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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부 휘장은 공모전을 통해서 정하였다

어제 마산부 휘장은 어떤 것일까? 라는 발제글을 적었습니다. 그 글에 현재 알려진 마산부 휘장은 180도 거꾸로 된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마산부 휘장은 어떤 것일까요? 일제강점기 조선의 부(府)마크를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상단 좌측부터 경성부, 인천부, 개성부, 대전부, ... blog.naver.com 그랬더니 realtardis님이 댓글을 남겨주셨는데 결정적인 내용이 나오더군요. 이 내용을 제가 올린 글에 수정하여 올리는 것보다 발제글로 적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올립니다. 먼저 realtardis님의 링크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꾸벅~ 馬山府發表(마산부발표) 當選圖案發表(당선도안발표) 馬山府發表(마산부발표) 當選圖案發表(당선도안발표) 【마산】마산부에서는 장래 대마산건설의 하층 공작(下層工作(하층공작))으로 우야(宇野(우야))마산부윤의 발안으로 마산부장(府章(부장... newslibrary.naver.com 이 내용을 보면 1936년 3월 21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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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성황단은 어디 있을까?

1872년 지방지에서 본 거제부 성황단입니다. 거제부의 3단 1교를 보면 향교 - 서쪽, 사직단 - 서쪽, 여제단 - 북쪽, 성황단 - 남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3단 1교, 3단 1묘의 기본을 따르고 있는데 향교가 서쪽에 있습니다. 하지만 향교는 1715년 고현에서 거제치소로 옮겨오는데 동쪽인 도촌동으로 옮겨옵니다. 이후 1854년 지금의 향교가 있는 서쪽으로 옮겨옵니다. 그림지도가 1854년보다 늦은 1872년이니 향교는 서쪽에 그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1854년 이전에는 향교는 동쪽에 있었다는 이야기인데 그렇게 되면 동쪽-향교, 서쪽-사직단, 북쪽-여제단, 남쪽-성황단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읍치의 외부공간의 기본이 이루어졌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거제부 성황단은 선소가 있는 곳 가까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성황단은 거제부의 치소와 선소 사이에 있는데 선소에 더 가까이 있다는 것입니다. / 이미지출처 :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그렇다면 성황단이 있는 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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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부 휘장은 어떤 것일까요?

일제강점기 조선의 부(府)마크를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상단 좌측부터 경성부, 인천부, 개성부, 대전부, 군산부, 광주부, 목포부, 대구부이고 하단에는 부산부, 마산부,평양부, 진남포부, 신의주부, 함흥부, 원산부, 청진부 이렇게 총16개의 부 휘장을 볼 수 있습니다. 휘장이 들어있는 것은 일본 국립국회도서관 소장하고 있는 일본도시대관(日本都市大観)에 나오는 마크들입니다. 여긴 조선의 16부 이외 일본 전역에 있는 도시의 휘장이 들어가 있습니다. 일본도시대관은 소화15년(1940년)에 제작한 책입니다. 당시 일본은 조선도 일본이라고 하였기에 조선의 도시 휘장도 들어가 있습니다. 현재 일본국회도서관에서 온라인으로 볼 수 있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日本都市大観 昭和15年版 - 国立国会図書館デジタルコレクション 著者:大阪毎日新聞社 編, 出版者:大阪毎日新聞社, 出版年月日:昭11-15 dl.ndl.go.jp 여기서 마산부의 휘장을 보면 마산부 휘장에 대한 설명이 없습니다. 다만 마산부 휘장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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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선소를 가보니

거제부 선소는 어디에 있었을까? 거제현 선소에 관하여는 거제읍지와 1872년 지방지 등에 표시되어져 있습니다. 1899년 거제읍지를 보면 관방편에 죽림포가 표시되어져 있습니다. 죽림포는 재부 서남 5리에 있다고 적어놓았습니다. 죽림포에서 1개의 전선과 1개의 병선이 있었습니다. 각 전선과 병선에 탑승하는 병사들을 기록하여 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전선은 사부40명, 포수 48명 등이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1872년 지방지를 보면 거제 선소에 관하여 알 수 있습니다. 읍치에서 서남방향으로 오면 선소가 위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이미지출처 :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좀더 확대를 해보았으며, 위에 나오는 이미지가 180도 반대로 되어져 있어서 180도 회전시켰습니다. 건물은 선소. 운주루. 화약고, 군기도와 전선 2척이 위치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거제읍지에 의하면 대변정(待變亭), 제승정(制勝亭), 운주루(運籌樓), 군기고(水陣軍器庫)그리고 죽림포에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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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삶의 생각길 표지판

부산시 구도심권에서 본 "삶의 생각 길"표지판입니다. 10여년 전 제주도 올레길이 히트하자 전국에 수 많은 길들이 등장하였는데 도심지를 걸어면서 삶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길이 "삶의 생각 길"인 모양입니다. "삶의 생각 길"은 토성역에서 시작하여 아미동 비석마을 - 천마산하늘전망대를 거쳐서 충무동골목시장까지 이어지는 코스인 모양인데 필자는 토성역에서 아미동 비석마을, 충무동골목시장까지 가다가 본 "삶의 생각 길" 표지판입니다. 토성역 부근에서 본 "삶의 생각 길"은 부산의 대학병원인 부산대학교 병원, 동아대학교 병원, 고신대학교 병원 건물 모습을 표현하였으며, 심장박동 모습을 표현하여 놓았습니다. 아미동 비석문화마을에서 본 "삶의 생각 길" 표지판으로 비석마을에 있는 가정집들을 표현하여 놓았습니다. 아미동 비석문화마을에서 본 마을의 모습과 비슷하게 만들어 놓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비석문화마을에서 내려와 부산대학병원 근처에서 본 "삶의 생각 길"표지만으로 대학병원 건물이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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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으로 가려는 거제 옥산성 축성비

거제시 거제면에 가면 수정봉이 있는데 이곳에 거제옥산성(경상남도기념물 제10호)이 있습니다. 필자는 산성을 잘가지 않는 편이라 올라가보려고도 하지 않았으며, 대신 드론을 보내기도 하였는데 2024년 6월 답사를 하면서 답사팀들과 옥산금성에 올라갔습니다. 옥산금성이 동문이 있는 앞까지 자동차가 올라갈 수 있더군요. 그러다 보니 수월하게 옥산금성을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거제옥산성은 1873년(고종10) 거제부사 송희승(宋熙昇)이 백성을 동원해 쌓았는데 1873년 5월부터 시작하여 10월에 완공하였습니다. 공사기잔은 5개월 정도되고 2만 냥의 축성비용이 있었다고 합니다. 송희승이 거제 부사로 온 것은 1872년 7월이니 부임한지 얼마되지 않아 옥산금성을 축성하게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농사철이 바쁜 5월부터 10월끼지 이니 백성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도 주는 것이지만 농사철이라는 부분이 발목을 잡았을 것입니다. 원망이 하늘을 찌르다 보니 송희승 부사는 파직을 당하게 되고 장 100대형을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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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성문이 있는 거제 옥산성 성문

거제 옥산성 축성비에 관하여 이야기하면서 필자는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외국에서 침략도 그렇지만 그리고 무엇보다 총기의 변화 및 공성무기의 발달로 인해 성곽이 점차 사라지는 19세기 말에 옥산성을 축성하였다는 부분입니다. 이러한 점 때문에 필자는 옥산성에 대해 아주 부정적인 부분이 많았습니다. 고고학적으로 필요하다보다는 군사학적으로 너무 늦게 축성한 것은 아닐까? 하는 부분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필자가 옥산성을 방문하면서 감쪽 놀라는 것을 보고 새롭게 생각을 바꾸게됩니다. " 필자가 옥산성에 관하여 부정적으로 생각하다가 생각을 바꾸게 된 것이 바로 옥산성의 성문입니다. 옥산성은 통일신라시대에 축성한 것에 증축 또는 보수하는 식으로 쌓은 것이 1873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축성방식을 보면 작은 돌들이 촘촘히 쌓아 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동문 입구에서 본 옥산성의 성벽으로 4미터 이상 높게 축성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앞의 지점에서 성문 방향으로 돌아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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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천초 설립자 주기효 공적비

창원 내서초등학교를 가보니 내서면은 오랫동안 창원에 속하여 있었습니다. 현재 내서면이 내서읍이 되었고 마산회원구에 있다보니 마산... blog.naver.com 저번에 창원 내서초등학교에 관하여 이야기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창원초(1907년), 진동초(1908년), 웅천초(1906년)가 개교하였고"하는 부분입니다. 당시 그 이야기를 하면 글이 길어질 것 같아서 생략을 하였습니다. 창원과 진동은 물론 웅천 모두 조선시대 읍치가 있었던 곳인데 창원과 진동과 달리 웅천초는 비슷한 시기인 1906년에 개교를 합니다. 보통 읍치가 있었던 곳은 1910년 전에 개교를 하는데 웅천초등학교도 비슷한 시기에 개교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재의 웅천초등학교가 아닌 예전의 웅천초등학교(현재는 곰내유치원) 교정 내에 웅천초등학교의 역사가 있습니다. 현 곰내유치원(예전 웅천초등학교) 정문 입구에 주기효선생 공적비가 있습니다. 공적비는 지난 1941년 9월에 주기효 선생의 제자들이 선생의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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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시내버스 승하차 방법과 물가

경남매일 2월 11일자 하단 광고내용입니다. 다만 광고주가 누구인지는 나오지 않지만 아무래도 시내버스조합이나 시내버스연합에서 낸 것 같아요. 내용은 "마산, 창원, 진해 시내버스 승하차 방법개선 85.2.15부터 실시" 한다는 것입니다. 그동안에는 일반버스는 편한데로 버스에 승하차를 하였는데 이제는 앞문으로 승차하고 뒷문으로 하차한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버스 요금을 받았던 버스안내양은 요금 대신에 하차할 곳을 불러주고, 하차를 돕는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또 버스승차권을 구입하여 버스요금표에 넣는 방식이라는 것을 만화 1 컷에 그려 설명을 해 놓았습니다. 여기서 보면 당시 버스 요금은 130원이었고, 승차권으로 구입하면 120원이라는 것입니다. 130원을 2023년 인뮬레이션 계산기가 있어서 넣어보니 물가는 491원이고 평균물가상승률 3.55%, 물가상승률 277.57%로 표시되어져 있네요. 하지만 현재 창원의 시내버스 요금은 성인 기준 1,500원이며 카드는 1,450원입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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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서 본 오횡묵 사적비

통영시 원문고개에서 죽림으로 내려가는 도로변에 비석이 하나 우뚝서 있는데 오횡묵 사적비입니다. 비석을 보면 가로로 비석이 깨져있는데 언제 깨졌는지는 모릅니다. 비석은 단조로운 느낌을 주는데 원래 거북이 모양으로 된 귀부와 부대석이 있었더고 하는데 이 사적비에는 비대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비석에 대한 안내판이 있는데 안내판에는 "1886년(고종 23년) 봄, 흉년과 역병이 극심했던 이 고장에 오횡묵이 영남별향사로 내려와 통제영 군창을 열고 별향미로 기근을 해소하고 죽은 자를 장사지내는 등 백성들을 크게 구휼한 은공을 기리고자 1889년 7월 군민이 세운 사적비이다. 또한 이 비는 원문성 안에 있었으며, 기와지붕 모양의 가첨석 머리와 거북형상의 비석 받침을 갖춘 매우 큰 비석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오횡묵은 함안군수, 고성부사, 정선군수, 자인현감, 공상소감동, 지도군수, 여수군수 등을 지냈으며 이 분은 자신이 부임한 곳에 관하여 꼼꼼하게 작성한 총쇄록이 많다는 것입니다. 오횡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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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기성관 활주는 언제 만들어졌을까?

2024년 6월 8일 거제 기성관을 보니 활주가 보이더군요. 예전에 몇 번 보았을 때도 활주를 보았는데 이번에는 좀 더 자세하게 보았습니다. 활주는 기단부의 모서리마다 설치한 활주가 있었는데 활주는 처마를 받쳐주어 기둥들에 집중되는 하중을 분산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예전 건물에 100% 있지는 않습니다. 함께 답사한 분들은 다른 이야기를 할때 필자는 활주를 자세하게 살펴보았습니다. 집에와서 다른 사진을 찾아보니 2008년 11월 사진에도 기성관 옆에 활주가 보이더군요. 2021년 2월 드론으로 찍은 사진에도 활주는 보입니다. 활주는 오래전부터 있었을까요? 아니면 조선시대부터 있었을까요? 다른 곳에서는 없을까요? 활주는 여러군데에서 보았는데 기억나는 것이 당장 없네요. 생각나면 아래 사진 밑으로 첨부하겠습니다. 아래 사진은 창원대도호부 동헌인 평근당인데 평근당 옆에 활주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018년 4월 방문한 경북 청도군 객사건물인 도주관애서 본 활주 모습 일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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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영도 100년 골목과 창원 1000년 골목

부산 영도를 넘어가니 "영도관광안내도"가 있어서 살펴보니 "100년 골목길"이 있더군요. 영도가 조선시대에도 있었지만 섬이라는 특성 때문에 말을 키우는 목장이었다가 근대화가 되면서 초량왜관이 있었던 부산상이 개발이 되자 바다 건너 있던 영도로 일본인들이 많이 정착하였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몰려오면서 집들이 들어서고 골목길이 형성이 되었는데 그 골목길이 100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영도에서 본 제주은행으로 부산시 안에서 제주은행이 있는 곳은 바로 영도만 그렇다고 합니다. 영도에 제주 사람들이 많이 사는데 1948년 4.3사건 당시 제주도에서 부산으로 정착와 자리 잡은 곳이 영도라고 합니다. 그래서 제주은행과 제주도민회관이 있더군요. 제주은행 바로 옆을 가면 나오는 곳이 "100년 골목길"압니다. 100년 골목길이라 해서 거창한 것은 아니고 어느 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골목길입니다. 이 평범한 길을 스토리텔링으로 잘 입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100년 골목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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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방어선 전투 사진의 위치는 어디일까?

