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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경사직단은 사직산 정상부에 있네

김제시는 1914년 김제군, 만경군, 금구군이 김제군으로 통합하였다가 지난 1989년 김제시가 되었습니다. 김제시는 김제군, 만경군, 금구군 이렇게 3개의 군이 합쳐져 만들다 보니 조선시대 3개의 군현에 있던 관아 시설들이 있습니다. 그중 만경군의 읍치가 있었던 만경읍의 경우 만경읍성과 만경향교, 만경 능제저수지를 비롯하여 각종 관아 시설이 있었습니다. 그중 만경사직단은 만경읍성 서문 옆에 위치히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872년에 그려진 만경읍성을 보면 둥근형태의 읍성으로 표시되어져 있지만 현재 남겨진 만경읍성은 없습니다. 만경읍지에는 "읍성은 돌로 축조되었으며, 둘레는 2,820척, 높이 12척, 내부는 6개의 샘이 있고 성 동쪽으로 토성의 옛터가 있다"라고 적혀져 있습니다. 만경사직단은 만경읍성의 서문 옆에 낮은 야산에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이미지출처 :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만경사직단에 관하여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현재의 지도를 보니 사직산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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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당호로 사용한 성주읍성과 동헌

지난번에 성지문(星智門)의 문호는 과연 맞을까에 관하여 글을 발제하였습니다. 성주읍성 북문 성주문의 문호는 맞을까? 2020년 11월 복원한 성주읍성 북문을 지난 2023년 12월 다녀왔습니다. 그 사이 포스팅을 하지 않았는데 최... blog.naver.com 성지문(星智門)에 관하여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유교의 사단이 들어간 북문이라는 것이죠. 또 여기에 등장하는 성(星)은 성주를 나타내는 것으로 성주의 북문이라는 뜻이 성지문(星智門)같다는 의미로 사용한 것 같습니다. 보통 북문은 당시 왕정사회라 왕에 대한 충성의 맹세를 새긴다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때 이야기 하기를 "보통 공북문(拱北門), 공진문(拱辰門), 공신문(拱宸門), 망화문(望華問)을 많이 사용합니다. 현재 읍성의 북문들은 보통 위에 열거한 성문을 사용합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공(拱)은 두손 맞 잡을 공입니다. 즉 두 손 맞 잡아서 북쪽에 있는 임금을 공경한다가 공북문이고, 즉 두 손 맞 잡아서 임금을 공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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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진동면 선두마을 남근석은?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고현리 선두마을은 창원에서도 한참을 들어가야 하며 진동면에서도 제법 거리가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다행이라면 배를 타고 섬으로 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곳 선두마을은 조선시대 진해현의 선소가 있었던 곳으로 이곳에 수군의 전선이 있었던 곳입니다. 선두라는 지명에서 나오는 것처럼 선두(船頭)는 뱃머리입니다. 이곳 선두마을은 역사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임진왜란 당시 일본 왜선이 선두마을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조선수군이 쫓았으며 왜선이 여러 군데로 도망을 가다가 폭망하게 되는데 그게 2차 당항포해전입니다. 2차 당항포해전의 출발지가 선두마을이며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있는 곳에서 해전이 벌어졌으며 그 부분에 관하여는 이봉수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장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번 등장하는 것이 담정 김려(1766~1821)로 우해이어보를 집필하면서 선두마을을 많이 다녀왔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김려가 유배를 와서 생활한 곳과 가깝기 떄문에 선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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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구암동에 이렇게 많은 비보림이 있었다니

창원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이 되는 오리정(오리 음식점 아님 五里亭 5리에 놓아두는 정자)을 찾아보려고 지적도를 찾다가 감짝 놀랐습니다. 어 이건 이때까지 문화재연구원 등에서 나오던 자료가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재 창원의 지도로 검산(의창동 뒷산 조선시대 창원의 주산(主山)이었습니다. 보통 천주산으로 알고 있는데 천주산이 아니고 검산입니다)에서 이어져 우백호는 천주산으로 이어집니다. 좌청룡은 자연스럽게 정병산으로 이어지는데 비해 우백호는 천주산에서 팔용산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 다음지도 1914년 지적도를 유심히 보던중 현재 창원역 주변에 임야가 많은 것을 보았습니다. 이 지적도는 소계동, 반계동, 구암동 가운데 있는 곳이라 지적도를 4개를 모아야 볼 수 있어서 4개를 모으고 포토샵에서 정리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더군요. 대략적으로 표시해본 것입니다. 즉 디지털지도에서 거리를 측량한 것이라 틀릴 수 있습니다. 이미지출처 : 국가기록원 지적아카이브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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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읍성지를 찾아서_03

1910년대 지적원도를 구하여 의령읍성에 관하여 다시 올려봅니다. 아래 그림은 1872년 지방지에 있는 의령읍성의 모습으로 의령읍성의 경우 타원형으로 된 읍성으로 4대문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산을 이용한 평산성의 구조로 된 것임을 알 수 있고요. 아래 이미지 출처 :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현재 의령읍성의 성곽이 남아 있는 부분중 일부인 서측성곽입니다. 의령읍성에 남아있는 서측성곽으로 의령남씨 종친회 앞 도로가 (지적원도에 따르면) 서문이 되고 옹성이 지나가던 곳입니다. 저번에 서문을 추측했던 곳은 틀리더군요. 위 사진에서 조금 내려온 곳이니다. 도로가 직선이 아니고 옹성과 같이 둥글게 형성되어서 남문이 있었던 옹성이 아닌가라고 추측했는데 지적원도 기준을 하니까 남문이 맞더군요. 지적원로를 기준으로 의령읍성의 성곽추정도를 그린 것입니다. 직사각형으로 된 평산성으로 된 구조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군데 군데 치성이 있음을 표시하였고요. 동,서,남문의 경우 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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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읍성 성산관의 명칭 통일에 관하여

필자의 글에 관심을 가져주는 부산XX의 일터라는 블로거가 경북 성주의 경우 성주읍성과 함께 객사와 동헌이 있었는데 객사의 명칭이 백화헌이라고 사용되고 있다. 보통 객사의 경우 OO관으로 사용하는 것이 맞지 않느냐? 하는 질문과 함께 성주초등학교 앞 표석에는 성산관으로 적혀있다. 어느 것이 맞는 것이냐? 하는 내용을 성주군청에 문의를 하였다고 합니다. (원본 글을 보고 팬저가 축약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성주군 담당자는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객사의 명칭은 대개 옛 지명을 사용하여 붙인다. 고령이 가야관, 경주가 동경관이라고 하는 것과 같이 성주목의 경우 성산가야에서 유래하여 객사를 성산관이라 한것이다. 백화헌의 명칭은 고려시대 관아자리를 조선시대에 들어와 이건하면서 객사로 고려말기의 인물인 이조년의 엣 집을 활용하게 되면서 그의 아호를 붙인 택호 백화헌이 일부 사용된 것으로 비롯되었다. 성문이 4개가 있었으나 명칭은 알 수 없고 동문을 벽청문이라고 하였다.나머지 성문의 경우 서,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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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군 성산관은 동헌일까 객사일까?

성주군에 있는 성산관은 성주목의 객사의 익헌이 아닌가 하는 부분에 관한 발제글을 작성하였습니다. 성주읍성 성산관의 명칭 통일에 관하여 필자의 글에 관심을 가져주는 부산XX의 일터라는 블로거가 경북 성주의 경우 성주읍성과 함께 객사와 동... blog.naver.com 이렇게 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 성산관(星山館) 때문입니다. 고을에 있는 객사의 당호는 예전 지명을 가져오는 것이 대부분인데 성주의 옛이름이 성산이라 성산관을 사용하였으면 객사라고 생각을 하였던 것입니다. 또 나주의 금성관와 비슷하게 익헌 하나만 남아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성산관이 틀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두산백과사전에 자세한 사진들이 있어서 일단 링크 시켜보도록 하겠습니다. 성주 성산관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에 있는 조선시대 성주목(星州牧)의 관아 객사의 익헌(翼軒). 1980년 12월 30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www.doopedia.co.kr 그런데 성산관에 관련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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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읍성 동헌이 성산관이 된 이유는?

성주읍성내 있는 동헌인 성산관입니다. 동헌은 조선이 개국하면서 성주초등학교 자리에 있었는데 이게 한 번 이전을 하는데 현재의 군청 자리로 이전을 합니다. 이 시기가 1657년(효종 8년)이라고 하며 그러다 6,25전쟁때 소실이 되었으며 소실된 동헌을 다시 복원을 합니다. 1994년 현재 군청을 확장하면서 원래 있던 동헌은 군청 뒤로 옮겨가게 되었으며 현재 보이는 동헌은 군청에 있던 동헌이 옮겨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장소의 경우 성주초등학교 자리에서 지금의 군청자리고 다시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는 것입니다. 현재 동헌의 명칭은 현재 성산관(星山館)으로 되어져 있습니다. 여기서 나오는 성산은 성주(星州)의 산이라는 의미이니 성주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동헌은 보통 근민헌, 안민헌, 제민헌, 평근당, 청녕헌 등 백성을 위하겠다는 각오와 같은 것을 당호로 사용하는데 성주에는 성산관이라고 하는 객사에 어울릴 것 같은 당호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일단 동헌 당호에 사용하는 것들을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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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친화 도시 이전에 제대로된 산업이 우선이다

"고령화가 오히려 기회… 마산 '노인 친화 도시' 만들어야" 창원·진해지역보다 고령인구 많아‘노인 살기 좋은 도시’ 부각시켜사람 모이고 수요 늘면 활력 되찾아 “의료복지시설 등 실버산업 육성대형 ... www.knnews.co.kr 2023년 7월 13일 방문하였던 마산합포구 문화동 일대입니다. 주차장도 제대로 없는 곳이고, 대지도 좁은 곳이었습니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거나 내려가면 땀이 흠뻑 흘러내리는 곳이었습니다. 보이는 대문에는 고지서가 엄청 많이 꽂혀 있었고, 문은 잠겨져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주민들이 주거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더운 여름철인데 냄새는 진동하였고, 3집 건너 한 집이 비어있는 현실이었습니다. 주거 시설도 좋지 못한 곳에 요즘 청년들이 거주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그곳에는 노인들이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그것도 버스비를 자신의 돈으로 주고 내려 한참을 걸어서 올라가야 자신의 보금자리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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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비가 많이 있는 성주초등학교를 가보니

성주를 찾아가면서 찾아가 본 성주초등학교.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성주읍성의 객사가 있었던 곳이 초등학교가 되었습니다. 또 역시 성주초등학교도 100년의 넘는 학교의 역사를 자랑합니다. 성주초등학교에서 본 인상적인 장면은 본교사동 앞에 자리한 삼문입니다. 삼문은 백년관이라고 적혀져 있는 현판인데 개교 100주년 기념으로 만들었습니다. 또 인상 깊게 본 것은 기념식수입니다. 100주년 기념식수를 상당히 많이 심어 놓았더군요. 다른 것은 간장을 담아놓은 장독대와 교문 앞 횡단보도에 그려놓은 주의표시 그림입니다. 성주초등학교 본관동과 체육관은 새롭게 조성한 것인데 여기에 객사나 관아 건물지에 관한 조사를 하였는지 모르겠네요. 교육청에서 이러한 부분들은 좀 더 정밀하게 조사를 하여 객사의 흔적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성주초등학교 앞에는 아이들이 교통사고 예방을 위해 조심하라는 표시가 그려져 있습니다. 성주초등학교 교명패 성주초등학교 객사터임을 표시하여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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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남부민동 천마하늘길 경사형엘리베이터

부산에 있는 경사형 엘리베이터 두 번째로 부산시 서구 남부민동에 있는 천마하늘길 경사형엘리베이터입니다. 주출입문은 남부민시장입구에서 시작하여 동천주택까지 연결됩니다. 처음은 경사형 엘리베이터이고 두 번쨰는 흔하게 보는 수직형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해돋이길이 나옵니다. 이 경사형엘리베이터가 도입되기 전에는 주민들은 남부민초등학교와 부민아파트 사이 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와야헸는데 현재는 천마하늘길 경사형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하루에 몇 번을 올라가야 했는데 현재는 그 힘든 길을 올라가지 않아서 상당히 편하다고 주민들은 이야기합니다. 즉 엘리베이터가 생기기전에는 수백개의 계단을 올라가고 내려갔는데 엘리베이터가 생김으로 그 수고러움은 사라졌다고 합니다. 천마하늘길 경사형엘리베이터는 지난 2022년 5월에 개통을 하였다고 합니다. 천마하늘길이라고 검색하여 찾아가면 만날 수 있는데 산을 깍아서 만든 급한 경사의 엘리베이터는 경이감을 줍니다. 입구는 주차장을 하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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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시 광도면에서 가장 오래된 학교 벽방초등학교

통영시 광도면은 조선시대에는 고성현 광삼면이었습니다. 이게 고성현 춘원면으로 바뀌고 1900년 통영이 고성에서 분리독립하면서 진남군 광삼면과 도남면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이후 1914년 행정구역이 개편되는데 진남군은 통영군이 되었고, 광삼면과 도남면은 앞 머리 글자를 가져와 광도면이 되었습니다. 1914년에 이루어진 행정구역 개편은 현재 우리나라 행정구역의 근원이 됩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별로 좋지 못하지만 그렇게 오랫동안 사용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광도면이 되고 1922년 4월 15일 광도보통학교가 개교합니다. 1938년 광도제1공립심상소학교로 개칭되고, 1941년 광도제1공립국민학교로 개칭됩니다. 여기서 제1심상소학교와 제1국민학교가 나오는데 그러면 제2공립국민학교와 제2국민학교가 있느냐? 고 물어본다면 "예~ 있습니다."가 맞겠죠. 1938년 광도제1공립심상소학교로 나눌던 1938년 4월 광도면에 또 다른 학교가 개교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서 자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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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한 성주읍성 치성은?

