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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노르만 왕조

1066년부터 1154년까지 존속한 왕조로, 의회는 웨섹스 백작 해럴드를 왕으로 추대했으나 노르망디 공작 윌리엄은 혈연관계를 바탕으로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승리하여 1066년에 영국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윌리엄 1세 1066~1087 군사력 강화 : 군사기지마다 성채를 축조하고, 도버해협에 요새를 축조하였으며, 스코틀랜드와 웨일즈 국경선에는 신임하는 신하에게 봉토를 수여 대륙식 봉건제도 : 색슨 토지를 몰수하여 종군 신하에게 분배, 봉토 소유자 및 주교와 수도원장에서 기사 차출 의무 부과로 5천 명의 기사 확보, 대제후에게 재분봉권 수여, 주법정의 주장관은 노르만으로 대체 및 교회재판권 분리 정치 구조 변화 : 위테나게모트 대신 봉건 신하로 구성된 왕실 자문회의(curia) 설치, 노르만 영주에게 경찰권과 교수형 권리(유력 영주에게만) 부여, 성직자와 세속영주에게 사법권을 포함하는 영주권(불입권) 부여, 농민을 농노로 재편하고 영주제 적용하여 예속되게 함. 왕권 강화 : 광대한 왕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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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앵글로 색슨 왕국

발전 과정 829년에 앵글로 색슨 왕국 성립 스코틀랜드의 케네스 맥알핀 등극(843~860) 865년에 데인족의 잉글랜드 지역 점거 웨식스의 알프레드 등극(871~899) : 데인족 침략에 맞서 통일 및 협상체결, 강력한 왕권 수립 왕권 : 전국 왕령화, 지방법정에서 벌금 징수 가능, 징병제, 주 장관(셰리프) 임명 및 교체권, 주교와 수도원장 임명, 국왕의 자문기관이자 국왕선거를 실시하는 위테나게모트 설치 주 법정(shire court) : 주는 지방행정 단위로, 데인족의 점유지를 회복하면서 군사기지인 바라를 중심으로 새로 조직하였다. 주 법정은 지방 군사령관, 주 장관, 주교의 사회로 주 내의 자유민이 모여 관습에 따라 재판한다. 데인족의 지역 Danelaw : 동북부 지방을 할양, 고유의 법과 습속 유지, 1016년에 덴마크 왕 크누트는 대함대를 거느리고 영국에 침입하여 왕위에 올랐고,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 데인겔드를 징수하였다. 단, 법과 관습은 존중하였다. 고해왕 에드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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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카페 왕조

9세기 중엽에 프랑크 왕국의 분열 이후로 서프랑크는 노르만족의 침입으로 혼란스러운 상대에서 987년에 카롤루스 왕조의 혈통이 끊기자, 제후와 성직자들이 카페를 왕으로 받아들여 카페 왕조(987~1328)가 시작되었다. 노르만족 침입의 증가로 봉건제후들의 세력이 날로 갈수록 증가하여 주백(count)의 지위가 점차 세습되어 지방 분권적 봉건 국가의 특성을 보이게 된다. 왕권(일드프랑스 공령만 지배)은 미약하지만 대제후의 상위주군으로서 필요하였고, 교회의 지지로 인해 왕조가 오랫동안 존속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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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틴 제국

527~1453년동안 존속하였고, 세 차례의 시기로 나뉘며 중앙 집권적 황제 교황주의(바실레우스, 왕 중의 왕)에 자영농 중심의 상공업, 그리스 정교파이고, 수도인 콘스탄티노폴리스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있어 상업, 군사적으로 요새이다. 외교술을 통해 불가피한 경우에만 전투를 선택하고, 황제가 교회를 통치하면서 무역(동방 무역 활발, 사치품과 양잠업 등)을 전개해나갔다. 헬레니즘과 동방과 그리스 정교가 섞인 비잔티움 문화로 그리스 고전 문화(이슬람으로 전파, 르네상스 자극제가 됨), 돔과 모자이크 벽화의 비잔틴 양식(성 소피아 대성당, 라벤나의 성 비탈레 성당, 베네치아의 성 마르코 성당), 대포가 발달하였다. 1. 제1기(유스티니아누스~8세기 초) 유스티니아누스 1세 527~565 : 니케의 반란(532)로 위기를 겪다가 왕비이자 여재인 테오도라의 조언으로 진압 후 권력 장악, 지중해 요충지를 장악하였고, 장군 벨리사리우스와 나르세스를 파견하여 반달 왕국과 동고트 왕국을 정벌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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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르족의 이동

중앙아시아 계통의 유목민으로, 불가리아 왕국이 페체네그족과 연합하여 공격해 지금의 헝가리 지역으로 이동하였고, 10세기 중반까지 동로마제국부터 에스파냐까지 유럽 전역을 약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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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만족의 이동

스킨디나비아반도와 덴마크 등 북유렵 지역에 살던 노르만족들이 인구가 증가하고 기후가 변화면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이동으로 인해 유럽에 혼란을 가져왔고 봉건화가 촉진되었으며 문예 부흥이 몰락하였다. 슬라브 땅으로 침입 : 9세기 중엽 노브고로트에 기지 설치, 10세기에 키예프 정착 후 최초의 러시아 국가 건설 프랑스 침입 : 10세기 초 서부프랑크는 센강 하구 일대를 주고 봉신으로 삼아 노르망디 공국을 만듬. 지중해 진출 : 이슬람으로부터 시칠리아를 탈환하고 나폴리 왕국 건국 영국 진출 : 선사 시대에 켈트족이 침략했고, 로마 식민지가 되었다가 게르만족에 의해 6세기에 앵글로 색슨족이 지배하던 영국 지방에 덴마크를 구성하는 데인인이 3대에 걸쳐 10세기에 왕조를 형성하였고, 헤이스팅스 전투(1066)으로 노르만 왕조가 건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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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 왕국의 붕괴

베르덩 조약 843 : 카롤루스 대제의 아들인 루이 경건왕 루도비쿠스의 세 왕자(중부의 로타르, 동쪽의 루트비히, 서쪽의 대머리왕 카를)가 왕국을 3분할 메르센 조약 870 : 동/서프랑크가 북이탈리아를 제외한 중프랑크(로트링겐)을 잠식하면서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의 영역적 기원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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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 카롤링거 왕조

비잔틴 황제 레오 3세가 대토지 소유자이자 성상숭배 경향이 강한 수도원 세력을 억제하고자 726년에 성상숭배금지령 반포, 서로마 교회는 문맹인 게르만족의 교화를 위해 성상숭배가 필요하여 동서교회가 분열됨. 또한, 랑고바르드족의 팽창으로 인해 교황 자카리우스가 프랑크 왕국의 지원을 바랄 수 밖에 없는 상태임. 피핀 741~768 : 자카리우스의 승인으로 카롤링거 왕조 개창, 라벤나를 점령(757)한 랑고바르드족을 물리쳐 교황 스테판 2세는 직접 프랑크 왕국으로 가서 도유식을 거행하였고, 피핀은 보답으로 랑고바르드족을 격파하고 라벤나 포함 중부 이탈리아 영토를 기증하여 교황령이 시작됨. 카롤루스 대제(샤를마뉴) 768~814 영토 확장 : 랑고바르드족, 보헤미아, 오스트리아, 헝가리, 유고 일부까지 정복, 에스파냐 정복 후 철수 도중에 피레네산맥에서 기습을 받음(롤랑의 노래), 이슬람 세력을 막고자 피레네산맥 남부 카탈로니아 지역에 에스파냐 변경주 설치, 정복으로 인해 동은 엘베강,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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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 메로빙거 왕조

프랑크 왕국은 원주지를 버리지 않고 팽창하였으며, 서로마 가톨릭 개종 및 비잔틴, 이슬람의 공격을 받지 않아 명맥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메로빙거 왕조는 481년부터 751년까지 존속했다. 클로비스 481~511 건국 : 칠데릭 1세를 이어 프랑크족의 부족장이 된 클로비스는 부족 대부분을 규합하고 로마 세력과 서고트족(에스파냐로 쫓겨남)을 제압하여 북갈리아 지역에서 왕조를 세운다. 개종 : 갈리아 지역의 귀족 세력들을 끌기위해 아타나시우스파로 개종(알라마니족과 전투 - 톨비악 전투 496) 후에 크리스트교를 국교로 삼았다. 갈로-로만 지배계층과 교회와 협조를 얻으면서 나라 번영에 큰 영향을 끼쳤다. 클로비스 사후 동부의 아우스트라지아, 서부의 노이스트리아 귀족 분열 등으로 인해 권력투쟁이 심해지면서 왕국이 분열되었고, 7세기 중엽에는 왕 대신 궁재라고 불린 귀족의 대표들이 왕권을 행사하였다. 덩달아, 이슬람, 노르만, 마자르의 침입이 이어졌다. 카롤루스 마르텔 688~741 : 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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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만족의 이동

게르만족 : 부족사회, 족장, 민회, 종사제도, 아리우스파 기독교 수용, 여자의 토지 상속권과 왕위계승권을 부인한 살릭법 제정 이동 양상 : 3세기부터 로마제국의 힘이 약해지자 영역으로 들어와 하급 관리, 농민, 용병으로 지내다가 군사적 침략으로 변모, 훈족이 고트족을 압박하면서 375년경부터 집단적으로 이동 시작 서고트족 Visigoths : 발칸반도나 소아시아의 노예들이 기독교 전파, 종교지도자 울필라스 출현하기도 함. 아드리아노플 전투(378) : 터키의 에디르네에서 동코트족 등의 도움을 받은 프리티게른의 서고트족이 발렌스 황제의 로마군을 패배시키고 전사까지 시킴. 알라릭 지휘하에 그리스와 로마 약탈(410) : 신국론 저술의 배경이 되었다. 프랑크 왕국 클로비스 공격으로 에스파냐 이동 -> 서고트 왕국 건국 후에 이슬람에 의해 멸망(711) 반달족 Vandals : 북아프리카까지 점령 후 튀니스 인근에 반달 왕국 건국(429), 함대를 건조하여 시칠리아와 이탈리아 해안 약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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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트교의 교리 논쟁

그노시스파 : 2세기 초, 영지에 의한 구원 표방, 인간적인 생활이나 십자가의 속죄 부정 그리스도의 본성에 관한 논쟁 : 성부와 성자, 신성과 인성에 대해 논함. ㄱ. 니케아 공의회(325) : 콘스탄티누스 대제 소집, 아리우스의 가르침(성부는 성자와 다름, 예수는 하느님의 지상 대리자, 만물은 절대자로부터 파생되어옴.)을 이단으로 규정, 성자는 성부와 동일한 본질, 황제가 최종 결정하면서 교회 일에 간섭하는 황제교황주의의 기원이 됨. ㄴ.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381) : 테오도시우스 1세 대제 소집, 니케아 신조에 따라 아타나시우스파(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모두 같고, 하느님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지상에 갱생, 기독교의 전통 중시)는 삼위일체설 정통임을 확인, 아리우스파의 추방으로 게르만족에게 영향을 끼침. ㄷ. 에페소스 공의회(431) : 테오도시우스 2세 소집, 인성을 경시하고 신성만을 인정하는 단성론(Monophysitism)과 인성을 강조하여 그리스도를 진정한 인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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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트교의 성장

로마의 종교 : 자연종교적, 다신교(올림푸스 신을 인격화), 황제 예배, 점성술, 운명의 여신 숭배, 디오니소스 제전, 오리엔트의 비의종교, 키벨레, 이시스여신 예배, 미트라 예배, 신플라톤철학 등 유행 크리스트교의 성장 : 원시 기독교 시대(그리스도~사도 시대) -> 로마 기독교 시대(박해-공인-국교화) -> 중세 기독교 시대(교부-스콜라철학)의 과정을 걸쳐 발전하였다. 로마 시대 크리스트교 박해 ㄱ. 64년 네로 : 로마 대화재 당시 소규모, 지방 정부 차원에서 기독교 신자 박해, 이 때 바울과 베드로의 순교가 전해짐, 베스파시아누스가 성전세 납부 대신 유대세 납부 추진, 도마티아누스가 유대세 납부 거절 문제 및 황제 숭배 거부 문제로 클레멘스 및 기독교 신자 박해하다가 96년에 사망함으로써 중단됨 ㄴ. 플라니우스의 박해 : 2~3세기동안 고발한 경우에 의해 재판하여 뉘우치지 않고 로마의 전통 신앙 혼돈 및 금지하는 야간 모임 및 마술, 황제 숭배 거부의 입장을 드러낼시 사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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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문화

법률, 토목 등의 실용적 문화와 그리스 문화에 라틴적 요소를 첨가한 유럽 고전문화의 완성으로 보편적 문화 형성 라틴 문학 : 산문작가이자 스토아학파인 키케로(국가론, 법률론에서 자연법사상 제시, 법의 근원 정의), 아우구스투스 시대에 베르길리우스, 호라티우스, 오비디우스 등 황금기 형성, 1세기 말~2세기에 에피쿠로시즘 유입으로 퇴폐주의 및 비극 유행함 철학 : 스토아철학(키케로, 세네카, 에픽테토스, 플로티노스 - 신플라톤철학), 상류층에 보급된 에피쿠로스학파 역사학 : 리비우스의 로마사, 에피쿠로시즘의 향략과 퇴폐 비판을 담은 타키투스의 게르마니아,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기, 폴리비오스의 포에니전쟁사, 플루타르크의 비교영웅전, 플리니우스의 자연사(세계 최초의 백과사전) 건축 : 원형극장(콜로세움 등에서 좌석배치의 변화로, 대중문화에서 귀족문화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코린트식 열주, 에트루리아의 원형 아치, 독자적 양식의 돔형 지붕(판테온), 목욕탕, 개선문, 바실리카, 콘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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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마의 몰락

게르만족 대이동(375) : 서고트족 침입, 아드리아노플 전투(378)에서 발렌스 황제 전사 테오도시우스 황제 379~395 : 서고트족 무마, 크리스트교 국교화(392), 사후에 동로마(아르카디우스)와 서로마(호노리우스)로 분열됨.(395) 서로마 멸망 : 크리스트교 국교화 비난 여론, 황제의 군대와 재정에 의지하는 계승 등 전제정치와 황제권 붕괴, 납중독의 환경오염, 농민층 붕괴 및 콜로누스제 등장, 군사력 쇠퇴, 게르만족 침입, 도덕적/윤리적 타락들이 모여 서로마를 멸망시켰다. 410, 알라릭의 서고트족이 로마 약탈 455, 반달족 로마 약탈 476,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가 게르만 용병대장 오도아케르에게 패배하면서 서로마 멸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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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의 재건 노력

