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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비축소 문제

워싱턴 회의(1921~1922) : 일본을 견제하고자 미5-영5-알3-프1.75-이1.75의 주력함 비율을 결정하고 10년간 주력함 건조 중단을 규정한 5개국 조약(1922), 미-영-일-프의 태평양 영토 보유권 약속 및 영-일 동맹을 파기한 4개국 조약(1921), 중국의 영토보전과 문호개방 원칙 존중과 21개조 요구 철회를 약속(이후 일본이 파기)한 9개국 조약(1922)이 있다. 제네바 군축회의(1927) : 보조함 비율을 정하기 위해 결성, 프-이 불참, 미-영-일 대립으로 미결정 런던 군축회의(1930) : 대공황으로 인한 군비지출을 삭감하기 위해 보조함 비율 결정(미10, 영10, 일7) 제네바 군축회의(1932) : 61개국이 해군 외의 모든 군비축소를 토의, 무산되었고, 1933년 히틀러의 정권장악으로 군비확장이 주요 관심사가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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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 대한 배상금 감축 문제

도스안(1924) : 미국의 2억 달러 차관 제공으로 마르크 안정화, 향후 5년간 지불 예정 영안(1929) : 배상금 1/4로 축소, 지불 연한 59년으로 연장 후바 모라토리엄(1929) : 1년간 채무지급 유예 로잔 회의(1932) : 배상금 총액 1/44로 재조정, 경기 회복 때까지 지불 유예 * 나치스 정권의 배상거부(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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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취의 시대

국제연맹(1920) : 세계평화의 수립과 인류문화의 향상을 위해 결성, 총회는 가맹국이 1표씩 표결권을 행사하고, 이사회는 영국, 프랑스, 미국, 이탈리아, 일본(상임이사국)에 총회에서 선출된 4개국으로 구성(비상임이사국), 상설사무국은 제네바에서, 독일과 소련 가맹 불허 및 미국의 불참, 임의 탈퇴 가능, 무력적 제재기구 부재로 인해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성취의 시대(1925~1932) 로카르노 조약(1925) : 독일이 배상금을 지불하지 못하자 1923년 프랑스는 최대공업지대인 루르 점령으로 인해 독일 외상 슈트레제만의 제의로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벨기에,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사이에서 평화로운 방법으로 해결할 것을 약속하여 적대 의식을 해소하고 독일의 국제연맹 가입을 실현시켰다.(1926) 켈로그-브리앙 조약(1928, 부전 조약) : 미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15개국이 참여하여 전쟁을 적극적으로 배제하기로 했으나 중대시에 유보조건으로 내세우고 협정 위배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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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사유 체제

파리 강화 회의(1919.1.18.) : 미국(윌슨), 영국(로이드 조지), 프랑스(클레망소) 주도 하에 전승국 27개국 참가, 전후 문제 토의 끝에 월슨이 14개조 조항을 제창하여 민족자결주의 기반으로 제국주의를 지양하고 평화로운 세계질서 수립의 명목으로 영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이해관계 형성 및 독일에 대한 응징 패전국과의 조약 베르사유 조약(1919.6.28., 독일과 연합국) : 독일의 모든 해외 식민지 포기, 알자스와 로렌을 프랑스에 반환, 육군 10만, 군함 36척으로 한정, 잠수함과 공군 금지, 주무기 생산 금지, 30년에 걸쳐 1320억 마르크 지불, 광산 지대인 자르 지방을 15년간 국제연맹이 관리, 라인란트의 비무장지대화,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 폐기, 폴란드 독립 및 폴란드 회랑 흭득, 단치히는 자유시가 됨.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 생제르맹 조약(1919.9.10.)과 트리아농 조약(1920.6.4.)으로 오스트리아,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로 분리 불가리아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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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혁명 이후 러시아

내란(1918~1920) : 볼셰비키는 러시아 공산당으로 명칭 변경 및 모스크바로 천도하여 신헌법 제정, 전시 공산주의 체제로 인해 농민 불만이 내란으로 확대, 휴전 후 농촌에 거주하던 체고인과 오스트리아군 포로 및 도망병들이 본국에 송환되자 지방 도시를 점령하여 체코 여단 구성, 반볼셰비키 군대인 백군과 함께 예카테린부르크에 접근하여 니콜라이 2세와 그의 가족들 총살(1918.7.), 이후, 미국, 영국, 일본군이 소련에 상륙, 소비에트 정부는 비밀경찰인 체카를 창설(1917.12.)하여 반대자와 비협력자 탄압하고 트로츠키가 적군을 조직하여 백군 공격, 끝내 외국의 소극적 간섭과 반혁명군의 불안정한 지휘체계로 내란 진압 전시 공산주의 : 내전의 군사적 비상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철저한 계획 생산 및 분배 실시, 사회주의로의 직접적 이행을 위한 정책, 반농위원회를 구성하여 부농에 대한 계급투쟁으로 식량을 조달하려 했으나, 중농이 주류를 차지하여 실패로 돌아갔고, 일부는 녹군을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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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민테른 국제 공산당 조직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인 코민테른 창설 : 모스크바에서 1919년 3월에 제3인터내셔널 선언, 전 세계 공산당의 힘을 통합하여 세계혁명 실현 목적, 후진 여러 민족의 자결권과 식민지의 해방 주장 코민테른 제2차 대회(1920) : 세계 공산주의와 소련의 이해관계가 동일함을 선언 인민전선 형성 : 반제국주의적인 민족주의 진영과 합작, 1930년대 파시즘에 대해 공동전략 전술 채택 해산 : 독-소 불가침 조약(1939)로 포기, 독일의 소련 공격(1941), 연합국의 공산주의 혁명에 대한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1943년에 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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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10월 혁명

배경 : 볼셰비키 영향력 강화(수도권 민중 지지, 8월 말~9월 초 집행부 지도권 장악), 농업정책 전환으로 지지 강화, 독일 킬 군항 반란과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체포소식 등으로 혁명 분위기 조성 레닌 : '국가와 혁명'을 통해 프롤레타리아 국가를 폭력혁명으로 대체할 당위성 입증 시도, 트로츠키와 함께 적위대를 조직하여 볼셰비키 중앙위원회의 봉기안이 통과(10.10.)되자 군사혁명위원회 설치(10.11.) 10월 혁명 : 무장봉기대의 주요 기관 접수(10.24.), 임시정부로부터 권력 이양(10.25.), 케렌스키 프랑스 망명 및 군사혁명위원회 정부 접수, 무산자계급의 정권 흭득 및 후진적 사회의 근대화 경로 개척, 자본주의 사회를 상대적으로 인간화시키는데 기여 혁명 정부 제2차 전 러시아 소비에트 대회(1917.11.) : 소비에트 공화국 선포, 레닌이 의장이고 트로츠키가 외무위원인 인민위원회(내각) 구성, 모든 교전국에 무병합/무배상 강화 촉구 및 최소 3개월 휴전 제의로 평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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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2월 혁명과 임시정부

배경 : 전쟁 장기화로 군수물자 부족 및 식량 부족으로 국민생활 압박, 군 사기 저하, 황후와 라스푸틴의 실정으로 부정부패 만연 2월 혁명 : 노-병 소비에트를 조직하여 페트로그라드 민중 시위(1917.2.23.)로 인해 니콜라이 2세가 퇴위를 선언(1917.3.2.)함으로써 로마노프 왕조가 몰락하게된다. 임시정부 수립 : 보수적, 자유주의적 경향이 짙은 입헌민주당과 10월당이 주축이 되어 임시정부 구성(1917.3.4.), 우경화 현상 발생(유일한 공화주의자 케렌스키 법무장관), 부의장 케렌스키가 노-병 소비에트를 조직하여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을 모집하여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2.20.)를 구성해 임시정부에 불참하여 노동계급의 이익 실현을 위해 압력을 가함, 프롤레타리아적 소비에트와 부르주아적 임시정부의 이원적 권력 상태로 공존 임시정부 정책 : 시민적 자유 제약, 불평등 폐지, 정치범에 대한 대사면 선포, 제헌의회 소집을 통해 토지 분배 등 자유주의 개혁 지향, 전쟁의 계속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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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1905년 혁명

1890년대 배경 : 황제(차르) 1인 독재 전제정, 농노제 발달로 자본주의 지체, 산업화 진행 및 부르주아의 대두로 자유주의 발전, 러-일 전쟁으로 물가 상승, 귀족과 농노의 신분제로 인한 신민사회로 인해 시민층 형성 봉쇄, 공장노동자 증가로 노동운동 활발, 사회주의 사상 확산, 자유주의와 혁명운동 발달, 크림전쟁과 러-일 전쟁 패배 1905년 혁명 전개 피의 일요일 사건(구력 1905.1.9., 그레고리력 1905.1.22.) : 러-일 전쟁 패배로 상트페테르부르크 노동자들이 노동조건 개선, 헌법제정회의 개설, 인신 불가침성, 토지 이양의 주장을 내세우고 시위를 벌임, 겨울궁전의 수비대가 무차별 사격을 가하여 수천 명의 사상자 발생 민중투쟁(1905 여름~가을) : 민주공화정 수립, 8시간 노동제, 대토지 몰수 및 분배의 주장을 내세우고, 노동자 대표 소비에트와 전 러시아 농민동맹이라는 자체 대표기관을 형성하여 반봉건 시민 민주주의 혁명을 일으킨다. 또한, 전함 포템킨호에서 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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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의회 민주주의 혁명

영국 공격 출항 명령을 거부한 킬 군항 수병의 시위(1918.11.3.) 및 노(노동자)-병(수병) 소비에트 결성에서 시작되어 확산되어 황제의 퇴위와 민주적 정부 수립 요구 독립사민당의 주도로 노-병 소비에트 구성 및 민주사회주의 공화국 선포(11.8.), 노동자 대부분이 파업하고 시위하자 빌헬름 2세는 퇴위하여 네덜란드로 망명(11.9.) 및 연합국과의 휴전 조약 조인(1918.11.11.) 사회주의 노선 대립 : 다수파 사민당 - 에베르트 주도의 의회 민주주의 노선 추구 및 자유군단 결성, 독립사민당 - 즉각적인 사회주의 국가 건설 주장, 스파르타쿠스단 - 리프크네히트와 로자 룩셈부르크의 주도의 극좌파적인 성향으로 러시아 혁명과 같은 프롤레타리아 독재 지향 공산 혁명 실패 : 스파르타쿠스단이 독일공산당(1918.12.) 창건 및 독립사민당의 좌파 영입하여 베를린에서 혁명정부 수립(1919.1.), 대규모 폭동을 일으켰으나 자유군단에 의해 진압되어 리프크네히트와 룩셈부르크 살해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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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

1914.7.~1918.11. 계기 : 사라예보 사건(1914.6.28.) - 세르비아군 흑수단 소속의 청년 프린치프가 오스트리아 제위계승자 페르디난트 대공 부부 암살 발발 :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에 선전포고(1914.7.28.), 독일은 중립국 벨기에 침공, 이탈리아를 제외한 삼국동맹과 삼국협상 모두 전쟁 상태 돌입 대결 구도 : 동맹국 진영의 독일, 오스트리아, 오스만 제국, 불가리아 등 vs 연합국 진영의 영국, 프랑스, 러시아, 일본 등 전쟁 초기 슐리펜 계획 : 러-프 동맹을 대응하고자 양면전쟁 실시, 벨기에에서 프랑스로 침입하여 서부전선에서 신속한 승리를 거두고 동부에 힘을 쏟아 러시아를 공격함으로써 전쟁을 신속히 종결하고자 함, 마른 전투(9월 초) 등 프랑스로의 진격이 저지되어 참호를 구축으로 인해 장기전 돌입, 동부전선은 타넨베르크 전투에서 독일군 승리(8월 말), 동부전선에서 독일이 승리했으나 서부군이 동부로 빠져 슐리펜 계획 차질 외교전 : 중립국을 가담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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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반 국제적 긴장의 격화

독일 3B 정책 : 중동 지역 진출 목적, 비잔티움-바그다드 간 철도를 부설하여 베를린-비잔티움-바그다드 연결, 영국의 3C 정책과 충돌하였고, 러시아의 튀르크 및 지중해 진출 정책과 대립하여 영-러 협상이 이어짐. 제1, 2차 모로코 사건 : 프랑스는 파쇼다 사건과 영-프 협상(1904)을 통해 모로코에 대한 지위를 인정받고 있었음. 제1차 모로코 사건(1905) : 빌헬름 2세의 모로코 탕헤르항 방문 및 영토보전과 문호개방 주장, 에스파냐의 알헤시라스 국제회의에서 프랑스 우위 인정 및 독일의 양보로 일단락 제2차 모로코 사건(1911) : 모로코 내란으로 인해 프랑스과 독일 군대 파견, 영국 등이 프랑스를 지지하여 독일이 양보하고 프랑스는 모로코를 보호령으로 삼고, 독일은 대가로 프랑스령 콩고 일부인 토고와 카메룬 증정 제1, 2차 발칸 전쟁 : 오스트리아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합병 선언(1908) -> 세르비아 격노 제1차 발칸 전쟁(1912) : 무스타파 케말의 근대화를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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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협상

배경 : 영국은 다른 열강의 발전으로 절대적 우위를 취할 수 없게 되자 독일을 견제하는 제국주의 정책 고수, 크루거 전보 사건(1896) - 빌헬름 2세가 보어 공화국 대통령 크루거에게 제임슨의 트란스발 습격 격퇴 축하하는 전문 전송, 독일은 비스마르크가 실각(1890)하고 빌헬름 2세가 친정하여 팽창정책을 추진, 군비를 확장하고 해군법을 제정(1898)하여 3B 정책 추진 재보장 조약 만료(1890) : 빌헬름 2세의 갱신 거부로 러시아는 프랑스에 접근 러시아-프랑스 동맹 : 정치협약(1891) - 양국의 평화를 위해 협의, 군사동맹(1894) - 삼국동맹이 존속하는한 공격받을 시 원조 영국-프랑스 협상(1904) : 러-일 전쟁 비개입 및 독일 견제를 위해 접근, 양국 식민지 인정, 이전의 대립 청산, 프랑스는 이집트를, 영국은 모로코를 양보 영국-러시아 협상(1907) : 양국 누적된 문제 해결, 독일의 중동 진출 공동 대처, 페르시아(이란) 북부는 러시아, 남부는 영국 세력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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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동맹

