석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네온사인의 주인공 '네온(Ne)' 이었습니다. 화학 교과서에 따르면 네온의 원자량(무게)은 20.2였습니다. 과학자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원자는 쪼개질 수 없는 알갱이인데, 어떻게 무게가 소수점(0.2)으로 나오지? 사람이 1.5명일 수 없듯이, 원자도 20 아니면 21이어야지!" 이 0.2의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망치와 유리를 들고 직접 기계를 뚝딱거려 만든 영국의 물리학자가 있었습니다. 오

Naver Blog

[1923 노벨화학상] 프리츠 프레글 : 화학의 스케일을 줄이다, '미량 분석법'의 창시자

"티끌만 있어도 분석할 수 있다" 19세기 말까지 화학자들은 '덩어리' 와 싸워야 했습니다. 새로운 물질을 발견하고 그 화학식(성분)을 알아내려면, 적어도 0.5g에서 1g 정도의 시료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설탕 1g? 그거야 쉽지." 우리가 흔히 보는 소금이나 설탕이라면 1g은 아주 적은 양입니다. 하지만 연구의 대상이 '생체 물질' 이라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호르몬, 효소, 비타민 같은 귀한 물질들은 동물의 장기 수백 킬로그램을 갈아도 겨우 눈꼽만큼(몇 밀리그램) 나올까 말까 합니다. 당시의 분석 기술로는 이 귀한 물질을 분석하려면 트럭 몇 대 분량의 재료가 필요했습니다. 사실상 연구가 불가능했죠. "시료를 더 구할 수 없다면, 분석하는 기계를 작게 만들면 되지 않을까?" 이 단순하지만 혁신적인 발상으로 화학의 패러다임을 바꾼 인물이 있습니다. 오늘 소개할 1923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는 화학 실험의 스케일을 '그램(g)'에서 '밀리그램(mg)' 단위로 축소시킨 오

Naver Blog

[1924 노벨화학상] 수상자 없음 : 침묵의 해, 그리고 노벨상이 외면한 비운의 천재 '길버트 루이스'

1924년, 스톡홀름의 단상은 비어 있었다 매년 12월이 되면 스웨덴 스톡홀름은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축제의 장이 됩니다. 인류를 위해 가장 위대한 공헌을 한 사람들에게 노벨상이 수여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924년, 화학상 시상식의 단상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전쟁(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6년, 1917년이나 1919년처럼 불가피한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1924년은 평화로운 시기였고, 과학계는 양자역학의 태동과 함께 급격하게 발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벨 위원회는 차가운 한 문장으로 그해의 결정을 발표했습니다. "올해 추천된 후보작 중,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에 명시된 조건을 충족하는 연구가 없으므로 상을 수여하지 않는다." 과연 그럴까요? 정말 1924년의 화학계에는 상을 받을 만한 영웅이 없었을까요? 많은 과학사가들은 이 해를 '노벨상 역사상 가장 큰 실수 중 하나' 가 저질러진 시기로 기억합니다. 오늘 소개할 인물은 노벨상을 받지 못했지만, 현

Naver Blog

[1925 노벨화학상] 리하르트 지그몬디 : 보이지 않는 세계를 비추다, '초현미경'과 콜로이드의 비밀

️ 물과 흙탕물 사이, 그 모호한 경계 우리가 소금을 물에 넣고 저으면 투명한 소금물이 됩니다. 이것은 '용액(Solution)' 입니다. 소금 입자가 너무 작게 쪼개져서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흙을 물에 넣으면 뿌연 흙탕물이 됩니다. 가만히 두면 흙이 바닥에 가라앉습니다. 이것은 '현탁액(Suspension)' 입니다. 입자가 커서 눈에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이 두 가지로 딱 잘라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한 액체들이 존재합니다. 우유, 젤리, 먹물, 그리고 아름다운 붉은색을 띠는 스테인드글라스. 이들은 흙탕물처럼 뿌옇게 보이기도 하지만, 아무리 오래 둬도 가라앉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소금물처럼 완전히 투명하지도 않습니다. 마치 '액체 속에 무언가가 둥둥 떠다니는데, 너무 작아서 보이지도 않고 가라앉지도 않는 상태' 와 같습니다. 19세기 화학자들은 이 미스터리한 상태를 '콜로이드(Colloid)' 라고 불렀습니다. 풀(Glue)을 뜻하는 그리스어 'Ko

