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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기록(사료)으로 보는 고려 거란 전쟁 6] 고려군의 대반격, 양규와 김숙흥의 대활약과 장렬한 최후(전사), 거란군의 철수

 [역사 기록(사료)으로 보는 고려 거란 전쟁 6] 고려군의 대반격, 양규와 김숙흥의 대활약과 장렬한 최후(전사), 거란군의 철수

경기도 양주(청화현)에서 하공진과 고영기를 만난 거란군 선봉대는 개경으로 철수했다. 강조가 이끄는 고려군을 통주 삼수채에서 격파하고 개경을 점령했지만 요 성종으로서는 더 이상 전쟁 수행이 어려웠다.

청천강 이북을 고려군이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거란군은 본국과 고립된 상황이어서 현종을 추격하기는 불가능했다. 또한 시기상으로도 통상 음력 9월에 출정하고 12월에 철수하는 유목민의 거란군의 전쟁 방식에 비추어 볼 때 이미 전쟁은 다음 해 1월을 넘어가고 있었다.

만일 황제가 직접 정벌에 나서지 않는다면 중신 중에 도통을 임명하여 병력 15만명을 이끌고 삼로로 나누어 진격하여 북경에서 모여 9월에 진격하고 12월에 철수하고, 모든 일을 이런 순서로 처리한다. 若帝不親征, 重臣統兵不下十五萬眾, 三路往還, 北京會兵, 進以九月, 退以十二月, 行事次第皆如之.

<요사> 권34, 병위지(兵衞志) 상(上) 결국 1011년 1월 11일(음) 요 성종은 철군을 결정한다. 하지만 거란군은 철수하는 과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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