성주읍성 북측체성에 놓여져 있는 치성을 보면 우리가 흔하게 보는 읍성이나 산성의 치성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각형의 형태를 뛰우고 성벽보다 더 돌출되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철(凸) 모양으로 나와 성벽을 공격하는 적을 막기위해 설치된 방어시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 읍성에서 이런 치성을 많이보다 보니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치성은 미섭과 여장까지 설치를 해 놓으니 더욱 더 멋있어 보이고 실제적인 방어시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 여장에는 총안까지 있고 여장과 여장 사이 타와 타구까지 있으니 더욱 더 실전적인 느낌을 줍니다. 성주읍성 북문 옆에 있는 치성은 보시는 것과 같이 90도로 꺽여져 돌출되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치성은 75~80도 경사로 된 것을 알 수 있으며 하부에 큰돌과 상부에 작은 돌로 쌓아놓았습니다. 상부에서 보면 여장이 설치되어져 있으며 상부도 ㄱ자 형태로 90도로 꺽여져 있습니다. 1913년 발행한 성주군 성주면 지적도를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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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세대를 위해 판단해야 될 것 같다

의령읍으로 들어가면 의령 입구에서부터 시작하여 삼성이병철대로가 있습니다. 공식적인 도로명은 의병대로이고 명예도로 형식으로 진행하고 있는 것이 삼성이병철대로입니다. 의령군은 지난 2023년 이병철 회장의 호암 정신과 삼성의 기업가정신을 계승하고 구현하는 의미로 생가 인근 도로에 '호암 이병철대로'와 '삼성 이건희대로'란 명예도로명을 부여했습니다. 1980년대 이병철 회장이 고향 의령에 반도체공장과 현재의 에버랜드를 만들려고 하였지만, 의령군민들의 반대로 인해 반도체공장과 에버랜드를 만들지 못하였습니다. 만약 그렇게 반도체공장과 에버랜드가 진행을 하였다면 적어도 의령은 작은 시(市)지만 10만 명 이상의 도시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아서 현재는 경남에서 가장 적은 인구를 가진 지역이 된 지 오래되었습니다. 이러다 보니 교통편도 불편한 곳입니다. 뒷 늦게 이병철대로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1920년대 초반 함안군 함안면으로 경전선을 건설할 때 당시 함안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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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에서 사라진 기업_03_마산성안백화점

현재 마산에 있는 신세계백화점 마산점 장소에 생긴 성안백화점은 지난 1987년 12월 18일 개업을 합니다. 백화점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오픈을 하는데 아무래도 크리스마스 시즌과 연말 연시가 시작되니 좋은 시즌이라고 생각하여 오픈하는 것 같습니다. 마산성안백화점이 있던 장소는 마산공업고등학교 자리가 있던 곳이었습니다. 마산공업고등학교 자리가 현재는 마산회원구 합성동 교육단지에 있지만 예전에는 현재의 신세계백화점 마산점 장소에 있었습니다. 그러다 1982년 3월 개학 전에 현재 합성동으로 마산공고가 이전을 하게 됩니다. 1982년 당시 마산시는 인구가 40만 명으로 백화점이 들어서기에 좋은 구조였고, 도시자체가 원도심에서 산호동방면으로 뻗어가고 있다는 판단으로 여러 백화점들이 들어서기 시작합니다. (가야백화점, 한성백화점, 로얄쇼핑, 신성백화점 등) 여기에 도심지 가운데로 성장할 것 같은 마산공고 자리는 백화점으로 만들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등장한 것이 가고파쇼핑센터이며 198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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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형옥은 어디일까?

함양군은 경남에서 내륙에 속해 있는 곳인데 읍성이 존재하는 곳입니다. 더군다나 고려시대에도 토성이 있었던 곳이 함양입니다. 이런 함양에 읍성의 흔적은 찾기가 너무 힘듭니다. 다만 함양읍성이 둥글게 형성되어졌는데 도로가 둥글게 형성되어 예전 함양읍성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함양읍성은 또 규모가 작다보니 읍성 안에 관아 시설이 다 들어가지 못하고 읍성 외부에 관아 시설이 들어간 곳도 있는데 그중 하나가 함양의 형옥입니다. 함양 형옥은 읍성의 남쪽인데 함양읍성 남문을 열고 나가면 보입니다. 함양 형옥에 관하여는 1915년 지적도에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함양읍성이 있었던 상동, 하동, 교산리인데 현재는 함양군 함양읍 운림리입니다. 함양읍성의 흔적을 보면 둥글게 형성되어져 있으며 군데 군데 대지가 보이는데 핑크색이 국유지 대지이며, 노랑색은 국유지 논, 녹색은 국유지 밭이고, 진한 녹색은 국유지 임야이며, 하늘색은 국유지 저수지와 하천입니다. / 이미지 출처 : 국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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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양 형옥터는 어디일까?

사천시 곤양면에 있는 곤양읍성은 조선시대 세종 12년(1430년) 12월에 최윤덕이 완공시킨 읍성입니다. 최윤덕에 관하여는 저번에 한 번 이야기를 하였죠. 축성대감이라고 말이죠. 최윤덕의 이야기는 아래에 링크 시켜 놓겠습니다. 최윤덕 동상 그리고 역사적인 인물 어느 도시를 가보면 항상 등장하는 것중 하나가 지역 출신의 역사적인 인물입니다. 서울에 세종대왕상과 이... blog.naver.com 곤양읍성은 종처럼 생긴 형태로 평산성의 구조를 보여주는데 곤양형옥은 사천읍성안에 있었던 것은 아니고 사천읍성 외부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사천읍성은 현재도 군데 군데 남겨져 있지만 일제강점기 당시에는 많이 남겨져 있었으며 일제강점기 당시 많은 분들이 알고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곤양읍성이 있는 곤양면을 가면 곤양 형옥에 관련된 이야기가 많으녀 그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옥곡길입니다. 1914년 지적도를 보면 곤양읍성의 흔적은 알 수 있습니다. 종모양으로 된 곤양읍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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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원사직단 발견을 보고

함안군 칠원읍에 있는 칠원사직단을 찾았다는 뉴스입니다. 일단 이 뉴스에 나오는 것을 보면 500년 칠원사직단 역사 재조명이라고 적어 놓았습니다. 사실 함안군에서 칠원사직단을 찾았다 그리고 그 내용을 공개하겠다고 하여 언론사를 불렀기 때문입니다. 필자는 칠원사직단을 찾아보려고 여러번 지적도를 누볐습니다만 찾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다 2021년 1월 함안군에 있는 함안사직단을 찾았다고 하는 권순강 우리문화재연구원 부장(현.여지 대표)의 연락을 받고 함안사직단을 방문하였습니다. 당시 함안사직단도 어디일까 싶어서 알아보았는데 정확하게 찾지 못하고 있을때입니다. 함안 사직단은 어디에 있을까? 여기에 나오는 글은 이글루스 블로그 <팬저의 국방여행 pazercho.egloos.com>에 2019년 07월 18일 작... blog.naver.com 직접 함안사직단을 방문해보니 위치에 대해서도 알겠고, 1950년대와 70년대 항공지도에서도 함안사직단의 흔적을 알겠더군요. 또 필자처럼 방구석에서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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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인월면에 있는 인월역과 역참공원

경남 함양군에서 전북 남원시로 넘어가면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이 바로 인월면입니다. 함양군 함양읍에서 넘어가는 시간과 남원시에서 넘어오는 시간을 보았을때 함양읍에서 넘어가는 시간이 가까울 정도로 함양과 가까운 곳입니다. 인월면안에 인월시장 부근에 역참공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말은 공원이지만 실제로는 공영주차장이라 봐야할 것입니다. 인월시장 주차장이라 하는 것보다 역참공원이라고 하니 여기가 인월역이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인월역은 고려 태조 23년(940년)에 생겼으며 1895년 역참의 기능이 다하면서 사라진 곳입니다. 인월역은 고려시대에는 남원도(南原道)의 소속 역(驛)이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오수도(獒樹道)의 소속 역으로 편제되었습니다.<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인월역에는 역노(驛奴_역의 남자 노비) 15명, 역비(驛婢_역의 여자 노비) 13명, 역마(驛馬) 4마리가 배속되어 있었으며 인월역에서 서쪽으로는 남원 응령역(應嶺驛), 동쪽으로는 함양 제한역(蹄閑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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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원사직단을 가보니

칠원사직단 발견을 보고 함안군 칠원읍에 있는 칠원사직단을 찾았다는 뉴스입니다. 일단 이 뉴스에 나오는 것을 보면 500년 칠원사... blog.naver.com 며칠 전 칠원사직단에 관해 이야기한적이 있었는데요. 토요일 현장을 직접 가보았습니다. 일단 칠원사직단에 이야기하면서 장소가 용산리 524번지라고 한 부분은 맞더군요. 저번 칠원사직단 이야기를 하면서 당시 민묘라고 하였는데 민묘도 보였지만 그곳에서 고분이 나왔더군요, 그러니까 고분을 발견하고 여기 또 있나 싶어서 찾다가 나온 것이 칠원사직단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뉴스에서도 나오더군요. "아라가야 고분군인 용산리 고분군을 조사하다 우연히 발견했습니다."라는 내용이 아마도 그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일단 필자가 현장을 찾아갔을 때에는 칠원사직단의 흔적은 볼 수 없고, 사직단이 있는 곳은 복토를 한 상태였습니다. 그냥 위치를 알았다는 것에 만족해야 할 것 같습니다. 칠원향교에서 걸어간다면 선선한 가을이 아니면 힘들겠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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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을 알게 해주는 함안 칠원 무기연당

함안군 칠원면에 있는 무기연당을 찾아보았습니다. 무기연당을 찾아가게 된 원인은 창원읍성 안에 있었던 사미당이라는 것 때문입니다. 사미당의 경우 창원읍성내에 만든 연못으로 그곳에 누각을 만들고 풍류를 즐겼던 곳으로 이와 비슷한 곳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것 저것을 알아본 후 함안군 칠원면에 있는 무기연당을 찾게 된 것입니다. 무기연당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솟을대문을 지나가는데 솟을대문의 경우 삼문으로 구성이 되어있으며 솟을대문을 지나자마자 무기연당이 있지는 않고 주씨고가가 있습니다. 주씨고가와 함께 있는 것이 무기연당인데 상시개방을 해놓았어 가족들과 함께 가셔도 될 것 같습니다. 주씨고가에서 무기연당을 가기위해서 지나가야 하는 협문으로 협문에는 한루문이라고 적혀있습니다. 한루문을 지나면 무기연당이 나오는데 무기연당의 경우 조선의 연못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임에 틀림이 없더군요. 자연과 잘 어울리게 만들어 놓았는데 인공적이지만 자연과 어울리는 것을 보니 요즘 만드는 인공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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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론을 통해본 정공단

1592년 임진왜란 최초 전투가 벌어진 곳이 바로 부산진성이었습니다. 현재의 부산진성과 달리 임진왜란 당시 부산진성은 일신기독병원과 현재 정공단이 있는 곳으로 알려졌는데 정확하게는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이 집들이 너무 많이 들어선 상태라 그렇습니다. 일단 일신기독병원 부근으로 추정을 하고 있습니다. 임진왜란 최초 전투가 벌어졌을때 부산진성을 지킨 많은 병사를 이끈 인물이 바로 정발 부산첨사입니다. 정공단은 부산첨사 정발과 그를 따라 순절한 군민들의 충절을 기리고 있는 제단입니다. 그러다보니 부산시에서는 부산시 기념물로 1972년에 지정하였습니다. 필자가 정공단을 두 번 찾아가보았는데 찾아간 날이 일요일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두 번 모두 정공단 문이 닫혀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드론으로 찍어 보았습니다. 정공단이라는 현판이 있는 외삼문으로 도로변에서 21계단을 올라오면 외삼문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정공단은 증산의 기슭으로 외삼문보다 내삼문이 높고 내삼문 보다 정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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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이 넘은 함양 수동초등학교

경남 함양군 수동면에 있는 수동초등학교는 지난 1920년 4월 10일 수동공립보통학교 개교합니다. 1개면에 1개 학교가 생기는 시기인 1920년대 그래도 상당히 빠른 1920년에 학교가 들어서는데 이는 화산리(花山里)에 있었던 사근도찰방(沙斤道察訪)때문입니다. 사근도에는 함양, 산청, 단성, 진주, 하동, 남해, 삼가 등을 연결하는 역로였으며, 진주의 유린, 안간, 정수, 소남, 안음의 임수, 함양의 제한, 산청의 정곡, 단성의 신안, 벽계, 의령의 신흥, 하동의 횡포, 마전, 율원, 평사 등 14개 역이 속해 있었으며 제법 많은 주민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사근산성과 각종 서원들이 있었던 곳입니다. 그러다 보니 빨리 학교가 개교를 하게 됩니다. 보통 학교들의 개교는 4월달에 하는데 현재 대한민국이 3월에 개교하는 것과 달리 일본은 4월에 개교를 하다보니 그 시기에 개교를 하게 됩니다. 지난 2020년 개교 100주년을 맞이하여 100주년 기념석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수동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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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읍성 북문 성주문의 문호는 맞을까?

