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봇대
2011. 6. 10. 서림동 Nikon FM2 Kodak Portra 160 NC 2012. 11. 6. Nikon D80 방배동 2013. 5. 13. 동두천 생연동 NIkon D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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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6. 10. 서림동 Nikon FM2 Kodak Portra 160 NC 2012. 11. 6. Nikon D80 방배동 2013. 5. 13. 동두천 생연동 NIkon D80
2012. 2. 7. Nikon D80 서림동 2012. 3. 13. Nikon D80 방배동 비어샵 2012. 4. 03. Nikon D80 방배동 2012. 4. 7. Nikon D80 신림역
2012. 3. 2. Nikon D80 신림역 2012. 12. 22. Nikon D80 방배역 2013. 1. 1. Nikon D80 신림역 2013. 1. 9. Nikon D80 신대방삼거리역 2013. 1. 19. Nikon D80 신림역 2013. 2. 3. Nikon D80 신림사거리 2013. 2. 5. Nikon D80 신림역
2012. 4. 3. Nikon D80 서림동 2012. 9. 4. Nikon D80 방배동 2012. 9. 8. Nikon D80 방배동 2012. 10. 27. Nikon D80 서림동
2012. 4. 18. Nikon D80 당산동 2012. 6. 6. Nikon D80 흑석동 해피 2013. 3. 16. Nikon D80 방배동 꼬마
2012. 6. 6. Nikon D80 서림동 2012. 5. 3. Nikon D80 서림동 2012. 10. 14. Nikon D80 서림동 2012. 10. 27. Nikon D80 서림동
2012. 10. 23. Nikon D80 서림동 2012. 10. 27. Nikon D80 신원동 2012. 12. 26. Nikon D80 서림동
2012. 11. 4. Nikon D80 서림동 2012. 11. 6. Nikon D80 서림동 2012 .11. 10. Nikon D80 서울N타워
2012. 11. 10. Nikon D80 서림동 2013. 1. 22. Nikon D80 서림동 2013. 2. 16. Nikon D80 서림동
2012. 11. 24. Nikon D80 서림동 & 신림사거리 2012. 11. 25. Nikon D80 서림동 2012. 11. 26. Nikon D80 서림동 2012. 3. 2. Nikon D80 신림역
2012. 12. 5. Nikon D80 삼성산 2012. 12. 13. Nikon D80 삼성산 2012. 12. 23. Nikon D80 삼성산 2012. 12. 26. Nikon D80 삼성산 2013. 1. 16. Nikon D80 삼성산 2013. 1. 12. Nikon D80 삼성산 2013. 1. 24. Nikon D80 삼성산 2013. 1. 28. Nikon D80 삼성산 2013. 3. 1. Nikon D80 삼성산
2012. 12. 5. Nikon D80 서림동, 서원동 2012. 12. 6. Nikon D80 방배동 2012. 12. 7. Nikon D80 방배동 2013. 2. 3. Nikon D80 신림사거리
2011. 3. 9. 충정로3가 가배나루 Nikon FM2 Kodak T-max 100 2014. 2. 2. 익선동 NIkon D80 2014. 2. 9. 충정로3가 가배나루 NIkon D80 2014. 3. 1.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NIkon D80
1. 웃대. 서촌과 세종마을을 지나서... 언제부터 청운효자동 일대를 서촌이라 부르기 시작했는지 잘 모르겠다. 적어도 도성 안 서울에 매료되었던 오륙 년 전에는 나 역시 으레 서촌이라 불렀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 나는 상촌이라 부르려 한다. 서촌은 중구와 정동에게 양보하고, 북촌과 공유해야할 상촌이란 이름을 오롯이 이곳에 넘겨주려고 한다. 깊숙한 기억을 끄집어 내자면 1995년으로 돌아간다. 이미 북촌에 관한 단상에서 서술했듯이, 청와대 앞길을 걸어보자던 촌동(村童)이 느껴야 했을 위압감은 엄청난 것이었다. 효자동에서 창성동, 통의동을 거쳐 적선동에 이르는 경복궁 돌담길의 삼엄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경복궁 안에는 30경비단까지 주둔하고 있었던 시절이라, 효자로의 엄혹함은 성하(盛夏)의 오후에도 소름을 돋게 만들었다. 가회동과 삼청동 일대가 북촌이라 불리지도 않던 시절인지라, 이때까지만 해도 서촌이란 별칭이 있었을 리가 없다. 경복궁 북문인 신무문에서 전개훈련중인 3
1. 독일 주둔 외국군대 1945년 독일이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에 의해 분할 점령된 이후, 독일 전 국토에는 외국군대가 상시 주둔해 왔다. 냉전의 시작으로 독일은 서유럽의 최전선이 됐다. 지도에서 보다시피,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그리고 유고슬라비아란 완충지대를 제외하면 바르샤바조약기구에 대항한 나토군의 최전선은 서독이었다. 1951년 나토군 지위협정과 1954년 주둔협정을 통해 서독에 상시주둔하게 된 외국군대는 미국, 영국, 프랑스, 캐나다,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로 다양했다. 동독에는 소련군이 주둔했다. 출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1990년 통일 이후 독일 주둔 외국군대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동독에 주둔하던 34만의 소련군이 1994년 완전히 철수했다. 다만 나토군은 계속해서 주둔하고 있으나 그 수는 확연히 줄어들었다. 30만에 달했던 미군 역시 대규모 감축이 이뤄졌다. 2020년 현재, 미군이 34,500명, 영국군 342명, 프랑스군 562명, 네덜란드군 561
2020년 7월 29일 백악관과 미 국방부는 언론 브리핑을 실시했다. 백악관 브리핑은 트럼프 대통령이, 국방부 브리핑은 에스퍼 국방장관이 진행했다. 1. 우선 백악관 브리핑을 좀 살펴보자. Remarks by President Trump Before Marine One Departure | The White House South Lawn 9:15 A.M. EDT THE PRESIDENT: Good morning. We have a lot of things going on. As you know, we’re heading out to Texas right now. But Portland www.whitehouse.gov 텍사스로 유세를 떠나기 전에 기자간담회가 열렸고, 그 과정에서 주독미군에 대한 질문이 두 차례 이뤄졌다. 첫 번째 질문은 “독일에서 미군을 빼오면, 러시아는 어떻게 견제할 것이냐?”는 질문이었다. 이에 대해 트럼프는 대뜸 “Well, Germany is delinque
1. 일본 주둔 미군의 규모 2019년 9월말 기준 일본 주둔 미군의 수는 육군 2,626명, 해군 20,392명, 해병대 19,607명, 공군 12,602명으로 총 55,337명이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로, 2위는 독일 35,000명, 3위는 한국 25,000명, 4위는 이탈리아 13,000명, 5위가 영국 9,000명 순이다. 주일미군 주요부대와 전력전개 상황. 일본 외무성 발표 보도자료 주일미공군 전력은 제5공군의 F-35A 12기, F-15 48기, F-16 48기, 공중급유기 15기, E-3 조기경보기 2기 등이 배치되어 있다. 가끔 본토에서 F-22이나 B-2를 무력시위용으로한시적 배치가 이뤄지곤 한다. 이때 한반도를 방문하기도 한다. 북한이 몹시 싫어한다. 주일미해군 전력은 제7함대. 니미츠급 항모인 로널드 레이건호와 타이콘데로가급 이지스순양함 3척, 알레이버크급 이지스구축함 7척, 로스앤젤레스급 핵추진공격잠수함 3척이 배치되어 있다. 주일미해병대 전력은 제3해
1. 주한미군의 규모와 가치 지금까지 주한미군의 가치에 대한 연구는 권헌철이 2011년 국방대학원에서 집필한 “주한미군의 가치 추정: 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대체비용 추정”이란 논문이 거의 유일하다. 약 2만 8,500여명의 주한미군이 우리나라에 주둔해 있고, 그들이 보유한 장비 가치가 17~31조원으로 추정한다. 이 전력을 대체하기 위해서는 23~36조원이 추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다. 전시에 자동 개입되는 대북억제력의 상징인 미 증원전력의 가치는 120조원 이상으로 추정했다. 2011년도 연구라서 10년의 시차가 생겼다. 그간의 물가상승과 장비 평가액 변화를 감안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상세한 주한미군의 전력은 공개되어 있지 않지만, 밀덕들이 하나씩 조각모음을 한 결과가 위키에 올라와 있다. 주한미공군은 왠만한 국가의 공군전력보다 강하고, 주한미육군 역시 그렇다. 그나마 총원 28,500명은 꽤나 공개된 정보인데, 네덜란드군 35000명, 노르웨이군 25000명, 덴마크군 1800
박원순은 지난 7월 8일 오후 성폭력으로 피소를 당했다. 피소 직후 늦은 밤에 참모들과의 회의를 통해 사임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날인 7월 9일 휴가를 내고 출근을 하지 않은 채 집을 나섰다가 7월 10일 자정에 시신으로 발견됐다. 시신은 범죄성이 없다고 판단됐는지 사법해부가 이뤄지지 않고, 가족에게 인계되어 장례가 치러졌다. 갑작스런 휴가와 산행, 딸에게 남긴 말과 유서로 발표된 자필 문서 등으로 봤을 때, 사고사나 돌연사의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따라서 급격한 심리적 변화에 따른 자살이 사인이라고 추정해볼 수 있을 듯하다. 1. 박원순은 왜 자살했을까? 서울특별시장으로 격무에 시달려 우울증이 생겼다거나, 오랜 가정불화로 우울증이 생겼을 수도 있다. 기타 다른 원인에 따른 정신건강상의 문제가 발생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다만 자살에 이르는 정신건강상의 문제는 기본적인 전조증상이 발견되기 때문에, 가능성은 몹시 낮아 보인다. 따라서 가장 개연성이 높은 자살의 이
