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비축소 문제
워싱턴 회의(1921~1922) : 일본을 견제하고자 미5-영5-알3-프1.75-이1.75의 주력함 비율을 결정하고 10년간 주력함 건조 중단을 규정한 5개국 조약(1922), 미-영-일-프의 태평양 영토 보유권 약속 및 영-일 동맹을 파기한 4개국 조약(1921), 중국의 영토보전과 문호개방 원칙 존중과 21개조 요구 철회를 약속(이후 일본이 파기)한 9개국 조약(1922)이 있다. 제네바 군축회의(1927) : 보조함 비율을 정하기 위해 결성, 프-이 불참, 미-영-일 대립으로 미결정 런던 군축회의(1930) : 대공황으로 인한 군비지출을 삭감하기 위해 보조함 비율 결정(미10, 영10, 일7) 제네바 군축회의(1932) : 61개국이 해군 외의 모든 군비축소를 토의, 무산되었고, 1933년 히틀러의 정권장악으로 군비확장이 주요 관심사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