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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설운도의 잘못된만남

https://www.youtube.com/watch?v=WLmIiNgFwjA&feature=youtu.be&t=01m10s 1995년 가요대상에서 참가한 가수들이 김건모의 잘못된만남을 부르는 영상을 보았다. 영상 1분 10초 부분에서 가수 설운도씨가 부르는데 정말 지리다고 밖에 표현을 할 수 없을 만큼 놀라웠다. 영상 댓글 대부분이 설운도씨의 가창력에 관한 것일 정도다. 소위 뽕기가 하나도 없을만큼 고음파트를 시원하게 내지르는데 잃어버린 30년으로 유명세를 타기 전 밴드 트리퍼스의 대체보컬로 데뷔한 락커 출신이었기 때문에 트로트 이외의 장르의 곡도 시원하게 부를 수 있었던 것이다. 참고로 트리퍼스란 밴드는 70년대 MBC와 TBC(동양방송)에서 10대가수를 하던 김훈 이란 가수의 밴드였는데, 나이트클럽 공연 겹치기가 극심했던 당시 김훈씨가 공연을 하지 못하면 대타로 설운도씨가 나와 트리퍼스의 곡이나 외국 팝송을 부르곤 했다. 해당 영상에서 설운도씨의 창법이나 부르는 모습을 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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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명선거에 공을 세운 광복군 출신 초대 한전사장 박영준

1967넌 5월 3일 대통령선거 개표를 앞두고 박정희 대통령은 한일병원에 입원 중이던 박영준 한전 사장에게 "개표를 앞두고 정전사고를 내지 말라."고 지시를 내렸다. 당시 박영준 사장은 맹장염 수술을 받았지만 결과가 좋지 않아 병상에 누워 있던 상태였다. 병고에 시달려 업무에 지장이 큰 상태에서도 각 지점에 연락하여 각 지점 출장소에 연락해 정전 사고를 일으키지 않도록 지시하였다. 덕분에 정전 사고로 개표중단 소동을 벌인 곳은 없었다. 정일권 국무총리로 부터 임명장을 받는 박영준 초대 한전사장(우측, 출처: 국가기록원) 박정희 대통령이 병상에 누워있는 박영준 사장을 독촉할만큼 정전에 민감했던건 제1공화국 시절 개표장에 정전이 발생해 어둠 속에서 개표를 하는 올빼미식 개표가 발생하여 부정선거 의혹을 발생시켰던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부정선거 의혹을 발생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박정희 정권의 의지가 강했기 때문이다. 1967년 5월 7일자 조선일보 기사에 따르면 한국전력은 제6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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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결처분을 막은 광복군 출신 강홍모 부연대장

이 블로그에 동지를 배신한 광복군 장교라는 글을 작성한 적이 있었다. 해당 글에서 연대장에게 즉결처분을 당한 ㅇ모 대대장을 언급하며 즉결처분은 부당했지만, 당시 무단철수를 감행해 광복군 동지였던 옆 대대장까지 포위를 당할 위기에 처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잘못한 점이 있다고 언급했다. 이 글에 모 독립유공자 후손이라는 분이 인민재판을 옹호하냐는 식으로 댓글을 남겼지만 결코 즉결처분이라는 행위를 옹호한 것은 아니었다. 여기서 이 이야기를 언급하는 것은 6.25 전쟁 당시 즉결처분의 부당한 사례를 언급함과 함께 이를 막았던 광복군 출신 국군 장교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이다. 광복군 제1지대에서 활동하였고, 장철부 중령과 함께 황포군관학교 20기를 임관했으며 귀국 후 육군사관학교 4기를 졸업하고 육군 대령까지 복무했던 강홍모 지사의 독립기갑연대 부연대장 시절 이야기이다. https://blog.naver.com/hanj86/223361088749 비운의 황포군관학교 20기 광복군 장교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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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낙스 폐업

에반게리온을 제작한 가이낙스가 폐업을 하였다. 기업이 꾸준히 이익을 남기고 오래 경영을 하는 것이 본분일진데.. 그 본분을 지킨다는건 참 어려운 일이다. 그저 40년 고생 많았고 명작은 남겼으니 보람된 성과는 남기고 떠나는구나 싶다. 가이낙스는 가도 에반게리온과 잔혹한 천사의 테제는 남아있지 아니한가. https://youtu.be/kcSM0XbYjS8?si=K-NhD4DY2WCN5KXt https://youtu.be/u2MzSylesWk?si=DETWyI9dZgAjIU1X 가이낙스를 기리며 한국 유튜버들이 잔혹한 천사의 테제를 패러디한 작품 두 편의 링크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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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긍호 의병장을 추모한 독립운동가 권준 장군

민긍호 의병장은 대한제국 군인 출신으로 군대해산 후 원주를 중심으로 의병활동을 하며 일제에 저항하다가 장렬히 전사했다. 2014년 소치올림픽에서 카자흐스탄 대표로 동메달을 따고, 몇 해 전 강도에 의해 목숨을 잃은 피겨스케이트 선수 데니스텐의 외고조할아버지이기도 하다. 민긍호 의병장이 전사한 후 그의 가족들은 연해주로 이주하다가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로 카자흐스탄에 끌려가고, 일제시대와 6.25 전쟁을 거치며 묘소가 방치되었는데 1954년 당시 원주를 중심으로 한 북부지구경비사령관인 권준 장군의 주도로 묘를 이장하고 추모비를 세웠다. 민긍호 의병장의 묘 민긍호 의병장의 묘를 이장, 정비하고 추모비를 세운 권준 장군은 임시정부 내무차장을 지내고 조선의용대와 광복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해방 이후에는 대한민국 육사 8기 특별 1기로 육군 대령에 임관해 호국군 제106여단장, 초대 수도경비사령관(6.25 전쟁 이후 수도사단으로 변경)을 역임하며 대한민국 국군의 발전에 기여한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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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에서 희생된 임팔전투의 영웅 박영진 지사

대한민국 독립의 이등공신 쯤 되는 일본인 한국 독립운동가 무다구치 렌야로 유명한 임팔전투, 그 전투에서 활약한 진짜 독립운동가들이 있었다. 광복군 인면전구공작대는 임팔전투에서 일본군 암호해독, 포로심문, 투항권고 등 일본군을 대상으로 한 심리전에 맹활약하며 영국군의 임팔전투 성공에 큰 기여를 했다. 광복군 인면전구공작대 대장 한지성은 해방 이후 북한으로 넘어가 6.25 전쟁 초반 북한 치하의 서울에서 인민 부위원장을 하는 등 북한을 위해 일했지만, 인면전구공작대 대원 박영진 지사는 북한 공산군의 남침에 맞서 싸우다 장렬히 전사했다. 광복군 인면전구공작대 박영진(뒷줄 가운데, 뒷줄 오른쪽 두 번째라는 설도 있다.) 박영진 지사는 1921년 경상북도 고령군에서 태어났다고 하나 묘비명에 따르면 중국에서 태어났고, 경상북도 고령군은 본적으로 부모님이 결혼 후 만주로 이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만주 봉천중학을 졸업하고 봉천소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다가 1940년 광복군 청년전지공작대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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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북파공작원 호림부대 대원 전월성은 광복군 출신일까?