베네수엘라 왜 망했나? 하나. 석유산업의 기형성 때문에 망했다. 국제유가의 급격한 변화, 초중질유라는 베네수엘라 유전 상황, 채굴시설 노후화에 따른 산유량 감소가 가장 컸다. 1980년대부터 전세계를 휩쓸었던 신자유주의의 바람은 선진국들에게 무서운 칼바람이었다. 그렇다 보니 남미의 국가들은 80년대와 90년대 속절없이 쓰러지는 경제를 망연자실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엄혹한 시절을 보내다가 우고 차베스가 쿠데타를 일으킨 2000년대 초반은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던 중국이 전세계 자원을 싹쓸이 하던 시절이었다. 유가는 치솟았고, 러시아와 베네수엘라는 신났었다. 그런 호시절이 있었다. 베네수엘라는 석유에만 의존하는 경제인지라 태생부터 취약했다. 국가 전체 수출의 96%, 재정수입의 50%, GDP약 30%를 석유에 의존하고 있어, 유가 하락 시 경제 전체가 악화될 우려가 있었다. 실제로 2010년 이후 국제유가 하락에 따라 베네수엘라 경제는 급격히 악화되었다. 전세계에서 석유매장량
아르헨티나는 왜 망했나? 2018년 아르헨티나 정부는 어찌해볼 수 없게 쌓여버린 부채, 페소화의 급격한 평가절하, 경제 침체, 인플레이션과 같이 다양한 경제적 위기에 봉착했다. 마리오 마크리 정부로 하여금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된 게다. IMF가 발족 이래 최대의 구제금융을 실시했지만, 아르헨티나의 경제상황은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어쩌다 이렇게 쫄딱 망하게 됐을까? 그 원인을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 공업화 정책의 실패 아르헨티나의 수출을 견인하는 건 농업이다. 남한의 28배에 달하는 총 279만의 광활한 국토는 세계 8위에 올라 있으며, 특히나 팜파스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은 전세계를 먹여 살리고 있다. 2018년 아르헨티나 수출의 상당수는 농산품이나 그 가공품이었다. 출처: The Observatory of Economic Complexity (OEC) 아르헨티나는 중남미 3대 경제대국으로 스페인어권 남미 경제의 중심축을
브라질은 왜 망했나? 브릭스(BRICS,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공의 머릿글자를 따서 조합한 말)중의 하나로 한때 겁나게 잘나갔던 브라질이 요즘 꼴이 말이 아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차근히 살펴보자. 1. 2000년대 좌파 대통령 룰라 시대엔 잘 나갔다. 2003년 좌파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가 대통령 당선된 후, 자본주의와 타협했다. 우선 거시경제 정책은 철저하게 IMF의 처방을 따랐다. 재정지출을 줄이고 인플레이션을 막았다. 다른 한편으론 복지재정인 보우사 파밀리아(Bolsa Familia)와 포메 제루(Fome Zero)를 시작했다. 룰라의 브라질 경제는 대통령 임기 동안 잘 굴러갔다. 빈곤층 비율이 전 인구의 30% 선에서 15% 수준으로 줄었다. 교육 수준이나 중산층 비중 등 여러 사회·경제 지표가 눈에 띄게 개선됐다. 그리하여 결국 지우마 호세프가 정권을 연장할 수 있게 됐다. 한때는 국민영웅, 지금은 국민역적 룰라 다시우바(Luiz Inacio
1. 1993년 여름의 북한강의 위도, 그리고 강수지의 “아름다운 시간들” 1993년 6월 강수지의 4집 앨범 “K"가 발매됐다. 그 당시 내가 어떤 음악을 즐겨 들었는지, 전혀 기억나질 않는다. 워크맨을 처음으로 들고 다닌 게 그때쯤인지라 그랬을지도 모르겠지만, 오로지 강수지 4집만 줄기차게 들어대지 않았나 기억할 뿐이다. 그도 그럴 게, 글을 쓰려고 다시 들어본 앨범 전곡을 제법 따라 부를 수 있는 걸로 봐선 말이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게, 보라색으로 된 카세트테이프 재킷이 가사집을 겸했었는데, 그걸 다 외웠지 않나 싶다. 그땐 강수지가 어지간히도 좋았었나 보다. K 아티스트 강수지 발매일 1993.06.00. 1993년에도 여름수련회는 있었다. 강원도 춘천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때라, 북한강의 위도에 있는 해병대캠프식의 수련회를 2박 3일간 끌려갔더랬다. 쓸 데 없고, 부조리하며, 폭력적이기만 할 뿐인 수련회 따위는 그리 즐겁지 않았다. 교련시간에 무게추로 채워진 고무 M16으
2009년 국가 부도 위기 상황에서 절정에 달했던 시위에서 15살 소년이 경찰총격에 사망하고 말았다. 이듬해 추모 시위에서 군중들이 국기를 태우고 있다. Photo by Milos Bicanski/Getty Images 그리스가 망한 이유를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이게 다 유로존 때문이다"로 귀결될 수 있겠다.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브라질과 달리 "자원의 저주"같은 것도 없고, 자국 통화가 있는 것도 아닌데다, 통화정책을 동원할 방법도 없었다. 그렇다 보니, 좀 길다. 찬찬히 살펴보자. 1. 유로존 가입이 문제였다. 미국이나 영국 언론은 대부분 그리스의 유로존 가입이 문제의 시작이라고 본다. Photo by Hannelore Foerster/Getty Images 미국의 CNBC 기사에 따르면, 그리스가 유로존에 가입한 2001년 1월에 모든 문제가 시작됐다고 봤다. 들어올 자격이 없는 나라가 들어옴으로써 단일통화 시장의 폐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는 게다. 유로존 가입 조건은
나는 대한의사협회나 대한전공의협의회의 헛소리에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 그도 그럴 것이, 거의 조중동에서 경제 왜곡 기사를 쓸 때처럼, 통계를 자의적으로 모자이크하는 게 습관이라서 그렇다. 왜곡된 사실을 하나의 도그마로 설정하고 맹신도처럼 믿고 의지하는 꼬락서니를 보면, 저 인간들이 과연 지성이란 게 있는 존재인지 의심스러워진다. 의사가 아닌 의술장이들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지금부터 대한의사협회가 떠드는 헛소리를 하나씩 짚어 보겠다. 문제는 배치가 아니라 인원이다. 인원이 받쳐줘야 배치도 되는 거다. 사진출처: 한겨레 1. “국가별 기준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지만, 우리나라 인구 천 명당 활동 의사 수의 연평균 증가율은 OECD 평균 증가율 보다 3배 이상 높은 반면에 인구의 연평균 증가율은 OECD 보다 낮아, 2038년이 되면 우리나라 인구 천 명당 활동 의사 수는 OECD 평균을 넘어선다.” 하... 일단 한숨부터 쉬자. 도대체 의사란 사람들이 통계를 이따위로 읽어서야
대네수엘라는 유토피아다. 이유는 간단하다. 현실에는 결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3년전부터 대한민국의 모든 정책에 베네수엘라를 가져다 붙이는 게 유행이 됐다. 그냥 막무가내로 아무거나 막 가져다 붙인다. 답이 없다. 기본적으로 베네수엘라는 대한민국에 가져다 붙일 수가 없다. 이미 선진국인 우리나라에 그저 “자원의 저주”에서 헤어나오질 못하는 개발도상국을 비빌 수 없기 때문이다. 자비적 사관에 익숙해 “조선 종자”타령 좋아하던 사람들에게는 이런 식의 자비적 비교 행위가 매력적일 수 있겠지만, 실효는 없는 레토릭만 만들 뿐이란 게다. 1. 차베스 집권기의 베네수엘라는 행복했다. 1999년 차베스가 집권하기 전의 베네수엘라는 그야말로 참담했다. 90년대 초반 밀어닥친 세계화의 파고에 속절없이 무너진 베네수엘라의 경제상황은 바닥을 치고 있었다. 우파 정부는 국유재산을 민영화하는데 정신 없었고, 빈곤층은 늘어만 갔다. 그 덕에 쿠데타에 실패한 군부 출신 차베스란 괴물이 집권할 수 있었다.
2014년 11월 4일에 올린 포스트의 이미지가 플래시로 작업되어 크롬에서 나오지 않아 재작성했다. 1. 食怯_북촌의 첫인상 지금의 북촌으로 보자면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겠지만, 북촌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뜻밖의 두려움’이었다. 내가 처음 북촌에 발을 들인 것은 1995년 여름 고3 수험생 시절 때였다. 당시 김영삼의 민자당 정권은 여전히 공안통치의 양상을 띠고 있었다. 종로통은 말할 것도 없이, 세종로의 미대사관과 정부청사들은 완전진압복과 방패 차림의 전경들로 사뭇 복작거렸다. 강원도 촌구석과 달리, 고층빌딩 즐비한 서울 중심가는 마치 전시를 연상할 정도로 전경들이 즐비했다. 잘못한 것도 없이 공연히 식겁하게 만드는 그런 분위기였다. 그 와중에도 서울나들이 나온 김에 청와대나 가까이서 둘러보겠다며 동십자각으로 발길을 딛었다가 질겁했다. 사간동 입구에서부터 검문을 당하기 시작했고, 높은 돌담과 CCTV로 축을 이룬 송현동 미대사관 직원 숙소와 소격동 기무사/국군서울지구병원은 민통선
1. 가장 극적인 시간의 지층 서울이란 메가시티의 가장 극적인 단면을 보여주는 공간이 바로 중촌일 게다. 최근에 올라온 마천루 뒤로는 지난 세기말의 대한민국의 분부신 발전을 증명하는 듯한 고층 빌딩들이 늘어서 있고, 그 뒤편으로는 60~70년대 “도시 개발”을 통해 올라온 빌딩들이 반세기의 세월을 오롯히 담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시 그 이면으로 들어가면 1930년대 적산가옥부터 근대한옥까지 한 세기를 그대로 품고 있는 건물들이 등장한다. 이렇게까지 극적인 시간의 지층을 한 블록 단위로 보여주는 도시도 흔치 않다. 특히나 20세기 전쟁들로 불바다가 됐던 나라에서는 더욱이나 말이다. 그리하여 이곳의 지층은 옛것을 새로운 것들이 끊임없이 교체해가고 있다. 1920년의 것들을 2020년의 것들로 끊임없이 갱신하고 있다 보니, 일각에선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하고, 일각에선 안도하기도 한다. “옛것”과 “그저 낡은 것” 사이에서 가치 평가는 다툼을 계속하다 보니 어떤 곳에선 빠른 변화를,
