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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 존중’이 처참하게 파괴되는 현장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79)

자아의 파괴 ‘자아 존중’이 처참하게 파괴되는 현장 인간은 타인의 자아 존중심을 짓밟고 파괴할 수 있다. 이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가장 잔혹한 일이다. 자존감의 상실은 목숨보다 중요한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기회주의자로 살아가는 건 스스로의 자아 존중심을 파괴하는 행위다. 자아 존중의 파괴는 기회주의자들처럼 유혹에 의한 것도 있지만 다른 유형도 있다. 그것은 공포와 고통을 가함으로써 파괴하는 방법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생각할 때 어떤 경우라도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부르짖을 만큼 극단적인 굴욕을 감내한다면, 그것은 존엄성을 스스로 짓밟는 방식 중에 가장 처참한 방식이다. 그것은 자아 존중의 절대적인 상실이며 동시에 존엄성의 절대적인 상실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존엄을 저버리는 행위가 제 한 목숨 때문이 아니라, 자식을 위한 것이라면 어떨까? 자기가 아닌 타인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자아 존중을 희생하는 경우라면 평가가 달라지는 것인가? 그가 구하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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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자신(自己自身)을 책임진다’라는 말의 의미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80)

책임지는 자세 ‘자기자신(自己自身)을 책임진다’라는 말의 의미 내면(內面)의 경계선을 넘어갈 때만 자기 존중감을 잃는 건 아니다. 자신과 자신의 인생에 대해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때도 그것은 쉽게 상실된다. 자기 삶에 대한 책임을 포기한다는 건 자립성이라는 측면에서의 존엄성을 잃어버린 상태를 말한다. 그것은 충분히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어떤 일을 하지 않고 흘려보내는 것을 의미한다. 그 어떤 일이란 바로 자신을 돌보는 일이다. 자신에 대해 책임지는 의미로서 스스로를 돌보는 건 여러 측면을 가지고 있다. 자기의 건강을 돌보는 것, 내적 강박에서 벗어나 더 큰 독립성을 추구하는 것, 자기 삶이 가진 논리에 대해 이해의 폭을 넓혀가는 것, 그 삶에 의미와 방향을 찾아주는 것 등이다. 그것들을 실패한다고 해도 자아 존중에 위협이 되지는 않는다. 그것들이 가진 중요성을 더 이상 인지(認知)하지 않을 때, 그리고 결국 손을 완전히 놓아버릴 때 비로소 위협이 된다. 거기에는 그 어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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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은 변화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라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81)

변화하는 정체성 정체성은 변화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라 사람이 자기 스스로에게 책임을 진다는 건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행위를 당연히 포함한다. 신념, 감정, 의지, 살아가는 총체적 방법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것은 타인과 자신을 구분 짓는 능력과 용기를 의미한다. 또한 그것은 갈등을 회피하지 않는 강인함을 뜻한다. 그렇기에 자기 존중은 두려움이 없다는 말과도 일맥상통(一脈相通) 한다. 어떤 것에 대하여 저항해야겠다고 결심하는 순간, 우리는 거대하고 위험한 충돌 상황에 직면한다. 비밀경찰의 추적을 피해 가까스로 도주에 성공해 외국으로 망명했던 반체제 인사가 자기 존중감과 삶의 일치감을 위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결심을 하는 것이 바로 그런 경우다. 그러한 자기 존중은 언뜻 보면 사소하고 우습게 보이는 작은 일로 인해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일들은 실제 생활에서 많이 일어난다. 특정한 인물과 한 식탁에 앉지 않으려고 한다든지, 친구들과 같이 극장에 갔다가 보던 영화가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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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도덕적 행위’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82)

자기 희생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도덕적 행위’ 살다 보면, 병이 들거나 도움이 필요한 타인을 위해서 내 삶을 한발 양보할 때도 있다. 여행을 포기하거나, 직장을 그만두거나, 사랑을 단념하기도 한다. 그런 경우, 내 행동을 좌우하는 건 나의 욕구가 아니라 타인의 욕구다. 나는 그의 욕구와 필요를 내 것처럼 여기며, 나의 욕구에 우선한다. 그것은 도덕적 행위의 표지(標識)이며 도덕적 인식과 배려의 핵심을 이룬다. 다시 말해, 타인의 이익이 내가 어떤 행위를 하거나 용인케 하는 동기(動機)가 된다. 이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이루는 또 하나의 축(軸)이다. 그러나 그러한 행위의 논리가 항상 명쾌하게 이해되는 건 아니다. 앞뒤를 맞추려다가 자칫하면 전체 그림이 뒤죽박죽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도덕적 경험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까? 또 그것은 존엄성이라는 개념이나, 우리가 지금껏 이야기한 다른 개념들과 어떤 식으로 연결되는 것일까? 타인을 위해 자기 소망의 성취를 포기하는 것은 자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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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관계에서 형성되는 도덕적 친밀성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83)

친밀감 특별한 관계에서 형성되는 도덕적 친밀성 자기 주도적 결정권은 다음과 같은 형태로만 존재한다. 내면의 압박에 굴복하느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것, 그리고 양심의 가책을 감수하느냐 마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내면의 예속(隸屬)에 관한 경험이다. 도덕적 행위는 즉흥적인 도덕적 감정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그러므로 그런 즉흥성에서 비롯된 건 진짜가 아니다. 어떤 상황이 가지는 분위기와 미묘한 차이에 반응하는 데서 나오는 도덕적 감수성(感受性)이 우리의 도덕적 행위의 원인이 될 수 없으므로 도덕적 행위라는 건 규칙과 법칙, 의무와 명령, 그리고 원리 원칙에 맞도록 방향성을 두어야 하는 행위다. 허락된 것과 허락되지 않은 것에 대한 내적 처리 과정은 철저하게 관리된다. 도덕적 행위에 엄격한 사람이라면 마치 금지된 것의 목록이 적힌 먼지 앉은 서류를 일일이 들여다보는 수고를 참아야 한다는 듯이 말이다. 그러나 도덕적 경험이 위에서 말한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하는 건 아니며, 일상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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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결정권과 도덕적 친밀성의 만남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84)

자기 결정권 자기 결정권과 도덕적 친밀성의 만남 나 자신을 상대방의 상황에 대입하게 되면 나는 그의 삶에 연루(連累)된다. 두 사람의 관계는 결속된 만남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런 관계, 상호작용에서 발생하는 열기를 내포하는 관계가 되는 것이다. 즉 서로의 삶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러한 참여에는 여러 형태가 있다. 그중 하나는 도덕적 친밀성이다. 그것은 상대방의 욕구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욕구를 그다음 순번으로 놓을 때 생겨나는 특별한 친밀감이다. 이를 통해 당사자들은 특수한 방식으로 서로에게 중요한 사람이 된다. 상대방에게는 감사함을 넘어서는 중요함이고, 나에게는 남김 없는 희생이나 헌신이 아닌 그 무엇이다. 이 관계에서는 감사라든가 희생 같은 단어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깊은 연대감(連帶感)이나 동반자적인 삶, 절친하다는 말이 더 걸맞을 것이다. 그들은 서로의 인생에 깊이와 풍부함을 더해준다. 도덕적 권위나 허용되는 것과 아닌 것 따위의 목록을 옆으로 치워놓았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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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성의 원천인 도덕적 진실성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85)

진실한 약속 존엄성의 원천인 도덕적 진실성 다른 사람의 존엄성을 해치면 자신의 존엄성도 따라서 해를 입는다. 자아 존엄성과 타인의 존엄성 간의 관계를 살펴보면, 이 두 존엄성은 서로를 전제(前提)로 한 조건 위에서 존재할 수밖에 없다. 사회적 존재로서의 우리는 타인을 어떻게 대하는가의 방식을 바탕으로 지금 우리의 모습으로 만들어졌다. 도덕적 진실성은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존엄성의 원천(源泉) 중 하나다. 타인과 더불어 그의 욕구를 존중하고, 내 행동을 그에게 맞춤으로써 도덕적 존엄성(道德的 尊嚴性)이라고 불리는 특정한 형태의 존엄성을 취득한다는 뜻이다. 만약 완전히 부도덕한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은 이 존엄성과 어떤 관련도 맺지 못한다. 부도덕은 존엄성에 따르는 숙고(熟考)와 감정의 차원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도덕적 존엄성은 진실성의 특수한 형태다. 그러한 도덕적 존엄성에는 도덕적 친밀성에 대한 각오와 능력 말고도 다른 많은 요소가 있다. 타인의 불특정한 욕망이 아니라 존엄성의 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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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박하기 짝이 없는 도덕적 자만심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86)

자만심 천박하기 짝이 없는 도덕적 자만심 우리에게 더 크고 깊은 상실을 주는 것이 있다. 무엇을 얻기 위해서나, 어떤 목적 때문이 아니라 잔인함 자체를 즐기기 위한 행위를 할 때다. 마약상 조직의 보스나, 황색 언론은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잔인하게 행동한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도덕적 존엄성의 맨 밑바닥 단계까지 추락한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남들이 괴로워하는 걸 즐기기 위해 잔인함을 가할 때 존엄성의 수위는 바닥에 다다른다. 여기서 행해지는 가해자의 의지는 잔인함을 잔인함 자체로, 악(惡)을 악 자체로 원하는 의지이다. 형이상학적으로 애매모호한 느낌을 주긴 하지만, 그것은 ‘악한 의지’라고 말할 수 있다. 앞에서 가해자가 피해자의 무력감을 즐기는 것을 굴욕이라고 말한 바 있다. 수치스러운 약점을 가진 사람을 공개적으로 비웃을 때, 그런 행위를 하는 사람은 자신의 도덕성을 잃는다. 일례로, 옐친은 한때 막강한 권력자였던 고르바초프를 공개석상에서 망신 주었다. 그에게 처음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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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으로 무너지는 도덕적 충실성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87)

배신의 현장 배신으로 무너지는 도덕적 충실성 도덕이 자기중심적 사고의 수단으로 이용된다면, 그것은 역설(逆說)이며 변태적 요소(變態的 要素)가 엿보이기까지 한다. 자기가 아닌 온전히 타인을 위해서 하는 것처럼 보이는 행위가 실은 오로지 자신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행하는 도덕적 행위의 수혜자가 그저 내 나르시시즘을 펼칠 멍석에 지나지 않으며, 도덕적 동기를 자아도취적으로 전용(轉用)하는 것은 도덕적 경험에 해를 입힌다. 자아도취적 요소 없이 자발적으로 주도된 도덕적 진실성, 좋을 일을 했다는 경험을 경험 자체로 인식하는 것, 마음속에 쌓아두거나 나중에 꺼내서 써먹는 일이 없어야 한다. 바로 그러한 인식이 도덕적 존엄성을 이룬다. 도덕적 존엄성을 이루는 또 다른 요소는 충실(充實)함이다. 여기서 말하는 충실함은 장기적인 연대감을 일컫는다. 이것은 일회성 도덕적 행위보다 약간 더 오래가는 정도를 일컫는 게 아니라 다소 추상적인 뜻을 가진다. 수많은 부침(浮沈)과 난관의 영향을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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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비밀의 폭로에 따른 존엄성의 상실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66)

비밀 엄수! 사적 비밀의 폭로에 따른 존엄성의 상실 내밀하고 친밀한 관계 속으로의 행보는 아슬아슬하다. 내밀한 관계에서는 상대방이 나에 대해서 많을 걸 알게 된다. 남들에게 감추고 싶은 약점이나 시시콜콜한 습관까지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다. 그것은 상대방에게 나를 휘두를 힘을 부여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에 의해 내가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상대방은 세상을 향해 둘러친 겉모습 뒤에 도사리고 있는 나의 본모습을 알고 있다. 내적 검열을 통과하지 못한 내 맘 깊은 곳의 욕망과 충동에 대해서도 알며, 그것들이 외부에 알려지면 내가 피해를 볼 거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심지어 제어할 수 없는 편견과 추악한 시기심, 정도를 넘어서는 증오에 대해서도 알고 있으며, 의연하고 온화해 보이는 껍데기 안에 있는 맹목적 충동과 어처구니없는 무분별함, 아집(我執)에 대해서도 잘 안다. 그를 알게 되고 그에게 나를 열어 보임으로써 무방비 상태로 나를 내맡긴 탓이다. 그런 관계는 상대방의 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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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을 깨라고 유혹하는 목소리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67)

침묵을 깨라! 침묵을 깨라고 유혹하는 목소리 다음과 같은 주장에 대하여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는 타인(他人)이다. 너희는 우리를 간섭꾼, 사생활의 훼방꾼, 또는 후안무치한 인간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우리는 상관치 않는다. 진실은 이러하다. 우리는 용감하고 정신이 깨어있고 진실하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과 기대와 감성에 솔직하며, 그것들을 부끄러움 없이 내놓는다. 때로는 그것들을 다 보여주지 않는 편이 더 지혜로울 수 있다는 것도 물론 알고 있다. 다른 이들이 우리 속마음을 다 꿰뚫어 보지 못하도록, 그래서 과도하게 이익을 챙기거나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침묵과 숨김은 지혜라는 틀 안에서만 인정할 수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개인의 매우 사적인 사연이 화제가 되는 파티나 토크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존재다. 결국 정말 많은 사람의 관심사는 내밀한 사적인 이야기 아니겠는가. 또 바로 그러한 이유로 우리는 개인적 삶의 시시콜콜한 일상을 SNS에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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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추고 싶은 마음, 알고 싶은 호기심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68)

호기심 감추고 싶은 마음, 알고 싶은 호기심 다른 이들이 어떻게 살고 무엇을 경험하는가는 당연히 우리 관심의 대상이다. 또 그들의 가장 깊숙한 내면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에도 관심이 있다. 아무리 점잖은 체하는 사람일지라도 관심 가는 사람의 삶이 궁금하지 않겠는가? 그것도 심오하고 폭넓게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간은 자신을 얼마나 보여줄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자유 안에 존엄성이 있다. 은밀함을 존중한다는 것은 이러한 자유를 존중하는 것과 같은 말이다. 누군가가 공개석상에 나가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한다고 가정하자. 그 행위로 인해 그와 친해서 이미 그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과 그를 표면적으로만 알고 그가 거리를 두고 싶어 하는 사람들 간의 구분이 없어지는 걸 두고 어떤 이들은 존엄성의 상실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다르게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은밀함이라고 부르는 것이 그리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말이 어떻게 개별적으로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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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성을 망가뜨리는 자기기만(自己欺瞞)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69)

