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korea)의 유래.
고려는 어떻게 해서 붙은 이름일까? 이수광이 지은 [지봉유설]에는 '산이 높은 것(고) 과 그리고 물이 맑고 고운 것(려)을 나타낸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결국 '산과 강이 아름다운 나라' 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 어디를 다녀봐도 사계절이 이렇게 뚜렷하고 산의 모양이 이렇게 아름답고 계곡물이 이렇게 맑은 나라는 드믈었다. korea는 정말 아름다운 이름이다. 우리 모두 민족적인 긍지를 가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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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는 어떻게 해서 붙은 이름일까? 이수광이 지은 [지봉유설]에는 '산이 높은 것(고) 과 그리고 물이 맑고 고운 것(려)을 나타낸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결국 '산과 강이 아름다운 나라' 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 어디를 다녀봐도 사계절이 이렇게 뚜렷하고 산의 모양이 이렇게 아름답고 계곡물이 이렇게 맑은 나라는 드믈었다. korea는 정말 아름다운 이름이다. 우리 모두 민족적인 긍지를 가지자.
조선성종 때부터 대두되기 시작하던 훈구대신들과 신흥 사림들의 대립은 연산군과 중종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신흥 사림들의 득세로 이어졌다. 고려말기에 안향으로부터 주자학이 전래된 이래로 꾸준히 발전되어오던 성리학은 조선 중기를 거치면서 새로운 사상의 국면을 맞는다. 이른바 사화로 불리는 한바탕 정쟁은 성리학을 조선 도학의 새로운 이념으로 고착화 시키고 있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하늘을 나는 새 한 마리, 동네를 돌아다니는 개 한 마리, 어느 것 하나 성리학적 형상사유를 벗어나서 일상이 존재하기란 쉽지 않았다. 사림파의 득세로 이루어진 새로운 공간에 역동적인 성리정신의 탄생은 개혁과 창조의 충동을 모든 면에서 제공해 주었다. 이러한 상승의 분위기는 민족문화의 변화를 요구하고 방향을 정해주었으며, 하나의 새로운 사조를 탄생하게 했다. 도남 조윤제 선생은 조선 중종에서 선조 임진년에 이르는 약 90년간을 두고 이 시대의 작가 중에는 사화로 어지러워진 세상을 벗어나 자연의 진경에 몰
“가장 슬픈 마음을 노래 한 것이 가장 아름다운 시가이다. 라고 주장한 P.b.셸리의 구절을 생각하면 「공무도하가」나 「제망매가」로 시작되는 한국의 시가는 아름다움의 극치이다. 문학은 어떤 의미에서 아름다움 찾기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탄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관혼상제의 예는 기억과 상실에서 오는 의미부여와 그리움의 표현으로서 문학적인 필요성을 갖고 있다. 문학은 어떤 의미에서 기억과 상실의 미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악의 표현을 위해 자연과 세계에 대한 문학적 성찰이 필요하다. 아주 옛날 원시시대부터 원시종합예술의 성격은 크게 祭儀와 축제였으며 이러한 예악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문학의 발생과 관계가 깊다는 가설을 생각할 수 있다. 자연에 대한 성찰과 외물에 대한 인식의 방향도 예악과 관련되어 있었으며 예악의 표현 속에 비유와 상징의 문학적 표현이 대두될 수 있었다. 祭儀는 문학이 태동되는 보고이다. 제문은 생전의 생활모습에 대한 표현인 점에서 서사성을 띠고 있으며, 음악
연암 박지원의 "소단적치인(騷壇赤幟引)"은 시가에 있어서 문자메시지와 이미지를 창작논의 입장에서 거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연암의 시 쓰기이다. “글을 잘 하는 자는 병법을 아는 것일까? 글자는 비유컨대 병사이고, 뜻은 비유하면 장수이다. 제목이라는 것은 적국이고, 전장(典掌) 고사(故事)는 싸움터의 진지이다. 글자를 묶어 구절이 되고, 구절을 엮어 문장을 이루는 것은 부대의 대오(隊伍) 행진과 같다. 운(韻)으로 소리를 내고, 사(詞)로 표현을 빛나게 하는 것은 군대의 나팔이나 북, 깃발과 같다. 조응이라는 것은 봉화이고, 비유라는 것은 유격의 기병이다. 억양반복이라는 것은 끝까지 싸워 남김없이 죽이는 것이고, 제목을 깨뜨리고 나서 다시 묶어주는 것은 성벽을 먼저 기어 올라가 적을 사로잡는 것이다. 함축을 귀하게 여긴다는 것은 반백의 늙은이를 사로잡지 않는 것이고, 여음이 있다는 것은 군대를 떨쳐 개선하는 것이다.” 위 인용문에서 연암의 시 쓰기를 분석하면, 시의 문자메시
