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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의 운명에 대한 한 예언

1891년 슈바르첸베르크(Schwarzenberg) 공 카를(Karl)은 청년 체코당 민족주의자 에드바르트 그레그르(Edward Grégr)에게 다음과 같은 주장을 했다. 당신과 여러분이 이 국가(합스부르크 제국)를 싫어한다 해도 - 불행히도 당신의 가르침 때문에 보헤미아에서 오스트리아에 대한 증오가 확산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 홀로서기엔 너무 작은 여러분 나라를 어떻게 할 것입니까? 여러분이 오스트리아 연방을 포기하면, 다른 방법이 없어서 독일이나 러시아에 나라를 내주어야 할 겁니다. If you and yours hate this state - and it is unfortunately fact that hatred of Austria is spreading in Bohemia through your teachings - what will you do with your country, which is too small to stand alone? Will you give it 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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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오랑캐'가 본 조조(曺操)와 사마의(司馬懿)

5호 16국 시대에 한때 화북을 평정했던 후조(後趙)의 석륵(石勒 )은 삼국시대의 조조와 사마의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고 한다. 조의 주군 석륵이 여러 신하들에게 향연을 베풀면서 서광(徐光)에게 말하였다. "짐을 옛날부터 보면 어떠한 군주와 비교할 수 있겠소?" 대답하였다. "폐하의 신(神)과 같은 무력과 모략에서는 한 고조를 지나치시니, 후세에도 비교할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석륵이 웃으며 말하였다. "사람이 어찌 스스로를 알리오! 경의 말이 대단히 지나치오. 짐이 만약 한 고조를 만난다면 마땅히 북면(北面)하고 섬기면서 한신(韓信)과 팽월(彭越)과 어깨를 나란히 할 것이지만, 만약에 광무제를 만난다면 마땅히 나란히 중원을 달릴 것이니, 사슴이 누구의 손에 죽을지 모를 것이오. 대장부가 이를 수행히 마땅히 공명정대하여 마치 해와 달처럼 밝아야 할 것이지만, 조맹덕(曺孟德)과 사마중달(司馬仲達)을 본받아 다른 사람의 고아와 과부를 속여서 여우처럼 눈짓을 하면서 천하를 빼앗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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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프랑스 여행 12] 툴롱(Toulon) : 국립 해양 박물관(Musée National de la Marine)

개요 군항 도시답게 툴롱 항구 근처에는 국립 해양 박물관(Musée National de la Marine)이 자리를 잡고 있다. 국립 해양 박물관은 툴롱 이외에도 파리(Paris), 브레스트(Brest), 포르-루이(Port-Louis), 로슈포르(Rochefort)에도 있다. 툴롱 국립 해양 박물관은 고풍스러운 건물로 되어 있다. 툴롱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항구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건물이다. 툴롱 국립 해양 박물관 입구 항구 옆에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에 찾기도 쉽다. 국립 해양 박물관 위치 운영시간 구분 운영 시간 9월 ~ 6월 10시 ~ 18시(매주 수요일 휴관) 7월 ~ 8월 10시 ~ 18시 휴관일 2025년 1월 6일 ~ 2월 7일, 매년 1월 1일, 5월 1일, 12월 25일 요금 구분 온라인 구매 현장 구매 대상 정상 요금 7€ 8€ 할인 요금 5€ 6€ EU 외 18~25세, 26세 이상 학생, 재향군인, 대가족카드 소지자 무료 - - 18세 미만, 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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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프랑스 여행 10] 툴롱(Toulon) : 파롱산 케이블카(Le téléphérique du Faron)

파롱산(Mont Faron)과 케이블카(téléphérique) 툴롱은 앞에는 바다가 있고 뒤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 산이 해발 584m의 파롱산이다. 파롱산에 올라가면 툴롱 시내와 항구가 한눈에 들어온다. 파롱산 정상과 툴롱 시내 사이는 케이블카가 운행한다. 케이블카 정류장은 툴롱 시내 북쪽에 있고, 95번 버스를 타면 갈 수 있다. 툴롱 케이블카 케이블카 정류장 위치 툴롱 시내 케이블카 정류장 파롱산 케이블카 정류장 케이블카 요금은 아래와 같다. 하지만 현장에서 전용 티켓을 구입하기보다는 케이블카가 포함된 1일권(10유로)을 구입하는 것을 추천한다. 구분 금액 비고 성인(왕복) 9.00 청년(왕복) 8.00 12세 이상 24세 미만 어린이(왕복) 7.00 4세 이상 11세 미만 편도 6.50 성인, 청년, 어린이 단일 요금 케이블카 타기 파롱산 정상 정상은 넓은 평평한 땅이 펼쳐져 있다. 산 정상이라기보다는 평야 같은 느낌이다. 케이블카 정류장뿐만 아니라 1944년 8월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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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교통 완전 정복 (3)] Ticket t+(1회권)와 까르네(Carnet) 이해하기 : 금액, 이용 가능 교통수단, 환승

<지난 글> [파리 교통 완전 정복 (1)] 파리와 일 드 프랑스 교통 존(zone) 이해하기 https://blog.naver.com/french_75mm/223591570283 [파리 교통 완전 정복 (2)] 종이 티켓(Carton), 나비고 이지(Navigo easy), 나비고 데쿠베르트(Navigo découverte) 요약 https://blog.naver.com/french_75mm/223600752998 [Tickt t+ 요약] 금액 : Ticket t+ 2.15유로 / Carnet(10회권) 17.35유로(단, 까르네는 나비고 이지와 스마트폰 앱에서만 구입 가능) - 4세 이상 10세 미만은 까르네를 50% 할인 가격으로 구입 가능 지하철(Métro), 버스, 트램은 교통존에 상관없이 이용 가능 / RER은 1존(파리 시내)에서만 이용 가능 - 지하철 14호선으로 오를리 공항을 오고 갈 때는 전용 티켓(10.3유로) 필요(Ticket t+ 사용 불가) - 트램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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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프랑스 여행 11] 툴롱(Toulon) : 남프랑스 상륙 작전(Operation Dragoon) 및 프로방스(Provence) 해방 기념관

남프랑스를 해방시킨 드래군 작전(Operation Dragoon) 역사는 첫 번째 사람이나 사건을 기억한다는 것은 일정 부분 사실이다. 달에 첫발을 내디딘 닐 암스트롱(Niel Armstrong, 1930~2012)은 기억해도, 두 번째로 달을 밟은 버즈 올드린(Buzz Aldrin, 1930~)은 잘 기억되지 못한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1944년 6월 6일의 노르망디(Normandie) 상륙작전은 연합군 승리의 상징으로 남아 있고 매년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의 국가 원수들이 참여해서 기념식을 연다. 하지만 노르망디 상륙작전 두 달 후인 1944년 8월 15일에 실시된 남프랑스 상륙 작전은 사실 그렇게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작전명 드래군(Operation Dragoon), 한국어로 하면 용기병 작전으로 번역되는 남프랑스 상륙작전은 당초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동시에 실시될 계획이었다. 당초 계획대로 되었다면 프랑스를 비롯한 서유럽 해방은 보다 빨리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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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교통 완전 정복 (4)] 나비고 1일권(Forfait Navigo Jour/Navigo One Day Pass) 이해하기

<지난 글> [파리 교통 완전 정복 (1)] 파리와 일 드 프랑스 교통 존(zone) 이해하기 https://blog.naver.com/french_75mm/223591570283 [파리 교통 완전 정복 (2)] 종이 티켓(Carton), 나비고 이지(Navigo easy), 나비고 데쿠베르트(Navigo découverte) 요약 https://blog.naver.com/french_75mm/223600752998 [파리 교통 완전 정복 (3)] Ticket t+(1회권)와 까르네(Carnet) 이해하기 : 금액, 이용 가능 교통수단, 환승 https://blog.naver.com/french_75mm/223603462381 [나비고 1일권 요약] ⊙ 1-5존 1일권은 20.6유로 ⊙ 나비고 이지(Navigo easy)와 나비고 데쿠베르트(Navigo découvert), 스마트폰 앱에서 이용 가능 ⊙ 일 드 프랑스 내의 지하철(métro), RER, 트랑질리앙(Transil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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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Home Before the Leaves Fall : 제1차 세계대전 초기 서부 전역(슐리펜 계획과 마른 전투)

⊙ 지은이 : Ian Senior ⊙ 출판사 : Osprey Publishing ⊙ 출판연도 : 2012 영어로 된 제1차 세계대전 책을 읽다 보면 영국 편형적인 내용을 발견하게 된다. 특히 제1차 세계대전 초기 서부 전선을 다루는 영어권 저작들은 영국원정군의 역할을 과대 평가하는 경향이 존재한다. 몽(Mons) 전투와 르 카토(Le Cateau) 전투 서술에 집중하고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 책은 영국 저자에 의해 씌여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통념에 반기를 들고 프랑스군과 독일군에 초점을 두고 기술한 책이다. 그 중에서도 독일 제1, 2, 3군과 프랑스 제5, 9군에만 집중하여 밀도있는 서술을 하고 있다. 영국원정군에 대해서는 르 카토 전투에만 의미를 부여하고, 전투 내용은 기술하고 있지 않다. 초점의 범위를 좁힌 결과, 대대급 전투 양상에 대한 기술을 통해 주로 사단 이상의 움직임을 다루는 다른 책과는 차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참전자들의 수기와 증언, 특히 독일측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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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교통 완전 정복 (1)] 파리와 일드프랑스 교통 존(zone) 이해하기

[요약] 파리를 포함한 일 드 프랑스(Île-de-France)는 1-5존으로 구성 지하철(Métro) 버스 트램을 타는 경우는 존에 상관없이 1회권 Ticket t+(2.15유로)으로 이용 가능 - 단, 지하철 14호선으로 오를리 공항을 오갈 때, 공항 버스, 트램 11, 12, 13호선은 이용 불가 RER/트랑질리언(Transilien)을 이용할 때만 존을 구분하면 됨 - 1존(파리) - 2.15유로 / 2~3존 - 3.2유로 / 4존 - 4.15유로 / 5존 - 5유로 파리와 일 드 프랑스(Île-de-France)의 존(zone) 구성 일 드 프랑스의 교통 구역은 파리를 1존으로 해서, 파리를 돌아가는 지역을 구분하여 5존까지 구분되어 있다. 일 드 프랑스 존 구성 문제는 파리와 일 드 프랑스 존 구분이 직관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파리가 1존인 것은 명확하지만 지도만으로 나머지 존, 특히 2존과 3존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행정 구역과도 일치하기 않기 때문이다.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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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프랑스 여행 9] 툴롱(Toulon) : 기본 정보

소개 툴롱(Toulon)은 브르타뉴(Bretagne) 지역의 브레스트(Brest)와 더불어 프랑스의 대표적 군항이다. 툴롱이 제1 군항이고 브레스트는 제2 군항이다. 프랑스가 자랑하는 샤를르 드골(Charles de Gaulle) 항공모함 기항이 툴롱이다. 툴롱 전경 샤를르 드골 항공모함 역사적으로는 나폴레옹(Napoléon)이 처음으로 명성을 떨친 곳이 툴롱이다. 프랑스 혁명 당시 영국과 왕당파는 툴롱을 점령하고 있었다. 나폴레옹은 툴롱 서쪽의 요새를 점령하여 영국 함대를 포격할 준비를 갖추자, 영국 함대는 스스로 툴롱에서 철수했다. 나폴레옹은 툴롱에서 거인의 첫발을 내디뎠던 것이다. 툴롱의 위치는 마르세유에서 동쪽으로 65km 정도 떨어져 있다. TGV나 TER로 40여 분 정도 걸린다. 마르세유에서 니스 구간의 기차는 TGV나 TER나 소요 시간은 비슷하게 걸린다. 행정 구역 상으로 툴롱은 프로방스-알프-코트 다쥐르(Provence-Alpes-Côte d'Azur) 레지옹(r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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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교통 완전 정복 (2)] 일 드 프랑스와 파리 교통 요금제와 교통권 형태 요약

<지난 글> [파리 교통 완전 정복 (1)] 파리와 일 드 프랑스 교통 존(zone) 이해하기 https://blog.naver.com/french_75mm/223591570283 일 드 프랑스(Île-de-France)와 파리 요금제 종류 파리 교통 요금제는 복잡하기로 악명이 높다. 요금제 종류가 너무 많고 여러 제약 조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일 드 프랑스 교통공사(Île-de-France Mobilité) 사이트에 접속하면 프랑스어 홈페이지에서는 33개, 영어 홈페이지에서는 29개 나온다. https://www.iledefrance-mobilites.fr/en/tickets-fares/list List of tickets and fares Au cœur du réseau de transports Franciliens, Île-de-France Mobilités fédère tous les acteurs (voyageurs, élus, constructeurs, trans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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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프랑스 여행 7] 니스(Nice) 시내 : 쇼핑

니스의 명동 : 메드상 거리(Avenue Jean Médecin) 7월 남프랑스의 햇빛은 너무나 강렬했다. 원래는 샤갈이나 마티스 미술관을 가려고 했지만 더위 때문에 움직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또한 자외선 차단제를 발랐음에도 햇빛 알러지로 추정되는 얼굴 피부에 문제가 생겨, 피부 진정을 위한 화장품과 새로운 자외선 차단제가 필요했다. 미술관을 포기하고 쇼핑을 하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장 메드상 거리(Avenue Jean Médecin)에 있는 호텔에서 묵었다. 장 메드상 거리는 트램 1호선이 다닐 뿐만 아니라 그 거리 자체가 쇼핑 거리이다. 장 메드상 거리 라파예트 백화점(Galeries Lafayette), 프낙(FNAC), 니스투왈(Nicetoile), 모노프리(Monoprix) 등의 큰 쇼핑 센터가 있다. 이 밖에도 영화관, 작은 상점과 카페, 식당 등이 늘어서 있다. 서울의 명동으로 볼 수 있다. 장 메드상 거리 전경 1 장 메드상 거리 전경 2 : 빨간색 표시가 걸린 곳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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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프랑스 여행 8] 니스(Nice) : 랭피아 항구(Port Lympia), 니스 맛집, 카페, 아이스크림

랭피아 항구(Port Lympia) 랭피아 항구는 니스 동쪽에 자리를 잡고 있다. 트램 2호선를 타고 종점에 내리면 바로 항구가 펼쳐진다. 랭피아 항구 위치 트램 2호선 직사각형 형태의 아담한 항구이다. 아름다운 남프랑스풍의 건물이 항구를 감싸고 있었다. 마르세유 구(舊)항구(Vieux-Port)의 축소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항구 전경 1 항구 전경 2 랭피아 항구를 굽어보는 니스 항구 성당(Église Notre-Dame du Port de Nice) 아름다운 항구지만 그렇게 사람들이 많지 않아 한가로움을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또한 항구 주변으로 평점이 높은 식당들이 많아 맛있는 식사를 즐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레스토랑 오캅(Ô Cap) 우리가 고른 곳은 포르투갈 음식 전문점인 오캅이었다. 파란 지붕이 항구와 잘 어울렸다. 식당 외관 야외 좌석 야외에 자리를 잡았다. 차양 덕분에 덥지 않았고 항구 주변이라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남프랑스가 덥기는 하지만 습도가 높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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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스티븐 웹(Stehphen Web), <모두 어디 있지?> : 외계 생명체는 있는가?

