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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기록(사료)으로 보는 고려 거란 전쟁 20] 거란에 대한 사대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feat. 거란에게 농담하는 고려)

 [역사 기록(사료)으로 보는 고려 거란 전쟁 20] 거란에 대한 사대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feat. 거란에게 농담하는 고려)

분명 고려는 전쟁에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거란에게 사대관계를 맺었다. 하지만 그 사대관계는 후일 고려-몽골, 조선-명/청 사이의 관계와는 차원이 달랐다.

후자의 관계가 철저한 신속 관계였다면, 고려와 거란 관계는 거란의 우위를 인정하는 가운데 고려의 자율성이 유지되는 것이었다. 문종 때 송과의 외교 관계 재개가 고려의 자율성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조선시대 사대관계의 상징 : 만동묘(왼쪽)과 삼전도비(오른쪽) 거란에게 농담하냐고 조롱하는 고려 고려 거란 관계는 현종말부터 덕종 재위(1031~1034) 사이 동안에 다시 긴장 관계로 접어들었다. 주된 원인은 거란이 압록강을 건너 설치한 내원성과 보주성이었다.

고려 입장에서는 서희와 소손녕의 담판으로 압록강 동쪽은 고려 영토로 공인받았는데, 거란이 이를 무시하고 성을 쌓은 것이기에 돌려받을 필요가 있었다. 1031년 6월 25일 거란 성종이 사망하자 고려는 10월에 조문 겸 흥종(興宗) 즉위 축하 사절을 보냈다. 단순히 조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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