자기기만 존엄성을 망가뜨리는 자기기만(自己欺瞞) 삶의 기만(欺瞞)은 타인에게 거짓말하는 것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자신을 속이는 일도 종종 일어난다. 그럴 때 왜곡되는 건 사회적 신분이 아니라 자아상(自我像)이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다르게 평가하는 것이다. 그것은 크게 대수롭지 않고 단순한 착각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어떤 분야에서 자기의 영향력이나 능력을 과대평가한다든가, 지인이 죽었을 때 크나큰 슬픔을 느낄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든가 하는 착각이 있을 수 있다. 그런 정도의 사소한 착각들은 나중에 본인이 알게 되더라도 정신적 정체성을 크게 흔들지는 못한다. 전체적으로 볼 때 지금까지 살아왔던 대로 계속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삶의 중대한 기만에 관한 얘기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그것은 자기 인생의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는 전체성을 새롭게 만드는 행위다. 능력 있는 사업가, 훌륭한 예술가, 위대한 학자, 헌신적이고 사랑이 가득한 어머니, 정직하고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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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심에 상처가 나더라도 솔직하라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70)

솔직함 자존심에 상처가 나더라도 솔직하라 우리는 일상에서도 정직함을 통한 존엄성을 체험한다. 오랫동안 망설이고 치열한 저항감과의 싸움 끝에 마침내 중대한 사실을 받아들일 용기를 낸다. 누군가의 죽음이나 이별 후에 가졌던 속 시원한 느낌, 자존심에 상처를 준 사람을 향한 복수심 또는 내가 상처받았다는 사실 자체, 분노, 질투심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애정이나 동정심 같은 감정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까지도 받아들인다. 자기만의 완고한 뚜껑을 열어젖히고 자신이 느낀 걸 그대로 인정할 때 자신과의 거리가 가까워짐을 새삼 느낀다. 비로소 안도감을 느낀다. 진실성 위에서 자라는 존엄성도 같이 따라 올라온다. 비록 타인들은 나의 내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지만, 내가 그들을 대하는 태도는 이제부터 달라진다. 더 당당하고 떳떳하다. 정직함과 진실함을 토대로 한 존엄성은 모든 결속된 관계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그것이 설사 고통스러운 기억이라 할지라도 받아들이고 인정한다. 서로의 관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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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기만하는 거짓의 배후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71)

거짓의 배후 삶을 기만하는 거짓의 배후 우리가 상대방에게 솔직함을 기대한다는 것은, 서로 간의 이해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친밀감에 대한 소망과 같은 의미이다. 우리는 상대방이 (자신과 삶과 두 사람의 관계를)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알고 싶어 한다. 이해하자 하는 욕구는 일차적으로 상대방이 (자기 생각과 느낌과 의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용에 의지한다. 그의 말을 그대로 믿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말이 아닌 태도 또한 감지한다. 뭔가를 겁내고 있다든가 부끄러움이나 원망 같은 것은 말이 없이도 표현될 수 있다. 상대방과 인생을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말과 행동, 자아상과 사실 사이에 일치하지 않는 게 많다는 것을 더 명확히 느끼게 된다. 친밀감이 늘어날수록 그런 자기기만을 발견할 기회도 당연히 많아진다. 가까운 사이란 자신이 이해하는 것과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관해서 터놓고 이야기하며, 이해하지 못하는 것의 범위(範圍)를 조금씩 줄여가는 사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생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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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서는 안 되는 금기(禁忌)에 대하여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72)

금기! 말해서는 안 되는 금기(禁忌)에 대하여 우리가 어떤 것에 관하여 말해서는 안 되는 게 있다면, 그것을 금기(禁忌)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이 금기는 사람 사이의 관계를 갉아먹는다. 어떤 것을 말로 표현한다는 건, 그것이 다른 무언가가 아니라 ‘바로 그것’이라는 점을 공식화하는 것이다. 무엇에 명칭을 붙일 때는 그것이 뜻하는 바를 인정한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전쟁, 배신, 거짓말 같은 말들을 사용할 때는 그 말에 따라오는 모든 것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중독’이라는 말을 예로 들어보자. 그것은 자기의 주인이 아니고 강박적인 의지의 노예가 되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명명(命名)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 해방의 행위가 되며, 또 어떤 경우에 파괴적인 굴욕이 되는가? 타인에게 존엄성을 부여하려고 한다면 고정된 기대(期待)로 그의 숨통을 죄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강력하고 고질적인 습관이라 하더라도 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해야 한다. 어떤 말을 입에 담는 건 행위의 일종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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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으로 체면을 지키려는 행태(行態)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73)

거짓 체면 거짓으로 체면을 지키려는 행태(行態) 우리는 일생의 대부분을 타인의 시선 아래 살아간다. 그래서 특정한 방식으로 우리를 내보이며 특정한 얼굴로 그들을 대한다. 그 얼굴은 사회적인 표면, 가시적인 정체성, 그 뒤에 숨을 수 있는 가면이다. ‘얼굴’이라는 말을 좁은 의미로 보면 말 그대로 얼굴에 나타나는 표정과 기색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 밖에도 표정과 관계없는 많은 것들이 얼굴이라는 말뜻에 들어 있다. 사회적 역할, 능력과 영향력, 권력 같은 것들, 습관과 사고방식, 외부로 표출되는 사고와 감정 등이 그것이다. 우리는 평생 끊임없이 사회적 얼굴, 즉 체면을 다듬어간다. 체면을 잃는 건 위험한 일이다. 그것은 무방비와 무력감을 뜻한다. 그러므로 체면을 잃는다는 것은 굴욕과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체면을 지키기 위해서 거의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체면을 지켜주기도 한다. 그런데 그건 거짓말 없이는 안 되는 일이다. 그중 교묘하고도 흥미로운 거짓말이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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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박하고 어리석은 허언(虛言)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74)

천박한 허언 천박하고 어리석은 허언(虛言) 진실을 향한 존엄성은 ‘지적 정직성’이라고 부르는 개인의 사고와 깊은 관련이 있다. 이것은 한마디로 ‘모르는 걸 안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가정이나 숙고한 내용을 말로 표현하고 토론할 수 있다. 그 가정과 숙고가 비록 빈약한 토대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조심할 건, 그러한 가정과 숙고가 곧 지식이라고 그릇되게 주장하는 것이다. 지식이라는 것은 가정과 숙고의 밑바탕을 이루는 것임에도 말이다. 그런 현상은 정치가들의 주장에 잘 나타난다. 그들의 주장은 너무도 복잡하고 심층적이어서 누구도 정확한 상황과 대응 방안을 알지 못하는 주제를 다룬다. 그럼에도 정부의 수장이나 관료들은 대중 앞에 나와서 오직 자신만이 사건을 제일 잘 알고 있다는 식으로 말한다. 다른 사람들은 다 틀렸다는 것이다. 상황을 어떻게 보느냐, 그리고 어떤 계획을 세우느냐에 대해서 자기네들의 주장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다는 식이다. 그 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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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모(無謀)한 행위는 정체성을 훼손한다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75)

무모한 행위 무모(無謀)한 행위는 정체성을 훼손한다 주체로서의 우리는 자신의 행위를 자신뿐 아니라 타인에게도 이해시킬 수 있는 존재다. 이것은 행위에 얽힌 동기(動機)를 설명함으로써 이루어지며 이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성이 드러나게 된다. 동기에 얽힌 이야기는 바로 본인의 이야기이며 어디서 왔는지와 어떻게 지금의 자신이 되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가 이 이야기에 다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자아상은 동기에 관련된 이야기에서 형성된다. 이 자아상은 내가 자신을 어떤 모습으로 보고 있는가이다. 여기에는 현재의 모습뿐만 아니라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또는 되어야 하는가에 관한 문제도 포함된다. 주체로서의 인간은 자신을 평가할 줄 알며 자기 행동과 경험에 만족하는지, 즉 인정할 것인지 아니면 배척할 것인지 자문(自問)할 줄 안다. 이 평가에 따라서 자신의 행위와 감정을 존중할 것인지 경시할 것인지가 결정된다. 따라서 자아상을 동반하고 살아가는 존재는 자아 존중감을 획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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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 존중'에 관한 나만의 기준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76)

나만의 기준 '자아 존중'에 관한 나만의 기준 자아 존중 유지를 결정짓는 한계선은 당사자가 스스로 긋는 거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자아 존중과 존엄에 대해 평가할 때 타인에 의한 한계선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중요한 건 본인이 스스로 그은 경계다. 내가 견딜 수 없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똑같이 느끼는 건 아니다. 어떤 행동이 그 자체만으로 존엄성이 결여되는 것도 아니다. 존엄성의 문제는 항상 자아상과 행위의 한계선에 맞물려 있다. 거짓으로 삶 전체를 포장하여 정직성이라는 면에서의 존엄성을 내동댕이친 사람이라면, 자아 존중이라는 면에서의 존엄성도 내던진 걸까? 자신의 거짓말과 그로 인해 잃어버린 삶의 시간으로 인해 자아 존중감도 상실했을 거라고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다. 그런데 여기서 이런 의문이 생긴다. 자신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관점에 과연 모든 게 달려 있을까? 자아 존중에 관한 객관적인 기준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기회주의의 극단적인 예를 접했을 때도 비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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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영향에 의한 자아상의 변화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77)

따라하기 외부 영향에 의한 자아상의 변화 자아 존중을 결정하는 자아상은 비어있는 공간에서 저절로 생겨나지 않는다. 이는 양육, 교육, 문화적 형성 과정이 합쳐져 오랜 시간 동안 천천히 만들어진 산물이다. 양육이나 교육, 문화에는 다른 것들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것들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건 내 존재의 당위성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이들을 비판하고 무시하면 자아상이 묻힐 수 있으며 결국 무너질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자아 존중은 사회적 현상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어떤 사회의 구성원이 되지 못하는 사람은 자아 존중심에 따른 존엄성을 갖고 있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내가 사는 장소와 내가 속한 집단이 정한 원칙에 따라 살고, 이것을 스스로가 선택한 거라는 사실은 자아 존중심의 한 가지가 될 수 있으나 이러한 원칙도 결국은 혼자서 정하는 것은 아니다. 자아상이 집단의 다른 구성원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발생한다는 건 자아상이 변화할 수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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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상에 관한 궁금증과 질문들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78)

궁금증 자아상에 관한 궁금증과 질문들 우리가 새로운 경험과 성숙의 과정, 스스로의 심사숙고를 거쳐 새로운 가치관에 도착했다면 자괴감(自愧感)을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학생 시절 정치적으로 좌파 성향을 지니고 있다가 어떤 과정과 시간을 거쳐서 점차 보수적으로 변했다든가, 예술에 관한 물음들에 관해 점점 개방적인 사고를 하게 되었다든가, 또는 사회적 관계에 있어서 관대해졌다든가 하는 것들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런 사람은 과거를 회상할 때 이렇게 웃으며 이렇게 반응할 수 있다. “맞아 그랬지! 옛날에는 정말 그랬어, 내가 지금 이러리라고 과거에 상상이나 했겠어? 하지만 이젠 달라, 나는 지금 하는 일이 어색하지 않고 편하기만 한걸” 한때 무신론자였던 사람이 결혼 후에, 기도하는 반려자 옆에서 뻣뻣하게 앉아 있어야만 할까? 아니면 같이 기도문을 중얼거려야 할까? 믿지 않으면서도 입술을 달싹달싹 움직이는 척이라도 해야 할까? 그가 자아 존중의 해를 입히지 않는 묵인(默認)과 절대 용인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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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심을 막아주는 내적 방화벽의 상실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55)

방화벽의 상실 수치심을 막아주는 내적 방화벽의 상실 수치심은 시간을 경험하는 방식에도 변화를 가져온다. 뭔가가 드러날까 봐 두려움 속에 살다 보면 현재의 시간이 뒤틀린다. 매 순간이 언제든지 폭로될 수 있는 순간이기에 마음 편하게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없다. 마음 깊숙한 구석으로 몰린 수치심은 모든 걸 소심함과 초조함의 그늘로 덮어버린다. 누구를 만나든지 상황은 똑같다. 상대방은 언제든지 내 정체를 폭로할 가능성을 지니고 있기에 나를 단죄하는 심판관으로 보인다. 정체가 폭로된 사람의 수치심은 잊힐 수 있는 게 아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살이를 통해서 잠시 덮어버릴 수는 있겠지만 번잡한 일상이 주는 정서적 원심력(情緖的 遠心力)이 느슨해져 자기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즉시 다시 나타난다. 그리고 수치심으로 야기된 삶의 변화는 그전보다 더욱더 극명하게 다가와 괴롭힌다. 잠에서 깨는 순간부터 잠드는 순간까지 옆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꿈속에서도 평온하지 않다. 이러다가 죽고 난 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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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심이 가져다주는 무력감과 굴욕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56)

무력감 수치심이 가져다주는 무력감과 굴욕 사람들은 자신의 결함과 절망을 남에게 들킬 때 수치심을 느낀다. 그 결과로 나타날 무력감은 두 가지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 하나는 부끄러움 자체가 가져다주는 무력감이다. 그는 소중한 이들의 존경과 신뢰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할 것이며, 그들의 시각을 자기 것처럼 받아들여 스스로를 권위도 없고, 자기 목소리를 낼 권리도 없는 사람으로 취급할 것이다. 다른 하나는 약점이 드러나는 것을 막지 못 한 데서 느끼는 무력감이다. 이러한 이중(二重)의 무력감은 모든 수치심의 논리에 다 포함된다. 사람들은 수치심을 느끼는 사람에게 결함을 감추기엔 그의 힘이 역부족이라는 점을 알게 해주며, 내적 권위와 타인의 인정을 상실한 사람이 외부의 판단을 힘없이 받아들인 결과로 어떤 무력감을 느끼게 되는지 일깨워준다. 어떤 과오나 잘못을 의미하지 않는 결함을 가진 사람을 업신여겨 백안시(白眼視)하는 행위도 마찬가지다. 가난이나 노숙, 신체적 결함이나 문맹 같은 경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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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을 지키려면 수치심을 극복하라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57)

존엄 지키기 존엄을 지키려면 수치심을 극복하라 존엄성은 수치심을 느끼지 않아도 될 권리다. 다시 말해, 존엄성은 굴욕을 느끼지 않을 권리라고 말할 수 있다. 숨기고 싶거나 노출될까 봐 전전긍긍하는 어떤 부끄러움이 내 안에 있다고 생각될 경우, 그 부끄러움은 타인의 판단과 자신의 판단 중 하나에 기인한다. 결점을 숨기고자 하는 동기는 남의 비난 또는 나 자신의 비난에 대한 두려움이다. 현재 느끼고 있거나, 앞으로 느낄지도 모르는 수치심과 관련해 자기의 존엄성을 지키고자 하는 투쟁은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는 데서 출발한다. “남들이 나를 향하여 결함이다, 수치다, 치욕이다라고들 하는데, 내가 그들의 관점을 받아들여야 할 불가피한 이유가 있나?” 그렇다. “당신들 마음대로 생각해! 하지만 그건 약점이 아니야.”라고 생각한다면 타인의 시선이라는 압박과 위협적인 수치심을 극복하고 자신의 존엄을 찾을 수 있다. 만약 당신이 문맹자라면 읽기 기초반에 등록하면서 “맞아, 나는 이 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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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중받아야 할 사적(私的) 영역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58)

