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고려는 귀주에서 거란군을 대파했으나, 양국 사이의 힘의 균형이 바뀐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거란은 강국이었기에 적대적 관계를 지속하는 것은 고려로서는 부담이었다.
거란으로서도 1010년부터 1019년간 고려와 전쟁 상태를 지속했으나 귀주에서 완패를 당함으로써 더 이상 군사적으로 고려를 굴복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양국 모두 외교 관계 정상화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고려사>에 따르면 거란이 먼저, <요사>에 따르면 고려가 먼저 사신을 보낸 것으로 나온다. <고려사>와 <요사> 모두 기록이 간소하기 때문에 어느 쪽이 맞는지는 알 수가 없다.
시간 순으로 양국 간의 교섭을 기술해 본다. 1019년의 교섭 귀주 대첩이 끝난 3개월 후인 1019년 5월 거란 중앙 정부가 아니라 동경에서 고려로 사신을 파견했다. 1019년 5월 12일(음) 무진일에 거란(契丹) 동경(東京)의 문적원소감(文籍院少監) 오장공(烏長公)이 와서 왕을 알현하였다. 戊辰 契丹東京文籍院少監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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