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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핑 필사 『이런시』 - 이상(김해경)

이런시 이상(김해경) 역사(役事)를하노라고 땅을파다가 커다란돌을하나 끄집어내어놓고보니 도무지어디서인가 본듯한생각이들게 모양이생겼는데 목도들이 그것을메고나가더니 어디다갖다버리고온모양이길래 쫓아나가보니 위험하기짝이없는큰길가더라. 그날밤에 한소나기하였으니 필시그돌이깨끗이씻겼을터인데 그이튿날가보니까 변괴로다 간데온데없더라. 어떤돌이와서 그돌을업어갔을까 나는참이런처량한생각에서 아래와같은작문을지었도다.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한평생에 차마 그대를 잊을수없소이다. 내차례에 못올사랑인줄은 알면서도 나혼자는 꾸준히생각하리다. 자그러면 내내어여쁘소서.' 어떤돌이 내얼굴을 물끄러미 치어다보는것만같아서 이런시는 그만찢어버리고싶더라. 안녕하세요. demin1919입니다. 오늘 읽어볼 글은 이상(김해경)의 〈이런시〉입니다. 겉으로만 읽으면 정말 별일 아니다. 일을 하다가 큰 돌 하나를 파냈고, 인부들이 그걸 메고 나가 버렸다. 그리고 화자는 그 돌이 위험하기 짝이 없는 큰길가에 버려졌다는 걸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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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핑 필사 『개미귀신』 by 눈사람 자살 사건 - 최승호 / 난 귀신이 아니다.

개미귀신 최승호 난 귀신이 아니오. 명주잠자리의 유충일 따름이오. 내 몸길이가 1센티미터인데, 1센티미터짜리 귀신 봤소? 왜들 나를 개미귀신이라고 부르는 거요? 문자의 횡포를 버리시오. 비록 내 모습이 흉측하나 나도 아름답고 맑은 날을 꿈구는 한 존재요. 미물이지만 나에게도 배고픔이 있고 기다림이 있소. 개미, 앙상한 밥알만 한 개미가 내 밥이오. 개미 한 마리 잡아먹기가 얼마나 힘든지 아시오? 모래 구덩이를 파놓고 며칠을 기다려야 겨우 개미 한 마리가 걸려듭니다. 개미지옥, 내 식탁을 개미지옥이라고 부르지 마시오. 당신들은 당신들 식탁을 지옥이라고 부르지 않으면서 왜 내 식탁만 지옥이라고 하는 거요. 문자의 횡포를 버리시오. 나를 있는 그대로 이름 없이 보아주시오. 명주잠자리가 되면 나도 짝을 찾아 사랑이라는 걸 해보고 싶소. 하늘을 실컷 날아볼 거요. 그리고 난 죽겠지. 내가 죽은 뒤에 내 새끼들을 개미귀신이라고 부르는 건 좀 슬프오. 말이 많았나 보오. 미안하오. 난 귀신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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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핑 필사 『바람편지』 - 천양희

바람편지 천양희 잠시 눈감고 바람소리 들어보렴 간절한 것들은 다 바람이 되었단다 내 바람은 네 바람과 다를지 몰라 바람 속에서 바라보는 세상이 바람처럼 떨린다 바라건대 너무 헐렁한 바람구두는 신지 마라 그 바람에 걸려 사람들이 넘어진다 두고 봐라 곧은 나무도 바람 앞에서 떤다, 떨린다. 안녕하세요. demin1919입니다. 일주일을 마무리하며, 오늘은 가볍게 시 한 편을 놓아두고 가려고 합니다. 천양희 시인의 〈바람편지〉. 시가 길지 않고 따뜻하다. 따뜻한 커피나 차 한 잔 하면서 포근한 바람을 쐬는 것 같다. 첫 문장은 누가 다그치치 않는데도 잠시 생각을 멈추게 한다. 정말 잠깐만 멈춰보라고, 지금의 소리를 들어보라고 그리고 중간에 이런 말이 나온다. “바라건대 너무 헐렁한 바람구두는 신지 마라 그 바람에 걸려 사람들이 넘어진다” 나는 작업을 하다가 어느 순간, 지금 할 수 있는 만큼이 아니라 한계에 최대한 가깝게 과부하시킨다. 이번 주의 내가 딱 그랬던 것 같다. 조금 더 잘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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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핑 필사 『거대한 무의식』 by 광휘의 속삭임 - 정현종

거대한 무의식 정현종 생명은 거대한 무의식이다. 그리고 그건 영원히 그렇다. 엄마가 어린 딸의 손을 잡고 지나간다. 뭐라고 뭐라고 딸이 옹알거리고 뭐라고 뭐라고 엄마가 되풀이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저 딸아이가 낳은 것이다 라는 생각이 번개처럼 스친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안녕하세요. demin1919입니다. 아픕니다. 엄청 아픈 건 아닌데 감기 기운이 느껴집니다. 시만 올리고 사진은 나중에 업로드 해보겠습니다. 오늘 읽어볼 시는 정현종 시인의 <거대한 무의식>입니다. “생명은 거대한 무의식이다. 그리고 그건 영원히 그렇다.” 첫 두 문장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하나의 공리처럼 제시된다. 시인은 생명을 의식이나 이성의 존재로 보지 않고, 그보다 깊은 층위인 무의식으로 규정한다. 생명은 내가 생각하고 선택하는 범위를 넘어, 훨씬 더 큰 흐름으로 움직인다는 말처럼 들린다. 큰 선언 뒤에 시인이 가져오는 장면은 아주 작고 일상적인데, 엄마가 어린 딸의 손을 잡고 지나가고 딸은 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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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핑 필사 『적』 by 음악집 - 이장욱 / 진정한 적은 내 안에 있다. 정말.

적 이장욱 진정한 적은 내 안에 있다…… 라고는 말하지 말아요. 왜냐하면 그건 신비로울 뿐만 아니라 바보 같은 말이기 때문에 한때는 바보처럼 좋아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지금은 사람이 아니다. 그 새끼는 인간도 아니야! 적과 동지를 나누는 것만이 정치적인 것이다…… 라고 선언한 파시스트가 있었지. 그이는 진정한 사상가였어. 오늘도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림자를 생산하고 어제와 추억을 생산하고 또 사악한 적을 나는 당신에게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뒤통수처럼 나를 따라오는 분이시여, 새벽의 악몽이시여, 나의 아름다운 피조물이시여, 당신이 내게 삶의 의미를 준다. 의욕을 준다. 격렬하게 나를 재구성한다. 당신이 그러하다는 것에 대해 당신은 아무런 책임이 없으며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창밖의 하늘을 보아요. 불안정한 대기와 함께 다가오는 황혼 속에서 태어나는 저 무서운 크리처들을. 눈앞의 적을 향해 우리가 미친 듯이 칼을 휘두를 때 너희가 지금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라고 야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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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핑 필사 『우리처럼 낯선』 - 전동균

우리처럼 낯선 전동균 물고기는 왜 눈썹이 없죠? 돌들은 왜 지느러미가 없고 새들이 사라지는 하늘은 금세 어두워지는 거죠? 저토록 빠른 치타는 왜 제 몸의 얼룩무늬를 벗어나지 못하나요? 매머드라 불리던 왕들은, 맨 처음 씨앗을 뿌리던 손은 어디로 갔나요? 꼭 지켜야 할 약속이, 무슨 좋은 일이 있어 온 건 아니에요 우연히, 누가 부르는 듯해 찾아왔을 뿐이죠 누군지 모르지만, 그래서 잠들 때마다 거미줄이 얼굴을 뒤덮고 아침의 머리카락엔 불들이 흘러내리는 걸까요? 한 처음,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던 것처럼 그냥 웃게 해주세요 지금 구르고 있는 공은 계속 굴러가게 하고 지금 먹고 있는 라면을 맛있게 먹게 해주세요 꽃밭의 꽃들 앞에 앉아 있게 해주세요 꽃들이 피어 있는 동안은 안녕하세요. demin1919입니다. 오늘 읽어볼 글은 전동균 시인의 <우리처럼 낯선>입니다. 겉표지가 뭐랄까, 문학과 지성사에서 나온 시집과는 조금 덜 세련돼 보인다. 그래도 있을 건 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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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스타필드 트레이더스에 다녀오다. 그리고 두바이 호두과자를 먹어보다.