사적 영역 존중받아야 할 사적(私的) 영역 원치 않을 때 누군가 자신을 지켜본다면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화장실에 갈 때나 샤워할 때는 물론이고, 잠들 때도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고 싶다. 기차 안에서 잠을 청할 때 외투 같은 것으로 얼굴을 가리는 것도 그런 심리 때문이다. 우리는 남의 시선이 차단된 생활공간이 필요하다. 가구나 책, 그림이나 장식품같이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내 주는 물건들이 놓여있는 그곳은 우리가 만들어낸 지극히 사적인 공간이다. 도둑이 들었을 때 낯선 사람이 나만의 공간에 무단으로 침입했다는 사실이, 때로는 값비싼 물건을 잃어버린 것보다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이 공간을 ‘사적 공간’이라고 부른다. 사적 공간이 애초부터 존재하거나 영원히 존재하는 건 아니다. 그것은 각 개인에 따라 다르며 문화 권력(文化 權力)에 의해서 좌지우지된다. 문화 권력은 이 공간의 크기를 결정하는 힘을 가지며 경계를 설정한다. 그리고 삶이 시간을 따라 진행됨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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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추고 싶은 내면(內面)의 깊은 곳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59)

내면의 깊은 곳 감추고 싶은 내면(內面)의 깊은 곳 누구에게나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정신적 경계선(境界線)이 있다. 나의 경험과 체험은 아무도 뺏어갈 수 없다. 경험이라는 말 자체가 반드시 특정한 누군가를 주체로 하기에, 어떤 경험은 그의 정체성에 속한다. 그런 의미에서 경험은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없는 것이다. 같은 공간, 같은 물건을 공유한다고 해서 두 사람이 같은 경험을 하는 건 아니다. 이러한 개인성(個人性)은 다른 걸로 대치될 수 없고, 이것이 지닌 개념의 불변성 또한 엄정하게 따지지 않더라도 자명(自明)하다. 어떤 경험의 내적 영역을 지키려는 우리의 욕구는 그 경험을 소유하고 있느냐 아니냐에 달린 것이 아니라, 그 경험을 알고 있느냐 아니냐에 달려있다. 내가 지켜내야 할 것은 남이 내 경험에 대해 얼마나 아느냐 하는 정도와 양(量)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내가 내 경험을 지켜야 하는가? 우선 실용적인 목적을 들 수 있다. 이것은 삶의 지혜라고 할 수도 있다. 남들이 나의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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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적 최후의 보루인 '사적 공간'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60)

최후의 보루 심리적 최후의 보루인 '사적 공간' 누군가에 의해 개인적 공간이 침해받으면 은밀한 사적 영역이 파괴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내적 세계가 무너진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이 대중에게 공개된다면 최후까지 남아 있던 마지막 보루(堡壘)가 파괴된다. 그런 경우 사람들은 (수치심을 느낄 만한 일을 저지른 사람을 볼 때와는 다르게) 내게 경멸이나 조롱 섞인 시선을 보내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내 속을 꿰뚫어 보는 듯한 그들의 눈빛은 견디기 힘들다. 일기장의 공개가 나와 타인 사이의 중요한 간격을 소멸시킨다는 측면을 다시 떠올려보자. 그런 타인과의 간격은 남의 눈에 띄지 않는 나만의 비밀이 있다는 걸 전제(前提)로 한다. 사람 사이의 이러한 간격에 대한 인간의 요구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사람은 진중(鎭重)한 사람이요, 간격을 무시하는 사람은 경솔(輕率)한 사람이다. 비밀 엄수의 덕목은 타인의 비밀에 대한 존중과, 사람 간의 거리에 대한 감각과 눈치에서 비롯된다. 더 나아가 타인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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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공간을 진솔하고 당당하게 드러내기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61)

당당하게 드러내기 사적 공간을 진솔하고 당당하게 드러내기 인간의 존엄은 자기 사적 공간의 한계를 인식하고, 사고와 감정의 가장 깊숙한 영역을 아무에게나 경솔하게 내보이지 않는 자세에 크게 좌우된다. 그러나 가장 감추고 싶은 심정을 대중 앞에 공개하는 행위 자체에서 존엄성을 찾을 수 있는 경우도 있다. 법정을 한번 상상해보자. 나는 범죄의 동기가 된 내 안의 상처와 고통, 증오 등을 법정에서 증언한다. 또는 누군가의 무덤 앞에서 눈물을 흘린다. 충격과 애도와 홀로 남겨진 쓸쓸함으로 가득 찬 마음을 남에게 들킨다고 해도 상관없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탄압과 불의와 굴욕에 대한 분노가 끓어오르는 정치적 발언을 하기도 한다. 그때그때의 상황이 나를 그렇게 하도록 만들었고, 나는 내 감정을 솔직하게 밖으로 끄집어내어 외친다.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을 나누던 칸막이가 쓰러지고, 모두가 시선을 돌려 그동안 내 속에 고이 간직해오던 감정과 바람과 생각의 비밀들을 읽어낸다. 나는 감정을 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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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를 지키며 감정 표현하기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62)

감정의 분출 품위를 지키며 감정 표현하기 상징적으로 정리된 내적 영역의 분출(噴出)은 다른 형태로도 찾아볼 수 있다. 그 좋은 예가 바로 일기(日記)다. 생면부지(生面不知)의 누군가가 자기 속마음을 내뱉으며 다가온다면 우리는 몹시 불쾌할 것이다. 그가 왜 그러는지 전혀 알고 싶지도 않고, 개인 간의 거리를 침범한 무례한 행위이자 존엄성을 상실한 행동이라고 치부할 것이다. 그런데 같은 말이라도 세심하게 창작된 글로 쓰인 책에서는 왜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 걸까? 거리감이라고는 전혀 없는 객담(客談)보다 예술적으로 드러낼 때 품위와 존엄성을 더 느끼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극히 사적인 것을 드러내면서도 존엄성을 다치게 하지 않는 행위는 또 있다. 바로 치료의 일환(一環)으로 이용될 때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치료받기를 꺼리는 이유 중 하나는, 가장 내밀한 느낌과 소망과 상상을 타인에게 드러내 보이는 것이 끔찍하게 싫기 때문이다. 그럴 때 도움이 되는 생각이 있다. 그건 바로 ‘치유(治癒)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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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모하게 속내를 까발리는 사람들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63)

속내 까발리기 무모하게 속내를 까발리는 사람들 필연적인 이유도 없이, 정제되지 않은 형태로 자신과 아무 관련도 없는 사람들 앞에서 감춰두었던 속내를 드러내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머릿속에서 한 번도 정리하지 않은 채로 자신의 사적 영역을 공개해버린다. 자신의 은밀한 이야기를 그렇게 까발릴 정도로 합당한 인간관계가 형성된 것도 아닌데,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자기를 쉽게 노출하는 것이다. 자기만의 경험을 둘러싸고 있던 보호벽을 손수 무너뜨린 자리에 환한 조명이 켜지는 셈이다. 방송국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내밀한 생각과 집착을 그대로 말하는 사람을 우리는 종종 본다. 호시탐탐 남의 사생활을 엿볼 기회만 노리는 대중지의 리포터나 사진기자를 집 안에 불러들이는 사람도 있고, 인터넷의 소셜네트워크에 시시콜콜한 사연을 공개하는 사람도 있다. 남들이 알 수 없는 자신만의 두려움과 희망, 종교적 신념, 특이한 습벽(習癖), 개인적 취향뿐만 아니라 질병의 증상이나 노화 현상, 사망의 전조증상(前兆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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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열한 폭로를 경계하라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64)

비열한 폭로 비열한 폭로를 경계하라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는 또 하나의 이유는 사회적 압력이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원하는 정보보다 더 많이 자신을 노출해야만 할 때가 있다. 타인과 거리를 두고자 하는 마음과 자신만의 비밀을 간직하고자 하는 마음은 이 사회적 압력에 의해 훼손된다. 예를 들어 사우나에 가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남들에게 벗은 몸을 보이기 싫어서다. 나만 아는 공포나 기대가 반영된 공상에 대해서 떠들고 싶은 마음이 없음에도, 그것을 입에 올린다면 무리에서 소외되는 상황이 두렵기 때문이다. 소외시키겠다는 위협이 존재하기 때문에 사적인 것들을 발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이때 사적 영역의 수호라는 면에서 존엄성을 지켜내는 일은 독립의 존엄성을 지키고자 하는 행위와 일치하며, 공개와 비공개의 경계를 어디에서 어디까지 선을 그을 것인지는 그 누구도 아닌 내가 정한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것을 지켜낼 수 없다는 건 나약하다는 의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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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밀함과 내밀한 관계의 형성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65)

친밀한 사이 친밀함과 내밀한 관계의 형성 우리는 때때로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을 타인에게 열어 보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실제로 다른 사람들이 내 공간에 들어와서 살기도 한다. 그들은 내 책을 읽고, 내 집에 걸린 그림을 보고, 화장실을 쓰며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기도 한다. 반대로 내가 다른 사람의 집에 초대받아 그의 개인적인 공간에 발을 들여놓기도 한다. 이를 통해 친밀한 관계가 형성된다. 그런 관계에는 단계가 있다. 그것은 자신을 어느 정도까지 열 것인지, 또 얼마만큼 상대방에게 보여줄 것인지에 달려있다. 단순히 사적인 공간을 공개하는 것에서부터, 좀 더 들어가 내면세계, 즉 자신의 사고와 감정과 미래의 희망을 담아두는 가장 깊숙한 영역을 상대방에게 얼마나 허락하는지에 따라 친밀함의 깊이가 달라진다. 매우 친한 사이라면 극히 소수의 사람만 아는, 아니면 아무도 모르는 나의 어떤 면을 드러내기도 한다. 내가 가진 욕구, 공포, 동경, 미움, 경멸, 질투, 부러움, 기대, 그리고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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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밀한 속내를 타인에게 드러내기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44)

속내 드러내기 내밀한 속내를 타인에게 드러내기 전문가에게 치료받기를 망설이는 건 정신적 독립에 대해 비현실적인 생각을 품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불편한 이유로 망설일 가능성도 있다. 내 정신적 위기를 치료사의 냉철하고 전문적인 시선 아래 내보이기 싫은 것이다. 몸이 아플 때는 의사가 냉정하게 내 몸을 진단해주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그러나 정신은 그렇지 않다. 나는 내 정신과 완전한 일체(一體)가 되고 싶다. 그런데 제삼자가 내 정신을 분석하고, 메스로 파헤칠 수 있는 단순한 정신적 활동의 무대로 바꿔놓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생길 수 있다. 치료사와 대면(對面)하는 건 매우 특별한 종류의 만남에 속한다. 만남의 상호 동등성(同等性)이라는 면이 결여(缺如)됐기 때문이다. 치료사가 나를 돌봐주는 만큼 내가 치료사를 돌보는 게 아니다. 그는 나에 대해 잘 알고 있지만 나는 그를 모른다. 하지만 치료사가 나를 보는 시선은 감정의 동결(凍結)을 수반하는 완전한 제삼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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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싼 동정은 굴욕감을 준다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45)

동정과 굴욕감 값싼 동정은 굴욕감을 준다 누군가가 자신을 향해 동정심이 가득 담긴 눈길을 보낸다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어떤 사람은 아마 이런 반응을 보일 것이다. “상대방이 나를 동정받아야 할 약하고 불행한 사람으로 여기며 그 마음을 내게 드러내기 때문에 화가 난다. 나는 상대방의 행동에서 그것을 느낀다. 그는 나를 약하다고 생각하는 마음을 행동으로 티 내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뭐가 그렇게 견디기 힘들다는 것일까? 그렇지 않아도 오래전부터 스스로 알고 있던 자신의 약점과 불행을 다른 이가 주제 삼아 행동으로 표를 내니 어쩔 수 없이 공식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게 싫은 것일까? 아니면 자신이 정말로 불행하거나 고독한지 아직 확실히 알지도 못하는데 그렇게 급작스럽게 결정이 나버려서? 사실을 실토하라고 남들이 내게 강요하는 것 같아서? 또는 힘들어하는 자신에게 다가와 어깨를 감싸 안아주는 척하는 제스처가 자존심을 상하게 할 수 있다. 누군가가 자기의 고통을 화제로 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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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된 주체 간의 만남과 갈등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46)

갈등 독립된 주체 간의 만남과 갈등 홀로 서고자 하는 인간들이 만날 때는 각자의 열망이나 정제되지 않은 감정들이 그 관계를 지배하게 놔둬서는 안 된다. 관계를 단순한 정신적인 힘겨루기의 희생양으로 생각하거나, 저 사람을 만난 것이 행운이라거나 또는 운이 없다 등으로 생각해서도 안 된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거리를 둘 줄 아는 사람들이고 비판적 성찰과 자아상에 대한 의구심을 품을 수 있기에 관계 자체를 화두(話頭)로 던져볼 수 있다. 예를 들면, 내가 이 관계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나는 타인을 어떻게 보고 있으며 타인이 나를 보는 방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는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가? 등이다. 자칫하면 너무 미주알고주알 따지게 될 수도 있지만 이러한 의식의 소통은 인간끼리의 만남이 갖는 존엄성의 한 부분을 이룬다. 이것은 그 반대의 현상에 맞닥뜨렸을 때 더욱 선명(鮮明)해진다. 아무 말 없이 오직 침묵으로 일관하며 서로를 대할 때, 우리가 느끼는 것은 단지 불행하다는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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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실성과 열린 미래 사이의 긴장과 충돌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47)

충돌 충실성과 열린 미래 사이의 긴장과 충돌 내적 독립성(內的獨立性)은 열린 미래의 경험과 상관관계에 있다. 열린 미래의 경험이란 과거의 지나간 사건, 행위, 경험이 단 하나의 미래로 고착(固着)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또한 이전의 규칙에 맞춰 미래에도 똑같이 살아야 하는 숙명(宿命)이 아니며, 과거의 삶과 거리를 두고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해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것이 손바닥 뒤집듯이 한순간에 가능한 건 아니다. 과거사를 이해하지 않으면 힘들다. 과거사를 이해한다고 해서 곧바로 과거에서 해방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해방의 밑바탕은 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사람 간의 만남에서도 열린 미래를 추구할 권리가 있다. 이 권리는 행위와 경험의 범위 안에서 자신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길을 갈 수 있는 권리다. 누군가의 존엄을 지켜주고 싶다면 그 사람을 고정된 기대 안에 가두지 말아야 한다. 그에 대해 고착된 모습을 미리 정해놓는다면 숨 막히는 부담을 주는 결과를 낳는다. 누구나 마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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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순간에도 존엄을 잃지 마라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48)

