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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몽

손끝의 피부가 겨울 환절기의 온도 하강을 따라, 같은 골을 향해 갈라지면 벌써 시간이 겨울로 다다른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몸은 추위와 싸우겠다며 자신의 부피를 키우는데 감정은 겨울바람에 풍화되어 자코메티 조각상 그림자처럼 길게 늘어져 발뒤꿈치 균열을 붙잡는다. 냉기가 아침을 오후까지 연장하는데 나는 여전히 새벽 2시의 수면 한구석에서 된장찌개 끓여주던 친구의 재수 없는 웃음 앞에 서 있다. 동태 말리듯 바짝 말려 버리고 싶은 새끼... 연필을 집어 들고 감정으로 되 뱉던 그 새벽의 감정을 토하듯이 뱉은 후에 통장 잔고의 씁쓸한 액수가 다시 생각난다. 항상 있는 인터넷 뱅킹 로그인 오류에 항상 그렇듯 욕을 박고 넷 오류로 치부해 버리는 태만에 다시 한번 그 친구의 웃음이 생각난다. 활을 쏴야 할 이유가 있는데... 겨냥해야 할 방향이 결정되면, 내적인 선전포고를 외치고 바람을 살핀다. 편서풍 끝에 원한을 묶어 보내고 나서, 앞서 걷는 여인의 치마 주름을 따라 지하철 노선으로 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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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전시] 개인전 - 온라인

전시 서문 무언가를 배치한다는 것에는 많은 요소가 혼재되어 있다. 그것은 배치된 것들을 통해 다시 되짚는 과정을 반복한 후에 발견되는 분명한 원인들을 가지고 있다. 고등어 옆에 무엇을 놓을 것인가 라는 스승의 질문에 말을 못하던 그때를 생각해본다. 고등어 옆에 조용히 장미 꽃을 놓으면서 행여 상징주의가 되지는 않을까 고민한다. 너무 먼 차이는 극명한 구분으로 쉬운 식별을 가져다주지만, 그것은 쉽게 질리고, 쉽게 간파된다. 조금 먼 거리의 미니멀리즘을 생각해 본다. 가장 작은 요소로 더 많은 효과를 누린다. 다시 말해서 가장 평범하다고, 뻔하다고 느끼는 것에서 더 깊은 차이, 그것이 미분적이고 미세한 만큼 우리의 더욱 세심한 감각을 요구하지만, 그만큼 더 강력한 진폭으로 와닿아 두고두고 그 앞에서 서성거리게 만든다. 벼룩은 흡혈, 후각, 빛 이라는 세 가지 배치물만으로 삶을 산다. 세가지 요소만으로도 충분히 하나의 삶이 가능하다는 말일 것이다. 그것은 작가에게서도 더 멀리는 우리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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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얼중얼

시는 리듬이라는 말을 들었다. 5언/7언 반복의 라임을 타고 음을 넘나드는 랩과 같은 단문의 시의 율격에 맞춰 리듬을 구상한다. 그런데 엄마는 시를 이상하게 읽는다. 내가 쓴 리듬이 이게 아닌데, 엄마는 부산의 바닷바람을 타고 억양을 인도양 동서쪽 구석을 따라 영도 앞바다 절벽 끝에서 세 번째 판잣집 구멍 새는 리듬으로 읊는다. 말더듬이 루카의 언어 분절적 마디의 불연속의 연속적 잇따름의 계열들의 먼 인연만큼이나 먼 깨져버린 리듬의 친족성으로 읊는 엄마의 낭독적 리듬의 전개가 외할머니가 즐겨 피던 장미 끝 연기처럼 희미한 장초의 끝에서 발열하고 나는 그 연기를 따라 내 시가 탈구하는 장면을 바라본다. 시작법이 따로 있다면, 외할머니 왼쪽 폐부에 쌓인 니코틴의 그을음에서 태어난, 갈매기 울음소리의 억센 억양의 잔파도를 닮은 엄마의 쇳소리는 누구의 작법인가. 오늘도 수화기 너머로 밥먹었냐 묻는 엄마의 목소리에서 백발의 외할머니의 장초 끝에서 태어나, 외할아버지 소주잔 마지막 잔 앞에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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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입장

너는 내가 너무 장황하게 글을 쓴다고, 너무 늘어지게 글을 쓰는 바람에 글을 읽다 보면 길이 갈라져 마치 미로 속을 헤매는 것처럼 중심축을 잃고 헤매게 된다고 비판했다. 글을 짧게 쓰려고 짧게 끊으려 했는데 글이 짧아야 할 이유가 나에게 있었던가. 내가 저널이나 소설이 아닌데, 어떤 중심축을 위해서 내가 글을 단촐하게 니가 읽기 좋으라고 짧게 써야 한단 말인가. 내 리듬이 장황하고 루즈한 것인데 왜 너를 위해 짧게 이해시키기 위해, 그놈의 중심축을 위해 그 주변을 배회하는 듯한 그러한 글을 써서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것일까. 죽은 영혼을 위한 진혼곡이 내 글처럼 장황하고 장대해진다면, 나는 죽은 영혼들을 향한 장송곡을 지을 것이다. 짧은 허들을 단거리로 넘는, 100미터 안되는 거리를 주파하는 것을 원한다면, 나는 지리멸렬한 비극을 향해 더욱 더더욱 지루한 글을 쓰련다. 내 시 낭독 소리가 곡소리처럼 길게 늘어지면 누군가 이 긴 호흡을 따라 마라톤과 같은 여정을 내 글을 따라 이어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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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단프라 박스의 날카로움에 팔꿈치 끝을 베이고 나서야, 장대한 골짜기의 깊이가 내 앞에 놓여있음을 자각한다. 단프라 정사각형의 내용을 알 수 없는 상자에 적힌 목록표가 마치 자신이 내용인 듯 자처하고, 머리는 지가 마치 박스 안 내용물을 투시라도 하는 듯이 모든 것을 아는 체한다. 박스 구멍에 손을 넣고 단프라 질량을 마주쳐서야 내 디지털 대가리의 cpu가 연산과 입력 사이의 막대한 오류 앞에 놓여있다는 걸 자각한다. 손가락 끝의 이진법이 마치 자신이 물리적 입력의 완성인 것처럼 고집을 피울 때 연산 결과의 실패로 인한 것임을 신체의 고통이 증명한다. 증명의 결과가 사실의 인지인 양 다시 결과가 신경망을 따라 저장될 때, 감정의 우울이 지층을 이루고 어긋난 도표를 사선으로 그린다. 에잇, 에-잇 박스를 내동댕이치고, 씨발 씨발거리면서 침을 뱉는다. 이 잡것들. 내 1평의 영토만 한 것들. 그래, 그 잡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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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 22분

비둘기 두 번 우는 굴곡진 평면 위에서 여러 번 되접혀 날개짓하는, 깃털 가닥이 부르르 떠는 세 개의 시퀀스를 바라 본다. 한 번은 벤치 아래에서 고개 숙여 침묵하는 잡초 앞에서 서성거리는, 풍속의 흐름에 역행하여 까닥질하는 비둘기의 고개 가락에서. 그리고 인도 위에서 서성거리는, 성치 않은 다리로 절뚝거리는 노인의 뒤를 따라가며 같이 절름거리는 너울진 걸음질에서.. 마지막으로 나무 사이를 스치고 달리는 강아지 속도에 반사적으로 취하는 비둘기 무리의 파도질 위에서. 각각 쪼개지는 세 개의 시퀀스가 편집질 사이에서 마치 원래는 하나의 쁠랑 위에서 춤추는 것처럼 그렇게 서로를 뒤섞으며, 각자 한다. 시각적 평면에서 낙서질하는 비둘기 무리의 수상쩍게 맞아떨어지는 군무를 주시하다, 굴곡 사이로 추락하는 대기의 충돌이 그려진다. 무심히 쳐다본 한 편의 다큐 앞에서 내 손에 들려진 고전 소설의 이제는 상투적으로 전개되는 낡은 액자를 떠올리며 병든 비둘기가 차라리 고전 문학의 상투성보다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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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지질혈증