안녕하세요. demin1919입니다. 오늘 수원 스타필드에 있는 거대한 창고 매장 트레이더스에 다녀왔습니다. 트레이더스는 스타필드 백화점 지하에 위치해 있는데요.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 둘 다 갈 수는 있지만, 백화점 특성상 비교적 덜 혼잡한 에스컬레이터로 가는 걸 추천해요. 트레이더스 입구에 오면 매장이 내부가 훤히 보입니다. 창고형 매장 특유의 분위기가 살아서 신선했습니다. 오늘은 매장 가장자리 쪽 위주로 한 바퀴 돌아봤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던 구역이 가전제품 코너였습니다. TV, 냉장고, 핸드폰 등 대형 전자제품들도 대량으로 진열돼 있어 순간 가전제품 매장에 온 건가 싶었어요 조금 더 안 쪽으로 걷다 보면 조금씩 음식 코너가 보이는데요. 과일•채소 구역은 따로 구분돼 있던 점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또 몇 걸음 걷다보면 정육점 코너가 있는데요 시식할 수도 있었어요. 마트에서 시식하는 건 어렸을 때나 봤던 것 같은데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더 걷다보면 베이커리가 구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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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핑 필사 『해바라기』 - 오장환

해바라기 오장환 울타리에 가려서 아침 햇볕 보이지 않네 해바라기는 해를 보려고 키가 자란다 안녕하세요. demin1919입니다. 오늘은 바쁜 하루 끝에 길지 않은 동시 한 편을 놓아두고 가려 합니다. 오장환 시인의 <해바라기>입니다. 첫 구절이 현실적이면서도 참 애뜻하다. 아침에 눈을 떠도 햇볕이 바로 들어오지 않는 날이 있고, 마음도 비슷하게 가려지는 날이 있다. 전날, 혹은 아침에 일어나 계획을 짜두어도 마음대로 잘 안 풀리는 날이 있다. 해야 할 일은 줄줄이 있는데 기분은 따라오지 않고, 앞에 뭐 하나가 가로막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날. 어떤 건 내 힘으로 치우기 어려운 울타리처럼 서 있는 날. 그런데 해바라기는 해를 보려고 키가 자란다. 폭풍비가 내리는 날에도 구름이 잔뜩 껴 어둑한 날에도 늘 하늘에 떠 있는 해를 보려고 키가 자란다. 왜냐하면 해바라기는 해가 보고 싶으니까.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억지로 애써서도 아니고 그냥 그렇게 되는 것. 오늘 하루 울타리 같은 게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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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핑 필사 『당신』 - 이윤학

당신 이윤학 민들레 씨가 날아가다 살아보자, 내게 붙었지요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나는 언제까지, 가슴속 손안에 당신을 쥐고 살아야 하나요 나는 민들레 씨를 지난 봄날 햇볕 한 뭉치를 입속에 삼키고 말았지요 안녕하세요. demin1919입니다. 오늘 읽어볼 글은 이윤학 시인의 <당신>입니다. 시는 첫 문장으로는 가볍게 시작한다. 민들레 씨 한 톨이 화자에게 붙어 같이 살아보잔다. “민들레 씨가 날아가다 살아보자, 내게 붙었지요” 민들레 씨는 참 연약한 존재다. 바람을 타고 날아다니다가 어디든 떨어지면 그곳에서 뿌리를 내릴 수도 있지만, 그만큼 쉽게 꺾이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살아보자”라는 말이 그냥 귀엽게만 들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 작은 말 하나가 화자에게는 책임처럼 붙어버린 것 같다. 그리고 시는 곧바로 묻는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이 질문은 민들레 씨가 하는 말이라기보다 화자가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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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핑 필사 『꿈』 by 눈사람 자살 사건 - 최승호

꿈 최승호 허공이 꿈을 꾸고 있었다. 온 우주가 그의 꿈속에 있었다. 별들도 꿈을 꾸고 있었고 사람도 짐승도 곤충도 저마다 꿈을 꾸고 있었다. 허공이 꿈에서 깨어나자 아무것도 없었다. 온 우주가 텅 비어 고요하기만 했다. "이 경지는 나 홀로 적막하구나." 허공은 텅 빈 고요에 머물기 싫어서 다시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어지럽게 펼쳐지는 꿈을 다시금 영화 보듯 구경하는 것이었다. 안녕하세요. demin1919입니다. 오늘 읽어볼 우화는 최승호 시인의 <꿈>입니다. 최승호는 인간 말고도 생물, 무생물, 심지어 개념까지 의인화해서 이야기를 만든다. 이번엔 그 대상이 ‘허공’이다. 이야기 속의 허공은 분명히 존재한다. 말을 하고, 깨어나고, 다시 잠든다. "허공이 꿈을 꾸고 있었다. 온 우주가 그의 꿈속에 있었다.” 우주가 허공 속에 있는 게 아니라 우주가 허공의 꿈속에 있다. 별도 사람도 짐승도 곤충도 “저마다 꿈을 꾸고” 있지만 그 꿈들조차 더 큰 꿈의 내부다. 그런데 허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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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핑 필사 『초』 by 눈사람 자살 사건 - 최승호

초 최승호 정전으로 세상이 온통 깜깜해지자 사람들이 초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구할 수가 없었다. 원시적인 조명 기구라고 초를 없애버린 지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demin1919입니다. 한 주를 마무리하면서, 오늘은 너무 무겁지 않게 읽을 만한 짧은 글 하나를 놓아두고 갑니다. 최승호 시인의 우화 <초>입니다. 이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 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작품이 더 재미있는 건, 교훈을 예쁘게 포장하지 않고 아주 현실적인 방식으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정전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다. 가끔은 정말 아무 예고 없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그동안 ‘구식’이라고 밀어냈던 것들을 급하게 찾기 시작한다. 그런데 구할 수가 없다. “원시적인 조명 기구”라고 초를 없애버린 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내용은 어렵지 않은데, 읽고 나면 묘하게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 든다.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봤을 법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더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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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핑 필사 『지금부터 쓰는 시는』 - 정현종

지금부터 쓰는 시는 정현종 지금부터 쓰는 시는 시집도 내지 말고 다 그냥 공기 중에 날려버리든지 하여간 다 잊어버릴란다. 그럴란다. (아이구 시원해) 안녕하세요. demin1919입니다. 오늘 읽어볼 글은 정현종 시인의 <지금부터 쓰는 시는>입니다. 제목이 곧 첫 문장이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제목을 읽는 순간 이미 시가 시작된 셈이다. 이 작은 설계가 재밌다. 시이지만, 시를 ‘작품’으로 남기려는 욕망보다 시를 ‘짐’으로 느끼는 마음이 먼저 보인다. 시집을 내지 말라고 말하는 건, 출판을 거부한다는 선언이라기보다 ‘쌓아두는 일’을 거부하는 느낌인 것 같다. 시집 해설의 문장은 이렇다. —정현종의 시들을 이끌어온 것이 삶의 보따리 속에 쟁여놓은 욕망 덩어리들을 비워내려는 욕망이었다.— 이 시에 그대로 붙는다. 아무 것도 바라지 않겠다—가 아니라 오히려 비우고 싶다는 욕망이 너무 커서 터져 나온 말처럼 들린다. 쟁여놓는 욕망을 버리고 싶어 하는 욕망. "그럴란다. (아이구 시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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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핑 필사 『산책하는 72가지 방법』 - 김행숙