이별의 순간 이별의 순간에도 존엄을 잃지 마라 때로는 갈라서야 할 순간이 온다. 다시 마주칠 일이 생길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공동의 삶은 끝난 것이다. 해어짐의 고통 안에는 모든 만남이 가지는 깨지기 쉬운 연약함 그리고 공통의 체험과 나눔, 언약과 희망의 덧없음에 대한 깨달음이 내포되어 있다. 아주 무덤덤한 마지막 고독의 깨달음인 것이다. 존엄성은 이러한 아픔을 잘 이겨내는 하나의 방법이다. 어째서 그럴까? 첫째는 이해하려는 노력 때문에 그렇다. 공동의 삶이 어떠했는지, 어떻게 처음 시작되었는지, 그 삶이 어떤 근거를 가졌었는지, 처음으로 금이 간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하는 것들 말이다. 또한 감정과 관점(觀點), 정해진 행동의 형태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떻게 그리고 왜 변하게 되었는지, 그뿐만 아니라 서로의 관계 속에서 자기 자신과 상대방이 어떤 점을 깨달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남겨진 것들은 무엇인지 등이다. 이별의 존엄성은 인정(認定)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상대방이 누구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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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짐의 아픔 속에서도 존엄을 지키려면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49)

헤어짐의 아픔 헤어짐의 아픔 속에서도 존엄을 지키려면 존엄성이 없는 해어짐은 어떤 모습일까? 자기가 잘한 것, 억울한 것만을 생각하고 상대방을 절대 봐주지 않는, 증오와 비난으로 가득 찬 채 줄다리기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한 발짝 떨어져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줄 모른다. 각자 재고 따지고 손익을 계산한다. 자기만 옳고 상대방은 전적으로 잘못이라고 믿으며 온갖 치사한 데까지 생각이 미친다. 헤어짐이라는 건 모든 관계가 곧 자기가 놓쳐버린 삶이요, 어쩌면 그리 살았을지도 모르는, 그러나 살아보지 못한 삶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직시(直視)하는 것을 포함한다. 그러므로 이별할 때는 ‘열린 미래’가 특히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상대방에게 앞으로 펼쳐질 미래에 대한 모든 가능성을 인정해주는 것이다. 비록 그 미래의 길이 나에게서 멀어지는 것이라고 해도 그렇다. 자신과 함께 있기를 원한다고 생각했던 아내가 보이는 충격적인 행동을 바라보는 베른하르트 빈터의 심경을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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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私的) 은밀함의 두 얼굴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50)

사적 은밀함 사적(私的) 은밀함의 두 얼굴 인간의 존엄성은 자신만의 것과 남이 알아도 되는 것을 구분하려는 욕구와 관련이 있다. 내 모든 걸 타인에게 까발리고 싶은 사람은 없다. 다른 이들에게 보이는 커다란 영역(領域) 말고 우리 자신에게만 허용되는 한 뼘의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반드시 사적인 공간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타인이 이 공간을 침범하거나, 우리 스스로가 잘못된 명분으로 그 공간을 개방하게 되면 존엄성은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구분 선이 어디에 위치하는가는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 어떤 이에게 사적으로 감춰져 있어야 하는 것이 다른 이에게는 공개될 수 있는 것이 되기도 한다. 또한 문화권(文化圈)에 따라 다르고 연령대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그런데 존엄성과 관련해 결정적인 요소는 이 구분 선이 존재하느냐, 아예 존재하지 않느냐의 여부다. 두 가지를 구분하고자 하는 욕구에는 매우 다양한 동기가 있다. 행위, 능력, 소유물, 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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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노골적 시선이 불편한 이유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51)

노골적 시선 타인의 노골적 시선이 불편한 이유 텅 빈 바닷가나 아무도 없는 도서관에 있는데 누군가 나타나 나를 빤히 바라본다면 상황은 순식간에 돌변한다. 타인의 시선을 받은 나는 완전히 다른 세상에 둘러싸이게 되고 나 자신도 다르게 느껴진다. 방금까지는 모래사장이나 바다를 바라보며, 또는 책에 파묻혀 백 퍼센트 혼자만의 생각에 깊게 빠졌었다. 나 자신을 의식하지도 않았다. 말 그대로 무아지경(無我之境)의 상태였다. 그런데 타인의 시선으로 인해 순식간에 고요한 상태가 깨져버렸다. 이제 나는 그의 시선을 받는 대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방금까지는 세상에 속하지 않으면서 내 안에만 몰두하는 의식적 존재(意識的存在)에 불과하던 내가 갑자기 세상 속으로 던져졌다. 전에는 감정이 피어오르면 그 감정을 느끼고, 생각이 떠오르면 그것을 생각하면 됐다. 생각과 감정 속에 나 자신이 있었고, 나는 그 안에 잠겨 있었다. 그런데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지금, 생각과 감정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현존(現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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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기고 싶은 결함(缺陷)이란 무엇인가?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52)

결함이란 결함(缺陷)이란 무엇인가? 당황스러움은 예상치 못하고 달갑지 않은 관심이 쏟아질 때 느껴지는 감정이다. 또한 자신도 모르고 있는 어떤 걸 타인이 공개할지도 모른다는 위협적인 생각과 느낌이다. 일단 그런 생각이 들면 타인의 눈길을 나를 위협하는 집요한 치근거림으로 받아들이게 되며, 그로부터 나를 보호해야 하는 적(敵)으로 인식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결함(缺陷)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는 결함이 될 수 없다. 신체적 기형, 말더듬증, 중독, 기이한 습벽(習癖), 쓰레기 더미를 뒤져야 할 정도의 비참한 삶, 자살 기도의 경험, 배신한 경험 같은 것 등은 단지 사실이 그렇다는 이유만으로 결함이 되는 것이 아니다. 결함은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것들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결함은 가치가 개입된 것으로, 부정적이고 거부적인 판정(判定)으로 인해 만들어진다. 그러기에 결함은 악(惡)으로 여겨진다. 그러므로 결함은 있으면 안 되며 보여서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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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과오(過誤)가 불러오는 수치심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53)

수치심 도덕적 과오(過誤)가 불러오는 수치심 결함이라고 다 같은 결함은 아니다. 본인이 뭔가를 할 수 있는지 없는지, 본인에게 책임이 있는 결함인지 아닌지에 따라 다르게 경험된다. 정말 운이 나빠서 또는 어느 날 갑자기 닥친 일로 생겨난 결함이 있다. 선천적 기형, 파킨슨병, 암 치료 후에 나타난 심한 탈모 현상, 의지와는 상관없이 닥쳐온 빈곤 등이 그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종종 당황하고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어쨌든 그것 때문에 남의 눈에 뜨이고 타인의 이목이 쏠리기 때문이다. 그때는 남 앞에 나서는 게 창피하다. 괜스레 쭈뼛거리게 된다. 더 큰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압류 집행관이 집으로 찾아와 가구를 하나씩 들어낸다고 상상해보자. 그가 진 빚과, 그 빚을 갚을 수 없는 무능력이 모두에게 공개된다. 이웃들이 밖에 나와 구경하며 수군댄다. 그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오른다. 그가 미리 손을 쓸 수 있는 처지였다면 얼굴은 더 뜨겁게 달아올랐을 것이다. 지금 같은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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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몬·위메프 사태에 뒷북치는 국회, 봇물 터진 법안 제대로 다듬어라

티몬·위메프 정산 지연 사태가 세간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보도에 따르면, 티몬과 위메프에서 여행·숙박·항공권 등을 환불받지 못해 한국소비자원의 집단 분쟁조정에 참여한 소비자가 9천여 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번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이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업계의 판매대금 정산 주기가 너무 길어서라는 전문가들의 주장에 다수가 공감하는 분위기다. 티메프는 일부 상품권의 할인율을 비정상적으로 높여 판매함으로써 고객을 끌어모았다. 동사는 판매대금 정산 주기를 70일까지로 늘려잡고, 그동안 무이자로 자금을 이용함으로써 마치 CP(기업어음)처럼 사용한 셈이다. 그에 대해,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은 “회사의 운영비용이나 투자자금으로 유용했을 수 있다”라며, “티메프는 고객의 돈을 중개만 해줘야 하는데 판매대금을 오래 가지고 있으면서 마음대로 쓴 부분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석병훈 이화여대 교수도 “티메프는 일종의 금융업이라 볼 수 있는 PG사(전자지급결제대행사)를 같이 하고 있는데 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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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수치심을 느끼는 결정적 순간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54)

수치심의 순간 우리가 수치심을 느끼는 결정적 순간 우리가 수치심을 느끼는 것은 무언가가 탄로 났기 때문이다. 탄로가 나려면 우선 무엇을 숨기려는 시도가 있어야 한다. 이때 숨기고자 하는 것이 ‘결함’이다. 남의 눈을 속이기 위해 보호 장막을 설치했는데 그 장막이 무너져 결함이 드러난 것이다. 우리는 단죄하는 듯한 시선들 앞으로 끌어내진다. 갑자기 벌거벗겨진 것 같은 기분이 된다. 이럴 때 제일 먼저 느끼는 포괄적인 감정은 수치다. 수치심(羞恥心)이란 숨기고자 하는 노력이 수반된 ‘탄로 날 것에 대한 공포’다. 내 결함이 다른 이에게 공개되는 것이 왜 그토록 두려운 걸까? 폭로에 대한 두려움의 정확한 대상은 무엇이며, 수치심이 유발하는 강력한 정신적 붕괴 상태의 순간에 경험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상실(喪失)이다. 우리 자신의 체면과 타인으로부터의 인정과 신망을 상실하는 것이다. 결함이 드러나기 전에 나는 주위로부터 판단 능력과 가치관을 인정받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중대한 기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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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정하고 허약한 우리의 자아상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39)

허약한 자아상 불안정하고 허약한 우리의 자아상 유혹은 기만(欺瞞)과 다르다. 속이지 않고도 누군가를 유혹할 수가 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유혹이며 그것이 왜 존엄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유혹은 자아상이라는 측면과 내적 검열과 관계가 있다. 자신을 바라보는 눈, 그리고 그 자아상을 검열하고 평가하는 기준은 여타 다른 경험의 흐름과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다른 경험들에서 분리되지 않으면서도 그들과 닿지 않는 반대편에 서 있다. 자아상과 자기평가 기준은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면서 각종 경험의 흐름으로부터 다양한 영향을 받아 탄생한 것이기에 경험이 변화하면 따라서 변화할 수 있다. 그러한 경험의 총체(總體)를 넘어서는 또 다른 입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오직 우리의 경험과 행위, 자아상을 바라보는 관점, 그리고 이 두 가지가 서로 역동적으로 작용하는 복합적 관계가 만들어낸 존재들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백 퍼센트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걸 안다.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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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작과 유혹을 통한 통제 시도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40)

조작을 통한 통제 조작과 유혹을 통한 통제 시도 우리는 살면서 사물을 접하며 감동한다. 풍경이라든가 언어, 음악, 스포츠, 사상, 정의감, 신에 대한 감사, 수도사들의 삶, 또는 정치적 활동 같은 것들로부터 영감(靈感)과 감동(感動)을 얻는다. 그리고 우리는 누군가에게 그런 감동을 안겨주어서 애가 닳게 하고 그 열정에 굴복하도록 만들 수 있다. 그러한 행위는 일방적이 아니라 서로에게 행할 수도 있다. 우리의 경험이 고정된 것이 아니고 입체적이며 변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본적인 욕구를 제외한 여타 경험은 대체로 타인의 영향을 받는다. 다시 말해, 우리는 타인을 보고 듣고 읽으면서 멈추지 않고 성장하며 변화한다. 그것은 조종(操縱)이나 조작(造作)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우리가 살아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외부 영향에 의한 변화 가능성이 없다면 진정하고 생생한 만남은 불가능하고, 오직 건조하고 무의미한 교환행위만이 존재할 것이다. 또한 감동은 유혹(誘惑)과도 관련이 없다. 새로운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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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뇌의 희생양인 광신주의자의 탄생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41)

광신주의자 세뇌의 희생양인 광신주의자의 탄생 의식과 신경이 차단되어야 권위가 상실되는 건 아니다. 어떤 집단의 압력이나 위협, 애정이나 신뢰, 감탄처럼 열등한 자가 자기보다 나은 사람에게 느끼는 감정을 우월한 자가 악용할 때도 이뤄진다. 그것들은 사람을 조종할 때 쓰이는 큰 지렛대다. 그것들은 단순히 소망을 불러일으킬 뿐 아니라 두려움이나 질투, 증오, 편견처럼 한 사람의 세계관을 이루는 감정을 만들어낼 수가 있다. 종교에 미친 광신도가 되거나, 정치 운동에 지나치게 빨려들거나, 사이비 종교의 일원이 되는 사람을 우리는 종종 볼 수 있다.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 他 종교인이나 적에게 내비치는 감정은 그 종교를 믿는 집단의 소속감이 만들어낸 강요와 지도자의 영향에 감복해서 스스로 엎드리는 데서 만들어진다. 심리적 속임수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압도는 당하는 사람의 방어 능력을 파괴한다. 그로부터 주입된 사상은 사람의 생각과 감정 속으로 마구 파고든다. 그렇게 되면 어떠한 비판이나 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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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의 존엄을 건드리지 않는 치료법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42)

환자의 존엄 환자의 존엄을 건드리지 않는 치료법 누군가 순전히 이기적인 동기에서 타인의 무의식에 내재(內在)된 힘을 가지고 장난친다면, 특히 그의 권위나 안녕을 조금도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그것은 타인에 대한 조종이며, 그 조종을 통한 존엄의 박탈이다. 그들은 억눌리고 부정된 감정, 은밀한 소망과 환상을 밖으로 표출되도록 부추겨서 타인의 내적 권위를 파괴한다. 하지만 무의식적 충동이 출구를 찾아 외부로 나온다고 해서 반드시 존엄성이 위험에 빠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치료 과정은 오히려 존엄성을 존중하고 우리의 권위와 내적 자유를 더 크게 만들 수 있다. 치료 과정에서는 영향력이 행사되는데 이것은 계획적이기는 하나 이기적인 동기는 없다. 치료받기 위해 치료사를 찾아갈 때, 우리는 자신이 변화할 거라는 믿음을 가진다. 치료가 끝나면 마침내 타인과 나 자신을 대할 때 내 행동 방식이 달라지고 이전에는 전혀 상상치 못했던 전환기(轉換期)를 맞게 될 것이며, 지금과는 다른 정신적 상태에 놓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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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지 않는 신뢰가 치유의 원동력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43)