현충일 기념 및 6월달을 맞이하여 올립니다. 1950년 8월 2일부터 시작된 마산방어전투에 등장하는 사진중 하나입니다. 이 사진을 촬영한 장소에 관하여 나무위키에서는 "창원시 마산회원구 중리역 인근으로 추정된다"라고 나옵니다. 중리역이라면 그 장소가 어디일까? 하는 의문이 들더군요. 사진을 잘 보면 철도선이 보이고, 미군 병사와 전차가 자리하고 있으며 전차 뒷편에 하천바닥과 저 멀리 군인들이 보입니다. 일단 이 자료를 토대로 과연 장소가 어디일까? 하는 의문은 있었지만 잘 찾기가 쉽지 않더군요. 먼저 사진에서 구역을 나누어 보았습니다. 일단 3군데를 나누고 찾아보았습니다. 의외로 찾기가 어렵지 않았습니다. 1954년 중리 지역의 항공지도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중리역을 중짐으로 八자 모양으로 인입선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인입선이 있었다는 것이지요. 인입선이 있었다면 B지점은 어디일까? 하는데 중리역 아래 부분(삼계방향)은 인입선 뒷편이 논이라 제외하고 중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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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삼랑진 오우정

2023년 찍은 밀양시 삼랑진읍 삼랑리에 있는 삼강서원, 오우정의 모습입니다. 한적한 곳이라 둘러보기 좋은 곳이지요. 오우정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1길 32 이 블로그의 체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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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덕 동상 그리고 역사적인 인물

어느 도시를 가보면 항상 등장하는 것중 하나가 지역 출신의 역사적인 인물입니다. 서울에 세종대왕상과 이순신장군상이 광화문 앞에 세워진 것처럼 각 도시의 주요 도로에 지역 출신의 인물의 동상을 세워 놓습니다. 이러한 부분들은 지역민의 정서를 묶어내는데 역할을 하는데 일조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 지역의 인물이 과연 지역을 넘어서 국내에 상당히 유명한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 경우도 있는 방면에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지요. 그러다보니 유명인의 이름에 거리명을 붙이는 방식으로 하는 경우 최근에 많이 등장하였습니다. 이 경우 역사적인 인물보다는 최근 TV에 방영된 연예인의 이름에 거리를 붙여 OOO거리, XXX거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게 유행이되고 관광객이 많이 찾아오면 금상첨화인데 좋지 못한 일로 연루가 되면 소리소문없이 거리명을 없애버리기도 합니다. 경남도청에서 창원시청으로 내려오는 길은 차량통행이 활발한 곳은 아닙니다. 이 길은 관공서들이 모여있는 길인데 창원시청 바로 옆에 최윤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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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군청 앞에서 본 공적비

전남 장흥군청 입구에서 본 공적비입니다. 이 공적비는 김형서와 정희섭 공적비입니다. 무엇보다 장흥군청 모서리 부분에 자리하고 있는 공적비는 장흥군청 근처에 오시는 분들이라면 한 번씩 보았을 공적비입니다. 이 공적비를 보자마자 저 분들의 뜻과는 상관없이 일본식으로 꾸려졌다는 것입니다. 공적비는 상청비인데 상청비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때 전사한 일본군인들의 묘비인 것입니다. 기단 위에 정사각형의 비가 쭉 올라가다 사다리꼴로 마무리 하는 방식입니다. 이런 상청비가 전국 곳곳에 남겨져 있는데 장흥군청 앞에서도 보았네요. 방식은 일본의 충혼비 방식인 것은 그렇다 치고 공적비에 등장하는 분들은 북한에서 내려와 장흥군에 정착한 분들이라고 하네요. 이 공적비는 1968년 3월경에 만들어서 저런 일본식으로 만든 것 같습니다. 김형서 회장은 1963년 한국정착사업개발 흥업회를 출범시키면서 이후 방조제와 저수지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김형서 회장은 장흥군뿐 아니라 사촌방조제 앞에도 세워져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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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합성동이 도시화 된 것은 50년 정도이다

마산시외버스터미널이 있는 합성동은 조선시대 창원군 내서면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가 되면서 조선시대 창원군 외서면이 도시로 기능을 하고 마산부로 변화할 때도 내서면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인 1913년 마산부와 창원군이 분리가 되었고, 창원군 내서면은 구암, 합성, 회성, 두척, 교방, 회원, 산호, 석전, 호계, 삼계, 중리, 안성, 평성, 호계, 용담, 상곡, 원계, 삼계, 신감, 감천이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1942년 9월 교방, 회원, 산호, 석전이 창원군에서 마산부로 들어가게 됩니다. 해방이 되고 또 세월이 흘러 1973년 7월 창원군 창원면, 상남면, 웅남면과 내서면의 구암, 합성, 회성, 두척이 마산시로 편입이 됩니다. 당시 마산시로 편입이 되지 않았던 곳을 보면 창원군 동면, 북면, 진동면, 진전면, 진북면, 웅동면, 천가면, 내서면의 호계, 삼계, 중리, 안성, 평성, 호계, 용담, 상곡, 원계, 삼계, 신감, 감천, 구산면 유산, 마전, 석곡, 수정, 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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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상동역 관사 나무전봇대

밀양시 상동역 부근에 동밀양농협 상동지점이 있고 동밀양농협 상동지점 옆에 예전 상동역 관사가 있습니다. 이 관사에서 본 나무로 된 전봇대입니다. 요즘이야 흔하게 볼 수 있는 콘크리트로 만든 전봇대이지만 예전에는 나무로 된 전봇대를 많이 있었습니다. 나무로 된 전봇대는 섞는 것도 섞는 것이지만 잘 뿌러지는 문제가 있어 1950년대 후반에 대한민국 정부에서 나무 전봇대를 콘크리트 전봇대로 바꾼다고 하였지만 예산 문제로 인해 잘 진척이 가지 않았습니다.60년대도 나뭇전봇대는 잘 남겨져 있었고, 70년대도 그럭저럭 남겨져 있다가 80년대 접어들면서 나무로 된 전봇대는 시골에 가야 볼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또 세월이 흘렀습니다. 오다가다 나무로 된 전봇대는 진짜로 보기 힘든 유물이 되었습니다. 현재있는 나무 전봇대는 전봇대로 기능은 사라졌고 철거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나무전봇대에 전봇대번호판이 부착되어져 있더군요. 자세하게 보니 "26가"라고 적혀져 있더군요. 그리고 숫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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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도라지 위스키 시험장홀_마산

1961년 5월 19일자 마산일보(현 경남신문) 4면에 실린 광고입니다. 잘 아는 것처럼 1961년 5월 16일 박정희 소장을 비롯하여 대한민국 육군 장교들이 일으킨 군사정변이 일어난 날(1961년 5월 18일까지) 다음날 실린 마산일보에 올라온 광고입니다. 극장광고가 가장 많고, 그중에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어서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광고내용을 보면 " 사교의 전당 미녀들의 특별접대 여러분의 위안처 마산시 중성동 31번지 (자유극장 상편 홍마차 다방 옆) 도라지 위이스키 시험장홀" 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도라지 위스키하면 가수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가 떠오릅니다. “궂은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잔에다/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보렴/ 새빨간 립스틱에/ 나름대로 멋을 부린 마담에게/ 실없이 던지는 농담 사이로/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보렴” 노래 가사에 나오는 도라지 위스키는 필자는 먹어보지 못하였습니다. 뭐 먹을 나이도 아니고요. 아무튼 이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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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를 통해 본 100년전 밀양과 현재의 밀양

2024년 현재 밀양 지도입니다. 밀양은 구시가지인 내일동과 내이동, 밀양강이 퇴적하여 만든 섬에 있는 삼문동, 밀양역이 있는 가곡동. 이렇게 3개로 나누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내일동 뒷편으로 신시가지가 형성되어 만든 교동도 있지만 현재 필자가 보여주는 지도에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밀양역에서 나와 청도로 올라가는 경부선은 밀양강철교를 지나 직선으로 이어져 상동역까지 진행이 됩니다. 또 용평동 앞에 자리한 섬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밀양강은 ∞자 모양으로 되어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이미지출처 : 네이버지도 1918년 지도에서 본 밀양의 모습입니다. 현재의 밀양과는 많은 차이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밀양강으로 인해 ∞자 안에 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섬은 현재의 삼문동이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삼문동은 가곡동과 이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용평동 앞 섬도 보이지 않습니다. 경부선철도도 현재 바로 상동역까지 이어진 것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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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에서 사라진 기업_02_로얄쇼핑

1985년 12월 20일 마산 합성동시외버스터미널 승차장 옆에서 개관한 로얄쇼핑은 지상 5층, 지하 1층으로 시작하였습니다. 마산시외버스터미널 옆이다 보니 통행객들이 많다는 장점이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일단은 나름 선방을 하였던 것 같습니다. 1979년 마산시외버스터미널이 서성동에서 합성동으로 이전하면서 상권이 구도심의 창동권역과 합성동권역으로 나누게 되었지만 전통의 구도심 상권에 비해 많이 부족하였지만 나름 안착을 하였던 모양입니다. 1985년 12월 부터 시작하여 1991년까지는 운영하였던 모양입니다. 처음에 시작한 백화점이 지상 5층, 지하 1층인데 이 부분을 확장한다고 하면서 시작한 것이 건물확장이었습니다. 로얄쇼핑에서 한조로얄 신축을 시작하다가 자금력 부족으로 문을 닫았습니다. 기사에 나온 것을 보면 "한조로얄 소핑은 오는 91년 10월 재 오픈을 목표로 내달 초부터 대대적인 백화점 리뉴얼 작업에 들어간다. 한조로얄소핑은 이 점포 신축계획에 따라 현재의 1천 4백평 규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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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론으로 본 삼가향교

삼가향교는 조선 세종때(1418∼1450 )창건하였습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12년(광해군 4)에 중건하였는데 현재의 위치가 아니었습니다. 1826년 대성전을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으며, 이 때 풍화루(風化樓)와 흥학당(興學堂)을 중수하였다고 합니다. 삼가향교의 공간을 보면 명륜당이 앞에 있고 대성전이 뒤에 있는 전형적인 전학후묘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삼가향교의 기록에는 동·서재와 동·서무가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외삼문인 풍화루 - 명륜당 - 내삼문 - 대성전으로 이어지는 단순한 구조로 이루어진 삼가향교입니다. 삼가향교는 삼가현의 치소에서 남쪽에 위치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보통 향교의 동쪽에 위치한 향교와 달리 남쪽에 위치를 하고 있는데 1826년 현재의 장소로 삼가향교를 옮겼다고 하는데 왜? 옮겼는지에 관하여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삼가향교가 있는 곳은 삼가면 소오리 교동마을입니다. 보는 것과 같이 낮은 야산에 자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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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에서 사라진 기업_01_신성백화점

마산 롯데백화점 폐점을 보면서 마산에서 백화점이 생겼다가 사라진 곳들이 많은데 그중에 1년도 안되어서 사라진 백화점이 있는데 신성백화점입니다. 당시 신성백화점은 직영으로 운영을 하고, 신용판매제도를 도입하고, 무료배달 서비스를 실시하였으며, 문화교실을 운영하였습니다만 장소의 문제 등으로 매출이 일어나지 않아서 그런지 얼마되지 않아 문을 닫았습니다. 지금이야 자차를 가지고 이용하지만 당시로는 주로 시내버스나 택시를 이용하였는데 버스정류장과 거리가 멀었고, 마산시 외각에 위치하였던 점도 큰 영향을 끼쳤을 것입니다. 이러한 점을 타결하고자 무료쇼핑버스를 운영하였고, 무료배달이라는 카드를 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오픈하는 날은 탤런트들도 와서 사인회도 하고, 고적대의 연주 등 축하무대를 꾸몄습니다. / 이미지출처 : 한국현대사료DB 경남신문계열 / 경남매일 1985년 12월 22일 1면 하단 광고 오픈은 1985년 12월 21일 하였습니다. 그래도 1985년 송년대잔치는 물론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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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읍성 남문 매입이 우선이지 소리단길이 우선이 아니다

드론을 통해서 본 창원읍성 남문지의 모습입니다. 촬영은 2020년 10월 5일으로 현재의 모습과는 다릅니다. 남문 옹성옆이고 중동성당 앞에 있는 빨강색 지붕과 녹색지붕 및 검정색지붕은 현재 주차장으로 변해있습니다. 보시는 것과 같이 남문지를 창원시에 매입하자고 몇 번이나 이야기를 하였는데 그 부분은 지켜지지 않고 중동성당 위에 카페가 들어섰어 장사가 잘 된다면서 이곳에 10억원의 예산을 들여서 카페거리 활성화를 한다고 합니다. 주객이 전도되어도 한참을 전도되었습니다. 남문지에 대한 복원을 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창원시에서 매입을 하여 다음 다음 세대에게 물러주자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카페거리 활성화에 많은 예산을 들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창원시의 엇박자 행정은 이것만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번에 드론 사진을 보면서 옹성의 모습을 그리다가 문뜻 생각나는 것이 있더군요. 지난번 빨강색 지붕을 철거하면서 조사를 하였는데 남쪽 체성 앞에 치성치럼 돌출된 것이 있더군요. 그때 "왜 치성이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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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초 경상우도병영성 사당일까?

