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 위주 전투 1019년 1월 3일 개경을 앞에 두고 거란군은 북쪽으로 철군을 시작했다. 철군 경로는 정확하게 기록에 남아 있지 않았지만 진군한 길을 다시 거슬러 올라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후퇴하는 거란군을 강감찬이 이끄는 고려군이 기다리고 있었고, 개경을 구원하러 온 김종현의 고려군은 다시 방향을 북쪽으로 틀어 거란군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연주(평안남도 개천군)와 위주(평안북도 영변)에서 고려군이 거란군을 포착하여 기습 공격을 가했다. 1019년 1월 23일(음) 신사일에 거란(契丹)이 군사를 되돌려 연주(漣州-평안남도 개천)·위주(渭州- 평안북도 영변)에 이르니, 강감찬(姜邯贊) 등이 급습하여 500여 급의 머리를 베었다.
辛巳. 契丹回兵, 至漣渭州, 邯贊等掩擊, 斬五百餘級 <고려사절요> 권3, 현종 10년 1월 신사 전과는 500명 참살이지만 불과하지만 드디어 고려군은 철수하는 거란군 이동 경로를 파악하게 되었다.
최후의 결전, 귀주 대회전의 포진 귀주성 동쪽으로는 동문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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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감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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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율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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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배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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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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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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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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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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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주대회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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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주대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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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거란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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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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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요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