<황조가>에서 ‘翩翩黃鳥’를 ‘펄펄 나는 저 꾀꼴새여’라고 번역한 것을 보면서 늘 못마땅해 했다, 그런데 이것을 또 ‘훨훨 나는 꾀꼴새여’로 번역하여 고등학교 교과서에 싣고 있다. “훨훨 나는 꾀꼴 새”는 있지도 않을뿐더러 날개 짓도 크고 멀리 날아가는 모양을 형상한 말이다. 여기에서 어떻게 암수서로 정다운 꾀꼬리의 이미지를 찾을 수 있겠는가? 소재가 시의 공간에서 고립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일반 사전적인 언어의 나열이 된다. 가령 자전에 “翩翩 : 새가 펄펄나는 모양”을 그대로 번역에 끼워 맞추는 번역이다. 이렇게 되면 이것은 시가 아니다. 시인 정지용은 “옥에 티나 미인의 이마에 사마귀 하나야 버리기 아까운 점도 있겠으나 서정시에 말 한 개 밉게 놓인 것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라고 했다. 번역은 시어 하나하나를 신중히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 필자가 <황조가>를 번역한다면 시조의 형태를 취할 것이다. 왜냐면 조금이라도 황조가와 독자 간의 문자메시지를 해독하는 시간적 거리를
<동심초> - 김안서 譯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갖되이 풀잎만 맺으랴는고 이 시는 당나라 기생 설도(薛濤)의 춘망사<春望思> 네 수중에서 셋째 수 ( 風花日將老 佳期猶渺渺 不結同心人 空結同心草 )를 김억이 번역한 시이다. 독자에게는 이 시에 대한 비평 수백 편 보다 잘된 번역시 한 편이 훨씬 더 낫다. 이 한시의 번역이 너무 아름다워서 김성태가 곡을 입힌 것이 우리에게 애창되는 가곡 동심초의 가사가 되었다. 이것은 이미지 번역이다. 위의 번역에서 보듯 한시의 이해란 일단 해석의 문제이고, 시의 이미지를 한국적인 것으로 변용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이 시의 은유와 환유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자유롭게 가져올 수 있는 문화 번역, 이것은 당나라 문화의 수용과 변용이었다. 이것은 중국 한시의 한국적 이해이다. -김억의 한시 번역집 <동심초>- #동심초 #가곡 #김안서 #번역 #김억 #한자문화콘텐츠학 #신두환
권근이 봉명사신으로 명나라에 갔을 때 명나라 高皇帝는 다음과 같은 한시를 지어주었다. 도읍을 옮겨 남긴 것이 황량하기 짝이 없고 눈에 가득 풀이 우거져 지나는 나그네를 슬프게 하는 구나 동산의 꽃에는 벌이 꿀을 빚고 주인 없는 궁전은 토끼 굴로 변하였네. 행상들은 길을 바꿔 새 성곽으로 향하고 상점을 옮겨놓고 옛 도읍을 생각하는 구나 이곳은 옛날 왕건이 일으킨 나라인데 단군(檀君)이 가신 뒤로 얼마나 변했는고. 遷遺井邑是荒凉 莽蒼盈眸過客傷 園苑有花蜂釀密 殿臺無主兎爲鄕 行商枉道從新郭 坐賈移居慕舊邦 此是昔時王氏業 檀君逝久幾更張 명나라 高皇帝는 단군(檀君)을 인정했다. 중국에서도 우리가 단군의 후예라는 것을 인정하였다. 단군(檀君)은 국가의 시조로서 신성시 되어야 한다. 신이한 내용에 한자를 더 보태거나 한 글자를 빼더라도 국가신성모독이다. 삼국유사에 단군과 관련하여 신화란 말은 없다.. 삼국유사에는 단군 기이라고 표현했다. 영이사적, 신령스럽고 기이한 사적이라고. 단군의 신성한 기이를
우리들의 일상에서 '천방지축(추)마골피' (천방지축으로 돌아 다니는 말뼉다귀), '문어명태고주알'(물고기같은 자질구레한 일), 등 성씨를 가지고 어희적인 표현을 많이 해 온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성씨에 해당되는 분들이 혹시 우리는 쌍놈인가 생각하시는 분도 있는 모양인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성씨가 있는 것만으로도 양반 계급에 속합니다. 성씨를 가지고 놀이 삼아 칠언구의 싯구에 입혀서 문자유희를 한 것일 것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성씨들은 모두 훌륭한 성씨들입니다. 현대판 상놈 성씨 일곱가지는 허씨, 어씨, 지씨, 노씨, 조씨, 구씨, 나씨 인데.. 이것으로 어희를 하면 '어허 조지로구나'가 되지요. 허허허. 모두 훌륭한 성씨들입니다. 성씨를 가지고 열받지 마세요. #천방지축마골피 #성씨 #천 방 지추마골피 #어희 #문자유희 어허조지로구나.