디오클레티아누스 284~305 : 전제정 시작, 관료제 확대, 동로마로 중심 이동 및 동방 전제군주들에게 도미누스 칭호 사용, 4분할 통치제 시행, 국경방위 강화를 위해 게르만군 대거 수용, 수도 근방에 중무장 기병대의 야전군 설치(게르만족 다수), 국경에 변경주둔군 상주(현지인, 병역 의무 세습화), 문무 직책 구분 및 속주 총독의 행정권과 군대 지휘권 점유 제한으로 군대 정치 개입 방지, 직책을 고정하여 시참사회가 도시의 증세 책임을 부담하고 부족한 액수는 참사회원이 보충하는 예산총액제 실시, 세금부과 최소 단위를 남자 1인이 경작 가능한 토지로 규정하고, 없을 경우 지주나 인접 농민이 대납함. 이로 인해 자유를 포기한 소작인과 소농, 콜로누스, 노예 증가 및 예농적인 소작제 탄생(부자유소작인, 중세 예농의 선구), 통화개량, 금화와 은화의 실질가치 복원, 최고가격제(301) 실시로 자연 상태의 현물거래가 늘어 도시의 쇠퇴가 가속화됨. * 4분할 통치제 : 제국을 동과 서로 나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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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황제 시대

21대 카라칼라 황제 : 안토니우스 칙령(212) 발표로 재정의 안정과 전체적인 통합을 위해 제국의 모든 자유민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한다. 이로 인해 로마 시민의 특권적 지위가 소멸하였고, 속주세 폐지와 급료로 인해 지출이 증대하게 되고, 지출을 벌충하기 위해 세금을 인상하고 화폐의 질을 낮춰 주조하였다. 인기와 인심을 얻기 위해 대목욕장을 건설하는 등 여러 노력이 있었지만, 사후, 황제권이 약화되기 시작하면서 군인황제 시대(235~284)로 접어들게 된다. 군인황제 시대(235~284) : 사산 왕조 페르시아, 게르만족의 침입, 데키우스 황제의 사망, 발레리아누스 황제가 페르시아 군대의 포로로 압송 등의 외부 위협과 속주민 대거 입대, 군인의 세습화, 임금 부담 가중으로 군사력 약화와 증세 및 악화 주조, 인플레이션 증가, 전염병 발생, 대농장 경영 타격(소작제로 전환), 수공업 침체, 무역 퇴조, 황제 -> 시의회, 상인 및 수공업자 -> 지주 -> 소농, 소작인의 조세부담 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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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평화

96년부터 180년까지, 아우구스투스가 내란을 수습하고 재정을 수립하였기에 안정된 시기를 누릴 수 있었는데, 오현제 시대와 겹쳐 이를, 팍스 로마나 Pax Romana라고 한다. 라인강에서 다뉴브강의 북방 한계선과 동쪽의 엘베강까지 영역으로 삼았고, 이 시기에 계절풍을 따라 홍해를 통해 인도와 왕래를 하였고, 중국 상품이 등장하였으며, 육로를 통해 아라비아, 중앙아시아의 파르티아와 교역하였다. 2대 티베리우스 14~37 : 암살음모로 카프리섬에 은거하며 통치 3대 칼리굴라 37~41 : 정신질환을 앓다가 친위대 장교에 의해 살해 4대 클라우디우스 41~54 : 마우레타니아(현 모로코), 트라키아 속주로 편입, 브리타니아(현 영국)를 찾아 갈리아 방비 강화, 아그리피나의 권력욕으로 독살 5대 네로 54~68 : 폭군, 로마 대화재의 책임을 기독교인들에게 돌려 학살, 결국 자살 6대 갈바 68~69 7대 오토 69 8대 비겔리우스 69 9대 베스파시아누스 69~79 : 네로 사후 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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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투스

옥타비아누스가 기원전 27년에 원로원으로부터 존엄한 자라는 뜻의 아우구스투스의 칭호를 받으면서 활제(프린켑스 princeps, 제1시민, 원수)의 자리에 올라 로마 제정의 시대를 개창함. 이후, 원수와 원로원(principatus)의 이원지배 체제를 숙청하고 재편성하여 원수 하에 원로원이 놓이게 되었고, 기원전 23년까지 매년 집정관에 재선하면서 종신 호민관, 종신 집정관, 대사제직이 되어 독재권력을 차지하게 되었다. 군제 개편 : 비상시에만 작용해 비효율적으로 운영되던 시민군을, 25개의 군단으로 축소하고 직업군인 제도를 도입하여 복무기간은 20년, 연봉은 225데나리우스로 규정하였고, 황제 하에 군대가 통솔될 수 있도록 하였음. 또한, 정치 개입을 막기 위해 이탈리아 군대 주둔 금지, 군단장은 원로원 신분 중 1년마다 황제가 선출하였고, 9개 연대 친위대를 창설하여 3개는 친위대를, 6개는 주변 농촌에 배치하여 황제를 지켰으며, 친위대장은 기사 신분 중에서 선출하였다. 국가 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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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공화정의 몰락

기원전 133~30 기원전 2세기 말부터 1세기 초 동안 군사령관 출신의 장군들인 마리우스, 술라, 폼페이우스 카이사르 등이 등장하였다. 마리우스의 군제개혁(기원전 107) : 최초로 정치에 등장한 민중파로, 재산 자격을 철폐하고 무산시민도 군대로 받아들여 국가 지원 하에 봉급을 지불해줬으며, 6선 콘술이 된 마리우스는 호민관 사투르니누스를 통해 자기 병사들을 퇴역시키면서 1인당 100유게라씩의 토지를 분배시키고 북아프리카, 시칠리아, 아카이아, 마케도니아, 코르시카에 정착시킨다. 그 결과, 군대의 사병화가 진행되었고, 빈민들을 이용하여 징집한 뒤에 토지를 분배하여 자영농민으로 내보내는 관행이 담습되어, 시민군의 무산화 경향을 타파시켰다. 동맹시 전쟁(기원전 91~88, 기원전 88~84) : 동맹국들이 단합하여 이탈리아를 만들고 로마에 도전하였으나 로마가 협조하는 동맹국부터 시민권을 수여하여 전쟁을 끝냄. 이로 인해 시민 수가 40만 명에서 103만 명으로 늘었다. 1차 내전(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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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쿠스 형제의 개혁

자유농민 부흥 및 군사력 강화로 안정을 도모하고자 함. 티베리우스 그라쿠스 호민관 선출(기원전 133) : 불법 점유지를 몰수하여 농지분배 3인 위원회를 설치한 뒤, 무산시민들에게 분배하려는 농지법으로 개정하려했으나 원로원 중심의 반대파로 인해 살해당함. 하지만 효력이 점차 발휘되어 기원전 129년 이후로 공유지 재분배가 종결됨. 가이우스 그라쿠스 호민관 선출(기원전 123) : 무산시민들을 위해 시장가격 절반 이하로 곡물을 배급하는 곡물법, 창고법, 도로법 등 추진, 카르타고에 식민시를 건설하여 이주 계획 수립(실패), 에퀴테스에게 징세 특권, 법정 배심원 자격(종래 원로원) 부여, 지지세력 분열을 위해 이탈리아 동맹시에 로마 시민권 부여 시도 등 여러 개혁을 단행하다가 개혁 반대파의 공격으로 인해 도망치다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개혁으로 인해 비시민과의 갈등이 잦아졌고, 이탈리아 동맹시의 시민권 요구로 인한 동맹시 전쟁(기원전 91~68), 노예 봉기 시칠리아(기원전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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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에니 전쟁 이후의 사회 변화

자유농민층 아시두이 몰락 : 인명 피해 증가 및 농토 황폐화로, 경영 유지가 힘들어 중산층인 아시두이가 몰락하게 되었고, 빈부 격차 증가 및 사치와 향략을 좇는 해이한 생활기풍이 만연해지기 시작하였다,' 신흥지배층 에퀴테스 대두 : 기원전 218년에 원로원에서 무역, 공공토목공사, 금융업, 재정사업 종사 금지법이 통과되면서, 이 일들을 대행하게 되었고, 전쟁포로 노예 증가 및 공유지의 사유화 형태인 라디푼디움(환금작물 재배, 양 방목, 시칠리아와 아프리카 편중) 경영이 시작되면서 에퀴테스가 새로운 지배층으로 대두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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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 마케도니아 전쟁

1차 기원전 215~205 : 2차 포에니 전쟁 당시, 필리포스 5세가 한니발과 동맹을 맺으면서 전쟁을 벌였으나 승패 없이 끝났다. 2차 기원전 201~197 : 마케도니아와 시리아의 비밀협정으로 발발했으나 로마의 승리로 그리스 도시국가들을 해방시켰다. 3차 기원전 172~167 : 필리포스의 아들 페르세우스가 패권을 찾으려다가 로마의 장군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에게 패배하고, 마케도니아 왕국 멸망, 반로마적인 그리스로부터 인질 1000명(폴리비오스 포함)을 데리고 옴. 4차 기원전 150~148 : 3차 포에니 전쟁 당시, 안드리스쿠스가 페르세우스 아들이라 주장하면서 재건을 도모하였으나 로마의 빠른 제압 및 그리스 반도에서 영향력 행사로, 결국 기원전 146년에 마케도니아는 로마의 속주가 된다. 같은 해에 카르타고와 코린트까지 파괴되면서 로마가 전 지중해 세계의 지배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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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에니 전쟁

1차 기원전 264~241 : 시칠리아의 그리스 식민지인 메시나가 시라쿠사의 공격을 받고 카르타고와 로마에 지원 요청 -> 시칠리아섬 쟁탈전 전개 -> 시칠리아를 최초의 속주(동맹자 X)로 만들고 라디푼디움 경영 및 대함대 건조로 해군 강화 2차 기원전 218~202 : 카르타고의 에스파냐 침략으로 발발, 한니발과 칸네의 전투로 로마가 패배(기원전 216)하였으나 스키피오가 자마 회전에서 승리(기원전 202)하면서 서부 지중해 패권을 장악하였다. 3차 기원전 149~146 : 카르타고의 해상무역이 성장하면서 누미디아 선제 공격으로 발발하였고, 그 결과 카르타고는 완전히 파괴되고 포로는 노예가 되었으며 점령지를 아프리카라는 속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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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이탈리아반도 통일

기원전 509 ~ 265, 모든 시민이 자비로 군 복무를 하는 레기온 legion 조직의 집단적 공격방식과 피정복 이민족 간의 이간질 정책 및 시민권 부여 등의 관용정책 부여와 평민의 정치권 참여로 인한 공동체적 의식 강화로 인해 군사식민시를 빠르게 건설하여 영토를 확장할 수 있었다. 라티임 지방 도시들과 제사를 목적으로 창설한 라틴 동맹을 활용하여, 타르퀴니우스 폐위 당시 로마의 속박을 벗어나고자 했던 라틴 동맹국들을 기원전 493년에 상호 호혜 평등 조건의 카시아누스 조약을 맺어 명분상 평등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로마를 맹주로 한 라틴 동맹을 체결한다. 이를 발판으로 에트루리아인(기원전 396), 사비니인, 아이퀴이인, 볼스퀴인을 정복하고 세력을 확장하였다. 기원전 390년경 중부 이탈리아로 팽창하던 로마인들은 북쪽에서 갈리아인들이 로마시를 정복(알리아 전투)하여, 수비대가 카피톨리움 언덕에서 7개월동안 포위하였고, 베네티인들이 귀환하여 협상을 맺는다. 이로 인해 라틴 동맹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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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투쟁

기원전 494~287년동안 평민들은 법적인 평등과 정치권력의 참여를 위해 투쟁, 귀족들은 전쟁이나 토지 수효 측면에서 평민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었음. 하지만 완만함과 보수성의 전개로 인해 실질적으로 호민관 -> 원로원에 진출하고 명사들(노빌레스 nobiles)을 형성하며 과두정의 성격을 띈 소수의 부유한 평민들이 수혜를 입음, 결국 기원전 3세기 말, 귀족과 평민 간의 일체감을 강조한 정치체제 원로원과 로마인민(SPQR, Senatus Populusque Romanus)이 탄생 기원전 494 성산 철수 사건 :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의 가혹한 통치로 인해 평민의 보호자이며 대표자인 호민관직 설치 및 평민회의 기원이 됨. 기원전 471 푸블릴리우스법 Lex Publilia : 평민회 -> 부족회, 입법권 없음 기원전 451 12표법 : 최초의 성문법, 귀족과 평민 간 통혼 금지, 부채노예제 인정(채권자 권리 규정), 귀족의 자의적 법 운영 배제, 기존 관습법 성문화, 극형은 켄투리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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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공화정의 수립

기원전 509년에 7대왕 타르퀴니우스가 합법적 제도들을 폐지하고 공포정치를 펼치면서 대외정벌에만 집중하여 불만이 잦아들 쯤에, 그의 아들 섹스투스가 루크레티아를 겁탈하고 자살시키는 사건이 일어나자 브루투스를 중심으로 왕을 축출시키는데 성공하게되었고, 혈통귀족들이 정치권력을 장악하여 공화정이 시작하였다. 정무관 magistrates : 왕정적 요소이고, 모든 정무관의 임기는 1년이고 무보수였으며, 민회(집정관, 독재관, 법무관은 켄투리아회에서, 조영관, 재무관, 호민관은 트리부스회에서 선출)에서 선출된다. 집정관 consul : 행정 및 군사의 대권 장악, 민회 소집권, 상호 간의 합의 하에 1년에 2명이 한 달씩 교대로 집무, 비상시에는 한 사람의 독재권에게 6개월간 전권이 위임됨. 법무관 praetor : 사법 관장, 법무관을 거쳐야 집정관이 될 수 있었다. 에딜레 aedile : 공공건물과 경기 및 축제를 관장 재무관 quaestor : 국고 수입을 관장 감찰관 censo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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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왕정기