마산회원구는 합포구와 달리 상대적으로 도시가 늦게 형성이 되다보니 조용한 편입니다. 여기서 조용하다는 것은 축제나 행사 등이 합포구에 적다는 것을 이야기하며 합포구에 대표적인 만날제, 대동제, 어시장 등과 달리 대표하는 것이 많지 않다는 볼멘소리를 들었습니다. 합포구가 일제강점기 성장한 도시이고 회원구는 1980년대 이후 성장한 도시이다 보니 문화적으로 차이가 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합성동에 있었던 합포성이라 불리는 조선초기 경상우도병영성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계시는 분들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습니다. 1970년대 경상우도병영성의 성돌들을 자유수출자유지역 매립할때 가져가버려 더욱 더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조선초기 경상우도병영성이 합성동 시외버스터미널 하차장 가까이에 남문이 있었다는 부분은 더욱 더 모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합성동이라는 지명조차 문제가 있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합성이라는 것이 합포성의 줄임말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지명을 합성동이 아닌 병영동이라 해도 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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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 비석군을 보니

조선후기 경상우도병영성이라고 하면 진주사람들도 잘 모를 것입니다. 하지만 진주성이라고 하면 진주사람은 물론 전국민이 잘 알 것입니다. 조선후기 부터 경상우도병영성으로 사용하였는데 진주성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진주성이 조선전기 때도 있었는데 그때는 진주읍성이었고, 후기 때는 경상우도병영성이죠. 진주시 입장에서는 조선전기 임진왜란의 상처와 승리를 이야기해야하니 진주성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진주성 안에 있는 비석군은 지난 1973년 문화재보호협회 진주지부에서 진주성과 진주 시내 각처에 흩어져 있던 공덕비와 유애비 30여 기를 모아 한자리에 배치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경상우도병사는 물론 진주목사의 선정비는 물론 진사, 참봉의 비석도 있고, 진주시장의 비석도 있고, 면장의 비석도 한자리에 놓아 두었습니다. 진사(進士)와 전 참봉(參奉)의 비석도 나란히 놓여져 있습니다. 병사의 입장에서 보면 가당하지도 않는 진사와 참봉이 나란히 있는 것을 안타깝게 여길 것으로 보입니다.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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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내서초등학교를 가보니

내서면은 오랫동안 창원에 속하여 있었습니다. 현재 내서면이 내서읍이 되었고 마산회원구에 있다보니 마산에 있었던 것이 오래 된 것이 아닐까? 라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내서면은 오랫동안 창원에 속하였습니다. 실제로 마산에 속한 것은 1995년 도농통합 이후입니다. 1995년부터 시작하여 2010년까지 15년 정도이고, 마산회원구 형식으로 쳐도 30년이 되어갑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오랫동안 창원 소속이었습니다. 조선이 개국하면서 의창과 회원이 합쳐져 창원이 되는 순간부터라 본다면 적어도 600년은 창원의 소속이었습니다. 조선시대 창원부는 읍치가 있었던 현재 의창동 일대를 부내면이라고 하였고, 읍치가 있는 부내면에서 동,서,남,북의 방위각에 따라 동,서,남,북면이라고 불렀습니다. 당시 서면과 남면은 인구가 늘면서 두 개의 면으로 분리가 됩니다. 서면은 안쪽의 면이라고 해서 내서면, 바깥이라해서 외서면이었는데 내서면은 현재의 내서를 비롯하여 현재 합성동, 양덕동, 석전동 등이 내서면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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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공고의 전신인 진일고등기술학교 광고

경남매일(현 경남신문) 1970년 2월 1일 7면에 실린 하단 광고입니다. 광고주는 진일고등기술학교이며, 1970학년도 신입생을 모집한다는 광고입니다. 진일고등기술학교가 있는 곳은 마산시 장군동 4가 26이며, 당시 전화번호는 6041번입니다. 광고에 실린 내용을 보면 "완전한 교육시설 중견 기능공 육성"이라는 헤드라인이 눈에 들어옵니다. 특전을 보면 1. 재학생 성적이 우수한자. 신입생 선발고사에 수석 합격자 및 성적 우수자에게는 각종 장학금 제도가 있다. 2. 1971년도 졸업생부터 성적이 우수한 자는 도일(일본으로 넘어가서) 기술 훈련제도가 있다. 3. 시의 학생에게는 교통부 지정 통학증을 발급한다. 특색 1. 1969년 제 1회 졸업생중 취업 희망자 전원 취업했음. 2. 1968년 시행 대학교 입학자격 검정고시에 7명 응시, 6명 합격하여 현재 우수 대학에 재학중 3. 1969년 시행 대학교 입학자격 검정고시에 5명 응시, 4명합격 4. 본 학년도 졸업예정자(제2회 졸업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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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회원동에 있었던 제빵회사 제일물산

1969년 7월 20일자 경남매일(현 경남신문) 에서 본 제일물산 광고입니다. 현재는 이 회사가 보이지 않습니다. 다른 곳으로 이전했는지 아니면 파산을 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주소가 마산시 회원동 384번지입니다. 현재는 저 지번이 나오지 않으며 e편한세상 창원파크센트럴2단지 아파트공사를 하면서 사라진 것이 아닐까 합니다. 아무튼 제일물산에서 만든 빵이 제일빵과 맹호빵인데 제일빵은 빠다크림, 단팥빵을 만들었다고 광고를 하고 있으며, 과자는 알파비스켓, 삐어크렉카를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인사말씀을 보면 최신자동제빵기와 시설을 3배로 강화하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시설을 확충하면서 광고를 내었던 것 같습니다. 이미지출처 : 한국현대사료DB 경남신문계열 / 경남매일 1969년 7월 20일자 1면 하단광고 / 가운데 KBC.HLAP.990 K/C라고 적혀져 있으며 그 밑에 하오 8시 19분이라고 적혀져 있는데 당시 KBC 라디오 방송에 광고가 나오는 모양입니다. 그 시간대를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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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명산 삼성간장

1961년 5월 18일 수요일 마산일보(현 경남신문) 1면 하단에 게재된 광고입니다. "마산명산 순곡장유 삼성장유는" 마산일보사가 제창한 제2회 넘버원 인기투표에서 당당히 당선~ 삼성장유는 식당, 가정에서 안심하고 요리일절에 감미,조리에 자신만만 - 삼성장유양조장 / 마산시 상남동 양조원 Tel 807 - 옆에는 "요리에는 삼성간장이 제일이야"라고 적혀져 있습니다. 이미지출처 : 한국현대사료DB 경남신문계열 / 마산일보 1961년 5월 18일자 1면 하단광고 / 일제강점기 부터 마산은 장유공업이 발달되었으며 복정(福井 / 후쿠이), 적문(赤門 / 아카몽), 평정(平井 / 히라이) 장유양조장이 유명하였습니다. 해방 후 일본인들이 철수하고 난 후 일본 장유양조장을 접수하고 간장을 생산하였는데 몽고간장과 환금간장이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부터 간장하면 마산이 유명하다 보니 간장에 마산명산이라는 것을 꼭 부착하였는데 삼성간장에도 마산명산이라는 부분을 표기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일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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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의 가야백화점과 롯데백화점

1977년 12월 20일자 경남매일(현·경남신문)에 실린 광고입니다. 1977년 12월 22일 가야백화점 개관을 알리는 광고입니다. 12월 25일을 앞두고 개관을 한 것 같습니다. 가야백화점은 지하 1층, 지상 8층의 건물이었으며 1989년 문을 닫았습니다. 마산이 성장하는 시기에 들어찬 백화점은 마산의 가장 정점에 있을 때 문을 닫았습니다. 현재 구·가야백화점 건물은 남겨져 있으며 상가로서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 이미지출처 : 한국현대사료DB 경남신문계열 / 경남매일 1977년 12월 20일자 7면 하단광고 / 최근 마산에 있는 롯데백화점이 문을 닫는다고 하니, 지역에 있는 정치인을 비롯하여 정치 호소인 등 여러 시민들이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왜? 이사태가 왔는지 모르는 것 같고, 남들 욕하기 바쁜 것 같더군요. 그리고 또 다른 희망고문을 하시는 분들도 있더군요. 가야백화점 이후 성안백화점, 한성백화점 등 많은 백화점이 생겼다가 문을 닫았으며, 몇 십년 전에는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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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론에서 본 김해 한림 이북초등학교

경남 김해시 한림면에 있는 이북초등학교 전경입니다. 이북초등학교는 1929년 9월 1일 개교한 학교로 한림면에서는 가장 먼저 개교한 학교입니다. 한림면이라는 면 지역 지명을 사용하는 한림초등학교가 있는데도 이북초등학교가 먼저 개교하였습니다. 더군다나 한림초등학교는 이북초등학교 장방분교로 1942년에 개교를 합니다. 즉 한림초등학교는 이북초등학교의 분교로 부터 시작하였다는 것입니다. 지명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이북초등학교에 나오는 이북은 우리가 어디서 많이 들었던 지명입니다. 이남과 이북 즉 남한과 북한에서 사용되는 지명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이북초등학교라고 할 때 북한을 먼저 떠오를 수 있으며, 탈북민들이 세운 학교처럼 오해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이 아는 이북의 북한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이북초등학교에 등장하는 이북(二北)은 두 개의 북면을 뜻합니다. 김해부의 북쪽에 상북면과 하북면이 있었는데 일제강점기 두 개의 면을 합치면서상북과 하북의 북을 사용하고 2개라 이북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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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을 느낄 수 있는 삼가읍성 남문지

합천군에는 향교가 4개가 있으며 일제강점기 합천, 삼가, 초계의 지역이 합쳐서 합천군이 되었습니다. 합천군 삼가면은 현재 면 단위입니다만 조선시대 삼가현이 있었으며 내륙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읍성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합천과 초계에는 읍성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군 단위다 보니 읍성에 관하여 크게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뭐 시 단위라고 해서 관심을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삼가읍성 남문지에 관하여 표시가 되어져 있지 않더군요. 아래에 나오는 사진들은 2021년 12월 말에 삼가가서 찍은 것으로 당시에는 삼가읍성 남문지라는 표시판이나 안내판은 없었습니다. 삼가읍성 남문지가 있는 곳은 삼가우리약국과 삼가의원 사이에 있는 골목길입니다. 여기는 삼가면에서 나름 복잡한 곳입니다. 삼가시장이 있는 곳이라 장날이 되면 복잡한 곳이 되는데 이곳이 삼가읍성의 남문지라는 부분을 알고 있는 분들이 많지 않습니다. 삼가면에서 지역사 하시는 선생님 이외에는 없을 것입니다. 작은 약국이 두개가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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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읍성 북 치성 안내판이 바뀌었네요

창원읍성터에 오랫만에 갔더니 못보던 것이 등장하였더군요. 그동안 햇빛을 받아 창원읍성 안내판에 적혀져 있는 글씨를 잘 알아볼 수 없었는데 이번에 새롭게 정비를 하면서 창원읍성 북치성 안내판을 바꾸었더군요. 현재 창원읍성의 흔적은 많이 남겨져 있지 않지만 그래도 일부가 남겨져 있으며 20년이 다되어가는 창원읍성 동문지 복원 소식이 있습니다. 창원읍성 동문지는 언제 복원이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창원시에서 건물매입을 하고 있는데 이게 생각했던 것보다 오래 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창원읍성 북 치성은 도로개설 때문에 발견이 된 치성입니다. 그동안 창원읍성의 성벽이 일부 보이기는 했지만 치성이 발견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치성과 해자가 나왔으며 목익도 출토되었습니다. 문화재조사위원들과 문화재조사기관에서는 도로 개설도 중요하지만 창원읍성 치성도 중요하다고 판단되어 보존하는 것으로 결정되었습니다. 그래서 현재 창원읍성 치성이 보존되어져 있습니다. 발굴된 치성으로 예전에는 발굴만하고 방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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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용강마을 산사태와 삼선개헌

창원시 의창구 도계동에서 동읍을 넘어가다보면 나오는 곳이 용강고개입니다. 지금은 용강고개가 낮게 형성이 되어져 있지만 예전에는 지금보다 20m 높은 곳에 고개가 있었습니다. 용강고개를 통과하는 방법과 신풍고개로 넘어가는 길이 있는데 도로사정이 좋은 용강고개로 넘어나녔으며 용강고개에는 경찰검문소가 있었지만 현재는 사라졌습니다. 용강고개에서 용강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용강마을에 관하여 안내판이 작성되어져 있습니다. 금계국과 개망초가 날리는 곳에 서있는 용강마을 안내판은 평화롭게 보입니다. 용강마을의 소개와 용강마을의 위치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여느 마을에 소개하는 글이 있는데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더군요. 마을안내판에 있는 내용을 보면 " 1969년 구룡산 산사태로 인하여 당시 박정희대통령께서 직접 용강마을을 방문하여 주민을 위로 하였고, 산사태로 인한 이주 과정에서 양달, 월남, 음달 마을로 구분되었습니다." 즉 현재 있는 용강마을은 예전의 마을이 아니고 이주한 마을임을 알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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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에도 콜라제조회사가 있었네

예전에 나온 콜라제품중 815콜라가 있었습니다. 콜라독립만세라는 슬로건으로 나와 제법 히트를 시켰고, CF에 나온 주인공도 인기를 얻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현재는 "815콜라가 아냐? 모르냐?" 를 기준으로 "나이가 많다. 적다"를 평가해도 될 정도일 것입니다. 815콜라가 나왔다가 그동안 입맛에 익숙한 코가콜라의 시장을 넘지 못하고 2004년 주저 앉았습니다. 콜라독립이라는 슬로건은 815콜라보다 더 먼저 있었습니다. 815콜라가 나온 시기보다 35년이나 빠른 1960년대에 나온 콜라가 있는데 OB콜라입니다. 어디서 많이 들었던 것 같죠. 우리가 잘 아는 OB맥주에서 만들어 낸 콜라입니다. 에스피콜라, S.C콜라. F콜라, 대한코라, 칠성코라, 삼양콜라, 칠성코라, 대구코라, 삼성콜라, 아미코라 등 20여 개의 콜라회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 콜라회사 중에 마산에 공장을 차린 회사가 있어서 소개하려고 합니다. 경남매일 1970년 4월 10일자 하단 광고로 나온 것이 바로 삼씨콜라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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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에 소주 주조장이 있었네

소주하면 서울을 기반으로 한 진로와 각 도에서 생산하는 자도주인데 이게 1960~70년대 초반만 해도 전국에 많은 소주회사가 있었습니다. 마치 춘추전국시대처럼 고만한 영주들이 중국을 먹겠다고 하는 것처럼 고만한 시장을 가지고 있는 소주 회사들이 군웅할거를 하던 시절입니다. 그러던 것이 1977년에 정부주도로 소주업체 통폐합이 진행되어 1도(道) 1사(社)가 원칙이었으나 1988년 제6공화국 수립 이후 이 제도는 폐지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사이 각 도에 자리한 소주회사의 성장으로 예전의 있었던 회사들이 성장하기 힘들어졌죠. 경남 밀양에서 생산된 <대양(大洋)소주>입니다. 밀양시 삼문동 164-2번지에 있었던 대양양조장은 강남청량음료공업사와 함께 운영을 하였던 모양입니다. 내륙지역인 밀양에서 큰 바다를 향해가려고 하였는지 <대양소주>라는 브랜드를 만들었고, 강남사이다는 밀양강 남쪽에 있었던 삼문동에서 만들어서 <강남사이다>로 한 것 같습니다. 당시 내일동이나 내이동 등이 중심이라 밀양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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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별 교각을 볼 수 있는 밀양강 철교

대구에서 내려오는 경부선이 밀양역에 들어가기 전에 만나는 것이 밀양강철교입니다. 이곳은 여러모로 인상 깊은 곳이기도 한 곳입니다. 일단 교각이 상행선 교각과 하행선 교각 그리고 최근에 만든 교각 총 3개의 교각이 있습니다. 낚시꾼들에게 포인트가 있는 것처럼 철덕들에게는 좋은 포인트가 있죠. 역덕들에게는 여기 밀양강철교가 좋은 포인트라 생각합니다. 밀양강철교는 1904년 만든 교각, 1945년 교각, 2020년 만든 교각으로 인해 시층이 다른 교각이 3개가 놓여져 있습니다. 지난 2020년 상·하행선 교각을 모두 철거하고 새로운 교각을 설치하기로 했습니다. 예전 교각은 노후화로 소음과 진동 등 민원이 잇따르는 것 때문입니다. 그러자 영남대로 복원 범시민추진위원회와 향토사연구회 등에서 교각을 보존하자는 운동이 벌어져서 현재 보존하게 된 것입니다. 또 한국내셔널트러스트의 '제16회 이곳만은 꼭 지키자' 전국 8곳 중 밀양강 철도교 하행선이 선정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교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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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백화점 마산점 폐점 이후를 걱정하라