2020년 11월 복원한 성주읍성 북문을 지난 2023년 12월 다녀왔습니다. 그 사이 포스팅을 하지 않았는데 최근 많은 비로 인해 성주읍성 북문 옆 구간이 무너졌다고 하네요. 사진에서 우측편에 있는 일부구간이 무너졌다고 합니다. 완공한지 아직 4년이 되지 않았는데 비로 인해 무너져 내리다 보니 이런 저런 이야기가 들리고 있네요. 오늘은 북문에 관하여 먼저 이야기하겠습니다. 성주읍성은 4대문이 있는 곳입니다. 보통 읍성에서 4대문이 있다는 것은 제법 큰 규모의 읍성이고, 3대문은 평균적인 규모, 2대문은 작은 규모라 봐야 할 것입니다. 물론 읍성 규모는 큰데 3대문이 있거나 읍성규모는 작음에도 4대문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주읍성의 동, 서, 남문은 도심지 안이라 복원을 하기 힘든 부분이니 상대적으로 도심지가 적은 북문을 복원하였습니다. 북문은 현재 주민들이 산책을 하거나 이동을하는 용도로 사용중에 있습니다. 최근에 복원을 하다보니 기계적인 냄새가 많이 나는 것 같습니다.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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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경남에 있는 언론사 보도를 보고

최근 경남에 있는 언론사들이 이야기하는 내용들입니다. 보시고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사학재단에 종사한 교직원들에게는 안타까운 것이 사실입니다. 오랫동안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으니 여러모로 힘든 부분일 것입니다. 하루라도 빨리 한국국제대학교 건물이 매각되어 밀린 임금을 받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국제대학교 건물을 지방정부에서 매입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냐? 하는 것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에 인구가 부족한 상태이며 앞으로 수 많은 대학들이 사라질 것인데 그럴때마다 각 지방정부에서 대학을 매입해야 하는 것인지요? 사학재단 친인척비리로 시작한 대학을 왜 국민의 세금으로 대학 건물을 매입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고령화가 오히려 기회… 마산 '노인 친화 도시' 만들어야" 창원·진해지역보다 고령인구 많아‘노인 살기 좋은 도시’ 부각시켜사람 모이고 수요 늘면 활력 되찾아 “의료복지시설 등 실버산업 육성대형 ... www.knnews.co.kr 2024년 8월 1일자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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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남도청 건물 장식

현재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 건물은 일제강점기인 1925년 만든 경남도청 건물입니다. 1963년 1월 1일 부산시가 경남도청과 분리가 되었지만 1983년까지 경남도청으로 사용하였습니다. 구.경남도청 건물은 일제강점기 만들어진 적벽돌 건물입니다. 사진을 보면 2층인데 3층에도 공간이 있습니다. 중앙건물 꼭대기는 동판(?)으로 된 지붕이 자리하고 있으며 중앙에서 보면 좌우대칭 건물입니다.. 꼭대기는 적벽돌이 아닌 석조로 되어져 있으며 창문은 오르내림 창으로 되어져 있습니다. 2층에는 아치형태의 문틀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가운데 3개, 좌우 1개의 아치창문이 보입니다. 좌우 건물 창문은 평아치로 되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운데 문양 같은 것으로 꾸며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크룹하여 보니 벌과 같은 것이 적벽돌로 장식하여 만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필자 눈에는 벌로 보여집니다. 건물 좌우 끝에는 창문은 평아치로 되어져 있고 상단 꼭대기에 장식으로 되어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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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관페리와 만주 봉천 기차

부산근현대역사관에서 본 것으로 부산이 근대화가 되면서 부산과 시모노세끼와 연결하는 부관훼리와 연결되는데 1905년입니다. 부관페리가 연결된 것이 1905년인데 1905년은 경부선철도가 연결이 된 해이기도 합니다. 1905년 1월 1일 경부선이 개통되고 일본과 부산을 연결하는 부관페리가 연결이 되었으니 일본에서 부산으로 넘어와 서울로 향하게 되는 길이 뚤려버렸습니다. 경부선으로 인해 서울까지 뚤려버린 노선에 경의선 노선을 만들게 되는데 1905년 11월 5일 개통하고 완전한 개통은 1906년 4월 3일인데 이는 청천강·대동강 철교가 준공되었기 떄문입니다. 이렇게 경부선에 이어 경의선까지 뚤려버리니 일본의 만주로 진출이 용이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연결된 노선에 만주로 연결하는데 남만주철도입니다. 그렇게 연결된 노선은 부산 - 봉천(현재의 선양), 신경(창춘, 당시 만주국의 수도)까지 운행하는 직통 노선도 있게 되는데 아래에 나오는 사진에 등장하는 기차행선지판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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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의회 마크 차별화가 필요하다

경남도의회건물 1층을 가면 경남도의회 발달사를 볼 수 있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박물관 정도의 크기는 아니고 그냥 작은 전시관 정도로 꾸며 놓았습니다. 역대 경남도의회를 정리하여 놓았는데 예전 경남도의회 마크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제일 처음 보는 것이 도의회를 나타내는 도의(道議)와 무궁화를 표시한 것입니다. 여기는 초대부터 3대라고 표시되어져 있는데 1952년 ~1961년까지입니다. 초대는 1952년부터 1958년까지이고, 2대는 1956~1960년까지이고, 3대는 1960~1961년까지입니다. 보시면 1952년부터 1956년까지 4년간 해야 하는데 1958년까지로 표시된 것은 지금과 같이 한꺼번에 투표가 실시된 것이 아니고 지역에 따라 투표를 하였기 떄문입니다. 이는 6.25 전쟁기간이었고, 지리산을 중심으로 한 빨치산의 활동으로 인해 지역에 따라 늦게 투표를 함으로 임기가 1958냔까지 표시된 것이고 대부분은 1952년부터 1956년까지였습니다. 그리고 3대는 1960년부터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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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상주 남장사 석장승 복제품

경북 상주시에 있는 상주박물관에서 본 남장사 석장승입니다. 경북 상주시 남장동에 있는 남장사에 있는 석장승입니다. 잘 아는 것처럼 장승은 마을입구나 사찰 입구 등에 세워지는 것으로 잡귀와 액운의 출입을 막는 것이며 마을에서는 수호신의 역할이고 절에서는 사찰내의 재산과 경계를 표시하는 역할입니다. 남장사에 있는 석장승은 조선 순조 32년(1832)에 세운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다른 절과 달리 남자아사에는 사천왕이 없다고 합니다. 남장사를 지키기 위한 수호신으로 세워진 것 같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남장사 석장승은 1구인데 보통 남여의 장승이 있는 것에 비해 1구만 있는 것이 특이한 것 같습니다. 남장사 석장승은 보는 것과 같이 눈과 코가 아주 크며 남자인 것 같기도 하고, 여자 인것 같기도 합니다. 다만 상주박물관에 있는 것은 정품은 아니고 복사품입니다. 복사품은 정품과 달리 형태가 비슷하지만 조금 다릅니다. 전체적으로 입술이 삐둘어져 있고 눈과 코가 큰 형태는 비슷합니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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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의 도시는 어디?

지난 2016년 12월 부터 시작한 <울산의 성곽>이 울산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전시되었습니다. 울산의 성곽은 울산에 있는 성곽에 관하여 전시하였습니다. 경상좌도병영성, 개운포진성, 언양읍성, 남목마성, 울산왜성, 서생포왜성에 관하여 전시하였습니다. 그동안 성곽도시를 표방한 곳은 많았습니다. 한양도성을 끼고 있는 서울도 그랬고, 대구도 이야기하였으며 경남 고성은 한자에 나오는 고성(固城)을 토대로 성곽도시를 이야기하였지만 전시회를 통해 언론을 통해서 먼저 이야기한 곳은 울산이 아닌가 합니다. 울산은 울산시내에 있는 언양읍성과 경상좌도병영성만 이야기해도 충분히 이야기가 나오는데다 잘남겨져 있는 서생포왜성 그리고 울산왜성의 왜성까지 있으니 더욱 더 힘을 주게 되었던거죠. 여기에 수군진성인 개운포성 그리고 목장성까지 있으니 다양한 성곽을 보유한 도시라는 의미로 성곽도시를 표방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다보니 울산의 성곽 전시회를 통해 도시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 것 같습니다. 필자도 직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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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오리정(五里亭)은 어디에 있을까?

필자가 읍치의 공간에 관하여 상당히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3단 1교 또는 3단 1묘로 이야기되는 사직단, 여제단, 성황단 그리고 향교는 읍치의 외곽공간을 책임지고 있으며, 읍치의 내부공간은 동헌, 객사, 질청, 작청, 형옥 등의 공간이 될 것입니다. 3단 1교 또는 3단 1묘에 들어가지 않는 외부공간이 활터, 신당, 5리정인데요. 경남의 읍치중에 현재 5리정에 관하여 남아 있는 곳은 함양군 안의면에 있는 안의 5리정이며, 합천 초계 오리정은 전반적인 위치는 나왔습니다. 그리고 창녕군 5리정은 5리정 사거리가 존재하고 있으며, 5리정의 지적도는 확인하였습니다. 그리고 최근 거제의 5리정은 지번은 확인하지 못하고 마을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러면 오리정은 무엇을 이야기할까요? 오리정은 조선조 때 관아가 있던 곳에서 감영이 있는 곳으로 오리 정도의 거리가 떨어진 곳에 세운 정자(亭子)를 가리킵니다. 오리정은 각 읍치에 있었으며 현재 남원의 오리정을 복원하여 놓았습니다. 순천에도 오리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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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범일동 육교는 기차레일 육교가 아니네

부산은 철도가 오래전부터 생겼고 시내 기찻길이 많다보니 단절된 마을과 마을, 도로를 연결해주는 육교가 많습니다. 필자는 부산에 있는 기차 레일로 만든 육교를 찾아갔었습니다. 그래서 매축지마을과 좌천역을 연결하는 육교, 주례역 육교를 갔었습니다. 그러다 영화 <친구>에 나온 <범일동 육교>도 기차 레일로 만든 육교 같더군요. 이 부분을 정확히 찍은 분들은 없고, 주로 영화 <친구>에 관한 이야기만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직접 현장을 가보았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범일동에 있는 육교는 기차레일로 만든 육교가 아니고 진짜 H빔으로 만든 육교였습니다. 영화가 히트해서 그런지 육교에 영화 내용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범일동에서 범일역을 가기 위해 사용하는 범일동 육교는 당장 없어지지는 않을 것 같더군요. 이런 분위기는 부산에 있는 육교에서 많이 봅니다. 아무래도 고압선 전지가 있다보니 안전하게 하기 위해 철망으로 다 막아 놓습니다. 저 하천은 동천으로 가 부산 앞바다로 갑니다. 드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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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 열린 창원 100년 사진전을 보고

2022년 1월 6일부터 '창원 100년 사진전- 찬란한 희망의 하모니’사진전이 창원성산아트홀에서 열렸습니다. 이 전시회는 창원 성산아트홀을 거쳐 창원시립마산박물관까지 옮겨서 전시를 하였습니다. 창원과 마산을 거쳐서 진행된 사진전은 마산박물관에서 2022년 7월 10일까지 진행이 되었습니다. 창원과 마산, 진해 세 도시의 발전과 역사부터 통합 후 창원지역의 변천사를 만나볼 수 있다고 하여 필자도 방문한 기억이 있습니다. 준비는 창원문화재단에서 진행하였으며 창원문화재단은 여러 기관과 사람들에게 자료 협조를 통해 250여점의 사진과 자료들을 평면 사진, 미디어를 준비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뭐 눈에는 뭐 만 보인다고 하더니 필자 눈에는... 3개 도시의 이야기중 마산이야기를 읽어보다고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니 준비를 많이 하였다고 하면서 이런 것까지 맞지 않는 것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일단 내용을 살펴보면 마산이야기 1968년 인구 17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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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군 도로원표는 특이하네요

함양군 동문사거리에 도로원표가 있는데 보통 도로원표와는 다릅니다. 함양군 동문사거리는 함양군청과 시외버스터미널을 이어주는 고운로와 함양중학교로 가는 함양로 두곳이 마주치는 교차로로 함양군에서 가장 복잡한 곳이 동문사거립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함양군 도로원표는 함양군청에 있는 것이 아니고 동문사거리에 도로원표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사거리 교차로 중에 배스킨라빈스 매장 옆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동문사거리에 있지만 워낙 낮게 자리하고 있어서 잘 찾지를 못합니다. NH농협은행 함양군지부 대각선 방향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도로원표는 다른 곳의 도로원표와 달리 바닥만 있더군요.2023년 12월 로르뷰에서 보면 도로원표는 다른 곳의 도로원표와 같이 사각뿔 모양의 도로원표가 있었는데 필자가 방문한 2024년 7월 20일에는 사각뿔모양의 도로원표는 보이지 않고 아래 사진에 나오는 것과 같이 바닥만 있습니다. 사각뿔을 철거했다가 다시 설치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으나 바닥만 있는 것을 보니 특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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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의향교 하마비에 구멍의 용도는?

함양군은 조선시대 함양과 안의가 있었던 곳이며 1914년 함양군과 안의현이 합쳐 함양군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함양군 안에는 함양향교와 안의향교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안의향교 입구에는 어느 향교에 가면 볼 수 있는 하마비가 있습니다. 하마비를 자세히 보면 성혈과 흡사한 원형 구멍이 여러개가 있습니다. 이런 구멍이 뚤려있는 비석들은 전국에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경남에서도 많이 보았고요. 이런 구멍은 성혈과는 무관하며 기자(祈子)신앙과 관계가 있을 것 같습니다. 비석에 있는 돌을 갈아 마시면 아이를 낳는다는 속설 때문에 구멍을 낸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은 아이를 낳지 않을려고 하는 여러가지 환경과 비교하면 아픔이 있는 비석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구멍을 뚫어 놓은 비석들이 많은데 한 번 가시면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성혈과 같은 것은 당시 아이를 낳겠다는 의지의 산물로 봐야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안의향교하마비 경상남도 함양군 교동길 51 이 블로그의 체크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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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ㄱㄱㅇ 창원 학교의 재발견을 보고 1편

창원도서관 갤러리 ‘창’에서 ‘ㅎㄱㄱㅇ-창원 학교의 재발견’이 열렸습니다. 이번 창원 교육 100년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요. 오는 8월 8일까지 열린다고 합니다. 이번 전시회를 위해 창원 지역 학교 기록물 수집 전담팀(TF)을 구성해 관내 학교 기록물을 집중적으로 수집하고, 구술 채록 사업을 진행했다고 하더군요. 일단 다음번에 다시 한번 이 부분에 관하여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전시회 중 “학교 문을 열다”에 독립신문에 있는 소학교령에 대한 논설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잘 아는 것처럼 독립신문은 1896년 창간한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이며 이 부분에 관하여도 상당 부분 이야기되어야 하지만 일단 패스합니다. 1895년 2월 2일, 고종은 교육입국조서(敎育立國詔書)를 발표합니다. 이는 2차 갑오개혁의 영향을 받아 발표된 교육에 관한 조칙으로 전 국민을 대상으로 새로운 교육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강조한 최초의 조서이며 이를 토대로 우리가 아는 근대화 학교가 시작됩니다. 1895년 각 관찰부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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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서측을 지켰던 평산진성_01

1872년 지방지에서 본 평산진입니다. 성문은 2개로 남문과 북문이 위치하고 있으며 동측에 선소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평산진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면 경상도 남해읍지에 “현의 남쪽25리 지점에 있다. 석축둘레 1,558자. 높이 11자이다. 만호는 무관으로 종4품이고 군관2인, 진리15인, 지인 12인, 사령 15명이고 전선 1척, 병선 1척, 사후선 2척, 능노군 145명, 사부 28명, 화포수 10명, 포수 34명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남해에서는 미조진과 함께 중요한 수군 기지입니다. 현재 있는 위치는 신라시대 평산현의 위치라고 하며 세종13년(1431)에 평산만호가 평산영전(營田)을 수호, 세조12년(1466)에 웅천첨사 휘하 평산포만호, 성종12년(1481)에 평산진성은 석성으로 1,558자를 축성하였다고 합니다. 객사와 아사의 모습이 보이고 진성 외부에 민가들이 많이 보입니다. 그림지도는 남북으로 그려 놓았지만 실제로 위 아래가 바뀐 상태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 이미지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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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경남도청 건물 굴뚝은 언제 낮아졌을까?