기원전 753년부터 기원전 509년까지 244년간 로마는 왕정의 형태로 시작하였다. 트로이 왕족인 아이네아스가 라티움에 정착하면서 트로이인과 라틴인의 연합으로 시작하였고, 아이네아스의 16대손 로물루스가 로마를 건국하였다. 기원전 7세기 말까지 라틴인과 움브리아인이, 기원전 6세기 초까지 에트루스키인(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를 시작으로 3대)이 왕이 되어 나라를 다스렸다. 12개의 도시국가들의 느슨한 연합 상태로, 지주귀족층과 예능층의 이원적 사회구조를 형성하였다. 혈통귀족들(patricii)가 지배하였고, 세력 기반은 평민(plebs)과 피호민(clientes)로부터 왔다. 로마 최초의 민회이자 평시집회로 개최된 쿠리아는 국왕을 선출하고 300명의 기병병력으로 군사력을 장악하였다. 원래는 모든 성인 남자들의 집회이나 실제로는 혈통귀족들만 참여했다. 기원전 6세기 중엽 6대왕 세르비우스의 군제 개혁 : 혈연 대신 지리적 행정구획(20개의 트리부스)으로 개편하고 호구 조사인 센서스를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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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니즘 시대의 사회, 경제, 문화

사회 : 지배계층은 그리스, 마케도니아인들, 도시 기반의 부유층 / 피지배계층은 아시아 토착인, 농촌의 빈농층들이다. 경제 : 알렉산드로스의 동방원정으로 교역범위 확대, 도시 증가, 통화량 증대 및 화폐 발달 문화 : 동서양 문화의 융합인 헬레니즘 현상 발생, 그리스 문화가 평준화, 보편화, 국제화됨. 학문 : 세분화, 전문화 경향, 문헌학 탄생, 왕립도서관 설치 철학 : 세계시민주의의 스토아학파로 보편성 개념 등장, 개인주의의 에피쿠로스학파로 개인적 행복 추구, 초자연적인 믿음, 운명의 여신, 점술 등 현실도피 경향이 강해 기독교 탄생의 가교 역할을 함, 스토아주의가 로마 귀족들에게 수용되면서 현실주의 정치와 법이론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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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도니아의 흥기

마케도니아인들은 그리스계 또는 그리스와 트라키아인 및 일리리아인과 혼합 민족이며, 그리스 문화를 수용하면서 발전하였다. 필리포스 2세 : 기원전 359에 왕위에 오른 필리포스 2세는 소농 출신의 보병 밀집 부대(팔랑크스)와 대귀족 지주 출신의 중무장 기병대의 상비군으로 정치적/군사적 개혁 이행, 기원전 338년 카이로네이아 전투 승리로 그리스의 폴리스들을 코린트(헬레네스) 동맹으로 규합하여 페르시아 원정을 가려고 했으나 기원전 336년에 암살당함 알렉산드로스 : 이어 왕위를 오른 알렉산드로스는 기원전 334년에 그리스 연합군과 함께 페르시아(다리우스 3세) 원정을 하러감. 소아시아 내륙부 -> 이소스 전투(기원전 333) -> 중근동 전역 제패 -> 이집트 정복 -> 가우가멜라 전투 -> 메소포타미아 지역 전체, 바빌론, 수도 수사, 페르세폴리스 제패 -> 중앙아시아에서 총독들에 의해 다리우스 3세 사망의 과정을 거쳐 페르시아 원정에 성공함. 정복지마다 그리스식 도시인 알렉산드리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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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사회, 경제, 문화

사회 : 시민권은 성년 남자에게 있으며, 농업과 상공업에 종사하여 사회적인 중추를 형성한다. 외국인은 주민세와 병역을 부담하였고, 노예는 생산을 담당하기만하고, 인격과 재산권은 인정되지 않았다. 경제 : 과일 재배, 농가부업, 올빼미 은화와 같이 화폐 유통 활발, 은행이 예금과 어음을 교환함 문화 : 자유로운 시민문화, 공동생활, 현세적이고 합리적 문화, 이성과 독창성 중시, 사물의 보편적 원리 주력으로 서양 문화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종교 : 올림포스 12신으로 신인동형론 주장, 현세에 관심, 국가대사나 개인 일에 관해 아폴로의 예언과 신탁을 받기 위해 신전을 찾음, 대지의 여신인 데메테르(지모신)를 숭배, 영원한 삶의 디오니소스 신앙 신봉(오르페우스가 순화하여 오르픽교 창설) 문학 : 호메로스의 일리어드, 오디세이와 같은 서사시, 서정시, 아가멤논이나 오이디푸스왕이나 안티고네와 같은 비극, 벌과 구름과 개구리들의 희극 등 발전 미술 : 아테네 신상, 제우스 신상, 원반 던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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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의 쇠퇴

코린토스 전쟁(기원전 395~389) : 페르시아가 테바이와 코린토스 등을 지원해 스파르타와 전쟁하도록 유도, 그 결과, 안탈키다스 평화(기원전 388~387) 체결함. 페르시아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소국의 독립을 보장하고 강국이 등장할 시 무력 진압하겠다는 내용으로, 아테네 연설가인 이소크라테스가 내분을 멈추고 단합하여 페르시아 정복을 하자고 주장함. 또한, 데모스테네스가 대 필리포스 연설과 대 올린토스 연설로 국민군 창설 주장 및 축제금을 군자금으로 전용할 것을 촉구함. 테베의 패권 장악 : 레욱트라 전투(기원전 371)에서 에파미논다스가 중무장 보병대로 스파르타 군대에 승리하면서 헤일로타이였던 메세니아가 해방(기원전 369)되고 스파르타의 지도적 위치를 상실하게 하였다. 이후, 기원전 362년의 만티네이아 전투로 패권을 상실하고, 알렉산드로스대왕에게 완전히 파괴된다. 기원전 316년에 카산드로스에 의해 재건되지만 회복하지는 못하였다. 4세기 이후로, 식민시의 발달과 외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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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폰네소스 전쟁

배경 : 인구 증가와 상공업 발달에 따른 식량과 원료의 확보 필요성 및 아테네의 보이오티아, 코린트, 메가라 위협으로 서부 지중해 진출 시도 계기 : 코린트 식민시인 코르키의 시와 코르키라가 코린트와 상업상 충돌로 아테네와의 동맹을 희망(기원전 433) 제1단계(기원전 431~421) : 아르키다모스 전쟁(10년 전쟁) 기원전 430년 아테네에 페스트(혹은 장티푸스) 엄습으로 기원전 429년에 페리클레스 사망 스파르타 왕 아르키다모스의 아테네 침공으로 발발 소모전 양상으로 아무런 결과 없이 끝남. 제2단계(기원전 421~415) : 양측 휴전 아테네 호전파 클레온의 전사 이후, 기원전 421년에 니키아스의 평화 체결 2. 세력범위 유지 확대를 꾀한 냉전 양상 제3단계(기원전 415~404) : 스파르타의 승리 기원전 415년 아테네 알키비아데스의 함대가 시칠리아 침공했으나 정적들에 의해 알키비아데스 규탄되어 스파르타로 망명 및 고해, 덩달아 시라쿠사와의 싸움에서 패배 스파르타는 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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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제국과 민주정

1. 아테네 제국 페르시아 전쟁 이후, 해양제국으로 성장하고, 노예제가 보편화되면서 아테네를 맹주로 한 해상동맹(기원전 478~477)과 공수동맹 summchia(재침공 방지 연합함대 결성 및 그리스인 해방을 위해 자금 제공)을 기반으로 한 델로스 동맹을 통해 제국으로 성장하였다. 기원전 454 이집트 반란 진압에 실패하면서 델로스 동맹의 금고를 아테네로 옮기게 되어 스파르타 중심의 펠로폰네소스 동맹과 냉전체제에 들어서게 된다. 2. 에피알테스의 국제(기원전 462~461) 보수파 키몬이 스파르타 출정간 사이에, 민주파 에피알테스와 페리클레스가 아레오파구스회의 모든 정치적 권한을 제거하여 살인사건 재판권, 종교의식 주재권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민회에 이관하여 귀족의 세력이 급격히 약화되었다. 3. 페리클레스 시대(기원전 457~429) 민회 권한 강화 : 외교, 전쟁, 식량, 입법 행사, 1년에 적어도 40회 개최(거수투표), 프닉스에서 개최(이전은 시장에서 개최), 협의회 의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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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 전쟁

배경 : 페르시아 왕 키루스 2세는 대제국 건설 과정에서 소아시아의 그리스계 이오니아인들을 정복하고 총독으로 하여금 엄하게 다스림. 이로 인해 반발하여 반란을 일으켰고, 그리스의 에레토리아인들과 아테네인들이 지원해주었지만 페르시아는 반란을 진압하고 지배권을 다시 확립함.(기원전 494) 1차 : 기원전 492, 다리우스 1세가 헬레스폰트와 트라키아 방면으로 대군 파견하지만 폭풍으로 인해 아토스곶에서 철수 2차 : 기원전 490 마라톤 전투, 밀티아데스의 중장보병 밀집대와 중장보병 활약으로 페르시아군 격퇴하여 아테네의 민주정을 촉진시켰고, 테미스토클레스의 건의에 따라 대함대(삼단 갤리선) 건조, 그리스는 아테네 중심으로 단결 3차 기원전 480 크세르크세스 1세 침입 테르모필레 협곡 전투에서 스파르타 국왕 레오니다스 외 300명 전원 전사 테미스토클레스, 아테네 시민을 살라미스로 철수 및 살라미스 해전으로 승리 기원전 479 페르시아 아티카 점령 및 아테네 파괴 파우사니아스 왕의 스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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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스테네스의 개혁

참주정 폐지 후, 귀족들 간의 정권 다품에서 기원전 508년에 스파르타의 힘을 빌리던 이사고라스를 억누르고 클레이스테네스가 시민 대중인 데모스와 연계함으로써 권력 장악하면서 민주정의 창시자가 됨. 하지만, 고위행정직 피선거권은 상위 두 등급 시민들에게만 제한되고, 하층시민은 생계의 부담으로 참여가 힘들다. 행정구역 개혁 : 기존 4부족제를 폐지하고 170여개의 새로운 행정구 demos를 마련, 아티카 지방을 3개의 지역집단으로 구분, 각 10개의 중간 행정구 trittys 조직, 10개의 행정부족 phyle 구성, 거주지 중심으로 개편 500인 평의회 boule 구성 : 추첨에 의해 평의회 의원 선출(10부족, 부족당 50명), 민회에 법안 제출, 행정기능의 최고 통제권, 임기 1년 ,중임 2번까지(연임 불가), 50명씩 10개의 위원회로 나누어 36일씩 집무, 위원장은 매일 교대 민회 : 500인회 벙안 심의 및 채택, 전쟁선포권, 예산편성권, 퇴임행정관에 대한 회계 및 감사권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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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르타

도리아계 정복자들이 기원전 1200년경에 4개의 촌락들이 결합하여 펠로폰네소스반도(라코니아 8세기, 메세니아 평원 7세기 등 정복)에 정착하여 폴리스 형성 리쿠르고스 입법 : 기원전 8~7세기 즈음에 제2차 메세니아 반란 진압 후, 일체감 강화 및 소수 도리아인들의 군사적 정복 체제 형성, 중무장보병의 밀집대형 추구 신분 구조 : 약 5.5%의 국내 치안과 방어를 담당하는 완전시민권자 호모이오이, 반예속민이고 토지와 집락차원의 자치가 가능하며 상공업에 종사하는 국정 참여권이 유보된 페리오이코이, 생산 담당이고 통제와 감시와 탄압의 대상인 헤일로타이(국유재산, 단일한 종속집단)로 구분된다. 메세니아 전쟁(기원전 8세기 말, 7세기 후반 두 차례) : 중장보병 밀집대 전술로 아르고스를 정복하고 신분 구조를 형성시킴 정치 구조 : 왕정 + 귀족정 + 민주정 혼합 왕 : 세습제 쌍두정치로 2명, 군사, 제사, 재판을 행사하다가 후기에 상징적 존재로 전락 장로회(gerusia) : 60세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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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의 정치 변화

1. 기원전 7세기 무렵의 귀족정 아르콘 : 정치, 군사, 종교(군사령관, 제사장, 최고 재판관, 오래된 귀족 가문인 에우파트리다이만 가능)를 담당하는 3 -> 9명으로 구성, 임기는 종신 -> 1년 -> 이후 아레오파고스회 의원 아레오파고스 회의 : 명문귀족, 귀족정의 핵심기관 민회(에클레시아) : 20세 이상의 남자 시민으로 구성, 아르콘 선출, 직접 민주정치 2. 기원전 7세기 말 평민의 입지 강화 드라콘 법전(기원전 621) : 최초의 성문법, 귀족 출신 재판권 권한 제한, 중벌주의, 부채로 인한 자유 상실 규정이 채무노예제 관행을 일반화시킴, 피의 복수와 같은 자력구제 원리 완화, 살의의 유무 판정을 국가의 관리가 함, 과실 살인은 국외추방, 유가족 전원 일치로 귀국 허용, 고의 살인은 유가족들이 피의 복수를 행사할 수 있었던 걸로 추측 3. 솔론의 개혁(기원전 594) 사회, 경제적 측면 : 기존 부채 말소, 채무노예제 금지, 인신저당 금지, 빈농의 예농화를 방지하고자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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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스의 탄생과 발전

기원전 1000년경까지 씨족/부족 집단의 촌락 공동체였으나 도리아족의 남하 등으로 기원전 800년경에 더 큰 정치적 단위의 필요성이 증가함에 따라 촌락 공동체가 해체되고 종교적, 경제적 유대로 결합하고 법에 의해 규제되는 시민 공동체의 폴리스가 탄생하였다. 산악지형으로 인해 농업 생산성이 낮아 소규모 목축이 행해졌고 거대한 국가가 성립할 수 없어 1100여개의 폴리스가 성립되었다. 중앙은 수호신을 모시는 아크로폴리스와 정책을 의논하고 시장의 역할을 하는 아고라로 구성되어 있고, 그 주변에 부족별로 거주하며, 외부에는 성벽을 축조하였다. 그리스인들은 스스로를 헬레네스(Hellenes)라 부르고, 이민족들은 바바로이라 지칭하였고, 델피의 아폴로 신전에서 서로 인보동맹을 맺었다. 그리고 올림피아 제우스 신전에서 기원전 776년부터 4년마다 모든 폴리스가 참하는 체전을 열었다. 이 기간 동안은 상호 간의 전쟁이 금지되었다. 사회 구조 : 씨족 출신이며 방위를 담당하는 중무장 기사인 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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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스 성립 이전