악수 흔들리지 않는 신뢰가 치유의 원동력 환자가 치료사에게 살아온 이야기를 하고 지금 처한 갈등에 대해 털어놓고 나면 그동안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을 폭넓게 깨달을 수 있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자아상이 근본부터 새로워진다든가, 억누르지 못할 막강한 소망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든가, 타인과의 소중한 관계에서 잘못되었던 점을 알게 된다든가, 자기를 속이거나 눈을 가리고 있던 장막을 걷어낸다든가 하는 일들 말이다. 이 모든 것은 한 사람을 크게 뒤흔들어놓을 수 있다. 지금까지 밟고 서 있던 땅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듯한 느낌 때문에 익숙한 옛날로 다시 도망가고 싶어지기도 한다. 문제는 새로이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하는 길을 따라갈 것인지 말 것인지이다. 필요한 변화에 저항하려는 마음이 조금씩 생겨나면서 유도적 치료법에 방어적으로 대응하는 시기를 맞이했다고 해도 치료사가 자신을 어떻게 할까 봐 걱정할 필요는 없다. 어떤 변화를 수용하고 거부할 것인지, 또 어느 정도의 속도로 변화할 것인지를 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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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알 권리’를 박탈당하는 굴욕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38)

알 권리 당연한 ‘알 권리’를 박탈당하는 굴욕 굴욕은 투명 인간으로 취급되거나 사람을 바로 앞에 두고 제삼자처럼 대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그렇게 무시하는 태도가 유쾌한 건 아니지만 사건의 핵심은 아니다. 여기서 핵심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할 기회가 전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이 송두리째 짓밟히는 경험은 ‘알려주지 않는다’라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알기 위해 필요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는 상황은 언제나 무력감과 맞물려 있다. 길을 잃어서 자신이 어디 있는지 모를 때, 혼수상태에서 깨어났는데 오늘이 며칠인지 모를 때, 병상 옆을 지키고 있는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없을 때 등. 정보가 없다는 사실 자체만으론 별문제가 아니다. 누군가가 내게 그 정보를 숨긴다는 사실이 굴욕적인 상황을 만든다. 그런 경우 내가 보이는 분노의 이면에는 어떤 사실을 몰라서 당황했다기보다는, 누군가가 일부러 그리고 계획적으로 내가 알지 못하게끔 했다는 것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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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의 비웃음을 지혜롭게 넘기는 방법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1)

비웃음 무시하기 남들의 비웃음을 지혜롭게 넘기는 방법 남들이 작정하고 나를 비웃는다면, 그들의 비웃음을 멈추게 하고 나를 존중하도록 만들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어떤 시도든 간에 처음부터 무효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웃는 사람들은 당연히 나의 무력감을 즐기며 자기네들의 즐거움을 내가 느끼도록 만든다. 한마디로 굴욕을 안겨주는 것이다. 자신을 놀리는 대상을 향해 분노의 주먹질을 함으로써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까? 그러나 그런 행동으로는 일이 해결되기는커녕 자신의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그들에게 고백하는 결과를 낳는다. 그들은 더욱 재미있어하며 쑥덕거릴 것이다. “내가 정곡을 찌른 모양이야!” 얻어맞은 상대는 이렇게 말하며 웃는 얼굴로 입가의 피를 쓱 닦아낼지도 모를 일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의 말에 다시 한번 웃음을 터뜨릴 것이다. 그럴 때 유머와 자조(自嘲)가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타인이 나를 보고 웃을 때 내 인격 전체가 아니라 서투른 행동 때문이라면 그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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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하고 비웃는 행위가 끼치는 해악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36)

무시하는 태도 무시하고 비웃는 행위가 끼치는 해악 누군가를 단순한 물건처럼 대하여 그의 존엄성을 빼앗는다면, 그것은 상대방을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상대방을 아예 없는 것처럼 무시(無視)하는 태도야말로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지름길이다. 누군가를 비웃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누가 우스운 행동을 할 때 웃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웃기는 표정을 짓는다든가, 광대처럼 우스꽝스럽게 넘어지고 엎어지고 한다든가, 농담을 던진다든가 하는 의도된 코미디를 보고 웃을 때, 우리는 그들의 행동을 보고 웃는 것이지 그 사람의 인격을 두고 웃는 건 아니다. 웃기는 장면이 의도된 게 아닐지라도 그 원칙은 적용된다. 재미있는 말실수, 얼음 위에서 꽈당 넘어지기, 웃음을 자아내는 착각 같은 경우에도 웃음의 대상은 어떤 에피소드일 뿐이지 사람이 아니다. 그에 반해, 비웃음은 그 사람 전체에 대한 것이다. 사람들은 그 사람의 모든 것에 대해서 웃는다. 그 계기(契機)는 무슨 일을 제대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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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의 존엄을 해치는 인간의 잔인성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35)

인간의 잔인성 약자의 존엄을 해치는 인간의 잔인성 던지기 대회가 더 재미를 유발하는 것은 단지 누군가를 던지기 때문만은 아니다. 던져지는 사람이 특이한 신체 구조를 가졌다는 점이 더욱 큰 오락 요소가 되는 것이다. 평범한 어린이를 던지는 게임이라면 그렇게 많은 관중이 몰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이 오락과 여흥이 될 수 있는 이유는 결함(缺陷)으로 여겨지는 진기한 신체적 특성을 가진 사람이 던져진다는 데 있다. 그 대회의 핵심은 던져지는 사람이 바로 그러한 결함을 가지고 있다는 데 있다. 그것 때문에 그 대회가 가진 존엄성의 문제에 잔인성의 문제가 추가된다. 기형적 신체를 가진 사람이 의과대학 수업에 등장할 경우를 가정해보라. 학생들은 뭔가 신기한 대상을 볼 때 일어나는 호기심을 감출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목적은 배움과 교육에 있다. 교수는 학생들에게 질병의 증상을 소개하고 그것을 치료하거나 고통을 경감시키는 데 목표를 두는 것이다. 수업 시간에 예시(例示)로 등장한 환자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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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등에 떨어진 불, ‘AI 기본법’ 통과 서둘러라

인공지능(AI)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 가운데 ‘AI 기본법’을 신속하게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인공지능에 의한 부작용과 위험은 줄이면서도, 온전한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입법 필요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여야 국회의원과 관련 단체들이 모여 ‘국민의 안전, 인권 및 민주주의와 AI의 공정을 위한 입법 방향’이라는 주제를 놓고 토론한 것도 그와 같은 사회적 요구를 반영한 것이라 하겠다. EU(유럽연합)는 내년부터 ‘AI Act’를 전면 시행한다. 고위험 등급으로 분류된 AI 시스템에 대한 규제와 처벌 규정의 필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가운데, ‘AI Act’는 규제 조항을 위반하면 높은 과징금을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도 그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려면 자율성과 역동성을 포괄하는 AI 시스템의 구축이 시급하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22대 국회 개원 이후 여야 의원들이 앞다투어 AI 관련법을 발의했다. 지난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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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전시(展示)하는 물건이 아니다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34)

인간은 물건이 아니다 인간은 전시(展示)하는 물건이 아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만난다’라는 말에는 그를 하나의 주체(主體)로 보고 상대한다는 뜻이다. 내가 내 나름의 관점을 가지고 세상을 조망(眺望)하는 것처럼, 그도 그 나름대로 세상을 보는 존재이며 따라서 그 사람 자체가 목적으로 취급되어야 하는 존재다. 그러한 만남은 대칭성(對稱性)과 상대성(相對性)이라는 특성을 갖는다. 우리는 상대방을 바라보며 서로 주체로 인정해준다. 이것은 인간이 단순 노리개로 전락하거나 수단화되는 사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성이다. 장터에서 단순히 재미를 위해 난쟁이를 던지는 놀이는 전시(展示)하는 행위다. 이때 전시의 성격은 배우가 관중 앞에서 무대에 서는 행위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관중이 쳐다본다는 점에선 배우나 난쟁이나 별반 다르지 않지만, 다른 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난쟁이 던지기에서는 그를 대상으로 다른 사람이 어떤 행위를 가하는 데 비해, 배우나 곡예사는 스스로 그런 행위를 한다. 배우나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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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받지 않을 권리, 평등의 의미와 가치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33)

평등의 가치 차별받지 않을 권리, 평등의 의미와 가치 타인이 나를 대하는 태도에 좌우되는 존엄성은 평등이라는 경험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것은 다른 이들과 동등한 권리를 가지며, 주요한 몇 가지 관점에서 내가 그들과 차이 나는 취급을 받지 않는다는 개념이다. 내가 가진 권리를 애매모호(曖昧模糊)하게 만들거나 다른 이들이 다들 누리는 권리를 나에게만 허락하지 않는다면 내가 느끼는 감정은 단순히 화를 터뜨리는 수준을 넘어선다. 나는 존엄성에 상처를 입을 것이고 그런 경우에만 느끼게 되는 억울함을 품게 될 것이다. 분리주의 정책을 예로 들어보자. 특정한 종족이나 부족에 속해 있다는 이유로 선거권이 없다거나 학교에 가지 못한다거나 버스를 마음대로 타지 못하고, 지정된 식당에만 출입이 허가된다든가 하는 것이다. 다른 형태의 차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여자라서, 아니면 동성을 좋아하는 성향이 있다고 해서 어떤 특정한 일을 하지 못하도록 강제되는 경우라든지, 같은 일을 하는데 동등한 수준의 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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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억울함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32)

억울한 심정 남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억울함 사람들이 분노하는 이유 중 가장 큰 하나는, 남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데서 오는 억울함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타인의 주목과 존중을 받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주목이나 존중보다 더 강하고 풍부한 뜻을 지닌 말이 바로 인정(認定)이다. 인정은 타인의 행위를 인식(認識)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그 대상은 직장에서의 성과를 뜻할 수도 있고, 자녀를 현명하고 헌신적으로 양육하는 일이나 질병, 상실, 감금 등을 의연하게 이겨내는 태도일 수도 있으며, 고통스러운 성숙의 과정을 견뎌낸 노고일 수도 있다. 능력을 인지하고 정당하게 평가하는 것이 인정이라면 그 반대는 못 본 척하고 무시하는 것, 그리고 하찮게 평가하는 것이다. 인정한다는 것은 노고의 당사자에게도 와닿는 일종의 선언적인 성격을 띤다. ‘내가 네 노고를 인식했으니 됐다’라는 식이 아니라 당사자에게도 알려져야 하는 ‘보이는 인식’이어야 한다. 상대방이 인정했음을 나도 느끼려면 그가 내 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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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적 인간관계를 되살리는 유대감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31)

유대감 절망적 인간관계를 되살리는 유대감 상대방에게 거리를 두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간 단계(段階)가 있다. 바로 상대방을 병자(病者)로 보는 시선이다. 상대방은 내게 여전히 경험의 중심이며 따라서 엄연한 주체다. 그러나 이것은 주체를 주체답게 만드는 또 다른 요소들 즉 사고와 감정, 행위의 이해 가능 정도, 뚜렷한 자아상, 자신의 정체성을 이해하고 평가하는 능력 같은 것들이 빠진 상태의 불완전한 주체성이다. 내가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발을 빼려고 하는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이다. 나는 그를 더 이상 통일된 행동의 행위자이며 책임자라고 보지 않는다. 그라는 인간은 불가사의한 내부적 사건들이 일어나는 무대(舞臺)에 지나지 않는다. 그 사람의 행동에 이해되지 않는 면이 많아서 그를 보는 내 시선이 바뀐 것이다. 그와 정상적으로 대면한다는 건 더 이상 불가능해졌다. 기대할 것도, 요구할 것도 없다. 그는 이제 독립된 인간이라고 볼 수 없다. 상대방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 나는 오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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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늘하게 식어버린 마음이 주는 굴욕감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30)

식어버린 사랑 싸늘하게 식어버린 마음이 주는 굴욕감 가까이 지내던 사람 중 어느 한쪽의 관심이 사라지고 나면, 그것은 마치 파트너 없이 권투 연습을 하는 것과도 같다. 애정, 동정, 슬픔, 분노 같은 감정을 호소할 수도 없다. 그는 상대방과 가까워지고 싶은데 그런 마음조차 상대방에겐 귀찮기만 할 뿐이다. 일상의 일을 진행하기 위해서 대화가 아직 이루어지긴 한다. 그러나 그가 하는 일이나 겪고 있는 일이 궁금해서 말을 거는 일은 없다. 그렇게 되면 그는 존재로서의 존엄을 잃은 셈이다. 그의 내면은 서리가 내린 것처럼 얼어붙는다. 상대방으로부터 그림자 취급을 받는 사람이 자신이라고 가정해보라. 나는 타인의 달라진 시선에 한기를 느낀다. 그는 행동 연구 과학자라도 된 양, 냉정하고 분석적이고 객관적인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나는 충격적인 경험을 한다. 과거에는 내게 공감해주었으나 지금은 싸늘하게 식어버린 시선을 온몸으로 느낄 때 나의 주체성은 대상화되고 물질화된 사건으로 변화될 위험에 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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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별한 관계일수록 기대와 원망도 크다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28)

사랑과 원망 각별한 관계일수록 기대와 원망도 크다 사람을 대면할 때, 우리는 행위와 체험으로써 즉석에서 그에게 반응하는 경우가 많다. 그가 행하거나 겪는 일을 특별하게 받아들이게 되고, 만남은 서로를 변화시키는 하나의 사건이 된다. 그렇게 되면 만남의 온기(溫氣)는 점차 높아진다. 상대방이 내게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따라 우리의 다음 대답도 달라진다. 내 안에서 일어난 변화는 그를 향한 외부로 반영되고, 상대방은 그 반응에 따라 다시 변화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타자의 삶에 연결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상호작용의 열기가 생성된다. 이것이 상호 개입적(介入的)인 만남이다. 개입적인 만남은 서로 ‘가까움’을 경험한다는 걸 의미한다. 둘 사이가 가까워지면 상대방이 무엇을 하고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에 관해서 무관심할 수가 없다. 그에 관한 모든 것들이 자신과 무관치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분노와 증오하는 관계에서조차 개입적인 만남은 이루어질 수 있다. 뻔뻔한 이웃이나 꼴 보기 싫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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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가 멀어지는 잔인한 단계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29)

멀어지는 마음 인간관계가 멀어지는 잔인한 단계 인간관계가 뒤로 후퇴하는 데는 몇 가지 잔인한 단계가 있다. 그 첫 번째로는 겉으로 아무 반응을 하지 않는 것이다. 전략적으로, 또는 그러는 편이 현명하니까 등의 이유로 그럴 수 있다. 분노와 원망 같은 감정으로부터 나 자신을 보호하려고 아예 죽은 척 꼼짝하지도 않는 것이다. 뜨거웠던 갈등은 풀어지고 행동 패턴의 흐름도 달라진다. 관계의 흐름이 정지되며 공통의 체험도 멈춘다. 그중의 한 가지 표현방식이 비꼬고 빈정대는 것이다. 나는 비록 계속 반응하고 있지만 예전처럼 개입이라는 감정의 노예로서가 아니라 제삼자인 척하며 일부러 즐기는 듯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내 안에서 느끼는 감정이 예전과 똑같다면 그래도 괜찮다. 그건 마치 남의 일처럼 상대방에게 내 감정을 속이는 건 내가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거니 역설적 공격에 지나지 않으니까 말이다. 화가 난 상대방은 속이 상하지만 제힘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이런 나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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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로 하는 일은 우리의 존엄성을 해친다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24)