햇살에 산란하는 한 낮의 비둘기 떼 사이로 마실 나온 개 짖는 소리가 다리 사이로 지나간다. 햇빛이 눈 부신 게 개 짖는 소리 때문만은 아닐 텐데, 담배 냄새 가득한 노인의 걸음걸이가 오늘따라 꽤 가볍다. 지팡이로 걸어 다니는 낡은 무릎의 휘청거림이 잔디 곡률보다 큰 호를 그리며 공원 둘레를 따라 빙 둘러 걸어가는 군무가 보이기 시작하면 이제 넓은 공원 대지에는 부족민들의 자기 영토권 주장의 행위가 시작된다. 페이지 넘어가는 소리가 큰 듣기 싫은 트로트 소리가 스피커를 업고 퍼져나가고, 트로트 박자를 비집고 개 떼의 습격이 대지를 점령해 나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을 사냥하기 위한 늙은 전사들의 맹렬한 공격이 시작되면 개 떼를 거느린 아줌마의 고함 소리와 한 데 섞여 트로트의 괴음은 더욱 심란한 포지션을 굳힌다. 누가 저걸 듣는가. 취향이 있다고. 신의 축복을 선전하는 프로파간다 무리가 현수막 틈새로 침투해 들어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지는 십자군 원정과 동학 농민들 사이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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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

콧구멍 동굴의 넓이가 2센치는 족히 되어 보이는 멍해 보이는 얼굴이 이렇게 기억나지 않을까를 생각하면 어제의 재수 옴붙은 저녁의 공기가 오늘 아침까지도 계속 되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고 믿는 친구의 어색한 증언에 울화가 치미는 2센치의 콧구멍 동굴이 움찔거리는데 건너편 친구의 위로랍시고 던지는 말 한마디가 다시 가슴을 파고 들어와 숨쉴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하게 어제의 상처받은 곳으로 떠밀어 오늘의 지금 이 순간 위에 올려놓고 아직 식지 않은 아메리카노 설탕 두 스푼의 잔여물이 숟가락의 힘에 밀려 흩어져 가는 그 짧은 시간에 다시 친구의 눈치를 보며 코끝이 시려지는 강원도 기슭의 군부대 24시를 떠올리게 하는데 아메리카노의 온도가 여전히 뜨겁다고 아직도 투덜거리는 친구의 쌍 콧구멍의 움직임이 너무도 우스워 나도 모르게 킥 하고 웃자 친구는 다시 마음이 상해 나에게 눈총을 주고 서운함을 다시 콧구멍으로 표현하며 나에게 어제의 일을 토로하는데 자신의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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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판

눈이 낮게 깔린 검은 끼 가득한 얕은 빙판에 거친 바닥 신발이 걸리는 곳 없이 흘러가는 영하의 날씨가 매섭게 와닿는 아침이 있다 걷는 걸음이 조심스러워 얼음이 깨질 것이 무서워일까 신발이 닳는 것이 걱정되서일까 거칠 것 없는 검정이 두려워서일까 무심코 내딛는 걸음에 지지할 기회를 잃어버린 순간이 찾아오면 머쓱하게 둘러봐야 할 주변 반경 8m 시야 안과 혹시나 깨지지 않았을까 걱정해야 하는 내 한 줌의 고깃덩이 통증이 밀려오면 서서히 들러볼 필요성이 생기는 생채기를 굳이 지금 이 순간에 살릴 필요가 있을까 냉정한 척 털고 일어나는 것은 체면일까 의식일까 곤조일까 검은 살판 두 번 차며 슬쩍 원망하는 하지만 넘어진 무릎 굽이 책임은 온전한 나의 몫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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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제비

멸치 육수 우려내듯이 시간을 우려낼 수 있다면 그것은 멸치 육수를 우려낸 시간만큼이겠지 멸치의 짭조름함이 물 분자 사이 간격을 메꾸듯 시간을 채울 수 있다면 그것은 한 사발의 멸치 육수를 만들어 낼 수 있겠지 멸치가 열기에 퍼져가는 시간 만큼의 시간을 퍼뜨릴 수 있다면 진한 육수 한 사발의 공백 위에서겠지 멸치 육수가 누렇게 진해져 가는 그만큼의 시간을 축적할 수 있다면 멸치 농도 진한 육수 한 사발을 위한 것이겠지 한 사발의 수제비를 빚는다는 것은 그만큼의 시간을 소비하는 것이겠지 그래야만 멸치 육수 깊게 우린 한 사발의 수제비가 되는 거 겠지 양이 많다 저녁도 수제비를 먹어야겠네 지랄, 굶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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씽크홀

뒤돌아 본다 아무것도 없다 다시 앞으로 걷는다 걸음을 옮긴다 어디로 향하는지에 모를 걸음에 무감각해지려 하자 심부름을 상기하며 다시 걷는다 오로지 길만이 보이고 먼 목적지로 다가간다 걸음이 다시 익숙해질 무렵 고개를 돌린다 낯익은 얼굴? 어떤 움직임? 행위가 무색해지고 다시 걷는다 목적지가 다가오고 계속 고개를 돌리게 된다 없다 시선의 끝엔 아무것도 없다 우두커니 그 자리에서 시선이 머문 곳을 본다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본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도망쳐야 한다 고개를 돌리고 엄마의 심부름을 상기한다 무섭다 사실이 무섭다 엄마의 심부름만을 생각한다 그 생각에 고정한다 두부 한 모에 기대어 집을 향해 걷는다 시장을 향하던 걸음과는 다른 돌아오는 걸음 그곳이 나의 장소임에 안정감을 향해 내딛는다 점점 더 낯익음을 향해 걸어간다 낯익은 곳, 항상의 기억들이 감각에 붙고 언제 그랬냐는 듯 걸음이 경쾌해진다 낯익음의 중심, 안정의 중심에 다다라 문손잡이를 움켜쥔다 갑자기 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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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정극

새벽에 좋았잖아 아, 왜이래 귀찮게 계속 시끄러운 치정 싸움이 계속되는 오전에 깨지 않는 눈을 억지로 뜬다 무슨 다툼일지 너무도 선명한 실랑이가 바로 앞 창가에서 벌어지고 듣지 않아도 될 쓸데없는 시간이 연장된다 무의미한 싸움의 말로는 늘 한 쪽의 돌아섬으로부터 시작된다 돌아섬에서 다른 끝이 시작되고 싸움은 이제 커튼콜 옆에서 연극이 된다 극본 없는 싸구려 배우의 연기가 펼쳐지고 배우의 연기에 다른 인물이 장단 맞춰주고 한참의 전개가 지속된 후에야 쌍팔년도 연극이 끝맺는다 뻔한 결말을 향해가는 이미 아는 극의 말단에서 여자의 흐느낌 소리와 남자의 고함 소리가 불협화음이 되고 불협화음이 몇 분간 지속된다 극은 시야에서 벗어날수록 더욱 선명해지고 더욱 강렬한 가상이 되고 현실은 퍼져나가 전혀 다른 한편에서 돌아온다 극은 항상 빗나가지만, 그것은 적중할 필요가 없는 연극 가상과 현실의 간극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 위에서 떨어지지도 상승하지도 않을 긴장만을 그리면 될 뿐 해 뜨는 오전의 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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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산파술