삼제 협약(1873) : 독일-오스트리아-러시아, 프랑스의 고립을 위해 막연하게 협약국의 혁명운동에 대한 군주 사이의 유대강화 강조 베를린회의(1878) : 러시아 억제, 오스트리아와 영국에 유리, 베를린조약으로 영국-오스트리아-프랑스-독일-이탈리아-튀르크-러시아 7개국 합의 이국 동맹(1879) : 독일-오스트리아 간 상호 방위를 위한 비밀 군사 동맹, 러시아 침공 시 지원 삼제 동맹(1881) : 독일-오스트리아-러시아, 다른 국가의 공격을 받을 시 우호적 중립 유지, 튀르크에 대해서는 사전 합의, 3년마다 갱신하다가 러시아와 오스트리아의 관계가 약화되자 1887년에 해체 삼국 동맹(1882) : 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 이탈리아가 튀니지를 얻고자 했으나 프랑스가 먼저 점령하여 이탈리아가 독일과 오스트리아에 접근 베를린서아프리카회의(1884~1885) : 콩고 분지 지역을 중심으로 서구 열강들이 아프리카 분할에 대해 논의, 콩고강 유역은 포르투갈 대신 벨기에의 레오폴트 2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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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강의 아시아와 태평양 분할

영국 인도 제국(1876) : 인도 식민지화, 빅토리아 여왕이 인도 황제 겸임 네팔-버마 점령, 아프가니스탄 보호국화, 말레이 연방(말레이반도 점령 후 조직, 1895) 프랑스 사이공 점령 및 제1차 사이공 조약(1862) 프랑스령 인도차이나(1887) : 캄보디아, 베트남 합쳐 신설, 이후 라오스 추가 네덜란드 : 자바, 말루쿠 제도, 수마트라, 보르네오 일부에 네달란드령 동인도 신설(1904) 러시아 : 부동항을 탐색하기 위해 남하정책 고수 동남 방면 : 아이훈 조약(1858) - 헤이룽강 이북 차지, 베이징 조약(1860) - 연해주 흭득 서남 방면 : 중앙아시아의 투르키스탄 차지, 페르시아, 아프가니스탄, 파미르 고원 방면으로 진출을 시도하자 영국과 대립 미국 태평양의 섬 차지 : 미드웨이(1867), 하와이(1898) 합병 미국-에스파냐 전쟁(1898) : 메인호 사건으로 발발, 카리브해를 지배하고 쿠바 보호국화 및 푸에르토리코 흭득, 필리핀과 괌 흭득 후, 태평양 국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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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강의 아프리카 분할

영국 남아프리카 연방(1910) : 빈 회의 결과 케이프 식민지 흭득 -> 보어 전쟁(1899~1902, 보어인의 오렌지 자유국, 트란스발 흭득) -> 나탈까지 합쳐 조직 이집트 보호국화(1882) : 이집트 재정난을 이용하여 디즈레일리가 수에즈 운하 주식 모두 매입(1875)하여 프랑스와 공동소유, 이집트 군부의 아라비 파샤의 민족주의 혁명(1881)이 진압되어 실질적인 보호령으로 전락(1882), 종단정책으로 우간다, 수단, 동아프리카(케냐) 등을 보호령으로 삼음, 케이프타운-카이로-콜카타의 3C 정책 고수 프랑스 횡단정책 : 알제리 흭득(1830), 튀니지 흭득(1881), 사하라사막을 포함한 서아프리카, 적도아프리카, 동해안의 마다가스카르 흭득(1896), 영국의 이집트 지배와 프랑스의 모로코 지배를 인정하는 파쇼다 사건(1898) 이후, 영-프 협상에서 모로코를 보호령으로 삼음(1911) 독일 : 토고, 카메룬, 남서아프리카, 동아프리카 이탈리아 : 에리트레아, 소말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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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주식회사 형태의 대기업의 독점 현상, 금융자본주의 및 독점자본주의, 카르텔 등의 기업연합, 부르주아의 특권화, 복고적 권위주의, 영국 중심의 금융시장로 인한 자유무역 기반의 경제 세계화, 서유럽과 미국의 금본위제, 초과공급에 따른 공황현상의 주기적 등장으로 해외 진출 필요 및 권위주의적 국가관 강화, 사회계층의 양극화로 인한 좌익세력의 조직화 양상, 사회 안전판의 역할인 중간계급 형성, 보통선거제 확립 및 사회정책과 복지정책 추진으로 자유주의 확대, 민족갈등의 심화로 제국주의의 양상을 띄기 시작한다. 제국주의 : 해외로의 팽창과 식민지 정복을 통해 국가의 이익을 도모하고 위신을 세우는 정책, 사람과 제도와 문화를 이식하는 식민주의와 병행하여 사용, 제2차 산업혁명에 따른 자본주의 발달 및 식민 경쟁 심화, 경제 대불황, 인도주의, 인구 증가, 민족주의 등의 원인으로 제국주의를 전개해나갔고, 자국의 위신을 높이고자 심리적으로, 우수한 기독교 문화를 전파하고 개화하고자 문화적으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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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산업혁명과 유럽경제의 대불황

제2차 산업혁명 : 19세기 후반에 독일과 미국에서 전력과 석유를 이용하여 화학공업과 전기산업, 중화학공업의 발전으로 대량생산이 이루어낸 혁명을 말하며, 철도망, 대형 기선, 화학 및 생리학(화학비료, 저온살균법), 냉동보관 등의 기술이 발전하였다. 제2차 산업혁명이 전개됨에 따라 과잉생산이 이루어져 이윤율이 하락하고 정체되고 보호무역주의의 팽배로 인해 경제대불황이 발생하였다. 전세계적으로 독점적이고 금융적인 자본주의가 발달하여 후진국이나 저개발 지역을 중심으로 식민지경쟁을 심화하였고, 독일과 이탈리아의 통일 및 영국의 적극적 개입으로 유럽세력 균형이 파괴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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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유럽의 사회와 문화

자연과학 : 다윈의 진화론(1859)에서 사회과학, 인간관계, 제국주의에 적용된 스펜서의 사회적 다윈주의로 발달, 멘델의 유전법칙, 물리학과 화학의 발전, 전기학 발달, 통신기술 발달(모스의 전신, 벨의 전화기, 에디슨의 전구) 탐험과 운하 : 리빙스턴과 스탠리의 아프리카 탐험, 극지 탐험 - 미국의 피어리의 북극점 최초 도달, 노르웨이의 아문센의 남극점 최초 도달, 영국의 스콧의 남극점 도달, 수에즈 운하(1869), 킬 운하(1895), 파나마 운하(1914)로 해상교통의 혁명을 초래 철학 : 헤겔의 관념철학 - 변증법적 발전, 정 테제와 도전하는 안티테제의 대립으로 진태제 성립에 따른 과정의 연속, 영웅론과 국가의 중요성 강조, 콩트의 실증주의, 벤담의 공리주의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통한 자유주의와 자본주의 정당화 도시화 : 이촌향도 현상 및 사망률 감소로 도시화 진전, 인프라망 미구축으로 인해 환경오염 심화 및 도시 노동자들의 위험한 계급 인식으로 1830~40년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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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제반 이데올로기

보수주의 : 프랑스 혁명과 계몽사상 반발, 에드먼크 버크 등, 전통, 역사, 공동체 중시, 자유주의와 민족주의 운동 탄압, 1830년 7월 혁명 전까지 지배적 사상 자유주의 : 존 로크와 프랑스 계몽사상가에 의해 자유, 평등, 개인의 가치 중시, 인간이성 확신 및 능력 중시, 교육의 중요성 강조, 헌법 제정, 자유선거, 대의제정부, 권력분립 촉구, 부르주아지의 귀족에 대한 반항으로 추구하다가 정치적 자유주의에서 인색함을 보이며 보수화 낭만주의 : 시인 바이런에 의해 상상력과 자발적 감정의 고양 중시, 서구 합리주의의 기반 형성,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혼재, 민족주의로 인해 원시, 공동체, 순수주의의 민중문화로 재발전 민족주의 : 프랑스 혁명 이후로 절대주권을 소유한 민중 개념을 제공, 독일과 이탈리아 등 통일 영향 막대, 자유주의와 결합하였으나 국수적, 팽창적 성격을 드러내면서 제국주의적인 경향을 드러냄 사회주의 : 산업화와 자유주의 안티 테제로 출현, 프랑스에서 공동체를 통해 극복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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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러시아

차르 1인 전제국가, 농노제 유지, 자본주의 지체, 신분제 사회로 인해 타 유럽 국가에 비해 후진적이었다. 니콜라이 1세의 전제정치(1825~1855) : 농노제와 전제정치 폐지를 목표로 비밀리에 결사하고 입헌군주제를 지향한 데카브리스트의 봉기(1825)가 진압되자 출판물 검열, 대학 감독, 비밀경찰제를 운영하는 등 반동정치가 강화되었고, 지식인인 인텔리겐치아가 비밀경찰 감시하에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크림 전쟁(1853~1856) : 팔레스타인의 성지관리권이 프랑스로 넘어가자 러시아 정교회가 오스만 제국에 특권적 지위를 요구하였으나 거절하자 오스만 제국, 영국, 프랑스를 상대로 선전포고하여 발발, 세바스토폴 공방전(1855)에서 러시아 패배, 몰다비아와 왈라키아를 포기(오스만 튀르크 영토 보전 및 독립 보장 명시)하고 흑해의 중립을 약속한 파리 조약(1856) 체결 알렉산드르 2세(1855~1881) 농노해방령(1861) : 모든 농민 해방 및 상환금을 부담하면서 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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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미국

민주주의 발전 : 연방주의자 주도하에 중앙집권의 합중국 성립이 되었으나 반연방주의자인 제퍼슨 시대(1800~1809)가 도래하면서 민주주의 시작, 잭슨 시대(1829~1837)때 민주주의 기반 마련 국가적 통합과 국민의식 강화 : 영국 해군의 통상 방해, 캐나다 흭득 욕망, 프랑스와의 유대 강화로 인해 미-영 전쟁(1812~1814)이 발발하면서 국내 공업과 국민의식이 발달 및 먼로주의(1823) 제창 영토 팽창 : 나폴레옹으로부터 루이지에나 매입(1803), 에스파냐로부터 플로리다 매입(1819), 멕시코로부터 강탈하여 텍사스(1845), 캘리포니아(1848) 흭득 및 태평양 도달,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 매입(1867), 하와이를 1898년에 편입하여 1959년 50번째 주로 승격 1850년대에 산업화가 주로 동복부에서 진행되자 남북 간의 격차가 심해져 자본주의와 보호무역, 연방정부 강화를 주장한 북부 지역과 노예제에 따른 플랜테이션 경영, 자유무역, 지방 분권을 주장한 남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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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배경 : 1859년 이탈리아 통일 전쟁에서 롬바르디아 상실, 1866년 보오 전쟁에서 베네치아 상실 1867년, 헝가리의 마자르족과의 타협으로 자치를 허용, 이중 왕국 성립, 트리에스테의 이탈리아인은 이탈리아와 합병을 원하고, 세르비아인은 헝가리를 증오하면서 남부 슬라브 국가와 합병을 원하는 등 다양한 민족이 거주하여 불만이 많았음.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문제 : 오스만 튀르크 지배하의 세르비아인들이 해방을 기대했으나 1878년 베를린회의에서 좌절되자 오스트리아-헝가리-남부 슬라브 왕국(달마티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삼중 왕국을 제안했으나 마자르의 반대로 실패 및 오스만 제국의 청년투르크당 혁명을 틈타 오스트리아 합병(1908), 이로 인해 소수민족의 불만이 초래되어 제1차 세계대전의 원인이 됨. 유대인 문제 : 1870년대부터 증가, 1910년의 빈시장인 카를 뤼거는 반감이 높아 훗날 히틀러의 반유대주의의 기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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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통일

빈 회의 결과, 35개의 군주국과 4개의 자유시로 정비하여 독일 연방 구성, 프로이센 부각에서 라인 서부와 폴란드 영토를 흭득하였고, 오스트리아가 네덜란드와 남부독일 영토를 포기하면서 프로이센 중심으로 통일 과업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아짐. 관세동맹(1833) : 프로이센 중심의 인접 국가 참가(오스트리아 제외), 독일 내 관세 철폐, 화폐와 도량형 통일로 경제적 발전 촉진 및 정치적 통일에 영향 프랑크푸르트 국민의회(1848) : 2월 혁명의 영향, 통일 논의 실패 군주 동맹(1849) :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가 통일을 위해 체결 올뮈츠 협약(1850) : 오스트리아와 러시아 압력으로 군주 동맹 해산 및 독일 연방 부활 비스마르크의 철혈 정책 : 군제 개혁안을 놓고 빌헬름 1세와 의회가 대립하자 왕이 보수적인 비스마르크를 재상으로 등용하여 의회 동의 없이 과세하고 군제개혁을 단행하였으며, 철혈 정책을 단행하여 중앙집권적이고 군국주의적인 정책으로 통일하고자 함. 슐레스비히-홀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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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통일

샤르데냐 왕국 등 여러 왕국과 교황령, 오스트리아 세력으로 인해 분열되어있었음. 샤르데냐 왕국의 통일 카보우르 : 부국강병 정책으로 군대 개편 및 산업 장려, 크림 전쟁에 참전(1855)하여 영국과 프랑스의 호의 흭득 외교, 빌라프란카 조약(1859, 프랑스, 오스트리아와 단독 강화) 후 단결하여 북/중부 혁명정부와 합병을 요구하여 통합 및 프랑스에 니스/사보이 할양 가리발디 : 의용군인 붉은 셔츠대를 지휘하여 부르봉 왕실의 시칠리아 점령 및 나폴리 점령(1860), 공화주의 포기 및 사르데냐 왕에게 시칠리아와 나폴리를 헌납하면서 로마와 베네치아를 제외한 전 이탈리아 통일 이탈리아 왕국 : 1861.3.에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가 국왕으로 추대,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1866)에서 베네치아 회복, 프로이센-프랑스 전쟁(1870)에서 프랑스가 철수하자 로마를 수도로 삼고 교황의 동의없이 교황령 합병, 트리에스테, 트렌토, 남부 티롤 등 미회복, 공업적인 북부와 농업적이고 빈곤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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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영국