Naver Blog

[1908 노벨화학상] 어니스트 러더퍼드 : 물리학자이면서 화학상을 받은, '핵물리학'의 아버지

️ "과학은 물리학 아니면 우표 수집이다" 20세기 초, 영국의 한 오만한 과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물리학만이 진정한 과학이고, 나머지는 그저 우표 수집(분류학)에 불과하다." 이 도발적인 발언의 주인공은 당대 최고의 물리학자였던 어니스트 러더퍼드(Ernest Rutherford) 였습니다. 그는 세상의 모든 이치를 물리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믿었던 뼛속까지 물리학자였습니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일까요? 1908년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그에게 노벨상을 수여하면서, 물리학상이 아닌 '노벨 화학상' 을 안겨주었습니다. 시상식 연회장에서 러더퍼드는 특유의 호탕한 웃음과 함께 뼈 있는 농담을 던졌습니다. "나는 살면서 수많은 변화(Transformation)를 연구해 왔지만, 나 자신이 물리학자에서 화학자로 변한 것만큼 급격한 변화는 처음 겪어봅니다." 오늘 소개할 인물은 뉴질랜드 시골의 감자밭에서 출발해 원자의 중심인 '핵'을 발견하고, 인류에게 원자력이라는 거대한 힘을 안겨준 거

Naver Blog

[1909 노벨화학상] 빌헬름 오스트발트 : 화학 반응의 속도를 지배하는 마법사, '촉매'의 원리를 밝히다

"시간은 돈이다" 화학 공장의 딜레마 19세기 말, 산업혁명의 열기가 뜨겁던 유럽. 공장들은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었지만, 화학 공장주들에게는 큰 고민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시간' 이었습니다. 원료를 넣고 제품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화학 반응식을 알아도, 반응 속도가 느리면 공장은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온도를 높이면 빨라지긴 하는데, 폭발할 위험이 있고 연료비가 너무 들어." "압력을 높여도 한계가 있어.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 느려터진 반응을 안전하고 빠르게 만들 수 있을까?" 당시 화학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촉매(Catalyst)' 라는 신비한 물질에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소량만 넣어도 반응 속도가 기적처럼 빨라지는 물질이었죠. 하지만 당시 촉매는 마치 연금술사의 마법 가루처럼 여겨졌을 뿐, 도대체 '왜', '어떻게' 작용하는지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오늘 소개할 1909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는 이 마법 가루의

Naver Blog

[1910 노벨화학상] 오토 발라흐 : 향기의 비밀을 푼 '테르펜'의 개척자, 유기화학의 질서를 세우다

장미의 향기는 화학식으로 쓸 수 있을까? 우리는 숲속을 걸을 때 느껴지는 상쾌한 소나무 향기, 오렌지 껍질을 깔 때 터져 나오는 상큼한 내음, 그리고 장미꽃의 매혹적인 향기에 취하곤 합니다. 수천 년 동안 인류는 식물에서 이 향기로운 기름, 즉 '정유(Essential Oil)' 를 추출하여 향수나 약으로 사용해 왔습니다. 하지만 19세기 말까지만 해도, 화학자들에게 이 향기 물질들은 그야말로 '악몽' 과도 같았습니다. 분석을 해보면 탄소(C) 10개와 수소(H) 16개로 이루어진 똑같은 화학식(C₁₀H₁₆)을 가지는데, 어떤 것은 레몬 냄새가 나고, 어떤 것은 소나무 냄새가 나고, 어떤 것은 썩은 냄새가 났기 때문입니다. 성분은 같은데 성질이 제각각인 이 물질들 앞에서 화학자들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도대체 이 기름들의 정체가 무엇인가? 왜 똑같은 재료로 만들었는데 냄새가 다른가?" 당시 유기화학계는 이 문제에 대해 손을 놓고 있었습니다. 너무 복잡하고 변수가 많아 "신이 만든