1949년 강원도 인제군에서 북한의 후방교란을 위해 북파된 호림부대 재판 영상이 몇 년 전 공개되었다. 호림부대는 1949년 2월 육군수색학교에서 출발하였고, 서북청년단 출신 청년들을 중심으로 결성되었다. 이후 1949년 7월 북한의 남침을 저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호림부대 5,6 대대 요원 240여 명이 강원도 인제군으로 침투했고, 240명 중 203명이 전사, 14명이 포로가 되었으며 생환자는 23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호림부대 공판 관련 영상에 나오는 호림부대원 중에는 광복군 제3지대에서 활동했던 이한기 지사도 포함되어있다. 이한기 지사는 2023년 광복군 무후선열의 현충원 이장 당시 윤석열 대통령이 대북작전 수행 중 전사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 영상에 나오는 대원들 중 전월성과 동명의 인물이 독립유공자 공적정보에 나와있지만 같은 인물인지는 명확하지가 않다. 호림부대 자료에 따르면 전월성은 1915년 생으로 강원도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해방 후 서북청년단에서 활동하다가 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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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공군 정비분야의 아버지, 독립운동가 김영재 대령

대한민국 육군을 대표할만한 독립운동가로 김홍일 장군을 꼽을 수 있다. 김홍일 장군은 일제시대 이봉창, 윤봉길 의거에 쓸 폭탄을 제조하는데 도움을 주었고, 6.25 전쟁 당시엔 한강 방어전을 지휘하며 육군의 전멸을 막고 미군이 참전하는 시간을 벌어 자유 대한민국을 지키는데 큰 공을 세웠다. 김홍일 장군의 조카 김영재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김영재 대령은 윤봉길 의사에게 물통, 도시락 폭탄을 전달한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공군의 창설 이후 공군 정비분야의 기틀을 마련한 공군 정비분야의 아버지라 꼽을 수 있다. 김영재 전 공군 항공창장, 대령(1911~1965) 김영재 대령은 1911년 김홍일 장군의 큰 형인 김홍익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항공학교로 유학을 가 비행기술을 익혔고, 졸업 이후 1931년 상하이로 건너갔다. 상하이에서 훗날 해군 공창장을 역임하는 독립운동가 서재현, 김석 등과 상하이한인청년당을 조직하였고, 중국 비행학교에서 비행훈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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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의 회복을 우선시 하는 삶

작년 여름 내가 맡았던 학급에 학교폭력(이하 학폭)이 발생했다. 사건을 듣자마자 바로 신고하였고, 몇 달간 당사자 학부모 간에 지리멸렬한 분쟁에 시달렸다. 자기 자녀를 두둔하고자 반성을 하지 않는 가해학생 부모와 가해학생의 엄벌에 집착하는 피해학생 부모들. 가해학생의 부모는 사과편지를 쓴다고 했지만 피해학생들 중 일부에게만 보내는데 그쳤고, 가해사건의 일부를 부정하였고 피해학생의 부모들은 동네에 해당 사안을 퍼트리며 주변 학부모들이 학폭신고를 하도록 선동하였다. 심지어 그해 가을엔 가해학생을 경찰에 신고까지 하였다. 나는 이 과정에서 가해학생 부모와 피해학생 부모에게 당신 자녀의 정신적 회복을 부탁하였고 상담을 여러차례 진행하였다. 또한 교실 내에서 당사자 간의 동선을 최소화 시키기위해 노력하였고, 외부 상담 프로그램을 소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의 정신적 회복에 소극적이었고 상담프로그램 참여도 적극적이지 않았다. 반성을 안하며 자존심을 지키려는 가해학생과 그 부모, 상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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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군함을 침몰시킨 독립운동가 김수산

일제시대 재미교포들이 발간한 신한민보 1937년 7월 15일자에 "한국청년 김수산 - 황포강의 왜군함을 격침"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있다. 1932년 제1차 상하이 사변 당시 오송항의 포대의 포수로 있던 김수산이 일본군의 군함을 침몰시켰다는 내용이다. 제1차 상하이 사변 당시 교전 중인 국민혁명군 제19로군 기사에 따르면 광주학생운동 당시 국내에서 교육의 기회를 잃은 수 천 명의 조선인 학생들이 외국으로 넘어갔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광주학생운동을 주도한 이경채가 중국에 망명해 국민혁명군(이하 중국군)에 입대해 육군대학을 졸업하고 중교(중령)으로 전역했다. 김수산 역시 비슷한 시기인 1926년 진주농고 재학 중 동맹휴학을 주동하다 퇴학당하고 상하이로 망명했다. 상해로 망명한 김수산은 상해에서 여러 학교에 입학을 간청했지만 거절당했지만 좌절하지 않았고 마침내 1927년 중국군에 입대했다. 1930년 남경포병학교를 졸업하였고, 오송항 포대에서 포수로 복무하였다. 제1차 상하이 사변이 발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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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사 관리소장 시절의 광복군 출신 김동수 장군

박정희 대통령은 집권기에 현충사 성역화에 많은 공을 들였다. 지금 현충사 관리소장은 4급 서기관이 맡고 있지만 당시는 2급 이사관이나 1급 관리관이 맡았으며, 지금은 차관급인 문화재청장 보다도 높은 직급이었다. 초대와 2대 현충사 관리소장은 퇴역한 장군들이 맡았는데 초대 현충사 관리소장은 제6군관구사령부 부사령관을 역임한 최영성 예비역 준장이 맡았고, 제2대 현충사 관리소장은 광복군 출신인 김동수 예비역 준장이 맡았다. 광복군 출신인 김동수 장군의 현충사 관리소장 시절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국가기록원의 자료들을 검색했는데 흥미로운 사진이 몇 있어서 소개를 하고자 여기 글을 남기게 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현충사 방문 당시 박정희 대통령을 수행하는 김동수 현충사 관리소장. 가운데 우산을 쓴 사람이 박정희 대통령, 오른 편이 김동수 현충사 관리소장이다.(출처: 국가기록원) 박정희 대통령에게 우산을 씌워주는 김동수 현충사 관리소장. 박정희 대통령보다 본인을 더 많이 가리는 듯이 보이는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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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아들 안준생 장례식 사진

안중근 지사 아들 안준생의 장례식 사진(출처: 월간조선) 이토 히로부미의 아들에게 사죄한 것으로 김구의 분노를 사게도 했던 안중근 의사의 아들 안준생의 장례식 사진을 보면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보인다. 사진 오른편 네 번째는 안준생의 6촌이자 독립운동가인 안춘생 장군(당시 육군사관학교장), 안춘생 장군 오른편에 독립운동가 손정도 목사의 아들인 손원일 장군(당시 해군참모총장)이다. 왼쪽에서 네 번째 원 안에 있는 인물은 안중근 지사의 동생 안성녀의 여동생이자 독립운동가인 오항선 지사. 친일파 취급을 받을만한 안준생의 장례식에 독립운동가들이 있다. 안춘생 장군과 오항선 지사야 안준생의 친척이니 장례식에 가는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친척도 아닌 손원일 장군까지 장례식에 참석해 함께 사진을 찍은 것은 다소 의외일 것이다. 어찌보면 친일파라 할 수 있는 안준생에 대해서 단순한 매국노로 취급한 것과 다른게 있던게 아닐까. 이토 히로부미의 아들에게 사죄하는 안준생(출처: 아주경제)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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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서울을 끝까지 사수하다 희생한 광복군 출신 차약도 중령

1950년 6월 북한군이 서울을 함락하기 직전 헌병사령부에 갇혀있던 남로당 간첩 김삼룡, 이주하가 끌려나와 처형되었다. 당시 헌병사령부 제3과장 송호순, 서울지구 헌병대장 차약도 소령이 김삼룡, 이주하를 끌고나온 헌병들을 인솔하고, 처형을 집행하였다. 한강철교도 폭파되고 서울 함락이 임박한 때에 굳이 헌병들이 남아 이들을 처형한 것은 남로당 간첩 김삼룡, 이주하가 북한군에 넘어간다면 다시 남으로 내려와 후방을 교란시킬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대한민국에 남아있던 북한군 출신 중 만 여명이 빨치산으로 남아 태백산, 지리산 등지에서 1960년대 초반까지 군경에게 저항했을 정도로 북한군의 후방교란은 충분히 우려할만한 일이었다. 서울지구 헌병대장 차약도 소령은 이후에도 한강 이북에 남아 북한군에게 저항했고, 지금의 신세계백화점인 동화백화점 부근에서 서울에 진입한 북한군과 교전하다 전사했다. 이후 차약도 소령은 전사한 것으로 인정되고 중령에 추서된다. 일설에 따르면 차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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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명예 존중