산책하는 72가지 방법 김행숙 누군가를 미행하는 기분으로 걷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인데 말입니다 한 가지 방법에도 사거리가 나오고, 또 오거리가 나옵니다 또 사람들은 얼마든지 쏟아져 나올 것 같습니다 개 한 마리도 보았습니다 뒤돌아서는 개는 왜, 라고 짖을까요? 개와 나의 관계를 생각할까요? 개와 나의 관계를 생각하며 걷는 것도 한 한가지 방법인데 말입니다 오늘은 누군가를 미행하는 기분으로 걷다가 그의 뒤에서 닫힌 문을 생각했습니다 나의 앞에서 닫힌 문을 생각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면 매우 슬펐을 것입니다 그리고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나는 엉뚱한 슬픔에게 발각되었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뭐 하니? 산책하는 72가지 방법을 궁리하며 걷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인데 햇빛이 더 기울고 햇빛이 완전히 일자로 누워버릴 때까지 왼쪽 얼굴만 서쪽 하늘처럼 발갛게 태우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인데 말입니다. 안녕하세요. demin1919입니다. 오늘 읽어볼 시는 김행숙 시인의 <산책하는 72가지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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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핑 필사 『지평선』 - 막스 자코브

지평선 막스 자코브 그녀의 하얀 팔이 내 지평선의 전부였다 안녕하세요. demin1919입니다. 오늘 읽어볼 글은 프랑스 시인인 막스 자코브의 <지평선>입니다.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처럼 짧고 단호한 시가 되려 멍한 정신을 깨워준다. 이 시에서 말하는 그녀는 누구일까. 보통은 연인이 먼저 떠오를지 모르겠다. 그런데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어머니였다. 어릴 때는 정말로 어머니의 팔 안이 세상의 전부였으니까. 연인이나, 어머니나 지평선이라는 단어가 슬쩍 마음에 걸린다. 지평선은 시야 저 멀리에만 보이고, 걸어가면 걸을수록 같이 멀어진다.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다. 시인은 어쩌면 그 팔을 사랑했던 이와 그 팔을 사랑했던 것이 전부였던 시절을, 지금은 닿을 수 없다는 사실을 지평선에 비유한 건지도 모르겠다. 한 주를 마무리하며 너무 무겁지 않지만 오래 사색하게 해줄 시였다. 시를 잊은 나에게 배정애,윤동주,고석규2018북로그컴퍼니 블로그 글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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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핑 필사 『벌목』 by 눈사람 자살 사건 - 최승호

벌목 최승호 아름다리나무 위에 둥지를 짓고 새끼를 기르던 때까치가 개구리를 물고 날아와 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나무도 둥지도 새끼도 숲도 없었다. "아니, 지구가 어디로 갔지?" 당황한 때까치의 부리에서 죽은 개구리가 떨어졌다. 안녕하세요. demin1919입니다. 오늘 읽어볼 글은 이 블로그 단골 게스트인 최승호 시인의 우화 <벌목>입니다. 최승호 시인은 우스꽝스럽지만 단단한 문장에서, 서늘함을 느끼게 만드는 일을 잘한다. "아니, 지구가 어디로 갔지?" 라고 묻는 대사는 너무 과장된 말 같아서 웃음이 나온다. 마치 톰과 제리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그런데 이 대사를 읽고난 직후에는 곧바로 서늘해진다. 벌목은 숲만 잘라내는 일이 아니다. 그 나무 위에 있던 둥지 둥지 위에 있던 새끼, 그 주변에 있던 공기와 길과 풍경까지 함께 잘라내 버린다. 때까치는 열심히 살아가려고, 삶을 물려주려 새끼에게 개구리를 잡아왔는데 우화에서 남는 것은 돌아갈 자리를 잃어버린 자의 모습이다. 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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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핑 필사 『히치콕의 밀도』 - 이장욱

히치콕의 밀도 이장욱 창밖에 히치콕의 밀도가 높았다. 이면도로에는 폴 토머스 앤더슨의 밀도가 높았고 골목을 지날 때는 홍상수의 밀도가 새벽마다 불안이 영혼을 잠식해요.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는 중독자의 이름인데 그이는 중독자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는 결국 당신이 범인인가. 범인은 늘 범죄를 저지른 자리에 돌아오지. 가만히 생각해보아요. 당신은 쫓기는 자인가 쫓는 자인가. 추리하는 자인가 추리되는 자인가. 에드워드 양, 에드워드 양, 저도 양 씨인데요. 제게는 식물의 귀가 있어요. 식물인간이 되어서 문병 온 사람들의 고백을 듣는 게 제 장래희망이죠. 나는 관람당하면서 동시에 관람하는 거예요. 그들은 무엇이든 털어놓는답니다. 휴대폰을 켜두고 이제 막 라이브를 시작하는 사람이 있고 그걸 시청하는 수천수만의 사람들이 있고 션 베이커의 인물이 ‘창녀’라는 욕을 남발할 때 좋았다. 그 인물 자신이 ‘창녀’였기 때문에. 피살자는 말이 없어요. 그래서 나는 너에게만 나타난다. 늦은 밤 혼자 있는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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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핑 필사 『신경정신과에서 살아남기』 - 이장욱

신경정신과에서 살아남기 이장욱 날씨는 화창하고 신경정신과에는 고객이 많았는데 나는 결국 나의 잘못인 것 같았다. 창밖은 저렇게 환한데 나는 여기 앉아 잡지나 읽어도 되나. 구름이나 멀거니 바라봐도 되나. 저 무책임한 알라딘 램프를 나는 나를 죄수의 위치에 놓는 버릇이 있답니다. 모든 죄수는 스스로를 구름으로 만들죠. 낙타가 되었다가 폭풍이 되었다가 패잔병이 되어 쓸쓸하게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 를 외칠수록 나의 죄는 점점 더 깊어집니다만 이곳에서 나가고 싶습니다만 모든 것을 역사적으로 바라보도록 하자. 나의 불면과 나의 환각과 나의 약물 치료조차 유신 시대를 기준으로 식민지배의 산물로서 대한제국을 거쳐 드디어 위화도회군까지 저기 저 낙타는 어떻게 역사적인가. 비행접시는 어디서 날아오는가. 알라딘 램프에서는 또 무엇이 튀어나오나. 나는 무슨 소원을 어떻게 빌어야 하나. 저는 매일 기도를 합니다만 사랑과 증오의 끝에는 늘 선생님이 있잖아요. 언제나 고객이 많은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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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핑 필사 『찬란했음 해』 - 김혜순

찬란했음 해 김혜순 네 몸에서 내가 씨를 심은 새들이 울퉁불퉁 만져졌음 , 해 네 피가 새의 피로 새로 채워졌음, 해 네 발걸음이 공중으로 겅중겅중 디뎌지는 나날 바보 멍청이 네가 네 몸의 문을 찾지 못하는 나날 내가 되고 싶은 네가 네 몸에서 나가고 싶어 안달했음, 해 습한 여름에도 발아래 땅이 한없이 멀어지는 그런 가을이 온 것 같고 네 목구멍이 목마름으로 타들어 가듯 네 몸의 새가 타올랐음, 해 키득키득 네 입술 밖으로 연기가 새어 나오고 내 몸에 앉고 싶은 새가 더 더 더 달아오르는 나날 쿵쿵 울리는 심장의 둥지에서 쿵 소리 한 번에 새 한 마리씩 미지근한 네 두 눈의 창문 밖으로 언뜻언뜻 아우성치는 새들이 엿보이는 그런 나날 불붙듯 날개가 크게 돋아났는데도 돌 속인 그런 나날 가슴 위에 얹은 네 오른손이 마치 네 엄마처럼 새들로 꽉 찬 네 가슴을 지그시 누르고 매일 그런 자세로 나를 네 안의 새들이 찬란했음, 해 안녕하세요. demin1919입니다. 오늘 읽어볼 글은 『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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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 필사 『굴비가 강연을 한다』 by 방부제가 썩는 나라 - 최승호