정치적 발전 : 양당제도에 의한 효과적인 의회정치와 개혁 디즈레일리 1기 내각(보수당, 1868.2.~12.) : 제2차 선거법 개정(1867)으로 기반 확대 글래드스턴 1기 내각(자유당, 1868~1874) : 비밀투표제(1872), 아일랜드에서의 국교회 폐지(1869) 및 토지개혁법 제정 디즈레일리 2기 내각(보수당, 1874~1880) : 수에즈 운하 매입, 러시아-튀르크 전쟁, 베를린회의(1878) 글래드스턴 2기 내각(자유당, 1880~1886) : 제3차 선거법 개정(1884)으로 농촌과 광산 노동자에게 선거권 부여, 아일랜드 자치법안 상정(1886)했으나 실패로 자유당이 분열되고 로이드 조지 집권(1906) 전까지 보수당 집권 거부권 폐지, 권한 축소, 모든 재정 법안이 하원에서 법률화되는 의회법(1911) 등으로 상원의 권한을 제약하였고, 아일랜드 자치법(1914)을 제정하여 1922년 북부를 제외한 에이레 공화국을 수립한다. 사회복지정책 : 노동당(1906)이 출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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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제2제정과 제3공화정

제2공화정(1848~1852) 성립(1848.12.) : 루이 나폴레옹이 대통령으로 선출 쿠데타(1851.12.2.) : 의회 해산, 신헌법(1852.1.)으로 대통령 재선 금지 헌법 개정, 보통선거 부활, 국민투표 통과, 독재적 통치권 부여 제정 제정 수립 : 국민투표로 1852.12.2.에 나폴레옹 3세로 즉위하면서 부르주아지와 소농민들의 기반을 얻음. 제2제정, 나폴레옹 3세 시대(1852~1870) : 반대파 의원 체포, 반대 시민 투옥, 언론 탄압, 공직자 충성 요구로 자유주의 후퇴, 투자은행 신설 등 금융제도 개선, 대규모 중공업 육성, 사회기반시설 마련, 근대적 도시 정비(파리의 오스만화), 파리 세계박람회(1855), 황제사회주의로 노동자 배려, 크림 전쟁 참전(1854), 사르네냐의 이탈리아 통일 전쟁 지원(1859, 사보이 일부와 니스 흭득, 공화파와 가톨릭 세력으로부터 공격받음), 멕시코 원정(1861, 멕시코 인민과 미국으로 인해 철수) 자유 제정 체제로의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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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

타민족의 지배로부터 해방, 국가의 정치적 통일 달성 및 발전과 팽창을 추구, 19세기 전반에는 억압으로 벗어나고자 한 자유주의적 부흥 민족주의 발달(민족 구성원 독특성 옹호), 1848년 혁명 이후로 19세기 후반에는 배타적, 전투적, 인종주의적, 제국주의적인 통합 민족주의로 발달하여 보수적인 성향으로 소수 민족 관용 거부, 타민족 혐오 현상 발생, 이 때부터 민족과 국가를 동일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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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와 노동 운동

민주적 급진주의(자코뱅주의) : 영국 인민헌장 운동의 주요 세력으로, 프티 부르주아의 이데올로기로, 성년 남자의 보통선거, 실질적 평등, 빈부 격차 축소, 자본주의에 바탕한 소시민층 기반의 이념이다. 초기(유토피아) 사회주의(공상적 사회주의, 1830년대까지) : 자본주의를 부정하여 새로운 사회 조직, 현실적으로 실패, 불평등의 구조적 기원과 자본주의 정치경제학을 주목하지 못함. 생시몽 : 유한자의 봉건주의를 무너뜨리고 과학과 생산의 결합, 중앙계획경제, 성과원리 기반의 산업인 기반의 사회를 구현하는 생시몽주의 전개 푸리에 : 문명사회는 필연적으로 빈곤을 수반하여 이상적인 공동체인 팔랑스테르 건설 주장, 결혼 폐지, 성의 자유, 여성 해방 주장 루이 블랑 : 국민공회 이념을 수용하여 사회 작업장 설치 주장 오언 : 협동과 조화를 통해 산업자본주의를 극복하고 다수의 행복을 이루는 협동촌락 구상하여 이상적인 평등 사회 구현 과학적 사회주의(마르크스주의) :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독일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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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경제학

개인주의에 입각한 자유경쟁과 자유방임이 기본적 신념으로, 애덤 스미스, 맬서스, 리카도, 존 스튜어드 밀이 있다. 중상주의와 중농주의를 비판하면서 자본주의 경제를 수립하였고, 노동 가치설을 기초로 시장을 매개로 하는 생산과 분배의 입체적 분석으로 경제학을 체계화시켰다. 맬서스의 인구론(1798) : 인구의 증가는 빈곤과 악덕을 낳아 생활수준이 저해되었으나 산업혁명으로 인해 악순환을 탈출하는 계기가 되었다. 리카도 : 노동자의 임금은 항상 저임금에 머물러있고, 경제는 토지 소유자의 지대, 기업가의 이윤, 노동자의 임금으로 움직인다. 존 스튜어드 밀 :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임금을 높이고자 하였고, 보통선거권, 의무교육, 여성 해방운동을 주장, 자유론을 통해 자유주의와 산업화의 폐단, 민주주의와의 결합을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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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혁명

기술혁신과 공장제 도입을 뜻하며,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의 이행을 통해 경제구조가 변화하는 시기를 나타낸다. 18세기, 영국에서 모직물 공업 중심의 근대적 산업(파종기, 제초기, 순무, 클로버, 4분작, 제2차 인클로저 운동, 식량생산으로 인한 인구증가)이 발전하고 해외 식민지가 확대되면서 정치적으로 안정되기 시작하여 산업혁명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농업 생산성이 향상되는 농업 혁명, 수력과 화력의 에너지 혁명, 제철, 증기기관, 면제품 생산의 공업 생산기술 발전, 석유와 전기의 교통 및 통신 혁명으로 나눌 수 있겠다. 방적기 - 케이의 플라잉셔틀(1733) -> 카트라이트의 역직기(1784, 증기기관), 방적기 - 하그리브스의 제니 방적기(다추 방적기) -> 수력 방적기(공장 출현) -> 크럼프턴의 뮬 방적기(증기기관), 조면기 - 씨앗에서 면사 섬유를 분리(1793)하여 생산성 크게 향상,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 석탄을 코크스화하여 선철을 제조하는 다비의 제철기술(1709), 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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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자유주의 개혁

심사령 폐지(1828) : 공직을 비국교도에게 개방하고, 법인 심사령을 폐지 가톨릭교도해방령(1829) : 가톨릭교도에게 시민적 자유와 권리 부여(피선거권, 공무담임권) 및 기타 제한을 1926년까지 점차적으로 해제 의회 개혁 및 선거법 개정 : 산업화로 인한 인구 이동과 사회구조 변화로 인해 부패 선거구가 등장하고 선거권의 확대가 요구되면서 선거법이 점차 개정되기 시작한다. 1832년 6월 제1차 선거법 개정 : 휘그당이 50개 이상의 부패 선거구를 없애고 신흥 공업 도시에 배정, 토지소유 이외의 동산소유를 선거권 자격에 포함으로 개정하여 유권자가 증가하여 거의 모든 중산계급이 투표권을 흭득한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여전히 배제되어 인민헌장 운동의 배경이 된다. 또한, 선거권 확대로 대중 정당으로 성장하면서 휘그당은 진보적 중산계급을 포섭하여 자유당이 되었고, 토리당은 농촌과 국교회 기반의 보수 세력을 포섭하여 보수당이 되었다. 1867년 보수당의 제2차 선거법 개정으로 도시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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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2월 혁명

배경 : 7월 혁명과 산업화, 사회주의, 흉작(1846~7), 실업, 도산 등, 명사들(소수 은행가, 대지주)가 독점하는 7월 왕정의 제한선거에 대해 실질적 혁명세력(공화주의자, 노동자)이 불만을 가지기 시작하였고, 7월 왕정이 1834년에 노동자를 규제하고 노동 3권을 저해하는 반단체법 제정 및 소극적 외교로 인해 선거권의 확대를 요구하기 시작하였다. 2월 혁명(1848) : 정치적 연회(민중집회) 결성으로 기조 내각 사임 및 선거권 확대 요구, 기조 내각의 연회 금지령으로 인해 학생과 노동자 중심으로 시위가 벌어져 시가전을 벌여 1848.2.24.에 시청을 점령하면서 루이 필리프가 영국으로 망명하여 7월 왕정이 붕괴된다. 임시 정부 : 부르주아 온건파와 노동자계급의 사회주의자들이 주도하여 노동자를 고려한 국립 작업장 설립, 성년 남자의 보통선거로 실시된 제헌의회 선거로 온건공화파 절대다수로 당선되었다. 하지만, 급진적, 사회주의적 정책으로 인해 노동자와 사회주의자들이 반발(적색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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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7월 혁명

부르봉 복고 왕정(1814~1830) 루이 18세(1814~1824) : 1814년 헌장을 통해 입헌군주제를 규정하고 신앙의 자유, 법적 평등, 관직 개방, 혁명 중의 재산 처리 인정 등을 내세우면서 왕위에 올라 보수적이지만 온건적이고 새로운 질서를 인정하였다. 행정권은 국왕에게 귀속되고, 장관임명권, 입법기관해산권을 보유한다. 의회는 양원제로 상원은 왕이 임명하고, 하원은 선출되며 재산에 따라 제한선거를 실시한다. 법령의 발의권은 왕에게 귀속된다. 샤를 10세(1824~1830) : 혁명으로 상실된 특권과 재산의 회복(앙시앵 레짐)을 위해 옹립되어 강력한 복고주의 정책을 극우왕당파에 의해 전개, 성직자 권한 확대, 망명귀족 위로 및 재원 확보를 위해 연금 지급(1825) 등을 규정하였으나 1827년 총선거에서 몰락하여 자유주의 세력이 과반수에 육박하였다. 이에 맞서 극우파 폴리냐크공을 총리로 임명(1829)하여 1830년에 알제리를 공격하면서 국민의 불만을 달랬으나 자유주의자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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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독립운동

1821~1829 파나리오테스 : 그리스 민족주의 영도 집단으로 이스탄불 중심으로 그리스 정교회 관리를 담당, 입실란티스가 1820년에 우호 형제단을 조직하여 오스만 제국 내의 몰다비아 지방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고, 1827년 석방 이후에 그리스 본토 농민 봉기, 독립 전쟁을 이끌어나갔다. 독립 전쟁 : 모레아의 농민 봉기로 시작되어, 이집트 메흐메트 알리의 토벌이 있었지만 오스트리아의 무간섭, 러시아의 참전, 영국과 프랑스의 러시아 견제를 위한 참전, 낭만주의 예술가의 도움으로 영/프/러 함대가 나바리노에서 튀르크와 이집트 함대를 격파(1827)하면서 오스만 제국이 굴복하여 1829년에 아드리아노폴리스 조약과 콘스탄티노폴리스 조약에 의헤 독립이 인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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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 아메리카 식민지의 독립

계몽사상과 미국의 독립 및 프랑스 혁명에 의해 나폴레옹 시대에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아이티 : 최초의 독립국으로, 흑인의 벗 협회를 조직(1788, 파리)하여 노예제 폐지를 주장하면서 생도맹그 식민지 노예반란(1791)을 일으켰고, 끝내 1793년에 프랑스가 식민지 강탈을 우려하여 생도맹그에서 노예제 폐지를 선언한다. 이후, 1804년에 투생 루베르튀르가 노예제도를 끝내고 독립하게 된다.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볼리비아, 에콰도르 : 시몬 볼리바르(해방자)가 독립을 주도 아르헨티나, 칠레, 페루 : 산 마르틴의 주도 멕시코 : 이달고 신부의 농민 반란 후, 새로운 정부와 평등, 토지 회복 등을 요구하여 1821년에 독립하여 다음 해 공화국을 수립한다. 라틴 아메리카는 현지에 적응하기 시작하는 에스파냐인 크리오요와 노예처럼 일한 원주민 인디오와 흑인 및 흑인과 백인의 혼혈로 억압받은 물라토와 백인과 인디오 사이의 혼혈로 최말단 지배층 노릇을 하여 독자적인 계층으로 성장한 메스티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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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체제에 반한 자유주의 · 민족주의 운동 진압

동유럽의 학생 운동 독일 : 부르셴샤프트(학생 조합, 1815) 러시아 : 예나대 학생의 코체부 암살(1819), 데카브리스트의 봉기(1825) 카를스바트 결의(1819) : 메테르니히 주도하에 학생 조합이 해산되면서 대학에 감독관을 파견하고 출판물을 검열하여 독일의 자유주의 운동이 심하게 억압되었다. 영국의 피털루 학살(1819) : 맨체스터의 세인트 피터 광장에서 6만 명의 민중이 의회개혁 및 선거권 확대를 요구하자 기병대가 습격하여 학살 남서유럽의 트로우파우 회의(1820) : 에스파냐의 보통선거 및 제한군주제의 민주주의 헌법 채택(1812, 포르투갈도 유사), 나폴리의 이탈리아 자유와 독립을 추구하는 카르보나리당 결성으로 인해 슐레지엔은 트로파우 회의(1820)로 진압하고, 메티르니히는 4국 동맹을 이용하여 무력으로 모두 진압하여 나폴리는 오스트리아에 의해(1821), 에스파나는 프랑스에 의해(1823) 진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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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와 빈 체제

