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 수복된 화천군은 휴전 직후 읍내에 건물이 하나도 없었고 전쟁통에 부모를 잃은 고아들이 유리걸식을 하며 떠돌았다. 파로호 전투 때 목숨을 잃거나 북한군이 북한땅으로 끌고갔기 때문이다.
당시 화천군민 70퍼센트가 사망하거나 납북되었다 한다. 당시 화천에 주둔하던 8사단 포평연대의 연대장 장덕기 대령은 보다못해 오래된 절터에 천막을 치고 보육원을 설립해 전쟁고아들을 지낼 수 있게 해주었다.
보육원의 이름은 6.25 전쟁 당시 야포를 직선으로 발사해 북한군 전차를 파괴하고 전사한 김풍익 중령의 이름을 따 풍익동산이라 명명했다. 광복군 시절의 장덕기 대령(오른쪽), 왼쪽은 광복군 동지인 최봉상 지사.
지금도 풍익복지재단에서 풍익홈이란 이름으로 운영하는 이 보육원의 설립자 장덕기 대령은 광복군 출신의 독립운동가이다. 장덕기 대령은 1942년 광복군 제2지대에 입대해 독립운동을 시작했으며 해방 직전에는 미군 정보국 OSS와의 국내진공작전에 참여하였다.
해방 후 대한민국 국군 장교로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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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링크 : 전쟁고아들을 위해 보육원을 지은 광복군 출신 장덕기 대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