얼마전에 광복군 출신 장군님에 관한 글을 포스팅 했는데 손자 되시는 분께서 글에서 언급된 내용을 일부 수정해주기를 댓글로 남겨주셨다. 댓글의 내용을 보니 아무래도 장군님 가족분들께 누가 되지 싶어 삭제를 했다. 이 블로그를 시간을 쪼개며 하는 이유는 내 생각을 기록하는 것도 있지만 독립운공자 분들의 해방 후 행적을 알려 이 분들이 대한민국 건국과 발전에 대한 공이 많다는 걸 알리기 위함도 있다. 내가 지운 글의 내용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해당되는 내용이지만 가족 분들께는 누가 될 수도 있는 부분이 없잖아 있다. 선한 목적으로 행하는 거라도 누군가에겐 폐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독립운동가 분들의 해방 후 행적을 보면 그 분들의 업적도 보이고 어려운 삶을 살아온 내용도 있지만 과오가 되는 부분도 많이 보인다. 군수품 착복으로 구속되는건 예사고 첩과 자녀를 학대하거나 심지어 야인시대에도 나온 깡패와 결탁했던 독립운동가도 있다. 6.25 전쟁 당시에도 졸전을 하여 부하들을 많이 잃은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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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군 출신 박기성 장군의 파란만장한 이야기

이웃 블로거님의 블로그에서 "5연대장들에 대한 불운 괴담"이란 제목의 글을 보았다. 이는 5연대장을 역임했던 채명신 장군의 증언에도 나온다. 6.25 전쟁 당시 제5연대 연대장들이 해임, 부상, 지뢰밟고 전사, 포로, 강등, 전사 등으로 채명신 연대장이 부임한 1951년 하반기까지 1년 사이에 10명 정도가 교체되었다는 내용이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parizal&logNo=223078197774&referrerCode=0&searchKeyword=5%EC%97%B0%EB%8C%80 5연대장들에 관한 불운 괴담 5연대는 전쟁 전만 해도 싸움 잘하는 연대로 알려져 있었다. 당시에 싸움 잘하는 연대의 비결은 특별한 것... m.blog.naver.com 여기에서는 그 5연대장 불운의 스타트를 끊은 광복군 출신 박기성 장군의 이야기를 풀어볼까한다. 박기성 장군은 울산 방어진에서 방위군 사령관을 하던 당시 추위에 떨며 경계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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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 대통령 박은식 선생의 아들 박시창 장군의 웃음

광복군 제2지대사 책에 나온 사진 한 장. 광복군 출신이자 부산대 교수, 부산예총 회장으로 부산 예술계를 이끌었던 한형석 지사가 광복군 동지들의 초청으로 서울에 올라와 회갑연을 가질 때 찍힌 사진이다. 생일 선물을 받는 한형석 지사 뒷편 박시창 장군이 개구쟁이 같은 웃음을 지으며 박수를 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박시창 장군은 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이자 독립운동가인 박은식 선생의 양아들이고 본인도 광복군 활동을 했던 독립운동가이다. 중일전쟁 당시 포병대장으로 일본군을 향해 포를 쏘아댔을 만큼 맹장이었지만 이 사진 속 표정은 영락없는 개구쟁이 같다. 독립운동가 분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이 사진을 통해 조금이나마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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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권에서 존경하는 분을 찾게 되다니 ㅎㅎ

언젠가 독립운동가 김수산 지사가 상하이 사변에서 일본군 군함을 침몰시킨 이야기를 포스팅 했었다. 그 이야기를 쓰면서 알게 된 책이 이돈형 선생이 쓴 "어떻게 지킨 조국인데"라는 책이다. 이 책에서 김수산 지사가 이돈형 선생의 대대장으로 종종 등장하는데 진짜 사차원스러우면서도 호쾌하고 인정 넘치는 나같은 사차원이 롤모델로 삼고싶은 그런 분이다. 중학교때 기술 선생님과 몇 해 전 같이 근무하던 교무부장님이 저 분과 비슷한 스타일이었다. 독특한 개성이 강하지만 그래도 부딪히지 않고 호쾌한 모습을 유지하는.. 내가 원래 내성적이고 예민하지만 가르치는 학생들과 직장동료들에게 만큼은 최대한 저런 스타일을 보이고자 한다. 독특한거야 내 원래 성품이니 감추기는 힘들지만 보다 유쾌함과 과자 하나 더 챙겨주는 나눔을 실천해야 힘든 삶 속에서도 즐거움이 커지는 법이다. 그리고 학생 동료들과도 관계를 긍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고말이다. 지금 내가 가장 존경하는 분은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육군 예비역 포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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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에게 받은 편지

작년에 가르쳤던 학생들이 찾아와 편지를 주었다. 왜 그리 미안하다 죄송하단 말이 많은지 그저 난 혼을 많이 내서 미안할 따름인데 말이다. 내가 보잘것없는 일을 하고 있고, 많은 분야에서 자신을 위해 나아가 사회를 위해 많은 일을 하는 분들이 많지만 이 편지를 읽는 동안은 나도 나를 위해서 그리고 긍정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는 자긍심이 느껴진다. 그리고 나를 알아주고 편지를 써서 갖다준 학생들에게 고마웠다. 내가 학생들에게 해주는 거라곤 아재개그를 하거나 아이돌 노래를 트로트로 바꿔 부르거나 웃긴 그림을 그려주는 정도인데 그걸 좋게 봐줘서 보람찼다. 요즘 모 유튜브 채널에서 개그맨 분이 여러 장르의 노래들을 트로트로 바꿔 부르던데 그 분이 부른 비비의 밤양갱을 들으며 연구해야겠다. 올해 가르치는 학생들이 힘들어할때 불러줄 생각이다. 그리고 그 학생들에게 배달 어플 기프티콘을 준건 안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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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인주의자

5월 8일 편지를 준 학생들이 답장해달라길래 해주었다. 최대한 길게 써서 사진을 찍어 문자로 보내주었는데 내가 꼰대라 그런지 대부분 충고투성이다. 대충 힘든거 이겨내느라 고생이 많다. 찾아와줘 고마웠다. 어려움은 스스로의 힘으로 이긴다. 힘들어도 자신의 가치를 소중히 해라. 너 자신을 사랑하고 너 자신의 마음을 가꾸는데 힘써라. 6명에게 답장한 편지들이 죄다 그런 식이다. 30대에 들어서면서 개인주의에 경도된 나는 골수 개인주의자가 된 나머지 개인의 가치를 소중히 하라는 말만 늘어놓게된다. 정작 나는 오늘 영어공부도 허탕쳐버렸고 잠자는 시간 아끼며 인강 하나라도 들어야 할 판인데 말이다. 졸리긴 하지만 내 가치를 소중히 하기위해 영어 인강 하나 들어야겠다. 졸리지만 말이다. 주변에서 가끔 내 이념을 묻는 경우가 많다. 정치적 이념은 여러 여건상 꺼내고 싶지도 않고 딱히 없기도 하다. 좌든 우든 위든 아래든 동서남북이든 나는 개인주의자이다. 개인의 가치를 소중히 하고 서로의 가치와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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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최초 햄버거집