최근 마산에 있는 롯데백화점이 2024년 6월 폐점을 앞두고 있습니다. 2015년 7월부터 영업한 롯데백화점이 영업을 종료함으로 마산 전반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문을 닫을려고 하는 것은 바로 매출부진이 가장 큽니다. 2023년 마산점 매출은 740억 원이었으며 전국 롯데백화점 32개 점포 중 가장 낮았던 것이 큰 이유인 것 같습니다. 누적적자도 800억 원이라고 하니 철수를 선언한 것 같습니다. 그러자 지역 전반에 있던 정치권들이 나서기 시작합니다. 민주당은 창원시는 적극적 생계대책을 마련하라고 하고, 국민의힘은 최선의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합니다. 창원시는 입점 업체 업주와 종업원들을 지원하기 위해 '찾아가는 일자리센터'를 운영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창원시와 공공기관들이 합동으로 입점 업주와 종업원들에게 재취업 지원, 맞춤형 교육훈련, 창업 및 폐업 관련 정보 등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하는데 이게 관에서 운영할 기본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창원시에서 하는 지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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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시 이반성면에서 본 정구석공적비

진주시 이반성면 이반성초등학교 옆에서 본 정구석 공적비입니다.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어서 눈에 잘 들어오더군요. 처음에는 저 분이 뭐하시는 분인데 공적비를 크게 만들어 놓았지 싶어서 가 보았습니다. 앞에는 "구이반성수리조합장 정구석공적비"라고 적혀 있습니다. 1952년 3월 수리시설인 저수지를 만들기로 하고 1년 만에 완공하게 되는데 정구석조합장의 헌신으로 예산을 타내고 공사가 완료되어 옥토가 변한 것에 고마움으로 공적비를 세운 것이더군요. 비석에 새겨져 있는 내용을 보면 한 사람의 의롭고 착한 마음이 만 사람을 살찌고 배부르게 할 수 있는 것이며 마치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쫓아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나니 이는 곧 정구석 어른의 나를 버리고 남을 위한 일이다. 씨는 일찍이 이 곳 하곡리 주민들이 수원이 없는 천수답으로 하늘만 바라보고 농사지음으로 인하여 갈수록 빈곤에 덮쳐 혹은 초근목피로 연명하기도 하고 심하면 고향을 등지고 떠나는 이농민이 늘어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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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역으로 가던 철길은 많이 변했네

1926년 일제강점기 당시 마산부 지도중 구마산과 북마산의 지도입니다. 1925년 마산과 진주로 이어주는 경남선이 생기고 난 이후의 지도입니다. 구마산지도중 서측을 보면 민가들이 많지 않으며 Y자 형태로 이어진 철길이 보입니다. Y자 철길이 마산역(일제강점기 마산역 현재의 마산역과 다름)의 상징이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1977년 12월 마산역 통합이 되고 난 후 구마산역으로 이어지는 경전선은 철거가 되었고, 철길 그 위로 가게들이 들어섰으며 그리고 50년이 다되어갑니다. 그러다보니 예전의 기억을 기억하는 나이 드신 분들은 알지만 이후 등장한 세대들은 저 길을 잘 모른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빨강색 동그라미로 표시한 지역입니다. 마산역으로 지나갔던 마산선과 경남선의 선로를 표시하여 보았습니다. 임항선은 철길 위에 집들이 없지만 마산선 철길 위로는 집들이 보입니다. 선로를 따라 이어진 길은 현재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도로를 따라 길게 이어진 상가들을 보고 예전의 길이 어떠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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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병영에서 본 돼지

전남 강진군 병영면에 있는 병영면소재지 사거리에서 본 돼지군졸들입니다. 돼지군졸들은 조선시대 복장을 하고 사거리에서 몰려오는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더군요. 병영연탄돼지불고기를 집중 홍보하고 해서 그런지 돼지를 연상시킬 수 있는 돼지군졸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병영 돼지불고기거리 조성사업은 병영면 일원에 돼지고기 관련 음식특화거리를 조성하는 사업으로 지난 2020년 12월 부터 돼지 먹보장군 등을 응용하여 홍보한 것 같습니다. 일단 회전교차로에 2등신 군졸과 장군을 배치하여 놓았으며, 장군의 무기는 포크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병영하면 생각나는 돼지를 이용하여 돼지 조형물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전라병영성이라는 상징성과 돼지불고기를 응용하여 병영성을 지키는 돼지로 만든 것 같습니다. 총 9마리의 돼지들이 병영성 입구를 지키고 있습니다. 병영돼지불고기거리 먹고 즐기GO 슬로건까지 부착하여 놓았습니다. 먹보장군이 병영을 지키고 있습니다. 장군이라 일반 병사들보다 큰 포크를 들고 있습니다. 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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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칙이 당연한 사회

어느 연예인이 음주 운전을 하였는데도 불구하고 공연을 강연한다는 이야기가 들립니다. 음주운전을 두둔하자고 하는 것도 아니고, 어느 연예인을 두둔하자는 것도 아닙니다. 며칠만 공연하면 수 없는 비용이 들어오고, 공연을 취소하면 위약금이 많다는 이유로, 진실을 말하겠다고 하면서 공연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뻔뻔함은 벌써 안드로메다로 이사간지 오래이고, 도덕보다 더 중요한 돈에 목숨을 걸고 그것을 응원하는 팬 문화입니다. 어디 그 연예인만 그렇나요? 사회전반이 다 그렇습니다. 사회적 물의를 주는 행동을 해도 선거에 나와 "당선으로 보답하겠다." "국민만 믿고 가겠다. "는 식으로 뱀의 혓바닥으로 말을 바꾸는 정치인들을 우리는 수없이 보았습니다. 또 적어도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는 정치인들을 우리가 뽑아주지 않으면 되는데도 불구하고 뽑아주면서 정신승리를 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니 음주운전을 하였다고 하는 연예인 팬들이 나서서 "세상 살다 보면 그럴 수 있지" 라고 두둔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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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원이 교통 요충지가 될 뻔하였네

일본이 발행한 지도로 지도에는 동아여지도 서제 2행북 제1쇄 남부라고 적혀져 있으며 대한제국의 남부지역 지도입니다. 지도는 명치37년(1904년)제판, 명치42년(1909년)수정이라고 적혀있고 명치42년(1909년) 10월 5일 인쇄, 동년 10월 10일 발행한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지도는 제법 큰 지도인데 블로그에 올리는 한계로 인해 축소하여 올렸으며 관심 있으신 분은 첨부파일을 올리려고 하였더니 10mb 용량 제한이 있어서 올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경상남도 지도를 보면 경부선 철도 노선과 함께 당시 마산선의 노선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당시 조선의 마을 등을 알 수 있습니다. 조금 확대한 것으로 마산선 철도가 삼랑진에서 창원과 마산포로 지나가는 것으로 표시되어져 있습니다. 마산선은 철도의 약물로 표시되어져 있습니다. 자세하게 보면 마산포에서 가는 검정색 선이 있는데 철도의 계획노선입니다. 이 철도는 마산포에서 칠원으로 연결되어져 있으며 칠원에서는 함안으로 연결되는 노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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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시계탑 기차

울산 성남동에서 본 시계 기차입니다. 울산 중구가 지난 2015년 1억 5,500만원을 들여 설치한 시계 기차는 여러모로 명물이면서 골치꺼리인 것 같습니다. 울산역이 있었던 원도심인 울산 중구의 역사적 상징물로 시계 기차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필자가 방문하였을 때는 기차가 매시 정각에 움직이더군요. 문제는 이게 자주 고장이 나는 모양입니다. 그러다 보니 몇 년 동안 방치하였다는 기사가 나왔었는데 이후 수리를 한 것인지 몰라도 필자는 운이 좋았는지 운행하는 기차를 보았습니다. 오래 되어서 움직이지 않았는지 기억이 안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필자가 찾아간 날만 움직였는지는 모릅니다. 돔형으로 만들어 놓은 조형물 위에 기차레일이 있고 그 위로 모형 기차가 지나가는데 고장이 자주 발생하여 여러모로 애로사항이 있다고 하더군요. 시계탑에 매 시 정각에 기차가 움직인다는 발상은 좋은 것 같은데 이게 저렴한 가격에 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고장이 잦다고 하면 신뢰성에 많은 문제가 생기는 것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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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부 어변정은 여기가 아닐까?

조선시대 창원부 지도중에서 본 어변정입니다. 바닷가에 조창이 있고 조창 옆에 어변정이 자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변정(禦邊亭)은 뭐하는 곳일까요? 어변정은 주로 수군진성이나 읍치의 성문 밖 선소, 선창 가까이에 설치하여 군선 승무원의 출동대기 장소로 사용하였던 장소입니다. 1872년 지방지도에 그려져 있는 경상도 어변정을 보면 웅천, 진해, 제포진, 안골포진에 그려져 있습니다. 그러면 어변정이 어디에 있었을까? 1914년 지적도를 보면 대충 답이 나올 것 같습니다. 동굴강 입구에 핑크색으로 표시한 지역이 어변정일 가망성이 많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이미지출처 : 국가기록원 지적아카이브 확대를 해 본 것으로 필자가 추정하는 곳은 현재 창원시 마산합포구 남성동 64번지입니다. 어변정이지 않을까 추정하는 이유는 국가부지이며 대지라는 것입니다. 금방에 국가부지는 보이지 않았으며 대지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지적도에 나온 국가부지와 대지를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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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진양성지도

1955년도 <진주의 고적과 명승>에 있는 진양성지도입니다. 사진은 경상대학교 칠암캠퍼스 안에 있는 진농관에서 보았습니다. 보통 진주성이라고 하는데 진양성이라고 적혀져 있으며, 6.25 전쟁 이후 도로 개설이 되면서 진주성의 형태를 알아 볼 수 없는데 여긴 표시를 하였네요. 여러면에서 재미있는 것이 있는데 대사지를 대사지라고 적어 놓고 진영못이라고 적어 놓았습니다. 경상우도병영성의 진영을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공북문은 내북문, 신북문은 북문 등으로 표시되어져 있으며 촉석문은 내동문으로 표시되어져 있습니다. 무엇보다 외성과 내성을 구분하여 표시하였고, 내성안에 있는 선화당을 표시하고 외성 안에 있는 시청도 표시하였으며 시청 옆에 있는 경남일보사도 표시하여 놓았습니다. 무엇보다 남강에서 흘러온 물을 외성을 감싸고 도는 것을 잘 표현하여 놓았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예전의 진주목의 도시는 상당부분 훼손이 되었고, 6.25전쟁을 치루면서 더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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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으로 사용된 3·15회관

1970년대 3·15회관 사진입니다. 사진의 저작권자는 셀수스협동조합입니다. 1961년 3·15 의거 촉성회가 주축이 되어 1962년 9월 20일 3·15 기념관 개막식과 기념탑 제막식을 함께 거행하였으며 1963년 4월 24일부터 영화 전용 상영관으로 바뀌었고 건물의 명칭도 3·15 회관으로 개칭하였습니다. 당시 4월 24일 개봉작은 아지 무라드 감독의 1959년작 「백마 하지무라드」였다고 알려졌습니다. 개관 초기에는 외국 영화 전문 상영관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외국 영화를 중심으로 인기 있는 작품을 선정하여 관객들이 많았습니다. 3·15 회관 앞이 시외버스터미널이 위치하고 있어서 찾아오기도 편한 곳이었지만 1980년 시외버스터미널이 합성동으로 이전하면서 상권이 위촉되었습니다. 이후 관객이 감소하고, 1990년대 부림동 주변에 연흥극장 등 극장이 많이 등장하면서 경영난이 심해지면서 1995년 <벤허>를 재수입 상영한 후 폐관하였다고 합니다. 이후 2005년 4월 6일 건물이 철거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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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함안 칠원초등학교 졸업사진

경남 함안군 칠원읍에 있는 칠원읍성 객사 앞에서 찍은 칠원초등학교 졸업식 사진입니다. 시기는 1934년이며 졸업생은 19회입니다. 일본이 내선일체를 외치기 전의 모습이라 그런지 몰라도 남학생은 검정색 두루마기를 많이 입고 있으며 여학생은 흰 저고리에 검정색 치마를 입고 있습니다. 선생들은 양복과 두루마기를 입고 있습니다. 여느 읍치지역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칠원현의 객사도 현.칠원초등학교 교정으로 사용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객사 건물 가운데 있는 중청(中廳)에는 칠원객사의 현판은 보이지 않고 권로(勸勞)가 적혀져있습니다. 당시 기준으로 1차 산업인 농사를 풍성하기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권로(勸勞)라고 적은 것이 아닐까 추정합니다. 객사는 학교 교실로 활용하기 위해 벽을 내고 그 사이 창문을 다는 식으로 변형이 되었으며 스탬프에는 칠원공립보교라고 적혀져 있고 졸업 제19회 기념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주출입문은 권로(勸勞)라고 적혀져 있는 아래에 있는데 미닫이 문입니다. 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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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의 도시재생 그리고 소리단길

[초점] 창원 소리단길 내동내살 프로젝트 시, 2026년까지 3년간 10억원 투입소답동·중동 일대 상권 살리기 나서 방치된 유휴시설 창업 공간 활용우수 식음료 발굴 매장 창업 유도 ... www.knnews.co.kr 창원시 의창구 의창동에도 2016년부터 본격적인 도시재생이 시작되었으며 4년간 64억 원 예산이 소요되었습니다. 하지만 의창동은 창원읍성을 비롯하여 조선시대 창원의 역사가 오롯이 남겨져 있는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창원읍성과 관계없이 의창행복터널, 커뮤니티센터 등을 설치하고 끝이 났습니다. 물론 창원읍성을 알리는 부분을 하고자 창원읍성 남문 해자 부분에 읍성의 체성 부분을 흉내 내고, 창원읍성 안내판, 남문지와 객사 안내 징표가 설치되었습니다. 처음부터 창원읍성지에 대한 관심이 없었어 필자는 창원읍성 남문지와 객사터에 창원읍성 남문지와 객사터 표시를 해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겨우 나온 것이 창원읍성 남문지 표징입니다. 하지만 도시재생을 하면서 스토리텔링을 이용한 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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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학교가 남아있는 학교보다 더 많은 군지역

