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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꿈의 이야기 : 마일즈 데이비스, Générique

* 이 글은 마일즈 데이비스의 Ascenseur Pour L'Echafaud과 에 대한 글 입니다. 오래 전 모든 대지가 하늘로 솟아 올랐다. 빛이 가파른 절벽에 가렸고, 대지에 점점이 박힌 거대한 구멍으로 빨려들어갔다. 낡은 우주선 하나가 추락했다. 꼬리를 하늘을 향한 채 거꾸로 처박혔다. 거대한 손이 망설임 없이 공중을 가로질러 선미를 잡아 채서는 절벽에 매달아 놓은 것 같았다. 그런 면에서는 완벽한 추락이었다. 기체의 미익에서 시작되어 주익의 상단을 지나 기수까지 이어진 라인이 여전히 베일듯 날카로웠다 문은 애초에 한번도 열린 적이 없던 것 처럼. 모두 굳게 닫혀 있었다. 추락한 기체가 있던 푸른 절벽에 검은 색으로 시가 적혀 있었다. 죽음의 고통도 생존의 치열함도 아닌, 어제의 꿈에 대한 건조한 시였다. 꿈이 사람들에게 담긴다. 이내 여기 저기서 새고, 흘러내린다. 긴 선으로 이어지지 않는 음악이 있다. 예상하지 않은 곳에서 멈추고, 어딘가에서 다시 시작한다. 듣지 않은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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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젠틀한 것들 : Night Train

* 이 글은 오스카 피터슨 트리오의 Night Train 에 관한 것 입니다. 명성을 들은 지 오래 되었다. 믿기 어려울 정도로 먹음직스럽게 구워준다고 했다. 크림처럼 부드럽고 고기처럼 탄력있다고 했다. 오랫동안 애썼지만, 번번이 사소한 이유로 경험할 기회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거짓말 처럼 그것이 내 손에 들어왔다. 매끈하고 광택이 있는 두개의 손잡이가 달린 커다란 탄환 같은 모습이었다. 거대한 늑대인간을 향해, 거대한 총에서 발사되는, 거대한 은색 탄환. 스텐레스 스틸로 만들어진 반짝이는 바디, 길지 않은 검은색 전원 케이블의 미니멀한 외모, Radiant Shade Control 조절기 하나의 오만함. 원하는 만큼의 굽기로 조절기 노브를 움직이면 자동으로 전원이 켜진다. 그리곤 우아한 포즈로 조용히 구운 빵을 밀어올린다. 초 여름의 저녁 노을색처럼 살구색이 살짝 곁들여진 오렌지 색이다. 내 머리 대신 바꿔 끼워 넣고 싶을 정도다. 음악에서도 비슷한 기분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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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행 슬로우 보트 : Sonny Rollins와 MJQ

* 이 글은 소니 롤린스와 모던재즈쿼르텟의 Sonny Rollins with the Modern Jazz Quartet 에 대한 글입니다. 어쩌다 소니 롤린스가 MJQ와 같이 연주한 거지? 소니 롤린스와 Modern Jazz Quartet 모두를 아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떠올릴 만한 질문이다. 프레스티지(Prestige Records)의 기획이었고, 아직은 젊은 재즈가 팽창하며 서로 다른 것들이 마구 충돌하던 시기였다. 이후에 끼어든 아트 블래키를 보게 되면, 이 연주는 일종의 소동극처럼 보이기도 한다. 모이기 힘든 전혀 다른 성향의 전설적인 아티스트들이 엉성한 기획으로 모여, 자기 하고 싶은 걸 하다가 예기치 않은 걸작을 만들어낸 역사적인 장면이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중 한 곡만 골라 내도 시선이 바뀔 수 있다 차분히 스며들 공간이 만들어진다. On a Slow Boat to China. 만남은 때론 돌이킬 수 없는 흔적을 남긴다. 마일즈 데이비스와 존 콜트레인, 그리고 빌 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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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로 쌓아 올린 기억 : Dominique Fils-Aimé, Nameless

* 이 글은 도미니크 피스-에메 Dominique Fils-Aimé의 2018년 정규 앨범 Nameless에 대한 글입니다. 그녀는 이 앨범에서 자신의 감정을 목소리에 제대로 실어 전달한다. 목소리를 쌓고 연결해서 마치 밴드처럼 연주한다. 필요한 최소의 악기만 선택한다. 절제되고, 본질만 남겨 반복을 통한 증폭된 효과를 노리는 미니멀한 앨범이다. 그녀는 목소리는 리듬이고, 감정의 진폭이 큰 감정이기도 하다. 때론 새벽녘 거리처럼 흐린 배경처럼 걸려 있다. 그녀의 앨범은 Strange Fruit 을 첫 트랙으로 시작한다. 개인적인 고백에 머물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뒤이은 자작곡에서 그녀의 솔직한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자유로워질 권리가 있고 (2번 트랙 Birds), 무의식과 의식의 모호한 경계 속에서 자신을 성찰하고 (4번 트랙 Sleepy), 이름 없는 무명의 Afro American의 기억을 배치하고, 쌓아 올린다 (5번 트랙 Nameless). 그리고 과거와 현재가 무관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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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음악 내려받기 : 일본 재즈, Msabumi Kikuchi