제주도 최초 햄버거집 러브리 햄버거 하지만 우리 어머니께서 옆가게 반도리아 햄버거를 사주셔서 여기와 추억이 많지는 않다. 반도리아보다 러브리가 원조이고 사람도 많아서 가고싶었는데 가지는 못하는게 좀 서운했다. 용돈도 받고 친구들이랑 거리를 다닐 수 있을때 쯤에는 롯데리아는 생긴지 오래됐고 맥도날드, 버거킹, 파파이스 이런거 막 생기기 시작했다. 게다가 그 반도리아는 없어진지 오래라 러브리는 안중에 없었다. 한 15년 전 쯤엔가 추억이란걸 떠올리기 시작할때 여기서 캐찹맛 나는 햄버거 먹어보고 한동안 또 잊다가 가보니 그 자리엔 도니버거가 생겼다. 제주도 최초 햄버거집은 이렇게 사라졌다. 오늘 버거킹 먹다보니 갑자기 그 러브리 캐찹맛 햄버거가 생각난다. 내일은 빠바가서 사라다빵이라도 사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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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만에 텝스 응시

어제는 5년 만에 텝스에 응시했다. 시험과 대학원 진학을 미루고 미루다 미뤄온 지난 5년 텝스의 난이도는 그대로지만 나의 체감 난이도는 더 높아졌다. 교육학 교수가 되고자하는 내 꿈이 안이뤄진다면 이건 필시 내가 미루고 미루다 미뤄오는 게으름 때문이고, 여기서 내 꿈을 밝히는건 게으른 이 사람을 비웃고 지나가도 좋다는 뜻이다. 내탓이오 내탓이오 내탓이로소이다. 텝스를 응시해보며 가장 힘든건 집중력이다. 105분 동안 쉬지않고 문제푸는게 정말 힘들었다. 듣기도 여러 문제 놓치고 특히 마지막 독해는 속독이 힘들어져 내용 파악 자체가 흐트러졌다. 5년 전 마지막 시험은 그래도 독해가 참 쉽다 느꼈는데 말이다. 이번 여름까지는 아무생각없이 본능적으로 짐승처럼(이 말은 내가 학생들에게 학습지 풀이를 시킬 때 쓰는 표현이다.)마구잡이로 공부해야겠다. 두 시간 동안 버티며 앉을 수 있는 집중력만 있으면 실력이 안늘어도 1점 더 오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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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에서 말하는 선교의 의미

오늘은 교리시간에 선교에 대해 배웠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구원의 진리를 전하는 예언자의 역할을 하시고, 하느님께 완전한 제사를 봉헌하는 사제의 역할을 하셨으며, 당신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겸손하게 봉사하는 왕의 역할을 하셨다. 사도들도 예언자, 사제, 왕의 역할에 동참하도록 하였고 이는 가톨릭 신자들에게 부여된 역할이기도 하다. 이 세가지 역할이 선교인데 그래서 미사가 끝날때마다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 라는 말과 함께 파견성가를 부르며 마치는 것이 이러한 의미이다. 가톨릭 교회의 선교사명은 예언자직, 사제직, 왕직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예언자직은 세상에 구원의 진리를 퍼트리는 것이다. 사제직은 세상을 구원하고 거룩하게 만드는 일에 동참해 선교 사명을 수행하는 것으로 미사에 참여하고, 기도하는 등 자신의 삶을 주께 바치는 것이다. 왕직은 세상에 봉사하며 그리스도의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 얼마전 부평역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예수를 믿으라며 쉬지않고 선교하는 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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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열지사 이야기2)박열 지사의 아들 박영일 장군의 육사입학기

영화로도 많이 알려진 독립운동가 박열 지사의 이야기는 전 편에서 납북 후 행적에 관한 에피소드와 이어진다. 전 편에서는 박열 지사와 초대 육군 총사령관 송호성 장군과의 다툼을 소개하였다. 해당 에피소드에서는 북한에 납북된 상황 속에서 강인함을 잃지 않은 박열 지사의 모습을 이야기했다. 이번에는 박열 지사의 아들 박영일 장군의 육사입학기를 소개하는데, 비록 대한민국이 아닌 북한 땅에서 고초를 겪고 있었지만 끝까지 대한민국을 생각했던 박열 지사의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에피소드라 간략하게나마 소개하고자 한다. https://blog.naver.com/hanj86/223418684507 (박열 지사 이야기1) 박열과 송호성이 납북 후 다툰 이야기 영화로도 널리 알려진 독립운동가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이야기는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다들 알고 있을 ... blog.naver.com 아들이신 박영일 장군님의 육사 입학기를 쓰려고 준비하던 중 박영일 장군님께서 금년 1월 16일 소천하셨다는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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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자루 우형철 선생님 명복을 빕니다.

일상, 생각 삽자루 우형철 선생님 명복을 빕니다. 김모씨 2024. 5. 13. 23:53 이웃추가 본문 기타 기능 https://m.wikitree.co.kr/articles/951038 “다음 생에도 선생님 제자로…” 수학 일타강사 '삽자루' 사망, 제자들 충격·애도 '수포자들의 구세주'로 불린 '삽자루' 선생님 우형철 사망 m.wikitree.co.kr 저의 재수 시절 수학은 삽자루, 한석원, 박승동이 있었습니다. 저는 당시 한석원 선생님을 존경해 한석원 선생님 인강을 들었지만 삽자루 우형철 선생님 역시 존경스러운 스승이라 생각합니다. 학생들에게 삽자루를 들면서도 그 들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독려하였고, 강의 자체 뿐 아니라 강의 현장 밖에서도 세심하게 학생들을 돌보았습니다. 군필 재수생 들에게 인강을 무료로 제공하고, 자비로 스키장에 데려가 격려하기도 했으며 효율적인 방식으로 수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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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타운 이야기로 A 받은 이야기

첫 대학을 다닐 적 이야기다. 참고로 나는 대학을 두 군데 다녔는데 첫 대학은 2년 중퇴, 군 제대 후 다시 수능을 쳐서 두 번째 대학에 들어가 졸업을 했다. 여튼 그 첫 대학 1학년 2학기에 영어 공부 좀 해보려고 영미권 문화의 이해라는 원어민 수업을 들었다. 나는 수능 영어 5등급 받을 만큼 영어는 거의 몰랐고 그냥 의욕으로 들었다. 당연히 수업내용은 하나도 이해를 못했다. 당시 그 강의 중간고사는 발표로 대체했는데 발표 주제가 영미 문화 소개하기였다. 영어는 모르고 의욕만 가지고 수업을 들은 나는 당연히 발표준비를 미루었고 강의 전전날에 발표준비는 안하고 TV를 하루종일 보고있었다. 그런데 TV에서 모타운의 역사에 대해서 방영했고, 순간 이거다 싶었다. 슈프림즈에서 마이클잭슨까지 흑인음악을 팝의 주류로 끌어올려준, 그리고 흑인하면 소울을 떠올리게 만든 모타운을 발표 주제로 삼아야겠다 싶었고 발표 자료랑 원고까지 준비했다. 내 영어실력도 부족하고 얼마 안되는 기간동안 준비해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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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전선에서 북한군과 맞서다 전사한 광복군 출신 이의명 지사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남침을 하면서 가장 먼저 북한군과 맞선 부대는 수도사단 1연대 2대대였다. 당시 수도사단 1연대 2대대장은 이의명 소령이었다. 이의명 소령은 1연대장 함준호의 관사로 찾아가 북한군의 남침을 알리고 소요산에서 북한군 4사단의 침공을 막아냈지만 T-34를 앞세운 북한군에 중과부적으로 밀려 동두천까지 밀려났고, 결국 동두천 일대에서 이의명 소령은 전사하였다. 6.25 전쟁 서부전선의 첫 전투라 할 수 있는 소요산, 동두천 전투에서 활약하다가 전사한 이의명 소령(이하 지사)은 광복군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아버지 이장녕, 형 이복명도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다. 이의명 지사의 아버지 이장녕 지사 이의명 지사의 아버지 이장녕 지사는 대한제국군에 복무하다가 군대해산 이후 가족들을 이끌고 중국 만주로 건너갔다. 이후 이회영과 함께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해 교관, 교장을 역임하였고 북로군정서 참모장으로 청산리전투에도 참전했다. 이후 독립군 활동을 계속하다가 1932년 마적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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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의 일기 최선화 여사의 여성운동