조선시대에도 요즈음과 같은 세금제도는 없었다. 역대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망국의 원인들을 짚어보면 과도한 세금을 부과하고 악독하게 징수함으로서 민심과 이반하게 되고 결국은 망하게 된 것이 하나 둘 아니었다. 성호 이익은 그의 저서 곽우록에서 "대저 죽은 자에게서도 세금을 걷는 백골징포나 과도한 세금을 피해 도망하거나 사라지면 이웃이나 그 족속에게서 걷어 들이는 족징같은 악독한 징수 방법은 조정에서 명령한 것이 아니라 지방 수령들의 짓이었다. 나라에서 어찌 수령들에게 이와 같이 악독한 짓을 시켰으리오. 만약 집집마다 호포를 바치게 하면 나라에는 여유가 있어 낭비만 증가하게 된다. 세금때문에 저 곤란에 처한 백성들에게 이 모진 세금이 또 보태어지는 데도 고단한 집 가난한 부엌에도 낱낱이 거둘 수 있겠는가? 이것은 장차 백성들에게 너그럽게 정치를 하려고 하면서 더욱더 세금을 부과하려고 하는 방법을 세우는 것이니 내가 보기엔 다음에 오는 폐단이 과거보다 더욱 심함이 있다"고 했다. 요즈음 과
漢字로 된 술 주자는 두가지 표시가 있다. 술 주자에 들어가는 '酉'자는 술 항아리를 뜻하는 글자다. 그 하나는 마디 寸자가 붙은 '酎'자 이고 다른 하나는 물 수가 붙은 '酒 '자이다. '酒'자가 붙은 술은 맑은 물로 빚어지는 것으로 과일주 등에 주로 쓰인다 그 예를 살펴보면 포도酒, 인삼酒, 등이고 '酎'자가 들어가는 술은 누룩과 술밥을 섞어서 만든 원료를 불을 때서 증류시켜 방울방울 마디마디(寸) 떨어지는 것을 받아서 모은 술로 술을 내린다는 표현을 쓴다. 예를 들면 안동소酎 , 문배酎, 소곡酎 등이다. 그런데 우리가 먹는 그냥 소주들은 불사를 소 (燒)자에다가 술 (酎)자를 쓴다. 이것은 물이 더 많은 것으로 명칭을 燒酎를 쓰는 것은 잘못이 아닐까? #소주 #포도주 #酒 #酎. #인삼주 #신두환 #한자문화콘텐츠학
청계천과 수표교 수표교는 한자로 水標橋 조선 세종 때 청계천에 놓여 졌던 다리이다. 지금은 장충단 공원에서 동국대 사이에 거치되어 있다. 수표교는 말 그대로 물의 표시를 잰다는 뜻이다. 조선시대 수표교는 치산치수의 근간으로 요즈음 한강의 다리에 눈금자를 그어 놓은 시초이기도 하다. 조선 세종 때 건설한 다리로 어느 눈금까지 오면 어느 어느 동네가 물에 잠기고, 어느 눈금까지 오면 양화나루의 주민들을 대피시키고 어느 눈금까지 오면 마포나루 주민들을 대피시키고 어느 표시까지 강물이 불어나면 어느 동네가 잠기는지 세종은 모두 알고 있었다. 다리 근처에 준천사(濬川司)란 관청을 두어 물의 양을 판단하여 일일이 한성판윤에게 에게 일일이 보고 하여 홍수에 대비하였다고 한다. 한성판윤이면 오늘날 서울시장이다. 최근의 홍수피해를 보면서 지방 관리들의 치산치수가 다시 말해서 홍수에 대한 대비책이 조선시대만 못함을 실감한다. 그때에 비해서 여러 가지 첨단 장비가 발달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애민정신은 하
개를 나타내는 ‘狗’와 ‘犬’의 차이. 개는 옛날부터 인간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진 동물이다. 이것을 나타내는 漢字로 ‘犬’과 ‘狗’가 있다. 이 차이는 뭘까? 한자는 똑같은 글자를 두 번 만드는 일은 없다. 그 글자의 유래들을 보면 한자는 그 모양과 관련된 회화문자이고, 한 글자가 역사이며, 문화이고, 철학이며, 미학이다. ‘狗’자와 ‘犬’자의 차이는 무엇일까? 우선 ‘狗’란 글자의 유래를 찾아보면 한나라 유방의 심복이었던 번쾌가 개를 잡아서 파는 것으로 나오는 데 이때의 글자가 ‘狗’이다. 孟子에 나오는 ‘鷄豚狗彘’라고 해서 먹는다는 의미의 ‘狗’란 글자가 있다. 이로 보면 ‘狗’는 잡아먹는 용도로 기르는 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에도 누런 개를 ‘黃狗’라고 했고, 하얀 개는 ‘白狗’라 했고, 검은 개는 ‘黑狗’라고 했다. ‘狗’는 식용개로서 사용되었고 개를 잡아먹는 것은 동방민족의 음식문화였다. ‘犬’자는 좀 다른 것이었다. 아마도 기른다는 의미가 강했다. 애완용으로