1. 어디까지가 이슬람 세계인가? ① 근동/중동/극동 - 근동: Near East. 주로 지중해 연안의 소아시아(터키, 쿠르드지역)와 레반트지역(레바논, 시리아, 요르단, 이스라엘)을 지칭. 이집트는 그냥 따로 이집트. - 중동: Middle East. 근동을 넘어가서 메소포타미아지역(현재의 이라크)와 아라비아반도 그리고 페르시아지역(현재의 이란), 이집트지역을 포함한다. 현대에는 근동까지도 아우르는 개념. - 극동: Far East. 옛날엔 아시아 동쪽 끝에 중국이나 일본 같은 나라가 있는 줄 몰랐다. 그래서 생겨난 개념. 20세기에 처절한 전쟁을 치른 중국, 일본, 한반도 등이 있다 보니 화약고로 취급중. 인도네시아, 필리핀과 같은 곳도 먼 동쪽이지만 인도차이나 반도와 더불어 동남아시아South East Asia로 불린다. ② 아랍 세계 Arab World 아랍세계는 아라비아반도에서 시작된 개념이다. 아랍인Arab이 사는 곳이라서 아라비아Arabia이고, 이들이 쓰는 언어가 아랍
서울시가 북촌8경을 지정하고 포토스팟을 설치한 건 2008년 10월이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북촌이라 불리는 가회동과 삼청동 일원에는 이렇다 할 관광명소가 존재했던 건 아니었다. 그냥 거기 계속 있었던 도시한옥들이 웅그리고 앉아 있던 것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서울시가 꾸준히 사들인 근대한옥들이 공공한옥이란 이름으로 개방되고 있어서, 가회동과 삼청동 곳곳에 또 다른 전망을 보여주는 좋은 스팟이 참 많이 생겼다. 멀고 먼 북촌8경 여정을 벼락치고 장대비 내리는 가운데, 다시 한 번 찍고 왔다. 왠만하면 사진은 맑은 날에 찍자. 흑백사진을 찍을 게 아니라면 말이다. 1. 북촌1경: 창덕궁 전경, 창덕궁1길 원서동 고갯마루. 북촌 탐방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계동마님댁 북촌문화센터에서 계동길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나오는 사거리가 있다. 과거 최소아과가 있던 곳으로 지금은 음식점으로 바뀌었다. 그 사거리에서 동쪽으로 야트막한 고개가 있는데, 그 고갯마루에 들어서면 아
우리나라에서는 한국갤럽과 리얼미터에서 매주 여론조사를 실시해서, 대통령 국정지지도와 정당지지도를 발표하고 있다. 그 외에도 여러 여론조사 기관이 언론사와 연계해 한 달에 한 번 정도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사이트를 이용하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여론조사결과 현황 여론조사기관 등록현황 심의·조치현황 인용 공표·보도 불가현황 선거여론조사기준 여론조사결과 등록하기 휴대전화 가상번호 신청 불공정 여론조사 신고 공지사항 자료실 「선거여론조사기준」게시(2020. 1. 15. 개정) 2020-07-08 2020년도 선거여론조사 실시신고 제외대상 인터넷언론사 결정 공고 2020-01-21 2020년도 휴대전화 가상번호 비용 공고 2019-12-20 「선거여론조사기준」개정사항 안내 2019-12-10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청사 이전 안내 2019-11-21 더보기 팝업존 1 Prev ... www.nesdc.go.kr 일본이라고 우리와
철지난 포스팅이라서 최신 정보는 따로 다루겠습니다. 2021년 9월 요미우리신문 일본 차기 총리 적합도 및 지지정당 여론조사 요미우리신문은 2021년 9월 6일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1. 자민당 정치가 중 차기 총리 적합 인물 ・河... blog.naver.com 포스팅을 하고 나서 한 시간만에 아베의 퇴진 기자회견설이 일본언론을 통해 나왔네요. 아베가 퇴진 의사를 굳혔고, 오늘 저녁 회견을 통해 공식화할 것이라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28일 17시 10분. 아베 총리가 공식적으로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지병인 궤양성 대장증이 재발해서 신약을 통한 치료가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살다보니 일본 총리 사의 표명 기자회견을 라이브로 다 보고 앉았군요. 별일을 다 겪습니다. ^^:? 1. 8월 아베 내각 지지율 아베내각의 지지율을 끌어내렸던 가장 큰 요소였던 검찰 장악 이슈가 끝난 뒤에는, 코로나 이슈가 다시 발목을 잡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고 투 트래블"과 같은 삽질
9월 16일 스가 요시히데 99대 내각총리대신으로 취임. 스가 내각은 다음과 같다. 부총리 겸 재무상: 아소 다로(79)/ 아소파/ 유임 총무상: 다케다 료타(52)/ 니카이파/ 국가공안위원장에서 포스트 변경 법무상: 가미카와 요코(67)/ 기시다파/ 94,95,98,99대 법무상에 이어 103대로 재입각 외상: 모테기 도시미쓰(64)/ 다케시타파/ 유임 문부과학상: 하기우다 고이치(57)/ 호소다파/ 유임 후생노동상: 다무라 노리히사(55)/ 이시바파/ 16대 후생노동상에 이어 23대로 재입각 농상: 노가미 고타로(53)/ 호소다파/ 첫 입각 경제산업상: 가지야마 히로시(64)/ 무파벌/ 유임 국토교통상: 아카바 가즈요시(62)/ 공명당/ 유임 환경상: 고이즈미 신지로(39)/ 무당파/ 유임 방위상: 기시 노부오(61)/ 호소다파/ 첫 입각 관방장관: 가토 가쓰노부(64)/ 다케시타파/ 후생노동상에서 포스트변경 부흥상: 히라자와 가쓰에이(75)/ 니카이파/ 첫 입각 국가공안위원장:
일본 차기 총리 스가 요시히데, 자민당 총재 선거 당선 14일 치러진 자민당 양원 의원 총회에서 스가 요시히데가 총재로 선출됐다.향후 일정에 따라, 15일에는 간... blog.naver.com 1. 아베 신조 총리의 퇴진 회견 이후, 교도통신이 29일과 30일에 실시한 전국 긴급 전화여론조사에서 차기 총리에 누가 적합한지를 물었다.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이 34.3%로 1위를 차지했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14.3%, 고노 다로 방위상이 13.6%로 뒤를 이었다. 2018년 총재선거에서 당원표에서 선전했던 이시바에 대한 기대가 높게 드러난 것이다. 4위에는 고이즈미 신지로 환경상이 10.1%, 기시다 후미오 정조회장이 7.5%순이었다. 모르겠다와 무응답도 15.1%에 이르렀다. 조사방법은 자민당 의원 10명 중에서 선택하는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유선전화 528인, 휴대전화 522인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2. 자민당 총재선거는 9월 8일 고시하고 14일 양원의원총회를
0. 들어가기 앞서: 코로나19국면과 이건희컬렉션 국립박물관 등 공공미술관과 박물관이 무료 전시를 진행하는 와중에도, 국립현대미술관만큼은 계속해서 입장료를 징수해왔었다. 그러다가 2020년 상반기 코로나19국면으로 상당 기간 휴관했다가 재개관하면서, 전면 무료 입장으로 방침을 바꿨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2시간으로 한정된 관람시간으로 돈을 받기 애매해진 것이다. 어수선하던 발권창구가 사전예매를 통해 한정된 인원을 입장시키면서 꽤나 한가해졌더랬다. 코로나국면으로 사전예약자에게 발권함에 따라, 딱 해당 회차 개시 시간부터 발권하고 있다. 그래서 55분부터 행열이 만들어진다. 다소 여유로운 관람이 가능했던 이곳이 다시 북적이고 있다. 바로 이건희컬렉션때문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근대 이후 미술품들만 챙겨서 독립한 터라, 이건희컬렉션도 국립중앙박물관과 나눠서 전시를 하고 있다. 이건희컬렉션이 전시되는 1전시관. 검표구간을 통과하면 바로 연결되기 때문에 이 전시 전에는 하이라이트전을 진
9월 16일 스가 요시히데 99대 내각총리대신으로 취임. 스가 내각은 다음과 같다. 부총리 겸 재무상: 아소 다로(79)/ 아소파/ 유임 총무상: 다케다 료타(52)/ 니카이파/ 국가공안위원장에서 포스트 변경 법무상: 가미카와 요코(67)/ 기시다파/ 94,95,98,99대 법무상에 이어 103대로 재입각 외상: 모테기 도시미쓰(64)/ 다케시타파/ 유임 문부과학상: 하기우다 고이치(57)/ 호소다파/ 유임 후생노동상: 다무라 노리히사(55)/ 이시바파/ 16대 후생노동상에 이어 23대로 재입각 농상: 노가미 고타로(53)/ 호소다파/ 첫 입각 경제산업상: 가지야마 히로시(64)/ 무파벌/ 유임 국토교통상: 아카바 가즈요시(62)/ 공명당/ 유임 환경상: 고이즈미 신지로(39)/ 무당파/ 유임 방위상: 기시 노부오(61)/ 호소다파/ 첫 입각 관방장관: 가토 가쓰노부(64)/ 다케시타파/ 후생노동상에서 포스트변경 부흥상: 히라자와 가쓰에이(75)/ 니카이파/ 첫 입각 국가공안위원장:
1. 이화동 개관 조선의 수도 한양의 동쪽 백호지세를 담당하던 낙타산은 예로 부터 배나무가 지천이었다고 한다. 이 호젓산 산 아래 대갓집이 없을 리가 없었고, 배꽃 흐드러지는 절경에 정자 하나 없을 리도 없다. 이화동이란 동명은 그 배꽃동산에 지어진 정자 이화정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한때 독립운동도 했던 위대한 독재자 이승만이 해방 이후 귀국해서 잠시 기거했던 곳인 이화장도 이 동네에 있다. 1960년대 초반, 대한민국 정부는 한국전쟁 이후 난개발된 동대문 주변 산동네를 정비하기로 했다. 그에 따라 이화동에는 국민주택단지가 건설됐다. 주거 인프라를 제대로 구축한 상태에서 만들어진 단지가 아니라서, 도로연결은 엉망이었다. 하지만 그 덕에 지난 60년간 오롯하게 도시의 지층을 형성하며 온존해왔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1975년 충신동에서 바라본 낙산시범아파트. 현재 아파트는 철거되고 낙산공원이 조성중이다. 1983년 청계6가에서 바라본 동대문과 충신동, 이화동. 이대병원 옮겨가고 지금은
스가 내각 지지율 74%로 역대 3위, 보고도 믿기 힘든 일본인들의 정치 감각! 요미우리신문이 9월 21일 스가 내각 지지율을 조사한 세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해산 총선거를 실시하고 새로 구성된 내각도 아닌데, 1차 아베내각 출범때보다도 지지도가 높게 나왔다. 심지어 역대 3위란다. 정말이지 일본인들의 정치감각은 내 상식선에선 이해 불가능이다. 지민당의 정당지지율은 47%까지 치솟았다. 합당을 통해 세를 넓히려던 입헌민주당은 여전히 4%에 머무르는데 반해 괄목할 만한 성장이다. 다음번 총선에서 자민당에 투표하겠다는 적극의사층은 55%를 넘기기까지 했다. 또 이해불가한 일이다. 요미우리신문 조사 결과에선 역대 3위로 나왔다. 1위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1차 내각 당시 87%, 2위는 하토야마의 민주당 정권이 들어섰던 2009년이었다. 앞서 9월 18일 발표된 아사히신문의 세론조사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지지한다 65%와 지지하지 않는다 13%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했을 뿐만 아니라, 투표