어둠의 무서움을 모른다. 안개가 자욱하게 내려 앉은 스산함이 잠식한 밤의 무거움을 모른다. 사람들은 말한다. 눈앞을 쉽게 가늠할 수 있는 낮이야말로 생활의 터전이며, 태양의 가호 아래서 만이 우리가 생산적일 수 있다고. 늦은 밤의 어둠은 그야말로 무거움, 그 자체이다. 심리적인 것 뿐만 아니라 차갑게 식은 기체가 액체로 변하는 물리적인 것을 포함해서 깊은 밤의 어둠이란 정말로 무거운 것이다. 옷 위로 내려앉는 공기 중의 액체의 응결로부터 미지의 위험에 대한 자아의 응결을 느낀다. 무겁다. 지독하게 무거운 어둠이다. 어둠의 강렬함이 더욱 증강되는 야생의 산이라는 미로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악마들의 서식지 같은 장소일 것이다. 자정이라는 시간의 개념이 흩어질 때쯤, 어둠의 무서움에 떠밀려 산 아래로 향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어둠의 중심에 매료된다. 이 어둠의 근원지가 마치 산 속에 있는 것처럼 그렇게 느낀다. 어쩌면 달 역시 이 어둠의 중심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산 중턱에 머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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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천재 푸네스를 기억하며

푸네스를 만났을 때의 일이다. 푸네스는 이미 한쪽 눈과 한쪽 귀만 기능하고 있을 뿐, 다른 모든 신체의 기능을 상실한 후였다. 소문처럼 푸네스는 정말 나무에 돋아난 모든 새싹의 갯수를 알고 있을까? 그리고 그 잎의 잎맥 하나하나를 다 기억하고 그것을 구분할 수 있을까? 그것을 다 기억한다면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있을까? 푸네스에게 답을 듣기 위해서 알파벳 하나하나를 꺼내 보여주고 그것을 연결해서 단어 하나를 만드는 식으로 조금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렇게 인터뷰를 진행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푸네스에게 저 나무의 잎사귀가 몇 개 인지 물었다. 나름 가벼운 것부터 질문해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푸네스는 이미 신체의 기능을 상실하기 전의 모든 책과 세계를 다 기억하고 있을테니 말이다. 푸네스에게 숫자 하나를 꺼내서 보여주었다. 눈을 한번 깜박이면 yes, 두 번 깜박이면 no였다. 숫자 0을 꺼내자 푸네스는 눈을 한번 깜박였다. 의아해하며 1을 꺼내자 푸네스는 눈을 한번 깜박였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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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 리듬

아침에 몸이 무거워짐은 분명 오늘이 비가 오는 날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침에 뻐근해지는 허리를 두드리며 화장실로 간다. 마치 작업이 무슨 의식이라도 되는 냥 아침마다 머리를 감고 신체를 정결히 한다. 매일 아침 규칙적이다시피 한 배변 습관 때문에 변기는 늘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어 방바닥보다 화장실 더 깨끗해 보이기까지 하다고 말할만하다. 변기에 앉아 어젯 저녁에 읽던 책을 생각해 본다. 흄이 말한 허구란 결국 우리의 언어 세계 전반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계속되는 동일성을 재생산하는 헐벗은 반복을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결국 환각에 취해, 환상을 이용해서 끊임없이 우리의 본성이라고까지 자신들을 위장하고 있는 허구들을 우리가 이제는 거짓말쟁이가 자신의 거짓말을 믿게 되듯이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이 아닐까. 如是我聞. 금강경의 첫 단어가 생각난다. 이 말을 옮긴 놈의 구라인지, 정말 부처의 말인지, 누군가의 말을 또 건너 들은 이야기일 뿐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6번째의 네오는 정말 6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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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드르디를 쫒아서

한참을 걸었다. 내 앞의 이 조그마한 흑인은 지치지도 않는지 끊임없이 걷고 오르고 구르고 앉는다. 성경에서 신마저도 일곱번째 날에는 쉬었다고 하는데 방드르디는 쉬지 않고 움직인다. 방드르디의 발걸음이 어느 순간 멈추었다. 앞을 쳐다보았다. 앞에는 주변을 살피며 풀을 뜯는 사슴 한 마리가 보인다. 사슴은 풀을 한번 뜯고 나면 반드시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핀다. 풀을 뜯는 순간과 고개를 드는 순간이 교차한다. 고개를 든 사슴은 일정한 리듬으로 주변을 돌아본다. 주변을 돌아보는 이 리듬은 그것의 속도가 달라져도 변함없는 곡선을 그린다. 방드르디는 매우 느린 동작으로 활을 들어 올린다. 활을 들어 올리는 방드르디의 속도는 바람에 흔들거리는 나무의 속도와 같다. 매우 느린 방드르디의 속도에 긴장이란 없다. 방드르디의 이 세밀한 동작은 사슴이 나무들 사이에서 방드르디의 어떠한 흔적도 찾을 수 없게 만든다. 어느 날 읽었던 책이 생각났다. 거미가 이미 파리의 리듬을 포함하고 있지 않은 이상 어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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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이름 너머로

원정 삼일 전 하인에게 시킨 일을 확인하고 있다. 삼일 뒤면 있을 십자군 원정을 준비하며 국내에서 갑옷제작에 탁월한 능력을 가진 대장장이에게 플레이트 메일을 주문해놓았었다. 대장장이는 자신의 이름에 걸맞게 십자군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갑옷을 만들었을 것이다. 이전의 대장장이도 그러했고, 그 이전의 대장장이의 작품 역시도 훌륭했으니까. 기대에 부응하듯이 하인이 가져 온 갑옷은 흠잡을 곳 없는 예술품이었다. 마치 신이 입고 온 것 같은 환영이 보일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것은 그야말로 갑옷이었다. 이 오랜 준비 기간의 원정은 너무 무거운 갑옷을 입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동양의 전사들에 대한 기이한 소문은 익히 알고 있다. 그들은 갑옷을 걸치지 않고 싸우는 그야말로 형식 없는 전투를 즐기는 야만인들이라 했다. 실제로 이전 선발대로 출발했던 사람들의 말로는 그들의 칼끝에 번쩍이는 빛을 보는 순간, 아군들이 낙마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했다. 긴 원정이 될테지만 그들과의 전투를 생각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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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마이 블로그 리포트] 인기없는 블로그 현황

원래 내 블로그에는 손님이 없다. 아마 다들 아시겠지만 ㅋㅋㅋㅋ 2024 마이 블로그 리포트 블로그 마을로 초대합니다: 지금 내 블로그 마을을 확인해 보세요! event.blo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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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은 진동의 입구에서

요란하게 파열하는 쇳소리에 정신도 같이 동강난다 동강나는 정신 중 하나가 눈치채고 파열하는 쇳소리를 향해 왜 이렇게 주변 사람을 신경쓰지 않느냐며 소리치지만 다시 찾아오는 이성이 먹고 사는 이들의 몸부림을 왜 막느냐며 동강난 정신을 나무란다 눈치볼 줄 모르는 쇳소리에 다시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만 생존의 문제에 놓인 이들에게 나의 존재야 무슨 의미가 있을까 눈치 없는 남녀의 목소리가 귀를 밀고 들어오면 그 소리를 다시 그 입으로 밀어 넣어버리고 싶지만 그들이 무엇을 잘못했단 말인가 오늘도 책상 앞에서 무능한 나에게 들이닥친 파도 같은 것일 텐데 사소한 잡소리에 화낼 줄 알면서도 멀리서부터 퍼지는 부정한 것들에는 화낼 줄 모르는 귀머거리일 뿐일 텐데 거울에 뜨는 서글픈 얼굴은 무게가 내려앉은 고통에 찌든 좀비의 얼굴인가 사소한 잡소리에 화내는 무능한 자의 얼굴인가 좀비의 얼굴로 파열난 정신을 무심하게 쳐다보는 것이 내 일일까 다시 고쳐 앉은 자세로 동강난 정신을 하나씩 물어 뜯으며 찢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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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흔한 이야기