지은이 : Stephen Web 옮긴이 : 강윤재 출판사 : 한승 연도 : 2005 한때 내 PC의 화면보호기는 SETI@Home으로 설정되어 있었다. SETI는 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의 약자로 우주의 신호를 분석하여 지적 생명체의 존재를 탐구하는 프로젝트였다. SETI 주관 기관에서 분석할 자료가 많다 보니 개인 PC를 이용 하고자 했고, 그 방법의 일환으로 화면보호기 형태의 분석 프로그램을 배포했던 것이다. 그 프로그램을 처음 설치할 때는 내 PC가 외계로부터의 신호를 분석하여 유명 PC(?)가 되는 뇌내망상을 한 적도 있다. 이 책은 그러한 뇌내망상을 깨버리는 책이다. 150억년이나 되는 우주의 나이와 끌없는 광활함에도 불구하고 우주에서 고등 생명체는 우리 인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지은이가 단정하는 것은 우리 은하에서 인류가 유일한 고등생명체라는 점이지만. 어떻게 보면 무섭고 섬뜩한 결론이다. 하지만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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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여행 후기 5] 파리 빵집 : 라 메종 디자벨(La Maison d'Isabelle)

우리가 묵었던 호텔 레지던스 앙리 4세(Hôtel Résidence Henri IV) 주변에는 나름 유명한 빵집이 있었다. 이름은 라 메종 디자벨(La Masion d'Isabelle)로, 이자벨(Isabell)의 집(Maison)로 옮길 수 있다. 2018년에 파리와 일 드 프랑스(Île de France) 지역에서 버터 크루아상(Croissant au beurre) 1등을 한 빵집이었다. 라 메종 디자벨(La Maison d'Isabelle) 라 메종 디자벨(La Maison d'Isabelle), 생 말로 가는 새벽에 빵을 구입하고 찍은 사진 주소 47ter Boulevard Saint-Germain, 5th arrondissement 75005, Paris 가까운 지하철역 : 10호선 모베르-뮈튀알리테(Maubert-Mutualié) 역 영업시간 : 화~금 06~20시, 일 06~18시, 월요일 휴무 라 메종 디자벨(La Maison d'Isabelle) 위치 아침 일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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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여행 후기 6] 파리 레스토랑(식당) : 구(舊) 르 루이 방(Le Louis Vin), 현(現) 라바 - 퀴진 에 방(LAVA - Cuisine & Vin)

소개 르 루이 방(Le Lous Vin)은 우리가 파리에서 간 식당 중 가장 등급이 높았다. 레스토랑(Restaurant) - 비스트로(Bistro) - 브라스리(Brasserie) - 카페(Café)에서 레스토랑에 해당하는 식당이었다. 그래서 일요일과 월요일은 휴무를 하고 영업시간도 길지 않았다. 식당 전경 지금 이 글을 쓰는 시점에는 이름이 르 루이 방에서 라바 - 퀴진 에 방(LAVA - Cuisine & Vin)으로 바뀌었다. 구글 지도 댓글과 홈페이를 확인해 보니 운영하는 사람은 그대로이고 이름만 변경된 것 같았다. 식당은 라탱 지구(Quartier Latin)의 생 제르맹 거리(Boulevard Saint-Germain)와 에꼴르 거리(Rue des École)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식당 위치 주소 : 9 Rue de la Montagne Sainte Geneviève, 75005, Paris 영업시간 화요일과 수요일 : 16:00~22:30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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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여행 후기 7] 파리 아이스크림 맛집 : 베르티용(Berthillon)

소개 베르티용(Berthillon)은 시테 섬(Île de Cité) 옆에 있는 생 루이(Île Saint-Louis) 섬에 자리 잡은 유명한 아이스크림 가게이다. 섬은 다리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쉽게 건너갈 수 있다. 가게 전경 : 왼쪽 문은 찻집(Slaon)이고 오른쪽이 아이스크림을 파는 곳이다. 1927년에 세워져 3대째 이어지고 있는 아이스크림 맛집이라고 할 수 있다. 홈페이지에도 자신의 할아버지가 맛든 비법 대로 아이스크림을 만들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있다. 위치 주소 : 29-31 Rue Saint-Louis en l'île, 75004, Paris 영업시간 : 수요일~일요일 10:00~20:00 (월요일과 화요일은 휴무) 홈페이지 https://berthillon.fr/ Berthillon - Berthillon La Maison BERTHILLON vous accueille du mercredi au dimanche rue saint Louis en 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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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파리 올림픽 기간(7.20~9.8) 동안 파리 교통권 사용 방법 안내 : Passe Paris 2024

[핵심 요약] 7월 20일(토)에서 9월 8일(일)까지 나비고(Navigo) 1일권과 1주일권은 사용할 수 없음 같은 기간에 Ticket t+ 가격은 2.15유로에서 4유로로 인상 Bonjour RATP 앱이나 IDF Mobilités 앱을 설치하여 미리 Ticket t+를 충전(7월 19일까지 가능) - 최대 30장까지 충전 가능 : 1장 가격은 2.15유로, 까르네(Carnet, 10장)는 17.35유로 디즈니랜드, 베르사유 궁전 등을 갈 때에는 올림픽 전용 교통권인 Passe Paris 2024를 활용 1. 올림픽 기간(7.20~9.8) 교통권 변화 내용 파리 올림픽과 패럴림픽 동안 파리 교통 요금이 인상되고, 나비고 1일권과 1주일권은 사용할 수 없게 된다. 반대로 그 기간 동안 올림픽 전용 교통권인 Passe Paris 2024가 신설되었다. 구분 ~7.19 7.20 ~ 9.8 Ticket t+ 2.15유로 4유로 구간권 (베르사유 궁전/디즈니랜드 등) 5유로 6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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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올림픽 Pass Jeux(올림픽 QR) 정리

[요약] 7월 18일(목)에서 7월 26일(금)에 파리 시내 관광을 하는 사람은 Pass Jeux를 신청하는 것을 추천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 에펠탑은 Pass Jeux가 필요없으나 대신 사전 예약이 필요 Pass jeux와 더불어 반드시 여권도 소지하는 것이 필요 100년만에 파리에서 열리는 올림픽이고 유럽에서 상대적으로 빈번하게 일어나는 테러를 대비하기 위해 프랑스는 Pass Jeux, 즉 올림픽 QR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1. 올림픽 기간 동안 통제 구역 7월 18일부터 패럴림픽이 끝나는 9월 8일까지 파리는 개막식 기간(7.18~7.26)과 경기 기간(7.27~9.8)으로 나눠서 통제 구역을 운영한다. 통제 구역은 회색(gris), 적색(rouge), 청색(bleu)으로 구분된다. 회색 구역은 경기장이나 테러 방지 목적의 통제 지역이다. 개막식 기간 동안 보행자가 회색 구역을 접근하기 위해서는 Pass Jeux가 필요하다. 2. 개막식 기간(7.18~7.26)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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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프랑스 여행] 계획(7.19.~8.1.)

계획 수립 과정 0 2024년 여행은 다소 즉흥적으로 결정되었다. 여러 항공사 항공권을 검색하다가 7월 후반기 에어 프랑스(Air France)가 엄청 저렴하게 나온 것을 보고 바로 표를 예매했다. 이코노미는 거의 왕복 100만 원 이하였고, 프리미엄 이코노미 편도는 최저 100만 원대 초반, 비즈니스 편도는 최저 180만 원 정도였다. 하지만 비행기표는 저렴했지만 정작 7월 후반부는 올림픽 기간이라 파리 호텔 숙박비는 천정부지로 솟구쳤다. 참으로 묘한 현상이었다. 프랑스 국적기인 에어 프랑스는 프로모션을 하지만, 파리 호텔은 값을 올리는, 약간은 모순적인 일이 일어난 셈이다. 최대한 파리는 피하고 다른 지역을 돌아보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① 한 번은 가봤지만 시간이 부족해서 아쉬웠던 지역, ②와인으로 유명한 지역, ③ 관광지로는 유명하지 않지만 개인적으로 관심 있는 지역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다. 3가지 기준으로 조사를 해서 선별한 여행 후보지는 니스(Nice), 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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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프랑스 여행 1] 니스(Nice) 가는 길 : 스카이 허브 라운지, 프리미엄 이코노미, 샤를르 드골 공항에서 환승

스카이 허브 라운지(Sky Hub Lounge) 10시 50분 비행기라 나름 공항에 나름 일찍 도착을 했다. 출국 수속을 마치고 탑승장으로 들어선 시각이 대략 7시 30분 정도였다. 언제나 가는 마티나 라운지로 향했는데, 문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이 눈에 들어왔다. 너무 오래 기다릴 것 같아 스카이 허브 라운지로 발길을 돌렸다. 스카이 허브 라운지 1 스카이 허브 라운지 2 스카이 허브 라운지는 기다리지 않고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들어가서 얼마 안 되어 왜 안 기다리고 들어갈 수 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마티나보다는 음식 종류가 빈약한 편이었다. 스카이 허브 라운지 음식 하지만 스카이 허브 라운지에도 장점이 있었다. 공항 전망을 바라보고 편하게 기대거나 누울 수 있는 의자가 있었다. 간단한 음식을 먹고 누워서 부족한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스카이 허브 라운지 명당자리 공항 전망 1 공항 전망 2 에어 프랑스 탑승 : 프리미엄 이코노미 미리 프리미엄 이코노미에 대한 사전 조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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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프랑스 여행 2] 니스(Nice) 근교 : 망통(Menton)의 기본 정보

간략한 역사 프랑스어 발음에 가깝게 표기하지면 "멍똥"으로 발음되는 망통은 프랑스와 이탈리아 국경 사이에 위치한 도시이다. 망통은 모나코 공국(principauté de Monaco/ Principality of Monaco)에 속했으나, 프랑스 혁명과 제1 제정 때까지는 프랑스 영토로 있었다. 나폴레옹 몰락 이후에는 샤르데냐 왕국(Regno di Sardegna/Kingdom of Sardina)에 속해 있다가, 나폴레옹 3세가 1860년 이탈리아 통일 전쟁을 지원한 대가로 이탈리아로부터 니스와 망통 지역을 할양받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이탈리와 독일이 잠시 점령을 하기도 했으나, 지금까지 프랑스 영토로 남아 있다. 망통은 휴양지와 해수욕장으로 유명하고, 특히 2월에 열리는 레몬 축제(fête du citron) 또한 망통의 명성은 높이는데 기여하고 있다. 가는 방법 대중 교통은 니스에서 망통으로 가는 가장 쉬운 방법은 프랑스 지역 철도인 TER(Transport exp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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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프랑스 여행 3] 니스(Nice) 근교 : 망통(Menton) 여행

망통 가는 길 망통행 기차가 출발하는 니스 역은 아담했다. 역 규모는 작지만 TGV도 운행하는 나름 중요한 역이다. TGV를 탈 때는 승차권인 QR 코드를 검사하지만, TER는 그런 절차는 없다. 그렇다고 무단 승차를 하다가 걸리면 벌금 폭탄을 물게 된다. 니스 역과 망통행 기차 망통행 기차를 탈 때는 언제나 오른쪽에 앉아야 한다. 왼쪽에 앉으면 산이나 마을 전망만 보이지만 오른쪽에 앉으면 푸르른 지중해를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차 안에서 바라본 지중해 보이예 거리(Avenue Boyer) 망통역은 공사를 하고 있어서 조금 번잡스러웠다. 아마도 대대적인 환경 개선 작업이 진행 중인 것 같았다. 망통역 역을 나와 조금만 걸으니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노란색의 건물이 사람들을 반겨주고 있었다. 노란색의 항연을 보면서 왜 망통을 "레몬 빛 도시"라고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망통의 중심 거리라고 할 수 있는 보이예 거리(Avenue Boyer)는 가운데 커다란 나무가 심어진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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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프랑스 여행 4] 니스(Nice) 근교 : 빌프랑슈-쉬르-메르(Villefranche-sur-Mer) 여행

소개 빌프랑슈-쉬르-메르는 니스 옆에 있는 인구 4,989명의 작은 도시이다. 사실상 니스와 같은 생활권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니스에서 빌프랑슈-쉬르-메르는 TER로 7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빌프랑슈-쉬르-메르 바닷가 빌프랑슈-쉬르-메르 위치 만(灣) 형태 지형을 가지고 있어 항구, 특히 군항으로도 많이 사용되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중간 기착지로 이용했다. 프랑스에 병합되기 전인 19세기 중반에는 러시아 해군 기지가 있기도 했다. 20세기 들어서는 지중해 방어를 책임지는 미국 제6함대(Uninted States Sixth Fleet)가 1948년에서 1966년까지 빌프랑슈-쉬르-메르를 기항으로 사용했다. 하지만 "위대하지 않은 프랑스는 프랑스가 아니다(La France ne peut être la France sans la grandeur)"를 외친 샤를 드골(Charles de Gaulle) 대통령이 1966년 나토(NATO)에서 프랑스군을 철수시키자 미국 제6함대는 이탈리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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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프랑스 여행 5] 니스(Nice) 근교 : 베르동 협곡(Gorge du Verdon) 여행(Tour) 1부

투어 상품 소개 베르동 협곡(Gorge du Verdon)과 무스티에-생트-마리(Moustiers-Sainte-Marie) 마을을 가는 최고의 방법은 차량 렌트이지만 우리는 사정이 여의치를 않아 1일 투어 프로그램을 이용하기로 했다. 여담으로 버스로도 갈 수 있다. 1일 투어 프로그램은 Viator와 GetYourGuide를 검색하면 여러 상품이 나온다. 니스(Nice)에서 출발할 수도 있고 아니면 엑상 프로방스(Aix-en-Provence)에서 출발할 수도 있다. 엑상 프로방스가 이동 거리가 짧고 도로도 상대적 평탄한 편이다. 우리는 니스에서 일정이 있었기 때문에 니스 출발 상품을 이용했다. 투어 상품 픽업과 투어 시작 호텔로 차량이 와서 참가자를 픽업하는 방식이었다. 우리가 맨 처음으로 차량에 탑승했다. 두 번째 참가자를 기다리는 동안 니스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게 되었다. 바다로 나가는 노부부의 모습 한 노부부가 파라솔과 의자 등을 챙겨서 작은 길을 통해 해변으로 나가는 뒷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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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Challenge of Battle : The Real Story of the British Army in 1914(1914년 영국원정군)

ㅇ 지은이 : Adrian Gilbert ㅇ 출판 연도 : 2014 ㅇ 출판사 : Osprey Publsihing 역사책을 보다 보면 별 근거 없이 자명하다고 간주되는 통념과 마주치게 된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1914년의 영국원정군(BEF : British Expeditionary Forece)에 대한 통념이 그러한 예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옛 경멸자들(The Old Contemptibles)'1)로 통칭되는 1914년 영국원정군은 아래와 같이 묘사된다. 첫째는 영국 역사상 가장 잘 훈련된 원정군이라는 통념이다. 이는 영국의 제1차 세계대전 공식 역사서의 책임 집필자인 제임스 에드워드 에드먼즈(James Edward Edmonds) 준장에서 비롯된 견해이다. 그동안 전쟁에 참가한 영국군 중에서 1914년의 영국원정군은 모든 면에서 비교가 안될 정도로 없을 정도로 가장 잘 훈련되고, 조직되고, 장비를 갖춘 군대였다(In every respect the Expedition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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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프랑스 여행 6] 니스(Nice) 근교 : 베르동 협곡(Gorge du Verdon) 여행(Tour) 2부