"음악은 이제 완전히 변했어요. 이 곳을 벗어나 나는 진짜 세상 속으로 나갈겁니다" 영화 A song is Born 에서 프리스비 교수가 던진 말이다. 자신 만의 음악을 막 거머쥔 신생 국가 앞에서 재즈는 아직 스스로를 설명해야 했다. 2차 대전이 끝나고 미국이 패권국으로 부상하며, 의심어린 시선 앞에 내놓은 것은 음악이었다. 재즈다. 아티스트들은 부지런히 세계를 돌며 연주하고 교류했다. 계급적이고 인종적인 경계의 음악이 아이덴티티가 되었다. 일본에서 재즈는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패전 직후, 미국의 음악을 받아들이기가 용이해지자, 재즈는 일본에서 젊음, 저항 그리고 자유를 의미하게 되었다. 6,70년대를 지나 80년대 퓨전재즈에서 정점을 찍었다. 이제는 대중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무대에서 내려와, 일본 도시문화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잡았다. 후쿠이 료가 당시의 재즈신을 대표한다고 말하긴 어렵다. 지금의 플랫폼을 소비하는 우리의 모습을 반영한다고 하면 모를까. Msabu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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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리 달리기 : 무라카미 하루키와 에롤 가너 사이에서

"타인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그리고 그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의 삶을 엿보면 엿볼수록 우리는 어떠한 무력감에 사로잡히고 만다. 앙금이야말로 그 무력감을 가리킨다. 우리는 어디에도 갈 수 없다는 것이 이 무력감의 본질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회전목마의 데드히트" 서문 중에서 전화가 시작된다. 원치 않는 구토가 동반한다. 처음엔 '그냥 너무 많이 먹은 거야' 하는 식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어릴 적 TV에서 본 마술처럼 입을 벌리면, 캐나다 국기가 에티오피아 국기를 당겨 오고, 에티오피아 국기가 코트디부아르 국기를 꺼내 온다. 곧 먹지 않은 것까지 뱉어낸다. 온 몸을 쥐어짜낸 후에는 경련과 통증이 몸 안에서 메아리 친다. 아무도 없는 결승선으로 내달린다.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도는 회전목마 같은 자본주의에 앉아 거리의 풍경을 지나치고, 낡은 바람 소리에 귀기울인다. 전화가 그치자, 구토가 멈췄다. 과거에 저지른 잘못을 뉘우쳐서도, 생활 습관을 바꿔서도 아니다. 치밀하게 하나씩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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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젊음 : 제리 멀리건의 밤

한번도 글 쓰기를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았다. 글 쓰기의 고통은 사고의 지평에 존재하지 않았다. 어렴풋이 그런것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곤 있었다. 단지 글을 쓰면, 덩어리 하나가 소리를 내며 내 몸 밖으로 빠져 나가는 기분이 든다. 나는 남길 것과 버릴 것의 차이를 모르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잡아채는 재능도 없다. 제리 멀리건은 극심한 생활고, 약물 과다와 정신적인 좌절의 시기를 겪으며 1996년에 6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에게서 영원한 청춘을 얘기한다. 나는 가끔 그런 이유가 궁금해서, 글을 쓴다. 그의 음악은 한 발짝 뒤에 서 있는 기분이 든다. 힘 없이 하루를 마감하는 무해한 사람 같다. 졸린 듯한 시선으로 가만히 도시의 저녁 불빛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 같다. 물러선 만큼 생긴 거리 덕분에 오래 듣는다. 그의 음악은 말이 적고, 침묵은 믿을 만하다. 제리 멀리건, Night Lights 2025년 8월에 유니버설 뮤직에서 출시된 Night Lights 버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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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계절의 맞은편 : Autumn in New York, Diana Krall

Diana Krall, This Dream of You (2024, 유니버설뮤직) * Diana Krall의 앨범에 수록된 재즈 스탠다드 Autumn in New York의 개인적인 가사 독해 입니다. Autumn in New York Why does it seem so inviting? Autumn in New York It spells the thrill of first-nighting Glittering crowds and shimmering clouds in canyons of steel They're making me feel, I'm home 뉴욕의 가을은 왜 그렇게도 사람들을 끌어당길까? 뉴욕의 가을은 첫날 밤의 떨림을 말해주지 회색 도시의 화려한 사람들과 일렁이는 구름이 고향에 온 것처럼 느끼게 해 It's autumn in New York that brings the promise of new love Autumn in New York is often ming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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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누르기 : 야마하 DSP-3000과 빌 에반스