기와의 미학. 원의 사분의 일. 기와. 瓦. 원의 사분지일의 미학. 기와는 두 장씩 덮쳐 담장가운데 꾸며 통풍을 고려하고 밖을 내다 볼 수 있게 한다. 네 장을 합치면 하나의 원이 되게 되어 있다. 네장을 서로 등지게 하면 또 무늬가 된다. 두 장씩 합쳐서 다섯 개로 벌리면 꽃의 모양이 된다. 이 하나의 기와, 사분의 일의 원이 무궁무진한 미학을 펼친다. 박제가는 「북학의」에서 청나라 기와를 예찬하고 원의 사분의 일로 규격화 된 것을 예찬했다. 그러나 우리 기와는 그렇지 못함을 비판했다. 그 이후 우리 기와는 변했을까? 박제가는 청나라 문화 예찬론가 이며 우리 고유의 문화에 대해 비판한 청나라 사대주의자이다. 이 속에 북, 즉 청나라를 배우자는 실학의 사상이 싹텄다. 이들이 북학파이다. 그의 관찰력과 미의식은 놀랄 만하다. 중국을 여행하거든 꼭 이 기와를 살펴보시오. 미감을 느낄 수 있어요. 그리고 우리나라 기와집의 우아한 멋을 느껴보세요. 어느 것이 나은지...... #기와. 원의
<목제주령구(木製酒令具)> 이것은 안압지에서 출토된 것으로 kbs 역사스페셜를 통해 소개되었다. 1975년 경주 안압지 연못 바닥에서 발견된 것으로 높이 4.8 cm 의 사진과 같은 물체로 정사각형이 6면 삼각형에 가까운 육각형 면이 6개 총 14면 체로 굴릴 수 있도록 나무로 제조되었다. 각 면에는 술을 흥미롭게 마실 수 있도록 벌칙이 한문 해서체로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어 여럿이 술 마실 때 유흥의 기구로 사용하던 술을 마시게 하는 놀이기구로 추측된다.(안압지발굴조사보고서 1978, pp407~409) 이것은 영구 보존을 위해 처리하던 중 화재로 인해 안타깝게도 소실되었고, 그 사진을 토대로 모조품을 만들어 현재 경주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것이 ‘목제주령구(木製酒令具)에 대한 기본 설명이다. <목제주령구(木製酒令具)의 모습> 사진은 인터넷 사이트에서 퍼온 것입니다. ※ 4각형에 기록된 여섯 면의 의미. 1.禁聲作舞(금성작무) 소리 내지 않고 춤추기. 이것은 당시에 불려 진 노
빗속의 연꽃 이 황 아름다운 누각 동쪽 모퉁이에서 연못을 굽어본다. 술자리를 파하고와서 소나기 내릴 때를 바라보니 물방울 도르륵 말려 가득차면 기울이는 기구 같아라 비 소리가 시끄러워도 싫지 않으니 옷깃을 여밈이 마땅하도다. 畵樓東畔俯蓮池 罷酒來看急雨時 溜滿卽傾欹器似 聲喧不厭淨襟宜 「雨中賞蓮」 退溪先生全集 卷4 이 시에 나타난 연꽃의 이미지에서 가장 돋보이는 시구는 당연히 ‘溜滿卽傾欹器似(물방울 도르륵 말려 가득차면 기울이는 기구 같아라’이다. 연 잎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도르륵 굴러 蓮잎에 담긴다. 연잎에 물방울이 많이 고이면 연잎은 무거워 기울이지요. 이 상황은 마치 곡식을 되로 헤아리는 것과 비슷하다. 아름다운 번역은 “연잎은 빗물을 되질하는 듯”이라고 하면 어떨까? 한시의 잘못된 번역은 그 시를 망치게 된다. 차라리 번역하지 않으면 더 나을 것을. 성리학자 퇴계 이황의 시에 이렇게 시원하고 섬세하고 정감 있는 동영상적 표현에 미학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퇴계의 시는 도학적인
비와 연잎 송강. 정철. 明珠 四萬 斛을 년닙픠 다 바다셔 담는 듯 되는 듯 어드러 보내는가 헌사한 물방올란 어위 게워 하는다. 맑고 고운 빗방울을 구슬에 비유했다. 그 구슬 사만 가마니가 하늘로부터 쏟아져 내린다. 연잎은 이것을 모두 받아서 되로 샘하고 있다. 얼마나 될까. 연잎은 맑은 구슬을 되질 해내기에 바쁘다. 한방울의 물도 스며들지 않는 연잎위에 물방을이 형체를 바꾸어가며 잠시도 쉬지않고 굴러 다닌다. 쏟아져 내린 비이니까, 한꺼번에 소리를 내며 바쁘게 튀고 구르는 투명한 빛과 소리들을 연잎이 다 받아내기에 바쁘다 그래서 기울이고 또 기울이는 것을 되로 곡식을 바쁘게 헤아리는 것에 비유했다. 그 맑고 청신한 기운과 역동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시조 한 편이 머리를 시원하게 한다. 이 16세기의 비와 연잎의 향연이 동영상으로 남아 그 녹색 쟁반위에 투명하게 하이얀 태두리를 두르며 굴러 다니는 그 맑고 고운 신비한 빛. 그 물방울이 연잎의 사랑을 받고 있다. 잠시도 쉬지 않고 논색