Naver Blog

[1911 노벨화학상] 마리 퀴리 : 방사능의 어머니, 최초의 노벨상 2관왕이 되다

어둠 속에서 스스로 빛나는 푸른빛, 라듐 19세기 말 파리의 어느 허름한 창고. 천장에는 비가 새고, 바닥은 흙바닥이나 다름없는 열악한 실험실에서 한 여성이 솥단지보다 더 큰 냄비에 검은 광석을 끓이고 있습니다. 매캐한 연기가 코를 찌르고, 무거운 철봉으로 광석을 젓느라 어깨가 빠질 것 같았지만, 그녀의 눈은 어느 때보다 빛났습니다. 그녀가 찾고 있는 것은 당시 과학계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스스로 에너지를 내뿜는 기적의 원소 '라듐(Radium)' 이었습니다. 밤이 되어 실험실의 불을 끄면, 그녀가 정제해 둔 시약병 속에서는 신비롭고 영롱한 '푸른 빛' 이 새어 나왔습니다. 그것은 인류가 처음 목격한 원자력의 빛이자, 한 인간의 불굴의 의지가 만들어낸 생명의 빛이었습니다. 오늘 소개할 인물은 설명이 필요 없는 과학계의 전설입니다. 여성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이자, 인류 역사상 최초로 노벨상을 두 번이나 받은 유일한 여성. 물리학과 화학, 두 분야를 모두 석권한 천재. 폴란드의 억

Naver Blog

[1912 노벨화학상] 빅토르 그리냐르 & 폴 사바티에 : 유기화학의 마법지팡이와 연금술, '그리냐르 시약'과 '수소화 반응'

Previous image Next image 레고 블록을 조립하는 접착제와 기름을 버터로 만드는 마법 우리가 가지고 노는 레고 블록을 상상해 보십시오. 빨간 블록과 파란 블록을 마음대로 연결해서 자동차도 만들고 성도 쌓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19세기 말까지 화학자들에게 분자 세계는 '본드가 없는 레고'와 같았습니다. 탄소(C)는 생명과 유기물을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뼈대입니다. 새로운 약이나 플라스틱을 만들려면 이 탄소 원자들을 서로 연결해서 뼈대를 길게 늘리거나 복잡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이 작업이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탄소끼리는 좀처럼 손을 잡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탄소와 탄소를 마음대로 붙일 수 있는 '접착제'만 있다면, 우리는 신이 만든 모든 물질을 실험실에서 만들어낼 수 있을 텐데!" 이 간절한 소망을 현실로 만들어준 두 명의 프랑스 화학자가 있습니다. 탄소와 탄소를 순식간에 결합시키는 기적의 시약, 일명 '화학자들의 마법 지팡이' 를 발명한 빅토르 그리냐르(

Naver Blog

[1913 노벨화학상] 알프레트 베르너 : 무기화학의 혼돈을 잠재운 천재, '배위설'로 분자의 입체 구조를 그리다

"금속은 어떻게 결합하는가?" 100년 묵은 수수께끼 19세기 말, 화학계는 유기화학(탄소 화합물)의 황금기였습니다. 벤젠 고리가 발견되고, 각종 합성 염료와 약품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탄소가 팔(결합선)을 4개 가지고 있다는 규칙만 알면 모든 게 설명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무기화학(Inorganic Chemistry)', 특히 금속 화합물의 세계는 그야말로 '난장판' 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염화코발트(CoCl₃)' 라는 물질이 있습니다. 여기에 '암모니아(NH₃)' 를 섞으면 아주 기이한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분명 똑같은 코발트와 암모니아를 섞었는데, 어떤 것은 노란색이고, 어떤 것은 보라색이며, 어떤 것은 녹색이 되었습니다. 성분 분석을 해보면 암모니아 개수만 조금씩 다를 뿐이었습니다. CoCl₃·6NH₃ (노란색) CoCl₃·5NH₃ (보라색) CoCl₃·4NH₃ (녹색) 당시 화학자들은 머리를 싸맸습니다. "탄소는 팔이 4개로 고정되어 있는데, 코발트는 도대체 팔이