이른 아침에 빈 속에 끓여 마시던 커피를 생각한다. 빈 속의 커피는 유약한 위장을 밀고 들어와 쓰린 통증을 유발하지만, 그 불편함을 즐기는 괴상한 이에겐 이제는 무던한 일상의 하나로 자리매김한다. 뜨거운 물을 끓이며 물의 온도가 일정치를 넘어가면 액체는 공기 중으로 기화하며 상태를 변화하는 시점이 온다. 그 시점이 눈앞에 보이는 그 순간이 물을 커피에 부어야 하는 순간이다. 커피를 믹스 종이로 저을지 나무젓가락으로 저을지 고민하다 티스푼 하나를 집어 커피를 젓는다. 색에 변화가 없이 돌아가는 커피 표면을 보며 이 커피 돌아가듯이 오늘 하루도 그러기를 생각하며 미소 짓는다. 티스푼을 남은 뜨거운 물에 씻어 다시 꽂아두고 책 꽂힌 책상으로 와 다시 앉는다. 밍밍해진 커피의 맛에 뒤늦게 밀려오는 설탕의 단맛과 마지막의 커피 씁쓸한 맛이 분리되는 시간을 발견하는 자신의 입을 감각 하며 천천히 커피를 넘긴다.1) 컥... 커피가 저항 없이 대량으로 목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식도에 얕은 화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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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소망상

6평 남짓한 원룸 구석진 그리마의 다리 개수를 따라, 헤진 운동화 끈의 미로에 내 영혼이 유착될 때, 과도한 낭만주의적 서사가 나를 길냥이 어미 찾는 소리의 목젖 진동으로 끌고 간다. 오랜만에 보네 이웃의 인사가 마치 내 생활이 잘못된 것인 냥 자신들의 삶의 정당성 확보에 이용될 때, 나는 그들의 거짓말에 따뜻하게 냉대한다. 산화된 문고리에 걸린 씁쓸한 그들의 말이 계속 머리에 되새김 되면, 큰일보다 그런 사소한 것이 내 발목을 잡는다는 것에 더욱 화가 난다. 자조적인 무게가 글에 덧씌워져, 염세주의적 그림자가 회색으로 돌변하게 되면, 나의 회색이 그러한 반동적 질량이 되지 않도록, 나는 글을 토해야 한다. 글이 나의 구역질로 변질되면, 외려 사회성의 무게로 무거워져 버리면, 내 소비적 언표가 무슨 문학적 가치가 있을지. 글이 오직 내 원한의 통행로에 불과하다면, 내가 서술하는 건 고작 일기장의 설움인데, 윤동주에게서 한 걸음도 못 벗어난 것이 아닌가. 어떤 족쇄로 내가 내 발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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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

냉장고 문을 열고, 스며드는 냉기에 멈춘 손가락을 보다 냉장고 문을 열었던 목적을 잠시 두고 온 것이 떠오른다. 왜 그 문을 열고 거기 서 있었던가. 그런 생각을 하다 어제 사놓은 바나나 한 다발을 발견하고 슬며시 문을 닫는다. 천천히 식탁으로 걸어가 검은 반점이 하나, 둘씩 늘어가는 바나나 표면을 쳐다 본다. 표면의 변질이 아득히 멀다고 생각했던 내일을 비춘다. 무리에서 하나를 떼어내고 가만히 멈춰서서 조카의 한 마디 손이 움켜쥐던 어제의 바나나 생각에 한참을 웃다가 오늘에 이른다. 조카의 라즈베리 입술에서 흘러 나오던 얕은 노랫소리가 인어공주의 노랫소리인지 나도 모르게 거슬러 어떤 졸업식 한 순간으로 접어든다. 오늘이 어제인 듯 어제가 그 날 이듯 날짜의 무력함이 떠오르고, 내 손에 쥐어진 바나나를 보다가 냉장고 입구에 넣어둔, 시원해진 스킨로션이 떠오른다. 이제 품절된 남성용 스킨의 녹색병을 쳐다보다, 아! 물 올려야지 냄비에 물을 붓는다. 한참을 꿇인 후에야 위장약 한 봉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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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벽

일곱 살, 친구의 집에서 작은 블록 장난감 하나를 손에 들고 나왔다. 최초의 도둑질이었다. 그 최초의 행위는 삶에 기묘하게 비집고 침투해 들어오기 시작한다. 열 한 살, 동네 슈퍼마켓에서 작은 소세지 하나를 훔쳤다. 소세지를 들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제자리에 놓고 가게를 나섰다. 이미 훔친 그 소세지를 보자 흥미가 떨어졌다. 중학생,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다. 시험이라는 종착역이 정해진 학교의 수업 덕에 거의 반복되다시피 한 학교 교사들의 말이 너무 뻔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수업이 이미 훔친 소세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 기울일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눈에 들어온 것은 미술 교과서였다. 그림들은 교사들이 말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들로 가득 차있었다. 학교에서 사기를 배우고 있다고 생각하며 미술 교과서를 펼쳐 그림들을 모작하기 시작했다. 매일 다른 화가들의 그림을 훔치면서 자신의 도둑질을 더욱 심화시켜 나갔다. 기묘한 일이지만 유명한 화가들의 그림들을 훔칠 때마다 훔친 것이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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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콜중독자

캥기지 않는 술자리엔 늘 무언가 놓고 온다 주머니를 뒤져보며 그날의 기억을 찬찬히 더듬는다 자정의 그림자가 맥주를 들이키고 앉아 내일의 낚시가 심통치 않음을 점칠 때 서빙하던 남자의 손 위 접시 안주가 흔들린다 놓고 온 것이 무엇인지 도통 생각나지 않는데 주머니의 빈 허전함이 계속 맴돈다 언성이 높아지던 그 날의 가벼움이 기화되는 그 순간에 나는 무얼 하고 있었더라 그렇게 놓고 온 것이 무엇인지를 캐보는데 그 날의 술자리가 생각나지 않는다 그 날의 술자리에서 울려 퍼지던 혁명의 노래가 김광석인지 조용필인지 어설프게 스쳤던 옆자리 아가씨의 허벅지가 실수였는지 에로스였는지 휴대폰 주소록 후배의 번호로 어제의 술자리를 되묻는다 있지도 않았던 후배의 말에 다시 놓고 온 것의 희미함이 떠오른다 어제의 가게로 가 주인 잃은 물건을 묻고 나서야 뒤늦게 정체를 깨닫는다 내가 어제 한잔도 마시지 않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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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문턱을 넘어가야 하는 시간이 도래했는데, 발걸음이 무거워 문턱을 넘어가지 못한다. 어제저녁 자정의 어둠이 어깨를 찍어누르고, 나는 문턱의 높이만큼 무릎을 들어 올리지 못한 채로 그 앞에 갇혀있다. 기껏해야 한 걸음인데, 문 너머의 책상은 이미 파미르 고원 위에서 냉엄한 장대함 뒤로 숨고, 나는 책상 앞으로 가야함을 알고도 그 이념의 의무감으로 한걸음 조차 못 내딛고 있다. 언제부터 이념이 중력을 가졌더라... 한 줄의 생각이 머리를 스쳐가면 문턱을 넘는다는 것이 기껏해야 내 체중 60kg의 무게만큼의 체세포를 운반하는 것일 뿐이라는 허망한 생각에 내 무거운 이념이 기껏해야 한 줄도 못 되는 박약이라는 자각이 든다. 결국, 글은 전부 반성문으로 돌아가고 글은 전체가 의무의 질량으로 침체되고, 나는 결국 회의주의자라는 가면을 쓴 부정한 나르시스트가 되버린다. 지랄... 쓴 커피를 목에 들이붓고 내 목구멍을 태우는 커피의 온도에 생각이 태워지고 나는 문턱을 넘어간다. 그냥 욕 한 번이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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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메피스토

주변으로부터 늘 재능이 없는 화가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살고 있다. 자신의 비천한 재능이 언젠가 노력이 틔워줄 것이라 생각하며 평생을 화가로 살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러한 결심과는 다르게 그림은 늘 형편없는 묘사와 물감들의 질료로 되돌아가버리는 물성들의 압력만이 화폭에 남을 뿐, 결코 그곳에서 한걸음도 나아갈 수가 없었다. 어느 날부턴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아주 만약에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라도 그림을 잘 그릴수 있게 된다면 영혼정도는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러한 망상은 망상일 뿐이다. 악마에게도 팔 수 없을 자신의 너덜해진 영혼을 부여잡고, 저녁달의 끝에서 술에 팔려 가고 있었다. 술이 끌고 가는 어두운 골목 어귀에서 술의 환각인지 달의 환상일지 모를 어떤 형상을 발견한다. 그 형상은 속삭였다. 신도 주지 않은 것을 자신은 줄 수 있노라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으며, 그것은 오로지 자신만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알코올의 냉기와 신체의 온기 사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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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 정의

