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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성리학은 병폐요인이 아니라 하나의 미학이었다.

 조선의 성리학은 병폐요인이 아니라 하나의 미학이었다.

조선성종 때부터 대두되기 시작하던 훈구대신들과 신흥 사림들의 대립은 연산군과 중종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신흥 사림들의 득세로 이어졌다. 고려말기에 안향으로부터 주자학이 전래된 이래로 꾸준히 발전되어오던 성리학은 조선 중기를 거치면서 새로운 사상의 국면을 맞는다.

이른바 사화로 불리는 한바탕 정쟁은 성리학을 조선 도학의 새로운 이념으로 고착화 시키고 있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하늘을 나는 새 한 마리, 동네를 돌아다니는 개 한 마리, 어느 것 하나 성리학적 형상사유를 벗어나서 일상이 존재하기란 쉽지 않았다.

사림파의 득세로 이루어진 새로운 공간에 역동적인 성리정신의 탄생은 개혁과 창조의 충동을 모든 면에서 제공해 주었다. 이러한 상승의 분위기는 민족문화의 변화를 요구하고 방향을 정해주었으며, 하나의 새로운 사조를 탄생하게 했다.

도남 조윤제 선생은 조선 중종에서 선조 임진년에 이르는 약 90년간을 두고 이 시대의 작가 중에는 사화로 어지러워진 세상을 벗어나 자연의 진경에 몰...

# 성리학 # 조선도학 # 조선의 # 한자문화콘텐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