Naver Blog

[1914 노벨화학상] 시어도어 리처즈 : 원자의 무게를 잰 저울의 마법사, '원자량' 측정의 끝판왕

️ "설탕 1g과 1.00001g은 다르다" 요리를 할 때 밀가루 100g을 넣으라고 했는데, 실수로 105g을 넣었다고 해서 빵이 망가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화학의 세계에서는 다릅니다. 화학 반응은 원자 대 원자의 만남입니다. 수소 원자 2개와 산소 원자 1개가 만나야 정확히 물(H₂O)이 됩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알고 있는 산소 원자의 무게가 틀렸다면 어떻게 될까요? 모든 화학식, 모든 실험 결과, 나아가 우주를 설명하는 법칙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져 내릴 것입니다. 19세기 말까지 화학자들은 원소들의 무게, 즉 '원자량(Atomic Weight)' 을 대략적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은(Ag)은 대충 107.9 정도 아닐까?", "염소(Cl)는 35.5쯤 되겠지." 이 '대충'의 오차를 용납하지 못해, 평생을 바쳐 먼지 한 톨의 무게까지 털어낸 결벽증적인 완벽주의자가 있었습니다. 오늘 소개할 1914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는 화학을 정밀 과학의 경지로 끌어올린 인물입니다. 미국

Naver Blog

[1915 노벨화학상] 리하르트 빌슈테터 : 식물의 초록 피, '엽록소'의 비밀을 밝히다

잎사귀는 왜 초록색일까? 생명의 색을 찾아서 우리는 사계절 내내 식물과 함께 살아갑니다. 봄이 되면 새싹이 돋고, 여름이면 짙은 녹음이 우거지며, 가을이면 붉게 단풍이 듭니다.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이 '초록색(Green)' 은 사실 지구 생태계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색깔입니다. 식물이 태양 빛을 받아 에너지를 만드는 '광합성' 이 바로 이 초록색 물질, 즉 '엽록소(Chlorophyll)' 에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20세기 초까지도 화학자들은 이 중요한 물질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식물을 으깨면 나오는 초록색 물" 정도였지, 그 성분이 무엇인지,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지, 왜 하필 초록색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불순물을 걸러내기가 너무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오늘 소개할 1915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는 이 혼탁한 초록색 즙 속에서 순수한 생명의 결정을 찾아낸 독일의 화학자입니다. 식물의 혈액인 엽록소의 비밀을 풀고, 꽃들이 피워내는 오만가지 색깔의 원리까지

Naver Blog

[1916 노벨화학상] 수상자 없음 : 전쟁이 앗아간 천재, '헨리 모즐리'와 침묵의 주기율표

1916년, 스톡홀름의 종은 울리지 않았다 매년 12월, 스웨덴 스톡홀름은 인류 지성의 축제로 빛나야 했지만, 1916년의 겨울은 그 어느 때보다 춥고 어두웠습니다. 유럽 대륙은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거대한 화마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젊은이들은 참호 속에서 죽어갔고, 과학자들은 연구실을 떠나 전장으로 향하거나 살상 무기를 만드는 데 동원되었습니다. 평화, 문학, 그리고 과학의 발전을 기리는 노벨상은 이 야만의 시대 앞에서 침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노벨 위원회는 "올해는 수상자를 배출하지 않는다" 고 선언했습니다. 상금은 기금으로 회수되었고, 영광의 단상은 비워졌습니다. 하지만 1916년의 빈자리는 단순히 전쟁 때문에 시상식을 못한 해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과학 역사상 가장 뼈아픈 '상실의 해' 로 기억됩니다. 만약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혹은 그가 전쟁터로 나가지 않았더라면, 1916년 노벨 화학상(혹은 물리학상)은 의심할 여지 없이 한 명의 20대 청년에게 돌아갔을 것이

1 2 3 4 5 6 7 8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