1928년 경남도청 건물입니다. 당시 경남도청 건물은 남북으로 자리를 앉은것이 아니고 동서로 자리하였습니다. 2층 지붕 위에 보시면 굴뚝이 있는데 하나는 작은 굴뚝이고, 다른 하나는 큰 굴뚝입니다. 작은 굴뚝은 남쪽에 자리하고 큰 굴뚝은 북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을 잘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 이미지출처: 공유마당 한국저작권위원회 일제강점기 당시 사진으로 북쪽 굴뚝은 카메라 앵글에 다 잡혀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남쪽 굴뚝은 이 화면에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 이미지출처: 공유마당 한국저작권위원회 1924년 개청 당시 사진으로 북쪽 굴뚝은 아주 높게 형성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남쪽과 달리 북쪽이라는 특성 때문에 굴뚝을 높게하였는지는 알 수 없어도, 지금의 굴뚝과 비교할 수 있는 좋은 모습입니다. / 이미지출처: 공유마당 한국저작권위원회 현재 동아대학교 부민캠퍼스 석당박물관으로 활용하고 입습니다. 남쪽 굴뚝은 그대로 있는 것이 보입니다. 북쪽 굴뚝은 어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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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엔진 어디가 좋을까?

지난 2023년 6월 이글루스 블로그가 철수를 하면서 네이버로 터를 옮겼습니다. 이글루스 블로그에 있는 글을 다시 네이버 블로그에 글을 올리면서 시작한지 딱 1년이 되었습니다. 2023년 7월 6일 글을 올렸고 이글루스 블로그의 글과 이후 작성한 글을 올렸습니다. 필자가 작성한 글은 대중적이지 못하고 글 솜씨도 없다 보니 조회 수도 많지 않습니다. 그래도 나름 만족하면서 글을 올렸는데 네이버 검색이 너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네이버 검색은 인플런서 글을 올려주고, 이후 조회수가 많은 글을 올려준다고 하더군요. 필자는 인플런서도 아니고 조회수도 많지 않으니 검색할 경우 최하단에 묻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검색엔진이라면 검색은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검색은 되고 맨 하단에 배치되거나 몇 개를 넘겼어라도 검색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니다. 이건 그래도 기본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필자가 올리는 글 중에는 1년에 10명도 검색하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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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의회 정당 공천제 폐지가 답이다

지방의회 후반기 의장단 선거가 완료되었지만 여러 안 좋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일단 여러 사례를 보면 첫 번째 더불어민주당 경남도당은 경남도의회 후반기 의장단 후보 선거 과정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금품이 살포됐다는 의혹과 관련해 경찰에 뇌물 공여 혐의로 고발한 건인데 이 내용은 경남도의회 후반기 원 구성과 관련해 의장단 선거를 앞두고 돼지고기 선물세트 살포, 장어 선물 택배 살포를 한 의혹이 제기 되어 더불어민주당 경남도당에서 고발한 것입니다. 두 번째는 경남 도내 있는 각 시·군의회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내용입니다. 비밀투표 원칙으로 해야 하는데 공개를 한다거나 의장 선거를 위해 호적을 정리하거나, 각 시군의회에서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힘 싸움 등은 보기에도 좋지 못합니다. 이게 경남만 그런 것은 아니고 전국이 다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시민의 발이 되겠다. 시민의 심부름꾼, 머슴 등 온갖 미사여구를 사용하면서 낮은 자세로 일하겠다고 하고서는 자신의 영리 영달을 위해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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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무로 뒤 덮힌 부산 영도

2023년 7월 4일 부산 영도를 보니 해무가 다극 뒤 덮고 있더군요. 부산 남항대교에서 영도 봉래산으로 몰려오는 모습입니다. 시간은 제법 오래 진행되었으며 도심지 안에서 본 해무가 나름 좋은 느낌을 주더군요. 그래서 타임랩스를 찍어 본 것입니다. 처음 2006년 엠파스블로그로 시작하였지만 엠파스가 문을 닫고 터를 잡은 곳이 이글루스였습니다. 이글루스 블로거들과 친분도 그렇고 필자가 많이 배우게 된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2023년 이글루스가 문을 닫으면서 네이버로 넘어왔습니다. 네이버 블로그에 몇 개 글을 올리기는 하였지만 본격적으로 시작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100개 이상의 글이 있었습니다. 어찌되었던 2023년 7월 6일 이글루스 블로그에 있는 글을 네이버에 올리면서 1년 365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글을 올렸습니다. 뭐 내용이 좋은 것보다 일종의 의무감이라고 해야 하나 그랬습니다. 그 이전에 3년간 페이스북에 글을 매일 올렸던 기억이 있어서 그렇게 올렸습니다.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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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에서 본 일본 충혼비 스타일

동아대학교 부민캠퍼스에 있는 석당박물관. 석당박물관에서 석인상이 있었으며 주로 문인상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 문인상 옆에 일본식 충혼비 스타일이 자리하고 있더군요. 보통 기단을 만든 뒤 그 위에 사각뿔 모양의 비석을 올린 경우도 많은데 여기는 기단은 보이지 않더군요. 일본식 충혼비형식이 여기에 왜 와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동아대학교라고 표시한 것도 조금은 우스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또 석당박물관으로 사용하던 시기가 적어도 2006년 ~7년 일것인데 그때 만들어 사용하였을까요? 아니면 그 전부터 있던 것을 가져왔을까요? 또 굳이 저린 충혼비 형식의 비가 없어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본충홍비스타일 부산광역시 서구 구덕로 225 동아대학교부민캠퍼스 이 블로그의 체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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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태와 석구는 무엇을 지키고 있을까요?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 현관 입구에서 본 해태상입니다. 해태라 부르기도 하고 해치라 부르기도 하는데 필자는 이 글에서 해태로 부를 것이니 양해 바랍니다. 해태는 중국 고대 전설 속의 시비와 선악을 판단하여 안다고 하는 상상의 동물로 중국에서 들어왔는데 재판과 관계지어졌으며, 후세에는 해치의 모습이 재판관의 옷에 그려졌으며 조선시대 법을 집행하는 사헌부를 지키는 상징이고, 사헌부중 갖장 높으신 대사헌의 관복에 해태를 새겨놓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현재 대한민국 국회의사당에도 가져 놓았습니다. 또 해태는 화재나 재앙을 물리친다고 하여 경복궁에도 해태상을 가져 놓았으며 소방관의 정복 깃표장에도 해태가 새겨져 있습니다. 서울소방서에서도 사용하고 있으며 예전에는 경기소방서에서도 사용하였습니다. 또한 서울의 상징동물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해태상이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 현관 입구에 있는데 형상이 기존에 보던 해태와는 또 다른 디자인이라 재미가 있더군요. 통영 충렬사에서 본 해태, 문경세재에서 본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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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하철과 노인 그리고

흔히 부산을 ‘노인과 바다의 도시’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청년들은 수도권으로 가고 65세 이상 노인만 남았있는 도시이며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 이상인 초고령사회의 도시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다 보니 부산의 바다와 노인 그리고 도시를 합쳐서 노인과 바다의 도시를 이야기합니다. 부산이 노인의 도시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지하철입니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이용객 중 노인의 비율이 20%를 넘기고 30%가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지하철을 많이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하철 노선은 적자이고 지하철 이용객 나이를 올리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지만, 실천은 되고 있지 않습니다. 부산 지하철에 있던 상가들은 철수하여 텅 비어있고 그나마 있다고 하는 것도 여러모로 힘들어 보입니다. 또한, 지하철 상가는 물론 부산진역 부근 상가는 어르신들을 위한 상품들이 진열돼 있습니다. 어찌보면 상인들은 발빠르게 움직이는지 모릅니다. 그나마 있던 젊은 층들은 서면이나 온라인으로 쇼핑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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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영등진의 동헌은 어디에 있었을까?

임진왜란 이후 거제 북단에 있는 영등포진은 거제 서쪽으로 옮기게 됩니다. 현재 견내량 부근입니다. 조선전기 영등포진은 영등포진성이 잘남겨있어 볼 수 있지만 조선후기 영등포진의 흔적은 잘 보이지 않는 것 같더군요. 그렇다면 어디일까요? 아래 사진은 조선후기 영등포진의 지도로 1872년 영등포진 지도입니다. 이미지출처 :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현재 거제시 둔덕면 학산리와 사등면 덕호리가 있는 지도입니다. 거제대교를 넘자마자 만나는 곳이 덕호리이고, 학산리는 그보다 아래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미지출처 : 다음지도 거제시청 홈페이지에서 학산리에 관한 정보를 찾아보면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둔덕면 학산리 둔덕면의 서북쪽 견내량의 거제대교 남쪽에 위치하고 한려수도의 관문으로 인조원년(1623) 거제칠진의 영등진(永登鎭)을 장목면 구영에서 옮겨 왔으니 영조 45年(1769) 영등방이라 하였고 한말 고종 32年(1895) 동쪽의 비학산 아래라 하여 학산리로 하였다. 학산리는 영등을 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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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한글의 형태를 알 수 있는 부산진교회

부산 좌천역에서 조금 올라오면 만나는 부산진교회입니다. 1891년 10월 부산진 지역 및 주민들과 처음으로 형식을 갗춘 예배를 드린 것이 부산교회(현 부산진교회)의 시작이다고 합니다. 이게 아마도 부산에서는 가장 처음 생긴 예배이며 교회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부산진교회 주변에 부산진교회 역사에 관하여 부착하였는데요.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한글의 변천인 것 같습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한글과는 조금은 다른 한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기쁘다 우리~"로 사용하지 않고 기ᄡᅳ다로 적어 놓았습니다. 현재 한글 자판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단어입니다. 현재 아래아 한글에서 자판을 바꾸어 타이핑을 칠 수 있으나 이걸 블로그로 옮기면 옮길 수가 없습니다. 예전에는 초성에 사용한 것을 보여주며 현재는 종성에만 쓰이는 것이 ㅄ입니다. 기쁘다보다는 기프다로 읽어야 되나 모르겠네요. 조금 더 올라가면 만나는 것은 <됴션 부산진교회 청년 찬양대>인데 옛 고어식으로 되어져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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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오량역은 어디에 있을까?

조선후기 영등진은 어디에 있을까? 라면서 발제글을 적었습니다. 현재 알려진 곳이 거제시 둔덕면 학산리입니다. 조선후기 영등진의 동헌은 어디에 있었을까? 임진왜란 이후 거제 북단에 있는 영등포진은 거제 서쪽으로 옮기게 됩니다. 현재 견내량 부근입니다. 조선... blog.naver.com 문제는 둔덕면 학산리에 국가 소유의 대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있는 곳은 선소가 있는 곳 이외에는 대지가 없고, 대지가 없다면 대지의 흔적이 나오고 밭으로 나와야 하는데 밭은 보이지 않고 그자리에 논이 있으니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기다가 학산리 바로 위가 사등면 덕호리인데 덕호리에는 수 많은 국유지가 있고, 국가 소유의 대지가 많으니 잘못 알려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정도입니다. 또 비변사인방안지도 중 영남지도 거제지도를 보면 분명하게 둔덕면 학산리에 영등진이 그려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비변사지도에 견내량진(見乃梁津)이 보이고 왜성 그리고 오량역도 보입니다. 그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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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신문에서 보는 신문으로 전환 경남신문

1960년대 한국 영화는 흥행의 가도를 달렸습니다. 딱히 오락거리가 없던 시절 들리는 라디오가 아닌 시각과 오디오를 자극하는 영화는 영화관을 찾는 많은 이들에게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또 당시 도시로 많이 진출이 되지 않았을 때라 조그마한 군지역과 면지역에서도 영화관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1970년대 TV가 보급이 되고 드라마가 안방으로 전달하면서 영화관의 황금기는 사라졌습니다. 감자며 고구마 한 그릇씩 가져와 동네 이장댁을 찾아 보던 마을 사람들은 드라마를 통해 함께 웃고 울었습니다. 사라질 것 같은 영화관은 꾸준하게 살아남았으며 2000년대를 접어들면서 또 한번 날개를 폈으며 2020년까지 꾸준하게 사랑받았습니다. 종이신문이라는 신문은 예전만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종이라는 매체에서 디지털이라는 매체로 넘어가는 과정이라 섣불리 진단하기는 힘듭니다. 다만 우후죽순처럼 있던 많은 신문사들의 앞날은 밝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도 신문사가 살아남을려면 제대로 된 기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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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대 파출소 통폐합? 치안서비스는 어디로

2024년 7월 3일 경남신문에 올라온 기사 내용입니다. 경남지구대 파출소 33개로 통합한다는 기사입니다. 기사 내용을 보면 "경찰서에 속한 지구대나 파출소 가운데 몇 군데를 중심지역관서로 지정해 해당 관서에서 인력·장비·예산 등을 통합·운영하는 개념이다. 경찰청에선 지난해 일부 파출소 등에 대해 시범 운영을 거쳤으며, 이달 말께부터 전국적으로 전면 시행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중점지구에 파출소를 두고 작은 면 단위에는 파출소가 없게 됩니다. 경남 지구대·파출소 33개로 통합… 치안 공백은? 시범운영 거쳐 전국서 전면 시행창원 3개소·사천 2개소 등 운영 주민 “인구 많은 곳 일방적 통폐합치안 공백 불안” 잇단 반대 목소리 ... www.knnews.co.kr 이 부분에 대해 필자가 지난번에 한번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필자는 " 치안센터가 없어진다는 것은 공공행정서비스 중 치안서비스가 사라지는 것이라 봐야할 것입니다. 농촌인구가 줄어들다보니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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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가대와 부산진성 서문 우주석 복원 제대로 했나?