극단적 소외 박탈(剝奪)로 이어지는 소외된 노동 일 중에는 놀이처럼 집중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그런 일이라면 다들 먼저 하겠다고 나설 것이다. 그러나 거의 부역(賦役)이나 다름없는 일도 있다. 강제 노역에 동원된 것처럼, 시키니까 죽지 못해 하거나 그 일 말고는 생계를 이어갈 일자리가 없기에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들이다. 그런 경우 일을 하는 당사자와 일의 내용은 철저히 분리된다. 이른바 소외된 노동, 일과 자신을 동일시(同一視)할 수 없는 일이다. 소외에는 내 능력에 합당하지 않거나 오랜 시간에 걸쳐 힘들게 교육받은 것과 전혀 다른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고급 엔지니어가 타일을 붙이는 일을 하거나 화물차를 모는 경우가 그렇다. 의사인데 노인 요양 보호사로 취직하거나, 음악대학을 나와서 술집에서 피아노를 쳐야 할 때, 유치원 교사가 화장실 청소부로 일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런 경우 존엄성이 영향을 받을까? 내게 맞는 마땅한 일자리가 존재하는데도 누군가 일부러 그보다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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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때문에 영혼을 파는 인간들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25)

돈을 숭배하는 인간 돈 때문에 영혼을 파는 인간들 돈이 없다는 것은 독립성의 상실을 뜻한다. 그리고 무능과 의존을 뜻한다. 이러한 결여는 굴욕을 당할 위험에 언제나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돈은 외적(外的)인 독립성을 뜻한다. 돈으로 인한 독립성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게 해준다. 반대로, 돈이 없으면 협박과 위협에 취약해진다. 매체를 가리지 않고 출연하여 자기의 소신과 상관없는 말을 마구 내뱉는 평론가들이 있다. 그들의 목적은 딱 한 가지, 돈을 버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이는 매체의 성향에 맞추느라 같은 논점에 대해 정반대의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그런 걸 보면서 ‘저건 정말이지 화장실 청소를 하느니만 못한 짓이다.’라는 생각만 들 뿐이다. 예속성과 의존성이 내부로 파고들어 그 사람의 말과 주장뿐 아니라, 신념까지 다 갉아먹어 버렸기 때문이다. 모든 게 돈 때문이다. 이것은 인간 존엄을 조금씩 해체하는 독(毒)과 같아서 실제로 병이 드는 사람도 있다. 돈으로 인한 종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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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모습을 감추고 꾸미는 게 인간의 속성인가?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26)

인간의 속성 경험을 각색한 自我像 끼리의 만남 인간이 존엄한 건 인생을 스스로 개척한다는 의미에서 독립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뿐만은 아니다. 존엄은 한 인간이 타인들과 맺는 관계의 종류에도, 다시 말해 그가 타인들과 어떻게 대면하는지, 타인들이 그를 어떻게 대하는지에도 근거한다. 얼핏 듣기에는 당연한 말처럼 들린다. 우리는 친숙한 말을 그냥 흘려들으며 그 친숙함 때문에 처음부터 그 말을 잘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착각한다. 반면 잠깐 멈추어 선 다음, 그 평범한 표현 뒤로 한발 물러서서 그 말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헤아려 볼 필요가 있다. 그러면 그 말 가운데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무엇을 파헤쳐야 하는지 깨닫게 된다. 사람이 서로 만날 때는 주체로서 만난다. 그렇다면 만남의 본질은 무엇인가? 다수의 주체는 서로 어떻게 조우(遭遇) 하는가? 그들 사이에 생겨날 수 있는 만남의 종류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모든 인간은 경험의 중심이다. 누군가를 만날 때 우리는 그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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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공감의 지름길, '역지사지'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27)

역지사지 역지사지(易地思之)를 통한 주체 간의 소통과 공감 두 사람이 각자의 동기 배경을 서로에게 터놓는 것은 마치 그들이 교차(交叉) 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들은 서로에게 의미를 부여하며 만남은 그들에게 어떤 반향(反響)을 남긴다. 그렇게 둘은 다양한 방식으로 경험을 얽는다. 그들이 생각하는 것은 이렇다. 나는 상대방의 생각에 대해 해석해보며 상대방이 내 생각에 대해 어떻게 해석할지도 생각한다. 이것은 두 사람 사이에 사고의 친밀성을 만들어낸다. 생각뿐 아니라 감정이나 소망도 상대방의 것과 교차점을 찾을 수 있다. 우리는 타인의 두려움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다. 타인의 두려움 안에는 내 두려움에 대한 두려움이 공명(共鳴) 한다. 우리의 욕망은 타인의 욕망에 영향을 받으며 타인의 욕망은 곧 우리의 욕망이 된다. 또한 우리는 타인이 소망할 법한 것을 우리의 소망으로 삼는다. 자기의 경험이 이런 식으로 타인의 경험과 빈번히 교차할수록 당사자들 간의 정신적 친밀성은 높아진다. 그것은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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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를 잃으면 존엄성도 무너진다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23)

실직의 아픔 일자리를 잃으면 존엄성도 무너진다 성인의 절반이 실업 상태인 튀니지에는 “일이 없으면 존엄도 없다”라는 말이 있다. 그 표현이 필사적이라서 가슴에 더 와닿는다. 일자리를 잃으면 그와 함께 존엄성도 휘청거리는 느낌을 받게 된다. 직장을 떠나는 사람은 책상과 사물함을 깨끗이 비우고 열쇠나 사원증, 유니폼도 반납해야 한다. 그는 지금껏 일하던 사무실이나 공장 입구에 서서 건물을 올려다보며 “이제 나는 이곳에 속하지 않는구나”라며 씁쓸하게 돌아선다. 그의 머릿속에는 온갖 생각이 다 밀려들 것이다. 다달이 청구되는 요금을 갚지 못하게 될 두려움, 앞으로의 시간을 어찌 보내야 할지에 대한 걱정, ‘아내를 무슨 면목으로 대할까’라는 근심, 주변의 무시하는 눈길 등. 하지만 무엇보다 그를 괴롭히는 감정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잃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그가 상실하는 것은 자립성(自立性)이다. 그는 이제 스스로 돈을 벌 수가 없게 되어버렸으며 도움을 받아야 하는 처지(處地)가 되었다. 당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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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손길이 간절한 당신에게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22)

치유의 손길 치유의 손길이 간절한 당신에게 우리가 살다 보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를 때가 있다. 가족, 자녀, 배우자, 직장 동료와의 갈등이 점점 깊어지기만 하고 친구도 하나씩 줄어든다. 옛날에는 고민을 털어놓고 나면 좀 괜찮아지곤 했는데 얼마 전부터는 뭘 얘기해도 별로 나아지는 것 같지 않다. 이야기해 봤자 갈등을 밖으로 표출하는 것일 뿐, 상황은 오히려 더 악화한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제 도움이 필요하다는걸, 치료받아야 한다는 걸 스스로 느낀다. 남들도 그렇게 말한다. 그러나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충격이 만만치 않다. 당신은 망설인다. 이 망설임의 원인은 무엇일까? 그리고 존엄성과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치료가 필요하다는 건 당신 혼자 힘으로 제대로 판단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것은 독립하고자 하는 욕구와 충돌한다. 모든 게 혼란스럽다. 자립이라는 건 무엇을 뜻하는가? 치료가 필요하지 않던 과거에도 이런 자립성이 자신에게 있었던가? 여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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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적 사건을 의식적 경험으로 바꾸기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21)

의식과 무의식 무의식적 사건을 의식적 경험으로 바꾸기 내적 독립을 향한 욕구는 자아 인식을 향한 욕구와 일맥상통(一脈相通) 한다. 그것은 내가 지금 느끼는 것들이 어째서 그런지 이해하고 싶은 욕구다. 이 두 가지 욕구는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내적 독립성의 부재는 ‘내 안에 있는 강박적인 생각들, 유별나게 격한 감정들, 그리고 자꾸만 제어되지 않는 성가신 욕구들을 왜 잠재우지 못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라는 느낌을 동반한다. 이런 것들이 어떻게 해서 삶 속으로 들어오게 되었는지, 어떠한 복잡다단한 과정을 거쳐서 현재에 이르게 되었는지 우리 자신은 꿰뚫어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종류의 인식을 갖지 않으면 부족한 독립성과 내적 권위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힘들다. 우리 인생에서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많은 생각과 감정, 기억과 공상, 그리고 소망이 존재한다는 걸 기억하는 것이 좋겠다. 우리가 아는 것은 내면세계(內面世界)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는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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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잔치만 무성했던 ‘온플법’, 22대 국회에서 해결하라

22대 국회 들어와서 온플법(온라인 플랫폼 규제 법안) 제정을 위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지난 21대 국회에서도 같은 이름의 법안이 발의됐지만 통과하지 못했다. 플랫폼 기업의 독과점 구조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이러저러한 이유로 지지부진했던 법안 추진이 급물살을 타게 된 계기는 크게 두 가지다. 최근 쿠팡이 검색 순위와 상품 후기를 조작한 사실, 그리고 배달 플랫폼의 출혈경쟁으로 직격탄을 맞은 배달 라이더의 딱한 사정 등이다. 이미 3년 전에 공정위가 온플법을 입법 예고했으나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윤석열 정부 초기에는 업체의 자율적 규제에 무게를 두었다. 하지만 2022년 말 카카오톡 먹통 사태 등이 발생하자 정부 입장도 강경한 쪽으로 선회했다. 대통령실 내에서도 플랫폼 기업에 온전히 주도권을 넘기는 방식에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말 공정거래위원회가 내놓은 ‘온라인 플랫폼 경쟁촉진법’ 입법 계획도 그 결과물이다. 규제의 목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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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최악의 굴욕을 안기는 상황은?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20)

굴욕의 현장 예속(隸屬)은 최악의 굴욕이다 욕구가 판단의 힘으로만 조절되지 않을 때, 원치 않는 감정의 폭발을 제어할 수 없을 때, 그리고 내면적 검열을 통해 스스로를 이끌 수 없을 때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무력감이다. 때로는 굴욕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내가 못 해내다니, 정말 굴욕적이야!” 중독자가 흔히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따르면 무력감이 곧 굴욕은 아니다. 무력감 자체로서는 한 사람의 무능을 기꺼이 즐기며 그 사실을 당사자에게 느끼게 하는 행위자가 없기 때문이다. 내적 부자유(內的不自由)는 그것이 우리를 누군가에게 종속(從屬) 시킬 때 비로소 굴욕으로 성립된다. 강박적 욕구를 이겨내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 욕구를 만족시켜주는 누군가의 의지와 횡포에 우리 자신이 휘둘리기 때문이다. 내적 강박으로 인해 남에게 의지하는 것을 예속(隸屬)이라고 부른다. 제어되지 않는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타인이 필요한 경우다. 그것은 내적 노예화를 통한 외적 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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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나답게 만드는 분노의 표출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18)

분노 폭발 나를 나답게 만드는 분노의 표출(表出)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기 힘든 의지력 박약이나 중독자 같은 경우에는 강박적 충동에 무릎을 꿇는다. 어떤 사실을 자기 눈으로 직접 보고 확인하고도 거대한 감정에 휩쓸려 ‘굳은 의지’는 힘없이 사라져버린다. 그렇게 되면 감정은 자기 것으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우리 자신에게서 분리돼버리고 무력감이 우리를 감싼다. 근거가 희박한데도 끈질기게 따라오는 공포의 감정이 그것이다. 비행공포증, 폐소공포증, 거미 공포증 등 수없이 많은 형태의 공포감이 우리를 위협한다. 자신도 정확한 근거를 대지 못한 채 누군가를 (또는 어떤 집단을) 증오하는 증상에 빠진 사람도 있다. 도를 넘어선 분노에 마음이 멍들 수도 있고, 근거가 없다고 밝혀졌는데도 거기서 헤어나지 못하는 질투심도 있다. 여기서도 권위(權威)라는 문제가 발생한다. 깨달음 또는 결심이 격정적인 감정과 대치하면서 결국 권위를 세우는 데 실패하는 것이다. 이것은 독립성의 결여(缺如)로 나타난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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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자신만의 '검열 기준'이 있는가?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19)

검열 기준 자아상(自我像)에 대한 독립적 검열 기준 주체로서의 우리는 자아상을 가진 존재다. 자아상은 내가 누구이고, 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에 대한 관념이다. 이러한 관념이 있기에 우리 안에 있는 생각이나 소망, 감정의 전부를 행동으로 옮기지 못할뿐더러 일부는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스스로 막기도 한다. 주체(主體)라는 것은 충동을 검열하고 제어하는 존재다. 내적 권위는 바로 이 안에서도 존재한다. 이것은 독립성과 비독립성, 존엄성과 비존엄성이 놓인 차원이기도 하다. 어떠한 자화상과 검열 기준을 가지고 있는가는 원래 타인의 것을 본뜨거나 교육을 통해 형성된 것이다. 즉 타인의 말이나 삶을 우리가 모사(模寫) 하는 것이다. 이것은 외부 권위의 강제 규정이 내면화된 것인데, 부모나 스승, 종교 지도자, 같은 이상을 지향하는 단체나 기관 등에 의해서 제시된다. 내면의 권위는 일차적으로 내면화된 외부 권위를 토대로 시작된다. 이런 의미에서 누구라도 의존성에서 시작한다고 할 수 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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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동요를 다스리는 능력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17)

감정의 동요 감정의 동요를 다스리는 능력 알다시피 우리는 감정을 갑자기 생기게 하거나 없앨 수 없다. 그렇다면 두려움, 분노, 미움, 시기 등의 마음, 다시 말해 감정적인 면에서 독립한다는 말은 과연 어떤 뜻일까? 여기서 독립을 논한다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일까? 감정은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다. 그러므로 감정적으로 자립하는 것을 언제 어떤 감정을 품을지 스스로 정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우리는 어떠한 감정이 상황에 적절한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그 감정이 어떤 상황과 그 상황이 일어나게 된 배경에 과연 어울리는지 자문(自問) 하는 것이다. 근거 없는 감정은 우리를 자기 맘대로 휘두르기 때문이다. 그런 감정은 사람을 가두는 감옥이나 다름없다. 자신이 지금 해고될까 겁나는데, 그런 두려움엔 과연 진정한 근거가 있나? 무슨 근거로 전염병에 걸리거나 지진이 날까 두려워하는가? 아니면 그저 공황 상태(恐慌狀態)에 빠진 것인가? 과연 정당한 대상을 향해 걷잡을 수 없는 미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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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망치는 중독을 극복하라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16)

