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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기록(사료)으로 보는 고려 거란 전쟁 4] 양규의 곽주 탈환, 현종의 몽진 결정과 개경 함락

 [역사 기록(사료)으로 보는 고려 거란 전쟁 4] 양규의 곽주 탈환, 현종의 몽진 결정과 개경 함락

거란군은 1010년 12월 13일에서 17일(음력)까지 5일 동안 서경을 공격했으나 함락시키지 못했다. 서경을 포위하는 도중에 청천강 이북에서 극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흥화진을 지키던 양규가 결사대 700명을 이끌고 빠져나와 통주에서 1,000명의 병력을 보강한 다음에 곽주를 수복한 것이었다. 거란으로서는 청천강 이북의 거점이 사라지고 서경도 함락시키지 못해 고립된 상황에 처했다.

요 성종은 개경으로 진격한다는 대담한 결정을 내렸다. 개경을 지킬 고려군은 없었고 결국 현종은 강감찬의 건의에 따라 전라남도 나주로 몽진을 하게 되었다.

곽주 수복 양규의 곽주 수복은 제2차 고려 거란 전쟁에서 가장 극적인 전투이다. 고려 장군들과 정예 군사의 실력이 동아시아에서 최강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많은 기록이 없고 단편적인 사실만 기술된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거란 기록 거란 기록에서는 양규의 이름은 거론되지 않는다. 1011년 1월 거란군이 후퇴할 때 항복했던 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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