최근 부산 영가대 본터에 관한 발제글을 적었습니다. 그러면서 "원래의 터이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1/3모형을 만들었는데 알루미늄으로 만들었으며 단청까지 재현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영가대가 있는 곳은 " 조금 높은 곳인데 여긴 높다고는 볼 수 없더군요"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조선통신사들의 출발지 영가대 본터 부산에서 영가대 이야기를 빼 놓고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영가대의 이야기는 많이 나옵니다. 이게 병풍... blog.naver.com 2003년 복원한 영가대는 예전의 영가대와는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일단 크기가 예전의 영가대보다는 큽니다. 그러면 최근에 축소한 모형이지만 이건 제대로 복원을 한 것일까요? 영가대에 관하여는 예전의 그림도 많습니다. 이승린이 그린 <사로승구도>에서 보면 영가대의 모습이 보입니다. 성벽이 있고 그 뒷편에 영가대가 자리하고 있으며, 영가대는 팔작지붕입니다. 그림이라 디테일하지는 않습니다. 영가대 본터에 있는 사진은 좌측면에서 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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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포진성(당포성지)동문지_02

서문지를 뒤로하고 동문지로 올라갑니다. 당포진성을 그려 놓은 것 같네요. 저건 복원되어 있는 것입니다. 당포진성에서 발견한 첫 번째 우물입니다. 요즘은 사용하고 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올라가서 본 두 번째 우물입니다. 두레박과 양동이는 벽화로 그려 놓은 것입니다. 소주병만 잔뜩 모아 놓은 것 같습니다. 담장에 수군들이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올라가자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에서 이야기한 "필사즉생필생즉사"가 벽화로 살아납니다. 이 내용과 관계없지만 아산시청에서는 이순신체를 무료로 다운로드하게 한다고 하네요. 이순신장군의 동상, 거북선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네요. 광화문에 있는 이순신장군보다 더 위엄있게 그려 놓은 것 같습니다. 현재 있는 곳이 동헌이나 포수청과 같은 관공서가 있었던 곳은 아닐까 추정해봅니다. 조금 더 올라가자 이정표가 나오는데 삼덕삼거리와 당포성지가 나오는데 이 이정표가 헷갈리게 만듭니다. 당포성지의 경우 현재 복원한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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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리 마을 입구에서 본 일문역 서낭당

어제 올린 영산 일문역에 있는 사(社)로 표시된 지역은 마당일까? 마사단일까? 하면서 발제글을 올렸습니다. 발제글을 올리면서 맨 마지막에 "아니면 성황단일 수 있습니다"라고 글을 올렸는데 이번에 찾아가보니 선왕당이더군요. 영산 일문역의 마당(馬堂)일까? 마사단(馬社壇)일까? 1872년 지방지 영산현에서 본 일문역입니다. 지방지에는 일문역관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영산현에는 일문역... blog.naver.com 일문역이 있었던 창녕군 계성면 명리일대의 모습입니다. 현재 울산 - 함양간 고속도로가 지나가는 곳이며 공사중입니다. 명리 주변에 농공단지가 들어선 상태이며 예전부터 마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다만 예전이라는 것이 언제인가? 할때는 100년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 봅니다. 일문역이 있을때로 친다면 조선건국과 함께 올라갈 것입니다. 하지만 1913년 지적도를 보면 일문역을 제외하면 주민들이 거주하는 집들이 많이 보이지 않더군요. 즉 1896년 역참제도가 폐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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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포진성(당포성지)_03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당포진성의 성문인 동문지과 서문지를 보았습니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찾아가는 남측체성으로 발걸음을 옮겨보도록 하겠습니다. 당포진성안은 사진과 같이 포곡식으로 되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3번째 만나는 우물 당포진성안은 우물이 3개다 보니 어느정도 물에 관하여는 여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아직 체성은 나오지 않았는데 축대형식이 보이기에 사진을 찍었습니다. 우물 앞 삼거리에 있는 이정표로 당포성지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길을 따라서 조금만 걸어가면 당포진성 남측 체성을 만납니다 이곳은 한산대첩길이라 그런지 땅이 미끄럽지 않도록 코코아껍질로 된 길을 만들어 두었더군요. 이제 복원한 남측체성이 보입니다. 치성이 보이는데 서있는 분들과 높이를 비교하면 될 것 같습니다. 치성 옆에도 축대와 같은 것이 보이더군요. 강아지가 반기는건지 화를 내는건지 모르겠더군요. 체성을 잘 보면 하단부와 상부는 돌의 색상이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단부 체성을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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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통신사들의 출발지 영가대 본터

부산에서 영가대 이야기를 빼 놓고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영가대의 이야기는 많이 나옵니다. 이게 병풍으로 그림으로 남겨져있던 영가대이고 또 일제강점기 당시 사진으로도 많이 남겨져 있었지만 일제강점기때 사라지고 해방이 되고 한 참을 지나고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러다 지난 2003년 부산진성 동문과 남문사이에 있는 곳에서 복원을 하였습니다. 복원한 장소가 원래 있었던 원래 위치에 복원을 한 것은 압니다. 1951년에 영가대 본터라고 표시하였지만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잡초가 자라는 상태였는데 지난 2020년 다시 정비를 하여 현재까지 이어져 옵니다. 영가대가 조선통신사 출발지다 보니 일본에서 환영받는 조선통신사 그림을 부조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영가대에 안내판으로 영가대는 조선 후기 통신사가 해신제를 지내던 누각으로 영가대를 건립할 당시에는 이름이 없었는데, 1642년(인조 2) 일본 사신을 맞이하기 위해 부산에 파견된 선위사 이민구(1589~1670)가 순찰사 권반(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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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포진성(당포성지)_04

당포진성은 성벽 양쪽 모두 돌로 축성한 협축식 방법이 아니고 한 쪽은 돌, 한 쪽은 흙으로 채워 놓은 내탁식 방식이라는 것을 알 수있습니다. 올라가는 부분에는 여장과 같이 흙이 돌출되어져 있습니다. 이게 계속해서 이어지는 것은 아니고 일정하게 올라가고 나서는 더 이상 진행하지 않더군요. 치성 2에 도착하였습니다. 흙 위에 잔디가 뿌려져 있어서 올라가는데 무리는 없더군요. 함께 올라간 분은 아닌데 본의 아니게 같이 가다보니 진성 크기를 측정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치성 3에 도착을 하였습니다. 치성 3의 경우도 보시면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을 것입니다. 복원한 부분이 영~ 이상하다고 느껴집니다. 일단 활석이 너무 정교한 크기로 만들어져 있으며 모양 또한 정사각형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치성 3은 여장이 없어서 그런지 왠지 허전하네요. 원래부터 여장이 없었는지 복원하면서 예산이 안되어서 여장을 만들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치성 3에서 치성 4방향을 바라보고 찍은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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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군 관내 농어촌버스비 100원을 보고

하동군이 지난 2023년 1월 부터 초중고교생 버스요금 100원을 시행하였습니다. 경남에서는 가장 먼저 시행한 것이 100원 버스였으며 이후 함안군에서도 시행하고 있습니다. 하동군은 학생 버스비 100원에서 2024년 7월 1일부터는 이용객 100원 버스를 시행한다고 합니다. 하동군 관내 농어촌버스를 이용하는 모든 이용객이 100원(카드, 현금, 승차권)만으로 지역 내 어디든 갈 수 있도록 이용 범위를 크게 확대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군민이나 관광객이나 모두 100원으로 하동군내를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동군 버스비 100원시대는 경남에서는 처음이지만 타시도에서는 시행한 곳이 제법 많습니다. 지난 2023년 1월부터 경북 청송군에서는 버스비 공짜를 시행하였습니다. 전국에서 처음으로 실시한 버스비 무료는 각 지방정부에서 벤치마킹이 되어 배우러 많이 왔다고 합니다. 이렇게 버스비 무료로 진행하니 이용객은 25%가 늘었다고 하며, 버스비 지원은 6개월간 1억 6,500만원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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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농업보습학교로 출발한 영산중학교

창녕군 영산면에 가다가 영산중학교 안내석을 보았습니다.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려는데 가장 하단에 Since1926 이라고 적혀져 있더군요. 1926년에 영산에 중학교가 설립이 되었다니 내가 알고 있는 것이랑 다르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싶었습니다. 보통 실업계를 일제가 허가를 많이 해준 것이 있어 실업계학교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단부에 "미래를 향한 큰 꿈을 키우는 학교"라고 적혀 있습니다. 1926년 설립이 되었으니 이제 곧 100주년이 될 것 같습니다. 집에 와서 영산중학교 홈페이지를 보니 실업계를 출발한 것은 맞더군요. 다만 1926년 6월 29일 설립되었는데 창녕공립농업보습학교더군요. 농업보습학교라 이 부분을 잘 몰라서 알아보니 중등교육기관인데 지역에 따라 2~3년간 진행한다고 하더군요. 창녕공립농럽보습학교를 허가할때 2년제 학교였으며,보통학교 6년 졸업생이거나 동등 이상의 학력자에 한해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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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순창 성황사는 도심 한가운데 있다

1745년 순창읍지를 보면 순창성황사는 객관 서1리로 표시되어져 있습니다. 사직단은 서쪽 옥천산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순창의 옛이름이 옥천입니다. 충북에 있는 옥천군과 헷갈릴 수 있습니다. 특히 옥천 옹씨의 경우 충북이 아니라 전북 순창입니다. 아무튼 옥천산은 현재 순창군청 옆에 있는 산인데 이게 어떻게 불러지는지는 모르겠네요. 여단은 북 5리 회산 아래에 있다고 표시 되어져 있습니다. / 이미지출처 :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1872년 지방지의 모습으로 관아는 좌부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직단, 여제단, 성황사가 관아와 가까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천 건너 순창향교가 있는데 관아의 남측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사직단은 서측, 여단은 북동측, 성황사는 서측에 위치하고 있습니다.이미지출처 :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1915년 지적도에서 3단 1교를 찾아보았습니다. 성황사, 향교, 여단은 확실한데 사직단은 확실하지 않아서 추정을 합니다.1872년 지적도와 조금 다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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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무죄 무전유죄 유권무죄 무권유죄

최근 커뮤니티에서 들끓는 사건이 하나 있죠. 동탄헬스장 화장실 사건 이야기입니다. 내용이야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나올 것이고, 대략적으로 이야기하면 아파트 내 헬스장 남성 화장실을 이용했다가 경찰로부터 성범죄자로 몰렸다는 것입니다. 경찰이 피해자의 이야기에 성추행범으로 몰렸다는 것인데요. 여러 이야기가 확대되면서 수사한 동탄경찰서 홈페이지 칭찬합시다 코너가 마비가 되고 있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훈련소에서 신병에게 얼차려를 준 중대장은 사건이 났음에도 정신적 치료 등의 이유로 휴가가 진행되었다는 것입니다. 두 사건을 보면 법은 공평하지 않지 않은 것 아니냐? 는 이야기가 고개를 든다는 것입니다. 최근 다시 이슈가 된 밀양 성폭행 사건도 결국은 제대로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처분을 받지 않은 것에 대한 사회의 반발이라고 봐야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부분에 관하여 경찰의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과연 국민의 경찰인가 국민의 견찰인가? 1988년 10월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유전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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눌차왜성_02

할미당을 나와 서측방향으로 이동을 합니다. 이동을 할때 하단을 보니 군데 군데 돌들이 보이던데 이게 왜성과 관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조금 올라가면 본환이 보이는데 본환은 아주 넓은 터가 자리하고 있으며 본환에서 보면 부산신항의 모습이 잘 보입니다. 본환은 생각보다 넓어서 많은 일본군들이 거주할 수 있는 공간이더군요. 성곽답사는 겨울에 가야 성벽들을 볼 수 있습니다. 본환에서 남서방향을 바라본 모습으로 보이는 산에 눌차왜성의 지성이라고하는 성북왜성이 있는 곳입니다. 한꺼번에 눌차왜성이라고도 하더군요. 손을 뻗어면 잡힐 것 같을 정도로 아주 가까운 곳에 신항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2지환으로 보이는 부분인데 보시는 것과 같이 풀이 너무 많아서 어디가 흙이고 풀인지 몰라서 잘 모르겠더군요. 겨울이 이 정도인데 여름철이라면 어휴~ 이럴 때는 눌차왜성의 평면도를 가지고 가면서 일일이 대조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입니다. 본환과 2지환으로 보이는 부분의 높이를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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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서피랑에서 본 돌아와요 충무항에 노래비

통영시 서포루가 있는 서피랑을 올라가면 볼 수 있는 것중 하나가 노래비인데 이 노래비는 "돌아와요 충무항에"입니다. 아시는 분들은 많이 아는 노래이고 모르는 분들도 많은 노래입니다. 한국인들이 사랑하는 노래 중 하나인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원조격인 노래가 "돌아와요 충무항에"입니다. 롯데자이언츠 응원가중 하나가 "돌아와요 부산항에"인데 이게 "돌아와요 충무항에"와 "뭔 상관이 있느냐?" 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노래비는 1970년 발표된 통영 출신 가수 김해일(본명 김성술)의 "돌아와요 충무항에"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1976년 가수 조용필의 노래입니다. 지난 2006년 "돌아와요 충무항에"에 "돌아와요 충무항에 노래에 곡을 붙인 뒤, 작사가의 동의 없이 같은 곡에 가사를 일부 바꿔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작사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가사 일부 표절 판정을 내렸습니다. 그 판결 이후 서포루에 "돌아와요 충무항에" 노래비가 들어섰을 것입니다. "돌아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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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현 상령역 마당(馬堂)은 어디에 있을까?

1872년 지방지 중 진해현편을 보면서 처음 본 것이 있더군요. 상령역 위에 있는 것이 대야리이며, 그 옆에 마당(馬堂)이 있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사당(社堂)은 조상이나 옛날 현인을 위한 제사를 지내는 공간을 통칭하는 것이지요. 이 정도 사당이 있을 정도이면 제법 방구나 끼는 양반이라고 봐야할 것입니다. 진해현 동헌 앞에는 마방(馬房)이 남겨져 있습니다. 마방(馬房)은 마굿간과 같은 곳으로 지금으로 치면 주차장 정도 되겠지요. 그렇다면 마당(馬堂)은 뭐를 하는 공간일까요? 마방(馬房)에 관련된 자료를 찾아보니 "말과 관련된 신에게 드리는 제례의식으로서 마조(馬祖)·선목(先牧)·마사(馬社)·마보(馬步)의 4신위를 모신다. 조선시대에는 ‘국조오례의’에 따라 임금이 주관하던 큰 제사였으나 1909년 국운이 기울던 때 일제에 의해 강제로 폐지됐다."라고 적혀져 있습니다. 즉 말의 안녕을 묻고, 말의 조상을 비롯하여 승마하는 법을 가르친 사람, 말에게 재해를 끼치는 신들을 모시고 제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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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 일문역의 마당(馬堂)일까? 마사단(馬社壇)일까?