중독의 페해 내적 독립을 위협하는 중독과 의지박약 강박의 전형적인 예가 중독이다. 무언가에 중독이 된 사람은 내적 독립을 포기하게 된다. 누군가 알코올중독이나 도박 중독, 아니면 파괴적인 일중독 증상이 있다고 하자. 그는 이제 끊어야 한다고,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고 선언한다. 하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 내적 압박이 가지는 위험성은 중독자의 결심이 소용없다는 데에 있다. 그는 자신의 의지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으며, 나쁜 의지는 중독을 끊어야겠다는 선한 의지보다 우위를 차지한다. 이렇듯 중독자의 생각은 공회전으로 끝난다. 그것은 마치 아무것도 움직이지 못하는 바퀴와 같다. 중독자는 자기가 사는 집의 주인이 아니고 책임자도 아니며 단지 중독적 사고 안에서 이리저리 던져지는 공에 불과하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에게 종종 의지박약이라고 이야기한다. 그것은 중독을 이겨내고 냉철한 의지에 권위를 부여할 힘이 없다는 뜻이다. 강박적 의지가 통제되지 않기에 중독자는 아무리 경험을 반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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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에게 아첨하는 들러리가 될 건가?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14)

들러리는 삻어! 독립적 사고(思考)의 반대편 독립적이란 말은 공허한 말과 듣기 좋은 격언(格言)에 대하여 의심을 가져보는 것이다. 그것은 명확성과 사고의 전체 체계를 구하는 일에 끊임없이 열심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독립적인 사람은 자기 생각 속에서 방향을 찾으며, 확신하는 것에 대해서도 거듭 시험대에 올리고자 하는 욕구를 품고 있다. 그는 누가 격언이나 빈껍데기 같은 문장으로 유혹하려 하거나 기만하려 할 때 경계심을 품을 것이다. 아무리 본인에게 중요하다고 해도, 또는 진실이라고 해도 그것 때문에 타인에게 권리를 양도하지 않을 것이다. 토론회나 신문에서 하는 말, 정치가, 가족, 자기가 소속된 파벌이 하는 말이라고 해도 무조건 따르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이성(理性)을 믿을 것이며, 스스로의 이유와 증거와 경험에 의지할 것이다. 그는 자신의 사고를 스스로 지휘할 것이다. 독립적 사고의 반대에 서 있는 건 남의 생각과 말에 아첨하는 들러리 같은 사고다. 그런 사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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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의 자유'를 지키려는 몸부림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15)

결정의 자유 독립적 결정을 이끄는 자립적 사고와 판단 내적 독립의 또 다른 형태로, 자신의 의지를 스스로 결정하는 능력을 들 수 있다. 우리는 한순간에도 서로 충돌하는 여러 소망이 나타나 그것들을 한꺼번에 실행에 옮기지 못할 때가 많다. 그중에서 실천에 옮겨지는 소망이 바로 의지(意志)다. 우리는 여러 번 생각하고 두루 따져서 다양한 소망을 저울질한 다음, 그중 어떤 것은 행동으로 옮기고 다른 건 그냥 놔둔다. 그것이 바로 결정(決定)의 자유다. 결정의 자유는 독립적 사고의 결과이며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대로 하고자 하는 능력이다. 자립적 심사숙고를(深思熟考) 통해 스스로의 의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행위를 우리는 결정이라고 칭한다. 다시 말해서, 자립적 사고와 판단을 내릴 때만 우리는 독립적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자립적 사고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바와 행동을 스스로 지휘하는지에 따라 미래의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는데, 그러한 열린 미래는 내적 독립을 체험하는 중요한 요소다. 만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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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게 내 생각을 맡기지 마라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13)

생각의 독립성 사고(思考)의 독립성을 지키는 열쇠 우리는 단지 외적인 독립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우리의 존엄성을 위협하는 건 타인에 대한 종속성뿐만이 아니다. 우리 안에는 내적인 독립성을 추구하려는 욕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기 생각이나 감정, 의지를 통제하고 타인에게 좌지우지되지 않는 자립적 인간이 되고 싶은 것이다. 그런 시도가 성공하지 못했을 때 우리는 존엄성에 관계된 문제로 인식한다. 내적 독립은 타인으로부터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아야 이룰 수 있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내면세계 안에서 독립적이라는 건 (섬이나 지하 방공호에 들어앉은 것처럼) 외부로 향한 문을 닫은 채 타인의 영향으로부터 민감하지 않거나 무관심한 것을 뜻하지 않는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내면적으로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타인의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원하는 바이기도 하다. 그래야만 자기 계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인간 사이의 상호 영향은 존엄성의 한 형태인 ‘진정한 만남’의 본질에 속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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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이 반복되면 구걸이 된다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12)

부탁과 구걸 사이 부탁이 반복되면 구걸이 된다 무언가 부탁해야만 하는 상황은 어떤 것일까? 그 상황은 어떤 경험을 낳으며 존엄성과는 무슨 관계가 있는가? 부탁한다는 건 소망을 말로 표현하여 누군가에게 그 소망의 성취를 도와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탁은 타인에게 도움을 받는 상황을 낳는다. 그것은 독립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 없다는 것, 남에게 의존한다는 것을 실토하는 행위다. 또한 자신의 욕구 달성이 타인의 힘에 달려있음을 의미한다. 남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만으로 반드시 존엄성이 손상되는 건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누구에게도 도움받을 일이 없는 힘 있는 사람에게만 존엄성이 있다는 말이 된다. 존엄성을 해칠 것인지를 결정짓는 첫 번째 요인은 도움을 청하는 나와 그 청을 들어주거나 거절할 수 있는 대상. 그 두 사람 간의 관계(關係)의 성격이다. 이때 도움을 주는 이가 모르는 사람이거나 공무원일 경우엔 다소 수월하다. 아는 사람에게 무언가를 부탁했을 때 상대방의 반응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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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개입에 대한 존중과 한계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11)

허용의 범위 타인의 개입에 대한 존중과 한계 타인의 결정을 대신하도록 위임받은 상황에서, 자신의 결정이 최선이었다고 생각하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옳다고 인정받는 건 아니다. 비록 자신은 선한 의도를 가졌더라도, 당사자를 향한 연대감이나 의무감 속에 정작 그를 배려하지 않는 이기적 마음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닐지 세심하게 돌아봐야 한다. 당사자가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겠다고 고집했을 때 그것을 끝까지 말리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고 가정해 보자. 시간이 흐른 뒤, 당신을 찾아온 당사자가 그때의 결정이 잘못된 것이었다 항의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당신은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순간만큼은 당신의 존엄성을 보호하려고 했던 겁니다. 제 의지와 일치한다는 조건에서만 당신의 의지가 존중받는 건 아닙니다. 존중이라는 것이 그런 암묵적 제한 안에서만 이뤄진다면 그건 진정으로 존중하는 게 아니라 간섭일 테니까요” “당시 당신이 올바른 의지를 갖지 못했고, 따라서 옳은 결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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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견인으로서의 국가 권력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9)

국가 권력 후견인으로서의 국가 권력 후견인(後見人) 제도는 본디 공공선을 지킨다는 논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여기서 결정적인 요소는, 제한 조항들에 대한 적절한 설명과 명분이 붙느냐, 또 그것이 납득(納得) 할 만한 것인지이다. 우리가 존재로서의 존엄성을 지키는 위해서는 생각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특정한 사안에 대해 다른 의견을 가질 수도 있고, 제시된 증거에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 또한 논거(論據)의 증명력(證明力)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우리에게 자유가 있는 한, 그리고 언제나 경청하며 논쟁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참여하는 한, 우리의 존엄성은 절대 손상되지 않는다. 존엄성의 손상은 입이 단단히 봉해질 때 이루어진다. 그리되면 권력이 행하는 후견인 노릇이 우리에게 굴종과 무력감으로 다가오게 된다. 후견인 성격을 띤 법률 존재의 의미와 목적이 투명하게 유지될 때만이 존엄성이 보장된다. 그와 관련하여 빌헬름 폰 흄볼트(vɪlhɛlm fɔn ˈh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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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이 담긴 개입은 언제나 정당한가?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10)

진심어린 개입 진심이 담긴 개입은 언제나 정당한가? 개인이 타인의 후견인이 되는 경우, 그것이 존엄성을 위협하는 일인지 아닌지는 뒤에 숨은 의도가 무엇이며 피후견인의 자유에 대한 개입이 투명하고 정당하게 인식되는지에 달려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개입을 당하는 피후견인의 의지가 얼마나 중요하게 다뤄지는가에도 좌우된다.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애초부터 의지(意志)가 전혀 없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아직 미성숙한 어린아이에겐 굳은 의지가 없다. 따라서 개인적 권위를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복잡다단(複雜多端) 한 사안에 대해 제대로 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없다. 이처럼 어린이는 존중받아야 할 권위나 의지가 아직 형성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럴 때는 부모에게 후견인 자격이 주어진다. 나이가 아직 어릴 때는 혼자 감당하기에 벅찬 일을 어떻게 결정할지 난감하기 때문이다. 노인성 인지 장애나 치매를 앓고 있는 사람에게도 그런 의지나 권위를 상실한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그럴 때는 가도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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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선을 위한 일부 자유의 제한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8)

공공의 선 공공선을 위한 일부 자유의 제한 우리가 독립적인 개인으로 여겨지고자 요구할 때, 우리는 스스로를 성숙한 개인이라고 일컫는다. 그러나 타인 마음대로 조종되거나 의견이 무시될 때 이런 요구의 정당성은 흔들린다. 그런 경우 금치산자(禁治産者)나 후견인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삶에 대해 가지고 있는 권위, 다시 말해 자유로이 결정하고 독립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권리를 마음대로 빼앗아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원하는 것이나 해도 되고 하면 안 되는 걸 정하는 사람은 우리 스스로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이다. 그것은 굴욕을 의미하며 우리의 존엄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그렇다고 후견인을 내세워야 하는 모든 경우가 다 존엄성에 반하는 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권위와 독자성을 앗아가는 자가 누구이며,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다. 그중 가장 심한 경우가 독재(獨裁)다. 독재자와 그 무리는 우리의 생각과 의도, 행동에 상치(相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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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는 전횡에 맞서는 성벽이다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7)

오랜된 성벽 권리는 전횡에 맞서는 성벽이다 권리는 전횡에 의한 종속에 맞서는 성벽과 같다.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는 자립(自立)이라는 의미로서의 존엄을 지켜낼 수 있게 된다. 권리가 있는 사람은 요구를 할 수 있다. 무엇을 해달라거나, 아니면 하지 말아 달라고 비굴하게 요청(要請) 할 필요가 없다. 그 대신 요구(要求) 하거나 소송을 제기하면 된다. 타인의 너그러움에 기대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권리가 없는 사람은 이리저리 떠밀리지만 권리를 가진 사람에게는 누구도 함부로 그럴 수 없다. 내가 어떤 것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나를 위해 어떤 것을 해주거나 하지 말아야 할 의무가 타인에게 지워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내가 가진 법적 지위는 횡포에 대한 보호라는 의미에서 나를 자립적(自立的)으로 만들어준다. 또한 권리는 무력감으로부터 나를 막아주는 방화벽(放火壁)이다. 그것은 내가 내 뜻을 밀고 나갈 수 있는 권력을 준다. 그러므로 권리는 굴욕으로부터의 보호 수단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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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요새(要塞)로 도피하기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6)

내면의 요새 내면의 요새(要塞)로 도피하기 존엄이란 굴욕을 당하지 않을 권리다. 이 권리가 침해받으면 어떻게 되는가? 굴욕을 그냥 견딜 수는 없다. 그저 주어진 상황을 참고 받아들일 수만도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나에게 그러지 말라고 가해자에게 간청하거나 애원할 수도 있다. 장벽을 도로 허물어 달라고, 부당한 해고를 철회해달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시도들은 비웃음을 터뜨리는 거인의 손아귀에 붙잡힌 채, 부질없이 허공에 손발을 휘젓는 행동과 하나도 다를 바 없다. 그러면 그럴수록 상황은 더 불리해진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신의 무능력을 인정하는 것이며, 간청이 무시당할수록 무력감은 더욱더 깊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망 없는 애원을 반복하는 사람을 보며, 저럴수록 스스로에게 더 굴욕감을 안겨주는 게 아니냐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되었을뿐더러 이치에 닿지 않는 말이다. 본인이 그 상황을 즐기지 않는 한 누구도 자신에게 무력감을 줄 수 없다. 그리고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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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욕을 불러오는 무력감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5)

무력감 굴욕을 불러오는 무력감 타인으로부터 우리가 주체라는 사실을 무시당하거나 수단으로 악용당할 때 우리는 굴욕(屈辱)을 느낀다. 굴욕은 무리에게서 존엄성을 앗아가는 행위이다. 이 행위의 핵심은 무엇인가? 바로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無力感)이다. 무력감이란 힘이 없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힘이 없을 때 모두를 무력하다고 하지는 않는다. 행성의 궤도를 변경시키거나 물을 포도주로 바꾸거나 걸어서 바다를 건널 능력은 우리에게 없다. 우리에게 절대 그런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것을 무력감으로 받아들이진 않는다. 무력감은 특정함 힘을 갖지 못하는 것, 즉 소망(所望)을 이루지 못하는 데서 나온다. 즉 자신이 바라는 것을 이루지 못했을 때 우리는 무력해진다. 그런데 굴욕으로서의 무력감은 이와는 다르다. 다시 말해 삶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소망이 있을 때 그것을 이루지 못하는 불능성(不能性)이다. 불의의 사건 사고를 당한 경우는 굴욕이라고 할 수 없다. 지진, 기근, 전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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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존재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4)

존재감 우리 존재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주체로서의 인간은 단순히 이용당하는 존재가 되길 원치 않는다. 내가 아닌 타인이 정해놓은 목적(目的)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手段)은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바꿔 말하면 우리는 존재 자체로 목적이 되거나, 또는 존재 안에 목적을 담은 자기 목적(自己目的) 적 존재로 받아들여지고자 한다. 그러지 않을 경우, 단순히 불쾌한 정도를 벗어나 무시당하는 대상이 된다거나 더 나아가 짓밟힌다고 느끼게 된다. 우리는 이것을 존엄성을 앗아가려는 시도로 체험한다. 타인이 우리를 어떻게 취급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닌 우리 존재 자체가 목적으로 취급되고자 하는 당연한 권리를 기대하는 정도가 달라진다. 극장에서 불이 났다고 해보자. 사람들은 모두 앞다퉈 출구로 줄달음칠 것이다. 다른 관객들을 옆으로 밀치고 끌어내며 밟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 마치 앞길을 가로막는 물건처럼, 그저 치워야 할 덩어리로만 보일 것이다. 그런 대형 사고가 일어났을 때, 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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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정체성 갈고닦기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3)