베르동 협곡 카스텔란(Castellane) 마을을 뒤로하고 베르동 협곡으로 향했다. 니스를 출발할 때 푸르렀던 하늘은 구름이 끼고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차량으로도 어려운 길을 자전거를 타고 온 사람들이 보였다. 나하고는 유전자가 다른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자전거를 타고 온 사람들 가는 도중 베르동(Verdon) 강이 그 자태를 잠깐잠깐 드러냈다. 베르동 협곡을 조망할 수 있는 뷰포인트는 여러 곳이 있다. 우리가 들른 장소는 D952 도로에 있는 Verdong Gorge Veiwpoint였다. 이곳은 생트 크루와(Sainte-Croix) 호수와 베르동 강을 한 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었다. 가까이서 볼 수는 없었지만 멀리서라도 절경을 한 번에 감상할 수 있었다. 베르동 강과 생트 크루와 호수 생트 크루와 호수 베르동 강 1 베르동 강 2 베르동 강 3 골짜기 사이로 흐르는 베르동 강은 터키 옥색을 띠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강이 시작되는 곳에 잉크를 풀어높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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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틀란트 해전(Battle of Jutland)/스카게라크 해전(Skagerrakschlacht)의 승자와 패자

서언 독일에서는 스카게라크(Skagerrak) 해전이라고 불리는 유틀란트(Jutland) 해전의 승리자는 누구일까? 유틀란트 해전 영국의 대함대(Grand Fleet)와 독일의 대해함대(Hochseeflotte)가 1916년 5월 31일에서 6월 1일 사이에 맞붙은 이 해전은 드레드노트(Dreadnought)급 전함 간의 해전으로는 최대 규모이지만 명확한 승부를 가리지는 못했다. 대체로 독일 함대가 열세의 전력으로 영국 함대에게 상대적으로 많은 손실을 가했기 때문에 전술적으로는 독일의 승리로, 반면 영국은 독일에 대한 해상 봉쇄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전략적 승리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 신문에 실려던 아래 인용구가 이런 견해를 대표한다. "독일 함대는 간수를 공격했지만, 아직도 감옥에 있을 뿐이다(The German Fleet has assaulted its jailor, but it is still in jail)." Tarrant, V.E., Jutla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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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기록(사료)으로 보는 고려 거란 전쟁 18] 귀주 대첩에 고려와 거란의 중장기병이 참전했는가?(feat. 김종현 부대)

들어가며 귀주 대첩을 다룬 일부 책과 웹상에서는 병마판관 김종현이 이끄는 1만명의 부대가 중장기병이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 김후, <활이 바꾼 세계사> (서울 : 가람기획, 2002), 147쪽 하지만 안타깝게도 <고려사>에서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찾을 수 없다. 김종현의 부대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도 알 수가 없다. 김종현의 부대가 중장기병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귀주 대첩에 고려와 거란의 중장기병이 참전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양측 군대에 중장기병이 편성되어 있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고려의 중장기병 고구려를 비롯한 삼국이 중장기병을 운용했음은 고구려 고분벽화와 유물로서 알 수 있다. 고려 시대에는 벽화와 갑옷과 같은 유물이 남아 있지는 않다. 하지만 고려 시대에도 중장기병이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기록은 있다. 고구려 중장기병 : 삼실총 벽화(왼쪽)과 약수리 고분벽화(오른쪽) 문종 때 이부상서를 거쳐 문하시중까지 역임한 왕총지(王寵之)는 문종 4년(1050)에 상소를 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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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기록(사료)으로 보는 고려 거란 전쟁 19] 제3차 전쟁의 전후 처리 : 현종의 책봉과 고려 거란 관계의 정상화

들어가며 고려는 귀주에서 거란군을 대파했으나, 양국 사이의 힘의 균형이 바뀐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거란은 강국이었기에 적대적 관계를 지속하는 것은 고려로서는 부담이었다. 거란으로서도 1010년부터 1019년간 고려와 전쟁 상태를 지속했으나 귀주에서 완패를 당함으로써 더 이상 군사적으로 고려를 굴복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양국 모두 외교 관계 정상화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고려사>에 따르면 거란이 먼저, <요사>에 따르면 고려가 먼저 사신을 보낸 것으로 나온다. <고려사>와 <요사> 모두 기록이 간소하기 때문에 어느 쪽이 맞는지는 알 수가 없다. 시간 순으로 양국 간의 교섭을 기술해 본다. 1019년의 교섭 귀주 대첩이 끝난 3개월 후인 1019년 5월 거란 중앙 정부가 아니라 동경에서 고려로 사신을 파견했다. 1019년 5월 12일(음) 무진일에 거란(契丹) 동경(東京)의 문적원소감(文籍院少監) 오장공(烏長公)이 와서 왕을 알현하였다. 戊辰 契丹東京文籍院少監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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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기록(사료)으로 보는 고려 거란 전쟁 20] 거란에 대한 사대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feat. 거란에게 농담하는 고려)

분명 고려는 전쟁에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거란에게 사대관계를 맺었다. 하지만 그 사대관계는 후일 고려-몽골, 조선-명/청 사이의 관계와는 차원이 달랐다. 후자의 관계가 철저한 신속 관계였다면, 고려와 거란 관계는 거란의 우위를 인정하는 가운데 고려의 자율성이 유지되는 것이었다. 문종 때 송과의 외교 관계 재개가 고려의 자율성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조선시대 사대관계의 상징 : 만동묘(왼쪽)과 삼전도비(오른쪽) 거란에게 농담하냐고 조롱하는 고려 고려 거란 관계는 현종말부터 덕종 재위(1031~1034) 사이 동안에 다시 긴장 관계로 접어들었다. 주된 원인은 거란이 압록강을 건너 설치한 내원성과 보주성이었다. 고려 입장에서는 서희와 소손녕의 담판으로 압록강 동쪽은 고려 영토로 공인받았는데, 거란이 이를 무시하고 성을 쌓은 것이기에 돌려받을 필요가 있었다. 1031년 6월 25일 거란 성종이 사망하자 고려는 10월에 조문 겸 흥종(興宗) 즉위 축하 사절을 보냈다. 단순히 조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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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 여행 15] 프랑스 여행 마지막 날, 장 조레스(Jean Jaurès) 카페, 빵집 '빵빵(Pain Pain)', 사랑해 벽(Le Mur des Je t'aime)

프랑스 여행 마지막 아침 2023년 3월 7일에 시작한 프랑스 1달 여행도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었다. 일어나 창문을 바라보니 저 멀리 에펠탑과 몽파르나스 타워가 보였다. 몽파르나스 타워(왼쪽)와 에펠탑(오른쪽) 에펠탑 풍경을 뒤로하고 아침 식사를 하러 갔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아침 식사였다. 아침 메뉴 1 아침 메뉴 2 에펠탑과 아침 식사 아침 식사를 마치고 언제나 그렇듯이 묵었던 호텔 방안 사진을 찍었다. 남는 것은 기록, 그중에서도 사진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에펠탑을 배경으로 호텔 방 열쇠 한 컷 거실과 침실 2박 3일의 짧은 기간이지만 정든 호텔 방과 작별 인사를 하고 체크아웃을 하러 내려갔다. 호텔에 맡길 캐리어가 4개였고 배낭이 1개였다. 잠시 보관을 맡길 캐리어 4개 한국을 떠날 때 캐리어가 4개였다. 그중에 2개는 네덜란드 사는 가족을 위한 선물과 생필품이었기 때문에 순수한 여행 캐리어는 2개인 셈이다. 툴루즈에 2개를 가져갔으나 보르도에서 3개가 되었고 파리에서 4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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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 여행 16] 샤를르 드골 공항(Aéroport de Paris-Charles de Gaulle) 제1터미널 그리고 귀국

<사랑해 벽>을 마지막으로 1달간의 네덜란드와 프랑스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지하철을 타고 호텔로 돌아와 짐을 찾고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까지의 택시 요금 캐리어가 4개여서 택시로 이동하기로 했다. 샤를르 드골 공항과 파리 시내를 운행하는 택시는 정찰제로 운영되고 있다. 한국으로 따지면 강북인 우안(Rive droite)은 56유로, 강남인 좌안(Rive gauche)은 65유로이다. 샤를르 드골 공항에서의 택시 요금 참고로 오를리 공항(Aéroport Paris-Orly)에서 택시를 탈 때도 파리 시내는 정액 요금이다. 좌안이 36유로, 우안이 44유로이다. 오를리 공항에서의 택시 요금 공항 가는 길 몇 번 프랑스 여행을 했지만 파리에서 공항으로 이동하여 출국을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주로 지방 도시에서 TGV를 타고 샤를르드골공항 TGV역으로 바로 와서 출국을 했기 때문이다. 택시를 타고 파리 교외로 나오니 파라 시내와는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서울 주변의 신도시와 비슷한 느낌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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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거정(徐居正)이 본 고려와 조선의 차이

조선 전기의 문장가이자 학자로 <동국통감(東國通鑑)>, <동문선(東文選)>, <경국대전(經國大典)>을 편찬한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은 고려와 조선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김이수(金頤叟)*가 서사가(徐四佳)**와 문답을 나누다가 물었다. "고려시대의 시문은 말이 아름답고 기운이 풍부하나 체재(體裁)의 격식이 원숙하지 않고, 우리 왕조(조선)의 저작은 말이 자잘하고 기운은 약하나 내용은 주도면밀하니, 어느 쪽이 낫겠습니까?" 金頤叟嘗語徐四佳曰: “高麗諸子詞麗氣富, 而體格生疎; 我朝著述辭纖氣弱, 而義理精到, 孰優?” 서사가가 말했다. "호걸스러운 장수와 사나운 병졸이 창을 뽑아들고 방패를 앞세운 채 인의(仁義)를 담론하는 것과 진부한 유생과 속된 선비가 예복을 차려입고 차분히 예법을 행하는 것 중에 어느 쪽을 취하겠소?" 四佳曰: “豪將悍卒, 抽戈擁盾, 談說仁義, 腐儒俗士, 冠冕章甫, 從容禮法, 君將何取?” 홍만종(洪萬宗, 1643-1725, < 소화시평(小華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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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여행 후기 1] 여행 중에 만난 고마운 사람들

한 달 동안 프랑스 여행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가끔 여행 후기를 보면 불친절한 사람을 만나거나 소매치기를 당하거나 심지어는 인종차별을 당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나 운이 좋게 소매치기를 당한 적도 없고 인종차별을 경험한 적도 없다. 만난 사람들도 모두 친철해서 편안하게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오히려 과분한 도움을 받은 경우가 많았다. 그 중에서도 기억나는 3명의 이야기를 적어보고자 한다. 1. 툴루즈(Toulouse)행 비행기에서 만난 사람 암스테르담에서 툴루즈행 비행기를 탔을 때 우리 좌석 12라인 짐칸에 다른 사람의 짐이 있었다. 부득이하게 우리 가방을 우리 좌석 뒤쪽인 15라인 짐칸에 놓을 수 밖에 없었다. 툴루즈행 비행기 비행기가 툴루즈 공항에 착륙을 하자 가방을 꺼내려 15라인으로 갔다. 가방을 꺼내서 오는데 우리 뒷자리인 13라인에 있는 사람이 "안녕하세요" 라고 우리에게 인사를 했다. 깜짝 놀라 쳐다보니 한 프랑스인 중년 남자가 미소를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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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가정식 레스토랑 <르블란서(Le Blanseu)>

프랑스 여행을 다녀온 지 1년이 되니 다시 프랑스 음식이 생각이 났다. 가보지 않은 프랑스 식당을 찾다가 종로구 익선동에 프랑스 가정식을 하는 <르블란서>를 발견하게 되었다. 기본 정보 <르블란서>는 종로구 익선동에 있다. 종로 3가역 6번 출구로 나와 조금만 걸어가면 된다. 주소 : 서울시 종로구 익선동 170-1 영업 시간 : 12:00 ~ 22:00 (일요일은 21:30) 쉬는 시간 : 16:00 ~ 17:00 마지막 주문 시간 : 21:00 (일요일은 20 :30) 휴무일 : 매주 월요일 위치 외부와 내부 외부는 한옥을 개량한 모습이었다. 건물과 간판만 보고는 아담한 식당 규모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안에 들어가니 예상보다 넓었다. <르블란서> 외관 한옥의 천장이 드러낸 내부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테이블은 주로 2인석과 4인석이 많았는데, 그 배치된 모습이 프랑스 식당을 연상시켰다. 식당 내부 음식 양파 수프, 라따뚜이, 블루치즈 소스 홍합찜을 주문했다. 여기에 적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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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여행 후기 2] 파리 레스토랑 : 부이용(부용) 레퓌블리크(Bouillon République)

부이용(Bouillon)이란? 부이용은 프랑스 전통 요리를 상대적으로 저가에 제공하는 식당이다. 코스 요리를 30~40유로로 즐길 수 있다. 대신 식당 좌석은 매우 좁은 편이다. 원래 사전적으로 부이용은 고기와 생선, 야채를 넣은 국이나 육수를 의미한다. 부이용(출처 : 위키피디아) 국과 육수를 뜻하는 부이용은 19세기 중반에 레스토랑 이름이 되었다. 아돌프 밥티스트 뒤발(Adolphe-Baptiste Duval, 1811-1870)이 1854년 식당을 열면서 그 이름을 부이용으로 했다. 서민을 대상으로 고기와 부이용 수프를 제공하는 간단한 식당이었다. 그 이후로 부이용이란 이름의 식당이 많이 등장했다. 대표적인 것이 1896년 개업한 부이용 샤르티에(Bouillon Chartier)이다. 지금은 고기와 부이용이 아니라 다채로운 메뉴를 제공하고 있다. 현재 파리에 있는 대표적 부이용 식당은 아래와 같다. 부이용(Bouillon) 체인 - 부이용 피갈(Bouillon Piga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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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퀸스 갬빗(Queen's Gambit)> 짧은 감상

언제가 톨스토이(Tolstoy)가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는 선(善)을 추구했기 때문에 셰익스피어(Shakespeare) 보다 더 위대한 작가라고 주장했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퀸스 갬빗은 톨스토이가 말한 선을 추구하는 드라마이다. 주인공을 비롯한 주변 인물들은 선하다. 주인공과 최종 대결을 벌이는 소련 체스 챔피언 또한 호탕한 사람으로 묘사된다. 선함과 거리가 먼 사람은 주인공의 친부로 추정되는 인물과 주인공의 양부이다. 하지만 이들 역시 악(惡)하기 보다는 찌질한 편에 가깝다. 통상 드라마나 영화는 선과 악을 대결시켜 극적 긴장감을 높이고 재미를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퀸스 갬빗은 악 없이 선만으로도 충분히 긴장감과 재미를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준다. 톨스토이가 살아 있다면 이 드라마를 좋아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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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평] 넷플릭스, <뮌헨 - 전쟁의 문턱에서(Munich - The Edge of War)> : 유화 정책(Appeasment)에 대한 수정주의적 변호