자유주의 : 자유와 평등을 중심으로 억압이나 부담에서 벗어날 것을 강조한 사상으로 개인주의, 평등주의, 보편주의, 개량주의를 기초로 다양성과 복합성을 넘어선 통합된 전망을 추구 빈 회의(1814~1815) : 나폴레옹 이전의 구질서의 회복과 유지를 위해서 오스트리아(메테르니히), 영국(캐슬레이), 프랑스(탈레랑), 프로이센(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 러시아(알렉산드르 1세)가 정통성에 입각한 복고주의(프랑스, 에스파냐, 나폴리의 부르봉 왕실, 포르투갈 옛 왕실 복위)와 보상원칙에 입각한 서로 간의 영토 균형 유지, 민족주의와 자유주의 억압을 추구한 보수적, 반동적 성격을 지녔다. 빈체제 유지를 위해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러시아는 크리스트교 정신에 입각하여 체결한 신성 동맹(1815)과 영국, 오스트리아, 러시아, 프로이센의 무력권을 지닌 사국 동맹(1815, 프랑스 1818에 조건부로 가입하면서 오국 동맹이 됨)으로 실질적인 국제기구 구실을 하게 된다. 버크와 보날드와 같은 보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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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시대

나폴레옹의 권력 장악 자코뱅주의자 시절에 연방주의 반란군의 근거지인 툴롱항 탈환(1793.12.) 테르미도르파로 전향하여 왕당파 폭동 진압(1795.10.) 이탈리아 원정군 사령관(1796) : 오스트리아 격퇴 및 캄포포르미오 조약(1797)로 벨기에와 롬바르디아 흭득 및 제1차 대프랑스 동맹 와해, 바젤 조약으로 프로이센으로부터 라인강 서쪽 영토 할양받음. 이집트 원정(1798) : 영국 간접 공격(로제타 비석 발견)하였으나 실패, 제2차 대프랑스 동맹(1799~1802) 결성으로 지중해 제해권 쟁탈전 돌입 브뤼메르의 쿠데타(1799)로 총재 정부 붕괴 통령 정부 수립 : 혁명력 제8년의 헌법(1799.12.)으로 임기 10년의 3명의 통령 행정부 수립, 국무회의, 호민원, 입법원, 원로원이 입법부를 구성, 제1통령인 나폴레옹이 실권을 장악하였고, 1802년에 종신 통령으로 취임하면서 개헌을 거쳐 후계자 임명권과 헌법 수정권을 보유하게 된다. 나폴레옹 1세의 제1제정(18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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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제1공화정

발미 전투의 승리 1792.9.20. : 혁명 전환기로, 다음 날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 제1년의 첫날로 선포 국민 공회(1792.9.21.~1795.10.) : 총 750석 중 평원파 400석, 주도 세력은 공화파(지롱드파와 자코뱅파로 양분), 지롱드파는 상층 부르주아 중심으로 민중의 진출을 막고자 연방주의(지방분권), 경제적 자유주의, 온건한 공화정을 주장하였고, 자코뱅파는 민중 중심으로 파리 중심의 강력한 중앙집권과 통제경제를 주장하였다. 루이 16세 처형 1793.1.21. : 718표 중 387표로 사형 결정으로 처형, 제1차 대프랑스 동맹이 결성되었고, 지롱드파와 자코뱅파가 대립하였다. 영국에 선전포고(1793.2.)하고, 3월에 러시아를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와 교전 상태에 돌입하면서 아시냐 가치가 50% 하락하고 생필품 품귀 현상이 일어나면서 앙라제의 준동이 일어났고, 30만 명의 징집으로 인해 보수적인 방데 지방에서 반란이 발생하는 등 혼란이 발생하자 국민 공회는 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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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 - 부르주아 혁명

부르주아는 애국파를 결성하여 대표 숫자 배가 및 머릿수 표결을 요구(시에예스의 특권론,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하였고, 이에 루이 16세는 결성을 허락하였으나 표결 방안에 대해서는 귀족들의 신분별 회의와 표결 요구로 인해 의사표현을 하지 않았다. 1789년 5월에 베르사유에서 삼신분회가 소집되었고 귀족의 1, 2신분과 3신분이 구성인원과 모임과 표결 방식에 대해 토론한 결과, 3신분 대표를 선출하는 2~3단계 간접선거에서 한 단계마다 선거구민의 요구사항을 작성하여 명문화된 헌법 제정, 성직자와 귀족의 면세특권 폐지를 결정한 카이에가 열렸다. 모임 방식과 운영방식 논쟁 중 3신분 회의장을 폐쇄하자 3신분 의언들은 1789년 6월 17일에 국민의회(제헌의회, 1789.6.~1791.9.)를 자청한다. 실내 정구장에서 헌법이 제정되어 확고한 자리를 잡을 때까지 결코 해산하지 않는다라는 테니스코트 선언(6.20.)을 하고 미라보의 비해산 선언을 선포하였다.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을 목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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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의 시작

신분제의 잔존으로 성직자나 귀족 등 특권계급이 존재하고, 부르주아가 관직을 매입하여 귀족이 되면서 법복귀족과 대검귀족의 차이가 점점 사라지고, 타이유나 도로 부역 면제 등 귀족의 특권 및 지대와 공납금의 철저한 징수로 인해 제3신분인 부르주아지(귀족 하위, 정권 배제, 길드 규제)와 농민(교회세, 타이유, 염세, 도로부역 등 부담)의 불만이 날이 갈수록 커져갔다. 또한, 계몽사상과 미국 독립혁명의 영향으로 의식이 깨어나기 시작하였다. 왕실의 재정 위기 : 루이 14세의 침략 전쟁, 낭트 칙령 폐지로 인해 궁핍해지기 시작하였고, 루이 15세의 오스트리아 왕위계승 전쟁과 7년 전쟁으로 더욱더 궁핍해졌으며, 영/불 통상 협정(1786)으로 최저 관세를 합의하면서 직물업에 타격을 입게 되었고, 미국 독립 전쟁에 참전(1781)하면서 왕실 재정에 위기가 오기 시작하였다. 재무장관들의 재정위기 개혁 시도, 귀족혁명(1787.2.~1789.5.) 튀르고 : 중농주의자, 면세 특권 침해, 궁정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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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독립 전쟁

보스턴 항구에서 동인도회사의 선박의 차를 바다에 던진 보스턴 차사건(1773)으로 영국은 강제법(1774)을 통해 보스턴 항구를 폐쇄하는 보스턴 항구법, 매사추세츠의 선거를 정지하고 식민지 정부의 모든 임원을 영국이 임명하는 매사추세츠 통치법, 영국 관리 고발시 다른 식민지나 본국에서 재판받을 수 있는 재판권법, 주둔하고 있는 영국군에게 숙소를 할당하는 병영법, 퀘벡에서 프랑스계 가톨릭 주민에게 유리한 퀘벡법을 제정하여 식민지의 반란을 진압하고자 하였다. 제1차 대륙 회의 : 통신위원회를 통해 혁명조직을 만들고, 조지아를 제외한 식민지 대표가 필라델피아에서 대륙 회의를 개최하여 본국의회의 식민지 입법권을 부정하고 통상단절 및 보이콧을 제기하자고 의결내었다. 렉싱턴 · 콩코드 전투(1775.4.) : 보스턴 서부 근교에서 영국군과 민병대가 처음으로 충돌하였고, 1775년 4월 19일에 영국군 1개 중대가 렉싱턴으로 진격 중 민병대와 총격전을 벌였으며, 다시 콩코드로 진격하여 존 행코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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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식민지 정책

식민지 시대 : 17세기 초에 스튜어트 왕조의 탄압으로 청교도 등이 필그림 파더스를 구성하여 1620년에 이주하여 경영을 시작하였다. 18세기 전반에 북아메리카 동해안 일대에 13개의 영국 식민지를 건설하여 북부는 자영농 다수가 상공업을, 남부는 노예를 이용한 대농장 경영을 구성하였다. 영국은 총독을 파견하였으나, 실질 세력은 상류계층의 식민지 의회였다. 의회는 광범위한 자유와 자치를 유지하였고, 본국은 1763년까지 건전한 방임 정책을 고수하였다. 조지 3세의 왕권 강화 및 전비와 방위비 조달을 위해 식민지에 개입하여 앨러게니 산맥 서부 이주 금지(1763), 설탕에 대한 과세를 부여하는 설탕법(1764), 신문이나 책자 등에 인지를 첨부하는 인지세법(1765) 등 과세와 중상주의적 통제로 전환하였다. 이에 9개 식민지 대표들은 버지니아 의회에서 대표 없이는 과세할 수 없다라는 주장으로 뉴욕 인지세법 회의(1765.10.)를 개설하고, 영국상품 불매운동을 전개해나갔다. 영국은 식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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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고왕정과 명예혁명

찰스 2세(1660~1685) 의회 주도기(1660~1670) : 영국국교회 확립, 청교도의 처벌했던 클래런던 법전(1661~1665) 시행 국왕 주도기 : 가톨릭 부활 시도, 루이 14세와 제2차 네덜란드 전쟁에서 흭득한 뉴 암스테르담의 소유를 인정받은 도버밀약(1670, 국민와 의회에게 인정받지 못함), 가톨릭교도에게 신앙의 자유를 주기 위해 비국교도에게 신앙의 자유 허용(1672) 의회의 대응 : 가톨릭을 견제하기 위해 비국교도의 공적취임을 금지한 심사령(1673), 휘그당이 제정한 인신보호령(1679)으로 대응하였다. 의회의 분열 : 왕을 지지하는 여당인 토리당과 프랑스와 가톨릭을 경계하고 전제정치를 배격하는 휘그당으로 나뉘어진다. 제임스 2세(1685~1688) : 가톨릭교도를 고위직이나 장교, 대학에 임용하여 심사령에 위배, 모든 비국교도에게 신앙의 자유를 선포한 관용선언으로 가톨릭 부활을 시도하려하였고, 심사령과 인신보호령을 폐지하고 런던 근교에 상비군을 설치하여 전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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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교도 혁명

스트라포드의 강압적인 지배와 신교도 이주자들에 대한 가톨릭계의 불만으로 아일랜드에서 반란을 일으킨다. 의회는 찰스에게 군대를 맡기기 않았고, 찰스가 의회의 실정과 불만을 종합한 대간주(1641)를 제시한다. 존 햄던의 체포에 실패(1642)하면서 찰스와 의회는 각각 군대를 모집하게 되었고, 청교도 혁명(1642~1649)이 시작된다. 왕당파는 가톨릭과 국교도의 북부/서부 지방의 대상인들이, 의회파는 청교도의 동부/중부/런던 등의 소상인 및 수공업자들이 있었다. 빈농과 농업노동자와 도시 노동자는 관여하지 않아 시민혁명, 계급투쟁이라 보기 어렵다. 젠트리 출신인 의회파 원두당 크롬웰의 의회파가 철기군(기병대 군사), 신형군(철기군 중심)을 조직하여 마스턴무어 전투(1644), 네이즈비 전투(1645)에서 승리하면서 국왕은 스코틀랜드군으로 피신하였고, 이후 돈을 받고 왕을 의회군에 넘기게 된다. 네이즈비 전투 이후로, 의회파의 다수가 장로제의 전국적 실시를 주장하는 장로파로, 의회 군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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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어드 왕조

스튜어드 왕조 이전에는 스코틀랜드에서 존 녹스의 장로교 교회가 반프랑스적 국민감정의 구심점이 되었고, 가톨릭과의 대결이 심화되었다. 경제적으로는 지주와 자본가적 차지농과 농민의 3분할제, 모직물 공업으로 인한 인클로저 운동, 해외무역, 신규산업 발달, 런던의 성장이 있었고, 사회적으로는 전문직업 종사자와 젠트리계층이 성장하여 청교주의를 신봉하였다. 제임스 1세(1603~1625) : 왕권신수설을 지향하여 대륙형의 절대왕정 지향, 청교도가 국교회의 주교제도(계서졔)를 파괴한다는 이유로 청교도(박해를 피해 1620년 뉴잉글랜드의 매사추세츠주 플리머스에 필그림 파더스 정착) 압박하여 친 가톨릭 국교주의 정책을 고수하였고, 왕 개인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덕세와 의회의 권한을 높이기 위해 대항의서(1621)를 제출하여 의회와 대립 구도를 형성하였다. 찰스 1세(1625~1649) : 대주교 로드가 국교회를 가톨릭화하고 청교도 탄압을 강화하였고, 이로 인해 왕권 대항 세력이 구축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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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주의

절대왕정이 18세기에 동요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이데올로기로 등장, 인간의 이성의 힘과 인류의 무한한 진보에 입각하여 계몽을 통해 무지, 미신, 이성에 어긋나는 구습, 모순된 제도의 개혁을 주장하였다. 대부분 신이 창조한 세상을 스스로 움직일수 있는 이신론자들이 유행하였으며, 신앙과 언론과 출판의 자유를 주장하고 미신과 광신의 타파에 노력한 볼테르, 삼권분립과 상호억제의 정치제도를 주장한 몽테스키외, 디드로 주도하에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강조한 계몽사상을 널리 보급시키려는 백과전서파(프랑스 혁명의 사상적 배경), 형벌 등으로 범죄 방지 및 교화를 우선한 베카리아와 하워드가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또한, 계몽주의와 자연법으로 인해 중상주의 대신 자연법에 입각하여 자유방임을 주장한 토지와 농업 중심의 케네와 튀르고 등의 중농주의와,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을 통한 야경국가 건설 및 자유방임주의의 고전경제학이 발전하였다. 이로 인해 18세기에 프랑스에서는 문화적 비판주의가, 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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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주의 시대 문화와 사유