슬픈 시조 하나. 남진 죽고 우는 눈물 두 져제 나려흘러 졋마시 짜다하고 자식은 보채거든 뎌 놈이 어네 안흐로 계집되라 하는다. -송강 정철- 남편께서 돌아가시고 어린아이에게 젖을 먹이며 우는 청상과부의 모습을 포착해낸 것이다. 아마도 주인공은 서민의 아내인 듯하다. 사회의 눈물겨운 참상을 고발한 사회시적 성격이다. 남진은 남편이다. 남편이 죽어서 우는 눈물이 아이가 빨고 있는 두 젖 위로 흘러 내린다. 얼마나 슬펏으면 눈물이 가슴까지 흘러 내렸으랴.그 애절하고 안타가운 슬픔을 표현한 것이다. 슬픈 눈물을 묘사하여 세 줄기 눈물이라고 하였던가? 두줄기 눈물은 누구나 울 수 있는 눈물이지만 세줄기 눈물은 남편이나 부모가 죽었을 때 흘릴 수 있는 눈물이라고 하였던가? 엄마의 젖에 흘러 내리는 눈물을 묘사한 송강 정철의 묘사에 감동한다.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엄마의 젖을 빨던 아이가 눈물 맛을 보니 짜다. 아무것도 모르고 젖을 빠는 아이는 자기의 아빠가 죽었는지도 모르고 젖맛이 짜
수류탄은 석류를 모방하여 만들었다. 예쁜 석류를 뷰비추랩으로 사용하는 모양이었다. 너무나 예쁜 석류는 누구나 만지고 싶어하는 호기심이 발동한다. 이것을 이용하여 적의 호기심을 유인하여 석류를 닮은 수류탄을 건들면 터지도록하여 적에게 해를 입히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 졌다. 그래서 수류탄은 한자로 手榴彈이라고 쓴다. '榴'자가 바로 석류이다. 겉모양만 석류를 모방한 것이 아니라 수류탄 속에 채워진 파편들도 석류의 알을 모방하였다. '미녀는 석류를 좋아한다.'는 선전문구를 보면서 남자는 미녀를 경계해야한다는 말이 떠올라 입가를 뱅뱅돌고 있다. 이 수류탄에도 미학이 있었으며 후에는 이것을 모방해서 만든 파인애플 수류탄이 나오는데 이것은 파인애플을 닮은 것이다. 수류탄의 모양은 다양하게 변해도 글자는 手榴彈이라고 쓰는 것을 보면 수류탄의 원조는 석류를 모방한 것이 최초인가? 이것을 수류탄이라고 최초롤 명명하여 사용한 사람은 아마도 한국인 이었을까? 우리는 수류탄 이라는 언어의 이미지 안에서
발문. 書朝鮮名人傳後 조선명인전 영인에 부쳐. 신두환(성균관대학교 어문학부 강사) “쇠와 돌은 오래가고 먹과 붓은 인연을 생기게 한다”는 말이 있다. 南原梁氏 文襄公宗會 梁熙成 氏가 조선일보사에서 간행되었던 조선명인전을 다시 影印한다고 한다. 이 책은 귀중한 책인데, 구하기도 쉽지 않고, 또 더 이상 보관하기도 어려운 상태여서, 후진들을 위하여 사비를 들여서 影印을 한다고 跋文을 청한다. 내가 직접 책을 보니 과연 세 권 모두가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다. 그래서 이 책이 되살아나 오래가라는 의미에서 발문을 쓰려고 먹과 붓을 들고 떨고 있다. 소설가 상허 이태준은 책을 여인에 비유하여, "물질 이상인 것이 책이다. 한 표정 고운 소녀와 같이, 한 그윽한 눈매를 보이는 젊은 미망인처럼 매력은 가지가지다. 新刊欄에서 새로 뽑을 수 있는 잉크 냄새 새로운 것은, 소녀라고 해서 어찌 다 그다지 신선하고 상냥스러우랴! 고서점에서 먼지를 털고 겨드랑 땀내 같은 것을 풍기는 것들은 자못 미망인다운
이수광이 [지봉유설]에 왕소군의 이야기를 했다. 중국의 4대 미인 중의 한 사람인 왕소군은 한나라 원제때 북방에서 자주 위협을 해오는 흉노를 다스리기 위해 흉노의 왕과 정략 결혼을 했다. 왕소군이 북방으로 가기 위해 말을타는 것부터 이 역사적 사실이 이백, 백거이 등 중국의 유명한 시인들의 시에 오르내렸다. 북방에 있으면서 기러기들이 날아오는 것을 보고 거문고를 타면서 슬픔을 달래었다. 너무나 예쁜 왕소군을 본 기러기들은 왕소군의 미모에 놀라 날개짓하는 것을 잊어버렸다. 그래서 기러기들이 땅으로 떨어졌다. 이것을 한자로 쓰면 '落雁(낙안)'이다. 이 이후 미인을 낙안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미인 왕소군은 이름이 장이고 그의 자가 소군이었다. 明妃(명비)라고 했으며 이 명비의 신세를 석숭이란 사람이 시로 지었는데 이것이 명비곡이다. 거기에서 엣날에는 보물상자 속의 옥이었는데 지금은 똥위의 꽃이 되었다(昔爲匣中玉 今爲糞上英)고 노래했다. 참 재미있는 비유와 상징이다. #꽃 #미인 #옥 #