졸졸졸, 무성한 수풀 사이로 무심하게 흐르는 시냇물처럼, 끊이지 않고 나즈막하게 들리는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곳. 그러다가 물소리가 멀어지면, 어느새 바람으로 주인이 바뀌어 때때로 솨아~하며 잎부비는 소리가 들리는 곳. 그곳이 바로 선유도공원이다. 그 매력적인 정원을 짧은 필설로 소개해볼까 한다. 1. 선유봉이 선유도가 되기까지 1968년 서울시에서 발간한 지도를 보면, 지금과는 좀 다른 한강의 하상을 볼 수 있다. 지금과는 다르게 다듬어지지 않은 여의도가 그렇고, 아직 하중도였던 난지도(지금의 하늘공원)도 그렇지만, 특히나 제2한강교(양화대교)가 지나가는 곳에 있는 선유봉이 눈에 띈다. 제2한강교(양화대교)가 지나가는 곳에 표시된 선유봉. 일제시대부터 영등포는 경성부에 포함되어 왔는데, 당산정(町)에 포함됐던 이곳은 일제시대부터 암석채취장으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1961년부터 1979년까지 이루어진 제1차 한강종합개발계획에 따라,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가 되는 양측 제방도로가 건
1. 지역 분쟁 원인 나고르노카라바흐(Nagorno-Karabakh) 지역은 4,400 산악지역으로 전통적으로 기독교계 아르메니아인과 이슬람계 투르크인이 거주하고 있다. 소련시절 아제르바이잔의 자치지역이 된 이후, 국제적으로는 아제르바이잔의 일부로 인식되고 있지만, 주민 대다수가 아르메니아계이다. 유럽 열강에 의해서 지도 위에 직선으로 영토가 그어진 아프리카의 국가들처럼, 소련 중앙정부에 의해 연방공화국의 영토가 획정되면서 해묵은 갈등이 유발된 것. 이 지역의 영유권을 두고 1988년부터 1994년에 치러진 전쟁으로 3만 명이 사망하고 백만 명이 집을 잃었다. 전쟁 당시 분리주의 무장단체에 의해 이 지역을 둘러싼 아제르바이잔 영토가 대부분 아르메니아계 주민에 의해 장악됐다. 쉽게 말해 아제르바이잔 영토지만, 아르메니아가 실효지배하고 있다. 그 이후 두 이 지역에서는 갈등이 심화돼, 2016년 이후로 무력 충돌이 끊이지 않아, 200여명이 사망했다. 2. 지역 안보 환경 국가적으로는
1. 2020년 8월 9일 대선 개요 대선이 시작되기 전부터 유력 야권 후보에 대해서는 입후보를 반려하거나, 금지하면서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더니 급기야 대선 일정에 들어가면서는 후보들을 체포하기 시작해 완전히 판이 개판이 됐다. 루카셴코의 강력한 라이벌로 지목되었던 발레리 체프칼로와 빅토르 바바리코는 일찌감치 출발선에서 제거됐다. 가즈프롬 출신의 바바리코는 6월에 체포되기까지 했다. 37세의 전직 영어교사였던 전업주부 스베틀라나 티하놉스카야(Svetlana Tikhanovskaya)의 남편 역시 체포돼서 대선에 출마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남편을 대신해 대선에 출마, 유력 후보들이 배제된 상황에서 야권의 중심 후보가 됐다. 대선 투표를 하고 있는 야권 후보 스베틀라나 티하놉스카야. 이에 따라 대선 후보 스베틀라나 티하놉스카야, 입후보가 반려된 발레리의 아내 베로니카 체프칼로(Veronika Tsepkalo), 발레리와 같은 처지였던 바바리코 진영의 마리아 콜레스니코바(Maria Ko
1. 덕수궁은 언제부터 궁궐이 됐나? 서울시청 서소문 별관 13층에 위치한 정동전망대는 덕수궁의 두 석조건물을 조망하기 참 좋다. 1593년 선조가 몽진에서 한양으로 돌아왔을 때, 경복궁은 물론이요 창덕궁과 창경궁 모두 불에 타버려 들어가 살 곳이 없었다. 그래서 급하게 종친의 집(성종의 친형인 월산대군의 후손)을 징발해서 창덕궁이 재건될 때까지 살던 곳이 정릉동 행궁이란 이름으로 불려졌다. 1608년 선조가 죽고 광해군이 이곳에서 즉위하게 됐다. 그해 창덕궁 재건이 완료되어 이어하면서, 경운궁이란 이름을 남겨주고 떠났다. 1618년 광해군이 인목대비를 폐위하면서 이곳 석어당에 유폐하기도 했다. 그런 탓에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나면서, 이곳에 유폐되어 있던 인목대비의 인정으로 조카 인조는 삼촌 광해군을 축출하고 어좌를 차지하게 됐다. 인조반정 이후 오랫동안 비어 있었다. 석어당과 즉조당을 제외하고 주인에게 돌려주어 규모도 작아졌거니와 창덕궁이나 경희궁처럼 큰 궁궐이 있다 보니 그
1. 개관 현재 반정부 시위대의 요구 사항은 다음과 같다. - 쁘라윳 짠오차 총리의 퇴진 - 신헌법 제정과 재선거 실시 - 군주제 개혁 현재 태국은 2014년 쿠데타로 집권한 쁘라윳 정권이 2016년 헌법을 개정해 상원 250석을 독점하는 괴상망측한 헌정 유린 상황에 놓여 있다. 그렇다 보니 기본적으로 개헌에 대한 요구가 높을 수밖에 없다. 거기에 작년 3월에 치러진 총선거 역시 부정선거가 의심되는 정황이 여러 차례 포착되면서 재선거에 대한 요구도 거센 편이다. 무엇보다 뻑하면 쿠데타가 일어나서 문민정부를 전복시키는 나라답게, 쿠데타 세력과 함께 왕위를 시작해서 죽을 때까지 쿠데타 세력과 함께한 전임 푸미폰 국왕의 “쿠데타 자동 인증 발급기” 행태에 염증을 느낀 국민들이 많았다. 여기에 장수하면서 명성을 높이 쌓은 아버지 밑에서, 평생 비교당하고 욕만 먹어온 왕세자가 왕이 됐다. 그 왕은 군정세력과의 야합에만 골몰해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 보니 군주제 개혁의 목소리가 높아질 수밖에
1. 요며칠간 "정인아 미안해, 우리가 고칠게"라며 SNS에 글은 올리지만, 무엇이 고쳐져야 할지조차 모르는 사람들로 넘쳐났습니다. 그저 "살인죄로 처벌하라"는 한풀이식 막무가내 아니면, "정부는 제도를 마련하라"와 같은 아몰랑~ 내일은 아니고식의 책임 회피이거나, 관계 기관 직원들까지도 악마화하는 화풀이가 다였습니다. 답답함을 넘어서 짜증이 날 정도였습니다. 2. 지난해 6월 9세 아동 여행가방 살해사건 이후 아동학대 예방 제도를 둘러보고 느낀 점은, 협업이 이루어져야 하는 과정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경험이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보통 입직 5년차 미만의 경찰관, 입직 5년차 미만의 아동보호전문기관 직원, 입직 5년차 미만의 의사들이 현장에서 일을 다루게 됩니다. 일면식도 없는 청년들이 협업을 이루어내기도 어렵거니와, 경험칙에서 우러나오는 순조로움을 기대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들에게 오로지 "사명을 다하라"와 같은 아무말 대잔치를 강요할 순 없는 노릇입니다. 매뉴얼만 만지작거리는 게
오랜만에 일본 언론의 여론조사를 다뤄보고자 한다. 1. 스가 정권 지지도 반등 시작할 때 터무니 없이 높은 지지도를 보여주었던 스가 정권의 지지도가 올해 들어 정상 궤도에 돌입했다. 스가총리의 아들이 총무성 관료와 부적절한 회식을 여러 차례 가진 것으로 드러나 악재로 작용할 수도 있었으나, 그 정도의 부정은 대충 용납하는 분위기인 듯 하다. 스가 정부의 5개월은 마치 우리 문재인 정부의 3년을 닮아있는 게 아닌가 싶다. 검증되지 않은 정권에 대한 막연한 기대는 채워지지 않는 변화에 대한 바람으로 금새 지지철회로 이어졌다. 그래도 "썩어도 준치"라서 "구관이 명관"이라며, 보수적인 지지를 유지하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 NHK의 3월 여론조사 결과를 포함한 지지도 그래프. 지지한다가 지지하지 않는다를 다시 넘어섰다. 요미우리신문과 NNN이 3월 공동조사 결과가 포함된 그래프. 역시나 지지도(48%)가 부지지율(42%)을 넘어섰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의 2월 여론조사 결과. 12월 이후
1. 추억 1988년 발매된 이문세의 5집 앨범은 4집 앨범과 함께 이영훈+이문세 콤비의 명반으로 꼽히고 있으며, 2007년 경향신문에서 정리한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에도 당당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만큼 좋은 곡들이 많았고, 그래서 그만큼 많이 들었다는 이야기겠다. 발랑 까진 국민학생이었던 나는 테이프가 늘어지게 이문세의 3집부터 5집까지를 반복해서 들었고, 쉴 새 없이 따라 불렀더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집 앨범에 수록된 곡 <광화문연가>의 가사는 우리 같은 강원도 촌놈들에겐 당최 그 심상이 떠올려주질 못했다. 2021년 1월 눈내리는 날. 겨울에는 출사는 고사하고 바깥 출입을 잘 하지 않는 편인데, 이 사진을 위해 굳이 나갈 수밖에 없었다. 실제 그 풍경을 볼 수 있었던 건 1997년 1월이었다. 덕수초등학교에서 공무원시험 통합접수를 하던 때였던지라, 누나 심부름으로 종각역에서 광화문지하보도를 걸어서 지나갔었다. 높은 석축과 겹겹의 바리케이드였던 첫인상에 꽤나 놀
(주)쿠팡의 모기업인 미국회사 Coupang LLC(Limited Liability Company)가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하면서 주식회사로 전환되고, 그에 따라 사명이 Coupang Inc.로 바뀌었다. 그런데 국내에선 난리가 났다.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다. 1. 첫 번째 수수께끼, 쿠팡은 어느 나라 회사인가? 미국 델라웨어주에 설립된 Coupang LLC는 일종의 지주회사였다. 주력사업인 (주)쿠팡의 주식 100%를 소유하고 있으며, 관련 사업들은 (주)쿠팡의 자회사로 두고 있다. 이 이상한 미국회사는 자꾸 자회사인 (주)쿠팡을 이용해서 국적 물타기를 한다. 오죽했으면, “쿠팡이 미국에 상장한다”는 이야기가 처음 나왔을 때 (주)쿠팡을 직상장하는 줄 알았던 사람들이 많았다. 심지어 (주)쿠팡의 모회사인 Coupang LLC의 존재를 알고 있던 나와 같은 사람들조차도, (주)쿠팡의 나스닥 직상장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못했었다. 결국 상장이 된 회사는 Coupang LLC가 주식