경남 '100년 학교' 105곳 중 48곳 소규모 학교 전락 학령인구가 감소하면서 개교한 지 100년이 넘은 경남지역 학교 절반에 가까운 45%(48개교)가 학생 60명 이하 소규모 학교로 전락했다.16일 경남교... www.knnews.co.kr 경남신문에 보도된 경남 100년 학교 105곳중 48곳 소규모 학교 전략이라는 기사입니다. 학생 수 60명 이하의 100년 된 48개교의 지역별 분포를 보면 거제시를 제외한 17개 시·군에 모두 분포돼 있다고 기사에서 이야기합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학교들은 1900년대와 1920년대 설립한 학교를 이야기합니다. 기사는 이렇게 적어 놓았습니다. "경남교육청은 학생 수 급감에 따라 시범적으로 의령군을 3개 권역으로 나누고 소규모 학교 2~3개를 중심 학교에 모아 학년별로 수업을 하는 ‘캠퍼스형 공동학교’를 운영하는 등 작은 학교 살리기에 나서고 있다. "라고 말이죠. 1910년 대한제국 시절 설립한 학교들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일제강점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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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포 동굴강과 서굴강

마산포 위치는 어디? 모 인터넷카페에서 올라온 댓글로 합포해전지에서 나오는 합포와 마산포의 위치를 밝히라고 합니다. 참으로... blog.naver.com 저번에 마산포의 위치에 관하여 이야기하였습니다. 마산포는 현재 남성동, 창동, 오동동 일대를 이야기하며 선소 주변이라 보시면 됩니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조창의 굴강은 없었을 것이고 동굴강인 작은 굴강만 있었을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임진왜란 이후 1760년 조창이 설립되면서 서굴강도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추정합니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지적도에는 동굴강과 서굴강의 흔적이 나옵니다. 굴강의 지적도를 색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있는데 허정도 박사가 올린 것입니다. 보면 바다가의 모습과 동굴강, 서굴강 그리고 선창의 모습이 보이고 조창인 마산창도 보입니다. 저 지적도를 가지고 현재의 지도에 올려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다만 오차가 있을 수 있으며 오차 범위는 2m 정도 되지 않을까 합니다. 현재 합포로 4차선 도로와 아슬아슬하게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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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수변과 바닥 소화전

어시장 너른마당 입구 맞은편에서 본 제수변입니다. 제수변은 관로의 물을 차단하는 밸브를 이야기하는데 이 제수변을 만든년도가 1984년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제수변이 년도가 적혀져 있는 것은 처음 보았는데요. 이 제수변은 바로 옆에 있는 소화전의 물을 차단하는 밸브인 것입니다. 제수변 옆에있는 소화전은 요즘 보는 소화전과 달리 바닥에 소화전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요즘 소화전은 빨강색으로 된 둥근 파이프가 보도블록 있는 곳에 놓여져 있습니다. 소화전이 바닥에 있는 것은 제법 역사가 오래 되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다 보니 소화전은 한글이 아닌 한문으로 소화전(消火栓)를 새겨 놓았습니다. 부산을 가보니 이런 식의 소화전이 상당히 많이있더군요. 일본에서는 바닥에 있는 소화전을 상당히 많이 보았는데 1984년이 새겨져 있는 제수변을 보니 1980년대 소화전은 바닥에 놓여져 있을 것 같네요. 제수변과소화전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불종거리로 2 허종해비뇨기과의원 이 블로그의 체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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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남은 양산읍성 북쪽성벽

양산읍성은 현재 상당부분 훼손이 된 상태이며 그 흔적을 찾는 것은 너무나 힘이 듭니다. 다만 북부동 지역에 북쪽 성벽 일부와 동쪽에 일부가 남겨져 있다고 하는데 동쪽은 진짜로 조금 남겨져 있는 것 같고, 그나마 이게 읍성이구나 하게 느껴지는 것은 북쪽 성벽입니다. 남겨져 있는 곳은 아쉽게도 큰 성돌 3개 정도로 4m정도 됩니다. 여기는 도시계획에 의해 진행되다가 읍성의 일부가 있는 것을 보고 중단된 것 같더군요. 그러면 그 앞에 진행된 소방도로에 양산읍성이 사라졌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필자가 방문할때는 2021년 10월 이었으며 현재는 어떻게 진행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성돌은 하부에 대석이 자리하고 있는데 높이는 1미터 넓이는 1m 50cm 될 정도로 아주 큰 돌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또 다른 돌은 높이는 50cm 정도 되고 넓이는 1m가 넘어보이더군요. 성돌은 보는 것과 같이 좌측에 있고 우측은 민가로 사용되었다가 방문할 당시에는 주민이 살고 있지 않은 것 같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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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론으로 본 하동향교

경남 하동군에 있는 하동향교는 지난 1736년에 현재의 장소에 향교가 이전되었습니다. 하동향교는 하동읍치와 연관이 있는데 조선초기에는 현재 하동군 고전면에 있는 고하리에 하동읍치가 만들어지고, 하동읍성이 만들어졌습니다. 그시기인 1415년 창건이 되었다가, 1593년 임진왜란때 불태워졌다가 1603년 중건하였습니다. 이 당시 만들어진 하동향교는 얼마가지 않아 읍치가 이전함에 따라 향교가 이전하였으며 현재의 자리로 옮겨왔다가 1744년 문묘가 이전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즉 읍치에 따라 향교가 이전하였고, 조선 중후기에 현재의 자리에 잡았습니다. 하동향교가 있는 곳은 예전 하동군 동헌이 있던곳에서 서남쪽에 위치하며 하동교회와 하동성당과 가까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하동교회, 하동성당이 보이고 하동성당 뒷편에 보이는 건물이 하동읍사무소인데 예전 하동군 동헌이 있었던 곳입니다. 하동향교는 그동안 보아오던 방식과 아주 비슷하면서 조금은 다른 방식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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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읍성 동벽 변천

우리나라 현재 남겨져 있는 읍성중 3대 읍성이라고 하는 곳이 해미읍성, 고창읍성, 낙안읍성입니다. 뭐 이 읍성들이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갖고 있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3개 읍성 모두 복원을 한 것이며 예전 조선시대 읍성의 모습을 100% 재현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관광객들 입장에서는 보고 즐기기 좋은 곳이 3대 읍성이라 봐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해미읍성은 충남 서산에 있다보니 수도권과 충청권에서 많이 찾아가고 고창읍성은 전라권이며 낙안읍성은 전국권이라 봐야할 것입니다. 낙안읍성 입장권 수입만해도 상상을 초월합니다. 3개 읍성 모두 우리나라 서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경상권을 대표하는 읍성하면 떠오르기 쉽지 않습니다. 동래읍성에서 축제도 열리고 있지만 워낙 현대적인 느낌을 주는 읍성이고, 나머지는 그렇게 떠오르는 읍성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경북 청도에 있는 청도읍성은 2004년부터 청도읍성 개발을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동쪽 성곽 일부와 북쪽 성곽 일부를 복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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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론을 통해본 통영향교

통영은 조선시대 고성군이었기 때문에 통영에는 향교가 없었으며 고성향교는 고성군 고성읍내에 있었습니다. 그러다 1895년(고종 32년)에 통제영이 폐지되었으며, 1900년 통제영 소재지에 진남군(鎭南郡)이 설치되면서 진남군의 향교와 사직단, 여제단 등이 설치가 되었습니다. 정확한 것은 1901년에 통영향교가 설립됩니다. 그러니까 조선이 망하기 직전에 설립된 향교이며, 20세기 초에 설립된 향교인 것입니다. 보통 향교는 건물이 있다가 다시 중건하거나 이전하는 경우가 많은데 통영향교는 1900년에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는 것입니다. 필자가 찾아간 날 통영향교에서는 홍살문 색칠을 하고 있었습니다. 통영향교의 특징중 하나라고 볼 수 있는 것이 풍화루 용마루의 기와인 것 같습니다. 풍화루 용마루를 보면 바람길이 있게 구멍이 쑹쑹 뚤려있습니다. 이 부분은 다른 향교에 있는 풍화루와 다른 것 같으며, 통영에 있는 충렬사에서도 보았습니다. 통영향교는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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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신천초등학교 폐교를 가다

김해시 한림면 신천리 신천마을은 김해에서 창원으로 가는 국도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가구거리와 중소기업들이 모여 있는 신천리에 신천초등학교가 자리하고 있었는데 현재는 학교는 폐교되었습니다. 2024년부터 교육용체험시설로 바뀐다고 하며 필자가 방문하였을때는 2023년 2월 중순이었습니다. 김해 신천초등학교 교문으로 진짜로 많이 보는 교문입니다. 학생들이 등교하던 길은 현재 주민들이 운동장에 운동하러 오는 것 이외에는 없습니다. 신천초교는 1963년 3월 개교했는데 학생 수 감소로 10년 전인 2014년 3월 문을 닫았습니다. 저번에도 이야기하였던 것처럼 폐교로 되는 학교의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1960년대 들어선 시골학교라는 것입니다. 뭐 물론 100년이 넘은 학교도 페교로 전락하지만 일반적으로 베이붐세대가 태어나서 학교를 가는 시기인 1960년대 초반에 학교가 들어서고 이후 1980년대와 1990년대 학생 수 부족으로 학교가 문을 닫는데 신천초등학교는 그래도 제법 오래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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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진주와 사천의 행정통합은 이루어질까?

진주시장, 사천시에 행정통합 제안…"우주항공 발전 합심 필요" 조규일 시장, 두 지자체장 공동위원장 맡은 추진위 설치도 제안 조규일 경남 진주시장이 오는 27일 우주항공청 개청을 앞두고 동일 생활권역이자 우주항공청이 들어서는 사천시에 '행정통합'을 20일 공식 제안했다. 조 시 n.news.naver.com 최근 진주시와 사천시 사이에 묘한 기운이 흐르고 있습니다. 일단 우주항공청 개청이라는 화두도 있지만 조규일 진주시장이 진주와 사천의 행정통합을 재안하면서 두 지역에서 논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지역적으로 역사적으로 가까운 곳이고 동일한 생활권이라는 것입니다. 조규일 시장은 사천시장과 진주시장을 공동위원장으로 한 통합행정 사무 공동 추진위원회 설치 등 행정통합과 관련한 실무적 절차도 제안하였습니다. 하지만 사천시는 냉량한 반응입니다. 사천시는 별 다른 반응이 없는 것에 비해 사천시의회는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우주항공청 개청이 진행될 것이며 청사가 임시로 사용중이지만 언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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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계 팔진역은 적중면사무소

여지도에서 본 초계군의 팔진역입니다.팔진역이 있는 곳은 현재 경상남도 합천군 적중면입니다. 현재의 행정구역으로는 경상남도입니다만 조선시대에는 경상좌도와 경상우도를 나누었으니 현재와는 다른 방식의 행정구역이죠. 팔진역은 당시 김천도(金泉道)에 속하여 있는 역참이었습니다. 김천도는 김산에 있었으며 김산-지례(知禮)-거창(居昌)-합천(陜川) 방면, 김산-성주(星州)-고령(高靈)-초계(草溪) 방면, 김산-인동(仁同)-칠곡(漆谷) 방면에 이어지는 역로를 관리하였습니다. 김천도의 가장 맨 밑에 팔진역이 있었습니다. 현재의 김천시이니 제법 먼거리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팔진역 밑에 있는 역은 의령군 봉수면에 있는 신흥역(新興驛)이었는데 신흥역은 사근도(沙斤道)에 속한 역이었습니다. 팔진역은 김천도가 아니라 사근도역에 속해 있어도 무방한 역이었지만 김천도에 속한 역이었습니다. 이미지출처 :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1872년 지방지 초계군의 모습으로 읍치가 있는 초계리에서 어느정도 거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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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청에서 본 국가유공자우선 주차장

창원시에서 본 국가유공자우선 주차장표시입니다. 총 5면이 표시되어져 있었는데 이렇게 설치하게 된 것은 바로 '국가유공자 우선 주차구역 설치 및 운영에 관한 표준 조례'때문입니다. 창원시는 지난 2023년 5월 30일 조례가 통과 되었으며, 경남도는 2024년 4월 말 통과가 되었습니다. 국가유공자, 참전유공자를 비롯해 국가를 위해 헌신한 고엽제후유증환자, 특수임무유공자 등 보훈대상자의 공공시설 이용 편의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국가보훈부에서 발급받은 신분증서 또는 확인서를 소지한 보훈대상자가 탑승한 차량일 경우 주차할 수 있다고 합니다. 우선주차구역의 설치는 경남도청 및 소속기관의 청사, 도가 설치·관리하는 공공시설의 주차장이 50면 이상일 경우 최소 1면 이상의 우선주차구역을 설치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합니다. 경남도와 비슷한 조례인 창원시 조례안을 보면 창원시청과 그 소속기관의 청사 및 공공시설에 우선주차구역을설치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주차장법」에 따른 노외주차장이나 부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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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청의 변천

그동안 경상도를 좌우로 나누면서 경상좌도와 경상우도를 두었다가 1896년 을미개혁으로 좌도와 우도가 아닌 남과 북을 나누게 되었으며 경상좌도와 경상우도가 아닌 경상남도와 경상북도로 나누게 됩니다. 감영이 있었던 대구에 경상북도청이 들어서고, 진주에 경상남도청이 들어섭니다. 한동안 잘 있던 경남도청은 1924년 12월 경남도청이 진주에서 부산으로 이전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진주시민들이 도청 이전 반대 시위가 벌어졌고, 여러차례에 걸쳐서 반대 시위가 일어났지만 일제는 1925년 4월 1일 부산으로 경남도청을 이전합니다. 당시 진주시민들의 반대는 엄청난 반대였고 놀란 일제는 진주시민들 민심을 달래기 위해 여러가지 안을 내 놓았습니다. 진주고등학교의 전신인 진주공립고등보통학교 설립인가, 진주여고의 전신인 진주 일신여자고등보통학교 설립인가 그리고 남강을 가로 지르는 진주교 설치였습니다. 이보다 앞서 마산과 진주를 이어주는 진주역이 1925년 6월 개통을 합니다. 진주고(진주중도 포함)와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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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년, 94년 마산사진