지금 산자부에서 도량형의 서양식 사용을 고집하고 있다. 물론 세계 통일형 국제 표준을 사용하자는 의견에는 일부 공감하면서 전통문화 계승차원이나 민족문화의 멸실이라는 입장에서는 강하게 반대한다. 땅 한 평, 금 한 돈, 쌀 한 되, 좁쌀 한 홉, 술 한 말, 벼 몇 석 등의 정감있는 우리 전통 도량형을 없앤다면 우리 민족문화의 손실은 얼마나 클까? 땅 100 제곱미터, 3만 평방미터, 소고기 100그램, 쌀 10키로, 등등의 용어는 상업적이고 계산적이며 언어적 정감이 없다. 이 전통도량형의 민족 정서가 사라지면 문학이나, 예술방면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나게 클 것이다. 후진들을 교육하는 교육자의 입장에서만 보아도 그 가르쳐야할 내용이 얼마며, 그 사라져야 할 언어가 얼마며, 그것을 다시 설명해야할 시간이 얼마며, 다방면에서 그 고쳐야 할 것이 얼마인가? 이것은 굉장한 영향을 미친다. 전통 도량형이 실제 사용되어 왔던 그 문학작품, 역사, 문화 등의 용어를 우리 후세가 배우고 이해하려면
저 달이 늘 와서 나의 창을 지켜주니 밝은 빛을 비출 때는 등불을 껐습니다 행여 달이 여러분 책상을 비추거든 내 마음 달빛인줄을 알아 반겨 주시게 此月常來守我窓 有時淸影廢油缸 若逢月往諸公案 知我心如此月光 식산 이만부 선생은 일생동안 교유했던 제자와 우인들에게 이시를 남기고 세상을 뜨셨다. 식산은 그가 죽을 날을 미리 알았던 모양이다. 조선 성리학의 거장답게 죽음에 초연했고, 뛰어난 예술가답게 아름다운 임종시를 남겼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임종시라고 감히 이를만하다. #임종시 #식산 #이만부 #운명시 #조선 #신두환 #한자문화콘텐츠학
화마에 소실된 남대문(南大門)을 애도한다!! 유세차! 무자년 정월 초승, 귀신과 사람이 사모하고 하늘과 땅이 감동하던 숭례문이 불탔다. 아! 동방예의지국이 차마 보지 못하고, 차마 듣지 못하고, 차마 말하지 못하고, 차마 움직이지 못할 비례와 무례의 나라로 변하더니만! 반만년 동방의 유구한 역사의 땅, 군자의 나라가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할 소인배의 나라로 전락하더니만! 이 땅에 예의가 사라지자 숭례문에 화마가 덮쳤다. 이 무슨 변고인가? 민족의 정통성이 흔들리자 하늘이 경고를 하는 것인가? 차마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서슴없이 행하는, 도저히 용납 못 할 현 정부 때문인가? 서울 장안에 향락과 퇴폐풍조가 만연하자 분노를 한 것인가? 교회의 십자가가 도심에 넘쳐나자 삐치신 것인가? 아니면 민족문화를 올바로 계승하지 못하고 외면하는 이 국민들을 깨우치려 함인가? 아! 이 무슨 청천벽력인가. 프랑스에 개선문이 있다면 대한민국에는 숭례문이 있다. 미국에 자유의 여신상이 있다면 한국에는 숭례문
언제부턴가 누군가에 의해 남대문은 일제강압기에 우리 민족문화를 비하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용어라는 말이 떠돌기 시작했다. 서울의 사대문 중에도 오직 현판이 세로로 세워져 예를 강조하던 숭례문은 건축당시부터 남대문으로 불리기 시작하여 최근까지 사용되어온 우리 고유의 명칭이었다. 남대문이란 용어는 우리 조상들과 함께 호흡했고 우리고전에 한양과 더불어 정감 있게 사용 되어온 살가운 고유명사였다. 이 땅의 어설픈 지식인들은 마치 남대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 안 되는 것처럼 떠벌이고 다녔다. 남대문이란 용어는 이렇게 수난을 당하고 있었다. 어쩌면 남대문은 이런 사실에 항거나 하듯 자폭한 것은 아닐까? 여기에 부화뇌동하는 분들은 잘 들어보라! “남대문”이란 용어는 조선왕조실록에만 하더라도 198번이나 사용되고 있었다. 특히 1396년 태조 5년 병자(1396, 홍무 29) 9월 24일(기묘)조에 다음과 같은 ‘남대문’에 대한 기록이 있다. “성 쌓는 역사를 마치고 정부(丁夫)들을 돌려보냈다. 봄