기원전 1200 ~ 800으로, 호메로스 시대 또는 암흑 시대라 불린다. 호메로스(기원전 800~750) : 일리어드와 오디세이를 통해 암흑시대의 모습을 알 수 있다. 촌락의 바실레우스들이 느슨하게 결합한 맹아적 귀족사회에 혈연 중심, 공유제와 사유제가 결합된 양상이었다. 원시 왕정체제, 왕은 제사, 군사, 재판권을 지녔고, 원로원은 국가 중요사를 예비 심사하고 대표회의를 한다. 민회는 자유민으로 이루어져있고, 형식상 최고 의결기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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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케네 문명

기원전 2000년경 ~ 1200년경에 오리엔트 문명과 선진 미노아 문명을 흡수하여 발달 트로이 전쟁 이후, 해상민족한테 시달림 받다가 도리아족에게 파괴당함. 상무적, 군사적 성격, 피라미드식 사회구조(왕 와나카, 군사령관 라와게타스, 촌장 바실레우스, 촌민 다모, 노예), 공납제, 토지 사유지와 공유지 공존, 왕실 중심의 노예제 트로이 전쟁(기원전 1240 ~ 1230년경) : 미케네를 맹주로 그리스 소왕국들이 결합하여 소아시아로 진출, 호메로스의 일리어드와 오디세이에서 잘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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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타 문명

기원전 2000년경 ~ 1400년경 지중해의 고대문명으로, 지중해 동부의 크레타섬을 중심으로 오리엔트 문명의 영향으로 발생, 크노소스 해상왕국 출현, 미노아 문명이라 불림. 소아시아 이주민 추정, 기원전 1450년경 미케네인의 크레타 지배나 화산 폭발의 결과로 선상문자 A 대신 선상문자 B 출현 제정일치, 축제와 스포츠, 크노소스 궁전 바다를 자연의 장벽으로 인식하여 성곽 미축조 도자기 수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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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산왕조 페르시아

서기 226~651 존속, 아르다쉬르 1세에 의해 건국, 전제왕권, 수도 크테시폰, 중국과 활발한 교류, 비단, 도자기, 소금의 중계무역 성행하다가 651년에 정통 칼리프 이슬람에게 멸망 샤푸르 1세(241~272) : 로마 격퇴, 시리아 원정 중 아데사 전투에서 로마제 발레리아누스 생포, 인더스강부터 아나톨리아 반도 동쪽까지 팽창, 240년에 쿠샨 왕조 멸망 호스로우 1세(531~579) : 에프탈 정복, 비잔틴 공격 및 평화 조약, 굽타왕조와 로마 분쟁 잦음, 귀족들의 사병을 약화시키고 자기부담으로 돌리는 군대개혁 실시, 곤데-샤푸르에 대학 설립하여 신플라톤주의 철학자들 수용, 궁정 중심의 귀족문화 확산 조로아스터교가 국교로, 말기에 정치에 큰 관여, 호스로 1세 때 경전 아베스타 편찬 3세기에 조로아스터교, 불교, 네스토리우스파 크리스트교를 융합한 마니교 등장으로 탄압하였음. 건축/공예 : 아치, 천장에 돔형을 도입하여 모스크에 적용하였고, 금과 은 세공, 청동기와 유리가 발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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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티아 왕조

기원전 250~서기 226, 아리안족의 한 부류로 셀레우코스 왕조에 반기를 들고 설립하였다. 그리스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다가 후기에 반헬리니즘, 반외세적 경향으로 변모 메흐르더디 2세 : 중국과 인도에서부터 로마까지 거대한 제국 건설, 중계무역 전개 지방 분권적 정치 시스템와 쿠샨 왕조와 로마(서기 3세기 초 아르메니아 쟁탈전)의 팽창으로 인해 위기를 맞이하다가 서기 226년에 사산왕조 페르시아의 아르다쉬르 1세에 의해 멸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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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인도-유럽어족 중 기원전 550년에 키루스 2세가 페르시아 왕조를 건설하였다. 초기에는 메디아의 속국이었으나 리디아(546), 메디아(550), 신바빌로니아(538), 이집트(기원전 525년 캄비세스 2세)의 정복으로 신권적 전제주의 국가를 만들어내었다. 관용정책을 표방하였다. 다리우스 1세(기원전 522~486) : 인더스강에서 지중해 동부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여 오리엔트를 통일하였고, 북인도까지 편입하였다. 전국을 20개 속주로 나누고 총독, 징세관, 군사령관을 각 주마다 임명, 통화와 도량형 통일, 우편과 선박제도, 관개시설 개선, 도로와 역전제, 이집트 운하 건설, 감시체계 구축(왕의 눈 - 총독 파견, 왕의 길 - 상업활동과 지역통제 기여), 왕궁수비대 이모탈 조직, 이집트 법전 편찬, 관용 정책, 제1, 2차 페르시아 전쟁(기원전 492, 490) 크세르크세스 1세(기원전 486~465) : 살라미스 해전과 플라타이아에 전투 패배 이후 쇠퇴 기원전 330년에 알렉산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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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 지중해 연안의 민족들

1. 히타이트(Hittite) 인도-유럽어족으로, 기원전 1800년 아나톨리아 지방에 왕국 건설, 기원전 1600~1200년경까지 전성기, 기원전 1300년경부터 1세기동안 이집트와의 전쟁으로 몰락(카데시 전투로 인해 중간에 체결한 기원전 1258년의 평화 조약은 최초의 평화 조약으로 알려짐) 기병대, 전차, 철제무기 발달, 농업과 상업, 광업 영위, 도시적 사회로 엄격한 정부 통제, 토지는 정부에 귀속, 다신교, 다른 민족 신들도 숭배, 희생제와 정화의식 존재 메소포타미아 문화를 가나안인과 에게해 사람들에게 전달 2. 리디아인(Lydia) 기원전 8세기 히타이트 제국 멸망 후, 소아시아에서 계승하였고, 기원전 6세기에 페르시아의 키루스 2세에게 대항하다가 몰락 인도-유럽어족, 유리한 지리적 위치와 풍부한 자원, 화려한 전차, 다량의 황금과 사치품, 상공업 발달, 세계 최초로 주화를 주조하여 그리스에 전파됨 3. 페니키아인(Phoenicia) 기원전 1300년 이후 우가리트 남쪽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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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소포타미아 문명

개방적인 지역으로 전쟁 활발 및 목축과 상업 발달, 현세주의적 세계관 1. 수메르인(Sumerian) 기원전 3500년경 티그리스-유프라테스 하류에 정착하여 기원전 2800~2340경까지 도시국가(성곽으로 둘러싸여 있고, 중심에 지구라트 존재) 우르, 라가시 건설 정치 : 군사 연합으로 느슨한 동맹체, 최고 제사장이자 군사령관과 관개체계의 감독인 파테시, 왕은 종교적 대리인 역할 경제 : 지배자, 사제, 군장교들이 토지 차지, 농업과 상업 발달 사회 : 신정정치로 신관 권위 증가, 농민들은 신전에 소속되어 부역과 공납을 바침 법률 : 우르남무 법전(현존 인류 최고, 부패 단속, 도량형 제도, 고아와 과부 보호 등 규정), 형벌은 대부분 벌금 종교 : 다신교적인 신인동형론, 현세적 종교, 윤리와 영적 성격 결여, 노아 이야기를 통한 비관적 운명론 조성 문자 : 쐐기형의 설형문자 과학 : 60진법, 태음력(윤달 사용), 점성술, 청동제 무기와 전차 예술 : 아치와 볼트와 돔을 활용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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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의 사회와 경제

1. 사회 계급 : 왕족 - 사제- 귀족 - 서기, 상인, 장인, 부농 - 농민으로 구성, 사제와 귀족은 고, 신왕국 시대 주도, 중간계급은 중왕국 시대 주도, 신왕국 시대에 차례로 직업군인, 노예 추가 여성 : 일부다처제 허용, 소유/상속/사회참여 가능, 왕위계승 허용 2. 경제 농업 의존, 국토와 상업과 농업 등 모두 파라오의 소유와 통제 하에 활동 상업 : 기원전 2000년경부터 크레타섬, 페니키아, 팔레스타인, 시리아 등과 교역, 리비아 금광이 부의 원천, 구리나 금반지로 화폐 사용하기도 했으며 일반적으로는 물물교환 경제집단주의 : 국가사업 위주 상업, 자영농과 점포 소유하기도 함. 신왕국시대에 군사절대주의로 인해 세금과 상품이 필요하게되면서 군수물자를 제조하고 신전을 건립하는 통제경제 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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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의 문화

철학 : 영원한 우주, 영속적인 순환, 종교, 개인의 행위와 사회정의 문제에 관심, 기원전 2050년경 농민의 항변에서 이상적인 국가관념 제시 천문학 : 나일강 범람 시기 예측, 태양력 수학 : 가감제, 십진법, 원주율, 측량수학 문자 : 상형문자인 신성문자 Hieroglyph 예술 : 집단적 국민생활, 형식주의, 사실주의 피라미드 : 고왕국 시대 건축, 기원전 2270년에 조세프의 계단 피라미드 최초 건설, 고용기회 창출과 정치적 신성 및 이민족 지배를 위해 건축됨, 기자의 대피라미드단지 - 쿠푸의 대피라미드, 카프레의 제2피라미드, 멘카우레의 제3피라미드와 위성피라미드들로 구성 신전 : 피라미드 대신 건축 조각/회화 : 파라오의 힘과 용기를 상징하는 스핑크스, 거대한 규모로 파라오의 권력 상징, 경직되고 무표정한 모습으로 영속성과 안정성 표현, 해부학적 왜곡으로 국가적 이상 표현 아마르나 예술 : 자연주의적, 아톤 신 숭배, 네페르티티의 흉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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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의 종교

1. 고왕국 태양신 라 숭배 : 수호신이고 정직/정의/진리의 신이며 우주의 도덕적 질서를 유지, 중왕국 때 아몬으로 지칭, 집단적인 불멸성 제공, 파라오는 살아있는 신의 대리자 오시리스 숭배 : 식물의 성장과 나일강의 생명력을 의인화하여 숭배, 농사, 기술, 법률을 가져다준 자비로운 지배자로, 동생 세트에 의해 살해되었으나 이시스의 노력으로 부활하면서 죽은 자들을 재판함.(사자의 심판, 나일강의 범람을 죽음과 부활로 상징화), 아들 호루스가 세트를 살해하여 권선징악적 세계관 구축 2. 중왕국 영혼불멸과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을 미라와 사자의 서를 통해 드러냄. 말기에 태양신과 오시리스 숭배 통합하고 윤리적으로 변모 3. 신왕국 종교의 타락 : 사제들의 세력 증대로 비합리적인 미신과 주술 득세 아케나톤의 종교혁명 : 아멘호테프 4세(기원전 1375)가 사제를 몰아내고 전통 신을 없애고 아톤 신을 만들어 유일신을 만들어냈고, 아마르나로 천도하여 아마르나 예술 양식 형성함. 그로 인해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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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의 역사

1. 선왕조시대(기원전 5000~4000년) 나일강 일대에서 토템씨족들의 촌락이 노메스 nomes 라는 도시로 문명화됨. 노메스가 합쳐지면서 상왕국과 하왕국이 성립되었고, 기원전 3100년경 상왕국 메네스왕에 의해 통일왕국 성립(제 1~2왕조는 반전설적이라 고왕국시대부터 확실) 2. 고왕국(기원전 2686 ~ 2181) 제3 ~ 6왕조, 수도 멤피스, 중앙집권, 피라미드시대, 제정일치(최고 제사장인 파라오가 정치 참여, 사제가 신하들임) 기원전 2770년 조세르의 고왕국 창시, 재상 임호텝에 의해 최초로 피라미드 건설, 파라오를 태양신의 아들로 간주하기 시작 평화정책, 불침략 정책 : 외침 발생시 각 지방의 민병대를 소집하고 파라오가 통솔, 이집트는 착취가 아닌 협동적 필요로 형성되었고, 위협으로부터 안전하며 토질이 비옥했기에 파라오가 상비군을 거느리지 않을만큼 전쟁의 불안이 없었음. 대규모 사업으로 인해 세입 고갈 및 흉작으로 종말 3. 제1중간기(기원전 2181 ~ 2040)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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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트 문명 역사적 전개

1. 형성기(기원전 3000년기)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중심으로 기본틀 형성, 문화권별로 독자적인 발전 진행 2. 발전기(기원전 2000년기) 전반기 : 메소포타미아의 바빌로니아 왕국 전성기 후반기 : 이집트의 신왕국시대 전성기 소아시아에서 히타이트, 두 강 상류지역에서 미탄니, 에게해에서 크레타문명 발전 외교 등 직접적인 접촉이 활발해져, 하나의 국제사회 형성 ㄱ. 기원전 12세기 철기시대로 전환 ㄴ. 오리엔트 강대국, 미케네 문명 쇠퇴, 해상민족 출현 ㄷ. 동부 지중해에서 페니키아와 헤브라이 활약 3. 통일기(기원전 1000년기) 아시리아에서 칼데아(신바빌로니아 왕국)를 비롯 4국으로 분립 기원전 6세기에 페르시아 통일, 기원전 4세기 말에 마케도니아 알렉산드로스에게 멸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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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트 문명의 탄생

기원전 5000~3000년경 오리엔트 지방을 중심으로 문명 발전 청동기 사용, 문자 발명, 도시 출현, 정치조직 발생, 사회계급 형성, 조직적인 종교로 신전 및 신관 출현, 선박과 차륜의 발명 탄생 요인 1. 자연지리적 조건 : 풍부한 물, 기름진 땅, 다양한 식용작물, 자원 풍부 및 교통의 편리 2. 사회적 조건 : 전체적인 협동, 개량과 발명, 다량의 잉여생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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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이후 동남아시아 세계

버마(미얀마) 우누 정권 : 영국으로부터의 독립 이후 정권 수립, 분리독립 요구하는 내전 발발 쿠데타 : 혼란한 상황 속 네윈의 쿠데타 발생(1962), 군정 돌입, 버마식 사회주의 8888 민주화 항쟁 : 네윈 사임 요구하는 시위 발생(1988), 아웅산 수치 등의 참여 아웅산 수치의 활동 : 민주주의민족동맹(NLD) 창설, 군부의 독재 야욕으로 인해 오랜 가택연금 등 탄압, NLD의 총선 압승(2011)으로 군부와 이중권력 체제 형성, NLD의 연이은 총선 압승(2020)에 군부의 불복으로 쿠데타 발생(2021) 캄보디아 시아누크의 활동 : 프랑스 파리 유학 직후 프랑스 승인 아래 국왕 즉위(1941), 프랑스연합에서 한정적으로 독립(1949), 완전 독립(1953), 영구중립법 선포(1957), 미국이 베트남전에 개입하자 단교(1965) 크메르공화국의 수립(1970) : 론 놀 장군의 쿠데타 직후 친미 정권 수립, 크메르공화국으로 개칭, 베트남전 개입, 시아누크의 민족통일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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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 국가들의 근대 역사