굴비가 강연을 한다 최승호 비굴한 놈 그렇게까지 비굴하게 굴더니 굴비가 된 놈 아직도 입이 살아 있는 놈 강연까지 하고 다니는 안녕하세요. demin1919입니다. 오늘 읽고 필사해볼 시는 최승호 시인의 <굴비가 강연을 한다>입니다. 지인이 왼손 필사를 해보라고 했다. 주로 사용하는 오른손 대신 낯선 왼손을 사용하여 우뇌를 활성화하고 뇌의 신경 가소성을 촉진한다는 데 사실 여부는 떠나서 재밌을 것 같아서 해봤다. 중간에 고양이가 올라와버렸다 왼손으로 글씨를 쓰면, 문장이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그래서 필사하기에 짧은 시가 어울릴 것 같았다. 어쨌든 나는 이 시를 읽자마자 요즘 흔히 보이는 이른바, 성공팔이 장사꾼들이 떠올랐다. 성공은 원래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고, 삶의 장르도 다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버티는 하루가 성공이고 누군가에게는 무너지지 않는 마음이 성공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사랑을 지키는 일이 성공일 수도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성공이라는 단어가 ‘타이틀’처럼 팔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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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핑 필사 『기담(奇談)』 - 김경주

기담(奇談) 김경주 지도를 태운다 묻혀 있던 지진은 모두,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태어나고 나서야 다시 꾸게 되는 태몽이 있다 그 잠을 이식한 화술은 내 무덤이 될까? 방에 앉아 이상한 줄을 토하는 인형(人形)을 본다 지상으로 흘러와 자신의 태몽으로 천천히 떠가는 인간에겐 자신의 태내로 기어 들어가서야 다시 흘릴 수 있는 피가 있다 안녕하세요. demin1919입니다. 오늘 읽어볼 글은 김경주 시인의 표제작인 <기담>입니다. 옳다, 나쁘다를 떠나 내가 가진 시집 중 가장 최고의 시집을 꼽자면 그 후보에 늘 『기담』이 들어가 있다. 수록된 시중에서 이 <기담>이 제일 기담 같지 않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럼에도 표제작을 가장 먼저 소개하는 일은 훗날 수록된 시를 소개하기 전 거쳐가야 할 관문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기담>은 흔히 떠오르는 괴담이나 귀신 이야기가 나와서 기담이 아니다. '지도를 태운다.' '묻혀있던 지진이 흘러간다.' ' 태어나고 나서 태몽을 꾼다.' 이상하다. 지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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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멀고 외로운 리타』 - 이장욱 시집 『음악집』 / 만나러 와주어요.

더 멀고 외로운 리타 이장욱 만나러 와주어요. 여기가 북극이라서 여행이라도 하듯이 여기가 적도라서 탐험이라도 하듯이 매일 장례식이 열려요. 국가정책에 대한 토론회가 개최되었대. 우울증이 있음. 이어폰을 귓속 깊숙이 밀어 넣고 집에 갔다. 집을 나왔다. 집에 갔다. 조금 더 먼 곳에는 북극의 펭귄과 날지 않는 새들 내 귓속에 내리는 겨울비 혈관을 타고 흐르는 음악과 바이러스 하지만 이봐요, 펭귄은 북극이 아니라 남극에 산다고. 바이러스는 혈관이 아니라…… 당신의 가까운 생물이 사라졌어요. 당신의 먼 사람이 앓고 있어요. 어제는 외로웠던 누군가가 내일은 지상에 없고 집을 나오지 않았다. 집을 나오지 않았다. 집을 나오지 않았다. 사라진 리타가 시를 읽네, 북극에서 수유리에서 내 귓속에서 여행자가 실종되었다는군. 열대야가 다가오고 있어요. 빙하기가 시작되었다. 코인이 급등했대. 다 집어치워! 만나러 와주어요. 여기가 불가능한 곳이라도 만나러 와주어요. 나의 먼 꿈속으로 북극에 내리는 뜨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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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같은 삶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하여』 - 이윤학

개 같은 삶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하여 이윤학 점심 무렵, 쇠줄을 끌고 나온 개가 곁눈질로 걸어간다. 얼마나 단내나게 뛰어왔는지 힘이 빠지고 풀이 죽은 개 더러운 꼬랑지로 똥짜바리를 가린 개 벌건 눈으로 도로 쪽을 곁눈질로 걸어간다. 도로 쪽에는 골목길이 나오지 않는다. 쇠줄은 사려지지 않는다. 무심코 지나치는 차가 일으키는 바람에 밀려가듯 개가 걸어간다. 늘어진 젖무덤 불어터진 젖꼭지 쇠줄을 끌고 걸어가는 어미 개 도로 쪽에 붙어 머리를 숙이고 입을 다물고 곁눈질을 멈추지 않는다. 하염없이 꽃가루가 날린다. 안녕하세요. demin1919입니다. 오늘 읽을 시는 이윤학 시인의 <개 같은 삶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하여> 입니다. 제목부터 웃기다. 개 같은 삶. 살다보면 누구나 한 번씩은 속으로 외쳐본 말은 아닐까. 시 밑에 각주에 붙은 말, 폴 발레리의 말을 찾아봤다. 그의 말 중에서는 '개 같은 팔자'와 '살아야겠다' 같은 문장이 나온다. 좋은 참고는 되지만 이 이상 깊게 들어가고 싶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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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 때리기 대회』 - 최승호

멍 때리기 대회 최승호 멍 때리기 대회가 2014년 서울광장에서 처음 열렸다 나는 참가하지 않았지만 뇌에 수북한 생각들을 거북털처럼 쏟아놓고 멍게나 해삼처럼 단순해진 뇌를 멍하게 멍청하게 광장에 내버려두는 것도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멍하니 멍청하게 산다는 것은 멍게와 해삼에게나 가능한 일 멍 멍청해지려고 우리는 무척이나 애를 쓴다 안녕하세요. demin1919입니다. 오늘 읽어볼 시는 최승호 시인의 <멍 때리기 대회>입니다. 멍 때리기 대회 누구누구가 대회에 나왔다면서 유튜브에서 가끔씩 화제가 되곤 한다. 아이돌이나 유명 유튜버나, 굳이 유명하지 않아도 시민들이 오손도손 모여 의미 의미있는 행사라고 생각했다. 하루 쯤은 멍하니 보내고 싶다고 자주 생각한다. 주말이면 특히 그런 것 같다. 시도 중간까지는 나른하다. 시인은 대회에 참가하지는 않았지만 멍게나 해삼처럼 머리를 비우고 광장에 내버려두는 상상을 한다. 여기까지는 귀엽고 낭만적이지만 최승호 시인은 늘 그렇듯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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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어리석은 삶을 원하지 않는다』 - 이장욱 시집 『음악집』 / 원해서 어리석어진 것이 아니다.

아무도 어리석은 삶을 원하지 않는다 이장욱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었을 뿐인데 누가 자꾸 다른 이름으로 나를 불렀다. 익숙하고 그리운 이름으로 조용히 그를 외면한 뒤에 퇴근을 하는데 문득 모든 것이 의아해지고 그리운 곳으로 전화를 걸자 이 번호는 없는 번호이오니 다시는 걸지 마시길 마트에 들려 장을 보고 조금 더 싼 가격의 해외여행을 검색하고 이비인후과에서 치료를 받았는데 어째서 나는 사랑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아아, 나는 지하철 계단에서 발을 헛디뎠다가 피투성이인 채로 몸을 이르킨 뒤에는 길에서 멱살을 잡고 싸웠는데 대체 누구와? 친구들은 미친 듯이 야근을 하다가 의류 코너의 신상이 되어 전시되다가 정육점의 붉은 고기로서 흔들흔들 저는 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만 요즘은 자꾸 귀가 아픕니다만 드디어 파업을 하고 시위를 하고 여행을 떠났다가 길을 잃었을 뿐입니다만 회사에 나오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내 귀에 벌레가 산다고 한다. 오늘따라 보고 싶은 사람이 있었는데 또 잘못 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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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에 다녀오다. / 설국이었다.