최선화 여사는 독립운동가이자 해방 후 실업가로 활동한 양우조의 아내이자 제시의 일기를 쓴 사람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최선화 여사가 대한민국 건국 후 엘리트 여성들의 사회진출에 크게 기여했다는 것은 알려진 바가 없다. 최선화 여사는 1930년대 초 미국 유학 후 귀국한 양우조를 경성(지금의 서울)에서 만났고, 1936년 양우조와의 결혼을 위해 상해로 건너가 양우조를 만났다. 양우조와 최선화의 아버지 최선화 여사가 상해에서 만난 자리에서 양우조가 일본 경찰의 검거를 피해야 했을 만큼 당시 상해는 독립운동하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둘은 1937년 결혼했고, 창사와 광저우, 충칭으로 이동하며 임시정부를 위해 일을 했다. 제시의 일기도 이 와중에 태어난 딸 양제시를 키우면서 서술한 육아일기이다. 최선화 여사는 해방 후 1946년 귀국했고, 제시의 일기도 이 대목에서 마친다. 하지만 최선화 여사의 활동은 여기서 마치지 않았다. 최선화 여사는 귀국 후 이화여자대학교가 설립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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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시작으로 컴백하신 임동진 배우님은 독립운동가 사위

2월 22일 이승만 전 대통령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기적의 시작"이 개봉했다. 목사이자 원로배우인 임동진씨가 이승만 전 대통령 역으로 영화의 재연장면에 출연하셨다. 2001년 뇌출혈로 사경을 해메었지만 틈틈히 드라마와 영화 등에 출연하고, 목사로 임직해 목회활동에도 충실하였다. 배우 임동진의 장인은 독립운동가이자 6, 70년대 영화제작자인 권혁조이다. 권혁조는 1923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났고, 주오대학 재학 중인 1944년 학도 특별지원병 제도로 일본군에 징집되어 대구 제 24부대에 배속되 훈련받았다. 당시 같이 훈련받던 학병 동료 6명과 함께 부대 탄약고를 폭파하고 무기를 탈취해 일본군을 몰살시킬 계획을 하고 하수구를 통해 부대를 탈출했다. 탈출 후 팔공산 내 모 사찰에 머물고자 했으나 호의적이지 않았고, 일본군이 포위하자 이를 뚫고 안동으로 향하던 중 붙잡혀 5년형을 받고 복역했다. 8.15 해방 직후 풀려나 영화제작업에 종사했고, 6,70년대에 많은 작품을 제작했는데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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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는 채념했는데 김신 장군은 왜 안그랬을까?

건국전쟁에선 김구와 유어만의 대담록을 통해 김구가 북한의 군사력을 보고 대한민국이 결국 패망할것이다 하였다. 그리고 그가 채념한 듯 하다고 하였다. 아들 김신은 이와 다르게 미국 랜돌프 비행학교와 중국 공군군관학교를 졸업하고 1948년 육군항공대를 거쳐 1949년 공군 창설맴버가 되었다. 김구가 채념했다면 북한에 의한 통일을 기다린 듯 하다는 정황이 맞다면 아들 김신도 이영무 대령처럼 월북하거나 6.25 전쟁 중 투항해야 맞지 않을까? https://www.google.com/amp/s/www.chosun.com/culture-life/relion-academia/2024/01/26/NLMCZY22ERF67NG2SLHBCCJKRM/%3foutputType=amp 1948년 7월 김구의 예측 “북한군 남침, 南은 망할 것” [유석재의 돌발史전] 1948년 7월 김구의 예측 북한군 남침, 南은 망할 것 유석재의 돌발史전 유어만 비밀회담은 金九의 아킬레스건 www.google.com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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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 열사의 조카 광복군 한필동 이야기

삼일절 하면 흔히 유관순 열사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유관순 열사의 부모, 형제, 친척들도 다수가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다. 유관순 열사의 사촌 유예도 여사도 유관순과 함께 아우내장터에서 3.1만세운동을 주도했다. 이번에는 유예도 여사의 아들 한필동의 독립운동과 해방 후 활동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한다. 한필동은 1921년 충청남도 홍성군에서 태어났다. 유예도 여사가 불기소처분을 받은 후 홍성군에 사는 한철유와 결혼해 낳은 아들이다. 한필동은 연희전문학교를 나와 일본 유학을 가 오사카외국어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1944년 학병으로 강제 징집 되었고, 1944년 12월 국민혁명군(이하 중국군)주시영 상교와 중국군 포로들을 인솔해 부대를 탈출했다. 이후 1945년 2월 충칭 토교대로 들어가 광복군에 입대했고, 임시정부 요인 경호 및 군사교육을 받았다. 해방 후 한필동은 대한민국 국군 헌병 장교로 입대해 방첩대 대장을 역임하다 육군 헌병 대령으로 퇴역했다. 6.25 전쟁이 발발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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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촌과 고하

저는 존경하는 인물을 뽑으라면 인촌과 고하를 꼽습니다. 인촌은 일제시대 조선에서 보성전문과 동아일보, 경방을 세워 조선인들의 경제, 문화, 교육적 기반을 다지고자 노력했습니다. 혹자는 인촌을 친일파라 하지만, 그 시대 조선땅에서 총독부 비위를 어느 정도 맞추지 못했다면 인촌의 가족은 물론 보성전문, 동아일보, 경방에서 일하거나 공부했던 사람들 모두 암담했을겁니다. 보성전문과 동아일보에서는 독립운동에 참여한 사람들도 많았고 인촌은 그 들을 뒷바라지 하는데 서슴없었습니다. 그리고 건국 직후 토지개혁 역시 인촌이 밀어주지 않았다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고하는 인촌의 친구이자 동아일보 사장을 역임한 일제하 조선의 명망가입니다. 고하는 일제의 만행이 극에 달한 40년대에도 일제에 일체 협력하지 않았지요. 당시 조선에서 일제에 협력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도 인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인촌과 고하를 손가락질하고 그 분들의 업적을 폄훼하더라도 저는 자유주의 대한민국의 건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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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워하는 마음 내려놓기

어제는 내가 미워하는 사람이 잘나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사람은 내가 사석에서 한 말을 왜곡해 퍼트리고 내 말을 이용해 자신의 이득을 취하려고 했다. 덕분에 주변사람들과 서먹해졌고 너무 화가나 그 사람의 부모가 고난을 받다 가버리기를 바랄 정도였다. 어제 그 사람 소식을 듣고 그 사람에 대한 미움이 내 마음 속에 계속 맴돌았다. 오늘 피정을 할 때도 맴돌았었다. 강연에서 자신을 들여보며 웃기를 하는데 그 사람이 하던 사업을 접은 것과 안좋은 소식을 접한걸 떠올리며 웃음을 지을 정도였다. 웃고나서 강사분이 피정에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들을 설명해주셨는데 그 중 한가지가 내려놓기였다. 아직 그 사람을 용서하지는 못하지만 피정동안 그 사람에 대한 미움, 내게 상처입은 사람들에 대한 미움을 내려놓고 나 자신을 사랑해 보고자 하였다. 덕분에 마음이 다소 누구러졌다. 성당에 다니면서 일단은 그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을 내려놓는 것 부터 해나가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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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라후프로 찾은 소소한 즐거움