2022년 1월 5일부터 2월 20일까지 창원 성산아트홀에서 열린 창원 100년 사진전에서 본 사진입니다. 따라서 여기 나오는 사진들에 대한 저작권은 창원시에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아래에 나오는 사진은 1981년 사진으로 무학여고 방면에서 마산 앞바다를 배경으로 찍은 것입니다. 보시면 도로 포장이 안된 곳이 2군데가 보입니다. 1981년인데 도로가 포장이 안되었다니 뭔 일인가 싶을 것입니다. 아래쪽에 나오는 작은 도로는 경전선도로로 창원역에서 출발한 기차가 구마산역으로 들어가는 기찻길입니다. 1977년 마산역으로 통합이 되면서 기차길을 철거한 상태라 포장이 안되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현재는 포장되어져 있으며 소방도로로 사용중입니다. 윗쪽에 보이는 큰 도로는 1982년 전국체전을 한다고 하면서 도로 확장을 하기위해 기존의 민가들을 철거한 모습입니다. 저멀리 구마산역의 흔적은 보이지 않고, 나중에 6호광장이 되며 제비산 뒷편에 보이는 삼익아파트가 잠시 보입니다. 삼익아파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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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이 넘은 거제 사등교회

거제 사등성 내부에서 본 사등교회입니다. 사등성은 조선초기 거제현의 읍성이었습니다. 1426년(세종 8년) 읍성을 쌓기 시작하여, 1448년(세종 30년)에 완성하였다가 읍성이 좁고 읍성내 우물이 부족하여 1432년(세종 14년)에 고현성으로 읍성을 이전합니다. 이후 임진왜란 이후 고현성에서 다시 읍치는 거제면으로 옮기게 되면서 사등은 작은 동네였죠. 그런 그곳에 사등교회가 들어오는데 1909년입니다. 조그마한 마을에 교회가 1909년에 들어온 것은 제법 빨리 들어왔습니다. 읍치가 있었던 거제제일교회가 1910년에 들어왔고 일제가 키운 동네 장승포에 들어온 장승포교회가 1924년 집사를 하였습니다. 고현성이 있었던 고현교회 1940년(고현교회보다 빨리 들어온 교회가 있겠지만 고현에서는 이 교회가 제일 빨리 들어온 것 같은데 잘 모르겠네요.) 에 들어온 것보다 빨리 들어왔습니다. 그렇다고 사등교회가 거제에서 가장 빨리 들어온 것은 아닙니다. 옥포에 교회가 들어오는데 1896년이고 옥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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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에서 사용하는 두돈반 트럭

2020년 10월 경남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에서 본 두돈반 트럭입니다. GMC에서 만든 M602트럭으로 보이며 미군이 사용하던 트럭을 민간에 불하하여 사용하고 있는 트럭으로 보이더군요. 현재 산악지역에서 나무를 실고 다닐때 사용한다고 하더니 진짜 나무를 적재하여 운송중이었습니다. 다만 적재된 나무가 쏟아질 것 같은 느낌을 받더군요. 예전 군에서 60트럭이니 두돈반 트럭이니 하는 트럭으로 70년대 도입된 트럭으로 30년이 넘어 민간에게 불하된 것 같습니다. 군수용과 달리 민수용이라 파랑색 칠을 하고 운행중이더군요. 다만 이게 아시아자동차에서 생산된 트럭인지 미군이 사용하던 트럭인지는 몰라도 미군이 불하한 것이 많다고 하니 미군이 불하한 트럭일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M602로 보인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트럭들은 막 굴리면서 사용해도 될 정도로 튼튼한 것이 매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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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마크가 들어간 맨홀

창원시 진해구를 가다보면 예전 진해시 마크가 들어간 맨홀을 많이 만납니다. 2010년 통합창원시가 되기전의 진해시 마크는 벚꽃을 형상화한 마크입니다. 이 형태의 마크를 단 진해 맨홀이 진해에서 가장 많이 만나는 맨홀입니다. 이건 군데 군데 있으며 진해구 전반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진해의 시목인 벚꽃. 이 벚꽃을 형상화한 마크는 장복산을 토대로 이루어졌는데요. 예전의 마크는 아래와 같습니다. 위에 나오는 진해마크는 1990년대 중반에 나온 심볼마크이고 그 이전에는 다른 마크를 사용했으며 예전 진해시 마크를 단 맨홀을 가끔식 만날 수 있는데 진짜로 찾기 힘듭니다. 이 마크는 중원로터리에서 보았으며 예전 마크가 들어간 맨홀은 처음 보았습니다. 조금 확대를 해보면 원이 있고 삼각형 형태가 보이는데 오래된 세월로 인헤 형태를 잘 볼 수가 없습니다. 예전 진해시 마크는 아래와 같습니다. 원형이 있고 가운데 또 다른 원이 있습니다. 어떤 용도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항구를 뜻하는 닻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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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론을 통해본 함안향교

함안향교는 함안군 함안면 봉성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함안읍성 동쪽이 아닌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함안향교는 최초는 서쪽에 있다가 남쪽으로 이전하였습니다. 함안향교의 창건은 알 수 없고 1595년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고 합니다. 동무·서무, 내삼문·명륜당·동재·서재·풍화루 등을 건립하였는데 1950년 6·25전쟁으로 대성전·명륜당·동재·서재 등이 소실되면서 소장되어 있던 전적도 이때 모두 타버렸다고 합니다. 그래도 풍화루와 동무와 서무 등은 예전의 모습이네요. 함안향교 입구를 가면 오래된 은행나무에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홍살문 옆에 있는 은행나무는 1595년 함안향교가 이전하면서 심었을 것으로 봤는데 그것보다 더 오래되었다고 하네요. 나무둘레가 6m가 넘고 키가 20m는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홍살문 이외 함안향교 안에도 은행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습니다. 10월 중순을 넘어서면 함안향교의 은행나무가 절정이라 그때가 좋을 것 같습니다. 은행나무는 유교교육의 상징인 행단(杏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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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마산역(폐역) 육교를 가다

북마산역 육교는 지난 1970년에 완공이 된 육교입니다. 북마산역 육교는 기차 철도레일을 이용하여 만든 육교이며 당시 육교 건설은 지역에서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북마산역이 들어설 때에는 주변에 민가들이 많이 없었는데 해방과 6.25 전쟁을 겪으면서 교방동과 교원동으로 많은 사람들이 몰리면서 북마산역, 상남동과 창동으로 나가는데 불편한 점이 대두되었고, 그 불편을 해소하고자 만든 것이 북마산역 육교였습니다. 얼마전에 소개한 진해역 육교 또한 레일을 만들었고, 진영역 육교, 보성역 육교, 주례역 육교 등이 아직 남겨져 있습니다. 현재와 같이 콘크리트로 만든 육교가 아니라 레일로 만든 것이 특이하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필자도 이곳 북마산역 육교를 많이 걸어 다녔던 기억이 있는데 이게 철도 레일로 만들었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하였습니다. 현재는 하부는 예전의 레일로 만든 다리로 사용하고 있으며 상부 일부와 측면입구가 변형이 되어져 있습니다. 그래도 예전 모습 그대로 남겨져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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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보기도 힘들 것 같은 굴뚝

북한에서 탈북한 탈북이탈주민이 이야기하는 것을 유튜브에서 보았습니다. 탈북이탈주민이 이야기하기를 휴전선 너머 보이는 건물에서 밥 짓는 연기가 올라오지 않은 것을 보고 저건 대한민국 정부에서 체제 선전을 하기 위한 가짜 건물이라고 알고 있다고 하더군요. 즉 자신들은 매일 밥을 해먹는데 남조선에서는 밥도 해먹지 않는 것은 사람이 살지 않는다는 것이고, 사람이 살지 않고 있으니 건물은 사람이 살지 않는 선전용 집이라는 것이죠. 북한 군인들은 밥도 먹지 못하는 선전용 집들이 많은 것은 자신들을 현혹시키기 위한 것이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실상은 어떠합니까? 현재 굴뚝에서 연기가 나오는 곳은 전국에 몇 개 없을 것입니다. 적어도 첩첩산중에 가면 떌나무로 밥을 짓고 연기가 나오는 모습은 이제는 더 이상 찾을 수가 없습니다. 도시가스를 사용하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LPG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90년도에는 연탄이라고 사용하는 집이 많아서 그런 모습을 보여줄 수 있지만 현재는 그렇지 않죠.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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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영산 남산호국공원에서 본 석물

창녕군 영산면 남산호국공원에서 본 석물입니다. 만년교를 넘어서면 보이는 것이 이 석물인데 남산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게 동물 모양의 석물인데 어떤 석물일까? 하는 것입니다. 사자와 같이 보이는데 마땅한 안내판이 없다보니 이게 무엇인지 모르겠더군요. 또 입에 구멍이 뚫여져 있어 그 용도구 무엇일까 하고 생각애보았습니다. 사자가 아니라면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는 형상같기도 합니다. 이 석물이 용이라면 만년교 아래에 있는 용두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만년교 아래로 내려가 확인을 해보았는데 만년교 아래에는 석물이 들어간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전라도 지역을 가면 만날 수 있는 다리 하단부에 있는 용두와 같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흔적은 못보았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 석물의 용도는 무엇일까요? 구멍이 뚫여져 있는데 나무나 쇠를 끼우기도 하였을까요? 사자같기도 하고, 용 같기도 한 석물입니다. 이 석물이 원래부터 여기에 있었는지 아니면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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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론을 통해본 초계향교

초계향교는 초계현의 서쪽에 위치합니다. 현재있는 위치는 한 번 이전을 하였다고 하는데 원래 있었던 곳은 대동리라고 하더군요. 대동리 또한 읍치에서는 서쪽에 위치합니다. 보통 동쪽에 위치하는 것이 향교인데 초계향교는 왜 서쪽에 위치를 하고 있을가요? 아래 사진은 객사와 동헌이 있었다고 하는 초계초등학교 뒷편에 자리하고 있는 초계향교를 찍은 것입니다. 초계향교는 여느 향교와 마찬가지로 외삼문인 풍화루에서 시작합니다. 풍화루는 2층 누각인데 풍화루 앞에 큰 은행나무로 인해 잘 안보이기도 합니다. 초계향교는 보는 것과 같이 산기슭에 자리를 하다보니 조금씩 올라가는 공간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풍화루 - 동·서재 - 명륜당 - 내삼문 - 동·서무 - 대성전으로 이어지며 풍화루 - 학습공간 - 제향공간 이렇게 담장으로 나누어 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초계향교의 공간 구조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은행나무 때문에 풍화루가 잘 보이지 않지만 학습공간, 제향공간이 잘 보입니다. 명륜당 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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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산양 삼덕리 당포마을 돌 벅수

통영시 산양읍 당포마을 앞에서 본 돌 벅수입니다. 벅수란 장승을 경상도에서 사용하는 사투리입니다. 당포마을에 자리하고 있는 돌 벅수는 당산나무와 함께 한 쌍이 놓여져 있는데 마을입구입니다. 돌 벅수에 관하여 전해진 전설이 있는데 "일본군에게 여동생이 살해된 당포마을 한 사내는 견내량 전투를 앞두고 당산나무 아래에서 무녀를 만납니다. 누이를 닮은 무녀에게 죽임을 당한 누이 한을 풀 수 있도록 부탁한뒤 이순신 장군을 따라 전투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온 힘을 다해 기도한 무녀는 돌로 변했고 일본군과 싸우던 사내도 화살에 맞아 돌처럼 굳어졌다고" 산양읍지 전설과 이야기에 적혀 있습니다. 돌 벅수는 남녀 한쌍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마을의 수호신이라 생각하면 편할 것입니다. 이게 민속학적인데 우리가 잘 아는 장승과 달리 벅수는 높이가 낮습니다. 마을의 안녕을 빌고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의 개념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당포마을에는 당포진성이 자리하고 있으며 당포진성은 수군진으로 임진왜란 당시 당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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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남도진성 쌍운교 단운교

남도진성에서 앞에서 본 쌍운교와 단운교입니다. 단운교는 1870년 이후로 만든 것으로 추정을 하고 있지만 정확한 문헌은 남겨져 있지 않다도 하는데 남도진성 남문 앞에 있어서 해자 위로 지나가는 다리입니다. 쌍운교는 지난 1930년대 주민들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안내판에는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 쌍운교 및 단운교는 남도진성의 남문 밖을 흐르는 세운천 위에 세운 2개의 다리이다. 당운교는 옆에서 볼 때에 무지개 모양을 하고 있으며, 다리 위에는 흙을 돋우고 잔디를 심었다. 길이는 4.5m, 너비는 3.6m이며, 냇바닥에서 다리 중앙부위까지의 높이는 2.7m로 작은 규모이다. 마을 인근에서 채집한 돌을 다듬지 않고 그대로 이용하였다. 아치 부분은 다듬지 않은 납작한 모양의 돌을 세로로로 세워서 돌려 쌓았다. 단운교에서 약 40m 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쌍운교는 개울의 너비가 단운교보다 넓어 쌍무지개 형식으로 만들었다. 사용한 석재와 축조 방식은 단운교와 유사하다. 단운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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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7호 광장 서성동 분수로터리

2022년 1월 5일부터 2월 20일까지 창원 성산아트홀에서 열린 창원 100년 사진전에서 본 사진입니다. 따라서 여기 나오는 사진들에 대한 저작권은 창원시에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아래에 나오는 사진의 시기는 정확하게 언제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사진에 조금의 힌트가 있습니다. 1979년 7월 25일 마산시외버스터미널이 개통한다는 광고탑이 서 있는 것 봐서 1979년 7월 부근이라 보면 될 것 같습니다. 현재 합성동에 있는 시외버스터미널은 아래 사진에 나오는 왼쪽 전화국 옆에 있었습니다. 서성동 시외버스터미널인데 이게 합성동 시외버스터미널로 이전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전까지는 서성동시외버스터미널이었는데 이게 합성동으로 이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로터리를 건너는 사람 뒷편에 신흥여객이라고 적혀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로터리 중앙에는 조각상이 있고 그 뒷편에 전화국이 있는데 전화국에는 "신뢰와 봉사로 유신하는 체신" 슬로건이 적혀 있고, 전화국 옥상에 있는 광고판에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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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론을 통해본 전라우수영

1918년 일제강점기 당시 지도에서본 전라우수영입니다. 당시에는 보는 것과 같이 남문을 제외하고는 우수영성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지도에 성곽이 표시되어져 있는 것 봐서 말이죠. 마을은 동외리, 서상리, 선두리가 보이고, 선소 앞에는 양도가 보입니다. 이미지출처 : 국토지리정보원 국토정보맵 전라우수영의 체성도를 표시한 것입니다. 보는 것과 같이 서북쪽은 망해산이 있고, 북쪽에 북악산이 있습니다. 현재 전라우수영의 성곽은 서북방향에 일부 남겨져 있고 발굴조사가 진행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라우수영의 중앙에 있는 우수영초등학교는 예전에는 활발하였겠지만 현재는 폐교입니다. 우수영초등학교 옆에는 망해산이 있는데 망해산에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북문이 있는 곳으로 오른쪽에 낮은 야산이 있는데 북악산입니다. 이 북악산을 끼고 북쪽 성벽이 지나갑니다. 북문을 표시한 것으로 북악산과 망해산이 내려오는 길목에 북문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망해산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진 것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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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 3대 조창 삼랑창