대한민국에서 2032년 최신에 발간된 통합 국어사전에는 사과에 대한 정확한 사전적 정의가 있다. 이 정의를 통해서 기존의 사과 라는 단어에 대한 모순들은 전부 사라지고 객관적인 서술만이 보존되게 되었다. 국어사전 ‘ㅅ' 항목에 이렇게 명시되어 있다. 사과 : 한글에서 두 개의 자음 'ㅅ', ‘ㄱ’, 세 개의 모음 ‘ㅏ’, ‘ㅗ’, ‘ㅏ’로 구성된 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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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 핀하스 - 조화, 리듬 그리고 평면

미지의 세계에 대한 서지학 조화, 리듬 그리고 평면 (깊은 울림의 생산) 1999년 9월 30일 강의 리차드 핀하스 이제야 인류에게 음악이 감정의 형상적 언어라는 것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후 우리는 음악가들의 작품을 통해 그들의 충동적인 체계를 명확하게 인식하는 법을 배울 것이다. 사실, 음악가들은 이 방식을 그 자체로 드러내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음악이 감정의 형상적 언어[le langage figuré]라는 것, 즉 직관 전체를 식별하는 능력을 포함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니체가 음악가에 대해 단언한 것이고, 그는 아무런 의심 없이 그것을 모든 가능한 음악들로 확장하려 했다. 깊은 울림을 가진 생산은 특이한 직관 같은 것을 환기시킨다: 양화되거나 질화되는 원리가 될 수 있는 힘들의 관계. 에너지의 양들(양자들)과 질-힘들(정서들)이 있다. 음악적 ‘작품’은 에너지 양의 결정을 촉진하고 정서적 존재들의 힘의 결정을 표현한다. 예를 들면: ‘메탈’ 음악, 물-되기[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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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적 공포

새벽에 깨어나 익숙치 않은 어둠의 무게를 느낀다. 고개를 돌려봐도 아직 어둠에 적응하지 못한 눈 때문에 시선이 무언가에 가로막힌 것과 같은 느낌을 받는다. 주변을 두리번 두리번 거린다. 하지만 뭔가가 있는 것 같은 느낌만 올 뿐, 무엇이 있는지 어디 쯤에 있는지 알 수 없다. 빨리 눈이 어둠에 적응해야 한다. 하지만 나를 바라보는 어떤 시선의 기운은 느껴지는데 도저히 그 시선이 주는 방향을 인지하지도 또 그 정체를 알 수 도 없다. 답답함, 이것은 오히려 두려움이기도 했다. 다시 눈을 감았다. 내려앉은 눈꺼풀이 덮은 시야는 눈꺼풀에 덮이지 않았을 때와 하나도 다르지 않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차라리 눈을 감고 다시 잠들고 싶다. 하지만 알고 있다. 한번 잠에서 깨면 쉽게 잠들지 못한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좁디좁은 원룸은 가라앉은 심해의 어느 바닥처럼 느껴진다. 누르고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음에도 무언가가 압박하고 있다는 느낌에 휩싸인다. 대체 이 좁은 원룸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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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위한 작전 개론서

길을 가다 책 한 권을 주었다. 지금은 없어진 옛날 출판사의 로고가 새겨진 낡은 책이었다. 이 낡은 책에는 언뜻 어느 책에서 본 학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프리드레흐드 지르 미셰예베보 보르헤게스 3세. 이 학자의 이름은 이전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과 『앙띠 오이디푸스, 그 후』라는 책에 명시된 적이 있는 이름이었다. 이 학자의 책이 한 번도 번역이 된 적 없다 들었는데, 이 출판사에서 번역된 적이 있었다니! 책을 챙겨 집으로 와 책을 펼쳤다. 책의 서문은 다음과 같이 시작하고 있었다. 소년이 강가에서 돌을 던진다. 소년은 돌을 던지는 요령도 방법도 그리고 돌을 던지는 이유마저 모른다. 하지만 소년은 돌을 던지려 한다. 소년이 돌을 던지기 위해서 처음 자신이 던진 돌을 골라야 한다. 그런데 소년은 한 번도 돌을 던져본 적 없기 때문에, 그 돌이 던지기에 적합한지 역시 모른다. 소년은 다만 자신의 손에 알맞은 돌을 잡고 한번 던져본다. 돌은 당연히 강의 바닥으로 가라앉고 넓게 퍼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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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구역질

텔레비전에 나오는 전쟁의 실상을 바라본다. 작은 식탁에 앉아 점심을 먹고 있다. 습관적이다시피 해진, 이제는 기표만 남아 반응하는 듯해진 헛구역질 습관을 바라본다. 오후의 여름이었다. 할머니는 손자들의 집을 찾아다니시며, 이제는 아무도 없는 집에서 벗어나, 고독을 벗기 위해 사람을 찾아다니시곤 했다. 사람 있는 곳이란 자식들의 집이었으리라. 아들의 집을 찾아가면 늘 있는 아들의 아들딸들을 바라보며 이내 흐뭇하신 듯 많은 것을 챙겨주려 했다. 할머니의 일시적 분주함이 싫지 않았고, 할머니의 모습은 이내 아버지가 느꼈을 느낌과는 사뭇 다르리라 생각했다. 먹고 살기 힘들던 할머니의 젊은 시절에 아버지란 늘 앞선 끼니 걱정의 압박 속에서 힘겨운 것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한번 건너 뛴 아들딸들은 이제 그러한 무게를 벗어던진 그야말로 옅어진 걱정만큼이나 더욱 뚜렷해진 아이들 그 자체일 것이다. 할머니의 어린 것들을 향한 순수함에 대한 어리석은 반작용. 할머니의 쪼글쪼글해진 손으로 건네주시던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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콧털

콧구멍 사이 콧털이 성가시게도 코 안쪽에서 찔러와 재채기를 불러온다 손으로 밀어 넣기는 애매하고 과감하게 뽑자니 아플 게 싫다 혹여 코 밖으로 삐져 나올까 손가락으로 밀어 넣지만 날숨에 떠밀려 코 밑으로 살며시 얼굴을 내밀고 다시 밀어 넣으면 곧 다시 빠져 나온다 콧털과의 장시간의 실랑이 오늘따라 내 폐의 신선함이 왜 이렇게 얄미운지 다시 콧털이 코 아래서 흩날거린다 멧돼지 어금니처럼 뻗어 나온 것이 신경 쓰여 에라 뽑자 뽑아 밀어 넣을 땐 그렇게 쉬이 들어가더니 잡으려니 왜 안 잡히누 뽑혀라 뽑혀 좌우로 코를 벌렁거려 가며 손가락에 온 신경을 기울이지만 굵은 손가락 피부의 건조함에 밀려 계속 안으로 숨는다 한참의 신경전에 쥐가 날 것 같지만 만만치 않은 콧털은 손가락에 반응하듯 휘어지고 동굴 속으로 몸을 숨긴다 크게 휘어잡고 힘껏 힘을 주자 이런 베러먹을 집게 손가락 위에 놓인 바람에 흩날리는 짙은 쌍곡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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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토르트