안녕하세요. demin1919입니다. 수요일부터 어제까지 나흘 간 홋카이도 패키지 여행을 다녀왔다. 이번 여행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눈을 지겹도록 보고 왔다." 인 것 같다. 도쿄가 여행지였다면 자유여행으로 다녀왔겠지만, 패키지 여행을 선택한 이유는 아는 정보도 별로 없는데다가 워낙 방대한 홋카이도의 면적 때문이었다. (홋카이도 면적은 한국보다 약간 작다.) 일본인 최초, 아시아인 두번 째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의 첫 문장은 이러하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설국 가와바타 야스나리2009민음사 블로그 글 더보기 버스에 올라타고 눈으로 뒤덮인 지역을 누벼갈 때마다 이 문장이 계속 머릿 속에서 떠올랐다. 설국, 단 한 단어로 홋카이도의 거의 모든 것을 수식한다고 해도 되겠다 싶었다. 무엇보다 첫 날 고속도로를 달릴 때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눈이 왔다. 운전 기사님이 감각에만 의존하며 운전하는 건 아닐지 의심될 정도로 앞이 보이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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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빛을 꺼주소서』 - 라이너 마리아 릴케 / 시에 대하여

내 눈빛을 꺼주소서 라이너 마리아 릴케 내 눈빛을 꺼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 내 귀를 막아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발이 없어도 당신에게 갈 수 있고, 입이 없어도 당신의 이름을 부를 수 있습니다. 내 팔을 부러뜨려주소서, 나는 손으로 하듯 내 가슴으로 당신을 끌어안을 것입니다, 내 심장을 막아주소서, 그러면 나의 뇌가 고동칠 것입니다, 내 뇌에 불을 지르면, 나는 당신을 피에 실어 나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demin1919입니다. 오늘 읽을 글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내 눈빛을 꺼주소서>입니다. 릴케, 그의 시는 잘 모르더라도 이름이라면 한 번쯤은 누구나 들어봤을 것이다. 한국 시인하면 떠오르는 윤동주와 백석의 시에 (흰 바람벽이 있어, 별 헤는 밤) 릴케의 이름이 등장한다. 윤동주, 백석 심지어 <꽃>으로 유명한 김춘수 시인에게까지 영향을 주었다. 이 시는... 굉장히 열렬하다. 이전 소개한 <Scarborough fa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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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 한 알』 - 장석주

대추 한 알 장석주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낱 안녕하세요. demin1919입니다. 오늘 읽을 글은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입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실패가 있으면 성공도 있듯이 모든 일에는 원인과 과정 그리고 결과가 있는 법. 대추가 단맛을 익어내는 데에도 그 단맛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결코 순탄지 않다. 태풍, 벼락과 천둥을 버텨낸 지극한 단맛이다. 사람도 다를 것 없다. 겉으로는 성공이 천성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저절로 붉어진 것이 아니다. 저절로 둥글어진 것도 아니다. 시의 첫 연을 읽을때면 내가 지나온 태풍은 얼마나 되는지 아직 지나지 않은 태풍은 얼마나 남았는지 걱정이 되기도 한 편 지금 내가 겪는 태풍이, 지금 내가 버티는 땡볕이 언젠가 내 안의 단맛으로 남을 수도 있겠다— 그런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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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 이상의 하루오』 by 기린이 아닌 모든 것 - 이장욱 / 절반 이상의 하루오라면, 아마도.

안녕하세요. demin1919입니다. 오늘 소개할 글은 이전 홋카이도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다시 꺼내본 소설인데요. 바로 이장욱 작가의 <절반 이상의 하루오>입니다. 작중 등장하는 '나'와 '그녀'는 전형적인 현대인 모습과 닮아있다. 안정된 삶을 살아가기 위해 바라던 장래를 포기한 채 현실과 타협하며 살아간다. 그에 비해 여행 중 만난 '하루오'는 인기 여행 블로거로, 전 세계를 여행하며 돈도 버는 인물이다. 작품에서는 하루오를 이렇게 표현하는데, '일본인답지 않은 일본인' 이나 '일본인답지 않게 여행을 좋아하는 일본인' 그는 원래 일본 사회(오키나와)에 적응하지 못해 한국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런데 평범한 여행이 아니라 일종의 자살 여행이었다. 그런 하루오가 한국에 도착해 부산에서 누군가를 만난다. 혹시…… 도를 믿으시나요? 사이비 종교 전도사와 예고없는 만남을 가지고, 하루오는 정말 도를 깨달은 듯 주인공이 알고 있는 '하루오'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여기까지만 하루오의 모습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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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핑 필사 『강』 - 안도현

강 안도현 너에게 가려고 나는 강을 만들었다 강은 물소리를 들려주었고 물소리는 흰 새떼를 날려보냈고 흰 새떼는 눈발을 몰고 왔고 눈발은 울음을 터뜨렸고 울음은 강을 만들었다 너에게 가려고 안녕하세요. demin1919입니다. 오늘 읽어볼 글은 안도현 시인의 <강>입니다. 시가 짧고 어렵지 않다. 그런데 그 짧은 내용이 이상하게 오래 남는다.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는 말이, 너를 만나기 위해 강을 만들었고 그만큼 너를 사랑한다는 말인줄 알았다. 그런데 고행 끝에 남은 것이 '너'가 아니라 눈물로 만든 강인 것을 독자가 알게 된다. 너무 슬프다. 문득 김춘수의 <내가 만난 이중섭>이 떠오른다. 김춘수 시에서의 이중섭은 헤어진 아내를 만나려 바다 위로 길을 잇지만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잇던 길을 한 뼘씩 지워나간다. 한쪽은 강을 만들고 한쪽은 길을 만든다. 그리고 한쪽은 울고 한쪽은 길을 지운다. 이런 시들은 참 담백한데 동시에 슬프다.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 안도현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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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핑 필사 『에코의 초상』 - 김행숙

에코의 초상 김행숙 입술들의 물결, 어떤 입술은 높고 어떤 입술은 낮아서 안개 속의 도시같고, 어떤 가슴은 크고 어떤 가슴은 작아서 멍하니 바라보는 창밖의 풍경 같고, 끝 모를 장례 행렬, 어떤 눈동자는 진흙처럼 어둡고 어떤 눈동자는 촛불처럼 붉어서 노을에 젖은 회색 구름의 띠 같고, 어떤 손짓은 멀리 떠나보내느라 흔들리고 어떤 손짓은 어서 돌아오라고 흔들려서 검은 새 떼들이 저물녘 허공에 펼치는 어지러운 군무 같고, 어떤 얼굴은 처음 보는 것 같고 어떤 얼굴은 꿈에서 보는 것 같고 어떤 얼굴은 영원히 보게 될 것 같아서 너의 마지막 얼굴 같고, 아, 하고 입을 벌리면 아, 하고 입을 벌리는 것 같아서 살아 있는 얼굴 같고, 안녕하세요. demin1919입니다. 오늘 읽어 글은 김행숙 시인의 <에코의 초상>입니다. 에코의 초상, 에코라면 메아리를 말하는 것인가. 메아리의 초상이라니 와닿지는 않는다. 그렇게 시를 여러번 읽다가 아, 참 하며 그리스 신화의 에코가 떠올랐다. 헤라에게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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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 - 정현종 / 나를 너무 나무라지 마시길