제2차 세계대전 초기에 영국 총리직에서 불명예스럽게 물러난 네빌 체임벌린(Neville Chamberlain, 1869~1940)은 죽기 며칠 전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나는 개인적인 평판에 대해서는 개의치 않는다. 뮌헨이 없었다면 1938년에 전쟁에서 지고 제국은 파멸했을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내가 받은 수많은 서한들이 의견 일치를 보고 있다. … 생존 가능성이 있다는 반대 견해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난 2년간의 진실한 내막이 출간되지 않더라도 나는 전혀 역사가의 판결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So far as my personal reputation is concerned, I am not in the least disturbed about it. The letters which I am still receiving in such vast quantities so unanimously dwell on the same point, namely without Munich 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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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여행 후기 3] 파리 레스토랑 : 르 플로랑탕(Le Florentin)

소개 르 플로랑탕은 파리 1구에 위치에 있는 식당이다. 식당 이름을 번역하자면 <피렌체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콩코드 광장(Place de la Concorde)에서 북쪽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쉽게 찾을 수 있다. 관광지가 몰려 있는 곳에 있는 식당이지만 구글 평점은 좋은 편이다. 2024년 4월 14일 기준 4.5점의 평점을 받았다. 르 플로렁탕(Le Florentin) 위치 관광지에 있는 식당답게 홈페이지는 프랑스어, 영어 등 16개 국어로 되어 있다. 하지만 한국어도 가능하지만, 모든 내용이 한국어로 되어 있지는 않다. https://restaurantleflorentin.fr/ko RESTAURANT LE FLORENTIN 소개 Le Florentin, comme son nom l’indique vous attend dans la rue Saint-Florentin, dans le 1er arrondissement de Paris. Sous des lumières ta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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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여행 후기 4] 파리 레스토랑(식당) : 라 프티트 페리구르딘(La Petite Périgourdine)

위치와 소개 라 프티트 페리구르딘(la Petite Périgourdine)은 우리가 묵었던 호텔 레지던스 앙리 4세(Hôtel Résidence Henri IV) 부근에 있는 브라스리(Brasserie)이다. 브라스리는 원래 양조장을 의미한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주로 캐주얼한 식당을 의미한다. 라 프티트 페리구르딘 본점 참고로 프랑스 식당은 레스토랑(Restaurant) - 비스트로(Bistro) - 브라스리(Brasserie) - 카페(Café)의 4등급으로 대략적으로 나눌 수 있다. 레스토랑은 주로 정찬 요리를 하는 곳이고, 쉬는 날도 있고 브레이크 타임도 있다. 복장을 제대로 갖춰야 입장이 가능한 곳도 있다. 비스트로는 약간은 캐주얼한 레스토랑이라고 할 수 있다. 브라스리는 쉬는 시간 없이 매일 영업을 하는 식당이다. 카페는 주로 커피와 음료를 팔지만 간단한 음식을 팔기도 한다. 페리구르딘은 보르도 동쪽에 있는 페리고르(Perigord)에서 나온 말로, 페르고르 출신의, 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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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기록(사료)으로 보는 고려 군사 제도 6] 고려군의 전시 편제(1) : 3군(三軍)과 5군(五軍)

규정 상의 전시 체제 : 5군 고려 중앙군 2군 6위는 평시 편제였다. <고려사(高麗史)> '병지(兵志)'에 규정된 고려군의 전시 편제는 전군(前軍)·후군(後軍)·좌군(左軍)·우군(右軍)·중군(中軍)으로 구성된 5군(五軍)이었다. 5군(五軍). 중군(中軍)에는 병진도지유(兵陣都指諭)와 도장교(都將校), 5병도지유(五兵都指諭)와 장교도업사(將校都業師), 신기(神騎) 도령(都領)과 지유(指諭), 좌·우경궁(左·右梗弓) 도령과 지유, 좌·우정노(左·右精弩) 도령과 지유를 두었고, 신보(神步)·석투(石投)·대각(大角)·철수(鐵水)·발화(發火)·도탕(跳盪)·강노(剛弩)에도 또한 각각 도령과 지유를 두었다.전군(前軍)·후군(後軍)·좌군(左軍)·우군(右軍)에도 또한 각각 병진도지유, 신기·신보·정노 도령과 지유를 두었다. 五軍 中軍, 置兵陣都指諭, 及都將校, 五兵都指諭, 及將校都業師, 神騎都領, 及指諭, 左右梗弓都領, 及指諭, 左右精弩都領, 及指諭, 神步·石投·大角·鐵水·發火·跳盪·剛弩, 亦各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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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기록(사료)으로 보는 고려 거란 전쟁 14] 제3차 전쟁 시 거란군의 편제 및 지휘관(소배압, 야율팔가, 소굴렬, 고청명)

거란 군사제도와 총병력 거란 군사제도 거란군은 황제 친위부대인 어장친군(禦帳親軍)과 호위부대인 궁기위군(宮衛騎軍)이 핵심을 이루고 있었다. 여기에 친왕과 대신이 거느린 대수령부족군(大首領部族軍), 부족 단위의 부대로 보이는 중부족군(衆部族軍), 지방군인 오경향정(五京鄉丁), 마지막으로 거란에 신속한 나라들로 이루어진 속국군(屬國軍)이 존재했다. 거란군의 평시 편제 어장친군은 가장 정예 부대였고 피실군(皮室軍)과 속산군(屬珊軍)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금강(金剛)을 의미하는 피실군은 황제 직속 부대였고 속산군은 황후의 직속 부대였다. 피실군은 거란인으로 구성된 반면, 속산군은 한인(漢人)과 번인(蕃人)에서 선발한 군대였다. 이렇게 황제와 황후의 직속 부대가 별도로 있는 이유는 거란이 황제 부족인 야율(耶律)씨와 황후 부족인 술룰(述律)*씨의 연합 국가였기 때문이다. * 나중에는 소(蕭)씨로 불린다. 피실군은 남피실군, 북피실군, 좌피실군, 우피실군, 황(黄)피실군으로 나누어졌다. 제2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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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기록(사료)으로 보는 고려 거란 전쟁 15] 제3차 전쟁 시 고려군 편제 및 지휘관(강감찬, 강민첨, 김종현, 박종검, 유참, 조원)

고려군 편제 제3차 고려 거란 전쟁에서 고려군은 가장 큰 승리를 거두었으나 방어군이 어떻게 편제되었는지에 대한 자료는 부실하다. 상원수 강감찬, 부원수 강민첨이 20.8만명을 거누리고 영주(寧州 - 평안남도 안주)에 주둔했다는 기록이 전부이다. 이는 제2차 전쟁 시 행영도통사 강조 밑에 중군, 좌군, 우군 지휘관이 기재된 것과는 대비된다. 당시 강감찬(姜邯贊)은 서북면행영도통사(西北面行營都統使)가 되었는데, 왕은 그를 상원수(上元帥)로 임명하였고 대장군 강민첨(姜民瞻)을 부원수로 하였으며, 내사사인(內史舍人) 박종검(朴從儉)과 병부낭중(兵部郞中) 유참(柳參)을 판관(判官)으로 삼아 군사 208,300명을 거느리고 영주(寧州 - 평안남도 안주)에 주둔하게 하였다. 時邯贊爲西北面行營都統使, 王仍命爲上元帥, 大將軍姜民瞻副之, 內史舍人朴從儉·兵部郞中柳參爲判官, 帥兵二十萬八千三百, 屯寧州. <고려사> 권94, 강감찬 열전 야전군을 3군으로 편성하는 고려의 관행을 보면 강감찬이 지휘하는 방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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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 여행 14] 생트 샤펠(Sainte-Chapelle)

생트 샤펠(Sainte-Chapelle) 소개 생트 샤펠(Sainte-Chapelle)은 직역하자면 '성스러운 예배당'이다. 루이 9세(Louis IX, 1214~1270)가 1242~1248년에 걸쳐 만든 왕실 전용 예배당이다. 루이 9세는 중세의 가장 완벽한 기독교 군주로 칭송되는 국왕이며, 십자군 전쟁에 참여했다가 포로가 되기도 했다. 1297년 가톨릭 교회로부터 시성되었다. 이로 인해 성왕(聖王) 루이(Louis)로도 불린다. 루이 9세 - 출처 : 위키피디아 생트 샤펠은 루이 9세가 모은 예수의 고난과 관련된 유물을 보관하기 위해 만들어진 예배당이다. 그 유물에는 가시 면류관(Sainte Couronne), 예수가 지고 간 십자가 잔여물 등이 있는데 생트 샤펠에 보관된 유물 중 가장 유명한 것은 가시 면류관이었다. 가시면류관(왼쪽)과 가시면류관을 봉헌하는 루이 9세(오른쪽) - 출처 : 위키피디아 가시 면류관은 예루살렘에 있었으나 언제인가 동로마 제국의 수도인, 지금의 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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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기록(사료)으로 보는 고려 거란 전쟁 16] 제3차 고려 거란 전쟁 : 삼교천 전투, 자주 내구산 전투, 마탄 전투(강민첨, 조원, 김종현)

삼교천 전투(음력 1018년 12월 10일) 소배압이 이끄는 거란군은 압록강을 도하하였고 흥화진 인근에서 첫 전투가 벌어졌다. 소배압의 의도는 흥화진을 우회하는 것이었지만 흥화진을 감싸고도는 삼교천에서 고려군이 기습을 했다. 1018년 12월 10일(음) 무술일에 거란(契丹)의 소손녕(蕭遜寧)이 군대 10만을 이끌고 침입하자, 왕이 평장사(平章事) 강감찬(姜邯贊)을 상원수(上元帥)로 임명하고 대장군(大將軍) 강민첨(姜民瞻)이 보좌하게 하였다. 상원수의 군대가 흥화진(興化鎭)에 이르러 〈거란군을〉 크게 무찔렀다. 戊戌 契丹蕭遜寧以兵十萬來侵, 王以平章事姜邯贊爲上元帥, 大將軍姜民瞻副之. 帥兵至興化鎭, 大敗之 <고려사> 권4, 현종 9년 12월 무술 <고려사> 세가에는 무찔렀다는 기록만 나오지만, <강감찬 열전>에는 한 겨울에 수공을 펼쳤다는 믿기 힘든 드라마 같은 내용이 나온다. 흥화진(興化鎭)에 이르러 기병 12,000명을 뽑아 산골짜기에 매복시킨 후에, 큰 동아줄을 소가죽에 꿰어서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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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기록(사료)으로 보는 고려 거란 전쟁 17] 제3차 고려 거란 전쟁의 대회전, 귀주 대첩(강감찬, 강민첨, 김종현, 소배압, 야율팔가)

연주, 위주 전투 1019년 1월 3일 개경을 앞에 두고 거란군은 북쪽으로 철군을 시작했다. 철군 경로는 정확하게 기록에 남아 있지 않았지만 진군한 길을 다시 거슬러 올라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후퇴하는 거란군을 강감찬이 이끄는 고려군이 기다리고 있었고, 개경을 구원하러 온 김종현의 고려군은 다시 방향을 북쪽으로 틀어 거란군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연주(평안남도 개천군)와 위주(평안북도 영변)에서 고려군이 거란군을 포착하여 기습 공격을 가했다. 1019년 1월 23일(음) 신사일에 거란(契丹)이 군사를 되돌려 연주(漣州-평안남도 개천)·위주(渭州- 평안북도 영변)에 이르니, 강감찬(姜邯贊) 등이 급습하여 500여 급의 머리를 베었다. 辛巳. 契丹回兵, 至漣渭州, 邯贊等掩擊, 斬五百餘級 <고려사절요> 권3, 현종 10년 1월 신사 전과는 500명 참살이지만 불과하지만 드디어 고려군은 철수하는 거란군 이동 경로를 파악하게 되었다. 최후의 결전, 귀주 대회전의 포진 귀주성 동쪽으로는 동문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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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기록(사료)으로 보는 고려 군사 제도 4] <고려도경(高麗圖經)>에 나오는 고려 중앙군 : 6군 편제

들어가며 <고려사(高麗史)> 병지(兵志)에 따르면 고려 중앙군은 응양군(鷹揚軍), 용호군(龍虎軍), 좌우위(左右衛), 신호위(神虎衛), 흥위위(興威衛), 금오위(金吾衛), 천우위(千牛衛), 감문위(監門衛)의 2군(軍) 6위(衛) 체제였다. 하지만 인종 1년(1123)에 고려를 방문한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 1091∼1153)은 자신의 저서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서 고려군 중앙군을 다른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다. <선화봉사고려도경>(왼쪽)과 <고려사 병지>, <고려도경> 번역본(오른쪽) 6군 체제 : 용호군, 신호군, 흥위군, 금오군, 천우군, 공학군 서긍은 고려 중앙군을 용호군(龍虎軍), 신호군(神虎軍), 흥위군(興威軍), 금오군(金吾軍), 천우군(千牛軍), 공학군(控鶴軍)의 6군 체제로 보고 있다. 고려 제도에서는 백성들은 16세 이상이면 군역(軍役)에 충당되는데, 6군(六軍)의 상위(上衞)는 항상 관부(官府)에 머무르며 나머지 군인들은 모두 토지를 지급받고 자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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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기록(사료)으로 보는 고려 거란 전쟁 13] 최후의 결전, 제3차 고려 거란 전쟁 준비

고려 거란의 사이의 최후의 결전, 제3차 전쟁이 일어나는 1018년이 밝아왔다. 치열한 외교 교섭과 강동 6주를 둘러싼 무력 충돌이 일어나는 이전과는 다르게 1018년은 10월까지는 조용한 한 해였다. 고려 정부는 이 조용한 기간을 이용하여 전쟁으로 피해를 본 북계 지방을 복구하고 군사들에 대한 포상을 실시하여 사기를 진작하고자 했다. 거란도 반란을 일으킨 속국을 토벌하고 기근을 든 지역을 구휼하는 등 내부 정비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고려의 전쟁 준비 북계에 대한 구휼 1014년 10월부터 1017년 8월까지 강동 6주 지역은 지속적인 거란 공격을 받았다. 이로 인해 땅은 황폐해져 주민들이 많은 고통을 받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최전선인 흥화진이 가장 피해를 많이 입었던 것 같다. 이에 고려 정부는 북계 지역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했다. 1018년 1월 미상(음) 〈현종(顯宗)〉 9년(1018) 정월, 흥화진(興化鎭)이 최근 전쟁 때문에 황폐해져 민(民)이 많이 추위와 굶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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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 여행 13] 팔레 루아얄(Palais-Royal)과 라파예트 백화점(Galeries Lafayett)

팔레 루아얄(Palais-Royal) 간략한 소개 팔레 루야얄은 루이 13세(Louis XIII)의 재상이었던 리슐리외(Richelieu, 1585~1642) 추기경이 살던 저택이었다. 리슐리외 추기경이 살던 저택이라 당시에는 '추기경 궁전(Palais-Cardinal)'이라고 불렸다. 리슐리외 추기경 초상화(출처 : 위키피디아) 리슐리외 추기경이 사망한 후에 루이 13에게 기증되었으며, 루이 14세(Louis XIV)가 어렸을 때 모후인 안느 도트리슈(Anne d'Autriche)가 여기에서 잠깐 살아 이름이 팔레 루아얄로 바뀌게 되었다. 그 이후에는 부르봉(Bourbon) 왕가의 분파인 오를레앙(Orléans) 가문이 팔레-루아얄을 소유하게 되었다. 왕족임에도 프랑스 혁명을 지지하여 평등공 필리프(Philippe Égalité)으로 불린 루이-필리프(Louis-Philippe, 1747~1793) 오를레앙 공작이 여기를 대대적으로 개조했다. 정원을 둘러싸고 건물을 지어 상인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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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기록(사료)으로 보는 고려 군사 제도 5] 보승(保勝)과 정용(精勇)