3분 요리 익어가는 1분이 시작되는 냄비 끓는 순간에서 아직 만나지 않은 여자를 생각하다 어제 떨어진 보리차를 떠올린다 주전자 가득 부은 2L가량의 물에 여자를 띄워놓고 다음의 만남을 생각하다 보리차 가라앉는 불순물의 잔상이 남아 서둘러 마트에서 결명차 한 팩을 사서 돌아온다 돌아오는 길에 마주친 스키니진 포니테일을 한 여자의 뒷모습에서 사놓고 아직 뜯지도 않은 초코바 하나가 떠올라 서둘러 냉장고 문을 열고 한쪽 구석에 놓인 약봉지 한 켠에 빈자리를 발견한다 어제 저녁 먹어버린 배고픈 초코바가 그제서야 생각나 빈자리에 씁쓸함을 느낀다 커피나 마셔야지 쓰게 탄 믹스 커피에 물을 붓다 갑자기 엊그제 위통이 생각나 냉장고 남은 우유를 커피에 넣으며 이정도면 괜찮겠지 되뇌며 식어진 커피에 아직 다 읽지 못한 책 한 권이 생각나 다시 책상 모서리 한 켠의 책을 꺼내 서둘러 하루를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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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골

달력 넘어가는 날에 걸려오는 전화란 참으로 귀찮기 그지없다 실없는 인사의 의미 없는 형식이 전화를 울릴 때 가슴 한 켠에 쳐다보지도 않던 외로움이 자신을 드러낸다 굳이 그 날이 아니어도 할 수 있는 것을 굳이 그 날에야 한다는 것은 아마도 쓸데없는 것에 목메는 심심함이겠지 수화기 너머 빈 소리가 끝나고 의례적인 말들이 더이상 필요 없을 때 굳이 다시 걱정을 꺼내야 하는 쓸데없음이 발목을 붙잡는 것이 너무도 답답하다는 것을 정말로 모르기 때문일까 까마귀가 굳이 날아야만, 그렇게 해야만 배가 떨어지는 것은 아닐진대, 심약한 나의 고약한 심보일까 굴뚝에 굳이 연기를 피우려는 그들의 아량일까 겉치레 가득한 낭비의 소비가 빼기에 빼기를 더하는 듯한데 굳이 그러한 빼기를 더하여 없던 걱정을 더해야만 할까 기화하는 온기를 붙잡는 심보에 욕을 하는 것은 나의 수동성들에 가하는 벽 너머의 일침이겠지 .....그렇겠지 빈곤한 메세지에 답해야 하는 빈곤한 가슴의 냉담함을 알리기 위해서는 침묵을 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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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밤의 개

밥이 싫어지는 날에 억지로 우겨 넣듯이 먹은 밥에 체하고 나서야 내가 먹은 것이 무언지를 안다 쉽게 넘어가지 않는 밥을 넘기면서 우겨 넣은 것은 수화기 너머 부모님의 고통이었을까 술에 꼴리는 날 부모님의 쓴소리가 술의 뒷맛 같을 때 내가 평생 이렇게 살 놈이라는 결정이 뒤따라 나온다 무너지는 기대와 구멍 없는 하늘의 쳐다볼 때 끝까지 땅을 기어가는 술취한 한량의 갈지자 걸음은 벽을 스치듯 걸어가는 집 나온 개의 그것이다 무작정 걸어가는 다리와 끌려가듯 뒤따르는 정신의 혼란 위에 오늘의 일을 새기며 목구멍으로 올라오는 진한 소주의 향을 노래로 뿜어낸다 김광석의 목소리에 술기운을 올려 놓으며 갈라지는 쉰소리로 지르듯 부르는 서른 즈음에는 외침일까 비명일까 노래인지 말인지 비명인지 모를 소리를 토해내며 소주섞인 침을 뱉는다 무너지는 태양과 희미해지는 달빛 아래서 구름에 휩싸인 검은 하늘의 그림자에 짓눌려 무너진 하루의 뒤를 따르듯 몸이 가는 방향으로 소리를 지른다 부서짐과 무너짐, 떠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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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25일 창문을 열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엊그제 내린 비가 아직 바닥에 내리고 있는지 여전히 창문 밖의 땅은 여름의 해를 쳐다보지 못하고 있었다. 초여름 비가 원인일까, 책의 무게가 어제 같지 않고, 어제 읽었던 문장의 끝에서 페이지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다시 어제의 그 문장 앞에서 머무르고 있다. 어제의 문장이 어떤 인력을 발산하는 것도 아닐진대, 머리에는 글이 입력되지 않고 계속해서 같은 자리 주변만을 맴돌고 있다. 나는 지금 책을 읽고 있던 걸까? 문장은 도대체 진전을 보이지 않고, 목이 말라온다. 몇 그램 안 되는 그 종잇조각의 중력에 끌려 일어서지도, 다음 장을 넘기지도 못한 채로 같은 자리, 같은 자리, 같은 자리. 끊임없이 맴도는 미로 같은 시간이 반복되고, 책상 앞에 갇힌 채로 방은 미궁이 되고 이미 미궁 안에서 길을 잃었다. 같은 언저리를 돌던 어느 때에 어린 여자들 목소리가 들린다. 어린? 목소리의 발성의 날카로움이 창문 틈새를 파고들 정도로 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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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

두 손 뛰는 여름에 한창의 더위가 흡수되는, 뜨거운 열기를 머금은, 채 내 장기를 지나 엄습해 오는 답답함이 고동치는 시간에 무슨 불안이 없다고 큰소리칠 수 있을까. 편협한 말 한마디 던져 놓고 입맛 없다며 숟가락 놓아버린 나의 무심함에 상처 입은 여자의 한숨을 모를 리 있을까. 그럼에도 입 다물고 한마디 않은 채로 사라져 버린 뒷모습을 굳이 다시 기억하는 건 역시 어젯 저녁의 성가신 모기의 날개짓을 목격해 버린 탓이겠지. 목소리 낮춰 지난주의 그 모습이 생생하게 보인다. 소리쳐 봐야 기껏해야 세 발자국 이상 벗어나지 못하는 무거운 여름 하늘에 눌려버린, 가라앉아 버린 소리인 것을. 인터넷 뉴스에 떠도는 북미의 평화야 내 눈앞의 여자에 대한 욕구보다도 못한 것이, 별것 아닌 사소한 코앞의 하찮은 호르몬 영향에 보편적 평화 따위 머리 바깥으로 밀쳐버린 속 좁은 영혼의 좁디좁은 시야를 어떻게 제대로 된 인간이라 부를 수 있을까. 세계의 보편성이 나의 보편성이 될 수 있는 인간이었으면 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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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판타지

1984년 봄. 햇살이 눈부신 그 날의 기운을 기억한다. 기억이라기보다 사건이 새긴 각인 같은 것일 것이다. 어린 날, 어머니의 손을 잡고 아버지의 품에 안겨 있었다. 부유하지도, 그렇다고 찢어지게 가난하지도 않은 집은 주말이면 달에 한 번, 어머니의 기분 전환을 위한 아버지 나름의 이벤트로 교외로 놀러 나가곤 했다. 이 날도 그러한 이벤트의 날이었다. 하지만 이 날의 이벤트는 너무도 강렬했다. 밤의 음습한 기운이 범죄를 불러온다고 누가 그런 헛소리를 지껄였는지 모르지만 그 날로 인해 이런 헛소리를 믿지 않는다. 밝은 햇살의 강렬한 양의 기운을 비집고 들어오는 음습한 밤의 기운이 있었다. 여느 날의 평범한 다른 가족들처럼 웃으며 길을 나서는 가족 앞에 나타난 것은 밤이었다. 밤은 그 사람 안에서 태어나고 그 사람에 의해서 펼쳐지는 것이었다. 검은 스프라이트의 칼라 티셔츠를 입은 안경을 쓴 평범하디 평범한 한 남자. 그 남자는 다른 사람 속에서 결코 드러나지 않는 너무나 평범한 모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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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침