실수 정현종 나는 실수를 하면 자책을 아마 '지나치게' 하니 나를 너무 나무라지 마시길 십자가의 요한은 지나친 자책을 또한 불완전함의 하나라고 했거니와 (그야말로 실수 연발이거니와) 안녕하세요. demin1919입니다. 오늘 읽어볼 시는 정현종 시인의 〈실수〉입니다. 제목부터가 참 솔직하다. 실수. 그리고 이어지는 “나는 실수를 하면 자책을 아마 ‘지나치게’ 하니” 첫 줄에서부터 벌써 고개가 끄덕여졌다. 실수보다 더 오래 남는 건 실수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이후에 이어지는 자기비난일 때가 많으니까. 왜 그랬을까, 그때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다른 선택은 없었을까. 이미 지나간 일을 붙잡고 혼자서 몇 번이고 다시 심문한다. 시는 그 상황을 정확하게 짚는다. 그런데 또 몇 번 읽다보면 요즘 내가 밀어붙이는 '애틋한' 시보다 굉장히 이성적이고 단호한 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예를 들면 정호승 시인의 <수선화에게>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와 비슷한 것 같다. 왜 그런 걸까 생각해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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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 - 어슐러 K. 르 귄 / 인간은 고통을 정당화하기 위해 얼마나 정교한 시스템을 만드는가.

안녕하세요. demin1919입니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은 책 『바람의 열두 방향』에 수록된 단편 소설입니다. 도시 오멜라스는 이상향처럼 그려진다. 오멜라스에 사는 시민들은 모두 행복하고 자유롭다. 과학 기술이 있지만 필요 이상으로 갖추지 않고, 누구나 자유롭게 예술을 향유해도 좋다. 오멜라스에 사는 사람들은 멍청하지 않았다. 학살을 통해 얻은 행복은 잘못된 행복, 즉 공포일 뿐이며 그렇기에 오멜라스 사람들에게 군인은 필요없다. 군인이 없으니 전쟁도 군주도 심지어 노예제도 없다. 그러니 모두가 행복하다. 이렇듯 공동체제를 유지하는 오멜라스의 시민들은 행복하지만, 단 하나의 계약을 통해 행복은 유지된다. 오멜라스에 지어진 공공건물 어느 지하실에는 한 아이가 갇혀 고통스럽게 살아간다. 아이의 엉덩이와 허벅지에는 곪은 상처로 가득하고 자신의 배설물 위에 줄곧 앉아 하루하루를 보낸다. 계약은 이러했다. 아이는 늘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단 한 마디의 친절한 말도 건네서도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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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 김춘수 / 바르르 떤다. 샤갈과 삼월의 눈 안에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김춘수 샤갈의 마을에는 삼월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 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3월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안녕하세요. demin1919입니다. 오늘 읽어볼 시는 김춘수 시인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입니다. 마르크 샤갈 <나와 마을> 출처: https://www.moma.org/collection/works/78984 블로그 소개글 용으로 이 시를 고른 이유는 단순했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 친구 한 명의 입으로부터 샤갈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샤갈이라니, 화가 마르크 샤갈과 김춘수 시인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 친구에게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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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새해와 붉은 말 / 늦은 새해 맞이

안녕하세요. demin1919입니다. 시간이 흘러도 조금 늦게 도착하는 것 같다. 새해가 오긴 왔는데 아직 그 날짜를 몸으로 못 따라간 느낌이다. 새해가 와도 달력은 앞으로 성큼 내딛였는데 나는 아직도 2025년에 있는 듯하다. 그림을 전공하는 같은 수업 학생분이 새해 달력을 만든다고 했다. 신년 맞이 무오년 말의 해 그림 달력 만들기 신년을 맞아 무오년, 말의 해 달력을 만들어보고 있다. 그냥 달력을 사서 쓰기보다는, 올해는 뭔가 손으로 ... blog.naver.com 시중 달력처럼 날짜만 빽빽한 게 아니라, 귀여운 그림을 통해 병오년을 보내고 있다며, 볼 때마다 그해가 실감날 것 같은 달력이었다. 어떤 형태로든 시간을 기념 한다는 건 꽤 괜찮은 일이다. 시간은 원래 그냥 흘러가 버리는데 손으로 한 번 붙잡아두면 그만큼 덜 허무해지니까. 게다가 그림을 하는 사람들은 이런 걸 참 자연스럽게 해낸다. 그래서 나도 늦은 새해를 그런 식으로 받아보기로 했다. 병오년을 보며 떠올렸던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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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 두 마리』 by 눈사람 자살 사건 / 서로 너무 사랑했던 모양이다

고슴도치 두 마리 최승호 고슴도치 두 마리가 가시를 상대방의 몸에 찌른 채 피투성이가 되어 함께 죽어 있었다. 그들은 서로 너무 사랑했던 모양이다. 안녕하세요. demin1919입니다. 오늘 읽을 이야기는 『눈사람 자살 사건』에 수록된 최승호 시인의 <고슴도치 두 마리>입니다. “그들은 서로 너무 사랑했던 모양이다.” 읽는 순간 피식하며 웃을지 서늘해져야 할지 잠깐 헷갈린다. 너무 사랑해서 죽었다는 말에서 하나의 궁금중만이 남았다. 지나친 사랑이 파멸로 이끈 이야기일까. 아니면 가시 돋힌 사랑이 결국 파멸을 부른 이야기일까. 전자는 사랑의 '양'에 대한 이야기다. 심리학 용어 중에 귀여운 공격성(Cute aggression) 라는 말이 있다. 행복과 기쁨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이 지나치게 자극되어, 역설적으로 긍정적인 감정을 스스로 조절하게 되는 현상이다. 이 지나친 귀여움과 같이 너무 가까워지려다, 서로를 숨 쉴 틈 없이 끌어안았지만 결국 상처만 남겨버리는 사랑. 사랑이 커질수록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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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프리드리히 니체 / 신은 죽었다.

안녕하세요. demin1919입니다. 최근 들어 프리드리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를 다시 읽는 것 까지는 아니더라도 포스트잇 인덱스를 붙여 놨던 페이지를 따라가며, 부분적으로 읽자고 생각했습니다. 제 블로그 글이 으레 그랬듯 언젠가 또 이 책을 다룰지도 모르겠습니다. 신은 죽었다. 그대들에게 초인(超人)을 가르치려 하노라.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무엇이다. 그대들은 자신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Übermensch(초인): 힘에의 의지를 실현하는 인간상, 자기만의 삶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인물 예전에 이 책을 읽기 전, 니체와 그의 사상에 대해 꽤나 공부를 하고 들어갔다. '초인'이 슈퍼맨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도, 신은 죽었다는 말이 단순히 무신론을 뱉어내는 무책임한 선언이 아니라는 말도 알고 있었지만 왜 그렇게 매력적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때의 나는 솔직히 말하면 니체를 거의 신봉했다. 종교와 같다는 말이 어울릴 것 같다. 삶이 가벼워지고 허무가 덮치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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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by 모리스 라벨

안녕하세요. demin1919입니다. 평소에도 클래식을 자주 듣는다. 쇼팽과 라흐마니노프를 제일 좋아하지만 신기하게도, 어느 날은 모리스 라벨이 유독 가슴 속에 오래 남는다. 특히나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좋아한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노래Maurice Joseph Ravel2004.06.22. 1년 전 이맘때 쯤 조성진 피아니스트가 조성진 피아니스트.. 시대 불문하고 가장 좋아하는 피아니스트다. 어쨌든 조성진 피아니스트가 이 곡을 연주해 음원으로도 들을 수 있게 됐다. 그 즉시 플레이리스트에 넣고 들어왔는데 오늘 유난히 연주가 꽂히는 것 같다. 파반느는 원래 무곡이라고 한다. 근데 이 곡은 춤을 추게 하기보다는 곡 안에서 무엇이 이루어지는가 상상하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제목부터가 '죽은 왕녀'라는 말이 들어갔다. 곡의 분위기도 그렇고 무곡이라기 보다 장송곡에 한 없이 가깝게 느껴진다. 그것도 아주 심오한 사정을 지닌. 이 곡을 들을 때마다 사람이 남겨진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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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사랑한 사람들