인수위의 영어교육정책 무엇이 문제인가? THERE IS NO ROYAL ROAD TO LEARNING! (학문엔 왕도가 없다!) 따라서 영어에도 왕도는 없다. 인수위원회의 영어교육정책 발표로 대한민국 전 국토가 야단법석이다. 인수위가 애써 수립한 영어교육정책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로드맵을 제시한 것만을 가지고 보면 좀 황당해 보인다. 영어엔 문외한이지만 전직 중․고등학교 교사였던 한 사람으로서 보기엔 솔직히 시중의 한 영어학원이 학생들을 유치할 목적으로 생활영어강좌를 홍보하는 프로그램 정도로 인식되는 감을 금할 수가 없다. 이와 같은 영어교육 정책을 가지고 인수위원회가 마치 새롭고 획기적인 무슨 영어교육의 왕도를 발견한 것처럼 홍보하는 것은 좀 무모해 보인다. 이것을 인정받기 위해 홍보하는 인수위원회의 몸부림은 어딘가 2퍼센트 부족해 보인다. 특히, 텔레비전에 방영된 공청회에서 인수위원장이 직접 참여한 토론과정은 천박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 중에 찬양 일색의 몇몇
중국의 명나라 말기와 청나라 초기에 살았던 유명한 문예비평가, 김성탄이란 사람은 인생에서 통쾌한 일 33가지를 모아서 「불역쾌재삼십삼칙(不亦快哉三十三則)」이란 글을 써 놓았다. 논어 「학이學而」편 첫 구절에서 공자는 ‘不亦樂乎(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를 외치면서 유쾌한 일을 나열한 적이 있다. 이것을 패러디한 “또한 통쾌하지 아니한가?”라는 강조 화법을 통하여 통쾌한 일에 대하여 33조목을 기록해 놓았다. 모두 재미있는 내용이다. 그 내용을 일일이 모두 열거 할 수는 없지만 그 중에 두 개만 선택해서 우리 정치 현실에 비유해서 스토리텔링을 전개하려고 한다. 첫 번째 통쾌한 일. “ 7월의 어느 무더운 날, 바람은 한 점도 불지 않고, 구름은 한 점도 보이지 않는다. 앞 정원이나 뒤뜰도 불덩이 같다. 날던 새도 그림자를 감췄고, 온몸에서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점심을 먹으려 해도 너무 더운 탓에 젓가락은 들 마음조차 들지 않는다. 그래서 참다못해 돗자리를 가져다 마당에 깔고 그 위
이제는 민족문화를 돌아보자! 안동대 한문학과 교수 신두환. 한국 민주주의 60년! 그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면서 무엇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감이 든다. 빈부격차와 지나친 양극화가 그것이다. 이 역사의 길목에 서서 가야할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한국의 민주주의를 보면서 눈을 감고 싶다. 연암 박지원은 창애 유한준이라는 자에게 답장을 썼다. <답창애>라는 이 글 속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하루는 화담(花潭) 서경덕 선생이 외출하였다가 길을 잃고 우는 자를 길에서 만났습니다. “너는 어째서 울고 있느냐?" "저는 다섯 살 때부터 눈이 멀기 시작하여, 이제 20년이 흘렀습니다. 오늘아침에 밖에 나와서 걷고 있는데 갑자기 눈에 천지만물이 환하게 보였습니다. 너무나 기뻐서 이것저것 정신없이 구경하다가 집으로 돌아가려니, 논두렁 밭두렁 갈림길은 너무 많고, 집집마다 문은 똑같아서 어느 집이 우리 집인지 분간이 되지 않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고 울고 있습니다." 이 사람