부딪혀 돌아오는 소리(early reflection)가 공간을 정의하고, 무대를 만든다. 소리가 지연되는 시간이 사람들로 하여금 현장에 있는 듯 착각하게 한다. 칩으로 소리를 자연스럽게 만들고, 실제감을 더한다. 포멀한 옷을 챙겨 입고 차를 몰아 오페라 하우스에 가거나, 담배 냄새와 싸우며 재즈 바에서 공연 시간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야마하 DSP-3000 1987년 야마하의 'DSP-3000'이 등장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 신호의 디지털 프로세싱. 512kbit ROM과 256kbit D-RAM 18개. 메인 신호와 프레즌스 신호용 DAC. 4비트 디더(dither). 음장연산용 LSI. 3가지 샘플링. 20개의 음장 효과. 사람들은, 기술보다 가격(28만엔)에 더 놀란 것 같았다. 나는 리어를 세팅할 때, 시장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저렴한 선을 구했다. 고음이 더 약해질 것이고, 잡음에는 취약할 것이다. 나서지도 않고, 존재감도 없어지길 기대했다. 빌 에반스, Every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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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것의 소리를 선택하는 것 : 후쿠이 료, 1977

익숙한 세계가 조용히 사라지는 순간이 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게 되고, 힘껏 견디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 매일은 지겹도록 다른데도, 늘 선택은 반복된다. 돌이킬 수 없는 순간에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건 왜일까. 사람의 마음은 우물처럼 깊고 어두울지도 모른다. 껍질 안에는 아무 것도 없을지도 모른다. 옛 일본어에서 하늘과 비는 같은 발음(うみ)이었다고 들었다. 내린 비가 바다로 흐르고, 증발한 물이 태연히 하늘에 닿는다. 1977년의 라이브(Live at Vidro)에서 후쿠이 료는 이전보다 조금 더 스윙하고, 조금 더 뒤로 물러나 대화한다. 후쿠이 료, Live at Vidro '77 여전히 판단할 수 있다. 플랫폼이 무해한 타인으로 세워둔 그를 대신해 더 나은 아티스트를 선택하거나, 진짜 그에게 다가서거나. 나는 이번에는 후자를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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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먼저 아는 것 : 빌 에반스, 완성되지 않은 시간

'빌 에반스는 스콧 라파로 이후 자아의 상대화 외에 새로운 지평을 제시하지 못했다' 라고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했다 고 나는 기억한다. 기억과 이해의 오류가 있을 수 있다. '자아의 상대화의 보다 나은 무언가'가 없었을 수도 있고, 그 밖에 더이상 다른 것이 없었다고 했을 수도 있다. 앞은 개선, 뒤는 혁신. 나는 오래도록 후자로 이해하고 있다. 스콧 라파로가 마일즈 데이비스를 떠나 빌 에반스의 트리오에 합류했을 때 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그의 이른 죽음을 알고 있어 드는 부당한 의문이다. 스콧 라파로와 함께한 빌 에반스 트리오의 앨범은 네 장이다. 그 중에 하나를 꼽아야 한다면, Sunday at the Village Vanguard. 그 중에서도 Gloria's Step. 여기서 그들은 각자가 아니라 하나의 유기체 처럼 움직인다. 그의 이른 죽음과 상관없는 선택이다. 빌 에반스 Sunday at the Village Vanguard 2023 MQA & UHQCD 유니버설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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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색 블루 : 마일즈 데이비스, Blue in Green

지난 여름, 매일 새벽 수영장에 갔다. 그 곳에는 이제는 없는 상점의 간판들이 있다. 건물 벽에는 누런 테잎이 늘어져 흔들린다. 주차장으로 몸을 기울여 내려가다 보면, 벽에 긁힌 자국이 나를 좇고, 나선형의 길고 구부정한 그림자가 뒤따른다. 길은 끝날 것 같지 않고, 앞서 누구라도 붙잡고 묻고 싶었다. 매일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은 채로 늦었다. 마일즈 데이비스, Kind of Blue 2007 (SACD Hybrid, 소니 뮤직) 마일즈 데이비스에는 나와 닮은 공기가 있다. 새벽마다 그의 음악을 들으며, 더 나쁜 건 없을거라고 말했다. 그 말로 바뀐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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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대가 끝나는 자리 : 벤 웹스터