1872년 지방지 영산현에서 본 일문역입니다. 지방지에는 일문역관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영산현에는 일문역과 온정역이 있었습니다. 1899년 발행한 영산읍지에는 일문역은 서5리라 적혀져 있고, 온정역은 동20리에 있다고 적혀있습니다. 1872년 지방지는 크기가 큰 관계로 아래 이미지를 짤랐더니 온정역은 보이지 않습니다. / 이미지출처 :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1899년 발행한 영산읍지보다 빠른 1530년에 만든 신동국여지승람에서 보아도 영산현의 역원은 일문역과 온정역입니다. 일문역은 서5리, 온정역은 동쪽 20리에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500년 일문역과 온정역은 원래 장소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이미지출처 : 디지털장서각 영산현 서쪽 5리에 있다는 것은 오리정과도 어느정도 상관이 있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관찰사가 오는 방향 또한 창녕이니 일문역 부근에 오리정이 있다고 봐야되지 않을까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지적도를 찾아보았습니다. 창녕군 계성면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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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왜성 천수가 있는 증산전망대에 올라가보니

예전에는 부산포왜성이라고 불렀는데 이번에 가니 증산왜성이라고 적어 놓았더군요. 증산왜성이라고 하면 양산에 있는 증산왜성이 있는데 헷갈리지 않을까 합니다만 증산왜성이라고 부르고 있으니 부산포(증산)왜성이라고 표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함대가 부산포왜성이 있는 이곳까지 왔지만 점령은 하지 못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이순신장군의 장괘에는 이렇게 적어 놓았습니다. "부산진성 안을 취하여 관아를 모두 헐어 버리고 그 자리에 흙을 다져 지은 집이 많아 일백 호에 이르렀습니다. 성 밖 동쪽과 서쪽의 산기슭에 집이 즐비한데 담장을 이어 접한 가옥 또한 3백여 호입니다. 모두 왜인(倭人)이 스스로 지은 집인데, 그 가운데 가장 높은 층계 위에 들어선 것은 벽에 분을 발랐고 마치 불당 같았습니다. 그곳을 보니 통분하였습니다." 여기서 가장 높은 층계 위에 들어선 것은 벽에 분을 발랐고 마치 불당 갔았다고 하는 부분이 천수각을 이야기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번에 부산포(증산)왜성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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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사가 진성 외부에 있는 당포진성(당포성지)_01

1872년 지방지에서 본 당포진도입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당포진도에는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당포진은 지금의 경남 통영시 산양읍 삼덕리에 있었던 수군만호진으로 조선시대에는 고성에 속해 있었다. 동쪽의 삼천진과 더불어 영남 서부 해안으로 침입하는 적을 차단하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진에는 성곽이 축조되어 있는데 고려 말 최영 장군이 왜구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세웠다고 전해진다. 이후 조선시대 1488년(성종 19)에 다시 축성하였다. 임진왜란 때에는 왜적에게 함락되었다가 이순신 장군에 의해 탈환되었던 성이다. 당시 성의 둘레는 1,455척이었다. 지도는 진기를 중심으로 회화적 기법을 활용하여 산지의 암벽과 수목을 비롯하여 경지의 모습까지도 표현되어 있다. 진성 밖에는 대원군 집권기 국방 강화의 일환으로 설치되는 포수청과 화포청이 그려져 있고 선소에는 환곡고도 보인다. 통상 성곽의 내부에 있는 객사가 여기에서는 선소가 있는 해안가에 있는 점도 특이하다. 지도의 상단에는 인근 지역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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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최초 3·1운동 시발점은 어디?

부산시 동구 일신여학교 앞에서 본 독립운동 이야기 안내판입니다. 부산 일신여학교 학생들이 일어난 독립운동에 관하여 이렇게 적혀져 있습니다. "부산·경남지역에서 최초 3·1운동의 발화점이 동구에서 동구에서 독립 운동가들의 활약삭 및 역사적인 장소를 탐방, 체험하고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장소를 조성하였음" 이 내용을 보고 필자가 알고 있었던 것과 다르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래전 지역 방송국에서 하는 뉴스를 보았는데 그때 함안군 칠북면 이령리에서 가장 먼저 3·1운동이 일어났다는 것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경남신문 2018년 8월 20일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경남 3·1운동은 그 기간만으로도 전국에서 가장 길고 가장 늦게까지 전개됐다. 경남지역 3·1운동의 최초 개시일과 장소는 학자와 지역에 따라 이견이 있다. 3월 11일 부산 일신여학교 학생들이 중심이 된 시위를 시발점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그보다 이틀 앞선 3월 9일 함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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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이후 등장한 두모포왜관

얼마전에 부산포왜관에 관하여 짧게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부산포왜관의 위치가 정확하다는 것은 아니고 현재 좌천역에 안내판이 있다는 것입니다. 조선이 개국을 하면서 부산포와 제포를 개항(1407년) 하고 이후 염포를 개항(1418년)하면서 삼포를 개항하였습니다. 임진왜란 이후 삼포의 왜관을 폐쇄하니 일본이 계속해서 개항을 요구하여 왜관을 만든 것이 두모포왜관입니다. 부산포 개항과 부산포왜관 부산 좌천역을 가니 <부산포 개항가도 역사 스토리골목>이라는 이정표를 자주 보게 되더군요. 부산포... blog.naver.com 현재 두모포왜관 안내판이 있는 곳은 부산시 동구 초량동 윤흥신장군상이 있는 곳에 있습니다. 윤흥신장군상은 예전에 석조로 된 상이 있었는데 최근에 아래와 같은 모습의 동상을 다시 설치하였습니다. 윤흥신 장군상 부근에 두모포왜관 안내판이 있습니다. 두모포왜관은 임진왜란이 끝난 1607년(선조 40년)에 설치하였으며, 1678년(숙종 4)에 다시 초량 근처로 왜관을 옮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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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더 보기 힘들 것 같은 부산 매축지마을

부산의 전신인 동래는 큰 동네가 아니었습니다. 물론 왜관도 있었지만 농사 위주의 도시에서는 상주, 밀양, 대구, 진주, 경주와 같은 곳이 큰 도시였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일제강점기때 부산은 성장을 하였고 거기에 경부선과 관부선으로 일본과 연결되는 교통망이 깔리면서 도시가 더 성장을 하였습니다. 1940년 당시 부산 인구가 25만 명정도였고, 대구가 21만 명 정도 되었습니다. 당시 부산이 제2의 도시가 맞지만 확연한 차이가 나는 규모는 아니었습니다. 확연하게 차이를 벌이게 된 것은 6·25전쟁입니다. 피난민들이 몰려와 자리를 잡으면서 부산은 더욱 더 성장하면서 다른 도시에서 넘볼 수 없는 국내 제2의 도시가 되었습니다. 아래 사진은 1943년 매축지마을 지도입니다. 저 당시 마을이 형성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며, 부산은 저 상태에서 또 매립이 진행됩니다. 당시 매축지마을이 바다와 인접하였는데 현재는 매축지마을보다 더 멀리 나가야 바다를 볼 수 있습니다. / 이미지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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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과 2024년 경남인구 비교

조선의 인구를 알 수 있는 것중에 하나가 1789년 발행한 호구총수입니다. 『호구 총수(戶口總數)』는 18세기 후반 전국의 호구(戶口) 현황을 기록한 통계 기록이며 조선 전기 3개 식년(式年)과 1639년(인조 17) 이후의 호구 총수를 모아 두었고 마지막 식년은 1789년(정조 13)입니다. 전국에 있는 호구를 조사하였는데 필자가 관심이 있는 경남의 호구총수를 적어 보았습니다. 1위는 진주목으로 69,495구인데 일단 우리가 아는 69,495명으로 할꼐요. 다음이 밀양부 50,901명, 고성부 41,823명, 의령군 36,544명, 김해부 35,833명, 창녕군 34,767명, 거제부 30,023명, 창원대도호부 29,452명, 남해군 25,949명, 함양군 24.198명입니다. 나머지는 아래 이미지를 참고하세요. 전통적으로 인구가 많은 진주, 밀양, 고성, 의령, 김해임을 알 수 있습니다. 1만 명 이하는 진해현이며 가장 인구가 적은 7,172명입니다. 행정안전부에서 발표한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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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부동전적기념관에서 본 잘못된 안내판

대구 칠곡에 있는 다부동전적기념관에서 본 다부동 전투 소개 설명판입니다. 잘 아는 것처럼 뚫리면 안되는 지역을 지켜낸 장소이고, 이 칠곡을 사수함으로 낙동강 북쪽으로 밀려오는 인민군을 막아낸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전적기념관에는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으며, 설명도 충실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주차장도 잘 되어져 있어 방문객들이 편하게 볼 수 있도록 해 놓았으며, 필자가 방문하였을 때는 방송국에서 나왔던 것 같고, 해병대에서도 참관을 하고 있더군요. 문제는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 있었습니다. 다부동전적기념관 1층 내부에 역사적인 현장을 설명하면서 사용한 이미지들입니다. 상부에는 B29도 그려 놓아 분위기를 만들어 놓았지만 활동하고 있는 군인들의 모습은 1950년 6.25전쟁 당시의 국군이 아니고 현재의 미군의 모습을 그려놓았습니다. 총기는 M4나 M16, M203 계열의 소총을 들고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며, 전차도 당시 사용하였던 M4A3는 아니고 현대 전차의 모습이 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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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와 여우 이야기

영주시 순흥면 행정복지센터는 순흥부의 동헌과 객사 등 관아 건물지가 있었던 곳입니다. 그러다 보니 각종 건물의 경우 콘크리트로 만들었지만 지붕은 기와를 올려 놓은 식으로 꾸며 놓았습니다. 순흥부는 소백산을 넘어오는 곳에 있다보니 경북의 끝자락입니다. 순흥면 행정복지센터 뒷편에 어린이 놀이시설을 만들어 놓았는데 이게 여우의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여우의 모양을 한 미끄럼틀인데 아이들이 올라갈 수 있게끔 하면서 여우를 표현하였는데요. 영주시 순흥면 부근에 여우 생태계 복원을 한다고 하면서 꾸며 놓다보니 여우와 관련된 것들은 만들어 놓았는데 그중 하나가 순흥면 행정복지센터 뒷편에 여우모양 미끄럼틀입니다. 멸종위기종이라는 붉은여우의 모양을 한 어른이 미끄럼틀은 여우하면 영주를 떠오를 수 있게 하였습니다. 인근에 여우생태관찰원도 가까이있어 더욱 더 여우와 영주를 연결하고 있습니다. 여우 로드킬 조심이라는 교통표시판도 존재하고 있을정도로 여우와 영주를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여우의 생태 복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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눌차왜성_01

조선수군 부산 진출시 거쳐가야하는 눌차왜성_01 눌차왜성은 현재 부산시 강서구 눌차동에 있는 왜군들이 지은 성곽입니다. 눌차왜성은 가덕도왜성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있으며 가덕왜성 또는 눌차왜성이라고 불러도 관계가 없습니다. 예전에는 가덕도왜성이라고 많이 사용하더니 요즘은 눌차왜성이라고 많이 사용합니다. "가덕도 왜성은 본성을 중심으로 여러 성곽이 능선을 따라 연접되어 있는 연곽식(連郭式)이다. 70m의 산 정상부를 삭평하여 석축으로 본환(本丸)[왜성 내에서 중심이 되는 공간]를 구축하였는데, 석축의 둘레는 86m이며 중심부에는 높이 2~3m의 석축이 잔존한다. 남쪽의 할미당을 중심으로 남북 방향으로 성벽이 축조되었고, 할미당이 있는 부분이 본환의 입구로 추정되며, 본환의 서쪽 벽은 성벽에 굴곡을 주어 치성(雉城)[성벽을 돌출시켜 성벽에 붙은 적을 측면에서 제어하는 시설]의 역할을 하고 있다. 본환의 남쪽으로는 가늘고 긴 지형이 계속되면서, 남쪽으로 갈수록 3~4단을 이루며 단의 동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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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근대 교육 설명문을 보고

부산근현대역사관에서 본 부산의 근대 교육기관의 설립에 관한 내용입니다. 갑오개혁 이후 근대 보통 교육을 공고화하기 시작하며 소학교와 사범학교, 외국어 학교 법령이 마련되고 여러 교육 기관이 설립·운영됨으로써 국가 주도의 교육 방향이 정착됩니다. 1895년 4월 한성 사범학교 관제, 5월의 외국어 학교 관제, 7월 반포한 소학교령에 따라 전국에 학교가 들어서기 시작하며 부산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교육기관의 설립에 관하여 작성한 내용을 보면 1895년 발표된 교육입국조서는 근대 교육의 기틀이 되었다. 근대적 학제가 공식적으로 도입되면서 부산 지역에서도 뜻있는 선각자즐이 교육기관을 설립하기 시작했다. 1895년 박기종은 부산 최초의 근대적 학교인 부산개성학교를 설립하였고, 같은 해 호주선교회는 부산 지역 최초의 근대식 여자학교인 일신여학교를 세웠다. 이후 1907년에는 구포의 구명학교와 동래의 동명학교가 개교하였다. 개항 이후 정치적 사회적 변화가 심했던 부산에는 근대 교육과 민족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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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이황이 편액 적은 영주 영훈정

광여도에서 본 영주지도로 읍치와 함께 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 봉수와 물길도 표시되어져 있는데 그중 제민루, 동락정, 읍창, 향교, 사계사당, 구학정이 그려져 있는 가운데 동그라미 친 부분이 영훈정(迎薰亭)의 모습이 보입니다. / 이미지출처 :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지승지도에서 본 영주로 위에서 소개한 광여도보다 조금 더 디테일한 지도입니다. 지승지도를 보면 영주의 진산 철탄산(鐵呑山)이 보이고 철탄산 뒷편에 성내산봉수가 보이며, 철탄산 아래에 아사가 보이고, 아사 옆에 우민루가 있으며, 우민루 옆에 영주향교가 있습니다. 우민루 앞에 쌍청당(﨎淸堂)이 보이는데 파랑색 동그라미로 쳐 놓았습니다. 쌍청당 앞에 객사가 보이며 객사 앞에 동락정(同樂亭)이 있고, 동락정 앞에 영훈정(迎薰亭)이 있습니다. 영훈정(迎薰亭)앞에 하천이 지나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 이미지출처 :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해동지도에서 본 영훈정(迎薰亭)으로 객사 앞에 있으며 객사 옆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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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자와 죽은자가 함께 있는 부산 아미동 비석문화마을