열강의 본격적 침략 양상 * 영국 버마 침략 : 제1, 2차 영국-버마 전쟁을 통해 침탈 가속화 원난 방면 탐색 : 버마-윈난 경유하는 통상로 탐색, 마가리 살해 사건 버마의 대응 : 민돈 왕의 근대화 정책, 티바우 왕의 프랑스와의 결탁 시도 버마 병합 : 제3차 영국-버마 전쟁을 통해 버마를 영국령 인도에 병합(1886) 버마 국경 획정 : 영국과 청조가 윈난과 버마의 국경 획정(1894) * 네덜란드 런던 조약(1824) : 영국과 믈라카 해협을 경계로 동남아에서의 세력권 양분 합의 인도네시아 침략 : 자와 전쟁(1825~1830), 아체 전쟁(1873~1904) 등 발발 네덜란드령 동인도 형성 : 수마트라, 보르네오 등 병합하여 형성(1904) * 프랑스 등장 : 뒤늦은 동남아시아 진출, 인도차이나 지역 주목, 선교사 등 파견 침략 : 캄보디아(1863), 베트남(1883) 장악, 인도차이나 연방 수립(1887) * 에스파냐 : 필리핀 지배 시도, 이후 미국과의 전쟁 발생(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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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 교역의 발달

유럽 상인의 등장 동남아시아 진출 : 16세기 이후 등장, 믈라카와 말루쿠 제도 등지에서 활동, 향료, 중국산 비단, 차, 도자기 등 거래 동아시아 진출 : 일본산 은 판매를 통해 얻는 이익으로 진출 추이 : 포르투갈과 에스파냐 주도, 영국의 무적함대 격파 후 변동 포르투갈의 활동 배경 : 아프리카 희망봉 발견 후 인도양 등을 거쳐 진출, 마카오 조차 마카오 거점 활동 : 인도산 은화, 기름 등을 명의 생사, 비단, 약재 등과 교환 일본 방면 : 나가사키에서의 무역 허락(1570), 명의 생사, 비단 등을 은으로 판매 유럽 방면 : 마카오에서 일본산 은으로 금, 비단, 도자기를 사서 유럽에 판매 에스파냐의 활동 배경 : 아메리카산 은을 활용한 교역에 관심, 포르투갈 뒤를 이어 진출(태평양 횡단) 마닐라 건설 : 필리핀에 교역 거점 기지로 마닐라 건설(1571) 갈레온 무역 : 갈레온을 통해 아카풀코의 은과 필리핀에 집결된 비단과 도자기 교환, 아메리카산 은이 대부분 중국으로 흡수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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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의 특성과 국가들의 성장

지리적, 문화적 특성 지리 : 인도와 중국 사이 위치, 바닷길 중심 위치, 무역풍으로 교류 발달, 벼농사 발달 중국 문화 : 북부 베트남 지역 등 영향 인도 문화 : 에프탈의 이동으로 인도 문화 유입 이슬람 문화 : 해상 무역 번영으로 유입, 이슬람인 정착 확산, 이슬람교 개종 군주 탄생, 이슬람 왕국 건립 캄보디아 푸난(부남) : 토착 세력과 인도 이주민 세력의 결합으로 형성 첸라(진랍) : 6세기경 푸난으로부터 독립, 인도 문화 영향, 9세기 무렵 앙코르로 천도하여 앙코르 왕조 건립, 12세기경 앙코르와트 건립, 아유타야의 침공 등으로 15세기경 앙코르 포기 및 세력 약화 버마(미얀마) 파간 왕조(1044~1287) : 불탑, 사원 등 건립, 원의 침입으로 멸망 따웅우 왕조(1510~1752) : 아유타야 왕조 침략, 몽족에게 멸망 꼰바웅 왕조(1752~1885) : 아유타야 왕조를 점령, 영국과의 전쟁으로 멸망 타이 수고타이 왕조(1238~1438) : 상좌부 불교 수용, 람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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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 성립

독립 선언 : 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베트남 민주공화국 수립 선언(1945.9.)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1946~1654) 발발 과정 : 프랑스의 인도차이나 영유 붕괴로 인해 일본의 괴뢰 정권 등장, 일본의 패망으로 베트남 민주공화국 수립 등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독립 확인, 인도차이나 3국 영유 부활을 시도하기 위해 프랑스군 상륙 후 충돌 발발 : 프랑스군의 전면 공격 개시(1946.11.), 하노이 함락(1947.2.), 산악 지대로 지휘본부 이전 및 항전태세 확립, 프랑스는 남부에 바오다이 정부 수립(1949) 제네바 회담(1954) : 북위 17도 기준으로 베트남을 임시 분할하여 군사적 충돌 방지, 2년 이내에 총선거 실시로 통일 정부 수립 베트남 공화국 수립(1955) : 미국 개입, 응오딘 디엠이 지주층과 군부 세력 기반의 강력한 반공 정치 이행, 하지만, 실정으로 민심 이반, 남베트남의 여러 세력들이 모여 민족해방전선 결성(1960)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베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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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으로의 제국주의 세력의 침략과 저항

근왕 운동 : 후에 조약 드응로 사실상 프랑스의 식민지로 전락하자 근왕 운동 전개 함응이제의 호소 : 전국의 베트남인들에게 프랑스에 맞서 싸울 것 호소 의군 발생 : 지방의 학자와 지주 등 적극적 참여 프랑스의 진압과 회유 : 프랑스 군대의 진압, 투항 유도 결과 : 소수민족의 밀고로 함응이제 체포, 알제리로 유배 판쩌우찐 : 봉건적 군주제 타파 및 베트남 사회의 점진적 개혁 주장, 프랑스 총독에게 인재 등용 및 교육시설 확충 등 제안하여 베트남 지식인의 호응을 얻음. 통킹의숙 건립(1907) : 후쿠자와 유키치의 교육사상과 게이오의숙 영향으로 건립, 로마자로 표기된 베트남어인 꾸옥응으로 근대적 과목 수업 진행, 기관지 등고총보 발행, 각지에서 강연회 개최, 신사상 전파 판보이쩌우 베트남 유신회 조직(1904) : 일본 정부의 원조를 얻기 위해 일본 방문(1905), 동유 운동 - 량치차오와의 만남 직후 베트남 학생들의 일본 유학 추진 이동 : 일본의 강제퇴거령(1909)으로 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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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우옌 왕조

1802~1945 응우옌푹아인 : 시암 왕과 프랑스 선교사 등의 지원을 받아 떠이썬 왕조 멸망시키고 건국, 청에게 책봉, 국호 월남, 프랑스와 유대관계 유지 예수회 활동 : 포교 자유 흭득, 민망제 재위 시기에 유교를 이념으로 국가 의식을 고양시키기 위해 크리스트교 박해 서양 제국주의 국가의 침략 제1차 사이공 조약(1862) : 영국의 아편 전쟁 승리 후 프랑스는 청으로의 대안 진출로를 확보하기 위해 에스파냐-프랑스 선교사 살해 사건을 빌미로 침략, 다낭 등 3개항 개항, 코친차이나 동부 3성 할양, 선교의 자유 인정 프랑스 재침 : 코친차이나 서부 3성 할양(1867) 제2차 사이공 조약(1874) : 프랑스 항해단의 살해 사건을 빌미로 조약 체결 강요, 베트남 독립국 승인, 코친차이나 서부 3성에 대한 프랑스 주권 승인 제1차 후에 조약(아르망 조약, 1883) : 뜨득 황제가 청에 원조 요청(1880), 청조와 프랑스의 외교적 공방 전개, 프랑스가 흑기군의 프랑스 광산조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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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전근대 역사

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 구석기 시대 : 50~30만 년 전 인류가 살기 시작했던 것으로 추측 신석기 시대 : 기원전 8000년경 성립(호아빈 -> 박선 -> 풍응우옌 문화), 농경 시작(갈돌) 청동기 시대 : 기원전 7세기경 동썬 문화 성립(청동 북), 벼농사에서 금속 쟁기 사용 국가의 성립(북베트남) 반랑국 : 베트남 최초의 국가 성립(훙 브엉), 신화와 역사 존재, 청동기 문화 발전 어우락국 : 안즈엉부엉 건국, 동남아시아 지역에 영향 남 비엣 : 진의 장수 찌에우다(조타)가 광저우 일대에 건국, 어우락국 정복, 한과 대등한 관계 표방, 농경과 해상 무역으로 성장, 한 무제에게 멸망(기원전 111년, 9군 설치), 이후 약 1천여 년간 중국의 지배 중국의 지배 : 쯩짝-쯩니 자매 - 후한 광무제 시기 직접 지배에 반발 및 왕위에 올랐으나 진압당함, 끄엉꽁푸-끄엉꽁푹 형제 - 당 빈공과 합격 후 재상으로 활동(8세기), 아베노 나카마로 - 8세기 나라 시대 견당 유학생 및 안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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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과 인도의 독립

2차 세계대전 당시 인도의 태도 영국의 참전: 영국령 인도의 참전, 각 주의 국민회의 정부는 이에 반발하여 총사퇴 인도 철수 운동(1942) : 간디와 네루 등이 영국의 즉각적 철수 및 인도의 완전한 독립 주장, 2차 세계대전에 대한 협력 거부 선언(비협조 선언) 종전 이후 : 영국의 인도 헌법 제정을 위한 임시정부 구성을 시도했으나 실패 인도-파키스탄 분리 독립 배경 : 종교적 갈등으로 인해 힌두교의 인도와 이슬람교의 파키스탄 분리 독립 인도 독립법 : 인도와 파키스탄 양국이 각각 자치령 지위 흭득(1947.8.15.) 공화국 선포 : 인도 공화국(1951), 파키스탄 이슬람 공화국(1956) 선포 카슈미르 분쟁 : 분할 독립 당시 영국의 직접 통치하에 있던 토후국들의 편입 문제 발생을 배경으로 종교적으로는 다수가 무슬림, 일부 지역은 힌두교가 우위, 영유권 다툼 등으로 1948년, 1965년, 1971년 3차례 전쟁 발생 사회적 차별 철폐 시도 카스트 제도에 의한 사회적 차별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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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세계대전과 인도의 민족 운동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태도 자치권 약속 : 인도인들은 믿고 적극적으로 협조 전쟁 직후 : 극소수 인도인에게만 선거권 부여, 롤럿(로래트)법 제정(1919) - 인도 총독이 영장 없이 인도인 체포 가능 및 재판 없이 투옥 가능, 암리차르 학살 발생 및 반영 운동 확산 인도의 민족 운동 * 간디 사티아 그라하 운동(1919) : 롤럿법 등의 통제에 대해 반발, 비폭력, 불복종주의, 영국 상품 불매, 취업 거부, 납세 거부 제창, 전인도무슬림연맹의 지지를 받으며 확산, 영국의 탄압, 소금행진 - 소금세 신설 반대 운동 전개(1930) 후 간디-어윈 협정 체결 2차 세계대전 후 활동 : 영국 세력의 즉시 철퇴 요구(1942) 및 대규모 반영 불복종 운동 참가, 전후 힌두-이슬람의 화해에 따른 인도 통일의 필요성 역설 네루 : 국민회의 새로운 의장으로 선출(1929), 인도의 완전 독립을 목표로 선언, 불복종 운동 독려, 세계사 편력 편찬, 신인도 통치법(1935) 등으로 실시된 선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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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제국주의 세력의 침략과 저항

서양 제국주의 세력의 침략 분열 : 아우랑제브 사후 종교적 분쟁, 지방 세력 드앚ㅇ 접근 : 영국과 프랑스 등 침략 영국: 동인도회사 설립(1600), 향신료 무역 독점 프랑스 : 동인도 회사 설립(1664), 영향력 확대 영국의 침략 격화 플라시 전투(1757) : 벵골 태수의 영국인 추방을 계기로 영국군 vs 벵골 태수&프랑스군, 영국 동인도회사의 벵골 지방 통치권과 조세 징수권 강탈(1765) 세력 확대 : 인도의 민족적, 지역적, 종교적 갈등을 이용하여 세력 확대 경제적 침탈 : 면화, 아편, 차 등 재배 강요, 영국산 면제품을 인도에 대량 수출하여 인도 수공업 몰락 세포이 항쟁(1857) : 인종 차별, 종교적 갈등 등으로 불만이 축적되자 탄약 주머니 기름 소문에 봉기, 세포이 중심으로 각계각층 참여 민족 운동 발전(델리 점령), 영국의 진압, 무굴 황제 폐위, 동인도회사 해산, 인도 통치 개선법 제정(영국 왕의 통치) 인도 국민회의의 탄생과 반영 운동 브라흐마 사마지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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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굴 제국의 성립

성립 : 바부르의 카불 점령(1504), 이후 델리 점령하여 무굴 제국 수립(1526) 아크바르(악바르) 황제(1556~1605) 통일 정책 : 인도 북부 통일, 중앙관료제 정비, 지사 등을 지방에 파견 종교적 관용 정책 : 힌두교도-이슬람교도 등을 등용, 토착민과 힌두 세력 등 포용 및 혼인 동맹, 이교도가 납부하는 인두세 지즈야 폐지 만사브다리 : 평상시 군인, 관료에게 군비 준비 의무화, 관료 기구 서열화 발생 아우랑제브 황제(1659~1707) : 인도 남부까지 진출하여 최대 영토 확보 이슬람 제일주의 표방 : 지즈야 부활, 힌두 사원 파괴 등으로 이교도 탄압, 펀자브 지방의 시크교도와 데칸고원의 마라타 동맹 등의 반란으로 지방 분권화 현상 발생 무굴 제국의 사회, 경제 농업 : 관개 농법 등 도입으로 농업 생산력 증가, 식량 유통 활발 수공업 : 직물업의 발전, 유럽 등지로 면직물 수출 도시 : 델리, 아그라 등 대도시 성장 인도-이슬람 문화의 발전 시크교의 등장 : 1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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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의 등장과 델리 술탄 시대