들어가며 고려 중앙군과 주진군, 주현군을 구성하는 주요 부대는 보승(保勝)과 정용(精勇)이다. 중앙군에는 보승 22령(領), 정용 16령(領)이 편성되어 있다. 북계와 동계 주진군에는 정용 696대(隊)가, 경기와 5도에도 보승군 8,601명, 정용군 19,754명이 편성되어 있다. 보승 및 정용 배치 현황 묘지명 등을 살펴 보면 고려 2군 6위 소속 고려 무장들은 자신의 직위 앞에 보승과 정용 등을 붙여 소속감을 드러냈다. 지정(至正) 27년 정미년(1367) 3월 일에 기록합니다. 시주는 봉선대부 전(前)흥위위 정용호군(奉善大夫 前興威衛 精勇 護軍) 박광미(朴光美), 취화군부인(吹火郡夫人) 임씨(林氏)입니다. 至正二十七年丁未三月日, 誌. 施主奉善大夫前興威衛精勇護軍朴光美, 吹火郡夫人林氏. 홍지금니 금강반야바라밀다경 사경 발문(紅紙金泥 金剛般若波羅蜜多經 寫經 跋文) 대안(大安) 3년 신미(1211)에 강종이 즉위하자[承寶圖] 또 조서를 내려 〈공을〉 전라주도 안찰사(全羅州道 按察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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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기록(사료)으로 보는 고려 거란 전쟁 15] 고려 중앙군(2군 6위)의 편제

들어가며 지난 번 글에서는 고려군의 전체적인 모습과 병력을 살펴 보았다. 이번 글에서는 그 중에서도 2군 6위로 대표되는 고려 중앙군에 대해서 살펴 보겠다. https://blog.naver.com/french_75mm/223314323702 [역사 기록(사료)으로 보는 고려 거란 전쟁 9] <고려사(高麗史)>와 <고려도경(高麗圖經)>에 나오는 고려 군사력(병력 규모) 들어가며 고려는 한반도의 전근대 국가 규모에 비춰 경이로운 군대 동원력을 보여주었다. 태조 왕건이 일리... blog.naver.com 2군 6위의 구성과 병력 <고려사(高麗史)> 병지(兵志)에 따르면 고려 중앙군의 편제는 2군 6위였다. 2군은 응양군(鷹揚軍), 용호군(龍虎軍)으로 구성되어 있고, 6위는 좌우위(左右衛), 신호위(神虎衛), 흥위위(興威衛), 금오위(金吾衛), 천우위(千牛衛), 감문위(監門衛)로 구성되어 있다. 제도상으로 보면 고려의 2군 6위는 한(漢)나라의 남북군*의 2군 제도와 당(唐)나라의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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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기록(사료)으로 보는 고려 거란 전쟁 11] '현종의 친조'를 둘러싼 외교 교섭

1011년(현종2년) 1월 29일(음) 거란군이 압록강을 넘어 철수하면서 제2차 고려 거란 전쟁은 막을 내렸다. 표면상으로는 '현종의 친조'를 약속으로 거란군이 철수한 것이기에 친조 문제가 양국 간의 현안으로 떠올랐다. 1012년 : 거란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고려의 사신 파견 개경으로 환도하고, 한편으로는 어느 정도 전후 처리가 되자 현종은 거란에 사신을 보냈다. 사유는 철군에 대한 감사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심정적으로는 당연히 사신을 보내고 싶지 않았겠지만 국력의 격차 때문에 현종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사신을 보낼 때 점을 친 것을 보면 고려 정부가 얼마나 고심했는지를 알 수 있다. 1011년 4월 22일(음) 을축일에 공부낭중(工部郞中) 왕첨(王瞻)을 거란(契丹)에 보내 군대를 돌린 것을 사례하였다. 이에 앞서 왕이 거란에 사신을 보내려고 태사(太史)에 명하여 점을 쳤는데, ‘건지고(乾之蠱)’의 괘가 나오자 〈태사가〉 아뢰기를, “건은 임금이요 아비이므로 건이 튼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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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기록(사료)으로 보는 고려 거란 전쟁 12] 강동 6주를 둘러싼 공방전 : 거란의 보주 점령

강동 6주를 둘러싸고 거란은 화전양면전략(和戰兩面戰略)을 구사했다. 사신을 보내 강동 6주 반환을 요구하는 한편 군대를 동원해 강동 6주 점령을 시도했다. 1013년 : 거란의 압록강 도하 시도 1013년 3월 드디어 거란 성종은 사신을 보내 강동 6주 반환을 요구했다. <고려사>에는 야율행평(耶律行平)으로 기록된 야율자충(耶律資忠)이 사신으로 왔다. 야율자충(야율행평)은 이송무(李松茂)와 함께 번갈아 고려에 와 강동 6주를 요구했다. 1013년 3월 17일(음) 무인일에 거란(契丹)에서 사신 좌감문위 대장군(左監門衛 大將軍) 야율행평(耶律行平 - 야율자충)이 와서 흥화(興化) 등 6개 성을 빼앗은 것을 질책하였다. 戊申 契丹使左監門衛大將軍耶律行平來, 責取興化等六城. <고려사> 권4, 현종 4년 3월 무인 고려 반응은 기록되지 않았지만 당연히 거부였다. 이에 거란은 여진과 압록강을 건너 교두보를 설치하고자 군사 행동을 시도했다. 고려군은 거란의 도하를 저지하는데 성공했다. 1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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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기록(사료)으로 보는 고려 거란 전쟁 13] 강동 6주에 대한 거란의 파상 공세(제3차 전쟁의 전초전)

보주성 점령에 성공한 거란은 보주성을 거점으로 강동 6주에 대한 파상 공세를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공세 중간중간에 사신을 파견하여 강동 6주 반환을 요구했다. 1014년 10월 통주 전투 : 장군 정신용(鄭神勇)의 활약 거란군은 1014년 10월 통주를 공격했다. 아마도 거란군은 흥화진을 무시하고 바로 통주를 포위 공격한 것으로 보인다. 장군 정신용과 별장 주연은 흥화진 주둔 고려군을 이끌고 출격하여 통주성을 포위한 거란군 후방을 공격하여 격파했다. 1014년 10월 6일(음) 겨울 10월 기미일에 거란(契丹)이 국구(國舅)인 상은(詳穩) 소적렬(蕭敵烈)을 보내 통주(通州)를 침략하였다. 흥화진(興化鎭) 장군 정신용(鄭神勇)과 별장(別將) 주연(周演)이 공격하여 패퇴시켰는데, 7백 여 급의 목을 베었고 강에 빠져 죽은 자도 매우 많았다. 冬十月 己未 契丹遣國舅詳穩蕭敵烈來侵通州. 興化鎭將軍鄭神勇, 別將周演擊敗之, 斬七百餘級, 溺江死者甚衆. <고려사> 권4, 현종 5년 10월 기미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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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기록(사료)으로 보는 고려 거란 전쟁 14] 무신정변의 선구, 김훈과 최질의 난

강동 6주를 둘러싸고 거란과 일진일퇴 공방전을 벌이는 동안 고려 내부에서는 무신정변(1170)의 선구격인 김훈과 최질의 난이 일어났다. 1014년 11월 1일(음) 11월 계미일에 초하루 상장군(上將軍) 김훈(金訓)과 최질(崔質) 등이 여러 위군(衛軍)을 거느리고 난을 일으켜 중추원사(中樞院使) 장연우(張延祐)와 일직(日直) 황보유의(皇甫兪義)를 유배보냈다. 十一月 癸未朔 上將軍金訓·崔質等率諸衛軍作亂, 流中樞院使張延祐, 日直皇甫兪義. <고려사> 권4, 현종 5년 11월 계미 정변을 주도한 김훈과 최질은 제2차 고려 거란 전쟁에서 공을 세운 사람들이었다. 장군(정4품)이었던 김훈은 통주 삼수채에서 승리한 거란군의 추격을 완항령(緩項嶺)에서 저지했고 중랑장(정5품)이었던 최질은 통주 방어에 공을 세웠다. 이 공로로 김훈과 최질은 각각 무반의 최고직인 상장군(정3품)으로 승진했다. 상장군은 2군 6위 사령관이었기 때문에 아마도 김훈과 최질은 6위 중 각각 한 위를 지휘하고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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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 여행 12] 보주 광장(Place des Vosges), 빅토로 위고 저택(Maison de Victor Hugo), 쉴리 저택(Hôtel de Sully)

보주 광장(Place des Vosges) 보주 광장은 마레 지구(Quartier du Malais)에 있는 고풍스러운 저택으로 둘러싸인 광장이다. 행정 구역 상으로는 파리 3구와 4구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보주 광장은 근대 초기에 파리에 왕의 동상을 세울 수 있게 조성된 5개 왕의 광장(Place Royale) 중의 하나이다. 보주 광장은 루이 13세(Louis XIII), 도핀 광장(Place Daupine)은 앙리 4세 동상, 빅토와 광장(Place des Victoires)에는 루이 15세 동상이 있다. 방돔 광장(Place Vendôme)에는 루이 14세(Louis XIV) 동상이, 콩코드 광장(Place de la Concorde)에는 루이 15세(Louis XV) 동상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졌다. 보주 광장은 앙리 4세(Henri IV)에 의해 1605년에 건설이 시작되었으나, 앙리 4세가 암살당하고 2년 후인 루이 13세 시절인 1612년에 완공되었다. 그때는 광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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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기록(사료)으로 보는 고려 거란 전쟁 9] <고려사(高麗史)>와 <고려도경(高麗圖經)>에 나오는 고려의 군사력(병력 규모)

들어가며 고려는 한반도의 전근대 국가 규모에 비춰 경이로운 군대 동원력을 보여주었다. 태조 왕건이 일리천(一利川) 전투에서 동원한 병력은 선봉과 본대를 합쳐서 97,500명이었다. 제2차 고려 거란 전쟁에서는 30만명, 제3차 고려 거란 전쟁에서는 20만명, 여진 정벌은 17만명, 공민왕 때 홍건적과의 전쟁에서도 20만명을 동원했다. 고려 인구 추정과 당시의 생산력으로 비춰볼 때 위에 언급된 병력은 과장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적어도 고려인 스스로와 송나라 사람이 남긴 기록으로는 위의 병력 동원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 대표적으로 육군사관학교 정경현 교수는 '태조 태조의 일리천 전역' <한국사연구> 68(1990.3)에서 태조의 중앙군을 최대 2만명으로 보고 있다. 고려 군대와 관련된 대표 기록은 <고려사> 병지(兵志)이다. 중앙군인 2군 6위, 북계(北界)와 동계(東界)의 주진군(州鎭軍), 경기(京畿)와 5개도의 주현군(州縣軍) 병력과 부대 편성이 나열되어 있다.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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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기록(사료)으로 보는 고려 거란 전쟁 10] 고려 광군(光軍)

광군의 창설 목적과 기원 2군 6위, 주진군, 별무반(別武班) 등 고려 군사 조직 중에서 광군은 가장 자료가 부족하고 이 때문에 가장 알기 힘든 조직이다. 잘 알다시피 광군은 거란의 침공에 대비하기 위해 고려 3대 국왕 정종(定宗)이 만들었다. 정종(定宗) 2년(947)에 거란(契丹)이 장차 침입하려고 하므로 군사 300,000을 선발하여 광군(光軍)이라 부르고 광군사(光軍司)를 설치하였다. 定宗二年 以契丹將侵, 選軍三十萬, 號光軍, 置光軍司. <고려사> 권81, 병1(兵一) <고려사> "최언위(崔彦撝)" 열전에는 보다 자세한 정황이 전한다. 최언위의 아들인 최광윤이 후진으로 유학을 갔다가 거란에 사로잡혀 관직 생활을 하다가 거란의 고려 침공 의도를 알고 이를 고려 정부에 알렸다. 이 정보를 들은 고려 정부가 대응 방안으로 광군 30만명을 조직했다. 최광윤(崔光胤)은 일찍이 빈공진사(賓貢進士)의 자격으로 진(晉 - 5대 10국의 후진)에 가서 유학하였다. 거란에게 사로잡혔는데, 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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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 여행 10] 루이비통 재단(Fondation Louis Vuitton)

간략한 소개 루이비통 재단은 세계적인 명품 그룹 LVMH에서 예술과 문화를 후원하기 위해 설립한 재단이고, 현재 불로뉴 숲에 있는 재단 건물은 2014년 10월 20일에 개관했다. 이때 개관식에는 당시 프랑스 대통령인 프랑수아 올랑드(François Hollande)도 참석했다고 한다. 루이비통재단 전경 1 루이비통재단 전경 2 2001년에 LVMH 대표였던 베르나르 아르노(Bernard Arnault)가 캐나다 출신 미국 건축가인 프랭크 게리(Frank Gehry)에게 건축을 의뢰하여 시작되었다. 비용은 1억 유로였고 당초 계획으로는 2010년 초에 개관이 목표였다. 숲 보존과 공공 통행권 등의 문제로 야기된 소송으로 시간이 걸려서 2014년에 개관을 했다. 비용도 1.4억 유로가 들었다고 한다. 건축 양식은 1980년에 등장한 포스트 모던 건축 양식인 해체주의(Deconstructivism)에 기반하고 있다고 한다. 파리 시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물 모양과는 매우 이질적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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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평] 점점 실망스러워지는 KBS 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feat. 강감찬의 원맨쇼)

KBS가 야심 차게 방영을 하고 있는 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 이 반환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꽤 오랜만에 만들어지는 정통 사극이고 배경 또한 그동안 관심을 받지 못했던 시대라 많은 관심과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점점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개인적인 관점에서 볼 때 실망과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고증 부족이나 전쟁 장면 묘사가 아쉽지는 않다. 270억원이라는 제작비를 고려할 때 고증이나 전쟁 장면을 수준 높게 구현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이 점을 문제 삼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예산을 고려할 때 후한 평가를 내리고 싶다. 문제는 등장 인물의 캐릭터가 무너지고 스토리 전개가 이상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역사 드라마라면 다양한 인물들을 등장시키고, 캐릭터를 잘 표현해야 된다. 또한 이들의 행적이 때로는 독자적으로 때로는 중첩되면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야 한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이 점에서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실망감을 주고 있다. 1. 지나친 강감찬의 원맨쇼 제작진은 고려 거란 전쟁을 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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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기록(사료)으로 보는 고려 거란 전쟁 7] 현종의 개경 환도와 김은부 딸과의 결혼(원성왕후)