덕수궁은 문화재청에서 관리하는 궁궐 중에서 가장 규모가 작고, 무엇보다 지하철역에서 바로 연결되다 보니 접근성이 뛰어난 편이다. 가벼운 산책쯤으로 한바퀴 휘이~ 둘러보는 것도 좋겠고,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미술전시를 함께 관람한다던가, 서울시립미술관의 미술전시를 관람하는 것도 좋겠다. 여기에 덕수궁 돌담길, 정동길, 고종의길 등 주변에 다른 산책로도 바로 연계되기 때문에 이래저래 유유자적하기 좋은 곳이다. 이제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와서 덕수궁의 나목들이 조금씩 옷을 차려입기 시작했다. 덕수궁에서 주목해 볼 나무는 크게 3종이 있다. 석조전 앞의 배롱나무, 미술관 앞의 처진올벚나무 그리고 석어당 앞의 살구나무가 그 셋이다. 1. 석어당 앞 살구나무(Prunus armeniaca var. ansu) 살구나무 고목 한 그루가 봄에 가져오는 위엄이 남다르다. 다른 계절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 2021년 1월 28일의 사진이다.불과 두 달도 지나지 않아, 살구나무가 이런 꽃대궐을 만들어
운현궁(雲峴宮)은 안국역 사거리와 무척 가깝다. 안국동, 재동, 계동, 경운동, 운니동이 맞닿는 안국역 사거리인지라, 운현궁으로 발길을 옮기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익선동을 거쳐서 운현궁 양관을 찾아오다가 들르는 듯하다. 잘 자란 매화(Prunus mume)가 여러 그루 있어서, 3월 중순이면 꽃대궐을 만든다. 그 풍경이 참 기가 막히다. 창덕궁 만첩홍매, 덕수궁 살구나무, 경복궁 처진올벚나무, 창경궁 앵도나무에 이어서, 매실나무만큼은 이곳이 최고다 싶다. 느티나무에서 노락당으로 들어가는 중문을 지나면 잘 자란 매실나무가 매화의 품격을 보여준다. 노락당 북행각쪽의 매화가 마른 댓잎과 대비되면서, 봄이 왔다고 강변하고 있다. 1. 운현궁도 궁인가? 그렇다고도 할 수 있고, 아니라고도 할 수 있다. 노안당과 노락당 사이에 있는 거대한 느티나무. 원래부터 심어져 있던 건 아닌 듯 싶다는 게 조경전문가의 의견. 운현궁은 사적 제257호로, 조선 제26대 왕인 고종의 잠저(
아무리 코로나19 국면이라고 해도, 매년 찾아오는 봄이 창경궁이라고 찾아오지 않을 리가 없다. 그저 바뀐 것이라곤 사람 많은 곳 질색이라서 봄꽃 구경 잘 안 다니던 아저씨가 올해부터 벚나무속의 나무들에게 깊은 관심이 생겼다는 차이정도겠다. 매년 문화재청에서는 4대궁/종묘/조선왕릉의 봄꽃 개화를 안내해주고 있다. 문화재청 홈페이지 보도자료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안타깝게도 3월 12일자로 배포된 자료의 일자가 하나도 안 맞고 있다. 예년에 비해 일조량도 많고, 기온도 높은 편이라서 너무 일찍 개화했기 때문이다. 우선 창경궁에서 자랑스럽게 내놓고 있는 건 옥천교 어구, 경춘전 화계, 환경정 정도가 되겠다. 4대궁 중에서 창경궁이 나무에는 목걸이를, 풀꽃에는 바닥이름표를 잘 해놓은 편이라서, 감상하는데 도움이 된다. 하나씩 찬찬히 살펴보자. 1. 옥천교 어구 모든 궁이 그러하듯, 궁 정문을 지나면 금천(禁川)이 나오고, 그 금천이 흐르는 곳을 어구(御溝)라고 한다. 홍화문에서 티케팅을 하
서울에서 봄의 시작을 알리는 전령사 노릇은 봉은사 만첩홍매와 창덕궁 만첩홍매가 한다. 일찌감치 꽃을 피우는 벚나무속의 꽃들 중에서도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게 매화(국명은 매실나무. 학명은 Prunus mume.)이다 보니 그렇다. 화괴(花魁, 꽃의 수괴)란 별창이 붙는 이유이기도 하다. 만첩홍매의 압도적 비주얼엔 대적할 수 있는 건 드물지만, 창덕궁엔 만첩홍매만 있는 건 아니다. 창덕궁 봄의 전령사들을 차례차례 찾아 본다. 1. 만첩홍매실(Prunus mume for. alphandii) 매실나무(Prunus mume, Japanese apricot)의 원예종인 만첩홍매실의 비주얼은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꽃 자체가 생긴 것하며, 블링블링한 핑크 색감하며, 송이송이 매달린 것까지.... 무엇하나 빼놓지 않고 훌륭하다. 코로나19 바이러스만 아니었다면, 두어 시간쯤은 하염없이 바라봤을 성싶다. 넋을 잃게 만든다. 창덕궁 내에 만첩홍매실은 모두 네 그루가 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녀석
경복궁에도 봄이 오면 블링블링한 핑크 컬러를 자랑하는 체리 블라썸 시스터즈들이 즐비하다. 발걸음을 옮겨 가며 하나씩 즐겨 보자. 1. 영제교 어구 일원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가릴 것 없이 궁릉유적본부에서 관리중인 4대궁은 어느 곳이나 금천과 금천교가 존재한다. 덕수궁 금천은 흔적만 남아서 그 근처 공간이라고 부를 만한 곳이 없고, 창덕궁은 궁문과 금천 그리고 정전이 정축상에 놓인 게 아니라서 살짝 공간이 혼란스럽다. 하지만 창경궁은 동향이라서 그렇지, 홍화문과 옥천교 그리고 명정문과 명정전이 정축상에 놓여 있는 편이라 어구 주변에 매실, 살구, 자도, 앵도가 줄지어 심어져 있다. 경복궁도 마찬가지다. 시원스럽게 동서로 가로지르는 영제교 어구 주변에 매실나무와 앵도나무가 줄줄이 심어져 있다. 어구 동쪽 끝에서 바라본 영제교와 금천 풍경. 매실나무와 앵도나무가 심어져 있다. 꽃으로도 구별하기 힘든 벚나무속의 매실나무와 앵도나무인지라, 여름이 되면 더 알기 힘들다. 겨울이 되
벚나무속(genus Prunus)은 장미목 장미과의 한 속이다. 봄이 오면 비슷비슷한 생김새와 비슷비슷한 색으로 차례대로 꽃을 피우다 보니, 뭐가 뭔지 잘 모르고 그게 그거려니 하는 경우가 많다. 전세계적으로 400여종이 분포하고 있기 때문에 아속(subgenus)과 절(section)을 통해 보다 정교하게 분류하게 된다. 국내에는서 40종이 2020년 국가생물종목록에 등재되어 있다. 그 중에서 우리 눈에 친숙한 종들을 중심으로 나눠보고, 설명하고자 한다. 크게 3개의 아속으로 먼저 나눈다. 복숭아(peach)와 같은 열매를 맺는 복사나무아속, 버찌(cherry)가 열리는 벚나무 아속, 그리고 살구(apricot)나 자두(plum)가 열리는 자두나무 아속으로 나눈다. 1. 복사나무아속 Prunus subg. Amygdalus 복숭아(peach)와 아몬드(almond)를 말한다. 가지에 붙어서 열매를 맺으며, 씨가 큰 편이다. 복사나무 Prunus persica /peach 복숭아가
1. 선거공보물을 받아 보기 전부터 착잡했다. 당최 누굴 찍어야 하나, 갈피를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단 오세훈은 걸렀다. 이미 한 차례 이 사람은 아니다는 걸 스스로 증명했었고, 솔직히 시장 임기 1년마저 채울 지도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박영선을 걸렀다. 보궐선거를 치르게 된 원인을 제공한 정당이자, 당헌까지 바꿔가며 보궐선거에 출마한 몰염치한 정당에 표를 주긴 싫었다. 게다가 박영선 캠프의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경력을 팔아먹기 위한 어처구니 없는 정책들이 나오면서, "어떻게든 오세훈은 막아야 하지 않겠나"하는 반오세훈의 방법론으로서의 투표조차 거부하게 됐다. 그래서 선거공보물이 도착하길 기다렸으나... ㅇ하... 이건 서울시장후보 등록 비용으로 개인 홍보하러 나왔나 싶을 정도로... 하... 답이 없다. 2. 투표소에 도착해서 투표용지를 받기 전까지는 그야말로 고민의 연속이었다. 무기표 용지로 넣어야 하나, 여백에 기표를 해야 하나 왔다리 갔다리 했다. 투표 자
2021년 3월 종로의 모습. 이젠 도로밖에 남지 않았다. 종로란 이름은 종각과 관계가 깊다. 현재 종로2가의 시작점에 위치한 종각은 인정과 파루를 알리는 종루 중에 하나였다. 일제시대에는 鐘路1丁目으로 불렸다. 동쪽으로는 종로2가, 서쪽으로는 세종로, 남쪽으로는 서린동, 북쪽으로는 청진동과 이웃하고 있다. 종로1가의 신신백화점과 종로2가의 화신백화점이 보이는 1976년의 사진. 원래는 종로 남북으로 도로가의 상점가들이 종로1가에 속했다. 1973년 종로1가의 지하철 공사 현장. 종로 양옆으로 상가가 즐비하다. 하지만 70~80년대 서린동 재개발로 고층빌딩이 들어서면서 남쪽은 서린동에 흡수되었고, 2010년대 청진동 재개발로 고층빌딩이 들어서면서 북쪽 역시 청진동에 흡수되었다. 2010년대부터 재개발에 들어가서 새로운 마천루를 형성한 청진동. 그래서 종로1가는 청진동에 포섭됐다. 이제 남아 있는 종로1가라고는 도로와 종각역 지하상가 정도라고 볼 수 있다. 세종로와 종로1가, 청진동,
종로2가의 북쪽은 공평동과 인사동, 낙원동과 맞닿고, 남쪽은 관철동, 관수동과 맞닿는다. 공평동의 대표적인 랜드마크인 종로타워빌딩 동쪽에서부터 그 남쪽 맞은편의 보신각(관철동)에서 시작하는 종로2가는 북쪽으로는 탑골공원까지, 남쪽으로는 관수동까지 이른다. 종로2가의 끝자락인 탑골공원 건너편에서 바라본 종로타워빌딩. 거기까지가 종로2가다. 종로2가의 남쪽으로는 관철동과 맞닿는다. 종로2가와 관철동을 가르는 종로12길. 보신각(普信閣)·종각(鐘閣)으로 불려지는 이 누각은 원래 사거리에 위치했었다. 1915년 난다이몬도리(南大門通) 확장 공사를 위해, 사거리에서 철거하고 관철동쪽으로 2층 누각을 새로 지었다. 그 이후 1973년 지하철 1호선 공사로 다시 한 번 관철동 쪽으로 더 들어가게 됐다. 결국 1979년 철근콘크리트 구조의 2층 건물로 새롭게 태어났다. 이제 이곳은 보신각址가 됐다. 터만 남았다는 이야기다. 보신각종은 보존을 위해 경복궁을 거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 중이고, 현재
“기획한 공무원 상줘라” 댓글 붙던 영상…진짜 대통령 표창 받았다 17일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인사혁신처와 행정안전부 공동 주관의 ‘제1회 적극행정 유공포상’에서 한국관... news.khan.kr 공공기관이 온택트 마케팅을 하는 방식은 두 가지다. 하나는 돈 들여서 외주. 다른 하나는 돈 없어서 인하우스. 한국관광공사와 같이 돈으로 페이 투 윈 할 수 있는 경우에 대통령 표창하고 그러면, 군청 직원 몇 명이서 유튜브에 인스타에 블로그까지 굴리는 경우에는 상대적 박탈감 온다. 조회수 올리고 싶어도 광고 집행할 예산조차 없는 경우엔 피눈물 난다.
