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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량

 한량

안 바쁘냐 물으면 바쁘다고 대답해야 하루가 지나간다 바쁘다 말하고 안 바쁜 한량의 하루란 안 바쁜 일들의 바쁨들의 나열이다 가치 없는 것에 몰두하는 노력의 가치가 가치 없다는 걸 가치 있는 일을 한다는 사람들의 말에 기대어 중얼댄다 안 바쁜 하루의 바쁜 시간을 보내고 엉덩이가 짓물어지게 앉은 자리의 찌든 내에서 가치 없음의 가치 있음을 스쳐본다 바쁜 하루를 시작하는 옆집 노동꾼의 굵은 손마디를 안 바쁜 오늘의 시간을 보내는 베짱이의 우화를 생각하며 나 역시 그러한 시간을 지내야 한다는 걸 다시 상기하며 좁다란 변기 한 켠의 솔을 꺼내들고 청소를 시작한다 아직 식지 않은 커피의 온도를 손가락에 전달하며 안 바쁜 바쁜 척의 거짓말을 시작해본다 간혹 울리는 전화의 벨소리가 더 이상 가치 없어진 안 바쁜 이의 바쁜 하루는 창 너머 들리는 대학생들의 무기력한 목소리에 힘입어 다 같은 고통을 느낀다는 기쁨 속에서 더욱 가치 없이 내려 앉는다 털어내야 할 먼지 쌓인 서랍장 위를 마른 수건으로 쓸...

원문 링크 : 한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