지난달 말 회사 창고를 비우다가 훌라후프를 발견했다. 그 훌라후프를 팀 회의실로 옮겨서 잘 사용하고 있다. 쉬는 시간이나 수업이 끝나고나서 이따금 돌리곤한다. 오늘은 시간을 재며 이용해봤는데 한 번에 3분 20초 정도를 돌릴 수 있었다. 어린시절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기록이고 그 정도 돌렸다고 숨이 차고 힘들다 느낄만큼 지구력도 약해졌지만 그 3분 20초 동안 내가 오래 돌리고 있다는 뿌듯함과 이유 모를 행복함을 같이 느꼈다. 평소 운동을 가끔하지만 땀 흐를 정도가 되면 그만두곤했다. 근력은 유지했을지언정 지구력이 많이 약해졌다. 옆구리가 땡기고 아프지만 그래도 이젠 한 번에 오래 훌라후프를 돌리고, 회사에서 틈틈히 30분 이상 돌려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이나마 훌라후프를 오래 돌릴 수 있다는 생각에 행복감을 느꼈다. 힘든 회사생활, 올해는 훌라후프가 내 힘듬을 덜어줄 친구가 될거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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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가장 먼저 타파해야할 것은 집단주의, 허례허식

일상, 생각 한국인이 가장 먼저 타파해야할 것은 집단주의, 허례허식 김모씨 2024. 3. 23. 10:50 이웃추가 본문 기타 기능 저출산 극복에 220조 원을 쏟아부었지만 출산률이 높아지지 않는다는 뉴스를 몇 해 전에 본 기억이 있다. 내가 볼때 한국은 2200조 원을 부어도 저출산 높아지지 않는다. 어느 정당이 집권해도 마찬가지이며, 어떤 정책을 내놓아도 효과는 없을것이다. 결국 답은 무엇일까. 집단주의와 허례허식 타파에 있다. 남과 비교하고 꿇리지 않겠다고 더 비싼거 더 때깔고운거 사고다니고 결혼식도 육아도 더 크게, 더 화려하게 남한테 안 꿇리겠다고 용쓰는건 다 집단주의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집단주의와 허례허식은 이 대한민국의 병폐이며, 종북주의자나 김정은의 핵미사일보다 강력한 주적이다. 후진국일수록 결혼식을 호화스럽게 치루고 더 화려하게 치장하고자 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 않은데요라 그렇다면 그건 너무 가난해 그런거고.. 한마디로 대한민국은 물질적으로 선진국이 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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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에서 배운 성경과 가톨릭에서 배운 성경

성당 신천지에서 배운 성경과 가톨릭에서 배운 성경 김모씨 2024. 3. 24. 18:10 이웃추가 본문 기타 기능 오늘 성당 교리공부 5주차를 맞이해 성경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가톨릭에서는 성경에선 예수님과 우리 사이의 약속, 우리 사이의 약속 및 규범이자 신자로서의 마음가짐이 나와있다고 합니다. 그래선지 미사 때마다 항상 선행을 배풀고 타인의 죄를 용서하는 자세를 강조합니다. 성경에 대해서 배우다보니 어릴 적 신천지에서 성경공부하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십 오년 전, 당시 군필이었지만 대학 새내기 였던 저는 조용히 학교생활을 했습니다. 당시 저는 연애는 하고싶지만 어린 대학생 동생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괜히 엮여봐야 좋을거 없다는 생각을 해 거리를 두고 지냈습니다. 제가 다니던 대학은 말이 4년제지 학교 규모는 단과대 수준이라 소문도 쉽게 나고 그랬으니까요. 그 때 군 시절 동기가 옆 대학에 자기 친구가 있다며 소개시켜주겠다 연락이 왔습니다. 나이도 같고 다른 대학이라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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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가는 비행기에서 애기 우는 걸 보고

지난 3월 15일 저녁 비행기로 제주에 가는데 남부지역으로 내려가면서 날씨가 흐려선지 비행기가 흔들렸습니다. 비행기가 흔들리는 동안 애기가 엄마 품에서 울고 칭얼거리는데 부모님이 달래도 소용이 없고 이따금 스튜어디스 분들이 장난감을 주며 어르고 달래면 잠깐 울음을 그치는 정도였습니다. 저는 고향이 제주이고 당시 조부모님과 숙부님이 서울에 사셔서 애기때 부터 비행기를 자주 탔었습니다. 한 5~6살 때 비행기 기체가 기류에 흔들리면 추락할까 두려워 울곤 했었는데 애기가 우는 모습이 마치 제 어린 시절을 보는거 같아 짠했습니다. https://imnews.imbc.com/replay/2022/nwdesk/article/6398345_35744.html "자신없으면 애 낳지 마!"‥아기 운다고 기내 욕설·난동 제주행 비행기 안에서 40대 남성이 돌 지난 아기와 부모를 향해 욕설과 고성을 지르며 난동을 피우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기가 울어서, 자신이 피해를 봤기 때문이라는데... im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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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려주일 행사와 욕심

오늘 3월 24일은 성당에서 종려주일 행사를 했습니다. 종려나무 잎을 흔들고 바닥에 깔며 예수님을 맞이하는걸 재현하는 행사인데 교리공부 갔다가 휩쓸리다시피 참석했습니다. 제가 있는 곳은 제주도처럼 따뜻한 곳이 아니어선지 향나무잎 같은걸 들고 참여했습니다. 성당 주차장 입구에서 향나무잎을 나누어주는데 사람들이 너도나도 더 풍성하고 커보이는 향나무 잎을 고르려는 모습이 보였고, 덕분에 줄서는 시간이 지체되었습니다. 주차장에서 행사때문에 줄지어계신 분들도 보니 향나무잎을 여러장 챙기신 분도 많더군요. 향나무잎을 여러장 가져간다 해도 더 크고 풍성한걸 챙긴다해도 득이 될건 없을텐데 성당에서 굳이 욕심을 부려야할까 싶었습니다. 향나무잎을 들고 대성전까지 행렬을 따라가며 욕심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욕심은 우리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부릴 필요도 없는 욕심은 오히려 나와 주변에 폐가 되기도 합니다. 덕분에 저도 욕심이 생겨버렸습니다. 보다 소박하고 검소한 삶을 사는 욕심. 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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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예찬

자유! 이는 듣기만 하여도 설레는 말이다. 자유 안에서 자아를 실현할 수 있고 우리는 자유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평등 박애 모두 자유와 함께 공존해야만 빛이 나는 것이며 자유 안에서 모든 이들이 경제적 풍요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자유를 평등과 박애에 두는 것은 그 가치가 발해지는 것이오 오히려 평등과 박애 마저 빛을 바라게 만드는 처사이다. 자유가 있기에 평등, 박애도 빛이 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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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개인주의자이길 원하면서 왜 애써 부정하는가

자기개발서나 영화 드라마 각종 작품들 보면 이상적인 주인공이나 이상적인 인간상은 대부분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독립된 자아를 가지고 산다. 그 독립적인 자아를 가지고 개성있게 사는 사람들을 개인주의자라 한다. 하지만 정작 사람들은 개인주의자이길 거부하며 개인주의자를 이기주의자랑 혼동한다. SNS에 나온 혹은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는 소위 셀럽들이나 셀럽 지망생들을 보는걸 즐기면서 자신도 그 정도 대접받고 살고싶고 그러기 위해서 많이 소비하고 과시하고 싶어한다. 그냥 너 자신을 위해서 좀 후줄근하게 다니고 좀 초라해 보여도 어깨만 펴고 살아볼 수는 없는가? 현실이 녹록치 않다해도 남들과 기싸움 할 에너지를 집단주의적 현실에 맞서서 너의 개성을 기르는데 쓸 수는 없는가? 그저 너의 현재에 충실하고 그에 맞게 소비하고 발전하는 삶을 사는 것 그 삶을 산다는 것에 어깨피고 당당히 사는 것이 개인주의자의 삶이며 당신들이 원하는 삶인데 왜 그런 삶을 부정하는 것인가? 왜 특정인에게 의존하고 특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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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사건을 맞이해 포스팅 하고 싶었던 광복군 출신 장군