이슬람 세력의 유입 : 8세기 무렵 인도 북부 지역으로 진출 가즈니 왕조(962~1186) : 아프가니스탄계 계통이 인도 펀자브 지방 지배, 이슬람교 전파, 노예 확보, 힌두교 사원 파괴 구르 왕조(1187~1215) : 인도 북부 지방 대부분 차지, 이슬람교 전파 중점, 내분 발생으로 노예 왕조 수립 페르시아 문화 유입 : 문학, 의학, 수학 등 전파 델리 술탄 시대 : 13~16세기 동안 등장한 5개의 이슬람 왕조들을 통칭 노예 왕조(1206~1290) : 구르 왕조 내분으로 무장 아이바크가 펀자브 지방에서 독립해 술탄 자칭, 사후 노예 일투트미시가 왕위 찬탈, 이후로 노예 출신 군주 등장 종교적 관용 정책 : 지즈야 - 인두세 부담 시 종교 자유 가능, 이슬람교 확산 - 카스트 제도에 불만있던 힌두교인들의 개종 쿠트브 미나르 : 아이바크 지시로 건축 시작, 힌두-이슬람 양식 융합 종말 : 중앙아시아 지역의 바부르가 인도를 침입(1526)하여 델리 술탄 시대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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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타 왕조와 힌두교·인도 고전 문화

굽타 왕조 성립 : 4세기 초 찬드라 굽타 1세가 건국, 북인도 대부분 차지 찬드라 굽타 2세 : 북인도와 중부 인도의 대부분 차지, 산스크리트 문학의 황금시대, 힌두교 장려, 왕을 힌두교 최고신인 비슈뉴와 동일시 쇠퇴 : 5세기 에프탈의 침입, 교통로 단절, 도시 쇠퇴, 토착 세력의 독립, 각 지역 문화 융합 및 발전, 지방 특색 문화 발달로 인도 고전 문화가 다양해짐. 멸망(6세기) 이후 : 북인도 - 소왕국으로 분열, 7세기 바르디나 왕조가 평정했으나 붕괴, 남인도 - 팔라바 왕조(4~9세기)와 촐라 왕조(9~13세기)의 중개 무역 번영 및 주도권 다툼 힌두교 배경 : 왕권 강화를 위한 불교 탈피 도모, 브라만교 세력의 부흥 도모 특징 : 브라만교 토대로 불교와 다양한 민간 신앙 융합, 시바와 비슈누 등 다신 숭배, 대중 종교 추구, 굽타 왕조의 통치 지배 질서에 활용 마누법전 편찬 : 각종 의례 및 관습과 법 등을 기록, 카스트 의무 중시, 인도인의 일상생활 영향 영향 : 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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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샨 왕조의 성립

성립 : 1세기 무렵 이란 계통의 쿠샨족이 쿠샨 왕조 수립 중계 무역 : 중국, 인도, 이란을 연결하는 무역을 독점하며 번영 카니슈카 왕 영토 확장 : 2세기 중엽 최대 영토 확보 대승 불교 성립 : 불경 결집 등을 통해 성립, 중생 구제 표방, 간다라 미술 - 알렉산드로스의 원정 통해 헬레니즘 유입으로 불상 제작, 사막길을 따라 중앙아시아와 중국을 거쳐 한국과 일본까지 전파 남인도 : 안드라 왕조(드라비다계 왕조) 성립 성장 : 기원전 1세기경 남인도의 데칸고원을 중심으로 성장 발전 : 로마, 동남아시아와의 해상 무역을 통해 번영 영향 : 교역을 통해 불교와 브라만교가 남인도 지역으로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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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리아 왕조의 성립

찬드라 굽타 등장 : 알렉산드로스 사후 북인도의 분열 상황 속 등장 -> 세력 확장 북인도 통일 : 마우리아 왕조 수립 아소카 왕 인도 통일 : 기원전 3세기경 칼링가 전투 등을 치르며 인도 통일(남부 인도 제외) 다르마에 의한 통치 표방 : 불법, 보편적 진리, 불살생을 강조해 제물을 바치는 브라만교의 제사 의식 금지, 브라만 계급 견제, 비폭력과 통일의 이상 실현 상좌부 불교 성립 : 불경 결집, 불교 교리 정리를 통해 성립, 개인의 해탈 강조, 실론과 타이 등 동남아시아 지역 전파 쇠퇴 : 아소카 왕 사후 왕국 분열, 이민족의 침입 등으로 급속히 쇠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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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더스 문명의 등장과 인도 형성

인더스 문명 : 기원전 2500년경 인더스강 펀자브 지방에서 탄생 계획도시 건설 : 드라비다인 주도, 하라파, 모헨자다로 등 도시 건설, 청동기, 상형문자, 벽돌 건물 등 건축 교역 : 도시 간 교역 활발, 메소포타미아도 교역 쇠퇴 : 기원전 1800년경 자연재해와 아리아인의 이동 등으로 쇠퇴 아리아인의 등장 : 기원전 1500~1000년경 지속적 남하 정착, 철기 사용, 도시 건설, 국가 형성 카스트제 확립 : 원주민 지배를 위한 신분 제도 확립, 혈통 신분에 따라 지위 및 생활 규정, 브라만(사제) -> 크샤트리아(왕족, 무사) -> 바이샤(평민) -> 수드라(주로 노예) 브라만교 성립 : 브라만 특권을 유지(오늘날 힌두교의 뿌리), 태양, 물 등 자연현상 숭배 및 신격화, 베다를 통해 자연현성 찬미, 브라만교의 경전으로 채택 사회의 변화 대규모 도시 국가들 등장 : 기원전 7세기경 갠지스강 유역에 아리아인들이 세운 국가 확산, 정복 전쟁 활발, 상업 발달 크샤트리아와 바이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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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년 체제와 오늘날의 일본

배경 : 사회당 통합, 냉전 심화, 성장궤도에 오른 일본 경제의 안정 요구, 사회당 집권 우려 자유당과 민주당의 통합으로 자유민주당(자민당) 결성, 국회의석 2/3 확보, 국제정치에서 철저한 미국 추수, 미국 보호 아래 경제발전 전념, 이후 자민당 정권의 독주(1955~1993)와 부패 사건 발생 미-일 상호협력 및 안전보장 조약(1960) : 기시 노부스케 내각 주도의 개정 추진, 미-일의 공동 방위 체제 구성, 사회당 등 안보개정 반대운동 확산 오키나와현의 일본 반환(1972) : 미국 점령 직후 동북아 거점이었던 오키나와에서 주민들의 반발이 확산되자 반환 협의 고도의 경제 성장 진무 경기 : 한국전쟁 특수 등 1950년대 후반부터 연 10% 이상 경제 성장 돌입 고속 도로 등 사회 간접자본, 석유화학, 전자공업 등 육성, 기술혁신 확산 등으로 성장 OECD 가입(1964), 무역수지 흑자, 동남아시아 등에 대한 해외 투자 증가 일본 열도 개조론(1972) : 다나카 총리가 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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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강화 조약의 체결

배경 :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6·25 전쟁으로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 선회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1951) : 미국 등 서양 열강과 일본 등 참여, 중국, 대만, 남한, 북한은 불참 한국의 독립 인정 :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에 대한 모든 권리, 자격, 영유권 포기 영토 포기 : 타이완, 펑후 제도, 쿠릴 열도, 사할린 등 일체의 권리 포기 미국 위임 : 오키나와와 오가사와라 제도 등을 미국에 위임 자산 포기 : 일체의 국외 자산과 조약 체결국에 대한 모든 청구권 포기 이후 : 인도(1952), 소련(1956) 등과 국교 회복 * 배상 외교(개별 교섭 진행) 동남아시아 : 미얀마(2억 달러), 필리핀(8억 달러), 인도네시아(6억 달러)와 국교 회복 타이완 : 배상 청구권 포기, 미국 및 일본과 군사 동맹 강화 한국 : 한-일 기본 조약을 통한 청구권 포기, 무상 3억 달러, 차관 5억 달러 공여 중국 : 청구권 포기, 중화인민공화국을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대만과 단결)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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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국의 점령과 개혁 추진

배경 : 일본의 무조건 항복에 따른 연합국 점령군 40만 명의 일본 진주 시작 사실상 미국 단독 점령, 기존 일본 정부의 행정 기구를 활용한 간접 통치 형태 군사 무장 해체 : 군수 생산의 전면 중지, 육-해군 해체, 전범 체포 인권 지령 : 천황 논의에 대한 자유화, 정치범 석방 5대 개혁 지령 : 헌법 자유주의화, 교육 제도 개혁, 비밀경찰 등의 억압 기구 폐지 등 신헌법 제정(평화헌법) : 상징 천황, 전쟁 포기 등 주권재민, 평화주의, 인권존중 원칙 사회, 경제 개혁 교육기본법 : 군국주의 교육 부정, 민주주의 이념과 기회 교육의 표방 농지 개혁 : 소작지 해방, 자작농 창출로 내수 경기 부양 노동 개혁 : 노동 3권 인정 재벌 해제 : 4대 재벌 중심 족벌 체제 종식, 독점 금지법 제정으로 경제 민주화 전범 재판(1946~1948) : 도조 히데키 등 교수형 등으로 단죄, 만주사변과 난징대학살 실상 공표, 최고 통수권자 히로히토 천황의 전쟁 책임 회피, 서양 열강과의 관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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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전쟁

배경 : 독-이-일 삼국동맹 체결(1940)로 추축국 형성, 군수 물자 확보를 위해 일본의 베트남 침략(1940), 미국의 철강과 석유 일본 수출 금지, 영국과 네덜란드와 일본 재외 자산 동결 전쟁 개시 과정 도조 히데키 내각 수립 : 주전파 내각의 수립(1941.10.)으로 전쟁 불사 분위기 확산 헐 노트 : 미국이 만주사변 이전 상태로의 복귀 요구 -> 일본의 개전 결정(1941.12.) 전쟁 발발 진주만 기습 : 일본이 미국의 하와이 진주만 기습 공격하여 전쟁 발발(1941.12.) 일본의 진격 : 동남아시아 대부분과 남태평양 일대 점령 대동아 공영권 표방 : 자신들의 침략 전쟁을 서양 세력에 대한 아시아 민족의 해방으로 선전, 전쟁에 필요한 자원 확보, 아시아 친일 정권의 대표를 소집해 대동아 회의를 도쿄에서 개최(1943) 전쟁 종결 미드웨이 해전 패배(1942) : 이후 연합군의 반격으로 세력 축소 일본의 무조건 항복 : 미국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 투하, 소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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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 전쟁

배경 : 만주사변 이후 일본 내 군국주의 확산 루거오차오 사건 : 베이징 근교 다리에서 일본군을 향한 총성으로 군사 행동 속전속결 시도 : 상하이와 난징 등 주요 도시 점령, 삼광 작전 전개 전쟁 장기화 : 중국의 제2차 국-공 합작, 국민당 정부의 충칭 이전, 공산당의 농촌 침투, 미국과 영국 등의 물자 지원 분열 시도 : 왕장웨이 등을 내세워 친일 괴뢰 정부 수립 일본의 대응 통제 경제 : 수출입품 임시조치법, 임시자금조정법, 국가총동원법 등 실시 전선 확대 : 삼광 작전, 충칭대공습(1941), 추축국 형성(이, 독, 일) 자국민 수탈 강화 : 조세 부담 증가, 화폐 발행 증가로 인플레이션 발생, 징병 연령 확대, 여성과 학생에 대한 군수 공장 동원, 도나리구미 결성(5~10호)로 국민 통제, 천황 신격화 강화(팔굉일우, 기미가요) 식민지 수탈 체제 강화 : 총동원 체제로 황국 신민화 추진 및 공출제 실시, 위안부 동원, 징용과 징병 실시, 조선에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결성(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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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내 파시즘의 대두

배경 : 만주사변에 대한 대다수 일본인들의 열광적 지지로 군부 대두 및 외무성의 영미협조론 비난, 육해군 청년 장교층 중심으로 급진파 대두 쿠데타의 지속적인 발생 쿠데타 불발 : 사쿠라카이 등의 군사정권 쿠데타 계획 등이 발생(1931) 혈맹단 사건 : 우익 테러 결사 혈맹단이 전 대장대신 이노우에 준노스케 등 암살 5·15 사건(1932) : 해군 청년 장교들이 수상 관저 습격 및 수상 사살 등 정당내각 부정, 일본 정당정치 종말 및 사이토 마코토가 이끄는 거국 일치 내각 등장, 국가주의 혁신 세력의 발언권 대폭 강화, 육군의 체제 혁신 제창 국체명징 운동(1935) : 체제 혁신을 내건 이념적 공세 심화 기쿠치 다케오 : 미노베 다쓰키치의 천황기관설을 국체 위배한 주장이라 비난 천황주권설 공인 : 주권이 천황에게 있다는 학설 채택 결과 : 의회의 견제를 거북스럽게 여기던 우익 정파와 군부 대두 2·26 사건(1936) 육군 내 파벌 대립 문제 대두 : 황도파 - 천황 중심의 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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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사변

1931~1932 배경 : 대공황 여파로 실업자 급증, 대흉작으로 식량 위기, 장쉐량의 일본 남만주 철도 위협, 만주에서의 조선인의 항일 운동 확산 목적 : 중국 문제 대응, 조선 통치 안정, 일본 자본주의 활로 모색, 국가 개조 추진(소련과 미국에 대한 지구전의 기반 마련) 류타오후 사건 : 관동군이 봉천 류타오후에서 남만주 철도 일부 폭파(1931.9.) 침략 : 관동군이 류타오후 사건을 중국군 소행으로 몰아 만주 침략, 사후 추인 중국의 대응 : 안내양외로 인해 중국 공산당 진압 우선, 일본과의 전쟁에서 소극적 태도 취하, 국제연맹에 제소하여 리튼 조사단 파견(1932.5.) 일본의 대응 : 상하이 사변(1932.1.), 만주국 수립(1932.3.), 국제연맹 탈퇴(1933), 해군 청년 장교가 주도한 5·15 사건 발생(1932)으로 정당 내각 붕괴 결과 일본 : 만주국의 간접 지배, 일본의 치워법권 철폐,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수립, 러허 침공 및 베이징 접근, 탕구 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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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경제 불황의 발생