현종의 개경 환도 경로 거란군이 압록강 너머로 철군한 사실이 알려지자 현종은 1011년 2월 3일(음) 나주를 떠나 개경으로 향했다. 1011년 2월 3일(음) 2월 정미 〈왕이〉 전주(全州)를 출발하여 여양현(礪陽縣 - 충청남도 홍성)에 묵었다. 二月 丁未 發全州, 次礪陽縣. <고려사> 권4, 현종 2년 2월 정미 다음 날인 2월 4일에는 자신을 환대했던 김은부가 있는 공주로 향했다. 여기서 김은부의 큰 딸을 원성왕후(?~1028)로 맞아들였다. 원성왕후는 2명의 아들을 낳았고, 각각 제9대 덕종, 제10대 정종이 되었다. 정확한 시기는 모르지만 현종은 원성왕후의 두 동생도 왕후로 맞아들였다. 각각 원혜왕후(?~1022)와 원평왕후(?~1028)였고, 원혜왕후는 고려의 전성기를 이끈 제12대 국왕 문종을 낳았다. 공주절도사 김은부(왼쪽)와 원성왕후(오른쪽) 1011년 2월 4일(음) 무신일에 〈왕이〉 공주(公州)에 도착하여 6일 동안 머물면서 김은부(金殷傅)의 큰 딸을 왕비로 맞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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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 여행 11] 라데팡스(La Défense), 파리의 마천루

간략한 소개 라데팡스(La Défense)는 파리 외곽 센(Seine) 강변에 조성된 비즈니스 구역이다. 행정 구역 상으로는 파리에 속하지 않고, 오드 센(Hauts-de-Seine) 데파르트망(département)에 속한다. 정부 기관이 입주해 있는 신 개선문(Grande Arche de la Défense)을 포함해 여러 세계적 기업들 본사가 자리 잡고 있다. 보험사인 악사(AXA), 금융 그룹인 소시에테 제네날(Société Générale), 에너지 기업인 토탈(TOTAL), 원자력 기업인 아레바(AREVA)가 대표적이다. 라데팡스 전경 이로 인해 몽파르나스 타워를 제외하면 19세기 풍의 낮은 건물들이 가득 찬 파리 시내와는 달리 라데팡스에서는 높은 빌딩이 하늘로 솟아오르고 있다. 라데팡스 위치 La Défense에서 La는 정관사이고 Défense는 방어, 국방을 의미한다. 1870~1871년 보불전쟁 때 파리를 방어한 병사들의 영광을 기리는 '파리 방어(La Défe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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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기록(사료)으로 보는 고려 거란 전쟁 8] 제2차 전쟁의 전후 처리 : 포상과 처벌

현종은 개경 환도 이후 전후 처리에 나섰다. 양규와 김숙흥 등 전쟁 영웅에 대한 포상을 하는 한 편, 강조 일당을 축출하여 권력 기반을 다지는데 주력했다. 양규와 김숙흥에 대한 포상 : 삼한후벽상공신(三韓後壁上功臣) 제2차 고려 거란 전쟁에서 가장 수훈자는 양규와 김숙흥이었다. 양규와 김숙흥은 강조의 주력군이 붕괴된 이후 남아 있는 얼마 안 되는 군사로 거란군에 대대적인 반격을 주도했다. 양규는 1,700명의 군사로 6.000군이 거란군이 지키는 곽주성을 탈환하여 거란군을 고립시켰다. 이후에 양규는 김숙흥과 더불어 청천강 이북을 휩쓸고 다니며 거란군을 7차례나 격파하여 16,000명을 죽이고 3만명의 고려 포로를 구출했다. 삼한후벽상공신 : 양규(왼쪽)과 김숙흥(오른쪽) 현종은 이 공적을 기려 공부낭중(정5품)인 양규를 공부상서(정3품)로, 별장(정7품)인 김숙흥을 장군(정4품)으로 사후에 직급을 올려주었다. 전공으로 〈양규에게〉 공부상서(工部尙書)를 추증하였고, 양규(楊規)의 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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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기록(사료)으로 보는 고려 거란 전쟁 5] 고난스러운 현종의 몽진과 강화 협상(feat. 지채문과 하공진)

1010년 12월 28일(음) 현종은 개경을 떠나 남쪽으로 향했다. 신하들은 뿔뿔히 흩어지고 호위군은 겨우 지채문이 지휘하는 50여 명에 불과했다. 남쪽의 고려 호족과 관리들은 현종을 반기지 않았고 오히려 위협을 하기도 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현종을 끝까지 지킨 것은 지채문이였고 거란의 추격을 저지한 사람은 유배에서 풀려난 하공진이었다. 하공진의 활약이 없었다면 현종은 거란 선봉대에게 사로잡히고, 한반도의 역사는 바뀌었을지 모른다. 동북면 중랑장 지채문 현종의 피난길 : 1010년 12월(음) 1010년 12월 28일(음) 개경을 떠난 현종 일행은 12월 29일(음) 경기도 파주에 있는 적성현 단조역에 도착했다. 단조역 사람들은 현종을 환영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격을 하려고 했고 이를 지채문이 막아 냈다. 1010년 12월 28일(음) 행렬이 적성현(積城縣)의 단조역(丹棗驛)에 이르자 군졸 견영(堅英)이 단조역의 사람들과 함께 활을 겨누며 행궁(行宮)을 범하려 하였다. 지채문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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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기록(사료)으로 보는 고려 거란 전쟁 6] 고려군의 대반격, 양규와 김숙흥의 대활약과 장렬한 최후(전사), 거란군의 철수

경기도 양주(청화현)에서 하공진과 고영기를 만난 거란군 선봉대는 개경으로 철수했다. 강조가 이끄는 고려군을 통주 삼수채에서 격파하고 개경을 점령했지만 요 성종으로서는 더 이상 전쟁 수행이 어려웠다. 청천강 이북을 고려군이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거란군은 본국과 고립된 상황이어서 현종을 추격하기는 불가능했다. 또한 시기상으로도 통상 음력 9월에 출정하고 12월에 철수하는 유목민의 거란군의 전쟁 방식에 비추어 볼 때 이미 전쟁은 다음 해 1월을 넘어가고 있었다. 만일 황제가 직접 정벌에 나서지 않는다면 중신 중에 도통을 임명하여 병력 15만명을 이끌고 삼로로 나누어 진격하여 북경에서 모여 9월에 진격하고 12월에 철수하고, 모든 일을 이런 순서로 처리한다. 若帝不親征, 重臣統兵不下十五萬眾, 三路往還, 北京會兵, 進以九月, 退以十二月, 行事次第皆如之. <요사> 권34, 병위지(兵衞志) 상(上) 결국 1011년 1월 11일(음) 요 성종은 철군을 결정한다. 하지만 거란군은 철수하는 과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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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평] 리들리 스콧(Ridley Scott)의 <나폴레옹(Napoleon)> (2023)

<킹덤 오브 헤븐(Kingdom of Heaven)>(2005)의 감동이 재현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리들리 스콧 감독의 신작 <나폴레옹>을 봤다. 2시간 40분이 지난 후, 기대했던 감동은 전혀 없고 실망감이 몰려왔다. 주제 의식을 찾아볼 수 없고 의미 없는 장면만 나열한 영화 1. 영화 주제는 무엇인가? 나폴레옹은 임종 전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고 알려지고 있고, 리들리 스콧도 이를 약간 변형해서 <나폴레옹> 마지막 장면에 보여주고 있다. 프랑스, 군대, 군대의 수장, 조제핀 La France, l’armée, tête d’armée, Joséphine 리들리 스콧은 나폴레옹이 남긴 네 단어 중 아마도 마지막인 조제핀에 초점을 두고 영화를 풀어가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나폴레옹 인생 전체를 2시간 40분의 영화에 담기 어렵기에 조제핀의 관계에만 중점을 두는 것은 나쁘지 않은 선택일 수 있다. 사실 나폴레옹과 조제핀의 관계는 미스터리한 면이 있고 평범한 사람들로서는 납득이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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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 여행 8] 생마르탱 운하 산책(파리 산책길 추천 2탄)

지난번 글에서는 쿨레 베르트(Coulée verte) 산책로를 소개했다. 이번에는 두 번째 파리 산책길을 추천하고자 한다. 쿨레 베르트에서 멀지 않은 생마르탱 운하가 그 주인공이다. https://blog.naver.com/french_75mm/223275256956 [프랑스 파리 여행 7] 쿨레 베르트 산책로(파리 산책길 추천 1탄) 파리에 좀 오래 머물게 되면 파리 곳곳을 산책하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아마도 파리 산책하면 가장 먼저 ... blog.naver.com 생마르탱 운하(Canal Saint-Martin) 소개 생마르탱 운하는 바스티유 광장(Place de la Bastille)에서 센 강을 향해 펼쳐진 길이 4.6km의 운하이다. 운하가 시작하는 곳에 1호선 지하철역인 바스티유가 있다. 생마르탱 운하 위치 1호선 바스티유 역 바스티유 광장(왼쪽)과 광장에서 운하로 내려가는 길(오른쪽) 생마르탱 운하는 나폴레옹 집권기인 1802년에 공사가 시작되었다. 당시 파리 시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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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기록(사료)으로 보는 고려 거란 전쟁 2] 통주 전투(대회전)(feat. 강조)

이전 글 [역사 기록(사료)으로 보는 고란 거란 전쟁 1] 전쟁 준비와 흥화진 전투 https://blog.naver.com/french_75mm/223275446563 흥화진 공략에 실패한 요 성종은 강조가 주둔하는 통주로 향했다. 제2차 고려 거란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통주 전투가 그 막을 연 것이다. 통주 전투는 제2차 고려 거란 전쟁의 향배를 결정지었을 뿐만 아니라 후일의 고려 정치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통주 전투에서 강조가 승리했다면 고려-거란 전쟁은 여기서 종결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강조는 권력을 계속 유지하고 현종은 명목상의 왕으로 남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통주 전역(Campaign)은 ① 귀주 북쪽 전투 ② 통주성 앞 삼수채 전투 ③ 완항령 전투와 통주성 방어전으로 세분할 수 있다. 통주성 위치 : 평안북도 동림군 고군영리(출처 : 동북아역사재단) 참고로 <요사>는 귀주 전투와 삼수채 전투가 각각 11월 10일과 11일에 벌어진 것으로 나와 고려의 날짜와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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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 여행 9] 불로뉴 숲 산책(파리 산책길 추천 3탄)

볼로뉴 숲 소개(Bois de Boulogne) 불로뉴 숲은 동쪽의 방센느 숲(Bois de Vincennes)과 더불어 파리의 '허파' 역할을 하는 곳이다. 면적은 불로뉴 숲이 8.45, 방센느 숲이 9.95이다. 불로뉴 숲과 방센느 숲 위치 불로뉴 숲은 프랑스 왕실의 사냥터로 사용되던 숲이었고, 그 안에는 성도 있어 지체 높은 사람들이 사용을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폴레옹 1세의 패배 후 영국군과 러시아군 4만 명이 불로뉴 숲에 주둔을 한 이후로 숲은 황폐화되었다. 4만 명의 군인들의 숙소와 땔감 공급을 위해 수천 그루의 나무가 잘려나간 것이었다. 그 이후에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가 나폴레옹 3세 시절에 공공 정원으로 복원되었다. 나폴레옹 3세는 런던 하이드 파크(Hyde Park)에 깊은 인상을 받고 파리 서쪽과 동쪽에 공공 정원을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정원 설계 책임자로 임명된 사람이 장-피에르 바리예-데샹(Jean-Pierre Barillet-Deschamps, 18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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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마이 블로그 리포트] 데이터로 알아보는 블로그 속 숨은 직업 찾기!

제 블로그를 방문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프랑스 전문 여행 블로그로 발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때때로 책과 영화 등 감상평도 올리겠습니다. 2023 마이 블로그 리포트 올해 블로거들의 직업을 공개합니다! 내 직업 확인하고, 2024년 행운도 뽑아보세요! https://mkt.naver.com/p1/2023myblog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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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기록(사료)으로 보는 고려 거란 전쟁 3] 서경 전투(feat. 지채문, 탁사정, 대도수, 강민첨, 조원)

1010년 11월 25일(음력) 통주 전투에서 거란군은 대승을 거뒀다. 하지만 통주성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완항령에서도 저지를 당해 청천강 이북에서 거점 확보에 실패했다. 12월 들어 상황은 반전되었다. 흥화진과 통주성을 남겨두고 남진을 시작한 거란군은 곽주를 함락시켜 드디어 거점을 마련했다. 이어 안북도호부, 숙주를 잇따라 점령하고 서경을 향해 거침없이 진격했다. 서경을 지키는 고려 지휘부는 거란군의 기세에 놀라 항복을 결정했다. 하지만 동북면의 고려군이 서경에 도착하면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지채문, 강민첨, 조원의 활약으로 고려군은 제2의 도시 서경을 지켜냈다. 곽주 전투 고려 기록에서 곽주 전투는 중요하게 다뤄지나 거란 기록에서는 전투 없이 곽주 스스로 항복한 것으로 나온다. 거란 기록 (고려의) 동주(銅州-통주)·곽주(霍州)·귀주(貴州)·영주(寧州-안북도호부)가 모두 항복하였다. 銅·霍·貴·寧等州皆降 <요사> 권15 성종 통화 28년 11월 무자 고려 기록 곽주 방어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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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기록(사료)으로 보는 고려 거란 전쟁 4] 양규의 곽주 탈환, 현종의 몽진 결정과 개경 함락

거란군은 1010년 12월 13일에서 17일(음력)까지 5일 동안 서경을 공격했으나 함락시키지 못했다. 서경을 포위하는 도중에 청천강 이북에서 극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흥화진을 지키던 양규가 결사대 700명을 이끌고 빠져나와 통주에서 1,000명의 병력을 보강한 다음에 곽주를 수복한 것이었다. 거란으로서는 청천강 이북의 거점이 사라지고 서경도 함락시키지 못해 고립된 상황에 처했다. 요 성종은 개경으로 진격한다는 대담한 결정을 내렸다. 개경을 지킬 고려군은 없었고 결국 현종은 강감찬의 건의에 따라 전라남도 나주로 몽진을 하게 되었다. 곽주 수복 양규의 곽주 수복은 제2차 고려 거란 전쟁에서 가장 극적인 전투이다. 고려 장군들과 정예 군사의 실력이 동아시아에서 최강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많은 기록이 없고 단편적인 사실만 기술된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거란 기록 거란 기록에서는 양규의 이름은 거론되지 않는다. 1011년 1월 거란군이 후퇴할 때 항복했던 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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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 여행 1 : 오랑주리 미술관(Musée de l'Orangerie)과 모네의 수련

오전에 지베르니의 모네의 집과 정원을 보고 나서 그 기세를 이어 오랑주리 미술관(Musée de l'Orangerie)으로 향했다. 오랑주리 미술관은 2010년과 2011년에 파리에 갔을 때 방문을 하려고 했으나 그때마다 사정이 생겨서 가보지 못한 곳이었다. 오랑주리 미술관 오랑주리 미술관 역사 원래 오랑주리 미술관은 나폴레옹 3세(Napoléon III)에 의해 튈르리 궁전 정원(jardin du palais des Tuileries)에 있는 오렌지 나무를 겨울에 보관하기 위한 일종의 온실로 만들어졌다. 오랑주리(orangerie) 단어 자체가 '오렌지 나무 온실'이라는 뜻이다. 온실로 지어졌기 때문에 햇빛이 잘 들어오도록 남쪽인 센 강을 향한 벽에는 창이 설치되어 있고 북쪽은 북풍을 막기 위한 벽으로만 되어 있었다고 한다. 오랑주리 미술관 남쪽 벽 보불 전쟁으로 나폴레옹 3세가 실각하면서 오랑주리 미술관은 정부 소유가 되었고, 오렌지 나무가 튀를리 정원에 있는 동안에는 원예,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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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 여행 2-1 : 퐁텐블로 성(궁전)의 역사, 가는 법, 내부 관람