반복되는 기침이 병으로 이끌고 간다는 것을 느낀다. 기침의 반복이 뱉는 것은 단순히 공기가 아니라 건강일 것이다. 기침이 지속될수록 몸이 기침에 희석되어 증발됨이 느껴진다. 서서히 소멸해가는 신체를 부둥켜 안은 것은 자아가 아니라 감각이었다. 자아는 기침 소리의 반복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서서히 잃어가고 매번의 기침이 정신 사이사이를 파고, 들어오고 자아의 균열을 감지한다. 기침에 의해 서서히 균열되어가는 자아의 파편화와는 반대로 신체의 무게가 너무나 육중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몸은 이 증발의 지속 중에도 끊임없이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요구한다. 몸이 요구하는 것을 들어준다. 몸은 자신의 복구를 원하고 복구를 위해 자신의 결핍을 채울 것들을 하나, 둘씩 구비한다. 복구는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증발의 속도가 복구의 속도를 앞서가고 있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무너져 내리는 육신을 보며 자신이 지금까지 쌓아놓은 탑이 기껏해야 이러한 기침의 행위 하나에 무너져 내리는 허무한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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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12시 자정의 택시 기사의 양손은 다락 한 켠의 거미줄이다. 기사의 얇은 목소리, 고막이 될 때 4년 전 겨울의 빙판을 걷는다. 파열음 목소리가 얇게 찌르면 삼 년 전 겨울 같다. 두 가닥의 손가락이 핸들을 감을 때 어쩌면 올려진 것은 여덟 살 아들의 기침일까. 왜 요새 이렇게 세상이 흉흉하냐며 오천원을 달리는 기사의 말에 흉흉함이 흉흉해지는 찰나를 목격한다. 내리는 시트 빈자리 순간이 염려되 옷깃을 여민다. 닫히는 문이 기사의 목소리 같다. 닫히는 소리가 그의 오른손 같다. 그래서 없는 주머니로 거스름돈 기사에게 손을 건넨다. 바람이 찹니다. 담배라도 한 대 태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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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대하여 1

이것은 누군가의 이야기다. 며칠 전부터 연애의 홍수에 빠져 있다. 학교 앞 편의점에서 처음 만났다. 눈이 마주친 두 사람은 마치 전생부터 만나온 것처럼 서로를 알아봤고, 전생에서부터의 그 뜨겁던 감정이 여전히 사그라 들지 않았는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신의 번호를 건넸다. 저녁마다 떠오르는 그녀의 얼굴을 생각하며 그녀에게 달려가기를 원했다. 그녀의 마음과 일치했는지 두 사람은 얼마 안 가 연인이 되었다. 틈만 나면 자신의 연인을 생각했고, 그녀의 함께할 모든 것이 행복이라는 달콤한 꿈을 꾸었다. 두 사람은 눈만 마주쳐도 정열에 휩싸였고, 그 뜨거운 느낌이 서로를 끌어당기며 처음엔 눈길로, 그 다음엔 말로, 그리고 얼마 안가 피부로 서로를 느끼기 시작했다. 피부로 처음 사랑을 시작한 그 날의 불길은 쉽게 죽지 않았고, 두 사람은 이 뜨거움은 영원히 사그라 들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두 사람은 눈만 마주치면 서로의 육체를 탐했고, 욕정은 사랑이 불러일으키는 불꽃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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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대하여2

오랜만에 친구들과 모였다. 친구들은 술만 들어갔다 하면 여자 이야기 삼매경에 빠진다. A라는 친구가 입을 열었다. 아 내가 요즘에 여자를 만나는데 말야. 아 여자친구 말고 다른 여자. 안들키고 만나면 되잖아. 아냐, 잘 생각해봐. 어떻게 한 여자랑 오래 사랑을 하겠어. 사랑, 당연히 사랑은 영원하지. 한 사람이랑은 안되서 그렇지. 야, 이 여자 저 여자 많이 만나야지, 결국 경험해봐야 알잖아. 웃기지마. 아, 사랑은 영원하다니까. 말했잖아, 그냥 한 여자랑 영원하지 못한 것뿐이지. 나는 사랑 믿는다니까?. 친구들은 미친놈 소릴 했지만, 그 친구 말대로 그것도 사랑이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B라는 친구가 입을 열었다. 야, A, 너는 말이 안돼. 사랑 영원해. 나는 한 여자랑 영원하다니까. 한 여자랑 만나면 캐도 캐도 새로운 게 보인다니까. 진짜야. 내 여자친구 처음 만날 때 통통했지. 내가 마른 여자 좋아하니까. 운동을 해서 살을 뺀거야. 이야, 원석을 캔 기분이야. 진짜 예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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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어제같이 무거운 몸을 일으켜 세우려 이불을 비벼보지만 몸은 일어나지 않는다. 몸과 이불이 붙은 건지 아무리 일어나려 해봐도 일어나질 못한다. 몸을 비벼보지만, 이불은 감촉은 분명 이불이다. 하지만 이불에서 일으켜 세우려 발버둥 치는 몸은 이상하게 이불에서 나누어지지 않는다. 부벼지는 이불의 촉감이 좋다. 하지만 일어나야 한다. 어제 미루어 뒀던 원고를 생각했고, 내일 마주해야 할 타인들을 생각했다. 오늘 만나야 할 인연은 오늘 만나야 하는데 몸이 바닥을 부비고, 도통 일어나려 들지를 않는다. 그러기를 몇 분이 지났을까. 일어나기를 포기하고 집 안을 기어 다니기 시작했다. 배는 고프고 무엇인가 뱃속에 넣어야 했기에 움직이지 않을 수는 없었다. 냉장고를 열지 않고서는 허기와 이별할 방법이 없는 걸 알고 있다. 허기와 이별한다 생각하면서 되먹지 않은 표현에 킥킥 웃는다. 냉장고로 가려던 몸부림을 멈추고 위에서 열망하는 당분을 보충해야겠다는 생각에 잠시 멈춰서 고민에 빠진다. 늘 일주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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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광합성하는 인간 주변을 서성거리다 길가에 위치한 작은 동네 서점 하나를 발견했다. 그곳은 무인서점이라 내가 기대했던 책들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그 당시는 멘부커상 수상 소식으로 한 차례 큰 파도가 휩쓸고나서 한참이 지났던 시기였다. 개인적으로 베스트셀러는 읽지 않기 때문에 쉽게 지나칠 수 있었겠지만 이상하게 이 책에는 뭔가 꽂히는 것이 있었다. 전에 영화로 접했을 때 부족한 감흥에 대한 보복같은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수상작이라는 사교계 기호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 때문이었을까. 아무튼 책을 구입해서 좁은 책상에 앉아 읽기 시작했다. 평단이나 많은 리뷰에서는 전쟁에 대한 이야기나 이전 작가의 작품들을 이야기하면서 민주화운동 등과 결부된 이야기들 같은 것 아니면 지난 몇 년간 이슈화됐던 해괴한 방식의 페미니즘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이미 오가고 있었지만, 이상하게 그런 부분들은 책을 읽는 동안에 그리 크게 와닿지 않았다. 오히려 나에게는 나무가 되어가는, 진정으로 자연에 소속되어 가는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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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

카운터 옆 초콜릿의 개수가 21개, 엄마의 잔소리가 2개였으니, 초콜릿의 당도와 엄마의 데시벨 사이에는 3개의 차이가 있다 오후 6시에 걸려온 수화기 너머 목소리가 2개, 저녁 9시의 메시지 속 글자 수가 7개였으니, 수화기 색과 메시지의 번호 사이에는 1개의 차이가 있다 어둡게 내려앉은 저녁의 색은 6개, 식은 된장찌개 속 두부의 개수가 17개니까, 저녁의 채도와 된장찌개의 감칠맛 사이에는 2개의 차이가 있다 앞에 걸어가는 여자의 왼쪽 귀에 귀걸이가 3개, 그 옆에 서 있는 남자의 시곗바늘이 3개가 있으니, 여자의 오른쪽 손가락과 남자의 반지 사이에는 2개의 차이가 있다 끓고 있는 주전자에 피어오르는 증기의 개수가 13개, 찜통기 위 호빵의 연기의 각이 8개가 있어, 주전자의 진동과 호빵의 온도 사이에는 3개의 차이가 있다 공원 앞 자전거의 바퀴살 수가 30개, 목줄 묶인 강아지의 이빨 개수가 20개니까, 자전거의 기어와 강아지의 꼬리털 사이에는 2개의 차이가 있다 오른손에 들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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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량