17세기 과학혁명 : 코페니르쿠스의 지동설, 갈릴레오의 태양 중심설과 지동설과 망원경 제작, 프랜시스 베이컨의 귀납법에 입각한 경험론적 지식체계 수립, 데카르트의 엄격한 연역 방식의 기계론적 우주관과 유물론, 뉴턴의 중력(만유인력) 법칙의 기계론적 우주관으로 자연의 합리성과 통제가능성을 입증하였다. 문화적으로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전반은 르네상스 쇠퇴기로 매너리즘의 기교미가 장악하였고, 대귀족층의 살롱의 후원이 있었다. 바로크 고전양식 : 파리가 문화 중심지로 되면서 규율, 제한, 집중과 통합 등 고전주의 원리에 입각한 현실 긍정적, 타협적, 세속화 현상의 바로크가 만나 프랑스 궁정 등에서 표현하였다. 네덜란드는 렘브란트, 할스, 루벤스 등이 시민적 특징의 자연주의적 요소를 가미한 바로크 형식이 발달하였다. 민중문화 : 세금과 사회적 순응 및 가혹적인 강압으로 인해 규제와 예절 및 품행체계에 입각한 문화가 형성되어 민중문화는 쇠퇴하고 엘리트 간의 문화 향유로 이어졌다. 또한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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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계약설

홉스의 리바이어던(1651) : 인간의 자연 상태는 공포와 죽음의 만인 대 만인의 투쟁 상태로, 이를 벗어나기 위해 지배자와 계약을 맺었기에 모든 권리를 국왕에게 양도해야 한다는 전면양도설로 왕권의 절대성과 우월성을 옹호하였다. 로크의 정부론 : 인간은 재산, 생명, 자유라는 자연권이 보장된 자연법을 통해 보다 더 자연권을 누리기 위해서 계약을 맺어 국가가 형성되었기에 개인은 자연권의 향유 내에서 대의제에 의한 간접민주정치와 다수결의 원칙을 옹호하였다. 만일, 범위를 넘을 시 저항이 가능하여, 명예혁명을 정당화하였다. 이후, 근대민주주의 사상의 가장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루소의 사회계약론 : 인간은 자연법과 자연권이 존재하는 상태에서 공동의 선과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일반의지(법으로 표현, 주권으로 행사)에 따라 국가가 성립되면서 인민에 의한 주권을 강조하여 직접민주주의를 표방하였다. 이는 곧 프랑스 혁명과 민주주의 사상으로 이어졌고, 전체주의와 독재주의의 실현가능성을 열게해주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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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권신수설

보댕의 국가론 : 주권은 최고 권력으로 입법권, 군대 유지권, 전쟁 및 평화체결권, 최고사법권, 과세권, 화폐 주조권 등을 지니고, 군주에 의해 행사되어야 한다고 주장 보쉬에의 왕권신수설 : 국왕은 신의 대리인이기에 신성불가침하고 절대적이며 신하는 오직 복종의 의무만 있다고 주장하여 루이 14세의 절대왕정을 옹호하였다. 제임스 1세 : 왕권신수설을 주장하여 최초의 의회(1609)에서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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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왕정의 사회, 경제 구조

17세기에 자본주의의 발전으로 절대왕정의 뒤를 받쳐주었고, 유럽 경제의 중심이 지중해에서 북서유럽으로 이동하면서 이탈리아, 에스파냐, 독일은 암흑, 프랑스는 회색, 네덜란드는 황금기, 영국은 은의 세기를 경험하였다. 동부 독일, 북동부 유럽의 영주 농장제(구츠헤어샤프트) : 농노의 강제노동에 입각한 국제시장을 목표로 한 곡물생산으로, 영주층은 토착상인을 배제하고 스스로 상업에 종사하여 융커층으로 성장하였다. 서유럽의 대토지 보유 형태(그룬트헤어샤프트) : 지주가 토지를 임대하고 경영 영국 : 장원 해체 및 농노해방으로 장기 임대차계약으로 토지를 보유하는 농민이 등본보유농이나 차지농으로 대체되는 요우먼이 형성되었고, 농민들끼리 계층이 분화되면서 자본주의적인 농업기업가가 배출되기 시작하였다. 이로 인해 토지의 배타적 권리를 주장하여 토지가 개별 농민들의 소유지로 변모하는 인클로저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17세기의 1차 인클로저는 목초지로 전환하여 많은 농민들이 임금노동자로 전락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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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쟁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가 슐레지엔 땅을 회복하고자 프랑스(오스트리아와 200년간 숙적이었음. 이를 두고 외교혁명(1748~1753)이라함.)와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7년 전쟁(1756~1763)을 발발하였다. 로스바흐 전투(1757)에서 프랑스군 격파 로이텐 전투에서 오스트리아군 격파 초른도로프 전투(1768)에서 러시아군 격파 쿠네르스도르프 전투(1759)에서 프로이센이 패배하여 베를린 함락 위기 및 영국의 재정적 지원 중단 1762년, 친 프랑스 엘리자베스 여왕 사망 및 프리드리히를 숭배하는 표토르 3세 즉위로 군대 철수 및 프로이센과 강화 체결하여 동맹관계가 무너지고, 전쟁 전의 국경유지 약속의 후베르투스부르크 조약(1763)을 체결한다. 이로 인해 오스트리아의 세력은 약화되었고, 프로이센은 강대국으로서 지위를 굳혔다. 윌리엄 피트 체제(1757~1761) : 영국의 수상으로 취임하여 지도체제를 수립, 프로이센에게 자금 제공, 프랑스 해군 파괴 및 식민지 공격, 아메리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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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왕위계승 전쟁

여자의 상속이 배제된 오스트리아에서 카를 6세가 딸인 테레지아에게 국사조칙을 마련하여 상속하면서 귀족과 열강의 승인(1713)을 받고 왕으로 즉위하면서 프리드리히 2세가 슐레지엔을 점령(1740)하여 전쟁(1740~1748)이 발발하였다. 프랑스, 에스파냐, 바이에른은 프로이센에 가담, 영국, 네덜란드는 오스트리아에 가담, 인도와 북아메리카에서 영국과 프랑스 맞붙음. 드레스덴 조약(1745)로 프로이센의 슐레지엔 영유 확정, 엑스라샤펠 조약(1748)로 마리아 테레지아 왕위 확인, 영국과 프랑스의 해외 식민지 현상 유지 확정으로 종전하였다. 프로이센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세력균형을 깨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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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냐 왕위계승 전쟁

에스파냐 왕 카를로스 2세가 영토와 왕위를 핍립에게 물려줌으로써 프랑스와 에스파냐의 왕위가 부르봉 왕실에 의해 통합되면서 세력균형이 파괴되어 프랑스와 에스파냐 vs 영국,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사보이, 포르투칼의 전쟁(1701~1713)이 발발한다. 루이 14세의 1701년 에스파냐령 네덜란드 침공 말보러공 처칠의 영국군의 승리로 동맹군 승리 위트레흐트 조약(1713, 제2의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프랑스와 에스파냐 왕국이 합병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부르봉 왕조를 인정하고, 영국은 프랑스로부터 신대륙의 노바스코샤, 뉴펀들랜드, 허드슨만을 흭득하고, 에스파냐로부터 지브롤터와 식민지에 대한 노예공급권을 흭득한다. 오스트리아는 나폴리, 밀라노, 사르데냐, 에스파냐령 네덜란드(벨기에)를 흭득한다. 사보이는 왕의 칭호를 흭득하고 시칠리아를 흭득하여 사르데냐와 교환하면서 사르데냐의 왕이 된다.(1720) 프로이센은 왕의 칭호를 흭득한다. 세력균형이 유지되고, 프로이센과 사보이가 호엔촐레른과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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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의 분할

중세 말에 성립된 가톨릭 슬라브 국가인 폴란드는 16세기에 귀족 세력의 신분제의회가 강화되어 왕권이 부진하자 주변국의 간섭으로 분할되었다. 제1차(1772) : 프로이센 프리드리히 2세, 오스트리아 마리아 테레지아, 러시아 예카테리나 2세 제2차(1793) : 프로이센과 러시아에 의한 분할 제3차(1795) : 프로이센, 러시아, 오스트리아에 의한 분할로, 멸망하여,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 독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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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러시아

이반 3세(1462~1505) : 몽골족의 지배로부터 해방 이반 4세(1533~1584) : 농노제 기반의 황제 중심의 중앙 집권적 전제국가 형성, 비밀경찰 창설, 신흥귀족층 육성, 농노제 강화로 황제권을 강화하여 근대 러시아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로마노프 왕조 성립(1613) : 신흥귀족들의 세력 신장, 농노제 강화, 자유농민은 몰락 표트르 대제(1682~1725) : 소피아가 친위대(스트렐치)의 지지로 섭정하다가 1689년에 실권 장악, 1696년에 아조프해 연안 흭득, 유럽 시찰 중 친위대의 반란으로 친위대 해산, 수염세, 무도회, 유학생 파견, 유럽식 교육 보급, 모스크바 수좌대주교 폐지, 신성 종교 회의 설치 등으로 서유럽화를 통한 근대화를 이룩하고자 했으며, 이로 인해 서유럽파와 슬라브파의 대립 구도가 형성되었다. 발트해로의 진출을 위해 폴란드와 덴마크와 비밀 조약을 맺고 스웨덴 칼 12세(1697~1718)와 대 북방 전쟁(1700~1721)을 벌여 폴타바 전투에서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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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오스트리아

영토 산재 및 이질적 민족과 주민들로 구성으로 통일성 부재 요제프 2세(1780~1790) : 농노 해방, 평등주의에 입각하여 사형과 고문 폐지 등 새로운 법령 마련, 신앙의 자유 선포, 교육의 보급으로 개혁을 실시하였으나 귀족들의 반대로 실패하면서 영토 통합에 실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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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왕정의 프로이센

15세기 호엔촐레른가는 황제 지기스문트에 협력하여 선제후로 승격하였고, 브란덴부르크를 차지하면서 종교개혁기 당시 루터파로 개종하여 가톨릭교회의 토지와 재산을 점유하고 있었다. 1618년 독일 기사단의 동프로이센 공국을 계승하였고,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포메라이나, 막데부르크, 민덴 등을 흭득한다. 프리드리히 빌헬름(대선제후, 1640~1688) : 전쟁피해 복구, 영토 통합, 낭트 칙령 철폐로 이주해온 2만명의 위그노 수용 및 상공업 발전, 프로이센 귀족(융커)들과의 유대관계를 형성 프리드리히 1세(1688~1713) : 에스파냐 왕위계승 전쟁에서 오스트리아 가담, 프로이센 왕 칭호 흭득 프리드리히 빌헬름(1713~1740) : 강대국 토대 마련, 상비군 훈련, 국고 정비 프리드리히 2세(대왕, 1740~1786) : 오스트리아 왕위계승 전쟁에서 테레지아 상속 문제를 빌미로 슐레지엔 점령, 후베르투스부르크 조약으로 7년 전쟁 종결, 전후 복구를 위해 세금 면제 및 농기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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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쟁

예수회 중심으로 남부독일 등지에서 가톨릭 회복, 칼뱅파의 세력 확대, 독일의 분열, 덴마크, 스웨덴,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등 발트해로의 진출 경쟁, 합스부르크와 발루아 왕조의 대립, 팔츠 선재후 중심의 신교 연합과 바이에른공 중심의 구교 동맹 간의 대립으로 인해 30년 전쟁(1618~1648)이 발발하게된다. 보헤미아 시기(1618~1623) : 독일 태자 페르디난트가 보헤미아 왕이 되어 신교도를 탄압하자 신교도들은 팔츠 선제후를 국왕으로 추대, 가톨릭 동맹과 에스파냐의 지원으로 페르디난트 승리 및 팔츠 선제후 영토 편입, 보헤미아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의 세습 왕국이 됨. 덴마크 개입기(1625~1629) : 북부독일을 노리던 덴마크 왕 크리스티안 4세(루터파)의 간섭으로 신성로마 발렌슈타인 장군이 격파, 신교는 위기를 맞이하며, 황제와 가톨릭의 영향력은 더욱더 증대 스웨덴 개입기(1630~1635) : 발트해를 차지하고자 스웨덴 왕 구스타프 아돌프가 루터파를 지원하고, 프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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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절대왕정

튜더 왕조의 성립과 헨리 7세(1485~1509) : 장미 전쟁으로 인해 봉건귀족이 약화되면서 의사봉건제의 무질서를 종식하고 사병제 폐지, 외국상인 억제로 국민들의 강력한 왕권을 희구함에 따라 튜더 왕조를 성립하여 왕권을 강화시켰다. 헨리 8세(1509~1547) : 중앙정부 개혁, 종교개혁 단행(수장령), 수도원 해산, 토지를 측근과 지지자들에게 분배 에드워드 6세(1547~1553) : 헨리 8세 왕위계승법에 따라 즉위, 구교 국가로의 회귀 방어 메리 1세(메리 튜더) : 가톨릭으로 복귀 및 숙청, 펠리페 2세와 결혼 엘리자베스 1세(1588~1603) : 수장령과 통일령의 부활로 극단파를 제외한 종교적 관용을 허용하는 국교회 확립, 동인도회사를 설립(1600)하여 최초의 주식회사 및 해외 발전의 기틀을 마련, 에스파냐 무적함대 격파(1588)로 해상에서의 우위 확보, 르네상스 개화기(셰익스피어)이자 절대왕정의 절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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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절대 왕정

프랑수아 1세 : 절대왕정 성립, 프랑스 르네상스 개화기 앙리 4세(1589~1610) : 위그노 전쟁 종결, 낭트 칙령 선포, 쉴리를 통해 농업 장려, 도로와 교량 개축, 사치품공업과 견직물 공업 육성, 재정 수입을 증대시키기 위해 관직 매매, 관직 가치의 1/60를 연세로 납부하면 세습을 인정하는 폴레트제(1604)를 시행하였다. 루이 13세(1610~1643) : 삼신분회(1614)를 소집하여 귀족과 제3신분이 대립하였고, 왕권에 의하여 1788년까지 해산되었다. 추기경 출신 재상인 리슐리외를 통해 모든 것을 국가 이성에 종속시키고,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실천하였으며, 위그노의 정치적 특권 철폐 및 본거지인 라로셸향 점령(1627)과 국무회의 전문화, 국왕에 의한 지방장관 파견으로 왕권을 강화하였고, 30년 전쟁에서 독일 신교도를 지원, 베스트팔렌 조약을 체결하여 메스, 투르, 베르덩, 알자스 지방을 흭득하여 국력을 증진시켰다. 루이 14세(1643~1715) : 마자랭을 등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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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그노 전쟁