정체성 확립 정신적 정체성 갈고닦기 주체로서 겪는 경험은 겉으로 드러나는 이력이나 자신만이 알고 있는 내면의 이력보다도 우리의 사상과 감정, 소망과 미래에 대한 환상을 더 많이 드러나게 해준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은 어둠 속에 싸인 숨겨진 동기의 차원이 존재한다는 걸 조금씩 알게 되고, 삶의 주체로서 살아가는 인생이 바로 이러한 동기들을 인식해나가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숨겨진 동기 중에는 파헤치지 않고 영원히 어둠 속에 묻어놓는 편이 더 나은 것도 있다. 하지만 주체로서의 특성은 무의식적이고 드러나지 않은 동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먼저 인정하고, 자아 발견의 범위를 내면으로 넓혀나가는 시도를 한다는 데 있다. 우리가 하나의 주체로서 갖는 자화상(自畵像)은 현재 우리의 모습에만 국한되지 않고 우리가 되고 싶은 모습, 그리고 되어야만 하는 모습도 해당된다. 주체가 가진 능력에는 자신을 평가 대상으로 삼고 행동과 경험이 만족할 만한 것인지, 즉 기꺼이 받아들일 만한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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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참사 우려되는 사이버 해킹, 대응 입법 시급하다

보도에 따르면 경찰이 법원과 검찰청, 경찰청 소속 직원 수십 명의 내부망 계정 및 비밀번호로 추정되는 정보가 온라인에 공개된 사건에 대해 내사에 착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개인정보 유출 피해자 명단에는 최근 대법관 후보에 들어갔던 고위 법관도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기자가 피해자들에게 연락해 보니 모두 실존 인물이었고, 그들 중 절반 이상이 “본인이 실제 사용했던 계정과 비밀번호가 맞다”라며 해킹당한 사실을 인정했다고 한다. 해당 정보를 온라인에 공개한 인물은 자신을 ‘워페어(Warfare)’라는 이름으로 소개하며 해킹을 통해 그 정보들을 얻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해킹에 성공했다는 증거도 공개했는데, 연초에 서울경찰청이 작성한 ‘2024 상반기 물리력 대응훈련 일정’ 등의 파일 목록이 담긴 경찰 내부망 캡처 화면, 경찰 전용 메신저 설치 파일을 비롯하여 삼성그룹과 현대그룹 계열사 직원들의 계정과 비밀번호 등을 공개했다. 일반인들보다 보안 의식이 훨씬 높을 거라 믿어지는 법원이나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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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적 인간이 된다는 것의 의미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2)

주체적 인간 주체적 인간이 된다는 것의 의미 우리는 각자가 경험의 중심체(中心體)다. 우리는 경험을 통하여 특정한 방식으로 우리 자신이 인간임을 실감한다. 사람은 내면의 시각과 내면의 세계를 지닌 육체적 존재다. 그 가운데 가장 간단한 것은 신체 감각이다. 신체 감각은 몸의 상태와 움직임을 감지하는 것은 물론, 욕구, 욕정, 고통, 더위와 추위, 어지러움과 혐오감, 가벼움과 무거움을 느끼는 전형적인 감각을 포함한다. 그뿐 아니다. 우리가 오감으로 느끼는 것들, 즉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손끝으로 느끼는 것들도 모두 그 안에 들어간다. 그보다 한 차원 더 위에 있는 게 감정(憾情)이다. 기쁨과 무서움, 질투와 부러움, 슬픔과 우울함 같은 것들이다. 그 감정과 밀접한 상관관계에 있는 것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욕구의 형태다. 즉 각자가 소망하는 걸 감정을 통해 밖으로 표출한다는 뜻이다. 감정은 개개인의 소망과 상상, 즉 머릿속으로 꿈꾸거나 속으로 바라는 것들을 통해 구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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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존엄을 흔드는 의존성 - 페터 비에리 著 《삶의 격》 해설 (1)

인간 존엄 인간의 존엄을 흔드는 의존성 인간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자기 삶을 주도하고 싶어 한다. 스스로 무엇을 할 것인지, 타인에게 무엇을 하도록 허용할 것인지를 본인이 직접 결정하고, 외부의 권력이나 타인의 의지에 이끌려 가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쓴다. 이처럼 우리는 다른 사람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일어서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기초적 욕구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욕구는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종종 묵살(默殺) 되곤 한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아주 오랫동안 지속되기도 한다.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욕구가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다. 욕구라는 것은 우리 삶 내면 깊숙한 곳에 숨겨진 나침반과 같다. 그렇기에 어떤 경우에도 소멸(消滅) 되지 않는 인간의 본성이다. 우리가 존엄성과 관련해서 겪는 이런저런 경험들은 이 욕구와 정확히 맞물린다. 그렇기에 남에게 의존하거나 종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들, 무력함을 느끼거나 존엄성을 침해받는 사건들과 마주치면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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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드니, 바로소 철학이 보인다 - 《쇼펜하우어의 인생수업》 해설 (85, 최종회)

철학의 이해 난해한 철학과 친해지기 철학을 전공하지 않더라도 그 분야에 특별한 관심을 가진 이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대다수 현대인은 먹고사는 문제에 집중하느라 평소 철학 서적을 진지하게 파고들 마음의 여유가 없다. 세월의 어깨를 빌려 나이가 들어가면서, 누구라도 자신이 걸어온 삶의 여정에 관해서 회의(懷疑)를 느끼는 순간이 온다. 그때가 바로 철학과 만날 시간이다. 살아가며 내면 깊은 곳에 깊숙이 간직했던 궁금증에 관해서 누군가에게 묻고 싶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많은 일들을 겪는다. 그 무수한 경험 중에서 가슴속에 한점의 의문도 없이 흔쾌히 받아들여진 적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아마도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았을 것이다. 복잡하고 그다지 정의롭지 못한 세상살이에서, 어딘지 애매하고, 무언가 찜찜하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어서 그냥 넘겨버린 경우가 허다하지 않았던가. 그런 경험은 우리의 마음을 닫게 하고 당연히 해야 할 질문을 아예 막아버린다. 그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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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보다 현실을 먼저 알게 하라 - 《쇼펜하우어의 인생수업》 해설 (83)

책보다 현실 책보다 현실을 먼저 알게 하라 일반적으로 아이들에게는 원본(原本)을 통해서만 인생을 경험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을 미리 사본을 통해서 일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아이들에게 서둘러 손에 책을 쥐여주기보다는, 먼저 사물과 인간관계에 대해 알려주어야 한다. 그러한 개념을 현실이 아닌 다른 곳, 즉 책이나 동화 혹은 다른 사람의 말에서 가져와 이미 만들어진 걸 가지고 현실에 적용해서는 안 된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환상과 착각으로 가득 찬 머리는 현실을 잘못 파악하거나, 그런 착각에 따라 현실을 바꾸려고 헛된 노력을 하다가 결국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미로(迷路) 속으로 빠져들고 만다.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심어진 환상과 그로부터 생겨나는 선입견이 얼마나 큰 해를 입히는지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다시 말하자면, 현실 생활에서 나중에 얻게 될 교육은 주로 그런 잘못을 가려내는 데 활용해야 한다. 디오게네스(Diogenēs,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의 “무엇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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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한 연인을 닮은 오목거울 - 《쇼펜하우어의 인생수업》 해설 (84)

연인 무정한 연인을 닮은 오목거울 오목거울은 다양한 비유의 대상으로 이용된다. 그 첫 번째는 오목거울이 자신의 힘을 한곳으로 모은다는 점에서는 천재에 비유할 수 있다. 천재는 오목거울처럼 외부로 보이는 사물의 상(像)을 왜곡시키거나 미화시킬 수 있고, 밝기와 온기를 더하는 놀라운 효과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두 번째로, 진정한 예술작품도 오목거울에 비유할 수 있다. 그 작품이 원래 전달하려고 하는 바가 자기 자신이 지각할 수 있는 자아(自我)나 경험적인 내용이 아니라, 자신의 바깥에 존재하며 손으로 붙잡을 수 없는 사물의 본질적인 정신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상상력에 의해서만 그것을 쫓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 시적(詩的)으로 표현하자면 절망적인 사랑에 빠진 사람도 자신의 무정한 애인을 오목거울에 비교할 수 있다. 오목거울은 마치 애인처럼 반짝거리고, 다른 것들에 불을 붙이고 열기를 빨아들이지만 정작 자신은 냉정함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라 공허함과 무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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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과 개념, 무엇이 먼저인가? - 《쇼펜하우어의 인생수업》 해설 (81)

직관의 힘 직관과 개념, 무엇이 먼저인가? 모든 교육의 목표는 세상을 알게 하는 거라고 말할 수 있기에, 교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올바른 방식으로 세상을 알기 시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앞서 설명했듯이 이 모든 일은 직관이 개념에 선행하며, 더욱이 좁은 개념이 넓은 개념에 선행한다는 사실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물의 개념들이 서로 어떻게, 무엇이 전제로 되는지에 관해서 체계적으로 가르쳐야 한다. 만약 그 순서를 건너뛰게 되면 곧바로 불완전한 개념이 만들어지고, 그로부터 잘못된 개념이 발생해 결국 그 개인에게만 통용되는 비뚤어진 세계관이 만들어진다. 그 결과 모든 사람은 이렇게 만들어진 세계관을 아주 오랫동안 평생 머리에 지니고 살아간다. 그러다가 나이를 먹은 이후에서야 비로소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깨닫게 되거나, 혹은 갑자기 단순한 여러 사물과 그 관계에 대해 명확하게 이해하게 되었음을 발견한다. 어떤 사람이 세상을 잘못된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다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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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교육의 일반 원칙 - 《쇼펜하우어의 인생수업》 해설 (82)

어린 시절 자녀 교육의 일반 원칙 어린 시절부터 머릿속에 주입된 잘못된 오류는 지우기 어렵다. 판단력은 가장 늦게 성숙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이들이 열여섯 살이 될 때까지(어느 정도 성장할 때까지)는 커다란 오류가 있을 수도 있는 가르침들, 즉 철학이나 종교, 그리고 무수한 종류의 견해로부터 멀리하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오류가 존재할 수 없는 수학이나, 오류가 존재하더라도 그다지 위험하지 않은 어학, 자연 과학, 역사 같은 과목은 가르쳐야 한다. 아이들의 성장 시기에 따라 두뇌가 받아들일 수 있고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학문만을 가르쳐야 한다는 말이다. 유년기와 청년기는 자료들을 수집해서 그 각각의 특징들을 아주 특별한 방법으로, 근본적으로 알아가는 시기이다. 이때 주의할 점은 일반적인 판단은 미루어두고, 최종 설명도 뒤로 미루어야 한다.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성숙한 경험이 필요하므로 판단력을 그대로 보호하면서, 그 판단력에 선입견이 침투하지 않도록 주의력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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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부른 자녀교육, 이이를 망친다 - 《쇼펜하우어의 인생수업》 해설 (80)

인위적인 교육 ‘자연스러운 교육’과 ‘인위적인 교육’ 우리 지성의 본질에 따르면, 직관(直觀: 감각, 경험, 연상, 판단, 추리 따위의 사유 작용을 거치지 아니하고 대상을 직접적으로 파악하는 작용)은 개념(槪念: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 보편적인 관념)보다 더 앞서 존재한다. 그러나 단순히 교사와 책에 대한 경험만 가지고 있는 사람의 경우, 실제로 여러 과정을 거쳐야만 어떤 개념이 직관에 해당하는 것이고, 어떤 직관이 어느 개념에 속한 것인지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그가 이 두 가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것에 따라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올바르게 처리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이런 방식을 ‘아주 자연스러운 교육’이라고 부른다. 그와는 달리 ‘인위적인 교육’의 경우에는 구체적인 세계를 폭넓게 알기 전부터 책을 통해 미리 모든 것을 알려주고 가르쳐서 수많은 개념을 머릿속에 잔뜩 주입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중에라도 경험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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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힐링? 고전을 읽는 것이다 - 《쇼펜하우어의 인생수업》 해설 (79)

고전 읽기 최고의 힐링은 고전을 읽는 것이다 어떤 하나의 작품은 정신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작품은 제아무리 위대한 정신의 소유자라 할지라도, 작가의 인간관계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본질적으로 그 인간관계를 대체할 수 있다. 즉 작품은 그것을 쓴 사람의 정신을 훨씬 능가한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심지어 평범한 사람이 쓴 작품일지라도 유익하고 읽을 가치가 있으며 재미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작품은 그 사람의 생각과 연구의 결과이자 결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그 사람의 인간관계는 우리를 만족시킬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사람의 인간관계는 만족하지 않더라도 그 사람의 저서(著書)를 읽을 수 있을 것이고, 그러한 이유로 정신적 교양이 점점 높아지면 저자가 아니라 책에서 즐거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정신을 위한 기분전환을 위해서는 고전을 읽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고작 반 시간에 불과할지라도 고전을 읽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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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긴 읽었는데 이해가 안 되네 - 《쇼펜하우어의 인생수업》 해설 (78)

책의 이해 책을 읽는다고 내용을 이해하는 건 아니다 만약 책 읽는 시간까지 같이 구매하는 게 가능하다면, 책을 사는 것이 좋은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책을 구매하는 행위와 그 책의 내용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을 혼동하고 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이 지금까지 읽었던 모든 책을 그대로 간직하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지금까지 자신이 먹었던 모든 음식을 전부 체내에 담고 있기를 바라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가 먹은 음식으로 인해 그의 육체가 지금껏 살아있는 것이고, 그가 읽은 책에 의해 그의 정신이 현재 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었음을 깜빡 잊으면 안 된다. 육체가 자신과 동질적인 것만을 몸 안에서 동화(同化) 시키는 것처럼, 모든 사람은 자신이 흥미를 느끼는 것, 본인의 생각이나 목적에 맞는 것만 골라 간직한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목적이 있지만, 그 목적과 자신의 사고 체계(思考體系)가 일치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래서 대부분은 어떠한 것에도 객관적인 흥미를 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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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나온 책만 읽는 멍청한 독자들 - 《쇼펜하우어의 인생수업》 해설 (77)

멍청한 독자들 새로 나온 책만 읽는 멍청한 독자들 위대한 작가에 대한 논평이 책으로 나오면 독자들은 앞다투어 사서 읽는다. 하지만 정작 그 작가의 저서는 읽지 않는다. 그런 독자들은 그저 새로 출판된 책만 골라 읽으려 든다. 비슷한 수준의 바보들이 끼리끼리 어울리는 것처럼, 오늘날의 멍청이들이 지껄이는 진부하고 수준 낮은 잡담이 위대한 정신을 담은 표현보다 그들의 수준과 흥미에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슐레겔(August Wilhelm Schlegel, 18~19세기 독일의 평론가)이 젊은 시절에 쓴 멋진 구절을 접하고 나서, 그것을 좌우명으로 삼을 수 있었던 운명에 감사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열심히 고전을 읽어라. 진정으로 참된 고전을! 최근엔 나온 글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으니 말이다” 위대한 정신이 담긴 책을 방치하지 마라 아아, 어떤 평범한 인간은 다른 평범한 인간을 어쩌면 그토록 닮았단 말인가! 그들은 어쩌면 모두 하나의 틀에서 만들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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