4.3 사건 76주년을 맞이해 4.3 사건의 주범 김달삼이가 이끈 무장공비들을 토벌하시고 김달삼이의 모가지를 따신 유격전의 명장이자 독립운동가 김관오 장군을 포스팅하려했는데 바쁘고 몸이 안좋아 시기를 놓쳤다. 김관오 장군은 21연대장 시절 4.3 사건의 주범이자 남로당 무장대 대장 김달삼, 빨치산 이호제 등이 이끄는 무장공비들을 토벌하고 김달삼, 이호제를 사살하는 공을 세우셨다. 6.25 전쟁 당시 국방부 고문으로 있다가 유격대장으로 강원도 후방의 공비들을 토벌하는 등 유격전에서 맹활약했다. 유격전과 미군 지원단 활동 위주라 그런지 이 분의 자료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아 포스팅에 시간이 걸릴 듯 하다. 다만 4.3의 주범 김달삼은 친일파가 아니고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의 군인인 김관오 대령(예비역 소장)이 이끈 8사단 21연대에서 사살했다는 것은 꼭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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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대첩에 참전한 광복군 출신 고시복 장군

춘천대첩은 6.25 전쟁 초반 춘천과 홍천 지역으로 남침한 북한군을 막아내고 북한군의 남하를 6일간 저지한 6.25 전쟁 최초의 승전이다. 춘천대첩을 승전으로 이끈 6사단장 김종오 대령(예비역 육군 대장, 육군참모총장), 제7보병연대장 임부택 중령(예비역 육군 중장)등이 알려져 있지만 광복군 출신 독립운동가인 고시복 장군이 참전했었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지 않다. 광복군 출신 독립운동가 고시복 장군은 춘천대첩 당시 중령 계급으로 6사단 참모장으로 사단장 김종오 대령의 지휘를 보좌하며 전투에서 승리하는데 기여했다. 김종오 사단장의 작전지시를 각 연대에 하달하고, 춘천과 홍천을 지키다가 한강 방어선이 뚫리자 고립되지 않기 위해 불가피하게 철수하는 상황에서도 장병들을 무사히 철수시키게 하였다. 춘천대첩의 승리엔 6사단 참모장 고시복의 공도 없잖아 있다. 고시복 장군은 1911년 황해도 안악에서 태어났다. 일본 중경상업학교를 졸업하고 1931년 상하이로 가서 한인애국단에 가입해 독립운동을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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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고아들을 위해 보육원을 지은 광복군 출신 장덕기 대령

대한민국에 수복된 화천군은 휴전 직후 읍내에 건물이 하나도 없었고 전쟁통에 부모를 잃은 고아들이 유리걸식을 하며 떠돌았다. 파로호 전투 때 목숨을 잃거나 북한군이 북한땅으로 끌고갔기 때문이다. 당시 화천군민 70퍼센트가 사망하거나 납북되었다 한다. 당시 화천에 주둔하던 8사단 포평연대의 연대장 장덕기 대령은 보다못해 오래된 절터에 천막을 치고 보육원을 설립해 전쟁고아들을 지낼 수 있게 해주었다. 보육원의 이름은 6.25 전쟁 당시 야포를 직선으로 발사해 북한군 전차를 파괴하고 전사한 김풍익 중령의 이름을 따 풍익동산이라 명명했다. 광복군 시절의 장덕기 대령(오른쪽), 왼쪽은 광복군 동지인 최봉상 지사. 지금도 풍익복지재단에서 풍익홈이란 이름으로 운영하는 이 보육원의 설립자 장덕기 대령은 광복군 출신의 독립운동가이다. 장덕기 대령은 1942년 광복군 제2지대에 입대해 독립운동을 시작했으며 해방 직전에는 미군 정보국 OSS와의 국내진공작전에 참여하였다. 해방 후 대한민국 국군 장교로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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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열 지사 이야기1) 박열과 송호성이 납북 후 다툰 이야기

영화로도 널리 알려진 독립운동가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이야기는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박열 지사가 해방 후 어떻게 지냈는지를 알고 있는 분들은 별로 없다. 해방 후 박열 지사는 옥중 생활 못지 않게 안타까운 삶을 살다가 가셨다. 이번에는 두 편에 걸쳐서 박열 지사의 해방 후 이야기를 다루고자 하는데 첫 번째 편으로 6.25 전쟁으로 납북된 이후 박열 지사와 송호성 장군이 다투게 된 에피소드를 다루고자 한다. 박열 지사와 가네코 후미코 해방 후 1945년 10월이 되어서야 박열 지사는 석방되었다. 석방 이후 동포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고 민단의 초대 총재가 되어 제일교포들의 권익보호에 앞장섰다. 당시 민단에는 원심창, 이강훈 등 아나키스트 동지들이 있었고 공산당과 사이가 안좋았던 아나키즘의 성향상 공산주의자들이 주축이 된 조총련에 맞서 자유민주주의를 주창하였다. 하지만 1949년 민단회장을 그만두고 귀국한 박열은 장학사업을 펼치는 등 국내의 인재들을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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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통을 통해 얻고있는 인생의 교훈

얼마전 치과에 스케일링하러 갔는데 십 여 년 전 크라운 씌운 이가 썩어있다고 하였다. 하도 썩고 곪아서 나중에 임플란트 할지도 모른다고 한다. 원래 지난주에 예약을 잡았는데 갑작스런 상담으로 예약시간에 늦었고 병원에 문의하니 다른 날로 잡았다. 그리고 치료받는 날을 이틀 앞둔 지금 여느때보다 극심한 치통이 느껴졌다. '이틀만 더 견뎌주지 하필 지금이라니...' 이런 생각이 드니 갑자기 한가지 교훈이 떠올랐다. 때에 맞지 않게 나타나는 이 치통처럼 우리 인생에도 갖가지 변수가 있다. 이 변수를 최소화 하기위해 우리는 많은걸 노력하고 준비하며 살아가는거 아닐까. 그리고 치과치료 대신 상담을 미루었다면 이 고통을 느끼지않을 수도 있었을텐데. 인생의 변수를 최소화하기 위해 나 자신의 행복에 필요한 것에 우선순위를 두고 실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통증을 딱 이틀만 겪으면 된다는 생각에 다소 통증이 누그러진거같다. 이 이틀을 견디기위해 이 블로그에 글을 쓰며 통증에 대한 내 소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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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아동청소년재단에 정기후원 신청했어요.