위그노란 알비주아 이단이 강했던 프랑스 남서부 지방에서 칼뱅 계통의 신교도와 상인 및 수공업자 및 귀족 다수를 포함하는 것이다. 앙리 2세(1547~1559) 사후 궁정은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두 귀족 가문의 왕위 쟁탈전을 벌이다가 샤를 9세(1560~1574)의 모후인 카트린이 섭정이 되어 왕권을 장악하고, 바시의 학살(1562)에서 가톨릭이 위그노를 살상하면서 위그노 전쟁(1562~1598)이 발발하였다. 위그노는 영국, 가톨릭은 에스파냐를 끌어들여 신교와 구교, 귀족과 왕권 싸움을 지속 1570년 생제르맹 휴전 조약 양측, 샤를 9세의 여동생(가톨릭)과 나바르 왕 왕리(위그노)의 결혼식 거행(1572)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대학살(1572.8.24.)로 인해 위그노 2000명 학살 앙리 3세(1574~1589)와 가톨릭 동맹의 기즈공 앙리가 서로 싸우다가 둘 다 사망 부르봉의 나바르 왕 왕리가 앙리 4세(1589~1610)로 즉위하여 부르봉 왕조 성립 및 가톨릭 개종(1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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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독립 전쟁

에스파냐 펠리페 2세의 중앙 집권적 통합정책에 맞서 섭정인 마르테에게 청원하였으나 거절당하면서 독립 전쟁(1567~1648)이 발발하였다. 반란 : 칼뱅파와 재세례파의 영향으로 가톨릭교회 침입 및 약탈 진압군 지휘관 알바공의 탄압(1567) 및 공포정치 윌리엄 1세(오라녜공, 1533~1584) 지도하에 독립운동 전개 위트레흐트동맹 결성(1579) 후, 1581년 북부 7주 독립 선언 및 네덜란드 연방국가 건국 휴전 성립(1609~1621) 이후, 베스트팔렌 조약(1648)을 통한 독립 승인 모직물 공업, 조선업, 중개상업과 같은 상공업이 전쟁 중에서 번영하였고, 상업과 금융 중심지가 안트베르펜에서 암스테르담으로 이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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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냐의 융성과 몰락

펠리페 2세(1556~1598) : 전성기로, 오스만 튀르크를 레판토에서 격파하여 지중해 패권을 확보(1571)하였고, 포르투칼을 합병(1580)하였으며, 신대륙으로부터 세비야 상무원을 설치하여 막대한 이득을 얻어내었다. 사회 구조상 재정복에 의해 건설되어, 토지가 귀족과 교회에 집중되면서 세금과 공납으로 농민이 빈곤해졌고, 귀금속의 과도한 유출, 메스타(이동목양)의 특권 및 횡포, 이슬람계 농민엘리트인 모리스코 추방, 모직물 공업의 쇠퇴로 인해 파산 선고(1557, 1575)가 이루어졌고 후거 등 대금융가가 몰락하게되었다. 또한, 가톨릭 신앙을 일률적으로 강요하고 프랑스 종교 전쟁 개입으로 인한 전비 지출 및 최대 식민지였던 네덜란드의 상실, 영국의 드레이크 사략선에 의해 무적함대가 패배(1588)하게 되면서 에스파냐 왕국은 몰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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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스부르크와 발루아

합스부르크 제국 : 혼인과 상속관계로 확장한 이질적인 집합체 카를 5세(1519~1556) : 오스트리아, 남부 독일 여러 지역, 네덜란드, 에스파냐 왕국, 해외식민지, 보헤미아, 헝가리, 프랑슈-콩테, 밀라노, 나폴리, 시칠리아, 사르데냐 등 포함한 집합체 구성, 영방군주의 독립성이 강했고, 루터의 종교개혁이 진행중이었다. 프랑수아 1세와의 대립은 이탈리아 쟁탈전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카토캉브레지 조약(1559) : 프랑스는 이탈리아, 네덜란드, 에스파냐 포기, 라인강변의 메스, 투르, 베르덩 흭득으로 합스부르크가 이탈리아에 대한 지배권을 장악하는 내용으로, 합스부르크와 발루아 사이에 이탈리아 지배권을 놓고 65년 간 지속되어 온 분쟁을 마무리 지었다. 이로 인해, 절대왕정이 시작되었으며 프로테스탄트 세력이 강화하였고,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문화가 쇠퇴되면서 국가적 통일이 오랫동안 지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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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왕정

16~18세기에 유럽 각국에서 봉건제후의 지방 분권이 무너지고 왕권 중심으로 국가통일이 이루어져 행정, 사법, 군사 면에서 중앙집권이 달성된 근대 초기의 국가를 의미한다. 중상주의 : 수입 억제, 수출 장려, 식민지 정책과 국가주의 추구를 통한 경제 통제로 국가 통일과 국력 증대를 목표로 하는 포괄적인 체제를 뜻하며, 이윤이 생산과정이 아닌 유통과정에서 온다고 믿어 안전자산인 금을 화폐로 하여 최대한 보유할려고 하는 중금주의, 금을 보유하기 위해 보호관세를 부과하여 수입을 억제하고 수출을 증대하는 무역차액설, 식민지 경영 및 국내 공업의 보호를 위한 보호무역주의가 주를 이루었다. 이로 인해 국내시장 확대 및 자본 축적이라는 관점에서 화폐경제이론의 초기적 체계를 완성시켰고, 시민혁명과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에 의해 의미를 상실하였다. 재정 및 군사 국가 : 화약무기로 무장한 직업 보병이 등장하였고 효울적인 징세와 전문적인 군사력을 유지하기 위해 중앙 집권적 행정 기구가 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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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국가교회주의 추세로 교황의 권위 실추, 국왕과 봉권귀족의 교회재산 욕심, 교회세에 대한 농민들의 회의감, 이단운동과 신비주의 대두, 위클리프와 롤라드, 후스운동, 인문주의와 개성의 각성이 드러난 르네상스 문화 발전, 부패와 타락으로 인한 네포티즘 성행으로 가톨릭교회 내부 개혁 실패(콘스탄츠 공의회)로 인해 개혁이 필요한 시점에서 루터와 칼뱅이 앞장서 나아갔다. 1. 루터의 종교개혁 중세 가톨릭 교회 비판 및 초기의 고대 교리로 복귀 주장, 성직자의 권능 부정, 성경에 미명시된 교리와 의식 반대 독일의 상황 : 7명의 선제후 중 3명이 종교 제후, 교황청의 경제적 착취의 좋은 대상, 카를 5세가 이탈리아 패권을 쟁탈하기 위해 친 교황적 입장 고수(대상인 및 금융업자 세력의 야곱 후거의 지원), 친 교황정책에 반대하는 영방군주, 부르주아, 농민들은 인문주의, 경건주의, 신비주의의 영향으로 반대 세력 형성 루터의 종교개혁(1483~1546)과 면벌부 : 교황 레오 10세가 성 베드로 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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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해 시대

기독교 전파 목적, 동방과의 향신료와 금 직접 교역 도모, 관심과 호기심, 나침반과 카라벨선과 육분의로 인한 항해술 발달, 에스파냐와 포르투칼과 같은 중앙 집권적인 통일 국가 형성 등으로 인해 항해하고자 대양으로 나섰다. 인도 항로의 발견 항해왕자 엔리케 : 아프리카 서해안 남하, 인도항로 탐험 바르톨로뮤 디아스 : 희망봉 도달(1487) 바스쿠 다가마 : 인도 캘리컷 도달(1498)로 아시아 진출(서세동점의 시작) 포르투갈의 동방경략 : 바스쿠 다가마의 인도 항로 발견 직후, 향신료를 찾아 브라질과 아시아지역 탐색하기 위해 무장 상선대의 함포사격을 이용하여 아랍과 이슬람 상인 격파하고 영토 점령 없이 군사기지만 설치하여 무역 거점 확보(총독 알부케르케의 호르무즈, 고아(1510), 믈라카(1511), 마카오(1513), 말루쿠 제도 거점 설치)함. 경로는 동인도 제도 -> 믈라카(중국 상인의 종점) -> 캘리컷, 고아(아랍, 이슬람) -> 홍해, 페르시아만, 바그다드 -> 알렉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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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세 발명과 과학

화약 : 중국 -> 이슬람에서 전파되어 15세기 초에 실전에 사용하게 되면서 봉건기사가 몰락하였고, 성채의 개량이 이루어졌다. 나침반 : 원양항해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유럽의 팽창을 가져왔다. 활판 인쇄술 : 구텐베르크의 발명으로 지식과 정보의 전달과 보급에 공헌하였고, 각국에서 표준적인 국어가 정립되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 자연과학 : 베살리우스의 해부학, 코페니르쿠스의 지동설 이론 정립(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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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르네상스

합스부르크-발루아 전쟁 등 이탈리아의 정치적 쇠퇴, 무역의 중심이 대서양으로 이동하면서 경제적 쇠퇴, 인쇄술 발달로 인해 원시 기독교와 원전 중심의 그리스도교적 인문주의를 드러내고, 당시의 사회를 비판하며, 국민문학으로 형성된 북유럽(알프스 이북)만의 르네상스(16세기~)가 출현하였다. 에라스뮈스 : 공동생활 형제단 출신, 성경에 입각한 원시 신앙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여 부패의 근원인 전승과 관행의 근거를 없앤 그리스어판 신약성경을 출판하였고, 우신예찬(1511)를 통해 교회와 성직자의 타락과 어리석음을 비판하였다. 이로 인해 종교 개혁에 영향을 미쳐, 초기에 루터의 입장을 대변하였다.(루터가 교황과 교회를 부정하자 입장을 바꿔 자유의지의 설교(1524)를 통해 가톨릭의 입장 대변) 프랑스의 데타플, 로이힐린, 독일의 멜란히톤 등 직간접적으로 종교개혁과 관련 토마스 모어 : 인클로저 운동에 대해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자영농이 몰락하는 영국사회를 비판하여 유토피아를 통해 이상적인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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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주의

인문주의(후마니타스)는 인간성을 도야하고 세련되게 하는 품위 있는 글과 예술의 힘(키게로)를 의미한다. 봉건사회가 붕괴되고, 교회의 통제력이 상실되면서 새로운 문화와 인생관을 갈망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되었고, 고전작품을 통해 발전하였다. 페트라르카 : 최초의 근대인으로 라틴작가 작품 수집 및 연구, 이탈리아 과거와 고대세계 연구, 칸초니에레 보카치오 : 데카메론을 통해 흑사병 당시의 사회를 표현, 인간의 위선, 사회상을 적나라하게 묘사하여 근대소설의 효시가 됨. 로렌초 발라 : 역사적, 문헌학적 지식을 동원하여 콘스탄티누스의 기진장의 위조를 밝혀냄. 학자의 강의나 학회에서 전파되었고, 구텐베르크의 활판인쇄술(15~16세기 근대적 출판업자 등장)로 더욱더 보급에 가속화되었다. 자연에 대한 아름다움과 호기심이 싹트기 시작하였고, 개성적인 존재로서 인간을 인식하기 시작함.(카스틸리오네의 궁정인, 미란돌라의 인간의 위엄 등) 르네상스 미술 :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레오나르도 다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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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르네상스

르네상스란 재생이라는 의미로, 14~16세기에 걸쳐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문예가 부활한 것을 의미한다. 14세기경 이탈리아에서 문예지향적 운동으로 시작하여, 16세기경 사회비판적, 종교개혁적 성격을 띠면서 알프스 이북으로 확산되어갔다. 로마의 탄생지였고, 봉건제도와 교황, 황제의 영향이 미약해지면서 상업과 도시가 발달하여 르네상스가 확산되었고, 도시국가 간 경쟁이 상호 경쟁에서 국가이성 및 세력균형 개념으로 발전해나갔다. 피렌체 : 공화정이나 실질적으로는 메디치가의 코시모와 로렌초가 전제 군주로 군림, 12세기에 모직물 판매로 성장하였고, 13세기에 대상인과 금융업자 중심으로 봉건귀족을 축출하고 공화정 수립, 14세기에 치옴피의 반란으로 민주적 발전 촉진, 15세기에 코시모, 로렌초, 사보나롤라의 반르네상스적 종교개혁운동 전개, 16세기에 정치이론가이자 역사가인 마키아밸리가 권모술수, 지배자의 자질, 통치기술을 논한 정치학 책 군주론(1513) 발간 베네치아 : 화폐 두카텐 사용 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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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말의 독일

대공위시대(1254~1273)로 황제 자리의 공석으로 여러 왕가가 전전한 시기였다. 황금칙서(금인칙서, 1356) : 황제 선출법과 선제후 특권을 규정하여 7선제후가 새 황제를 선출하였다. 하지만, 여진히 황제권은 미미했고 황금칙서로 인해 약화됨을 확정지었다. 정치적 해체 추세 심화 : 자치도시의 도시동맹, 기사동맹, 신분제 의회 구성을 통한 재산권 보호, 지방제후들의 독립적 정치 단위 분열 영방국가 형성 : 13세기 후반부터 14세기에 걸쳐 유력한 봉건 제후들은 영방 단위로 영방고권(최종심적 재판권, 축성권, 화폐주조권, 관세징수권 등)을 행사 및 신분제의회 소집권을 장악하여 독립적인 정치세력으로 성장하였다. 이에, 독일은 과도기적 신분제 국가 형태를 취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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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전쟁

헨리 6세의 정신병으로 요크가의 리처드 섭정 -> 리처드 추방 후 귀국하여 랭커스터가(적장미, 왕가)와 요크가(백장미, 귀족)의 왕위쟁탈전인 장미 전쟁(1455~1485) 발발 1460년, 랭커스터가 승리, 리처드 전사 리처드 아들 에드워드가 승리 후 에드워드 4세(1461~1483)으로 즉위 이후, 왕족인 섭정 리처드가 리처드 3세(1483~1485)로 즉위 랭거스터가의 왕위계승자인 헨리 튜더가 프랑스 루이 11세의 지원으로 리처드 3세 격파 및 의회의 승인을 통해 헨리 7세(1485~1509)로 즉위하면서 튜더 왕조 개창하여 절대왕정의 기반을 닦음. 결과 : 귀족들이 많이 살해되고 재산이 몰수당했으며, 젠트리와 시민계급이 귀족들을 증오하면서 강력한 왕권의 출현을 갈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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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전쟁