퐁텐블로 성(Château de Fontainebleau) 역사 퐁텐블로 궁전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퐁텐블로 성은 파리 남동쪽으로 55 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프랑스 왕실 소유의 성이었다. 성이 처음으로 지어진 시기는 중세 시대였고, 이때는 프랑스 왕들의 사냥 숙소로 사용되었다. 르네상스 시기인 16세기에 프랑스와 1세(François I)가 중세 양식으로 된 부분을 개축하고 르네상스 형식의 건물을 지어 확장함으로써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 후대 왕들도 지속적인 확장 등의 공사를 통해 오늘날 퐁텐블로 성은 중세, 르네상스, 고전기 양식을 한데 갖춘 건물이 되었다. 역대 프랑스 왕들이 자주 이용한 성이지만 그중에서도 앙리 2세(Henri II)와 나폴레옹(Napoléon)이 이 성에 머물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왕들이 많이 이용하다 보니 역사적으로 중요한 일이 많이 일어났다. 루이 13세(Louis XIII)가 퐁텐블로 성에서 태어났다. 1685년 10월 18일 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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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윌리엄 케인, <거장처럼 써라> (2011)

지은이 : 윌리엄 케인(William Kane) 옮긴이 : 김민수 출판사 : 이론과실천 출간년 : 2011 오노레 드 발자크(Honoré de Balzac), 표도르 도스토옙스키(Fyodor Dostoevsky)부터 필립 K. 딕(Philip K. Dick), 스티븐 킹(Stephen King)에 이르는 18인의 작가들이 가지고 있는 작법 특징을 잘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을 통해. 캐릭터 잡는 법, 갈등 구조를 만드는 법, 묘사와 문장 구성 등등 개별 작가들이 가지고 이는 고유의 특성을 빠른 시간에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개별 작가들의 고유한 작법 보다는 지은이가 이 책에서 강조하고 있는 주제는 두 가지다. 첫째는 모방이다. 지은이는 현대에 들어 너무 창의성과 고유성을 강조한 나머지 작법 교육에서 모방이 사라진 것을 안타까워 하고 있다. 그러면서 작가로서의 시작은 모방이며, 모방은 자신에게 없다고 생각했던 새로운 글쓰기 근육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힘주어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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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 여행 2-2 : 퐁텐블로 성(궁전) 외부와 시내 구경

퐁텐블로 성(Château de Fontainebleau)은 내부도 좋았지만 그 주변의 정원과 연못이 더 아름다웠다. 130헥타르에 달하는 정원과 연못은 닫혀 있는 마음을 열게 만들고 정화시켜 준다. 퐁텐블로 성 정원 지도 명예 광장(Cour d'Honneur) 궁전 밖으로 나오니 처음에 들어왔던 '명예 광장'이 다시 보였다. 광장 정면의 건물로 올라가는 계단을 유려한 곡선으로 잘 만들었다. 하지만 그 이름을 보고는 약간 당황스러웠다. 이름을 너무 막 지었기 때문이다. '말발굽 계단(Escalier en Fer à cheval)'이 그 이름이었다. 명예 광장 말발굽 계단 한국 사람들이 보기엔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이 약간 건물 이름을 그냥 대충 지는 것 같기는 하다. 궁전은 사라지고 정원만 남은 튈르리 정원(Jardin des Tuileries)의 튈르리(tuilerires)의 뜻은 기와 제작소 또는 기와 굽는 장소를 의미한다. 왕궁 이름을 이렇게 짓는 것이 조금은 놀랍다. 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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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에 저항했던 어느 독일 장군의 장교 분류법

흔히 바이마르 공화국 기간 중 독일의 재군비를 준비했던 한스 폰 젝트(Hans von Seeckt, 1866~1936) 장군의 명언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쿠르트 폰 함머슈타인-에쿠오르트(Kurt von Hammerstein-Equord, 1878~1943) 장군의 말이다. 함머슈타인-에쿠오르트 장군은 귀족 출신이기는 하지만 바이마르 공화국에 충섬심을 가지고 있었고, 히틀러 체제에 반대를 했던 인물이었다. 히틀러 체제를 타도하기 위한 노력을 했지만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1943년에 암으로 사망했다. 나는 휘하의 장교들을 네 분류로 나눈다. 똑똑하고, 부지런하고, 멍청하고, 게으른 장교들이다. 통상 두 가지의 특성이 결합된다. 똑똑하고 부지런한 장교들은 참모 역할에 적합하다. 멍청하고 게으른 장교들은 군대의 90%를 차지하고 있으며, 일상적인 업무에 적합하다. 똑똑하고 게으른 장교는 지휘관의 역할에 적합하다. 왜냐하면 이들은 어려운 결정을 하는 데 필요한 지적인 명료함과 평정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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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Paris) 호텔 리뷰 1] 호텔 레지던스 앙리 4세(Hôtel Résidence Henri IV) 후기(5구)

파리에서 2주간 체류하면서 2개의 호텔에 머물렀다. 그중에서도 가장 오랜 기간을 '호텔 레지던스 앙리 4세(Hôtel Résidence Henri IV)'에서 머물렀다. ※ 호텔 레지던스 앙리 4세 홈페이지 https://www.residencehenri4.com/ 원래는 파리 몽파르나스 역(Gare de Paris-Montparnasse) 부근에 숙박 플랫폼 업체를 통해 호텔을 예약했으나 취소 당하고 부랴부랴 잡은 곳이 호텔 레지던스 앙리 4세였다. 하지만 위치뿐만 아니라 서비스 측면에서 너무나 만족스러운 호텔이었다. 호텔 레지던스 앙리 4세 위치 호텔 레지던스 앙리 4세 위치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센(Seine) 강 남쪽, 좌안(Rive gauche)의 라탕 지구(quartier Latin)에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호텔 레지던스 앙리 4세 위치 서쪽으로 걸어서 7분 떨어진 곳에 프랑스를 대표하는 고등 연구기관인 콜레주 드 프랑스(Collège de France)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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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Paris) 호텔 리뷰 2] 하얏트 리젠시 파리 에투알(Hyatt Regency Paris Étoile) 후기(17구)

한 달여의 프랑스 여행의 마지막 2박 3일은 하얏트 리젠시 파리 에투알(Hyatt Regency Paris Étoile)에서 머물렀다. 프랑스를 떠나기 전 34일간의 여행의 피로를 풀고, 파리 전체를 볼 수 있는 곳에 머무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위치 하얏트 리젠시 파리 에투알은 개선문에서 서북쪽의 파리 시내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행정 구역 상으로는 17구(17e arrondissement)에 있다. 호텔에서 조금만 외곽으로 나가면 파리 외곽 순환도로가 보인다. 호텔에서 더 서북쪽으로 올라가면 라데팡스(La Défense)가 나온다. 파리 외곽 순환도로 지하철 1호선과 RER C선을 탈 수 있는 뇌이-포트 마요(Neuilly-Porte Maillot) 역이 걸어서 5분 정도 떨어져 있다. 북쪽으로 도보 12분 정도 떨어진 포트 샹페르(Porte de Champerret) 역에서는 3호선을 이용할 수 있다. 1호선과 RER C선 뇌이-포트 마요 역 3호선 포트 샹페르 역 외부와 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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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강명관, <조선 시대의 책과 문화>와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조선 시대의 책과 문화> (서울 : 천년의 상상, 2014)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서울 : 푸른역사, 2015) 강명관 교수의 <조선 시대의 책과 문화>와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는 쌍을 이루는 책이다. 전자가 책의 생산과 유통 등 제도적인 면에 초점을 두었다면, 후자는 정도전부터 단재 신채호까지 책을 광적으로 좋아한 지식인들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간 책이다. 강명관 교수는 조선이라는 국가와 주요 지식인들이 보여준 책에 대한 관심에 대해서는 찬사를 보낸다. 하지만 분명한 한계점도 명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최초의 금속활자를 자랑스워 하지만 구덴베르크의 인쇄술이 유럽을 변혁한 계기를 만든 반면, 조선의 금속활자는 다품종 소량으로 책을 인쇄한 것 이상의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발명된 이래의 50년과 태종의 계미자부터 성종의 계축자까지 91년을 비교해보자. 유럽에서는 50년 동안 250개 혹은 1,000개의 인쇄소가 생겨났지만, 조선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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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 여행 3 : 라탱 지구(Quartier Latin)

라탱 지구(Quartier Latin)에 대한 소개 라탱 지구는 소르본 대학교(Sorbonne Université)를 중심으로 한 센(Seine) 강 좌안의 파리 5구와 파리 6구 지역을 의미한다. 원어 발음에 가깝게 표시하자면 '꺄흐띠에 라땅'이고, 번역하면 '라틴어를 쓰는 동네'라고 할 수 있다. 중세의 대학 교육은 라틴어로 이뤄졌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 지역은 프랑스 지성의 상징 같은 곳이다. 소르본 대학교를 비롯해 콜레주 드 프랑스(Collège de France), 유명한 그랑제콜(Grandes Écoles)이 자리를 잡고 있다. 콜레주 드 프랑스(Collège de France) 콜레주 드 프랑스는 1530년 프랑수아 1세(François Ier)가 창설한 프랑스 고등교육연구기관이다.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 자리는 프랑스 학술계에서 가장 영예로운 자리이다.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 1859~1941), 레이몽 아롱(Raymond Aron,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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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책의 훈훈한 서문 : 주디스 헤린, <비잔티움> (2007)

[서지 정보] 주디스 헤린(Judiith Herrin), 이순호 옮김, <비잔티움 : 어느 중세 제국의 경이로운 이야기> (파주 : 글항아리, 2007) 책의 서문은 목차와 더불어 지은이의 의도를 잘 나타내는 부분이다. 대학교 때 교수님 한 분은 도서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생들이 신청한 책의 서문과 목차를 읽으면서 조금이나마 공부를 했다는 말씀을 하시기도 하셨다. 정작 책을 읽고 나면 서문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아래에 소개하는 책의 서문은 너무나 훈훈하여 오래 전에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억이 생생하다. 2002년 어느 날 오후, 건설 인부 두 사람이 킹스 칼리지의 내 연구실 문을 두드렸다. 대학 내 낡은 건물을 보수하면서 내 방 앞을 종종 지나다니다 '비잔티움 역사 교수 연구실'이라는 명패가 문에 달린 것을 보고 궁금증이 일어 들른 것이었다. 두 사람은 내게 '비잔타움 역사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자기들 생각에는 비잔티움이 터키와 어떤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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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 여행 4 : 팡테옹(Panthéon)

조국이 위대한 사람들에게 사의를 표하며 AUX GRANDS HOMMES LA PATRIE RECONNAISSANTE 팡테옹 정면 팡테옹(Panthéon)의 역사 원래 팡테옹은 루이 15세(Louis XV)가 파리의 수호성인인 성 주느비에브(Sainte Geneviève)에게 봉헌하기 위해서 만든 성당이었다. 공사는 1758년에 시작되었는데 1790년에 완공되었다. 이미 루이 15세는 세상을 뜬 시기였고 프랑스 혁명이 발발한 다음 해였다. 뛰어난 웅변가로 초기 프랑스 혁명을 이끌어간 미라보(Mirabeau, 1794~1791) 백작이 사망하자, 프랑스 제헌의회(Assemblée nationale constituante)는 주느비에브 성당을 팡테옹이란 이름으로 바꾸고 위대한 사람을 안치하기로 결정했다. 그 첫 번째가 미라보 백작이고 다음으로 안치된 사람이 볼테르(Vlotaire, 1694~1778)였다. 하지만 미라보 백작은 사후에 왕실로부터 돈을 받고 왕실과 오스트리아에 결탁한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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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 여행 5 : 에펠탑 사진 추천 장소(포토존)

파리의 상징인 에펠탑(Tour Eiffel) 사진을 찍는 가장 유명한 장소는 상드 마르스(Champs de Mars)와 사요 궁전(Palais de Chaillot)이다. 상드 마르스에서 찍은 에펠탑 1 상드 마르스에서 찍은 에펠탑 2 사요 궁전에서 찍은 에펠탑 1 사요 궁전에서 찍은 에펠탑 2 하지만 여기 말고도 에펠탑 사진 찍기가 좋은 장소 7곳을 추천을 하고자 한다. 순서는 콩코드 광장에서 에펠탑으로 내려오는 방향이다. 에펠탑 사진 명소 ① 콩코드 다리(Pont de la Concorde) 부근 콩코드 다리 북쪽에서 에펠탑을 찍으면 파리 다리 중 가장 아름다운 알렉상드르 3세 다리(Pont Alexandre III)와 에펠탑을 한 번에 담을 수 있다. 아래 사진은 낮에 찍다 보니 역광으로 찍을 수밖에 없어 알렉상드르 3세 다리가 잘 안 보였다. 밤에 이곳에서 사진을 찍는다면 아름다운 에펠탑과 알렉상드르 3세 다리 야경을 찍을 수 있다. 콩코드 다리에서 찍은 에펠탑 1 콩코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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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 여행 6] 생에티엔뒤몽 성당과 생제르맹데프레 수도원

생 에티엔 뒤 몽 성당(Église Saint-Étienne-du-Mont) : 미드나잇 인 파리 생 에티엔 뒤 몽 성당은 파리 5구 팡테옹(Panthéon)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다. 1494년에 건설이 시작되어 1624년에 완공된 유서 깊은 성당이다. 성당 외관 원래는 이 성당은 파리 수호성인인 주느비에브(Geneviève)의 유해가 있는 곳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서는 우디 앨런(Woody Allen) 감독의 <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2011)의 배경으로 더 유명해진 것 같다. 파리 밤길을 걷다가 잠시 쉬는 주인공을 1920년대의 파리로 연결시켜주는 장소가 바로 생 에티엔 뒤 몽 성당 북쪽 문의 계단과 그 옆의 길이다. 성당 북쪽 문의 계단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이 계단에 앉아 있는 모습 1920년대 문학가를 타운 구형 푸조(Peujeot)가 올라온 길 구형 푸조(Peujeot)가 올라오는 장면 성당 자체만 봐서는 작은 규모는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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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 여행 7] 쿨레 베르트 산책로(파리 산책길 추천 1탄)

파리에 좀 오래 머물게 되면 파리 곳곳을 산책하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아마도 파리 산책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길은 센 강이다. 파리 여행을 와서 센 강을 산책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할 일 중의 하나이다. 센 강 산책 1 : 공사 중인 노트르담 대성당의 모습이 보인다. 센 강 산책 2 센 강 산책 3 하지만 센 강 주변으로는 사람이 워낙 많다 보니 산책의 낭만은 사라지고 아래 사진처럼 도떼기시장을 만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에펠탑 주변 센 강에 모인 관광객들 센 강을 고즈넉하게 산책하고 싶으면 시테(Cité) 섬 동쪽 강변으로 가기를 추천한다. 하지만 센 강 이외에도 파리를 산책할 방법은 많다. 그 중에서도 많은 관광객을 만나지 않고 파리 사람이 된 것처럼 산책할 수 있는 길 3군데를 추천하고자 한다. 1탄은 도심 속의 고가 산책길인 바로 쿨레 베르트 산책로이다. 쿨레 베르트 산책로(Coulée verte René-Dumont) 소개 쿨레 베르트 산책로는 사용되지 않았던 철길을 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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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로 보는 고려 거란 전쟁] 전쟁 준비와 흥화진 전투