경제 불황(1920) : 전쟁 종결로 인한 시장 축소로 인해 발생, 면사 생사 수출 감소, 실업자 증가, 기업의 도산, 조선에 대한 상품 및 자본 수출 시도로 대응 관동대지진(1923) : 막대한 재산 피해, 진재어음을 발행했으나 기업 도산 확산, 여론 무마를 위해 조선인 학살 유도,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 등 역모혐의 재판, 피해 규모가 국민총생산액의 1/3 도달 금융공황(1927) : 진재어음의 지불 보증 중단 법안 제출로 예금 인출 사태 발생, 중소 은행 도산 확산, 다나카 내각 성립 직후 은행의 3개월 지불유예령 이노우에 제정(1929) : 하마구치 내각 성립 직후 만성 불황 해소를 위해 추진, 금본위제 복귀 및 긴축재정 시도, 세계 대공황 여파로 심각한 타격, 임금 하락과 실업 증가로 사회적 불안 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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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협조 외교와 중국 문제

워싱턴 회의(1921~1922) 배경 : 5·4 운동으로 인해 중국 대표단이 베르사유 조약의 조인 거부로 중국 문제 대두, 열강의 불만, 군사적 우위 차지 시도 4개국 조약(1921) : 태평양 지역 상호 불가침, 영-일 동맹 폐기 5개국 조약(1922) : 해군 군비 축소 논의, 영-미-일의 주력함 비율 조정(5:5:3) 9개국 조약(1922) : 중국 영토 보존, 문호 개방, 중국에 대한 기회 균등 재확인, 일본의 아시아 영향력 증대 경계, 산둥반도 권익 중국에 반환 협조 외교의 원칙 채택 워싱턴 회의 수용 : 시베리아 철병 및 산둥 문제 해결(1922), 해군과 육군 감축 중국 문제 대응 : 중국에 대한 내정 불간섭 원칙 채택, 군벌 정부와의 우호 관계 수립 위기 : 국민혁명군의 북벌로 난징 점령 과정에서 일본 총영사관 공격(1927.3.) 대륙 적극 정책 채택 : 다나카 내각의 수립(1927.4.) 동방회의 개최(1927.5.~6.) : 북벌 저지를 위해 1차 산둥 출병 직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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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1차 세계대전 참전

영-일 동맹을 구실로 연합국 측에 가담하여 독일의 조차지였던 칭다오 일대와 적도 부근의 독일령 섬들 점령 21개조 요구 제출 : 독일의 조차지를 중국에 반환한 대가로 제출 러시아 내전 개입 : 백군에 대한 지원 파리강화회의(1919) : 월슨의 평화 원칙 14개조 제시로 인한 독일의 항복 및 전후 처리를 위한 회담 개최, 중국은 21개조 요구 철폐와 산둥반도의 권익 반환을 주장, 일본은 사전에 열강과 비밀 협정 체결을 통해 권익을 보장받음. 결과 : 중국 무역의 사실상 독점, 수출의 수입 초과로 자본주의 성장, 공장 증설 및 투자 확대, 강화회의에서 산둥성 이권 및 적도 이북 남양군도 영유 요구 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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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쇼 시대의 정치적 민주화 전개

다이쇼 시대 1912~1926 번벌 내각에 대한 비판 대두 히바야 폭동(1905) : 도시 민중들이 정부의 러-일 전쟁 처리에 대한 반감 표출 1차 호헌 운동(1912) : 가쓰라 내각 성립에 항의, 벌족 타도, 헌정 옹호 제기 쌀 소동(1918) : 미가 양등에 따른 생활고 반발로 전국적인 소동 발생 내각 총사퇴 :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이끄는 번벌 내각 총사퇴 및 하라 내각 수립 보통선거기성동맹회 : 노동자 중심의 광범한 민중운동 전개 2차 호헌 운동(1924) : 정우회, 헌정회 ,혁신구락부가 연합하여 정당 내각 수립 목표로 활동, 5월 중의원 선거 압승으로 호헌 3파 내각 수립에 의한 정당내각 관행화 호헌 3파 내각의 활동 보통선거법 제정(1925) : 25세 이상 남성에게 재산에 상관없이 선거권 부여, 최초로 보통선거 실시(1928) 하지만, 여성의 참정권 배제 치안유지법 제정(1925) : 천황제 유지 및 사회주의 확산 막기 위해 제정 여성 운동 전개 세이토 : 히라쓰카 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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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시대의 사회, 경제, 문화

경공업 : 1870년대부터 육성 시도, 1880년대 말 대규모 방적회사들 설립 재벌 형성 : 관영사업의 불하 등으로 미쓰이, 미쓰비시 등 형성 기반 마련 중공업 : 청-일 전쟁 배상금으로 제철소 건립, 러-일 전쟁으로 중공업 성장 사회주의 유입 : 노동자 처우 개선 등 요구, 일본사회당 결성, 대역 사건 등으로 침체 반전 주장의 대두 고토쿠 슈스이 : 20세기 괴물 제국주의 편찬을 통해 제국주의와 군국주의 비판 우치무라 간조 : 전쟁의 폐해를 다방면으로 지적, 전쟁 폐지 주장 아주 화친회(1907) : 장빙린, 고토쿠 슈스이, 조소앙, 판보이쩌우 등 참가,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 비판, 아시아인 혁명가들의 교류와 연대 추진, 이후 중국과 베트남에서의 사회주의 확산에 기여 근대 도시 형성 : 요코하마 등 개항 도시가 전국적 무역항으로 성장, 서구 문화 유입 도쿄 : 긴자 대화재(1872) 이후 긴자를 서양식 거리로 축조 요코하마 : 가나가와 앞 바다의 매립으로 요코하마 건립, 부두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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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제국주의화

대외방침 : 주권선, 이익선의 설정을 통해 대외 팽창 도모, 천황에 대한 신격화, 군비 확장, 주변국의 분쟁 등에 개입을 통해 이익 도모, 조선->만주->중국 본토 순으로 이익선 확대, 지속적 팽창 시도, 동양평화론과 대동아 공영권 등으로 침략 정당화 류큐 병합 : 사쓰마 국의 침공(1609) 이후 영향력 확보, 메이지 유신 직후 병합(1872) 대만 사건 : 청에 류큐에 대한 일본의 영유권 인정(1874), 오키나와현 설치(1879) 조선 강화도 조약(1876) : 미곡의 무제한 유출, 무관세 등을 통해 경제적 침투 톈진 조약(1885) : 조선에 대한 청-일 양국 군대의 상호 통지 규정 청-일 전쟁(1884~1885) : 동학농민운동으로 양국 군대 파견,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 후 기습 공격(풍도 해전) 및 평양 전투 등 승리, 시모노세키 조약(1895)으로 조선의 독립국 인정, 랴오둥반도와 타이완 등 할양, 외국 기업의 직접 자본 투자 및 공장 건립 허용, 2억 냥의 배상금을 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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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헌 체제의 수립

대일본 제국 헌법(메이지 헌법) 제정(1889) 배경 : 입헌칙조(1875), 국회개설조칙(1881) 등을 통해 헌법 제정, 국회 설치 약속 과정 : 이토 히로부미 등을 유럽 헌법 조사단으로 파견(1882~1883), 독일식 헌법 채택 특징 : 국가 권력 강화, 천황의 신격화 및 헌법적 기관 규정, 국민 기본권 부분적 인정 형태 : 내각, 의회, 재판소의 삼권분립 형식이나 천황에게 종속 의의 : 입헌제 국가의 제도적 기반 마련 제국의회 수립(1890) : 중의원 선거(입헌자유당 승리) 및 귀족원 구성으로 입헌 체제 완성 교육칙어(1890.10.) : 메이지 천황이 국민에게 직접 분부, 충효 강조, 천황주의의 국가 이념화 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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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정부의 정책에 대한 반발

반발 배경 : 사족층 - 봉건적 특권 철폐에 대한 반감, 농민층 - 징병제와 지조 개정 등에 대한 반발 정한론 : 조선에 국교 회복을 청했으나 서계 문제 등으로 접견 거부를 배경으로 사절단 파견 직후 사이고 다카모리 등의 정한론 주장 채택(조선 정벌 vs 내치 정비), 결론은 내치 정비 채택 및 정한론 비판, 사이고 다카모리 등 사직 대외적 팽창 타이완 사건(1874) : 류큐 표류민 살해 사건을 빌미로 원정군을 파견하여 점령 운요호 사건(1875) : 운요호를 보내 무력시위, 강화도 조약 체결(1876) 서남 전쟁(1877) : 사이고 다카모리 등 사족층의 무력 봉기, 강력 진압한 메이지 정부의 권력 기초 확립 자유민권운동 배경 : 이타가키 다이스케 등의 애국공당에서 민선의원설립건백서 제출 내용 : 정부의 전제 정치 비판, 입헌 체제 수립 요구, 언론 공개로 지지 세력 확산 메이지 정부의 대응 : 온건책 - 요구 사항 수용 및 천황의 10년 이내 의회 개설 발표(1881), 강경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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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유신

5개조 서문 발표(1868) : 여론에 입각한 정치, 언론 활동 활성화 등 제창, 서양 문명을 받아들여 근대적 입헌국가로의 방향 제시, 메이지 연호 사용, 에도를 도쿄로 개칭, 천황의 도쿄 이전 통치 체제 확립 판적봉환(1869.6.) : 보신 전쟁 종결(1869.5.) 직후 중앙집권화를 위한 본격적 정책 전개, 사쓰마-조슈 번주들이 토지와 인민에 대한 세습적 권리를 반환, 다른 번들 동조, 정부는 번주들을 지번사에 임명 페번치현(1871) : 번 통폐합 후 현 설치, 중앙정부가 직접 임명한 지사 파견, 막번 체제 해체, 전국적 중앙집권화 신분제 철폐 : 화족, 사족, 평민 구분, 평민의 성씨 사용, 신분간 결혼, 직업 선택 자유, 폐도령과 질록처분으로 사족 특권 폐지 외교 정책의 추진 만국공법의 유입 : 선교사 윌리엄 마틴의 한역(1864), 불평등 조약 개정 시도, 중국 중심의 국제 질서 거부, 조선의 개항 정당화 이와쿠라 사절단 파견(1871~1873) : 오쿠보 도시미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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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국과 에도 막부의 종말

개항과 그로 인한 영향 페리 제독의 등장 : 청과의 무역 및 북태평양 포경업을 위한 중간 보급 기지가 필요하자 내항(1853.7.)하여 통상 요구 및 답변 재촉(1854.1.), 막부는 페리 내항 사실을 조정에 알리고 다이묘 의견 청취 미-일 화친 조약(1854) : 아편 전쟁 등의 우려로 수용, 시모다-하코다테 개항, 제한 무역 허용, 표류 선원 구조 및 물자 보급, 영사 주재, 미국에 대한 최혜국 조항 허용, 이후에 영국, 러시아, 네덜란드와 유사한 조약 체결 미-일 수호통상 조약(1858) : 미국 초대 영사 타운젠드 해리스의 통상 자유화 주장을 수용, 개항장을 요코하마 등 5개로 확대, 무역 전면 자유화, 협정 관세, 외국인 영사 재판권 인정, 이후에 네덜란드-러시아-영국-프랑스와 안세이 5개국 통상 조약 체결, 칙허 문제 발생, 생사 가격 상승, 금 대량 유출로 경제적 혼란 반 막부세력의 등장 배경 : 천황의 칙허 거부로 이이 나오스케의 강행, 존왕양이론에 입각하여 막부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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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 열강의 접근과 새로운 사상의 대두

서양 열강의 접근 일본의 제한적 무역 : 나가사키 및 왜관을 통한 제한적 무역 전개 및 러시아, 영국, 프랑스 등 열강의 통상 요구 거부 이국선 격퇴령(1825) : 러시아, 영국, 미국 등 개항 압력이 심화되자 중국선 이외의 외국선은 무조건 격퇴 명령 철회(1842) : 아편전쟁으로 인해 불필요한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서 실시, 외국선에 식수와 연료를 공급할 수 있도록 하는 신수 급여령 실시 덴포 개혁 : 1830년대 중단 대기근 및 오시오 헤이하치로의 난 등 반란 발생으로 인해 미즈노 다다쿠니가 로주로 취임하면서 개혁 시작(1841) 검약령 : 풍속 단속 및 통제 귀농령 : 에도 이주자 귀향 추진, 개간 장려 가부나카마 해산 : 상인들의 자유 거래 인정 재정 확보 노력 : 연공률 조사 및 황무지 재경작, 직할지 확보를 위한 몰수령 결과 : 경제 활동 위축, 농민과 다이묘 저항으로 실패, 막부 권위 실추 가속화 웅번의 대두 번정 개혁 : 산킨코타이, 자연재해, 사치 풍조로 인한 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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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 막부의 동요와 개혁 정책

막부 체제의 동요 무사층의 궁핍화 현상 : 농업과 상업 종사 금지 및 화폐 경제 발달로 인한 쌀값 하락으로 인해 소득 감소, 소비 문화와 사교 문화 발달, 대부분의 무사가 부를 축적한 상인들에게 채무 농민 : 영주의 수탈, 자연재해 등으로 대규모 잇키 발생 인구 증가와 정체 : 에도 막부 수립 후 100여 년 동안 인구 약 3배로 증가(3천만 명), 18세기 들어 자연재해에 따른 대기근 등으로 인구 정체 도쿠가와 요시무네의 교호 개혁 당사자 간 합의령 : 채무 소송 당사자들 간의 합의를 통한 해결 종용 아게마이 제도 : 다이묘들에게 헌상미 부과, 에도 체류 기한 절반 감축 조멘 제도 : 풍흉 관계없이 일정한 연공미 징수 다시다카 제도 : 출신 관계없이 능력 있는 인재 등용 유교 교육 실시 : 데라코야에서 유교 교육 통해 신분 질서 안정화 도모 결과 : 사회 기강 확립, 대규모 봉기 표출 다누마 오키쓰구의 다누마 시대 가부나카마 조직 확대 : 영업 독점권 부여 수출 증대 시도 : 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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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 시대의 사회, 경제, 문화