전쟁(1337~1452) 전, 영국은 에드워드 3세(1327~1377)가 상/하원을 분리하였고, 치안판사를 설치하였으며, 왕위계승 문제와 농민 반란으로 인해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배경 : 카페 왕조에서 발루아 왕조로 변하면서 필리프 6세가 에드워드 3세와의 왕위계승 문제, 헨리 3세가 신하의 자격으로 가스코뉴의 소유 및 루이 9세의 승인으로 인한 가스코뉴 영유 문제, 프랑스에서 수공업자와 임노동자의 폭동이 빈번해지자 플랑드르 백작 대신 국왕 개입하였고, 이에 영국은 양모 수출 관세에 개입하는 것을 꺼려한 플랑드르 지방의 문제, 해상에서의 양국 해적들의 싸움이 있겠다. 그러다가 에드워드 3세가 신종 서약(1329)의 시정을 요구하자 필리프 6세가 거부하고 가스코뉴 공령을 몰수하겠다고 선언하였고, 에드워드 3세의 선전포고로 백년 전쟁이 시작된다. 전쟁 전의 상황 - 프랑스 유리 : 프랑스 인구수 압도, 프랑스는 중무장 기사를 주력으로, 삼신분회와 절충으로 경제적 우위를 지녔으나,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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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도시의 쇠퇴

흑사병으로 인구 격감 및 수요 감소로 인해 쇠퇴하기 시작 도시민의 계층분화 : 무역이나 도매상을 통해 부유해진 대상인 출신으로 시 행정을 장악한 상층 부르주아(자본가), 기업가로 상승하지 못한 장인들의 중산적/소시민적 부르주아, 실업 및 빈곤화 극대의 도시 프롤레타리아(임금 노동자)로 나뉜다. 도시의 반란 : 자본가의 독점 및 임금 노동자의 증가로 인해 반란을 일으킴. 이로 인해 자본주의적 세계 경제의 출현을 예고한다. 플랑드르 지방 도시 반란(1328, 1370년대 말) : 도시 프롤레타리아의 저항 치옴프의 반란(1378~1382) : 피렌체에서 소모공의 반란 상인 자본가의 출현 : 백년 전쟁으로 인해 영국 자국의 모직물 공업 추구, 해로는 베네치아의 갤리선단이, 육로는 베네치아/제노바에서 알프스, 아우크스부르크, 한자동맹까지의 무역로 출현, 피렌체의 바르디, 페루치, 메디치, 후거 가문의 대 금융업자 출현, 선대제 경영 확대, 왕권과의 결합으로 발전하였다. 에티언 마르셀의 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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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농민의 반란

봉건적 부담 가중 및 억압으로 인해 도전적 성격이 발휘되면서 농민 반란이 일어남. 플랑드르 농민 반란(1323~1328) : 브뤼헤, 이프르 등 도시 반란과 연계 자크리의 난 1358 : 백년 전쟁, 흑사병, 봉건 귀족들의 압박, 중과세 부담, 무제한으로 징발하는 콩피에뉴 칙령에 의해 북부 프랑스 보베지에서 2개월 정도 지속, 반봉건적, 반체제적 성격을 지님. 와트 타일러의 난 1381 : 흑사병으로 인구 감소, 임금 상승으로 인해 영주들이 금납화 폐지 및 부역 부활 시도와 노동자 조례(1349, 임금 동결, 가격 상한제, 60세이하 노동 의무), 노동자법(1351, 임금 상승 요구 억압, 거주지 이전 금지), 백년 전쟁을 위한 인두세 징수로 인해 롤라드 수도사 존 볼의 원시 기독교의 평등사상 선동으로 타일러가 남부 지방 농민들을 이끌고 런던으로 진격하여 반봉건, 반교회적 성격으로 해방을 요구함. 정부와 협상 도중 와트 타일러 살해 및 상류층의 민병대로 진압하여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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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제의 붕괴

인구 증가(1300년경 포화 상태)로 인한 개간지 부족, 기후 변화, 원거리 통상 정책, 동부 독일 식민 운동 중단, 모직물 공업 쇠퇴, 이탈리아 대은행 파산, 샹파뉴 정기시 몰락으로 영주 직영지가 축소되거나 소멸되고(임대 방식의 정기소작제로 전환), 화폐 수요 증가로 인한 지대의 금납화로 인해 부역이 소멸되었고, 농민 예속의 필요성이 하락하면서 농노제가 소멸되면서 장원제가 붕괴함. 영국 : 지대의 금납화는 순조롭게 진행, 화폐가치가 하락하면서 농민 해방, 15~16세기에 토지가 등본보유농과 차지농에게 토지세 징수로 농민들 축출 및 정기소작농으로 대체 -> 새로운 농민층 형성 프랑스 : 14세기 이후로 농노 해방 순조롭게 진행, 지대의 금납화 진행, 16세기에 봉건적 반동으로 생산물 지대로 고정되면서 봉건적 공납 계속해서 부담하게 됨. 독일 : 12세기 이래로 자유로운 농민들, 16세기에 농산물 가격이 인상되면서 자유 박탈 및 직영지 경영하는 구츠헤어샤프트(영주농장제, 농노제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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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중세의 문화

중세 문화는 보편적 교회에 의해 로마적 요소와 게르만적 요소가 결합되었고, 크리스트교와 봉건적 성격이 결합되었다. 보편적 통일문화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학문의 부활 : 그리스 철학 유입 및 상공업과 도시의 발달로, 11~12세기에 수도원에서 주교성당의 부속학교로 이동하였고, 13세기에 대학이 발달하면서 스콜라철학이 등장하였다. 대학 : 학생 길드(이탈리아 및 남유럽)와 교사 길드(알프스 이북 북유럽)에서 출발하여, 이탈리아의 볼로냐대학(법학 중심, 이르네리우스의 로마법 강의, 그라티아누스의 교회법 강의 기반으로 성장), 프랑스의 파리대학(신학 중심, 1200년에 필립 2세의 특허장 교부), 영국의 옥스퍼드대학(신학 중심, 헨리 2세의 대불관계 약화로 파리에 있는 학자의 귀국으로 인해 설립), 영국의 케임브리지대학(옥스퍼드와 파리에서 이주), 단과 대학인 칼리지(파리의 소르본, 옥스퍼드의 머튼 칼리지, 케임브리지의 피터하우스)가 설립되었다. 대학은 병역과 사법권으로부터 면제받았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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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봉건 왕조 - 러시아

14세기, 여러 봉건 제후국으로 구성되어있고 몽골족의 지배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반 1세(1328~1341) : 몽골족 지배자로부터 다른 러시아 공국들의 공납징수 총책임자로 임명, 모스크바 대공국 수립, 몽골의 영향력 쇠퇴로 주도적 지위 차지 이반 3세(1462~1505) : 몽골로부터 해방, 노브고로트 흭득, 모스크바 공국 영토 확대, 비잔티움 제국이 멸망(1453)하자 황제의 조카와 혼인하여 계승자 자처 및 그리스 정교회 계승, 키예프에 성 소피아 대성당 건축, 차르 사용으로 제3의 로마를 자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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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봉건 왕조 - 독일

오토 왕조 시절 이탈리아 정치에 간섭 및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교황과의 충돌이 잦았다. 교황파인 벨펜가와 황제파인 호엔슈타우펜가끼리 제위계승 분쟁을 일으켰고, 보름스 협약으로 인해 이탈리아와 연계되어 교황파인 겔프와 황제파인 기벨린이 대립하게 된다. 프리드리히 1세(1152~1190) : 호엔슈타우펜 왕조(1152~1254) 개창, 대제후에게 자유재량권 인정 및 신종 요구, 소제후와 귀족을 대제후의 신하로 만듬으로써 독일을 봉건국가로 조직, 이탈리아에 완전한 주권을 행사하기 시작하면서 혼인을 통해 부르군트를 흭득하고, 롬바르디아 도시 동맹과 레냐노에서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도시국가의 자치를 허용시키게 된다. 토스카나, 스폴레토 등 중부 이탈리아로 확장, 시칠리아와 친선 도모, 제3차 십자군 원정 중 익사 하인리히 6세(1190~1197) : 독일, 부르군트, 이탈리아 중부, 시칠리아의 지배자 오토 4세(1198~1215) : 영국 리처드 1세의 후원으로 즉위, 초기에는 인노켄티우스 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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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봉건 왕정 - 프랑스

왕령지 확대와 관료제 정비를 통해 왕권을 발전시켰다. 필리프 1세(1060~1108) : 왕권은 왕령 내 소제후들에게조차 미치지 못함 루이 6세(1108~1137) : 왕령 내 소제후 굴복시키고, 유력 대제후 아키텐공과 플랑드르백의 신종을 얻어 왕권 발전의 기초를 수립 루이 7세(1137~1180) : 샹파뉴 백작, 블루아 백작과 친족관계를 형성하여 왕권 강화 존엄왕 필리프 2세(1180~1223) : 존왕의 봉건적 의무 이행 거부 및 부빈 전투(1214) 승리로 영국 영지 몰수, 노르망디, 메인, 앙주, 투렌 점령으로 인해 왕령지 확대로 카페 왕조 왕권 강화 및 1차적인 국민감정 형성, 영토를 관리하기 위해 지방행정관(바이이, 세네샬) 제도를 창설, 바이이는 왕권을 대행하고 사법과 국왕의 수입을 관장하는 시민계급 출신이고, 세네샬은 적대 지역과 인접한 곳에서 바이아와 비슷한 일을 행하는 성주 및 기사 출신이다. 둘 다, 보조자가 필요해지면서 훗날, 관료조직이 형성되게 된다. 성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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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봉건 왕정 - 영국

노르만 왕조의 헨리 1세(1100~1135) : 순회재판관을 전국에 파견하여 왕의 사법권을 강화하였고, 재무관 설치 및 주장관(셰리프)에게 연 2회 보고함으로써 왕실 재정을 강화하였다. 이후, 치열한 왕위쟁탈로 대제후 세력이 신장하였고, 스테판에 이어 헨리 2세가 왕위계승을 하면서 플랜테저넷 왕조를 개창한다. 플랜태저넷 왕조의 헨리 2세(1154~1189) : 상속과 결혼으로 프랑스 서부 해안을 보유하였으며, 직속봉신들로부터 군역대납금을 받아 용병군대를 조직하여 프랑스 영토를 관리하였다. 교회 사법권을 통제하기 위해 클라렌든 헌장(1164)를 발행하여 국왕법정의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했으나 교회와의 잦은 충돌(캔터베리 대주교 토마스 베캣 암살)로, 영국 교회법정이 교황청에 소청하는 권리를 인정받을뿐, 교회 재판권을 통제에 실패하였다. 순회재판제를 확대하여 벌금을 징수해 수입을 증가시켰고, 대배심제를 실시하였으며, 봉건 제후 법정의 판결 불가시 왕립법정에 상소할 수 있게 하였다. 이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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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도시의 발달

도시의 등장 : 원거리 무역과 해상 교통 중심지나 옛 로마 시대의 도시(주교나 백작, 수도원의 소재지)에 위치, 상인과 수공업자들이 정착하면서 발달, 자연적 교통로에 따라 주교도시와 성채 발달, 새로운 거류지는 재래의 성 밖에 건설 및 새로운 성벽과 보루 축조, 끝내 상공업 중심의 중세도시 탄생 도시의 주민 : 상인, 수공업자, 주변인에서 상품 하적 및 수송, 선박 의장, 수레/통/상자 제조업자와 각종 직인들이 모이기 시작하고 수공업자들이 모여들면서 시민계급(부르주아지)와 중산계급이 성장하게 된다. 코뮌 운동 : 11~12세기에 상공업장의 활동 특성상 자유와 자치권을 얻기 위해 서약단체로서 자치공동체 코뮌를 형성하였다. 이로 인해 12세기 중엽까지는 대부분 특허장(Charter)를 지급받아 자유와 자치권을 흭득하였다. 이후, 북유럽에서는 프랑스는 왕권과 손잡아 봉건귀족이 추방되고, 잉글랜드는 존왕의 통치에 맞서 봉건 제후 편에 가담하여 독립적인 도시국가로 발전하지 못하였고(자치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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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농업과 상업의 발전

농업 혁명 : 10~11세기 장원제 하에 온난한 기후 및 농기계와 농업 기술의 발전, 쟁기의 개량, 마력 이용, 3포제 도입으로 생산량이 증가하였다. 상업의 부활 : 11~13세기 인구가 증가하면서 시토 교단에 의해 개간 및 간척 사업이 이루어져 원거리 통상과 무역이 활성화되면서 지중해 무역을 중심으로 상업 발전을 이루어냈다. 지중해 무역로로는 바그다드, 다마스쿠스,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의 이탈리아 상인, 알프스 이북으로 흘러갔고, 베네치아, 제노바, 피사 등에서 주로 교역하였다. 향신료나 명반, 견직물, 사치품과 모직물을 주로 교역하였다. 북유럽 무역 : 북해의 플랑드르 지방에서 10~12세기에 노르만 침입이 감소하면서 모직물을 통한 거래 활발 북부 독일 연안 도시(한자동맹) : 12세기에 뤼베크, 함부르크, 브레멘, 단치히 등이 한자동맹을 결성하여 노브고로트, 스칸디나비아반도, 브뤼주, 런던 등으로 진출하였고, 독일 황제권 약화로 인해 자위 함대와 요새, 해외상관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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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교회 개혁 운동