우리집에는 회색 고양이가 한 마리 있다. 이름은 설이 종은 브리티쉬 숏헤어로 한국 나이로는 2026년 올해 들어서 6살이다. 아기 고양이었을 때부터 함께였어서 눈치를 못챘는데 늘 작고 귀여워 보이던 고양이가 다른 고양이에 비해서는 무지막지하게 큰 편이란다. 겨울이 되면 아파트 관리실에서 보일러를 자동으로 틀 때가 있다. 나는 바닥이 적당히 따뜻해져도 눈치 못챌 때가 많은데 우리 집 고양이는 잘 찾는다. 어느 순간부터 그 자리에 엉덩이를 낮추더니 아예 온 몸을 나뒹군다. 생각해보니 고양이란 존재는 참 오묘하다. 귀여운 걸 넘어서 다양한 사람들에게 많은 영감을 준다. 대표적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헤르만 헤세도 집사였다. '뢰베(사자)'라는 이름의 고양이와 함께 헤세 말고도 당장 떠오르는 작가만 해도 마크 트웨인, 어니스트 헤밍웨이, 올더스 헉슬리 등 아예 고양이가 주인공인 나츠메 소세키의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도 있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나쓰메 소세키2013현암사 블로그 글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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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 - 이형기

낙화 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안녕하세요. demin1919입니다. 오늘 읽어볼 시는 이형기 시인의 <낙화> 입니다. 오늘 유튜브를 켰을 때 제일 상단에 한 어부가 시를 낭독하는 영상이 있었다. 가끔씩 유튜브 알고리즘을 뜰 때마다 그냥 지차지지 못하는 영상이다. "제게도 꿈은 있었습니다" 이프랜드서 만나는 시 읊는 낭만어부 연합뉴스 낭독하는 어부는 청년 시절 꿈꾸던 국문학과를 포기하고 생업에 뛰어든 사람이다. 왜 이렇게 읊었던 시가 마음에 남을까. 시 전문이 궁금했던 예전의 나는 시를 찾아봤다.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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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와 인생 산책』 / 조금 울적한 날, 무심히 책을 펼쳤더니 위로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demin1919입니다. 오늘은 일기 형식으로 책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새해가 밝은지 날이 흘렀지만 특별히 새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마음가짐에서야 조금 분위기가 달라졌을지 몰라도, 실제로 하루동안 하는 일이라던가, 내가 걷고 있는 현주소라던가 바뀐 것은 없기 때문이다. 새해 날에도 '아, 2026년이 됐구나.' 하고 하루종일 시를 고쳤다. 어제도 하루종일 시를 고쳤다. 실험적인 시도를 해보고 퇴고도 해보고, 몇 번이고 읽고 다른 시들과 비교해서 어떻게 비춰질지 많이 고민해본 것 같다. 내 기준으로는 다소 파격적으로 시를 마무리 짓고 이정도면 됐다고 생각했다. 오늘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 홀린듯이 침대에서 일어나 컴퓨터를 켰다. 무의식적으로 시를 어떻게 해야할지부터 생각했다. 그정도면 됐지 않을까하는 허무함과 오늘 하루 정도는 쉬어도 괜찮지 않을까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동시에 스쳤다. 정확하게 진단을 내릴 수는 없었다. 아마도 지금 내가 더 건든다고 해서 안 됐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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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묻는다』 -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안도현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녕하세요. demin1919입니다. 일요일을 보내며 월요일을 맞이하기 좋은 시.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를 간단히 소개합니다. 어릴 때 길을 걷다 보면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돌을 괜히 발로 차본 적이 있습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고 그냥 심심해서 혹은 앞에 있으니까요. 그 돌이 어디로 튀어 가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연탄재도 비슷했을 겁니다. 이미 다 타버린 것처럼 보이고 쓸모없어 보이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존재. 그래서 함부로 대하기 쉬운 것들입니다. 하지만 시는 묻습니다. 연탄재가 되기 전 연탄은 누군가를 데우기 위해 얼마나 뜨거웠는지를 너는 아느냐고. 이 말은 사람에게로 돌아옵니다. 지금은 무기력해 보이거나 초라해 보이거나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람이라 해도 과거에는 분명 누군가를 위해 뜨거웠던 순간이 있었을지 모릅니다. 월요일을 앞둔 일요일 밤 이 시가 더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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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 울어주는 버드나무』 - 이윤학

나를 위해 울어주는 버드나무 이윤학 자신이 만든 그늘에 고개 숙이고 평생을 살 여자가 있다면, 그 그늘 밑에 신문지 깔고 눕고 싶네 변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가짜인지 알고 싶네 버드나무 그늘 벤치에서, 헤 입 벌리고 잠든 남자들 떠나기 위해 매미들은 악을 쓰며 울고 있네 그 여자의 숨소리, 아주 작은 머리카락 흔드는 소리 날개 없이 날아다니는 것들이 헤매게 하네 안녕하세요. demin1919입니다. 오늘은 이윤학 시인의 〈나를 위해 울어주는 버드나무〉를 읽어보고자 합니다. 이 시에 등장하는 버드나무는 나무가 아니라 화자가 사랑에 빠진 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긴 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은 긴 머리칼을 흩날리는 사람을 떠올리게 하고 그 머리칼로 그늘을 만들 만큼 조용하고 착한 사람의 형상이 겹쳐진다. “자신이 만든 그늘에 고개 숙이고 평생을 살 여자가 있다면” 이라는 문장은 그 사람의 성품을 말하는 것 같다. 스스로를 낮추고 자신이 만든 그늘로 누군가를 쉴 수 있게 해주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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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환상통』 - 김혜순

날개 환상통 김혜순 하이힐을 신은 새 한 마리 아스팔트 위를 울면서 간다 마스카라는 녹아 흐르고 밤의 깃털은 무한대 무한대 그들은 말했다 애도는 우리 것 너는 더러워서 안 돼 늘 같은 꿈을 꿉니다 얼굴은 사람이고 팔을 펼치면 새 말 끊지 말라고 했잖아요 늘 같은 꿈을 꿉니다 뼛속엔 투명한 새의 행로 선글라스 뒤에는 은쟁반 위의 까만 콩 두 개 사실 이 소리는 빗소리가 아닙니다 내 하이힐이 아스팔트를 두드리는 소리입니다 (그 콩 두 개로 꿈도 보나요?) 지금은 식사 중이니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나는 걸어가면서 먹습니다 걸어가면서 머리를 올립니다 걸어가면서 피를 쌉니다 그 이름, 새는 복부에 창이 박힌 저 새는 모래의 날개를 가졌나? 바람에 쫓겨 가는 저 새는 저 좁은 어깨 노숙의 새가 유리에 맺혔다 사라집니다 사실은 겨드랑이가 푸드덕거려 걷습니다 커다란 날개가 부끄러워 걷습니다 세 든 집이 몸보다 작아서 걷습니다 비가 오면 내 젖은 두 손이 무한대 무한대 죽으려고 몸을 숨기려 가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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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 - 나태주