상업 : 육-해상로 정비 등으로 발전, 나카마 결성 통해 영업권 독점 도모, 가부나카마 형성하여 독점권을 인정받은 조합 결성 농업 : 대개발시대 - 막부 개간 장려, 영주, 상인, 토호, 농민의 적극적 개간지 확대, 뽕나무, 담배, 생사 등 상품작물 재배 확대 수산업 : 연안 어장 개발, 어업과 염업 발달, 지역별 특산품 발달 광업 : 금과 은 채굴과 제련 기술 발전, 17세기 이후 동 채굴 중시 수공업 : 인구 증가로 잉여 노동력 증가, 화폐 경제의 침투로 가내수공업 발전, 직물, 종이, 도자기, 양조업 발달 화폐 : 막부의 독점 주조(금화, 은화, 전화), 환전상 발달, 번마다 번찰 발행 도시 : 정치, 군사, 경제상 핵심 도시이자 소비도시인 에도, 바다와 육산의 물산 집결지인 오사카, 직물, 염색, 공예가 발달한 교토의 대도시 발달, 신분에 따라 영주 거주지, 무사 거주지, 조닌지(수공업자 등 경제와 유통 중심지)로 나누는 조카마치 번영, 오가도를 따라 숙박 시설 등 역참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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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 시대의 대외 관계

류큐 : 명의 해금령 완화와 서양 상인들의 진출로 쇠퇴, 사쓰마 번의 공격으로 복속(1609), 청과 일본에 대한 이원 외교 전개 조선 기유약조(1609) : 명의 쇠퇴 및 여진족의 세력 강화, 에도 막부의 수립의 상황 속에서 막부의 국교 재개 교섭(1598)과 조선의 회답 겸 쇄환사 방문(1607), 조선의 피로인 송환 요구 등을 수용하여 외교 관계 및 무역 정상화, 쓰시마를 통한 무역 전개, 왜관에서 무역, 초량왜관 설치(1678) 공무역 : 일본이 은, 구리, 주석 등 수출, 조선이 목면과 쌀 등 지급 사무역 : 조선산 인삼(인삼대왕고은 주조), 중국산 생사와 비단을 은과 교환, 일본 은의 수출 감소로 18세기 말부터 사무역 감소 조선의 통신사 파견 : 피로인 쇄환 및 국정탐색과 막부 쇼군의 습직 축하를 위해 파견, 막부는 문화 교류 및 정치적 위상 확립에 이용, 조선인 쇄환, 고구마 종자의 조선 유입, 조선의 성리학과 천문학 지식 전래 슈인선 무역(1604~1635) 배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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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 막부의 성립

에도 막부 1603~1867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활동 히데요시 통일 직후 : 간토로 이동, 약 250만 석 영유, 2인자 지위 유지 히데요시 사망 직후 : 조선과의 외교 지휘 등 지배권 확립 시도, 반발 확대 세키가하라 전투 승리(1600) : 반이에야스 진영의 서군과 이에야스 진영의 동군 대결에서 승리, 서군에 가담한 다이묘들의 토지 몰수 및 감봉 막부 수립 : 쇼군 취임(1603)으로 에도 막부 개설 막부 체제의 형성 교토쇼시다이 : 서국의 다이묘 및 조정의 감시 등을 위해 설치(1601) 다이묘 재배치 : 막부 직할령, 신판 다이묘, 후다이 다이묘, 도자마 다이묘로 구분하여 간토 지역과 전국의 군사와 교통 요지에 재배치 일국일성령 : 본성을 제외한 모든 지성 파괴 무가제법도 공포(1615) : 쇼균이 교체될 때마다 제시, 산킨코타이제 시행(1635) - 1년에 1번씩 다이묘들이 가신과 무사를 거느리고 에도와 거주 지역 왕래, 에도가 거대한 상업 지구로 발전, 도로망 정비, 숙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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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고쿠 시대의 종말

오다 노부나가 * 통일 전쟁 추진 대두 : 경쟁 세력 및 엔랴쿠지 등을 물리치며 두각, 무로마치 막부 멸망 나가시노 전투 : 대량의 총포 활용 전법 통해 다케다 가쓰요리의 기마군단 격멸 아즈치 성 축조 : 자신의 권력 상징 잇코 잇키 격퇴 : 정토진종 혼간지 교단 신도들의 저항 격퇴 * 새로운 지배 질서 창출 노력 경제 정책 : 사카이 지배, 검문소 철폐, 상인의 자유로운 왕래와 영업 활동 장려 종교 정책 : 니치렌종과 정토종 논쟁 시킨 후 니치렌종 패소 및 탄압, 예수회 활동 인정, 교토에 남만사 건립 허가 지배 정책 : 무사와 상공인의 도시 집주 추진, 토지 생산량 파악 * 혼노지의 변(1582) : 모리 씨 정벌을 위해 교토 혼노지에 머물다가 아케치 미쓰히데의 반역으로 사망, 노부나가 사망 직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사태 수습으로 후계자 등극 도요토미 히데요시 통일 완수(1590) : 노부나가 후계자 등극, 본거지로 오사카 성 축조, 전국 통일 달성 이후 간바쿠의 지위를 히데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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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고쿠 시대의 전개

전국(센고쿠) 시대 1477~1590 오닌의 난(1467~1477) 체제 동요 : 쇼군의 전횡 등으로 권위 하락, 슈고 다이묘 등의 저항과 권력 다툼 발생 발달 : 쇼군 아시카가 요시마사 이후 후계자 선정 문제가 발생하자 쇼군 가문과 슈고 다이묘 등이 얽혀 대립 과정 : 동군과 서군으로 나뉘어 전국적 전란 발생(1467), 11년간의 전쟁 끝에 종결 결과 : 쇼균의 권위 추락, 슈고 다이묘 몰락, 가신인 슈고다이에게 지위 찬탈(하극상) 및 전국 다이요 등장 전국 다이묘의 성장 : 지역적 결합, 집단 전투 도입, 독자적 성문법 제정, 연공 수취 체제 정비, 적극적 개간책 및 치수 공사, 연은분리법 도입 남만 무역 : 16세기 중엽 포르투갈 상인의 표류로 조총 제조법 전래, 스페인과 포르투갈 등 무역 추진, 나가사키에서 무역 허락(1570), 크리스트교 수용(자비에르) 및 조총 확산 도시의 발달 : 농촌 수공업 및 상품경제 발달, 전국 다이묘의 거점인 성 중심으로 조카마치 도시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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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로마치 막부

1338~1573 통치 기구 막부의 주요 기구 : 쇼군을 보좌하고 정무를 총괄하는 간레이, 재판 담당 및 군사 계획 과 경찰, 치안 활동 등의 역할을 하는 사무라이도코로 지방 통제 기구 : 가마쿠라 후 - 아시카가 다카우지가 큰아들을 관동 지역 통치를 위해 파견한 것부터 시작하여 막부와 동일한 기구 유지 및 대립 발생, 규슈 탄다이 - 규슈 지역 군사 지휘 기관으로 외국 사신 응접 슈고 다이묘 : 슈고가 점차 무사와 토지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면서 봉건 영주로 성장, 야마나 씨와 오우치 씨 등 등장, 막부는 슈고 다이묘의 교토 거주 강제 및 슈고다이의 지방 영지 담당으로 통제 감합 무역(1404~1551) 명과의 통교 과정 : 명 건국 후 왜구 단속 요구로 인해 요시미쓰가 사절단 파견(1401) 및 조공-책봉 관계 형성(명의 신하 자청, 연호 사용, 왜구 단속 대가) 감합 : 명과의 무역 과정에서 필요한 증표로, 견명선을 파견하여 무로마치 막부가 독점 교역 : 닝보에서 검사 거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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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침입과 가마쿠라 막부의 쇠퇴

몽골의 1차 침입(1274) : 몽골이 남송을 고립시키기위해 일본에 조공을 요구했으나 거부하자 침입, 여-몽 연합군의 육상 전투 승리, 하지만 다음 날 기상 악화로 철수 몽골의 2차 침입(1281) : 남송 멸망 직후 일본의 복속 및 항복한 송나라 군의 이주를 위해 침공, 싯켄 호조 도키무네의 지휘 아래 상륙 저지할 석축 축조 및 해전용 선박 징발, 동로군과 강남군 등이 태풍의 엄습으로 난파되자 일본군이 잔여군대 격파 침입 영향 신국 사상 확산 : 가미카제로 격퇴했다는 신국 사상 확산 호조씨 권력 강화 : 효죠슈와 히키츠케슈 등의 무력화 고케닌의 몰락 : 침략과 대비 과정에서 발생, 몰락한 고케닌의 약탈 자행 및 주변국 침입 장원공령제 동요 : 장원영주와 지토에 대한 농민의 저항 심화 등 발생 남북조 분열의 시대(1336~1392) * 가마쿠라 막부의 멸망 고다이고 천황의 거병(1333) : 막부의 천황가 간섭에 대한 불만으로 거병, 경제적 처지 및 호조씨의 권력 독단에 불만을 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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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쿠라 시대의 사회, 경제, 문화

장원의 성격 변화 지토의 대두 : 연공 미납 및 농민 불법 부역 자행, 지토가 토지와 농민을 지배하려면서 영주나 고쿠시와 대립, 지토우케와 토지 중분 등을 통해 지배권 점유 영주의 지배력 약화 : 슈고와 지토의 장원 경영 간섭으로 장원 지배력 약화, 장원 영주가 농민들에게 경영 위탁, 자치 촌락 단위의 소농 경영 보급 농업의 발달 : 농기구, 시미법 발전, 수차와 소와 말 이용, 벼 품종의 개량을 통해 서부 지역의 2모작 실시 상공업과 화폐 경제 : 생사와 견포 등 수공업 발달, 정기시 및 상설 도매점 등장, 송과의 교역으로 송의 동전 유통 활발, 상공업자 동업 조합 자 형성 및 생산물과 화폐 납입 등을 통해 상품 독점, 연공물과 상품 등의 운반 활성화를 통해 역참제와 교통로 발달, 화폐 거래와 대부업을 담당하는 가시아게 발달, 상품 중계와 운송을 담당하는 도이마루 발달 송과의 관계 : 규슈 북부의 하카타 입항(다자이후 홍려관)으로 하카타 지역 중심으로 전개, 송의 도자기와 견직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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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큐의 난

막부의 내홍 상황 : 요리토모 사후 요리이에의 독재 지향에 외주부 호조 도키마사 반발, 싯켄 - 도키마사가 만도꼬로의 장관이 되어 실권 장악 및 호조씨의 계승, 호조 요시토키가 친왕을 쇼군으로 옹립 시도 -> 고토바 상황의 반대로 실패 발발 거병 : 고토바 상황의 거병(1221), 요시토키에 대한 토벌 명령 호조 마사코의 호소 : 요리토모의 미망인으로서 호소 -> 동국 지역의 무사들 집결 진압 : 막부군이 1개월 만에 고토바 상황의 군사 궤멸 및 교토 점거 결과 막부 세력 확대 : 상황 측 재산 몰수 후 고케닌들에게 분배, 서부 지역 진출 조정 감시 : 야스토키, 도키후사 등이 로쿠하라단다이로서 조정 감시 싯켄 정치 확립 : 야스토키 싯켄 취임 이후 고케닌에 의한 집단 지도체제 성립, 최고 의결 기관 효죠슈가 합의제 기초로 운영, 고세이바이시키모쿠 - 재판의 공정성 확립을 위한 법령 규정, 분쟁을 공평하게 처리하기 위해 히키츠케슈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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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쿠라 막부의 성립

1192~1333 성립 과정 : 헤이시 가문 격파 과정에서 미나토모 요리토모-요시쓰네 형제 대두 및 갈등, 요리토모가 후지와라 가문(요시쓰네 의탁)를 물리치고 내란 종식, 고시라카와 법황의 원정 및 막부의 군사와 감찰권 장악 체제 정비 고케닌 : 요리토모와 주종 관계 형성(쇼군의 가신), 군사적 충성에 따른 토지 지급, 지방에 치안의 슈고와 토지 관리의 지토 파견 및 실질적 지배 행사 중앙 정치 기구 : 고케닌을 통제하기 위해 사무라이도코로 설치, 일반적인 정무와 재정을 담당하는 구몬쇼(만도꼬로), 고케닌의 소송을 처리하는 몬추쇼 설치 지방 통제 형태 : 요리토모가 국마다 슈고, 각국의 장원과 국아령에 지토 설치, 슈고는 관내 고케닌 지휘 및 전시 전투 지휘, 치안 유지 및 경찰권 행사, 지토는 연공 징수 후 장원영주에게 운송, 토지 관리 및 치얀 유지 담당 세이타이쇼군(정이대장군) 임명(1192) : 미나모토 요리토모가 고케닌 통제, 슈고와 지토 등을 통한 지방 통치권 장악,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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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과 헤이시 대두

원정의 등장 배경 : 후지와라 가문과 혈연 관계가 아닌 고산조 천황의 즉위(1068) 내용 : 천황이 퇴위 직후 상황이 되어 후견인 입장에서 실권 장악 목적 : 외척 후지와라 씨의 배제 및 천황 권력 강화 영향 : 지행국제 확대로 인해 원 자신이 많은 지행국의 수익 장악, 원이 사원 무장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무사를 고용 헤이시 등장 : 상황과 결탁하여 권력 강화, 천황의 외척이 되어 권력 독점 다이라 기요모리 : 호겐의 난(1156) 평정 및 고시라카와 천황의 개혁(장원 정리)에 협조, 헤이지의 난(1159) 과정에서 정권 장악, 다수의 장원 보유, 송과의 무역 독점으로 기반 확립 겐페이의 쟁란(1180~1185) : 다이라 기요모리의 헤이시 가문의 권력 장악으로 인해 모치히토 왕이 여러 무가와 사원에 헤이시 타도를 외치는 격문 발송, 미나모토 요리토모가 후지가와 전투 등에서 승리하여 헤이시 세력 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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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의 형성과 발달

사무라이 : 묘슈가 토지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무장하여 무사단 성립으로 탄생 역할 : 10세기 무렵 귀족과 호족의 장원 확대로 반란 진압과 호위 담당의 목적으로 무사 고용 발달 : 11세기 중엽 점차 지방 영주로 변모 양대 세력 : 세이와 겐지, 간무 헤이시 등 세력 강대 장원의 재확대 배경 : 무사 등 유력자들이 농민을 조직하여 개간 사업 주도 기진 : 고쿠시의 세금 부과에 대해 귀족과 대불사 등에 기진하여 저항 무사의 토지 지배 : 개간지를 공령으로 인정받아 행정관에 임명 및 지방 영주화 장원의 성격 변화 : 자간지계 장원 - 유력 권문이 행무지 개간을 통해 장원 성립, 기진지계 장원 - 지방 영주 등이 권문에 기진 및 실질적인 지배권 확립 지행국제 : 일국의 지배권 전체를 상급 귀족 및 대사원 등에게 수여, 공령의 수익이 지행국주에게 귀족되어 공령이 사실상 장원화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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