조창에 관하여 다 작성한 줄로 알았는데 가산창만 작성하였고 마산창과 삼랑창은 하지 않았더군요. 조선전기 영남의 조창은 김해 불암창, 창원 마산창, 사천 통양창이었고, 조선 후기에는 진주 가산창, 창원 마산창, 밀양 삼랑창이었습니다. 가산창은 우조창, 마산창은 좌조창이라 불리었고, 삼랑창은 뒤에 생겼다고 하여 후조창이라 불렀습니다. 좌조창과 우조창은 1760년(영조 36) 후조창은 1765년(영조 41)에 추가 설치됩니다. 가산창은 영남의 우측에 있다고 하여(임금이 보는 기준) 우조창이라고 하고 창원의 마산창은 좌조창이라고 하였으며, 밀양의 삼랑창은 5년 늦게 생기는 관계로 뒤에 생겼다고 하여 후조창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니까 조선전기에는 사천의 통양창, 창원의 마산창, 김해의 불암창을 조창으로 사용하였고, 조선후기에 와서는 진주의 가산창, 창원의 마산창, 밀양의 삼랑창을 이용하였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삼랑창 책임자는 밀양부사, 실제 운송책임자는 제포만호가 맞아서 진행하였습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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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이 되어가는 진해역

진해역은 경전선의 지선으로 지난 1926년 11월 11일 개통되었습니다. 창원역에서 분리된 진해선은 상남역과 경화역을 거쳐서 도착하였는데 1980년대를 거치면서 상남역은 사라지고 신창원 - 남창원 - 성주사 - 경화역 - 진해역 - 통해역으로 이어집니다. 진해선은 경전선의 지선이라면 진해선에서 갈라진 행암선(구.사비선)은 진해선의 지선입니다. 진해역사는 현재 도시재생지원센터에 불하되어서 사용중에 있습니다. 아래에 나오는 사진은 일제강점기 당시 진해역의 모습이고 스탬프가 찍힌 곳을 보면 12.8.14로 적혀져 있는데 소화 12년입니다. 소화 12년은 1937년으로 1937년 8월 14일 입니다. 진해역사의 모습이 보이고 얼마 안된 나무들이 보입니다. 사진에는 나무 때문에 가려져 있지만 지붕에 창문이 있는 유럽식 스타일의 역사입니다. 일제강점기 당시 찍은 사진으로 진해역 뒷편로 굴뚝과 지붕위 창문 그리고 전봇대가 보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진해역의 모습은 100년전 모습 그대로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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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초등학교 100주년 기념광장

경남 하동군에 있는 하동초등학교 100주년 기념광장을 가보았습니다. 100주년 기념광장은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도로변에 세워져 있어 하동초등학교를 들어가지 않아도 기념광장을 볼 수 있습니다. 하동초등학교는 1907년 개교를 하여 2007년에 100주년을 맞이하였습니다. 하동초등학교가 1907년에 개교를 한 것은 나름 빨리 개교를 하였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아무래도 하동군의 치소가 있어서 빨리 개교한 것 같습니다. 기념광장에는 100주년 기념탑이 높게 세워져 있습니다. 하동초교100주년기념행사와 관련하여 하동군에서 5억5000만원을 지원하였다고 하며 총 사업비는 12억원이라고 하더군요. 타워 정상부에는 학생과 햇불모양이 보입니다. 이 타워는 참조의 김광석회장이 기증하였는지 증이라고 적혀져 있네요. 김광석 회장은 하동초등학교 41회 졸업하였다고 적어 놓았네요. 하동초등학교 100주년 기념광장은 2007년 10월에 세웠는데 학교 교가를 비롯하여 학교의 역사를 하나 하나 적어 놓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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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단장한 진해역 육교

1967년 7월 설치된 진해역 육교는 여좌동과 충무동을 연결하는 육교였습니다. 하지만 준공한지도 오래되었고, 2017년 교량 정밀점검을 실시한 결과 D등급을 받아 긴급보수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진해역 육교를 보존하자는 쪽과 새롭게 만들자는 쪽의 의견이 대립되었다가 지난 2022년 11월 리모델링사업을 통해 교량을 만들었습니다. 육교는 기존에 만든 육교 위에 새롭게 육교를 조성하였으며, 기존 육교의 자재는 그대로 살린 상태로 개통한 것입니다. 당시 진해 모 연구회에서는 1960년대에 철근 등 자재를 구하기 쉽지 않아 철도 레일을 이용해 육교를 만드는 경우가 있었고, 대부분 철거됐지만 여좌동 육교는 국내에 남은 유일한 철도 레일 육교로 추정된다라고 하면서 반대를 하였습니다. 기차로 만든 레일로 육교를 만든 곳중 하나가 진영역이었는데 진영역의 육교가 헐린 것은 지난 2011년 12월입니다. 그러다 보니 저런 이야기가 나올만 한데요. 하지만 전국에 기차레일로 만든 육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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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살인의추억 촬영지 죽봉터널

영화 살인의 추억으로 유명한 진주시 죽봉터널은 영화가 개봉된지도 오래되었는데도 찾아가는 곳입니다. 진주시 정촌면 화개리와 진주시 가좌동을 연결하는 죽봉터널은 직선터널이 아니라 곡선터널입니다. 이 곡선터널 때문에 선정이 되었다고 하죠. 사실 무엇보다 실제로 자주 다니는 철도가 아니고 가끔씩 다니는 터널이라는 점도 작용하였을 것입니다. 죽봉터널은 진삼선(진주-삼천포)구간에 있으며 진주 개양역에서 나와 바로 나오는 것이 죽봉터널입니다. 진삼선은 현재는 폐선이 되었지만 사천역까지 가끔식 운영되고 있는 철도 노선입니다. 진삼선은 1953년 5월 25일 개양역 - 사천역 간의 10.5km 구간이 개통되었으며 현재도 이와 비슷한 거리(조금 줄어들었습니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후 1965년 12월 7일에는 삼천포까지 연결되어 운영하였습니다. 하지만 시외버스를 이용한 도로운송으로 1980년 10월 1일부터 여객열차 운행이 중지되었고 1990년 1월 20일 진삼선 노선의 폐선을 공식적으로 선포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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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일반성면에서 본 서울맨홀

구·서울시 마크가 들어간 맨홀은 전국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맨홀입니다. 진주라 1,000리길이라 옛사람들이 이야기하였는데 1,000리를 건너서 온 맨홀입니다. 구·서울시 마크가 들어간 맨홀은 진주시 일반성면사무소 바로 옆 소방도로에서 보았습니다. 이 맨홀이 저 멀리서 온 이유가 무엇일까요? 서울 지향적이라 여기 맨홀이 와 있을까요? 그냥 업자들이 확보한 맨홀을 아무꺼나 가져와서 놓았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구·서울시 마크가 들어간 맨홀이 엄청나게 많이 생산된 것도 있고해서 여기저기 보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전국에 없는 곳이 없다는 것이 말이 안됩니다. 처음에는 필자도 신기하다고 여겼는데 전국 곳곳에서 만나는 구·서울시 마크가 들어간 맨홀은 업자들이 가져다 사용하고, 담당 공무원들은 점검하지 않아서 생긴 것은 아닐까? 아니면 중간에 바꿔치기했나? 아무튼 흔하게 보는 것이 구·서울시 마크가 들어간 맨홀입니다. 일반성면사무소가 사진 좌측에 있습니다. 일반성면 동락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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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한 발포진성 서쪽과 흔적만 남아있는 동쪽

흥양현(현 고흥군) 발포진성은 서측체성만 현재 복원이 되어져 있는 상태인데 주민들의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할 정도로 주민들의 차들이 많이 보입니다. 복원한 것을 자세히보면 1단이나 3단이나 돌의 크기 차이가 별로 없습니다. 가급적이면 제일 하단에 1미터 이상 넘는 돌을 사용해야 할 것 같은데 말이죠. 고흥 발포진성 안내문으로 현재는 이런 안내문이 아니더군요. 높이는 4미터 이상 5미터정도로 되어보였고 미석도 갖추어져 있습니다. 여기서 보면 가장 상단에 있는 돌과 가장 하단에 있는 돌을 비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상단부에 있는 돌은 장방형의 돌로 축성되어져 있습니다. 충무사 가는길로 충무사까지 차로 이동이 가능합니다. 서쪽 성벽 끝나는 지점으로 이부분이 치성인지 아닌지 헷갈리더군요. 충무사앞에 있는 북측체성으로 서측체성과 만나는 부분까지 복원이 되어져 있습니다. 사진과 같이 보면 내부에는 흙으로 되어져 있는 내탁식임을 알 수 있습니다. / 12년전인데 이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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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마산 산호동 사진을 보니

2022년 1월 5일부터 2월 20일까지 창원 성산아트홀에서 열린 창원 100년 사진전에서 본 사진입니다. 따라서 여기 나오는 사진들에 대한 저작권은 창원시에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창원 100년 사진전에서 본 사진중 필자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으니 바로 아래에 나올 사진입니다. 이 사진은 지난 1978년 5월 6일 처음으로 열린 마산시민의날 퍼레이드 장면입니다. 사진을 보면 제법 높은 곳에서 찍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필자는 여기가 어디일까 싶어서 곰곰히 살펴보았는데 바로 구·가야백화점 5층 옥상에서 어시장 방면을 보고 찍은 사진들이더군요. 저 당시 가야백화점이 문을 연지 얼마 되지 않았을때 였습니다. 왕복 4차선 도로에 가운데 2개 차선에서 퍼레이드를 하고 있고, 차들은 바깥 차선에서 운행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퍼레이드가 어디서 출발하였는지 모르겠지만 도착지가 마산공설운동장이다 보니 공설운동장 방면으로 향해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우측을 보면 지금은 사라진 제일병원 그리고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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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군 양보면 운암초등학교 폐교

운암초등학교는 지난 1969년 4월 6일개교하여 1999년 9월 1일 양보초등학교와 통폐합하였습니다. 통폐합을 하면서 양보초등학교가 운암초등학교 터에 자리를 잡게 되었으며, 양보초등학교는 이곳에서 1999년 9월 1일부터 2017년 2월 28일까지 운영하였습니다. 그러니까 학교가 통폐합하면서 운암초등학교 교명을 양보초등학교 교명을 바꾼 것과 비슷합니다. 실제로는 학생 수가 적어서 운암초등학교가 폐교형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원래 있던 학생들이 양보초등학교로 가야 하는데 양보초등학교 학생들이 이곳 운암초등학교로 오게 된 결과다 보니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교문에는 운암초등학교 교명 표말이 부착되어 있습니다. 운암초등학교 교명을 없애지 않는 이상은 여기에 영원히 남아 있겠죠. 현수막 등을 다는 것인데 이제는 그 역활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교정은 시골학교의 전형적인 교정의 느낌을 줍니다. 앞면에는 한글로 충효를 뒷면에는 한문으로 충효를 적어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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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감영 외삼문 포정루

강원도 원주에 있는 강원감영 선화당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외삼문인 포정루를 지나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뭐 이건 예전의 이야기이고 현재는 포정루 옆에 관리사무소에 놓여진 문으로 출입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예전에는 이 포정루를 지나야 선화당을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포정루는 지난 1660년(조선 현종 원년)에 건립되었다가 6・25전쟁 중 일부 파손된 것을 보수한 것이라고 하는데 일부 파손이 뭔지는 모르겠습니다. 포정루 누각을 오르기 위해서는 양 옆에 놓여진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됩니다. 누하주와 초석이 보이는데 풍기에 있는 제운루 이야기할때도 이야기하였지만 높이가 너무 낮습니다. 2미터 정도 되어진 곳이라 현대인들이 출입하는데 문제는 없습니다만 예전의 외삼문과 비교한다면 높이가 낮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포정루의 현판이 보이는데 흰색 바탕에 파랑색으로 포정루라고 적어 놓았습니다. 포정루에 대한 안내문이 있습니다. 안내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포정루는 강원감영으로 들어가는 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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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양읍성_04 옥하리 홍교

흥양읍성 3편에서도 홍교라 잘못 알려진 서문리 고흥홍교에 관해서 이야기 하였는데요. 1872년 지방지에 나오는 흥양읍성의 모습으로 홍교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수구문이 있는데 서문쪽 수구문과 남문쪽 수구문의 모습이 보이는데 이번에 소개할 것은 남문옆 수구문인 옥하리 홍교를 이야기 하겠습니다. 1872년 지방지에 홍교라고 적혀져 있기는 합니다. 지도출처 :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현 흥양읍성의 경우 북측체성 일부와 서측체성일부가 남아있는데 그 체성에 관하여는 다른편에서 이야기 하였습니다. 이번에 소개할 옥하리 홍교라고 잘못 알려진 남측 수구문의 경우 아래 지도를 보면 위치가 어디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추정남문옆에 있으며 서측에서 흘러내려오는 하천을 따라 남측으로 흘러가고 그 하천이 고흥천으로 흘러가는 구조입니다. 서측의 경우 야산을 끼고 체성이 지나가는데 답사하지 못하였네요. 지도출처 : 다음지도 필자 지적도 바탕으로 체성 채색 일단 서문리 홍교가 있는곳에서 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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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기인의 오랜 바램이었던 제운루

영주시 풍기읍사무소 부근에 있는 제운루입니다. 조선시대 풍기군 동헌의 외삼문이었는데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사라졌다가 지난 2019년 12월 복원한 것입니다. 제운루의 원래 위치는 현.풍기초등학교 교정이었는데 2019년 제운루위치선정위원회에서 이곳을 정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원래위치로 가면 좋은데 풍기초등학교가 있다보니 그 위치에 제운루를 정하기가 힘들어서 이곳 풍기읍사무소 뒷편에 만들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복원하는 과정에서 아문의 높이를 낮게 한 느낌을 줍니다. 아문이라면 적어도 말을 타고서 지나갈 정도 되어야 될 것 같은데 그렇지가 않네요. 현재 복원한 제운루를 보면 아문의 높이는 2미터 정도 될 것 같은데 예전 사진속에 등장하는 아문들은 3미터가 넘는 것 같더군요. 그리고 현존까지 남아있는 동헌의 아문을 보면 3미터에서 3.5미터 정도 되어 보이는데 제운루는 그렇지 못하네요. 제운루의 뒷편에서 찍은 사진으로 제운루 앞에 있는 건물이 풍기읍사무소입니다. 초석이 너무 정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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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양읍성_03 다리가 아닌데 다리로 알려진 고흥 홍교