고려 거란 전쟁과 관련해서 고려 측 기록으로는 <고려사(高麗史>와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가 있고 거란 기록으로는 <요사(遼史)>가 있다. 모두 실제 역사 기록이기는 하지만 이순신의 <난중일기>와 같은 당대 기록은 아니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는 조선 문종 때 완성되었고, <요사>는 그보다 빠르지만 원나라 때 작성되었다. 후대의 편찬자들이 정리한 기록에 불과하고 또한 대부분의 동양 역사서들이 그렇듯이 전투 관련해서는 세부 묘사가 결여되어 있다. 따라서 큰 사건의 흐름을 제외하고는 세부 전투와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 알기 어렵다. 지금 방영하고 있는 드라마뿐만 아니라 고려 거란 전쟁을 다룬 대다수의 책들에서 묘사하고 있는 인물 간의 관계나 전투 묘사 등은 좋게 말하면 '합리적 추론'이고 나쁘게 말하면 '상상의 나래'이다. 고려 거란 전쟁 드라마 합리적 추론에 기반한 고려 거란 전쟁 관련 도서 '합리적 추론' 또는 '상상의 나래'가 어떠한 사료적 근거를 가지고 펼쳐졌는지 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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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생말로(Saint-Malo) 여행 : 기본 정보

소개 해적들의 도시로 유명한 생말로는 영불해협에 자리 잡고 있는 항구 도시이다. 생-말로 앞에는 영국령 건지(Guernsey) 섬과 저지(Jersey) 섬이 있다. 이 두 섬에서 빅토르 위고(Victor Hugo)가 망명 생활을 했고 특히 저지 섬에서 그 유명한 <레미제라블(Les Misérables)>을 집필했다. 생말로는 행정 구역 상으로는 프랑스 브르타뉴 레지옹(Région Bretagne), 일-에-빌렌 데파르트망(département d'Ille-et-Vilaine)에 속하고 있다. 파리에서는 서쪽으로 455km 떨어져 있고, 브르타뉴 레지옹의 중심 도시인 렌(Rennes)에서는 75km 떨어져 있다. 인구는 2020년 기준 4.7만 명으로 매우 작은 도시이다. 생말로 전경 생말로라는 이름은 웨일스(Wales) 출신으로 영불해협을 건너 선교 활동을 하고 생-말로 지역의 첫 번째 주교가 된 마클로비우스(Maclovius)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다. 생말로 역사 중 흥미로운 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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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생말로(Saint-Malo) 여행 2 : 성벽, 바닷가, 그랑 베와 프티 베

역에서 성곽(Intro-muros)으로 가는 길 생말로 역을 나오니 갈매기 두 마리가 우리를 반겨주고 있었다. 릴(Lille)과 아미앵(Amiens)을 갔을 때와는 달리 날씨가 너무 좋았다. 아직 봄의 쌀쌀함이 있었지만 푸른 하늘을 볼 수 있음에 감사했다. 생말로 역은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었고 앞에 넓은 광장이 있어서 사람 가슴을 탁 트이게 만들었다. 생말로 역과 광장 생말로 역에서 성곽(Intro-muros)까지는 버스로 8분 정도 소요되었다. 20세기에 재건된 도시라 파리나 보르도에 비해 건물도 현대적이었고 도로도 넓었다. 항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요트들이 줄지어 정박하고 있는 가운데 범선 한 척이 눈에 들어왔다. 이름은 <왕의 별>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 <에투왈 뒤 로이(Étoile du roy)>였다. 에투왈 뒤 로이 1 에투왈 뒤 로이 2 영국 ITV의 역사 드리마 <혼블로워(Honblower)> 시리즈에 쓰기 위해 1996년에 터키 선착장에서 건조한 범선이다. 6등급 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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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생말로(Saint-Malo) 여행 3 : 맛집과 쇼핑

라 뒤세스 안느(La Duchesse Anne) 파리에서 일찍 출발하다 보니 아침을 제대로 못 먹었다. 기차 안에서 간식을 먹기는 했지만 아침 식사로는 부족했다. 관광사무소에서 지도를 사고 성안으로 들어오니 여러 갈레트 식당이 우리를 반겨주고 있었다. 3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온 피로도 풀고 에너지를 보충하고자 한 갈레트 식당에 들어갔다. 식당 이름은 '안 여공작'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 라 뒤세스 안느(La Duchesse Anne)였다. 아마도 샤를 8세(Charles VIII)와 샤를 8세의 사촌인 루이 12세(Louis XII)와 각각 결혼하여 두 번이나 프랑스 왕비가 되었던 '브르타뉴의 안(Anne de Bretagne, 1477~1514)'의 이름을 딴 것 같았다. 식당 전경(사진을 찍지 못해 구글 지도에서 가져왔다) 갈레트(Galette)와 시드르(Cidre), 프로방스(Provence) 로제 와인을 시켰다. 오전부터 술을 마실 수 있는 것은 여행 때만 가능한 특권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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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교통권 나비고(Navigo)로 TER/Intercité를 탈 수 있는가?

최근에 블로그로 유입되는 검색어를 봤더니 <나비고이지 TER>, <파리 TER 모빌리스>와 같이 파리 교통권으로 TER를 이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검색어가 종종 보였다. TER 전에 일드 프랑스 교통공사(IDF Mobilités) 홈페이지를 거의 번역하다시피 해서 파리 교통권에 글을 작성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 글에서 기차(Train)를 언급할 때는 주로 트랑질리앙(Trainsilien)을 의미했고 TER 등을 언급한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일드 프랑스 교통공사 홈페이지에서 개별 요금제 메인 항목에서 TER 등을 언급한 경우는 <나비고 죈느 위크엔드(Navigo Jeunes Weekend)>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https://blog.naver.com/french_75mm/223120245244 파리 교통권(교통카드) 총정리 1부 : 기본 정보(까르네, 나비고 등) 들어가며 프랑스 <일 드 프랑스 교통공사(Île-de-France Mobilités)>의 공식 홈페이지 내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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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에트르타(Étretat) 여행 1 : 소개와 가는 방법

소개 하얀색 백악 절벽으로 유명한 에트르타는 연간 300만 명이 찾는 곳이다. 르아브르(Le Havre)에서 동북쪽으로 32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행정 구역 상으로는 노르망디 레지옹(région Normadie), 센-마리팀 데파르트망(département de la Seine-Maritime)에 속해 있다. 에트르타는 귀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와 같은 화가들이 즐겨 그렸고, 기 드 모파상(Guy de Maupassant), 귀스타브 플로베르(Gustave Flaubert), 모리스 르블랑(Maurice Leblanc)이 사랑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포르트 다발(Porte d'Aval) 특히 모리스 르블랑은 에트르타의 포르트 다발(Porte d'Aval)에서 영감을 얻어 소설 <기암성(L'Aiguille creuse)>(1909)을 집필했고, 1918년에는 에트르타로 이사하여 1939년까지 살았다. 르블랑이 살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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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에트르타(Étretat) 여행 2 : 시내와 바닷가

에트르타 가는 길 8시 40분 르아브르(Le Havre)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생라자르(Saint-Lazare) 역으로 향했다. 역에 도착하니 한 승객이 멋진 피아노 연주를 들려주고 있었다. 기차는 약 2시간을 달려 브레오테-뵈즈빌(Bréauté-Beuzeville) 역에 도착했다. 꽤 많은 사람들이 내렸고 이들 중 상당수는 우리와 같이 에트르타로 가는 버스를 타는 사람이었다. 영국인 관광객들, 프랑스어를 잘하는 일본인,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우리와 같이 에트르타로 가는 부자(父子) 여행객이 내 시선을 끌었다. 서로 손을 잡고 걸어가는 모습에서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사랑과 믿음이 느껴졌다. 아버지와 아들 브레오테-뵈즈빌 역에서 에트르타로 가는 길은 노르망디(Normandie) 지역의 목가적 정취를 마음껏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평야는 끝없이 펼쳐져 있고 푸른 목초 위에 소들은 풀을 먹고 있었다. 중간중간에는 평화로운 농촌 마을이 보였고, 옛 철도는 학생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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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에트르타(Étretat) 여행 3 : 에트르타 정원, 예배당, 롸조 블랑 기념비

시내와 해변 구경을 마치고서는 일명 아기 코끼리 바위인 팔레즈 다몽(Falaise d'Amont)으로 올라갔다. 해변가에 있는 입구로 들어가서 건물 사이에 있는 계단을 통과하면 약간은 가파른 경사길이 펼쳐진다. 건물 사이에 있는 계단 팔레즈 다몽 가는 길 힘든 길일 수 있지만 하지만 가파른 경사길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신체의 고단함을 사라지게 하는 마법을 부린다. 오르막을 걷기 힘든 사람들은 꼬마 기차를 탈 수 있다. 시내에서 팔레즈 다몽에 있는 에트르타 박물관(Musée du patrimoine d'Étretat)까지 운행을 한다. 요금은 8유로이다. 운행 기간은 3월 둘째 주부터 11월까지이다. ※ 꼬마 기차 홈페이지 https://www.le-petit-train-etretat.com/ 꼬마 기차 처음에는 팔레즈 다몽 정상에서 바다와 주변 풍경을 보러 올라갔는데, 다른 볼 것이 많았다. 에트르타 정원, 절벽 위에서 바람에 맞서고 있는 예배당, 그리고 하늘을 찌를 듯한 기념비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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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에트르타(Étretat) 여행 4 : 절벽(코끼리 바위)

에트르타의 상징인 절벽, 일명 코끼리 바위 탐방을 나섰다. 아기 코끼리 바위인 팔레즈 다몽(Falaise d'Amont)과 엄마 코끼리 바위인 팔레즈 다발(Falaise d'Aval)은 해변을 가운데 두고 양옆에 서 있다. 아빠 코끼리 바위인 팔레즈 라 만포르트(Falaise la Manneporte)는 팔레즈 다발로 가야만 볼 수 있다. 아기 코끼리 바위, 팔레즈 다몽(Falaise d'Amont) 팔레즈 다몽 정상은 녹색의 넓은 평지가 펼쳐져 있어 밑에서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가까이서 본 팔레즈 다몽 팔레즈 다몽에서 바라본 영불 해협 전망대 바다를 바라보고 어느 노부부가 나란히 앉아서 망중한을 즐기고 있었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내 마음도 평안해졌다. 팔레즈 다몽 정상에는 바다를 따라 길이 펼쳐져 있었다. 어디까지 이어지는 길인지 궁금해졌다. 페캉(Fécamp) 방향이지만 걸어서 갈 수 있을까? 에트르타에 3일을 묵을 수 있다면 하루는 팔레즈 다몽에서 페캉으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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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에트르타(Étretat) 여행 5 : 식당, 카페, 초콜릿 가게, 뤼팽 박물관

라 플로티으(La Flottille) 생말로(Saint-Malo)와 마찬가지로 호텔을 일찍 나서는 바람에 아침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래서 에트르타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주린 배를 채웠다. 비수기라 그런지 식당들 중에는 공사를 하고 있는 곳도 꽤 있었다. 우리가 고른 식당은 <라 플로티으(La Flottille)>였다. 한국어로는 작은 선단 또는 함대로 옮길 수 있다. 라 플로티으 식당 내부는 들보가 보이는 인테리어로 장식되어 있었다. 예전 에트르타 전통 건축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튼튼하게 개조한 모습이었다. 우리가 들어왔을 때 빈자리는 두 개밖에 없었다. 곧 식당은 손님으로 가득 찼고 그 이후에 온 손님들은 야외 자리를 이용하거나 기다려야만 했다. 우리를 담당한 직원은 유쾌하고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이 직원 덕분에 식사를 하기 전에 기분이 유쾌해졌다. 식사 메뉴(왼쪽), 레드 와인 메뉴(가운데), 화이트 와인 메뉴(오른쪽) '오늘의 생선 요리(Poisson du j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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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sur-Oise) 가는 법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가 생의 마지막을 보낸 오베르 쉬르 우아즈는 대중교통으로 가기 약간 까다롭다. 기차역이 있기는 하지만 파리에서 대중교통으로 오베르 쉬르 우아즈까지는 한 번에 가는 방법은 없다. 트랑질리언(Transilien), RER, 버스 등을 조합해서 가야만 한다. 이 글에서는 버스는 제외하고, 트랑질리언, RER, TER를 조합해서 가는 방법을 설명하고자 한다. 오베르 쉬르 우아즈 역 트랑질리언(Transilien) H선 파리 북역(Gare du Nord)에서 트랑질리언 H선을 타는 방법이다. 파리 북역에서 출발하는 트랑질리언 H선은 4가지의 지선으로 나누어진다. 1. 퐁투와즈(Pontoise) 행 2-1. 발몽두와(Valmodois) 경유 페르상 보몽(Persan-Baeumont) 행 : POVA로 표시됨 2-2. 몽술트 마플리에(Montsoult Maffliers) 경유 페르상 보몽(Persan-Baeumont) 행 : POMA로 표시됨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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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sur-Oise) 여행 1 : 라부 여인숙, 성당, 빈센트 반 고흐 묘

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sur-Ose) 가는 길 파리 북역(Gare du Nord)에서 트랑질리앙(Transielien) H선을 타고 오베르 쉬르 우아즈로 향했다. 트랑질리앙 기차는 깔끔했다. 통근 시간이 아니라서 그런 지 사람이 많지 않았다. 파리 북역의 트랑질리앙 H선 행선지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기차를 탔는데 중간에 확인해 보니 뤼자르슈(Luzarches)로 가는 기차였다. 몽술트 마플리에(Montsoult-Maffliers)에 내려서 페르상 보몽(Persan Beaumont)까지 간 다음 퐁투와즈(Pontoise) 행을 타고 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sur-Oise)에 12시 30분경에 도착할 수 있었다. 1시간 30분이 걸렸으니 예상보다 20분 정도 더 걸린 셈이다. 아담한 크기의 역이 우리를 맞이해주고 있었다. 역사 안의 벚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 오베르 쉬르 우아즈 역 오베르 쉬르 우아즈 역 : 반 고흐가 살았던 시기의 역 모습을 담은 사진이 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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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sur-Oise) 여행 2 : 압생트 박물관, 오베르 성, 가셰 박사 집, 카페와 빵집

압생트 박물관(Musée de l'Absinthe) 라부 여인숙을 기점으로 서쪽으로 조금 더 가면 압생트 박물관이 나온다. 압생트는 벨 에포크(Belle époque) 시대에 크게 인기 있던 술이었고, 특히 인상파 화가들이 특히 사랑한 술이었다. 술이 녹색을 띠고 있어 '녹색의 요정(fée verte)'로 불린다. 압생트 박물관 외부 압생트 박물관 안내문 하지만 압생트 원재료인 향쑥(wormwood)에 환각성분이 들어가 있다는 이유로 20세기 초에 금지되었다가 21세기에 다시 판매가 허용된 술이다. 환각 성분이 들어가 있지만 압생트를 마시고 환각에 빠지려면 그전에 알코올 중독으로 죽을 정도로 술을 마셔야 하기 때문에 환각 성분은 큰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함유량에 대해서는 엄격한 검사를 받는다고 한다. 예전에 마신 압생트 이 박물관은 벨 에포크 시대의 압생트에 관심을 가진 언론인 마리-클로드 들라에이(Maire-Claude Delahaye, 1942~)가 세웠다. 좀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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