부산 지하철 토성역에 내려 아미동 비석문화마을까지 가는 마을버스를 타고 돌아 돌아 도착했습니다. 필자는 2024년 4월 초에 갔었는데 감천문화마을을 가는 외국인이 많아서 그런지 마을버스는 꽉찬 상태에서 운행하였습니다. 감천문화마을이 인기가 있는지 몰라도 마을버스 안 대부분이 외국인이었습니다. 중남미, 서양인, 중국인 들이 많이타고 올라가더군요. 필잔느 감천동이 아닌 아미동비석문화마을에 내려서 하나 둘 둘러보았습니다. 6·25전쟁때 피난민들이 부산으로 몰려왔습니다. 전쟁 전 47만 명이던 부산의 인구는 피난민으로 인해 88만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당장 먹고 사는 문제에 생활하는 것을 이루어야 하니 부산역과 보수천 등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하지만 1953년 부산역전 대화재로 인해 피난민들이 사는 곳은 철거가 되었으며, 철거가 되지 않는 곳을 찾은 곳이 아미동이었다고 합니다. 비록 산비탈이지만 철거는 되지 않는 곳이니 자리를 잡았습니다. 하지만 그곳에는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을 위한 공동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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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현 선소 굴강은 어디에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에 있는 거제부도입니다. 거제부도를 잘 보면 예전의 선소에 있는 굴강과 같은 방파제가 보입니다. 조금 둥글게 형성되어져 있는데 웅천의 안골포 굴강과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굴강은 큰돌로 쌓았으며 인공적으로 조성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이미지출처 :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 1967년 항공사진에서 위 고지도에서 본 것과 같은 방파제와 굴강을 볼 수 있습니다. 다만 거제부도에서 나온 흔적은 맞지만 일부는 조금 변형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둥글게 형성이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게 예전의 선소와 같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 이미지출처 : 국토지리정보원 국토정보맵 현재의 지도와 1967년 지도를 크기에 맞추어 보았습니다. 그래야 선소의 위치를 좀 더 정확하게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맞추었습니다. / 이미지출처 : 국토지리정보원 국토정보맵 + 다음지도 그곳에 1967년 방파제를 표시하였습니다. 현재 도로를 만든다고 한 부분이 거의 예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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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 황상주공단지에서 본 고가수조

구미시 황상동에 있는 황상주공2단지 아파트에서 본 고가수조입니다. 고가수조를 보려고 간 것은 아닌데 멀리서 잘 보여서 가 보았습니다. 현재 있는 고가수조는 다른 고가수조와 마찬가지로 아파트 건물 10층 정도 되는 높이에 세워져 있더군요. 밑에서 나올 황상주공 1단지와 마찬가지로 1991년도에 만들어집니다. 또 5층짜리 아파트라 그 당시 고가수조를 만드는 마지막 시기였을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구미에서 황상주공단지보다 먼저 생긴 아파트가 있는데 그곳에서는 고가수조가 보이지 않는데 황상주공에서는 고가수조가 보이네요. 주민분들에게 물어보지 않았지만 고가수조를 사용하지 않는 다른 아파트와 마찬가지로 이곳 황상주공에서도 고가수조는 사용하고 있지 않을 것입니다. 현재 5층짜리 황상주공은 1991년에 만들어지다 보니 일단 3가지 특징이 있는 아파트입니다. 당시 기준으로 만든 아파트인데 요즘은 사용하고 있지 않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보시는 것과 같이 굴뚝입니다. 현재 아파트에 굴뚝이 있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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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개설로 사라져 버린 인동여제단

현재 경상북도 구미시는 조선시대 인동부와 선산부 지역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구미공단이 있는 곳은 주로 인동부가 있던 지역입니다. 인동부의 관아가 있었던 곳은 현재 인의동입니다. 인동 여제단은 인의동의 북쪽에 있었습니다. 1872년 지방지를 보면 인의 여제단은 관아를 돌아 북쪽에 있는 것으로 표현되어져 있습니다. / 이미지출처 :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인동여제단이 있는 곳은 황상동으로 위에서 본 1872년 지방지와 같이 관아에서 조금 떨어져 있으며 관아와 마주보고 있지 않고, 산을 끼고 돌아서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이미지출처 : 다음지도 필자가 저곳이 어떻게 여제단인지 알게 된 것은 1913년 발행한 지적도입니다. 1913년 당시 황상동에서 찾아보니 여제단의 흔적을 알게 되더군요. / 이미지출처 : 국가기록원 지적아카이브 조금 더 확대를 해보면 보다 정확하게 들어납니다. 황상동 103번지에 사(社)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02번지는 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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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레일로 만든 부산 매축지 육교

부산 좌천역에서 매축지마을을 가기 위해 지나가는 육교. 일명 매축지 육교라 불리는 곳도 기차레일로 만든 육교입니다. 부산에 있는 육교중 기차길에 있는 육교는 기차가 다니고 있어서 들어갈 수 없는 관계로 기차레일의 년도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기차레일을 이용한 육교는 보통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반에 생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매축지에 있는 육교 또한 그 시기 전후에 생긴 것이 아닐까 하고 추정합니다. 그리고 매축지 육교의 경우 X자 형태로 하부를 버티고 있는 부분과 U자 형태의 레일은 기존에 많이 보던 기차레일 육교입니다. 부산에는 이런 식의 기차레일로 만든 육교가 제법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부산에 기차레일로 만든 육교나 콘크리트 육교가 많은 것은 부산의 성장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처음 경부선이 만들어질 때에는 부산 바다가 매립이 별로 없었는데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에 의해 부산만이 매립이 되고 그곳에 주민이 들어오고 정착을 합니다. 그러다 보니 매립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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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가 날 것이 뻔한 마산·진해 케이블카

사진은 현재 흑자가 발생하고 있는 여수케이블카 창원시에서 마산과 진해에 케이블카 설치를 위한 연구용역을 실시한 지 제법 되었습니다. 연구용역은 다음 달 마무리되어 공개될 것이라고 합니다. 창원에 두 곳이나 케이블카가 설치된다고 하니 찬반 논란이 많습니다. 두 곳을 설치하자고 하는 것은 두 곳에 있는 일부 주민들의 끊임없는 추진때문입니다. 창원은 2010년 마산과 창원 그리고 진해가 합쳐서 만든 통합시입니다. 그러다 보니 창원시장에 출마하려는 시장은 3곳의 시민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고, 표를 위해서 공략을 발표하는 것이 많습니다. 케이블카 설치도 그중 하나입니다. 현 창원시장의 공약으로 진행된 마산, 진해 케이블카 설치의 목적으로 연구용역이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연구용역에 손익분기점이 어떻게 나올지는 알 수 없어도, 수익성이 있다고는 나오기 힘들 것입니다. 지난 2019년 10월 창원시는 해양관광 활성화를 위해 민자 사업을 유치한다고 하면서 진해 해양공원 내에 집트랙을 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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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공단 조성시 도로 개설로 사라진 인동사직단

인동사직단에 관하여는 지난 2022년 7월에 글을 적었습니다. 당시 글에서는 구미공단 조성으로 인동사직단이 사라졌다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공단 조성으로 사라진 인동사직단 여기에 나오는 글은 이글루스 블로그 <팬저의 국방여행 pazercho.egloos.com>에 2022년 07월 30일 작... blog.naver.com 1872년 지방지에서 보면 낙동강변 가까이에 사직단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913년 지적도에서 찾은 인동사직단을 현재의 지도에 표기한 것입니다. 예전의 지번들은 구미공단 조성으로 다 사라져 버린 상태라 현재 남겨져있는 지번을 대입시켜 인동사직단의 위치를 알아 냈습니다. 인동사직단은 현재 도로변에 있다고 저번 발제글에서 이야기하였습니다. 사라진 인동사직단은 지난 1975년과 1976년 사이 도로를 개설하면서 사라진 것 같더군요. 사라진 자리에 도로가 확장이 되었고 LG Display 공장 앞이 인동사직단이 있던 곳입니다. 인동사직단이 있는 곳은 L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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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선소를 가보니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해동지도 하동현 지도에서 본 선소입니다. 선소라고 적혀져 있으며 해창도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미지가 짤렸지만 고전면이 보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이 산자락이 내려오는 곳에 선소가 있고, 선소 앞에 전선이 있는데 전선은 굴강과 같은 곳에 들어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의 포구와 같은 곳에 전선이 있는데 이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 굴강과 같이 인공적으로 만들었는지 아니면 자연을 이용하였는지는 현재로 알 수 없는데 이 부분이 선소를 이야기하는데 중요할 것 같습니다. 일제강점기인 1918년 지도에서 본 선소로 선소라고만 적혀져 있으며 선소마을 옆에 당진(唐津)이라고 적혀져 있습니다. 이게 중요한데 나중에 당진마을은 월진으로 바뀌는데 월진은 달이 넘어가는 곳이라고 하는 것 보니 월은 月로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당진은 당을 백과사전에서 살펴보면 1. 당나라(唐--), 나라의 이름 2. 길, 도로(道路), 통로(通路) 3. 둑, 제방(堤防)라고 표시되어져 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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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가 보이지 않는 인동향교

구미시에는 인동과 선산의 옛 군현이 있었습니다. 인동은 인동부, 인동군, 인동현과 같이 군현이 왔다 갔다 하였습니다. 현재 구미공단이 있는 곳은 인동부와 가까이 있습니다. 1872년 지방지에서 인동향교를 찾아보면 옥산 앞에 향교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옥산에 관하여는 잘 나오지 않는데 인동 옥산사의 자리가 옥산입니다. 옥산 앞에 있던 인동향교는 인의동이었으며 6.25전쟁때 불 타버렸고 1988년 현재의 임수동으로 향교를 옮겨서 세웠습니다. / 이미지출처 :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예전의 인동향교가 어디 있었는지는 알 수 없네요. 예전 항공사진이나 지도가 있다면 찾겠는데 알 수가 없습니다. 1872년 지방지와 1913년 지적도를 토대로 현재 옥산 앞이 아닐까 하고 표시한 것입니다. 그냥 추정이라고 봐주시기 바라며 현재 인동향교가 있는 곳은 낙동강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예전 인동향교는 낙동강과 거리가 멀었는데 현재는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그래도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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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진성의 중요성을 강조한 성곽우주석

부산진역 폐역되고 동구 문화플랫폼으로 바뀌었더군요. 동구 문화플랫폼에서 조방쪽으로 얼마 걸어가니 벽면에 익숙한 글자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상단은 "세계와 소통하는 곳"이라고 적혀져 있습니다. 부산포 개항 때문에 세계와 소통하는 곳이라고 적어 놓은 것 같습니다. 철판 위에는 남요인후(南徼咽喉)라고 한문과 한글로 적어 놓았고, "이곳은 나라의 목에 해당하는 남쪽 국경이다"이라는 내용을 풀어 놓았습니다. 하단부에는 "대한민국의 관문 개방성과 포용성을 지닌 곳, 유구한 역사와 다채로운 문화가 공존하는 곳, 혁신적 비전과 푸른 희망이 있는 미래를 꿈꾸는 곳, 부산항을 품은 곳, 세계를 향한 미래가 있는 곳, 거대한 변화의 물결을 따라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곳"이라고 적어 놓았습니다. 그 바로 옆 상단에는 "부산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라고 적어 놓았습니다. 서문쇄약(西門鎖鑰)의 한자와 "서문은 나라를 지키는 자물쇠 같은 곳"한글로 적어 놓았습니다. 어딘지 모르지만 서문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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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교 100년이 넘은 영월초등학교를 가다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에 있는 영월초등학교는 지난 1912년 7월 2일 영월공립보통학교로 개교합니다. 현재 112년이 넘은 학교입니다. 영월군에서는 가장 빠르게 근대화 교육이 실시된 곳이고, 영월군의 근대교육의 첫 발자국이 영월초등학교입니다. 영월군에 있는 초등학교 개교년도를 알아보면 옥동초 1925년 10월, 연당초 1935년 11월, 녹전초 1936년 10월, 구례초 1939년 9월, 마차초 1941년 6월입니다. 면 단위의 학교들은 영월초등학교보다 늦게 개교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보통 100주년 하면 기념비를 세우는데 영월초등학교는 어디서 예산을 많이가져왔는지는 몰라도 백년관이라는 건물이 있습니다. 그리고 1912년 개교라고 적어 놓았습니다. 하지만 기념비와 1영월초등학교 100년사 발행하였다고 합니다. 백년관은 2012년 7월 16일 준공을 하는데 1912년 7월 2일 개교한 영월초등학교의 개교한 월에 맞추어서 백년관을 준공합니다. 이게 영월초등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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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영도 속의 제주

부산 영도구는 섬이다. 섬이면서 자치구이기도 합니다. 광역시중에서 섬에 자치구가 있는 곳은 영도구, 거제시, 남해군, 완도군 등이지 않을까 하네요. 영도구를 걷다가 본 제주은행과 제주도민회관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도 영도가 시작하는 입구에서 만날 수 있는 제주는 영도 속에 작은 제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저번에도 이야기하였지만 영도에 제주도 출신들이 많은데 1948년 4.3사건이 일어나 제주도에서 부산으로 이사와 정착한 곳이 영도입니다. 그러다보니 영도 안에서 제주의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제주은행 같은 경우 부산시내에서 오직 영도에서만 만날 수 있을 정도이고, 제주도민회관과 제주도민회가 있는 곳입니다. 제주도에서 넘어온 분들이 활동하였던 것이 해녀였으며 한참 때는 많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제주출신들이 3~4만 명이 영도에 살고 있고 해마다 4.3사건 위령제도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제주은행이나 제주도민회관 등이 있을만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1997년 IMF이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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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각산 육화정 기록은 없을까?

<거제부도(巨濟府圖)>중 하단부에 그려져 있는 수조(水操)모습으로 / 이미지출처 :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 각산에는 육화정, 안산에는 신당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 이미지출처 :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 육화정을 보면 2층 누각이며 낮은 곳에 있는 것이 보입니다. / 이미지출처 :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 동아대학교에서 소장하고 있는 <거제부도>를 보면 각산에 육화정이라는 누정이 보입니다. 육화정 누정은 2층 누정이며 팔작지붕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육화정이라는 누정에 관하여는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1899년 거제읍지 누정편을 보면 죽림포애는 대변정(待變亭), 제승정(制勝亭), 운주루(運籌樓)가 있었다고 하며 거제읍에는 진남루(鎭南樓), 사중대(師中臺)가 있었다고 하지만 육화정은 보이지 않습니다. 산청 환아정 안의 광풍루 밀양 영남루 육화정은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2층 누각입니다.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 산청 환아정, 함양 학사루, 안의 광풍루, 삼가 기양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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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면 다 사람이냐?