북문지로 추정되는 곳에서 서문지로 추정되는 곳으로 나오다가 골목을 찍었습니다. 예전 성문으로 이어지는 길의 경우 저 골목보다 조금 더 크겠지만 예전 길은 아주 작았거든요. 그래서 서문으로 이어지는 예전길이 아닌가 싶어서 찍었고 집에와서 자료를 찾아보니 맞더군요. 요즘 사용하는 도로와 비교해보면 상당히 작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위 도로의 경우 우측에 있는 청회색건물 옆 골목입니다. 서문이 있었음을 알리는 도로명도 보입니다. 서문지의 위치를 비교해보세요. 서문지 근처에 있는 주차장이고 바로 뒤에는 낮은 야산이 있는데 흥양읍성의 경우 저 야산으로 성벽이 이어집니다. 바로 위 사진에 나오는 주차장이 아래 사진에도 보이시죠! 바로 옆에 있는데 옹성이 돌아가는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그자리에서는 확인을 하였는데 사진에서는 잘 볼 수가 없어서 다음지도 신세를 졌습니다. 빨강색으로 된 것이 흥양읍성의 체성이고 우측에 있는 서측체성은 흔적이 있지만 옹성밑에 있는 체성은 흔적이 없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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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양읍성_02 잘 남아있는 북측체성

흥양읍성 2번째로 현재 흥양읍성중 가장 잘 남아있는 북측체성편을 이야기합니다. 북쪽체성의 경우 고흥군청 옆으로 난 도로를 따라 올라오면 만나게 됩니다. 잠시 봐서는 체성이 있는지 없는지 헷갈릴 정도입니다. 안쪽에 보이는 성돌이 없었다면 여기가 아닌것 같다는 생각을 가졌을지 모릅니다. 하단부에 겨우 1단 정도 남아있는 내측 체성 흥양현읍성 안내판이 부착되어져 있습니다. 여기를 보면 고흥군청자리가 동헌 경찰서 자리가 객사, 농협중앙회 자리가 형옥자리등기소의 경우 관노청 자리라고 합니다. 겨우 보이는 체성을 발견하고 북측으로 올라갑니다. 내부가 아닌 외부로 나오자 흥양읍성 동측체성이 보입니다. 복원을 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예전부터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필자가 볼때 복원을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여기를 북측체성이라고 하기도 뭐하고 동측체성이라고 하기도 뭐합니다. 어중간하다고 봐야겠죠. 높이도 상당히 낮고 하부에 있는 돌의 크기로 봐서는 예전에 있었던 흥양읍성 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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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부 or 목포부 아니면 또 다른 것일까요

문경시 문경새재 미로공원앞에서 본 맨홀뚜껑입니다. 우수맨홀은 아니고 오수 맨홀인데 여기에 들어간 마크가 무엇일까요? 일단 가장 비슷한 것은 목포부 맨홀과 가장 가깝습니다. 다만 목포부라면 하단부에 길게 이어진 부분이 있어야 하는데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가운데 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목포부와 비슷한 것은 대구부인데... 대구부 마크 가운데에 원인지 점인지 있어서 비슷한 것은 맞습니다만 변형된 부분이 조금 다릅니다. 어찌보면 목포부와 비슷하고 어찌보면 대구부와 비슷한 맨홀입니다. 도대체 어느 도시의 맨홀일까요? 좀 더 확대 해본 것으로 위에 부분은 대(大)를 응용한 것 같기도 합니다. 가운데 점인지 원인지 있는 부분을 봐서는 대구부 마크이기도 한데... 대구부 마크는 아래와 같은데 위에 것은 대구의 대(大)를 응용한 것이고요. 아래는 구(邱)를 응용한 것입니다. 그런데...위에 있는 마크는 구(邱)를 응용한 것 같지 않습니다. 목포부 마크로 목포부 마크는 위에 나오는 것은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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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양읍성_01 존심당과 고흥아문

광여도에서 본 흥양읍성의 모습입니다. 성문은 두개로 되어져 있으며 서문과 남문만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서문옆에 동헌이 자리잡고 있으며 남문을 지나 위로 올라오면 보이는 것이 객사이며 향교의 경우 서문을 지나서 가야 있습니다. 또 서문앞에 고읍면이라는 것이 자리잡고 있는 것을 봐서 예전에 고읍면에 읍치가 있다가 다시 옮겨 갔다는 것을 알 수있습니다. 고읍면을 지나면 원문이 있는데 원문에 관해서는 다음에 글 올리겠습니다. / 이미지 출처 :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해동지도에서 본 흥양읍성의 모습으로 광여도와 마찬가지로 성문은 남문과 서문만 자리잡고 있으며 서문옆에 동헌 그리고 그옆에 객사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광여도와 달리 여장이 표시되어져 있으며 원문이 자리잡고 있는 곳의 경우 상당히 땅의 폭이 좁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이미지 출처 :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여지도에서 본 흥양읍성으로 위 고지도와 마찬가지로 읍성은 둥글게 형성되어져 있으며 성문은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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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새재 주흘관 해태

경북 문경에 있는 문경새재 주흘관 앞에 놓여져 있는 다리가 있는데 관문교(闗門橋)입니다. 관문교는 문경새재 1관문 앞에 있는데 이게 언제 만들어진 다리일까요? TV사극에 가끔 등장하는 장면이 있는데 과연 맞는 고증일까요? 관문교 에는 총 4마리의 해태가 놓여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남북방향으로 각 2마리의 해태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보통 해태라면 광화문 앞에 서 있는 해태를 떠올립니다. 해태는 관악산의 화기를 막기 위해 세운 것이라고들 알려져 있습니다. 풍수지리상 경복궁의 조산(朝山)에 해당하는 관악산이 화기 넘치는 화산인 까닭에 경복궁에 화재가 자주 일어난다면서, 관악산의 화기를 누르기 위해 설치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관문교(闗門橋)라고 적혀 있습니다.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해태가 남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광화문 앞에 있다고 하는 해태상과는 조금 다른 느낌을 줍니다. 해태로 봐야할지 아니면 어떤 동물일까요? 해태라면 주흘관을 비롯한 문경새재로 부터 화기를 막기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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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의 막걸리 양조장 투어를 시작하면서

술이라는 것이 유행이 있고, 그 유행을 주도하는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2010년 이전에 한 번 막걸리 열풍이 불어서 많은 이들이 막걸리를 찾았고, 우리의 술에 대한 자부심으로 먹기도 하였습니다. 또 코로나 19 때 집에서 혼술을 하면서 막걸리 소비가 늘기도 했습니다만 다양한 소주의 출시와 위스키를 하이볼로 먹는 문화 등으로 막걸리 소비는 예전만 못합니다. 또 막걸리는 나이 드신 분들이 먹는 술이라는 인식이 강하기도 합니다. 또한 국순당, 지평막걸리, 장수막걸리 등 전국적인 인지도와 전국적인 유통망이 깔린 업체가 들어오면서 안그래도 좁은 시장에 대형업체들이 시장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또한 경남 지역에 있는 양조장들중에 시골에 있는 양조장에는 나이가 많이 드신 어르신들이 아직도 술을 빚고 있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과연 그 양조장이 유지가 될까? 하는 마음과 지역에서 생산되는 막걸리의 정보를 소개하기 위해 2024년 막걸리 양조장 투어를 시작합니다. 물론 말걸리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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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충의사 북관대첩비

진주시 이반성면에 있는 충의사를 갔다가 북관대첩비를 보았습니다. 북관대첩비는 지난 2005년 11월 20일 북관대첩비가 일본에서 한국에 도착합니다. 이에 대한 내용은 안내판에 있으니 안내판 설명란을 참고하시면 됩니다. 한국에 온 북관대첩비는 2006년 3월 1일 북한으로 인도되었습니다. 북관대첩비 복제비는 의정부시 정문부 장군 묘역, 경복궁내 국립고궁박물관, 독립기념관 그리고 진주 이반성면 충의사에 전시되어져 있습니다. 필자는 북관대첩비 복제비를 보려고 경복궁을 가야하나 의정부로 가야하나 고민하였습니다. 충의사에 북관대첩비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가서 보고 놀랬습니다. 현재 북관대첩비 복제비는 충의사 마당에 전시되고 있습니다. 앞면이고 북관대첩비 뒷면입니다. 밑에서 나오는 북관대첩비 한글판을 읽어보면 북관대첩에 관하여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상부 이수부에는 용 두마리가 여의주를 물고 있네요. 중간에 한문으로 빼곡하게 작성되어져 있습니다. 북관대첩비 안내판에는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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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도 특이한 통영 포트극장

통영 항남동은 조선시대 강구안에 있었던 병선들 사이에 있었고, 일제강점기부터 통영의 중심지로 성장하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해방 이후에도 통영의 중심지인 항남동을 중심으로 금융, 패션, 음식 등이 발전하였습니다. 1990년 이후 통영시청의 이전, 무전동의 개발, 광도면의 개발로 인해 도심지의 상권은 쇠퇴하였습니다. 그 사이 인구가 늘어난 것이 아니니 더 그럴 것입니다. 무전동의 개발로 인해 무전동에 멀티플랙스 극장이 들어서니 구 도심에 있던 극장이 설자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포트극장보다 앞서 통영을 대표할 수 있는 봉래좌, 통영극장, 충무극장이 사라지고 포트극장이 들어섰습니다. 1982년 통영극장 소유주가 기존 극장건물에서 위치를 옮겨 엣 통영제일병원 3층에 포트극장을 지었으며 항남동에 있었던 극장이었지만 통영시의 상권의 변화 그리고 멀티플랙스가 통영까지 들어오면서 포트극장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이름만 남겨져 있습니다. 언제 폐업하였는지 내부의 모습이나 좌석 수 등은 알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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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백년 된 장공장 굴뚝

1919년에 지어진 장공장으로 통영시 서호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원래 도시계획 도로 예정부지에 있었는데 주민들과 시민단체, 통영 시의원 등의 적극적인 보존 움직임을 보여 현재 보존되고 있습니다. 1919년에 지어진 건물로서 현재까지 원형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부분이 많아 보존가치가 높다는 것이며, 일본인 다무라 간무가 간장공장을 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었다고 합니다. 일본인이 조선으로 이주해오면서 지은 일본식 장공장으로 통영의 근대사를 알 수 있는 건물입니다. 특히 굴뚝은 적벽돌로 만들었는데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현재도 잘 유지되고 있습니다. 굴뚝은 1920년대 조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부도 적벽돌로 단단하게 만들어 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장공장 건물은 일본식 기와를 올려 놓았습니다. 일부는 변형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조선식 기와와 달리 왜식 기와를 올려 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골목에 있는 장공장은 필자가 찾아갔을때는 문이 닫혀져 있더군요. 장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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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영양조장에서 본 굴뚝

강진군 병영면 마을어귀에 들어서면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는데 바로 굴뚝입니다. 도심지와 달리 시골지역이라 더욱 더 눈에 잘 들어옵니다. 전남 강진군 병영면에 있는 병영양조장은 지난 1946년 양조장을 설립하였습니다. 현재 병영양조장에서는 소주와 막걸리를 만들고 있는데 굴뚝이 있는 곳은 증류식 소주를 만들고 있다고 합니다. 오래된 장 공장이나 양조장에 저런 굴뚝이 있다면 더욱 더 오래된 역사를 보여주는데 병영양조장도 그중에 하나인 것 같습니다. 어제 소개한 통영의 장공장은 일본인이 세웠으며 1920년대 굴뚝이라고 하였는데 1960년대에 세운 굴뚝과 같습니다. 적벽돌로 만든 굴뚝은 병영양조장을 상징하는 아이콘입니다. 굴뚝에 병영양조장이라고 적혀져 있으니 멀리서도 잘 보입니다. 광고효과가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굴뚝인 것 같습니다. 굴뚝은 사각형으로 된 굴뚝으로 원형으로 된 굴뚝과는 차별성이 있으며 적벽돌로 쌓았던 것이 시멘트로 쌓은 굴뚝과는 확실하게 차별성을 보여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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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시 곤명면 경전선 정곡터널

사천시 곤명면 정곡리에 있는 정곡터널입니다. 이 터널은 지난 1999년 만들어졌다가 2016년 경전선 복선화가 되면서 사용하지 않은 터널입니다. 터널이 만들어지고 나서 17년도 되지 않아서 페터널이 되었는데요. 송림리에 있는 정곡터널입구와 정곡리입구가 있는데 필자는 이번에 송림리에 있는 터널입구를 갔다왔습니다. 현재는 폐터널이 되면서 들어가는 입구가 다 막혀있더군요. 다음번에는 정곡리에 있는 터널입구를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정곡터널은 남강댐 공사 때문에 구.완사역 지역 자체가 수몰되면서 현재의 장소로 완사역을 옮기게 됩니다. 완사역을 옮기면서 기존의 선로가 일부 조정이 되게 되는데 그때 정곡터널을 뚫게 되었습니다. 터널입구를 보면 1999년에 만들어서 그런지 기존 1905년, 1925년, 1968년떄 만들었던 터널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여줍니다. 기존 터널들은 터널입구가 90도 경사로 만들었다면 정곡터널은 완만한 경사를 보여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터널에서 나와 이어지는 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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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흥양읍성과 발포진성 답사

원래 계획하고 전남 고흥을 간것이 아니며 자료도 보지 않고 찾아 간 것이 흥양읍성과 발포진성이었습니다. 그래도 아마추어이지만 몇년동안 해오다 보니 필자가 생각했던 곳을 가보니 읍성의 체성이며 체성의 흔적들이 보이더군요. 아무래도 초기에 비하연 실력이 는것 같습니다. 답사하는 날 비가 많이 와서 오랜시간 머물수 없었고 중요하고 특징적인 건물만 보고 왔습니다. 준비없이 간 답사이지만 흥미로운 것을 많이 본 답사입니다. 답사한 내용은 다음에 자세하게 올리도록 하고 이번편에는 간단하게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고흥반도의 경우 저번에도 이야기한 것처럼 섬아닌 섬인 반도이며 고흥의 입구인 남양면만 막아버리면 고흥으로 진출입이 곤란합니다. 고흥군의 옛지명인 흥양현의 경우 아래 1872년 고지도에 나오는 것처럼 읍성이 형성되어져 있으며 성문이 3개인데 북,남,서문입니다. 북문과 동문에서 흘러내려온 하천의 물이 남문옆으로 흘러가는 것을 고지도에서 알 수 있습니다. 객사를 중심으로 길이 두개가 나있었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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