탑골공원에서 동쪽으로 종묘앞까지가 종로3가다. 북쪽으로는 낙원동, 돈의동, 묘동, 봉익동과 연접하며, 남쪽으론 관수동(사진1)과 장사동(사진3)과 맞닿아 있다. 종로3가역이 있는 교차로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돈화문로를 따라 묘동이, 그 동쪽으로 봉익동, 서쪽으로 돈의동이 위치한다. 돈화문로의 끝은 창덕궁 돈화문이다. 종로3가역에서 종로2가쪽을 바라본 모습. 종로3가역 묘동 입구에서 바라본 장사동 방향의 종로3가 1977년 종로확장 공사 이후, 종로3가에서부터 동대문까지 종로변은 그닥 정리되지 않은 편이다. 그렇다보니 1960년대 지어진 빌딩들이 여전히 살아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1977년 종로3가 확장공사 당시의 모습. 블럭 하나가 통째로 밀린 것이다. 1983년 확장공사 이후의 종로3가의 모습. 본 저작물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작성하여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서울시정사진'을 이용하였으며, 해당 저작물은 '서울역사아카이브,https://museum.seoul.go.kr/ar
“부채와 채무는 다르다”…기재부가 연일 ‘나랏빚’ 해명하는 이유 [뉴스AS] 조 단위로 널뛰는 연금충당부채, ‘나랏빚’의 정의와 범위는? www.hani.co.kr OECD 기준으로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사람들도, 매번 은근슬쩍 아전인수식으로 구성하게 되는 국가채무에 대해, 다시 한 번 정리가 된 기사. 어느 정도 동기화하고 있지만, OECD 가입국이라고 해서 모든 통계가 같은 방식으로 정리되는 게 아니라서, 국가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다. 어떻게든 국가채무를 뻥튀기해서 확장재정을 막아보려는 쪽과 어떻게든 국가채무를 줄여서 확장재정을 정당화하려는 쪽의 "자존심 강한 두 천치들"의 싸움을 보면서 혀를 차게 되는 이유가 왠만큼 정리된다.
종묘에서 종로32길까지, 북쪽으로는 인의동과 남쪽으로는 예지동에 맞닿은 곳이 종로4가이다. 종로와 창경궁로가 만나는 종로4가 네거리를 기점으로 예지동이 양분되는데, 특히나 그 동쪽은 광장시장 등 직물시장으로 유명하다. 2018년 8월의 종로4가 네거리의 모습 2021년 현재까지도 종로4가 네거리 광장시장 입구쪽은 1970년대와 거의 다를 바가 없다. 1976년 종로4가 확장공사 이전의 종로4가 네거리의 모습 1968년 종로를 가로지르는 전차궤도를 철거하기까지 종로일대에서는 종로2가와 함께 종로4가가 가장 번성하던 곳이었다. 을지로4가에서 돈암동에 이르는 전차노선이 교차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1977년 종로4가 확장공사 때의 모습 1983년 지금은 철거된 현대상가에서 내려다본 종로4가 네거리 종로4가 네거리의 동북쪽에 동대문경찰서가 신설되고 광장시장으로 인해 주변에는 일찍부터 은행 등의 금융관계 점포들이 들어섰다. 서울 시내 경찰서 이름들이 관할 구의 이름과 맞지 않는 경우들이 있었
1. 세계 1위 산유국? 세계1위는커녕 5위권 안에도 들지 못한다. 사우디아라비아, 미국, 러시아가 1위를 다툰다. 사우디의 일생산량이 7천만 배럴 정도 된다. 베네수엘라는 차베스 정권 초기인 2000년대 초반 300만 배럴/일까지 끌어올린 적이 있었지만, 보통 250만/일 배럴 수준이었다. 자료: 미에너지정보국(EIA) OPEC 가입국 내에서는 이란, 이라크,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연합과 베네수엘라보다 많이 생산한다. 여기에 비OPEC 국가로 미국과 캐나다가 OPEC 수준으로 기름을 퍼내고, 구소련연방 국가에서도 OPEC 절반 분량을 퍼낸다. 산유량(crude oil production)에 관해서는 OPEC annual report를 참고하면 되겠다. OPEC : Annual Report www.opec.org 이는 가채매장량(oil reserve) 1위라는 사실에 무지와 바람이 결합되어서 비롯된 오해가 되겠다. 어떻게든 땅 밑에 석유가 묻혀 있는 양만으론 현재 1위란 이야기다.
공평동 북쪽, 우정국로를 중심으로 가로변에 펼쳐진 동네가 견지동이다. 주로 불교용품점이 즐비하여, 조계사가 상권을 견인하는 모양새다. 우정국로는 남쪽으로 광교까지 이어지며, 광교 이남으로는 남대문로가 된다. 견지동의 동명은 의금부와 관련이 깊다. 조선시대 중부 8방에 속했던 견평방에는 의금부가 있었다. 공평함을 견지하라는 뜻으로 堅平坊이라 지었다. 1914년 경성부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堅志洞으로 바뀌었다. 수선전도에 나타난 견평방 지명 도로명의 주인공이기도한 우정총국은 사적 제213호다. 국제우편 취급을 위해 만들어진 최초의 우정기구였으나, 갑신정변에 개국연이 활용되면서 업무를 볼 수 없게 됐다. 다시 우정체계를 갖추는데는 다소의 시간이 더 걸리게 됐다. 이 건물은 조계사 입구와 붙어 있는데, 조계사와 담장조차 없이 개방되어 있어 자칫 조계사의 부속건물인가 할 수도 있다. 1970년 사적으로 지정된 이후로는 체신청이 관리하는 우정박물관 같은 것으로 개축되어 운영됐었으나, 2012
경행방의 경자와 운현궁의 운자를 따서 지어진 이름이다. 북쪽으론 안국동, 동쪽으론 운니동, 남쪽으론 낙원동, 서쪽으로는 관훈동과 면한다. 종로경찰서, 천도교 중앙대교당, 민병옥 가옥, 교동초등학교 등이 경운동에 속한다.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6호 천도교 중앙대교당은 1921년 완공된 건물이다. 그 옆의 수운회관도 1970년에 준공한 건물이다.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 제15호 경운동민병옥가옥도 바로 옆에 있다. 2013년 이전까지는 한정식집으로 영업을 했었다. 그 이후 종로구에서 매입한 것으로 보이며 2015년경에 해체보수한 것으로 보인다. 2018년에는 일반에 개방되어 있었으나, 코로나19국면으로 종로구에서 관리하는 홍난파가옥 등 몇몇 건물들은 그냥 폐쇄중인 것으로 보인다.
관철동 45-5번지 보신각. 1980년 서울시에서 2층 종루로 복원했다. 관자동(貫子洞)의 “관”자와 철물교(鐵物橋) “철”자를 합해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망건 당줄을 꿰는 고리인 관자를 파는 가게가 많은 지역과 철물전(鐵物廛)이 많았던 지역의 다리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것. 망건의 끈을 고정시키는 역할을 하는 관자는 노란색으로 양쪽에 위치해 있다. 서린동이 1패 기생들과 부상들의 주거지였다면, 관철동이야말로 오랜 세월 종로 시전의 중심으로 자리잡았던 곳이었다. 또한 관수동과 함께, 역관(譯官)·의원(醫員)·일관(日官)·화공(畵工) 등 중인과 이들하고 연결된 상인들의 집단 거주지역이기도 했다. 게다가 서린동 전옥서 근처였기 때문에 옥바라지 상권이면서 죄수 제작 물품이 판매되는 상점이 형성됐고, 청계천 남쪽 삼각동과 수표동 거주민들의 생필품 상점도 모여 있었다고 한다. 관철동과 장교동 사이에 놓여 있던 다리인 장통교 청계천 복원 이후에 함께 복원된 장통교 일제시대 일본 자본이 고킨초
공평하게 재판하는 의금부(義禁府)에서 따왔다. SC제일은행빌딩, 센트로폴리스빌딩, 종로타워빌딩 셋으로 끝이라고 보면 된다.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 본점, 종로타워빌딩, 센트로폴리스빌딩으로 공평동은 다라고 할 수 있다. 종로구 공평동 100번지 일대는 신신백화점이 있던 곳으로 1979년 도심재개발 청진구역으로 지정됐다. 훨씬 더 전인 1920년대부터 40년대에는 종로경찰서가 위치했었다. 이병일 감독의 1941년 개봉 영화 <반도의 봄>의 한 장면. 경성종로경찰서라는 현판이 보인다. 1981년 제일은행은 재개발 사업을 시작하여, 1988년 건물을 준공했다. IMF 구제금융사태가 발생하고 은행들의 통합 인수가 이루어진 1997년 이후, 제일은행이 팔리고 팔려서, 지금은 영국계 스탠다드차타드 은행의 한국법인인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이 운영하는 SC제일은행의 본점으로 쓰이고 있다. 1981년 서린동, 공평동, 수송동, 견지동 일대의 모습. 빈 공터가 제일은행 본점 신축공사장이다. 공평동 100번
종로와 청계천사이에 있는 서쪽에서 새번째 동네가 관수동이다. 청계천의 유수(流水)를 관망(觀望)한다는 뜻에서 관수동이라 하였다. 서린동은 꽤 오래전부터 고층빌당이 들어섰고, 관철동은 상업가로 번화했다. 그런데 관수동에 이르게 되면 슬슬 인지부조화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종로3가와의 경계에 있는 피맛골엔 "종로3가 보쌈골목"이 있다. 이 주변에는 다른 식당들도 많은 편이고, 무엇보다 생선구이 백반집 몇 곳이 성업중이다. 시사어학원 뒷편의 경북집도 관수동에서 빼먹기 아쉬운 곳이다. 소싯적 모듬전에 막걸리를 자주 즐겼던 곳이다. 동쪽으로 더 가서 장사동쪽으로 근접할수록, 60년대에서 80년대 사이에 시간이 멈춰진 듯한 풍경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특히나 트로피 상점이 밀집해 있는 곳의 풍경은 더더욱이나 인지부조화를 강화한다.