윌리엄 오컴(1285~1349) : 보편은 단지 이름이며, 개별적인 것들을 논의하기 위한 편리한 기호일 뿐이라는 유명론을 제창하여 신앙과 이성의 조화를 파괴하는 이론을 내세웠다. 철학적 사색과 같은 이성은 지식을 확신시키지 못하며, 교권정치와 그 제도가 신앙의 전부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개별 사실들의 관찰에 대한 관심의 증가로 인해 과학 발달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존 위클리프(1330~1384) : 교회 재산은 세속적 권위의 배려로 유지되는 거라고 주장, 교회재산을 탐내던 랭커스터공 곤트의 존을 비롯한 영국 귀족들에게 환영, 성사의 영혼 구제 기능과 화체설을 반박(죄를 범한 성직자가 집전한 성사는 무효, 예정설 - 성사 그 자체가 영혼의 구제에 본질적인 것이 아님, 그리스도는 영적인 존재이지 포도주나 빵에 존재하는 것이 아님), 신자의 생활방식은 성경에 있다고 주장, 성경을 번역하여 종교 개혁에 큰 영향을 끼치는 두 권의 성경 영어 번역본 편찬, 농촌에 주로 퍼져 롤라드라 불림. 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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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권의 절정과 쇠퇴

1. 인노켄티우스 3세(1198~1216) : 교황권의 절정기 정치적 영향력 독일 : 벨펜가의 오토 4세 대신 호엔쉬타우펜가의 프리드리히 2세를 지원하여 황제가 되게함 프랑스 : 필리프 2세의 이혼 문제 개입 영국 : 캔터베리 대주교 임명 문제로 존왕과 대립, 랭턴 임명으로 영국을 교황에게 바친 후 다시 봉토로 받게함 제4차 라테란 공의회 1215 : 가톨릭 교리 재확인, 도덕적 개혁, 내부행정 향상 진력을 위해 개최하였고, 화체설을 인정하고 모든 성인 신자들이 1년에 한 번 고해성사와 부활절 성체 성사를 하도록 의무화, 알비파와 왈도파를 이단으로 규정하였다. 알비 십자군 1208~1229 : 알비 십자군을 결성하여 육체를 죄악시하고, 성사제도를 배격하며 성직자의 부와 세속화를 비난하기에 남부 프랑스의 알비파(카타리파)를 학살하였고, 도미니쿠스 교단 설립 및 종교재판의 계기가 되었다. 또한, 프랑스 남부 지방이 프랑스 왕에게 귀속되면서 대립하던 일부 귀족이 몰락하여 왕권이 더 강화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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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전쟁

사회 안정과 농업 생산력 및 인구 증가, 이슬람 세계에 대한 반격, 성지 예루살렘을 회복하여 동서 기독교 세계 통합 의지 및 교황의 주도권 쟁취, 셀주크 튀르크의 만지커트 전투로 인한 동로마의 구원 요청으로 인해 전쟁이 필요해졌다. 알렉시우스 1세가 교황 우르바누스 2세에게 구원을 요청하게 되면서 클레르몽 공의회(1095)를 개최를 하여 성지회복을 호소한다. 이에 교황의 영도하에 십자군(Crusades)을 편성하여 예루살렘으로 진격한다. 제1차 십자군 1096~1099 : 농민 십자군(은자 피터 주도, 튀르크에게 격멸당함, 비공식) 등을 이끌고 성지 회복(유일) 및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거쳐 소아시아의 수도 니케아 함락, 이후, 4개의 라틴 봉건 왕국 성립 에데사 백령 1097~1144 : 2차 십자군 배경, 플랑드르백 보두앵이 창건 안티오크 공령 1098~1268 : 로베르 기스카르의 아들 보에몽이 창건 예루살렘 왕국 1099~1187 : 3차 십자군 배경, 고드프루아 드 부용이 왕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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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재정복 운동

에스파냐 : 클뤼니 수도원과 교황과 프랑스 귀족들의 지원으로 우마이야의 이베리아 반도의 재정복을 뜻하는 레콩키스타 거행 반도 북부의 크리스트교 국가들이 11세기 전반에 코르도바 교주국 공격 및 영토 확장 12세기 초에 포르투갈 왕국 탄생 13세기 중엽에 그라나라 외 모든 영토 회복 시칠리아 노르만 기사를 이끄는 로버트 기스카드가 비잔틴으로부터 남부 이탈리아 회복(1054~1071) 이슬람으로부터 동생 로저는 시칠리아 정복 1091 노르만 기사들은 교황에게 신종하는 대신 시칠리아 왕을 지칭하여 양(兩) 시칠리아 왕국 성립(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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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임권 문제의 해결

국왕의 성직 서임권은 주교의 봉토 및 관할권이 원인이고 영적 세계 관장에 전념할 것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영국 : 성 안셀무스와 헨리 1세 타협, 교황의 승인(1107), 주교는 교회 내에서 선출, 취임 전 국왕에게 봉신으로 신서, 봉토, 관할권 수여받음, 국왕은 신서를 거부할 수 있고, 강한 발언권 행사 가능, 프랑스에서도 유사한 타협 성립 독일 보름스 협약 1122 : 교황 칼릭스투스 2세(1119~1124)와 하인리히 5세(1106~1125) 간의 협약으로, 황제는 주교 임명 이전까지의 관행을 포기하고 서임식에 참여 및 봉토 수여만 인정, 주교와 수도원장은 황제에 의해 임명되지만 단지 세속 관직의 보유자로서 임명되고, 종교적인 의미는 교황이 수여, 황제와 교황에 의한 이중의 성직 서임이 제도화됨. 주교의 선출 기준 강화, 교황권 강화, 교회(교황파 - 겔프파의 벨펜가)와 국가(황제파 - 기벨린파의 호엔슈타운펜가 -> 프리드리히 1세) 간의 대립, 지배자에 대한 반항심 증가로 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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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노사의 굴욕

클뤼니 수도원 출신인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1073~1080)는 밀라노의 주교 선출에 관해 하인리히 4세에게 간섭하지 말도록 서한을 보냄. 또한, 주교와 수도원장은 세속 군주로부터 서임을 받지 말도록 규정하기도 함 교황 훈령 1075 : 황제권에 대해 교황권의 우위 주장 황제는 독일 반란이 진압되자 밀라노의 황제파 주교에 대해 후원 시작하고 주교회의를 소집하여 교황을 찬탈자로 규정 교황은 황제의 파문과 폐위를 선언 -> 독일 제후들이 황제를 감금하고 황제가 타협하라고 선언 -> 황제의 타협 거절 -> 제후들이 교황을 초빙하여 황제 선출 요청 아우크스부르크에서 교황 주재의 귀족과 주교로 구성된 국회에서 황제 선출 결정(1076) 카노사의 굴욕(1077) : 북이탈리아 카노사에서 용서를 구함 -> 교황권의 우위를 인정함. 황제파-반황제파 내란(1077~1080) : 내란을 진압한 황제는 새로운 교황을 세워 대관식 거행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는 피신하였으나 사망 교황 우르바누스 2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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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교황권의 확립

성직 서임권 분쟁 : 9~10세기에 성직자들은 교황이 무력하여 국왕은 지상에서의 신의 목자라는 왕권신정론에 입각한 국왕에 기대어 지명과 서임을 받는다. 라테란 종교 회의(로마, 1059년) : 교황 니콜라오 2세가 교황의 선출은 추기경단에 의해서만 선출되고, 성직 매매 거부, 사제의 독신 생활을 강조한 칙서 In nomine Domini(주님의 이름으로)를 발표한다. 이로써 독일 황제는 제안권을 행사할 수 없고, 동의권만 행사할 수 있으며 신성 로마 제국의 간섭에서 벗어나게된다. 이 규정으로 1061년 알렉산데르 2세가 교황으로 선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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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교회의 개혁 운동

1. 상황 주교 지위의 불안정 : 고위 성직자와 세속 봉건 귀족들의 압력, 압력을 벗어나고자 9세기 무렵 교회법전을 위조하여 이시도르 위문서집 편찬 교황권의 약화 : 10세기 초, 황제나 귀족이 교황 임명권을 장악하고 붕당 수령에 불과해진 위치로 전락 이민족의 침입 : 노르만족과 마자르족의 약탈로 인해 제후 중심의 지방 분권이 완성되면서 가속화된 교회의 세속화 2. 클뤼니 수도원 세속 권력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아키텐공 윌리엄(기욤 아키텐 공작)의 승인하에 910년 설립 승인장 : 봉건적 토지소유 금지, 수도원장의 선거권은 수도사가, 교황의 직속, 베네딕투스 계율을 지키기 위해 태만과 나태 추방 및 공동생활 강조 프랑스 메스 근처의 괴르츠 대수도원과 함께 개혁 운동 전개 3. 교황 레오9세와 개혁 운동의 확산 교황 레오9세 1049~1054 : 성직자의 혼인과 성직 매매 금지, 각지 순회하여 개혁적 고위 성직자를 추기경으로 임명하여 교황 직속 편입, 알프스 북쪽 지방 효과적으로 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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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 운동

세속화로 인해 초기 교회의 이상으로 돌아가고자 신자와 성직자가 수도원 운동을 전개 기원 성 안토니우스 3세기 말 : 추종자들과 북부 이집트의 사막에서 은둔생활 성 파코미우스 4세기경 : 북부 나일강변에서 공동체 규칙 작성 동방의 수도원제도 확립 4세기 : 성 바실리우스가 노동, 자선, 공동생활을 계율로 정한 동방 수도원 운동을 창시하였고, 이후에 그리스 정교의 표준적 계율이 되었다. 누르시아의 성 베네딕투스 6세기 : 서방 수도원 전통의 효시가 된 '규칙' 작성, 청빈, 정결, 복종(순명)을 강조하였고, 금욕적이며 규칙적인 공동생활을 강조하였다. 매일 육체노동에 종사하고 나머지 시간은 독서와 기도와 공동예배에 할당한다. 필사노동을 위해 필사실 따로 마련, 자급자족의 경제 활동, 이후에 클뤼니 수도회와 시토 수도회로 계승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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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교회의 세속화

예루살렘,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가 상실되고 로마와 콘스탄티노폴리스 교회 중심으로 발전하면서 교구가 축소되었고, 로마의 수좌대주교가 베드로의 후계자로 인정받아 교황으로 군림하여 수위권을 확립하였으며, 봉건영주의 지지 및 교황-대주교-주교 구조의 계서제가 확립되면서 세속화되기 시작하였다. 교회의 재산이 크게 증가하였고, 성직 매매를 통해 권력 장악 및 강화 수단으로 전락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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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건제와 장원제

1. 봉건제의 기원 피호제 : 개인적 보호관계 측면은 로마의 클리엔테이지에서 유래 종사제 : 무기와 식량을 공급받는 대신 충성을 다하여 싸우는 게르만의 종사제에서 유래 소작제 : 토지의 용익권을 갖는 것으로 농민이 농장주에게 땅을 넘겨주고 소작을 기원하는 가점유 형태 은대지 : 군사적 봉사의 반대급부로, 카롤루스 마르텔의 제도에서 유래 2. 봉건제의 성립 과정 카롤루스 마르텔의 군사개혁 : 이슬람 격퇴를 위해 기병을 설치하면서 충성 받기위해 왕령지와 교회 토지를 종군 보상으로 은대지를 수여(용익권만 허용, 주종제랑 은대지제도 결합) 카롤링거 왕조 붕괴 및 외부 이민족 침입으로 국가가 무력해지면서 지방 영역단위의 방어가 필요함에 따라 봉건제 발전 교환경제와 지중해 상실로 상공업 쇠퇴, 화폐사용 및 유통 격감 및 도시 소멸로 자연경제로의 후퇴 및 사회의 농촌화되어 토지가 유일한 재산이 되었고, 예농 형태로 자리잡게 됨. 3. 주종제도 대토지의 수여와 기사로서의 군사적 봉사 제공을 바탕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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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과 슬라브족

10~11세기에 신생국가 폴란드(로마 교회), 보헤미아(후의 체코, 국민 교회), 헝가리가 건국되었다.(셋 다 로마 가톨릭 수용) 비잔틴의 미카엘 3세가 모라비아의 슬라브족에게 키릴과 메토디우스 형제를 전도사로 파견하여 슬라브 알파벳(키릴 문자)을 발명하였고, 복음서를 번역하였으며 슬라브 기도서를 발행하였다. 남부 슬라브족이 크리스트교를 수용하면서 크로아티아는 가톨릭, 세르비아는 그리스 정교, 불가리아는 가톨릭에서 그리스 정교로 개종하였다. 10세기 후반에 비잔틴 바실리우스 2세와 키예프공국 블라디미르의 혼인 제휴로 그리스 정교 수용하여 러시아 교회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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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잘리어 왕조

1024~1137년간 존속 콘라트 2세 1024~1039 : 부르군트 왕국 병합(1033), 왕령 농민, 농노 출신으로 가신 계층인 미니스테리알렌 육성으로 귀족세력 견제 하인리히 3세 1039~1056 : 콘라트 2세 정책 답습, 남부작센 튀링겐에 성채 축조, 교회 개혁운동 지지 및 신흥 대귀족(퓌르스텐)의 지지로 1046년에 독일 전체 평정 하인리히 4세 1057~1105 : 카노사의 굴욕 하인리히 5세 1106~1125 : 보름스 협약 체결(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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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작센 왕조

독일은 영주제와 봉건제가 널리 미치지 못했고, 9세기 중엽에 카롤링거 왕통의 쇠퇴로 주요 부족공 세력들이 왕령을 잠식하고 주백을 복종시켜 교회에 대한 보호권을 흭득하였다. 하인리히 1세 919~936 : 통일 군주이지만 각 지방의 자치를 허용하여 부족적인 지방할거주의가 강한 작센 왕조(919~1024)를 수립하였다. 오토 1세 936~973 : 마자르족의 침략을 종식시킨 레히펠트 전투(955) 승리, 명실상부한 국왕이 되고자 아헨에서 대관식과 도유식 거행 및 지방제후 반항 분쇄, 프랑켄을 직접 통치, 주교와 수도원장에게 영토와 주백의 권한 및 필요시 병사 제공으로 충성과 지원 약속, 부르군트 왕국 보호령화, 롬바르디아 지방 정복(951), 각 공국의 부족공에 대항할 만한 영지와 사법권을 지닌 세속제후(퓌르스텐) 형성, 로마로 진군하여 교황 요하네스 12세로부터 제관을 받아 신성 로마 제국 성립(962)을 하나, 이탈리아 문제로 인해 교황과 대립하여 통일 국가로의 발전 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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