창원향교 주차장에서 본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비입니다. 주차장 처음 생길때 외부에 노출되었다가 현재는 창원향교 안으로 옮겼습니다. 유교하면 조선 건국의 이념이요 종교인데 이게 조선의 멸망과 함께 사라진줄 알았는데 사라지지 않고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지금 향교는 예전의 교육적인 기능은 사라지고 제향적인 공간으로 남겨져 있습니다만 사람의 기본에 관하여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사람이 항상 갖추어야 하는 다섯 가지 도리로 어질고, 의롭고, 예의 있고, 지혜로우며,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오상(五常)이라고 합니다. 이 인의예지신의 이야기를 도성에 하고자 성문에 사용하였고, 동대문 흥인지문(興仁之門), 서대문 돈의문(敦義門), 남대문 숭례문(崇禮門), 북대문 숙정문(肅靖門), 그리고 보신각(普信閣)입니다. 이러한 부분들은 도성뿐 아니라 지방에도 사용되었다고 필자가 이야기하였습니다. 인의예지를 사용한 성문 지퍼가 열린 것을 모르고 깜빡 잊어버렸을 때 “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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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마산극장 밀양아리랑과 화폐개혁

1962년 6월 8일 마산일보(현.경남신문) 2면에 실린 마산극장 광고입니다. 영화는 <밀양아리랑>으로 1961년 제작한 영화로 청소년 관람불가였습니다. 양주남 감독, 김희갑, 허장강 출연하는 영화입니다. 영화 내용은 "밀양 양반집 아들이 서울로 과거를 보러간 뒤, 그와 정혼한 처녀 아랑은 평소 그녀를 탐해오던 한 관헌이 겁탈하려하자 정결을 지키려다 죽음을 당한다. 그뒤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밀양 사또로 부임해 온 그는 아랑을 죽인 관헌을 색출하여 처단하고 그녀의 넋을 위로 한다."는 것으로 현재 밀양의 아랑전설의 이야기를 소재로 영화한 것입니다. 아랑전설하니 컴퓨터오락실에 나오는 격투기 게임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밀양에서 전해오는 아랑전설의 이야기입니다. 지금도 영남루 밑에는 아랑의 혼백에게 제사지낸 아랑각(阿娘閣)이 있습니다. 또한 《밀양아리랑》도 이 영남루 비화(悲話)에서 발생하였습니다. 해마다 밀양에서 열리는 아리랑대축제도 아랑제라고도 불리는 것입니다. <밀양아리랑>을 상영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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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군 청소년 및 어린이 버스요금 100원

함안군은 청소년·어린이에게 버스 요금 100원으로 시내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한다는 기사입니다. 시행은 7월 1일부터 진행한다고 하는 기사인데 경남에서는 하동군에 이어 2번째로 시행하는 정책입니다. 기존 요금은 청소년 1000원, 어린이 750원이었는데 요금 100원만으로 진행이 되는데 현금은 되지 않고 교통카드만 지원이 된다고 합니다. "버스 요금 100원" 함안 어린이· 청소년 좋겠네~ 함안지역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100원으로 시내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됐다. 함안군은 지난 11일 동일익스프레스와 청소년·어린이 100원 행복버... www.knnews.co.kr 사실 시내버스 청소년 어린이 지원사업은 전라남도에서 먼저 시행을 하였습니다. 지난 2023년 9월 전남 순천 시내버스를 타보니 성인은 정상적으로 받고 있지만 청소년과 어린이들에게는 100원의 요금을 받고 있더군요. 1,200원의 요금이 아닌 100원, 750원 요금이 아닌 100원의 요금을 내고 시내버스를 탄다는 것이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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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산역은 사라지고 교차로가 생겼다

구마산역은 마산선이 개통되고 1910년이 되어 역이 개통되었으며 1977년 통합 마산역이 들어서면서 페역이 되었습니다. 일본인이 주로 살았던 곳은 마산역이었고, 조선인들이 주로 살았던 구마산(원마산이었는데 일본인들이 살았던 곳이라고 하여 신마산 조선인이 살았던 곳은 오래된 마산이라고 하여 구마산이라 불림) 에 역이 등장함으로 굳이 마산역까지 갈 필요성이 없어졌습니다. 힐제강점기 지도에는 대정5년(1916년)측량을 하고 대정8년(1919년) 지도 제작한 것으로 나옵니다. 당시 구마산역의 모습이 보이지만 북마산역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북마산역은 1924년 만들어지기 때문에 1919년 지도에는 보이지가 않습니다. 당시 구마산역은 역만 딸랑있는 모습임을 알 수 있습니다. 상남리는 작은 마을을 이루고 있고, 창신고등학교가 있는 상남2동은 공장1개동과 창신학교를 제외하고는 민가가 보이지 않습니다. 구마산역이 1910년 7월 생길 때 주민들이 많이 사는 마산포 부근이 아닌 허허벌판에 세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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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포해전 승전 432주년 기념하며

지금으로 부터 432년 전 임진왜란 중 이순신함대의 옥포해전과 합포해전이 벌어지는 날입니다. 음력으로 1592년 5월 7일 양력으로 1592년 6월 16일입니다. 거제의 경우 옥포해전에 관한 성대한 축제가 벌어지는 것에 비해 합포해전은 그 어디에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또한 합포해전은 엉뚱한 주장을 한 학자들에 의해 전혀 관계도 없는 곳에 합포해전지를 만들어 놓고 또한 억지로 우기고 있는 실정이며, 그 부분에 대해 잘못되었다고 하여도 진행이되고 있지 않습니다. 몇 차례 창원시에 건의하여 합포해전지 문제를 바로 잡아달라고 하여도 예산 부족이라는 핑계 아닌 핑계로 아직도 정리가 되고 있지 않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합포해전지가 논란이 되니 두 가지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정도일 것입니다. 그동안 필자의 블로그와 오프라인에서 많은 이야기를 하였지만 아직도 진해 학계에 합포해전지라는 안내판 덕분에 학계로 아는 사람이 대부분임.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이제 점점 설득을 잃어가고 있으며 진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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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례역 육교도 기차레일로 만든 육교이다

사상역에서 부전역을 가다가 본 육교. 잠시 스쳐지나갔지만 육교는 기차레일로 만든 것 같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직접 레일로 만든 육교를 보려고 가 보았습니다. 현재 있는 곳은 예전 주례역(페역)에 있던 육교였습니다. 현재는 주례역은 페역이 되었으며 주례동 주민들이 지하철 주례역을 이용할 때 사용하는 육교입니다. 현재 경부선과 가야선이 지나가는 곳이라 자주 기차가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민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담장을 높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러다보니 레일이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폐역이 된 주례역은 부산 도시철도 2호선이 생기기전인인 1989년에 동서통근열차를 운행하기 위해 설치된 임시승강장이라고 합니다. 부산 도시철도 2호선 호포역 ~ 서면역 구간이 개통되면서 2002년 12월 1일 마지막 운행을 하고 다음 날부터 동서통근열차가 폐지되었고 주례역은 폐역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주례역에 있는 육교에 관한 자료가 보이지 않네요. 이 육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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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 2024에 참가한 축구대표팀 상징 동물은

UEFA 유로 2024는 17번째로 개최되는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가 독일에서 열리고 있는데요. 축구를 좋아하는 찐팬들은 경기 하나도 놓치지 않고 보겠지만 경기 하이라이트만 보아도 재미가 있습니다. 유로 2024에 나온 각 나라 축구대표팀의 유니폼에 새겨진 엠블럼을 잘 보면 재미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현재 유럽축구연맹에 총 55개 회원국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중 절반 이상 회원국에서 회원국 축구연맹을 상징하는 동물이 보이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동물을 상징하는 회원국들이 있습니다. 독일 축구대표팀 필자가 찾아보니 20개 정도의 회원국이 동물을 표현하고 있는데 크게 2가지입니다. 바로 사자와 독수리, 독수리와 사자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사자와 독수리에 들어가지 않는 회원국은 서양 용을 상징하는 웨일즈, 닭을 상징하는 프랑스이고 나머지 국가들은 독수리나 사자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먼저 독수리는 예전 로마시대의 상징이라 그런지 독수리를 축구대표팀에 적용한 국가들이 제법 있습니다. 독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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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사스러워라! 안용복 기념 부산포 개항문화관

부산에 있는 <안용복 부산포 개항문화관>을 가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여러가지들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이 부분은 다음에 시간이 나면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필자가 놀랐던 것은 다름이 아니라 <안용복 부산포 개항문화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콘텐츠 때문입니다. 필자는 지난 2009년 5월 9일부터 시작하여 2009년 10월 5일까지 총 10회에 걸쳐서 필자의 블로그(당시 팬저의국방여행)에 올렸습니다. 이후 몇 차례 더 블로그에 글을 올렸지만 이는 몇 년 또는 10년 뒤에 올린 것이라 본격적으로 올린 시기는 2009년이었습니다. 필자가 발제글을 작성하기 전에는 주로 자성대라는 지명과 부산진지성이라는 지명을 사용하고 있을때였습니다. 부산진성을 부르지 못하고 부산(포)왜성의 작은 성이라는 부산진지성은 잘못되었다고 부산시 동구청 등에 민원을 제기하기도 하였지만 잘 바뀌지 않았습니다. 필자가 부산진성과 자성대왜성은 2008년 10월 13일 1차 방문하였고, 2차는 2009년 9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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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포개항가도 경사형 엘리베이터

임진왜란 당시 부산(포)왜성이 있었던 증산은 해발 130m 정도 되는 야산입니다. 지하철이 다니는 좌천역에서 증산 정상부까지는 걸어서 도보로 30분 정도 걸립니다. 필자도 13년만에 부산(포)왜성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13년 전에는 자동차를 가지고와 주차장에 세워두고 잠시 걸어간 기억이 있는데 이번에는 좌천역에서 걸어가보려고 하였습니다. 정공단 옆에서 독도주차장까지 걸어가면서 찍은 사진 부산진교회에서 독도주차장까지 본 모습 그런데 정공단에서 출발하자 마자 상당히 가파른 곳을 보니 만만치 않겠더군요. 정공단에서 독도주차장까지는 100m정도 되는 거리 정도인데도 속도가 나지 않더군요. 그나마 독도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 <안용복 기념 부산포 개항문화관>까지 도착을 하였습니다. 아직도 300m 남았는데 어떻게 올라가나? 하고 있었습니다. <안용복 기념 부산포 개항문화관>에서 밖을 내려다 보니 경사진 엘리베이터가 있더군요. 그래서 아 저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면 좋겠구나?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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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포 개항과 부산포왜관

부산 좌천역을 가니 <부산포 개항가도 역사 스토리골목>이라는 이정표를 자주 보게 되더군요. 부산포 개항은 근대적인 개항인 부산항 개항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부산항 개항이 1876년(고종 13) 2월 27일이라 그것을 기념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가졌지만 가많히 생각해보니 그건 좌천동이 아닌 중앙동인데 여긴 어디지 싶었습니다. 그리고 조금 걸어가자 왜? 부산포 개항을 이야기하는지 알았습니다. 바로 부산포개항이라는 것이 1407년 실시하였던 부산포와 제포 개항을 이야기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필자가 제포왜관에 관하여는 몇 번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또한 제포왜관지에서 발굴된 문화재를 보러도 갔었습니다. 제포왜관은 조선이 힘이 있을때 만든 무역항이다 2019년 8월의 이야기입니다. 제포왜관터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제포왜관은 조선이 일본보다 확실... blog.naver.com 일단 부산포왜관에 관하여 작성된 것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부산포 왜관 일대 이 일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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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거제 다리는 어디 있을까?

1899년 거제읍지를 보면 교량에 관한 이야기가 있는데 목교와 석교 이야기가 나옵니다. 목교는 재부서1리영발이라고 적혀있고, 석교는 재군동남1리 장7보 횡3보라 적혀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목교와 석교가 각 하나씩 있는 것으로 적혀져 있습니다. / 이미지출처 :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1872년 지방지를 보면 거제부에 가장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 다리가 하나 있습니다. 그런데 동헌과 객사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거제읍지에 적혀져 있는 목교임을 알 수 있습니다. 목교는 읍내천을 따라 세워져 있고 서하리와 서정이를 이어주며, 남동리까지 연결이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형옥과 장시가 가까이 있고 활터인 연무정(鍊武亭)과 신당과 가운데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왕래가 많았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1872년 지방지에는 목교는 보이는데 석교가 보이지가 않습니다. / 이미지출처 :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1916년 지적도에 다리는 표시가 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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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의 오리정은 어디일까?

오리정(五里亭)에 관하여 백과사전에서 살펴보면 “고려 시대 각 지방 고을이 빈객을 영송하기 위하여 군현에서 5리(里) 정도의 거리에 세운 정자를 이르는 말. 정(亭)은 거리를 헤아리는 수사로 혹자는 관아에서 5리 정도의 거리를 이른다고도 함. 고려 시대 관찰사가 처음 부임해오면, 고을 수령이 관복(官服)을 입고, 오리정에 나가 땅에 엎드려 영접하였음.” 이라고 적혀있습니다. 춘향전에 이몽룡과 춘향이가 한양으로 가는 이몽룡과 마지막 작별한 곳이 오리정입니다. 남원에서 오리정을 복원하여 놓았으며 오리정이라고 검색하면 남원의 오리정이 많이 나옵니다. 거제부에 관찰사는 견내량을 지나서 오는 곳 거제부에서 견내량 방향 5리가 되는 곳에 사직단이 있으며 사직단 주변이라고 제가 이야기하였습니다. 사직단 앞에 있는 국유지 땅 야산이 오리정으로 저는 처음 추정하였는데 이곳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 이미지출처 :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 <거제부도> 지도를 보니 사직단 뒤편에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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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 근대 역사 흔적 길 동판

어제 이야기한 부산 "삶의 생각길" 표지판은 전봇대와 같이 높이 4~5미터 위에 설치되어져 있는 표지판입니다. 오늘 소개할 것은 부산 영도구에 있는 "영도 근대 역사 흔적 길"입니다. "영도 근대 역사 흔적 길"은 도로 바닥에 설치되어져 있습니다. 사실 둘 다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잘 찾기가 힘든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도 바닥에 있는 곳이 그나마 눈에 잘 들어옵니다. "영도 근대 역사 흔적 길"은 지난 2020년 시작한 길입니다. 영도는 조선시대 절영도로 말을 키우는 곳이라 주민들이 상주하여 사는 인원이 많지 않았으며, 일제강점기에 본격적으로 주민들이 이주하면서 살았던 길입니다. 그 시기가 대략 100년 정도 됩니다. 1924년 발행한 지도를 바탕으로 현재까지 존속하고 있는 길을 추출하여 영도 100년 길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으며, 영도에 들어온 도자기 제조공장, 각종 조선소, 각종 제염소, 시장, 극장, 유곽 등을 동판에 새겨 100년전 장소를 찾아갈 수 있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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