관인방(寬仁坊)과 훈동(勳洞)에서 한 글자씩 따왔다. 동쪽으로 경운동, 남쪽으로 인사동, 서쪽으로 견지동과 접해 있다. 북쪽으로 율곡로를 건너면 안국동과 송현동으로 넘어가게 된다. 관훈동의 북쪽끝이자 인사동길의 북쪽끝. 2013년 5월. 간혹 사람들은 이곳 관훈동을 인사동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인사동길이 관통하면서, 인사동에게 기대했던 풍경을 선사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인사동은 남쪽 끝의 조금일 뿐이다. 관훈동의 시작이자, 인사동길의 본격적인 시작. 2021년 봄 도시한옥골목이 식당가로 바뀌었다. 천상병 시인의 귀천도 이 골목에 있다. 마찬가지로 이곳도 관훈동이다. 인사동에서 관훈동으로 넘어오면서 처음 맡이하게 되는 랜드마크는 통인가게다. 통인가게는 건축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건물이지만, 관훈동에서 오랫동안 터줏대감 노릇을 해 온 건물이다. 내가 게을러서 건축가를 모르는 게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건물은 대한민국 건축가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종로3가에서 창덕궁 돈화문까지 이어지는 길이 돈화문로이다. 이 길을 중심으로 와룡동과 묘동이 놓여 있고, 그 동쪽으로 종묘 사이에 권농동과 봉익동이 놓여 있다. 종로3가에서 돈화문쪽으로 바라본 돈화문로. 이곳이 묘동의 시작으로, 길가 양쪽이 묘동이다. 묘동에서 와룡동으로 넘어가는 시점의 돈화문로. 돈화문이 보인다. 눈앞의 김밥천국은 권농동, 오른쪽(남쪽)의 대각사는 봉익동, 사진을 찍은 위치는 묘동, 왼쪽(북쪽) 다음 블럭은 와룡동이다. 권농동은 농포서(農圃署)가 있던 동네라 그리 작명되었다고 한다. 돈화문로는 조선시대 몹시 붐비던 운종가에 속했었다. 특히나 창덕궁을 거쳐서, 권농동을 지나, 봉익동을 거쳐, 종로는 넘어, 청계천에 닿는 개천은 주택가 입지에 몹시 좋은 조건이 되었다. 지금은 복개되어 있고, 그 길이 동계의 역할을 하고 있다. 창덕궁 금천에서 연결되는 개천이 지금은 복개로가 되어서 권농동, 와룡동 그리고 봉익동, 묘동의 동계가 되고 있다. 권농동은 워낙 작은 동네에다가
북으로는 경운동, 남으로는 종로3가, 동으로는 돈의동과 익선동, 서로는 인사동과 맞닿아 있다. 낙원상가의 남면, 삼일대로가 낙원상가 아래를 지나서 안국역사거리로 이어진다. 낙원동 280번지에 향교(鄕校)가 있었기에 이 동네도 오랫동안 교동이라 불렸다. 지방의 중소도시에 가면 반드시 있는 동네 이름이 중앙동과 교동 또는 명륜동인데, 교동이나 명륜동이 이 향교 때문이다. 낙원동 경계에 바로 인접한 교동초등학교가 관립교동소학교 시절부터 그 이름을 사용한 이유이기도 하다. 낙원동에서는 낙원상가를 빼놓을 수가 없다. 1969년 준공한 주상복합 건축물이다. 악기상가가 많다. 건축적으로 인상적인 부분은 바로 도로 위에 떠 있다는 점이다. 삼일대로가 지나가고 있어 지어진지 50년이 지난 지금에도 눈길을 끄는 오브제가 되고 있다. 돈의동쪽에서 바라본 낙원상가 낙원상가 안의 허리우드극장은 현재 후원으로 운영되는 실버영화관으로 바뀌었다. 종로2가 탑골공원과 함께 노인들의 집결지가 되고 있는 수표로나 종
남쪽으로는 종로3가, 북쪽으로는 익선동, 동쪽으로는 묘동, 서쪽으로는 낙원동과 맞닿아 있다. 사람들이 흔히 익선동의 시작이라 착각하는 돈의동의 끄트머리. 좀 더 북쪽으로 올라가야 익선동이다. 돈녕부(敦寧府), 어의궁(於義宮)이 있던 동네라서 돈의동이 된 것으로 보고 있다. 돈녕부는 종친부에서 관리하지 않는 좀 먼 종친들이나 외척을 관리하던 관청이었고, 어의궁은 인조가 반정으로 집권하기 전까지 살았던 잠저였다. 두 곳의 터는 정확하게 추정하지 못하고 있다. 종로3가역을 중심으로 예전에 잘나가던 극장이 세 군데 있었다. 묘동의 단성사, 돈의동의 피카디리극장, 관수동의 서울극장.이 곳 중에서 멀티플렉스로 제대로 살아남은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롯데시네마와 CGV가 배급망까지 장악하면서, 이런 극장들은 계열 극장으로 하나씩 넘어가거나 "아트시네마" 같은 길을 걷다가 사라지고 있다. 돈의동의 피카디리극장. 깊은 역사는 그만큼의 쇠락의 역사를 품는다. 피카디리극장 역시 CGV피카디리1958로
서린동은 한성 중부(中部) 8방의 하나인 서린방(瑞麟坊)의 방명을 그대로 동명으로 썼다. 시전(市廛) 가운데 방귀 좀 뀌었다는 육의전(六矣廛)이 서린동에 몰려 있었다. 그리하여 무교동과 더불어 일패 기생이 몰려 있는 조선 최고의 상업중심가로 자리매김했었다. 돈의동 명월관 본점의 사진엽서. 명월관은 서린동에서 시작한 요릿집이었다. 서린 재개발구역은 1973년 구역 지정 후 16개의 사업이 결정되었지만, 사업시행은 1983년 12지구의 영풍빌딩 건설을 시작으로 이루어졌다. 1977년 서린동 일대 서린동은 고층빌딩들이 거의 다 점령했지만, 미묘하게 남은 짜투리 땅이 없는 것은 아니다. 2018년까지만 해도, 반세기가 넘은 나이를 그대로 노출했었다. 2021년 파사드를 가리는 것으로 분칠에 들어갔다. 종로와 세종로 그리고 태평로와 서린동이란 네 곳의 법정동이 만나는 미묘한 지점에서 세종로의 끝자락을 담당하고 있는 건물이 바로 구동아일보사 사옥이다. 앞의 도로는 종로1가와 태평로1가에 해당하
MBC "스트레이트"에서 쿠팡을 연속해서 두 번이나 까고 있다. 혹자들은 엠병신이 작정하고 쿠팡까기에 들어갔다고 거품을 물고, 나같은 사람들은 "쿠팡이 쿠팡한 게 드디어 지상파까지 탄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고 있다. 내용은 간단하다. 쿠팡에도 오픈마켓이 있다. 2016년 아이템마켓이란 이름으로 서비스를 시작했고, 이때부터 있었던 제도가 아이템위너다. 그런데 2020년 7월에 이 서비스와 관련해서 문제가 곪아터졌다. 오픈마켓 약관 자체가 불공정하고, 아이템위너라는 제도도 황당하기 그지없다는 것이다. 저작권 넘겨야 입점되고 유령셀러까지…"쿠팡, 판매자엔 지옥" 잡음 들끓는 쿠팡 `성장통` 입점시 저작권 양도조항 등 오픈마켓 편법·부실 도마 "허위매물·짝퉁 활개 우려" 美쿠팡LLC가 지분100% 소유 돈줄은 손정의 비전펀드뿐 베일에 싸여있는 지배구조탓 깜깜이 회계·지속성 의문도 www.mk.co.kr 이미 1년전에 문제가 제기됐지만, 이 기사를 다뤄준 언론사들이... 없었다. 나는 평소에
수동(壽洞)과 송현(松峴)의 한 글자씩을 따서 지어진 이름이다. 동쪽으로는 견지동, 서쪽으로는 중학동, 남쪽으로는 청진동, 북쪽으로는 송현동과 맞닿는다. 조선시대에는 사복시, 제용감 등이 위치해 관청가였지만, 일제시대엔 학교가 몰리기도 했다. 일제시대 이후 학교들이 자리잡고 있다가 빌딩숲으로 변한 터라, 이렇다할 특징은 없다. 심지어 수송국만학교 건물을 계속 써왔던 종로구청마저 올해 신축에 들어가면서, 임시청서로 쓰게 될 주변 건물들로 이사가 한창이다. 종로소방서. 재건축에 들어간다. 종로구청. 재건축에 들어간다. 수송초등학교 이외에도 숙명여중고, 종로초등학교, 중동고 등이 수송동에 있었다. 1930년대 수송국민학교. 폐교됐다가 강북구에서 재개교했다. 교사를 그대로 종로구청으로 쓰다가 올해 재건축에 들어간다. 일제시대 숙명여중고. 여기도 땅 팔고 이사갔다. 현재는 코리안리빌딩 일본인들의 위해 개교했던 종로심상고등소학교. 현재는 두산위브가 올라가 있다. 수송동에서 랜드마크를 꼽자면,
동학(東學)이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유학의 대강(大綱)인 효제(孝悌), 충신(忠信), 인의(仁義), 예지(禮智)의 이름을 따서 동명을 지었다. 세운상가에서 바라본 예지동. SH공사 주도로 개개발되는 세운상가재개발촉진지구 4구역에 해당된다. 2022년 3월 현재, 상가 이주는 끝났고 4구역 전체에 출입을 막고 철거를 준비중이다. 동대문시장의 전신이 되는 이 배오개장은 인의동의 이현을 깃점으로 한 남측일대에 형성되어 있었는데 사람이 많고 차마(車馬)가 연이어 다니는 곳이었으므로 종루 앞과 남대문 밖 칠패시장과 함께 서울의 3대 시장으로 유명하였다. 광장시장과 귀금속, 시계 도매상가가 줄지어 있는 반면 거주인구수는 극히 적다. 종로4가의 남쪽 동네가 예지동이다. 창경궁로를 중심으로 예지동은 양분되는데, 서쪽은 세운상가재개발촉진지구 4구역에 해당하며, 시계골목이 유명하다. 창경궁로 서편으로 사행골목이 형성된 이곳에서, 시계골목이 유명하다. 종로 주변이나 을지로 주변에는 노포가 많은 편이다
운니동의 동명은 운현궁과 니동에서 유래했다. 교동국민학교 뒤쪽을 운현(雲峴)이라 불렀고, 그리하여 고종의 잠저이자 흥선대원군의 저택이 운현궁이란 궁호가 붙여졌다. 운니동하면 운현궁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 구 덕성여대 현 운현초등학교 정도가 운현궁 옆에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운현궁 포스팅으로 갈음한다. [서울여행] 종로구 운니동 가볼만한 곳, 운현궁 운현궁(雲峴宮)은 안국역 사거리와 무척 가깝다. 안국동, 재동, 계동, 경운동, 운니동이 맞닿는 안국역 사... blog.naver.com 와룡동과의 경계에서 큰 존재감 없이 그럭저럭 살아가는 골목이나, 그 이면에서 눈길을 사로잡았던 룸비니재단 법경회관 정도가 남아 있다. 2014년 2월의 룸비니재단 법경회관 2018년 9월의 룸비니재단 법경회관.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부속 건물들의 리모델링이 되었다. 익선동이란 이름은 왜 생겼는지 중구청에서도 유래를 제대로 파악하진 못하고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창경원 남쪽에 있다고 해서 원남동, 동학 주변이라고 인의, 예지, 충신, 효제와 같은 유학 대강 4총사 중에 하나로 이름지어진 인의동이다. 훈정동이라 쓰고, 종묘라 읽어면 되는 종로3가와 율곡로 사이의 공간 동쪽이 원남동과 인의동이다. 원남동은 원남동사거리를 중심으로 펼쳐져 있다고 보면 된다. 서울대병원 남쪽의 사거리 동북분면을 시작으로, 보령빌딩이 있는 남동분면을 포함해서, 종묘 동쪽으로의 남서분면까지가 원남동이다. 각각 연건동, 연지동, 인의동과 맞닿게 된다. 원남동사거리에서 남쪽으로 창경궁로를 바라본 모습. 보령제약까지가 원남동이다. 율곡로가 분단한 창덕궁, 창경궁, 종묘를 다시 연결하기 위한 사업으로, 보도와 차도 위를 덮고 있다. 인의동은 동쪽으로 연지동과 종로5가, 서쪽으로 훈정동, 남쪽으로 종로4가, 북쪽으로 원남동과 맞닿아 있다. 종로31길은 인의동과 종로5가 그리고 연지동을 가르는 길이다. 오래된 길인만큼 오래된 건물들이 여전히 살아남았다. 인의동은 배오개(梨峴)라