4월 21일 저녁 성소주일 미사 예배에 참여했다. 이날은 우리 성당 신부님 대신 가톨릭아동청소년재단 산하 청소년자립지원관에서 나오신 신부님께서 미사를 집전하셨다. http://www.icyouthself.or.kr/main/main.html 인천광역시 청소년 자립지원관 인천광역시 청소년 자립지원관 www.icyouthself.or.kr 신부님께서 강론시간에 인천광역시 청소년자립지원관의 활동을 소개해주셨는데, 이 재단에서 청소년들이 훗날 성인이 되어 사회에서 자립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한다. 강론을 들으며 주보를 보니 가톨릭아동청소년재단 후원 QR 코드가 있어서 정기후원을 신청하였다. 기존에 두 군데 정도 후원하는 곳이 있어서 많이는 못했지만, 여유가 있을때는 추가적으로 후원할까 생각 중이다. 저출산 사회인 지금은 한 명의 아동 청소년이라도 어엿한 사회인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모가 있는 아동이라도 부모가 폭행하거나, 심지어 공공장소에서 소란을 피워도 방치를 하는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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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황포군관학교 20기 광복군 장교들

1944년 김구의 추천으로 광복군 청년 4명이 황포군관학교(중국중앙군관학교)에 입교했다. 해방 후 창군과정에 참여할 능력있는 청년들을 광복군 각 지대에서 추천받아 황포군관학교에서 정규 군사교육을 받게 한 것이다. 제1지대 1구대에서 강홍모, 장철부(김병원), 제3지대 이건국, 청두 내 제중교포 김중진이 추천받아 황포군관학교 20기에 입교해 해방 후 창군에 참여할 인재로 정규 군사교육을 받았다. 이들은 황포군관학교에서 군사교육을 받았고, 해방 후 이건국, 강홍모는 육군사관학교 4기, 장철부는 육군사관학교 5기에 입교했다. 김중진은 이후 행적이 알려진 바가 없다. 중국 황포군관학교와 한국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이들은 창군기 대대장 급 장교로 활약하고 6.25 전쟁에서 북한군, 중공군에게 용감하게 맞서 싸웠다. 향후 장성급 장교로 국군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역량을 지녔지만 6.25 전쟁 과정에서 전사하거나 전 후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려 전역을 하는 등 빛을 발하지는 못했다. 장철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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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스토리텔링 소재가 될 수 있는 독립운동가의 생애

독립운동가 이야기 좋은 스토리텔링 소재가 될 수 있는 독립운동가의 생애 김모씨 2024. 2. 23. 18:15 이웃추가 본문 기타 기능 독립운동가들의 생애를 파해쳐보면 여러 스토리텔링의 소재가 될 수 있는게 많다. 우리나라의 발전사, 지역 향토사, 문화예술, 농업 등등 해방 후에도 알게모르게 우리 사회에 기여한 분들이 많기에 그 분들의 생애를 통해 우리 주변에 대한 스토리텔링 소재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일례로 전두환 대통령의 한미정상회담 때 비행기 기장이었던 명의창 기장은 독립유공자 명의택의 친동생이다. https://youtu.be/haHdmgZ5hDE?si=hlJ7pbfjv6CPB36R 동영상 버튼을 누르면 현재 화면에서 재생됩니다. [실소주의]전두환이 전용기타면 이런 것도 가능?? 하와이에서 만난 기장과 승무원의 충격 고백 I 5.18 40주년 아카이브 프로젝트 1981년 2월, 전두환의 미국 순방길을 지켜본 기장과 승무원, 하와이에서 KBS와 인터뷰에 나서 충격적인 내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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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묘 봤는데 원봉이 뭐냐 원봉이 하아..

일상, 생각 파묘 봤는데 원봉이 뭐냐 원봉이 하아.. 김모씨 2024. 2. 24. 23:11 이웃추가 본문 기타 기능 영화 파묘를 봤다. 무속신앙을 기반으로 풀어낸 영환데 내가 원래 오컬트물에 그다지 공감이 안가 흥미는 없었지만 그럴대로 볼만해보였다. 몇 거슬리는게 있다면 보국사 주지가 원봉스님이란 것과 여주인공 이름이 화림이란 것이다. 독립운동가 중에 훌륭한 분이 얼마나 많은데 북한과 중공에 충성한 인물 이름을 넣는지 너무 거슬렸다. 나라를 지킨다는 보국이란 이름에 맞게 한강방어선을 지키고 광복군과 윤봉길 의거 지원한 김홍일 장군 이름을 넣어 홍일스님 하던가 북한군들 무찌르다가 포위당해 장렬히 전사한 장철부 중령의 이름을 따 철부스님이라 하던가 아니면 춘천-홍성 전투에서 6사단 참모장으로 김종오 사단장을 대신해 초반에 북한군을 격퇴한 고시복 장군 이름을 넣어 시복스님 아님 일명(고시복의 이명)스님이라 하던가, 독립운동가 중에 북한군 중공군 무찌르고 대한민국을 지킨 분이 얼마나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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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을 존중하는 것이 좋다.

일상, 생각 개인을 존중하는 것이 좋다. 김모씨 2024. 2. 25. 22:42 이웃추가 본문 기타 기능 내 이념은 좌우를 떠나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는 것 그 자체이다. 개인을 존중하고 타인을 배려하고 나 자신을 사랑하며 더불어 사는 삶. 개인보다 집단을 우선하는건 군대나 경찰 같은 집단 외에는 그다지 불필요하다 생각한다. 주변에 보면 군인이나 경찰도 아니면서 타인을 무시하고 자기 집단을 위할 것을 강요하고 자기 생각만 존중해달라는 사람이 있다. 북한도 그러하다. 거긴 아에 개인이 당을 위해 희생하자는게 전 국가의 모토 아닌가. 내가 더불어 사는 삶이 좋다했지만 그래도 집단주의에 매몰된 쪽은 함께하기 어렵다. 나라를 지켜주는 군인이나 치안을 지키는 경찰이라면 내가 낮추어 존중하고 따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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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선 쌀밥을 언제부터 자주 먹었을까?

독립운동가 이야기 제주도에선 쌀밥을 언제부터 자주 먹었을까? 김모씨 2024. 2. 20. 0:51 이웃추가 본문 기타 기능 2월 달에 2주간 제주에 내려가서 잡곡밥을 실컷 먹었다. 육지에선 바쁘고 귀찮아서 불리는데 오래걸리는 잡곡밥을 먹기가 귀하지만 제주에선 어머니께서 해주신 잡곡밥을 먹으니 식욕이 더 돋는것같다. 설에는 쌀밥을 먹었는데 어머니께서 명절날 먹는 쌀밥이 맛있다고 하셨다. 문득 어머니 어릴 적 제주에서는 쌀밥을 얼마나먹었는지 궁금했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만 해도 선생님들이 라떼는 제삿날에만 쌀밥먹었다며 음식 남기지말란 잔소리를 종종 듣곤했으니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싶었다. 참고로 우리 외가는 동네에서 유지급은 되는 집이라 다른 집에 비해 형편이 나았다. 어머니 어릴 적 60년대 까지는 맨쌀밥은 명절에만 먹을 수 있었다고 했다. 주로 보리밥을 해먹었고 가을에 조를 수확하면 좁쌀에 보리를 섞어먹었는데 그게 별미였단다. 백종원씨가 예전에 대정에서 맨좁쌀밥을 먹고 맛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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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일상, 생각 난생처음 김모씨 2024. 2. 19. 20:42 이웃추가 본문 기타 기능 https://youtu.be/w9XhOLMIwvE?si=FqnQMyCrO7tNCf5i 시트콤 하이킥3에서 가장 재밌게 본 에피소드이다. 막장드라마의 클리셰를 다 집어넣어서 난생처음(보는 막장드라마)이란 제목의 드라마를 연기한건데 소위 병맛이 돋고 뇌이식(실제로 드라마에 뇌이식을 하는 내용이 나온다.)할거 같은 내용이어서 빵터졌던 기억이난다. 몇해 전 혁신학교란 곳에 끌려가 일했을 때 그 혁신학교에서 수업사례 자료집을 제작했다. 수업사례랍시고 그쪽에서 자화자찬을 늘어놓은 자료집인데 제목을 정할 때 문득 난생처음이란 단어가 떠올라 제목으로 추천했다. 난생처음 보는 수업사례들을 모은거니까 기상천외해보이게 이걸 제목으로 하자했을 때 뭐씹은 표정으로 노려보던 그들의 모습을 보고 웃음이 나올 뻔 했다. 당연히 그 자료집의 제목이 되진 않았지만 그들의 자화자찬 모음집에 걸맞는 제목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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