서해교전과 비운의 영웅들. 안동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 시인 아 어찌된 일인가? 엊그제 북한이 또다시 서해상에서 미사일을 발사했다. 더더욱 북한은 북방한계선(NLL)은 주체가 없는 유령선이라고 주장하고 남한의 관계 인사들에게 전쟁을 좋아하는 미치광이라고 망발을 쏟아내고 있다. 또 남한에게 개성공단과 북핵문제의 연계에 대해 사과요구를 하고 있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개성공단에서 남한 관계자들을 추방했으며 남북한 관계의 통로를 모두 패쇠하겠다고 협박한다. 그 동안 수많은 재물과 돈을 쏟아 부으며 남북을 오갔던 기업가 정치인들은 햇빛정책이 이렇게 힘이 없는 정책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일까? 도대체 북한은 우리 남한을 어떻게 보는 것인가? 이것은 중대한 국방의 문제이다. 이 시점에서 지난 정부의 햇빛정책의 대북관은 도저히 이해 할 수도 수긍할 수도 없다. 그리고 이것을 동조하는 사람도 이해 할 수 없다. 국민들은 북한을 믿지 아니하는데 오직 문민정부만이 그리고 이를 동조하는 사람들만이 온갖 굴
청계천과 수표교 수표교는 한자로 水標橋 조선 세종 때 청계천에 놓여 졌던 다리이다. 지금은 장충단 공원에서 동국대 사이에 거치되어 있다. 수표교는 말 그대로 물의 표시를 잰다는 뜻이다. 조선시대 수표교는 치산치수의 근간으로 요즈음 한강의 다리에 눈금자를 그어 놓은 시초이기도 하다. 조선 세종 때 건설한 다리로 어느 눈금까지 오면 어느 어느 동네가 물에 잠기고, 어느 눈금까지 오면 양화나루의 주민들을 대피시키고 어느 눈금까지 오면 마포나루 주민들을 대피시키고 어느 표시까지 강물이 불어나면 어느 동네가 잠기는지 세종은 모두 알고 있었다. 다리 근처에 준천사(濬川司)란 관청을 두어 물의 양을 판단하여 일일이 한성판윤에게 에게 일일이 보고 하여 홍수에 대비하였다고 한다. 한성판윤이면 오늘날 서울시장이다. 최근의 홍수피해를 보면서 지방 관리들의 치산치수가 다시 말해서 홍수에 대한 대비책이 조선시대만 못함을 실감한다. 그때에 비해서 여러 가지 첨단 장비가 발달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애민정신은 하
선거와 봄. 껍데기는 가라. 신두환 , 안동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시인 대한민국의 봄이여 제발 선거와 함께 오지마라! 진달래 꽃봉오리 막 터질 때 이때는 숭고한 때, 순수한 이야기만 남고 야비한 헛소문은 가라. 산수유 노랗게 피고 남녘의 꽃소식 봄바람에 실려 올 때 아름다운 꽃만 이야기 하고 제발 부패할 대로 부패한 온갖 선거이야기는 안했으면 좋으련만. 저 순박하고 고결해 보이는 목련화 앞에서 선거도 저처럼 순수해야 하련만 온갖 권모술수가 판을 치고 그 듣지 않아도 될 온갖 추한이야기가 다 들려온다. 담 너머 영춘화 한들한들 봄바람에 흔들릴 때, 벽보에 붙은 인물 사진 어쩌면 하나같이 다 잘났건만 봄꽃만큼 순수해보이지 않을까?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한적한 하늘가에 버들은 늘어지려 하는데 큼지막한 이름 석 자 플래카드 펄럭이는 꼴, 온 봄을 다 버렸네. 향기로운 꽃지짐 봄나물 안주에 조용히 봄을 느껴보려니, 어느 순간 들이닥친 왈패들의 선거이야기에 만정이 다 떨어진다. 대한민국의 봄이여
어머니의 혼자 치는 화투. 신두환 안동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시인. 조선시대 《경국대전(經國大典)》에 “개가(改嫁)한 여자의 자손은 정직(正職)에는 서용(敍用)하지 말라.”고 하는 법이 있었다. 예전에 어떤 벼슬아치 형제가 장차 이 문제를 가지고 남의 청렴한 벼슬길 막으려 하면서 그 어머니 앞에서 이를 의논하자, “그 사람에게 무슨 허물이 있기에 이를 막으려 하느냐?” “그 윗대에 과부된 이가 있었는데 그에 대한 바깥의 논의가 자못 시끄럽기 때문입니다.” “그 일은 규방의 일인데 어떻게 알았단 말이냐?” “풍문(風聞)이 그렇습니다.” “풍문이란 소리는 있으되 형체가 없다. 눈으로 보자 해도 보이는 것이 없고, 손으로 잡아 봐도 잡히는 것이 없으며, 허공에서 일어나서 능히 풍문으로 만물을 들뜨게 하는 것이다. 어찌하여 무형(無形)의 일을 가지고 들뜬 풍문 가운데서 사람을 논하려 하느냐? 더구나 너희는 과부의 자식이다. 과부의 자식이 오히려 과부를 논할 수 있단 말이냐? 앉거라.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