클래식 청음실에 사람들이 모였다. 교외의 창고를 개조한 곳이었는데, 벽이 두껍고 여름에도 한기가 느껴졌다. 고개를 들면 높은 천정에 지붕을 지탱하는 까만 나무 골조가 보였다. 이전에는 양조장 겸 위스키 저장소로도 사용된 적도 있어, 구석에는 커다란 배럴이 아직 남아 있었다. 흰 머리와 주름진 얼굴의 나이가 든 사람들이 많았다. 다양한 연령이 모였다고 하기엔 어려웠다. 모임의 주관을 하던 사람이 사람들의 비밀이라도 알려주듯이 속삭이듯 내게 말했다. 이들은 클래식을 들으며 여유로운 삶을 보내리라 다짐하며 경제 성장기에 자신을 희생하며 일한 사람들이다. 젊은 날의 다짐을 기억하며 여기 모인 것이다. Sonata for Violin and Guitar No.1 in A major Op.2 그날의 테마인 파가니니의 첫 곡으로는 무난한 시작이었다. Sonata No.6 그리고 Sonata Concertata in A major이 뒤를 이었다. 이날은 Violin Concerto No.2 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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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자꾸 걸린다 : 쳇 베이커, But Not for Me

* 쳇 베이커의 앨범 Sings (1954) 에 대한 글입니다. 오르막길 한 쪽은 늘 그림자에 덮여 있었다. 하루에 몇 번이나 지나치면서도, 고개를 들어 안도의 숨도 쉬어 본 적 없다. 소리도 없고, 색도 없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푸르고, 오렌지 색을 띤, 허연 것들이 뒤섞인 소동 같은 것도 몇 차례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색이 바래고, 소동은 짤막한 사건들로 부서지고 작아졌다. 이젠 전체의 모습은 알아 볼 수 없이 흐리고 물기 없이 버석하다. 어떤 기억은 생각의 통로에 버려진다. 전혀 다른 맥락에서 무언가가 자꾸 걸린다면 그것이다. 어떤 음악은 머릿 속을 밀고 헤집어 빈 공간을 만든다. 그 안으로 예기치 않은 무언가가 흘러든다. 일부는 예전의 모습을 갖출 때가 있다. 어설프게 세워져 있고, 부딪힐 때마다 가칠가칠하다. 쳇 베이커 Sings 1954 (UHQCD, 2024, 유니버설 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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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의 존 레논 : Rubber Soul의 시선

* 이 글은 존 레논의 사후 앨범 Collection, 그리고 비틀즈의 Rubber Soul에 대해 쓴 것 입니다. 맨발이었다. 친구 소개로 산 LP의 뒷면에 그는 까만 긴팔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소파 위에서 팔짱을 낀 채로 가부좌를 하고 앉아 있다. 죽음을 전제하면 보이는 게 다르다. 부재가 남긴 딱 그 공간만큼, 기억이나 감정이 흘러들어가 자리잡는다. 낮은 채도, 차분한 표정, 계획된 몸짓, 의도한 배치를 발견한다. 그는 최고의 락 밴드 스타였고, 혁명가였다. 자기 절제와 금욕, 수양으로 이토록 소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심지어 자기의 죽음을 이미 알고 있는 것 같다. 죽음의 부재가 남긴 공간에 흘러들어간 기억의 다른 빈 곳에 공간이 열린다. 비틀즈의 Rubber Soul에서 그는 해탈하지도 욕망을 자제하지도 않는다. (Run for Your Life, Drive My Car...) 그는 의례의 그 차림으로 가벼운 체념과 냉소로 세상을 관찰한다. Norwegian 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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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 껍질 벗기기 : Time Out, 다른 박자의 리듬

양파 껍질을 벗기다 보면, 가끔은 내가 이 일을 영원히 반복하고 있던 건 아닐까 하는 착각도 든다. 알 수 없는 과거에서 기억 없는 미래까지. 양파 껍질을 벗기면서 얻을 수 있는 건, 누런 껍질의 관능적 이미지 뿐이다. 내가 처음으로 재즈를 의식하며 들었던 순간은 명확하다. 하늘은 뺄 것 없이 파랬고, 햇살은 더할 것 없이 뜨거웠다. 파란 휴대용 CD 플레이어에 연결된 이어폰이 그릴 수 있는 가장 큰 원 안에서 반복해서 그의 앨범을 들었다. 이어폰 너머로 흘러나온 음악의 리듬은 단정했지만 동시에 조금 삐딱했고,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인생이란 다섯 박자든 아홉 박자든 질러 보는 거다. 너만의 리듬과 박자로 어떻게든 될 것이다. 많은 재즈 아티스트들은 전후에 중부 유럽과 중동을 포함한 전세계를 돌며 공연을 했다. 태어난 지 얼마 안되는 국가가, 이제서야 가까스로 손에 쥔 자신만의 음악으로, 전후의 세계를 향해 신생 국가의 헤게모니를 전시했다. 데이브 브루벡의 Time Out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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