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로메리아 리뷰 관람평 미학의 미학(이지훈의 시네필로)
모래알을 세는 행위는 실용적으로 무의미해 보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깊은 미학적 의미를 지닙니다. 나는 로메리아를 보며 이 미학의 미학을 곱씹었습니다. 영화는 철학적 분석을 길게 늘어놓지 않고 한 젊은 여자가 순례처럼 바다를 건너 가족을 만나고 오래된 일기를 들여다보며 어색한 식탁에 앉는 순간들을 조용히 보여줍니다. 그 장면들이 쌓여 관객은 의도적으로 의미없어 보이는 행위가 어떻게 의미로 전환되는지를 직감합니다. 주인공 마리나는 18살로 대학 장학금을 얻기 위해 아버지의 사망 증명서에 자신의 이름을 넣는 계기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비고라는 항구 도시에서 그녀는 과거의 비밀과 마주하고, 낯선 가족을 만나며 현재와 과거를 잇는 의식을 경험합니다. 침묵은 가족의 공동체를 지키는 형식이 되었고, 그것이 고통에 대한 대처이자 미학적 구성으로 작동합니다. 이 침묵을 영화는 비판도 미화도 없이 내보이고, 마리나가 차츰 바깥으로 나오면서 순례의 여정이 실체를 얻습니다. 꿈과 현실이 교차하는 장면에서 자각몽의 느낌이 떠올랐고, 나는 현실과 꿈의 경계가 허물어질 때 비로소 무언가를 만난다고 느꼈습니다. 마리나가 과거를 직면하되 바르셀로나로 떠나는 선택은 오늘 순간을 살되 과거의 짐을 완전히 지우지 않는 자세를 보여줍니다. 가족은 매일의 삶과 축제를 살아가며 침묵 속의 관계를 유지하는데, 그것이야말로 오늘을 살고 의미를 찾는 방식일 수 있습니다. 의미 없어 보이는 행위들이 점차 의미를 얻고, 낯선 집 초대, 일기 펼치기, 돈 봉투를 건네는 일, 바다의 돌고래를 만나는 일이 치유의 미학이 됩니다. 나는 새벽기도나 주술 같은 의식들도 심리적 치유에 도움이 된다면 충분히 가치 있는 미학적 행위라고 여깁니다. 로메리아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의미 없어 보이는 행위가 어떤 이에게는 순례가 되고 그 과정이 치유가 될 수 있는가를. 과학적 증명과 철학적 논증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치유의 미학이 존재한다면, 현대 사회에서 종교가 가진 존재 이유도 그 안에서 발견될 수 있습니다. 종교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보자면 부질없고 쓸데없어 보이는 행위도 미학으로 이해될 수 있고, 그것이 사회적 충돌을 줄이는 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모든 고민은 결국 미학이 지니는 메타적 미학의 자리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