꽃잎 나태주 활짝 핀 꽃나무 아래서 우리는 만나서 웃었다 눈이 꽃잎이었고 이마가 꽃잎이었고 입술이 꽃잎이었다 우리는 술을 마셨다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사진을 찍고 그날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다 돌아와 사진을 빼보니 꽃잎만 찍혀 있었다 안녕하세요. demin1919입니다. 오늘 읽어볼 시는 나태주 시인의 <꽃잎>입니다. 나태주 시인은 초등학교 교사였어서 그런 것인지, 시들이 하나 같이 아기자기하고 애틋하다. 시 속의 만남은 특별한 사건이 없다. 활짝 핀 꽃나무 아래서 웃고 술을 마시고 조금 울컥했다가 사진을 찍고 헤어질 뿐이다. 나태주 시인의 시들은 보통 이성에 대한 사랑이나 가족애가 느껴지는 시들이 많은데 이 시를 읽었을 때는 친구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노는 방법은 조금 다를지라도 친구들이랑 만나면 많이 웃고 술도 마시기도 하고 십대 시절이 생각나 울컥하기도 한다. 시는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봤을 법한, 아주 평범한 하루를 건드린다. 웃음꽃이라는 말이 있다. 웃는 얼굴을 활짝 핀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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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스타필드 별마당도서관에 다녀왔다

안녕하세요. demin1919입니다. 오늘은 수원 스타필드에 방문할 일이 있어 별마당도서관도 함께 구경하고 왔습니다. 거창한 인테리어 없는 백화점 건물처럼 거대한 곳, 스타필드 라고 영어로 적힌 곳에 입구가 있었습니다. 입구 옆에 노란색 공이 있는데 혹시나 길이 헷갈리시는 분은 노란공 기억하시면 좋을 듯합니다. 긴 통로를 지나 에스컬레이터를 통해 4층으로 올라가면 이렇게 아름답게 개방된 도서관 별마당도서관의 아래 전경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지나가다 문학, 인문 계열 책이 꽂힌 책장이 눈에 띄었는데요. 4층, 가운데 계단 의자 반대편 쪽에 소박하게 자리잡았어요. 6층에 올라와 바라본 별마당도서관 전경. 그야말로 별마당이라는 말이 정말 잘 어울리는 모습의 도서관이었어요. 도서관 전체가 마당이라면 조명에 반사되어 밝게 빛나는 책들은 별에 비유하고 싶네요. 옆에는 LP노래를 들으며 커피도 마실 수 있는 청음 카페가 있었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여기도 이용해 보고 싶네요. 맨 꼭대기 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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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Bücher)』 - 헤르만 헤세

책(Bücher) 헤르만 헤세 이 세상의 어떠한 책도 너에게 행복을 주지는 못한다. 그러나 살며시 너를 네 자신 속으로 돌아가게 한다. 네가 필요한 모든 것은 네 자신 속에 있다, 해와 별과 달이. 네가 찾던 빛은 네 자신 속에 있기 때문에. 오랜 세월을 네가 갖가지 책에서 찾던 지혜가 책장 하나하나에서 지금 빛을 띤다, 이제는 지혜가 네 것이기 때문에. 안녕하세요. demin1919입니다. 오늘 읽어볼 시는 헤르만 헤세의 『책(Bücher)』입니다. 이 시의 첫 문장만 읽으면 마음이 조금 가라앉는다. 어쩌면 책을 좋아하는 사람일수록, 가장 아프게 와닿는 문장일지도 모르겠다. 이 세상의 어떠한 책도 너에게 행복을 주지는 못한다 책을 통해 가장 나를 위로해준 헤세로부터 듣는 이 문장은, 단호를 넘어 냉소적이기까지 느껴진다. 하지만 헤세는 곧바로 덧붙인다. 책이 비록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지 못하더라도 우리를 다시 '우리 자신'에게로 데려다 준다고. 이 말이 참 좋다. 아무리 책을 감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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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망초꽃』 - 최승호 / 개망신 당해도 인생은 계속된다

개망초꽃 최승호 개망신을 당해도 인생은 계속된다 지린내 나는 철둑길을 따라서 개망초꽃들이 피어 있다 안녕하세요. demin1919입니다. 원래는 최대한 작가가 안 겹치게 글을 소개하고자 지향하는 편인데요. 글 편식이 생길 수 있으니까 말이죠. 근데 신경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한 두 번만 소개하기에는 책 한 권에 재밌는 글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오늘 읽어볼 시는 최승호 시인의 <개망초꽃>입니다. 최승호 시인의 시를 읽을 때면 피식거릴 때가 꽤나 있다. 개망초와 개망신이란 말을 엮어서 시를 만들 생각을 하다니 직접 만나본 적은 없지만 아이같은 매력이 있으실 것 같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같이 지내다보면 지루해 질릴 일은 없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든다. 시가 짧고 장난치는 게 아닌가 싶을정도로 유희적인 성격을 띄다보니 아무 의미도 없을 것 같지만, 또 마냥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시에서 말하는 '개망신'은 무엇일까 분명 철둑길에서 지린내가 난다고 했다. 나는 가장 먼저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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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 한강

괜찮아 한강 태어나 두 달이 되었을 때 아이는 저녁마다 울었다 배고파서도 아니고 어디가 아파서도 아니고 아무 이유도 없이 해질녘부터 밤까지 꼬박 세 시간 거품 같은 아이가 꺼져버릴까 봐 나는 두 팔로 껴안고 집 안을 수없이 돌며 물었다 왜 그래. 왜 그래. 왜 그래. 내 눈물이 떨어져 아이의 눈물에 섞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말해봤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괜찮아. 괜찮아 이제 괜찮아. 거짓말처럼 아이의 울음이 그치진 않았지만 누그러진 건 오히려 내 울음이었지만, 다만 우연의 일치였겠지만 며칠 뒤부터 아이는 저녁 울음을 멈췄다 서른 넘어야 그렇게 알았다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 괜찮아 왜그래, 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 안녕하세요. demin1919입니다. 요즘들어 난해하거나 거창한 시보다 직관적이고 애틋한 내용인 시가 조금 더 끌리는 것 같네요.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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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핑 필사 『방문객』 - 정현종

방문객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안녕하세요. demin1919입니다. 이 글을 보는 사람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오늘은 새해와 어울리면서 사소한 일을 되돌아보게 만들 시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익숙하고도 사소한 일 일지도 모르는, 집에 누군가가 방문하는 일. 그런 "사람이 온다"라는 아주 일상적인 사건을 시에서는 되짚으며, 아주 넓도록 보여줍니다. 방문하는 이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까지 함께 도착합니다. 그래서 만남은 늘 조심스럽고, 쉽게 대할 수 없는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의 내용처럼 부서지기 쉽고, 이미 부서진 적도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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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핑 필사 『거울』 - 이상

거울 이상 거울 속에는 소리가 없소 저렇게까지 조용한 세상은 참 없을 것이오 거울 속에도 내게 귀가 있소 내 말을 못 알아듣는 딱한 귀가 두 개나 있소 거울 속의 나는 왼손잡이오 내 악수를 받을 줄 모르는― 악수를 모르는 왼손잡이오 거울 때문에 나는 거울 속의 나를 만져보지를 못하는 구료마는 거울 아니었던들 내가 어찌 거울 속의 나를 만나보기만이라도 했겠소 나는 지금 거울을 안 가졌소마는 거울 속에는 늘 거울 속의 내가 있소 잘은 모르지만 외로된 사업에 골몰할께요 거울 속의 나는 참 나와는 반대요마는 또 꽤 닮았소 나는 거울 속의 나를 근심하고 진찰할 수 없으니 퍽 섭섭하오 안녕하세요. demin1919입니다. 오늘은 단편소설 『날개』 로 유명한 이상의 시, 『거울』 을 소개하며 함께 읽어보고자 합니다. 이상.. 소실이든 시든 난해하기로 유명한 작가입니다. 오감도가 발표되던 일제강점기 당시에는 그의 글을 두고 헛소리를 한다며 잡아 죽여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였다고 하죠.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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