안 바쁘냐 물으면 바쁘다고 대답해야 하루가 지나간다 바쁘다 말하고 안 바쁜 한량의 하루란 안 바쁜 일들의 바쁨들의 나열이다 가치 없는 것에 몰두하는 노력의 가치가 가치 없다는 걸 가치 있는 일을 한다는 사람들의 말에 기대어 중얼댄다 안 바쁜 하루의 바쁜 시간을 보내고 엉덩이가 짓물어지게 앉은 자리의 찌든 내에서 가치 없음의 가치 있음을 스쳐본다 바쁜 하루를 시작하는 옆집 노동꾼의 굵은 손마디를 안 바쁜 오늘의 시간을 보내는 베짱이의 우화를 생각하며 나 역시 그러한 시간을 지내야 한다는 걸 다시 상기하며 좁다란 변기 한 켠의 솔을 꺼내들고 청소를 시작한다 아직 식지 않은 커피의 온도를 손가락에 전달하며 안 바쁜 바쁜 척의 거짓말을 시작해본다 간혹 울리는 전화의 벨소리가 더 이상 가치 없어진 안 바쁜 이의 바쁜 하루는 창 너머 들리는 대학생들의 무기력한 목소리에 힘입어 다 같은 고통을 느낀다는 기쁨 속에서 더욱 가치 없이 내려 앉는다 털어내야 할 먼지 쌓인 서랍장 위를 마른 수건으로 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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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타임

점심에 먹은 부실한 양의 스파게티를 떠올리면서 차를 한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마시던 믹스커피를 지겹다고 느낀 적은 없지만1), 엊그제 사놓은 레몬으로 만들어 놓은 레몬청2)이 생각이나 그것을 마시기로 했다. 레몬청에 찬물을 넣고 잘 저은 다음에 창가로 가지고 와 앉았다. 사각형의 창문은 오래된 원룸의 모습을 반영하는 듯이 때가 묻어있지만, 굳이 그것을 닦지는 않았다. 마치 오랜 시간 안에서 물질이 변화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과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베르그송이 말한 설탕물 이야기를 여기에서 찾은 것 같았다. 때묻은 창의 지저분함은 오히려 창문의 거미줄과 잘 어울려 의도는 아니지만 그러한 것을 고려해서 놔둔 것처럼 한 장면으로 보일 정도였다.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며 레몬에이드를 마신다. 창의 아래를 내려다보자 자신의 방안에 어제 읽고 버린 A4용지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이 널부러진 용지들은 아마 어머니가 보았다면 난리치셨겠지만3) 이것을 적당한 자리에 놓은 것이라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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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타뉴

프랑스 북부의 브르타뉴 지방을 생각한다. 브르타뉴의 6월의 날씨의 쾌청함이란, 국내의 그 어떤 달의 날씨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싱그럽기까지 하다. 쾌청함이란 마치 청포도의 알들을 떠올리게 한다. 푸르게 익은 청포도의 알알이 너무 곱게 여물어 이것은 마치 포도라고 하기에는 너무 투명하고 밝게 빛이 난다. 포도 알을 집중해서 보노라면 그 포도알 반대편의 나무가 비춰 보이는 것 같은 환상마저 불러일으킬 정도라고 한다면 조금이나마 전달이 될까? 쾌청한 이 날씨는 비를 모르는 것처럼 햇살을 그대로 내리꽂은 듯한 착각을 준다. 이 내리꽂힌 햇살은 본연의 색을 잊지 않은 듯이 모든 것을 그대로 명쾌하게 보여준다. 누가 이곳을 사람이 사는 곳이라 생각할까. 거대한 청포도밭이 눈앞에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넓게 펼쳐진 포도밭의 아름다움이란. 바람이 불 때마다 포도밭이 통째로 일렁거리며 이곳은 에메랄드빛 바다로 변모한다. 일렁거림 속에서 포도를 따느라 정신없는 사람들의 움직이는 모습이 나타날 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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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들

16살의 어느 여름, 동네 자그마한 카페 앞에 놓여 있던 조그마한 스쿠터 한대를 보았다. 무리는 한창 탈 것에 대한 관심이 넘치던 때로, 그들은 심심하면 지나가는 차들을 보며 면허를 따는 날을 기다리며 그리고 차들의 기종을 이야기하며 자신들의 어림을 주고 받곤 했다. 너무 어린 그들이기에 아직 찾지 못한 성숙의 그림자 덕분인지 쉽게 뜻을 나눠 가졌고, 무리들은 어느 날, 작전을 세우게 된다. 그 작전은 다름 아닌, 며칠간 방치된 저 조그마한 스쿠터를 자신들의 소유로 돌리기 위한 것이었다. 쉽게 말해서 도둑질이었다. 그들의 어린 욕구는 소유가 불분명해 보이는 저 스쿠터를 자신들에게 귀속시키는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들판을 달리는 소유 여부가 불분명한 말을 자신들의 목장 소유로 돌리기 위한 카우보이의 정신 같은 것이랄까. 그들이 작전을 실행하기로 정한 시간은 오후 2시. 그것은 학생들이기에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오히려 가장 자신들의 흔적을 남기지 않을 수 있는 최적의 시간이었다. 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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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위에 어떠한 물체를 올릴 것인가에 대한 문제

2022년 5월 5일 정물화뿐 아니라 기본적으로 회화는 책상 앞의 일들이다. 말 그대로 이기도 하고, 모든 것이 이미 실제의 어떤 것이 아닌, 이미지가 캔버스 위에 배치되는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화분이 놓인 테이블 옆에 무엇인가가 배치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자를 놓을 것인가, 나무가 들어갈 것인가. 그리고 동시에 드는 것은 내가 왜 그걸 배치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 화폭 위에 무언가를 배치하는 문제는 배치가 우리의 무의식을 표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 정확히는 배치하는 방식의 문제와 배치된 물체의 형상이 기저의식을 표상하고 있다. 다만, 무-의식과 무의식적인 것 사이의 구분 역시 명확해야 한다. 무-의식은 그저 바탕으로서의 캔버스와 같은 것이고, 기저의식은 그러한 무의식에 이미 자리잡은 코드들의 문제다. 그러한 것을 더욱 명확히 볼 줄 알아야 한다. ‘왜 하필 내가 거기에 이 이미지를 배치했을까’ 그러한 문제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다시 그것을 이용해서 더욱 뻔하게 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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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와 소설에서의 보편적 과거

1. 누가 말했나 소설속 인물은 자신의 이야기를 진행한다. 이야기는 과거에 벌어진 것이며 동시에 현재 말해지고 있는 것처럼 보다. 신기하게 서술의 전개를 따라,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주체의 상황이 목격된다. 과거의 사건을 겪은 나, 현재 말하고 있는 나, 그리고 인물의 입을 빌려 말하는 작가. 세 개의 입이 하나의 입에 맞물려 있다. 현재 묘사되는 사건은 누구의 입을 통해 말해지고 있는가. 과거의 사건에 속 한 나의 입은 현재 말하고 있는 나의 입과 시간 상 맞물리고, 인물의 입을 빌려 말하는 작가의 말은 언표 행위의 주체와 언표의 주체로 갈라진다. 세 개의 입은 하나의 명제에서 뒤섞이고, 언표 행위의 주체와 언표의 주체는 서로가 관계없는듯이 맞물려 있다. 푸코의 언표이론을 통해 익히 알려진 이야기다. 푸코의 담론에 대한 이론에서 주체는 담론장에서 자신의 위치, 그리고 그것이 마주한 대상에 의해 솟아나고 곧 사라진다. 그것은 주체가 일종의 환각이나 혹은 이야기 속의 인물인 것처럼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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