장사동은 종로3가의 남쪽 동네로 관수동의 동쪽, 종로3가역에서 세운상가까지라고 보면 된다. 장사동이란 이름은 청계천의 준설을 담당했던 준천사(濬川司)에서 긴 뱀모양(長蛇)으로 준설토를 쌓아 놓았던 것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메이저 전자회사의 완성품을 다루는 용산, 구의, 산도림 등의 전자상가와 다르게, 전자부품부터 정밀계측기, 조립전자제품 등 전자관련 메카라고 볼 수 있다. 달리 "세운전자상가"의 명성이 생긴 게 아니다. 동네가 오래된 만큼 재개발이 추진되지 않았을 리가 없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2구역에 해당하는 장사동 사람들의 한숨은 깊은 편이다. 세운상가에서 진양상가에 이르는 주상복합상가축을 녹지공원화한다는 오세훈 시장의 구상이 발표된 2006년 이후, 제대로 개발이 진척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도 청계천 이남의 산림동이나 을지로4가쪽의 다른 구역은 새로운 건물이 올라갔거나, 올라가는 중이다. 무엇보다 세운상가 동쪽 예지동의 4구역도 SH공사 주도의 청사진이 발표되어 2
성경 고린도전서 9장 22절에서 나온 말이다. 라틴어 형용사 omnia(every)의 주격인 옴니아와 여격인 옴니부스가 결함된 표현으로 "어떤 사람에게든 어떤 것으로도"라는 뜻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성경 구절, "omnibus omina factus sum(I become everyone to everyone)"과 관련이 있는데, 사도 바울이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행동하고, 믿음이 약한 자에게는 믿음이 약한 자처럼 행동했던 이유를 설명하는 구절이다. Ad Corinthios I. 9:22 factus sum infirmis infirmus, ut infirmos lucri facerem; omnibus omnia factus sum, ut aliquos utique facerem salvos. 고린도전서 9장 22절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 맹자의 한
봄이 왔는데, 봄 같지가 않다. 3월부터 중순부터 미친듯이 매화와 살구꽃이 피기 시작하더니, 2021년 3월 23일 창덕궁 성정각. 만첩홍매실과 살구나무가 꽃을 활짝 피웠다. 3월말에는 벚꽃이 만개했고, 2021년 3월 30일 창덕궁 낙선재 동편 화계. 처진올벚나무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4월초에는 복사꽃이 활짝 피었으며, 2021년 4월 4일 선유도공원. 복사꽃이 활짝 폈다. 4월 중순에는 겹벚꽃마저 얼굴을 내밀었다. 2021년 4월 9일 보라매공원. 겹벚꽃도 일찌감치 흐드러지게 피었다. 그렇게 2주가 넘게 일찍 얼굴을 내밀던 봄꽃 친구들이 다 가고 나니, 여름꽃 친구들이 한달쯤은 성급하게 얼굴을 들이밀고 있다. 봄이 왔는데, 금방 지나가고, 그냥 여름이 된 것만 같다. 코로나는 창덕궁 후원의 관람형태마저 바꿔버렸다. 창덕궁 후원 관람 예매는 그야말로 전쟁이다. 매일 아침 10시에 개시되는 6일 후의 관람예매는 불과 3분이면 매진으로 끝난다. 코로나로 인해 1회당 관람인원이 줄어들고
올여름 사은품 받으러 ‘스벅 순회’ 안해도 된다…전면 예약제 아이스박스 2종과 랜턴 3종 여름 프리퀀시 사은품 제공 www.hani.co.kr 스타벅스코리아는 여름이나 크리스마스 시즌에 규정 품목에 대한 규정구매를 채우면 사은품을 증정하는 이벤트를 진행한다. 열기가 대단하다. 이제 시그니쳐 이벤트로 자리를 잡은 듯싶다. 그렇다 보니 이런 상황도 쉽게 벌어진다. https://www.youtube.com/watch?v=PuOfQn6DO9U 동영상 [뉴스터치] 스벅 쿨러가 뭐길래…굿즈 되팔기 (2021.05.13/뉴스투데이/MBC) 네, 스타벅스가 그제(11일)부터 특정 음료를 주문하면 경품을 주는 이벤트를 진행 중인데요. 벌써 웃돈을 붙여 되파는 물건이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https://imnews.imbc.com/replay/2021/nwtoday/article/6177323_34943.html#스타벅스... www.youtube.com
‘코로나 상술’ 남양유업 압수수색…불가리스 ‘셀프 홍보’ 조사 “불가리스, 코로나19 억제 효과” 발표에식약처, 식품표시광고법 위반 혐의 고발 www.hani.co.kr 구차치다 걸리면 손모가지 날라가는 것. 제8조(부당한 표시 또는 광고행위의 금지) ① 누구든지 식품등의 명칭ㆍ제조방법ㆍ성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에 관하여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표시 또는 광고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1. 질병의 예방ㆍ치료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인식할 우려가 있는 표시 또는 광고 2. 식품등을 의약품으로 인식할 우려가 있는 표시 또는 광고 3. 건강기능식품이 아닌 것을 건강기능식품으로 인식할 우려가 있는 표시 또는 광고 4. 거짓ㆍ과장된 표시 또는 광고 5. 소비자를 기만하는 표시 또는 광고 6. 다른 업체나 다른 업체의 제품을 비방하는 표시 또는 광고 7. 객관적인 근거 없이 자기 또는 자기의 식품등을 다른 영업자나 다른 영업자의 식품등과 부당하게 비교하는 표시 또는 광고 8.
인사동하면 보통 떠올리는 이미지는 종로2가 금강제화 앞에서 만나서 가는 피맛골의 주점이 아니었나 싶다. 아... 이건 아재의 꼰대스런 기억일지도 모르겠다. 보통은 관훈동을 관통하는 인사동길의 풍경이 인사동의 이미지일 수도 있겠다. 아무튼 종로2가 뒤편, 그러니까 인사동과의 경계가 되는 그 골목길이 피맛골이면서도, 그 뒤편으로 연속되는 식당골목 역시 피맛골로 불렸더랬다. 그리하여 지금은 끊어져버린 인사1길 골목이야말로 피맛골의 정수였다. 2013년 대화재로 피맛골의 상가들이 죄다 화마에 휩쓸렸고, 재개발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방치되어 있었다. 2019년이 되어서야 재개발의 첫삽을 뜰 수 있었고, 지금은 유구에서 문화재발굴 작업이 진행중이다. 동쪽끝인 인사1길의 인사동길쪽 입구. 지금은 재개발로 길이 끊어져서 입구쪽 몇몇 건물의 진출입로일 뿐이다. 서쪽 끝인 종로12길과 연결되는 피맛골. 오른쪽 건물은 종로2가의 주소를, 왼쪽으로 남아 있는 건물은 삼일대로 주소를 갖는다. 종로타워빌딩 옆
국내 UCC 스트리밍 플랫폼은 크게 Youtube, 아프리카TV, Twitch 3가지로 볼 수 있다. 아프리카TV가 독주하던 시절, 갑질 논란으로 인해 트위치가 성장할 수 있었고, 다시 트위치 갑질 문제가 불거지고, 수익구조가 확실한 유튜브가 성장하면서 천하는 삼분되었다. 그렇다고 OTT서비스까지 집어삼키며 국내 최대의 공룡이 된 유튜브와 동영상 비즈니스 사업 전반의 규모를 비벼볼 순 없다. 단순히 UCC 플랫폼에서만 보면, 아프리카TV의 BJ, 트위치의 스트리머, Youtube의 크리에이터와 같은 호칭들이 제각각으로 쓰이고 있지만, 마케팅 업계 일반의 통칭은 크리에이터로 굳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시중에서는 플랫폼 구별 없이 유튜버로 불리고 있다. 마치 스테이플러는 호치키스, 복사기는 제록스, 휴대용카세트테이프플레이어는 워크맨이로 불렸던 것처럼 말이다. 아프리카 입장에선 뼈아프겠지만, 어찌 비벼볼 사이즈가 아니다. 무엇보다 이번 협업에 등장하는 양띵과 같은 경우는 세 가지 플랫폼을
4부학당의 하나인 중부학당(中部學堂)이 있었다. 그래서 이름도 중학동이다. 지금은 빌딩 몇 개가 중학동의 전부다. 일본대사관이 위치하고 있고, 평화의 소녀상도 위치하고 있다. 동십자각을 끼고 바라본 중학동. 사진 속의 건문들이 중학동의 전부다. 개탄스러운 한일위안부합의 이후, 우리 극우단체들의 테러에 가까운 행위가 일본대사관 주위에서 이뤄지고 있다. 심지어는 정의기억연대를 흔들면서, 위안부 운동에까지 똥물을 끼얹는 꼴까지 봐야 한다. 머리가 아프다. 일본대사관 앞의 평화의소녀상. 할 말이 없다. 그저... 답답하고 안타까울 뿐이다.
네이버 블로그팀이 기획하고 진행했던 이벤트, "#오늘일기 블로그 챌린지"가 조기 종료됐다. 천하의 네이버 블로그팀도 아귀만큼 혀가 길었다. 그래서 욕을 야무지게 먹고 있다. 1. 네이버는 첫 단추부터 잘못 뀄다. 네이버 블로그 챌린지 이벤트는 여러 차례 있어 왔다. 주로 네이버 페이 1000원이나, 몇 푼 되지 않은 경품 몇 개 거는 수준의 이벤트들이었다. 100만명이 참여해도 10억도 안 드는 비용에다가, 네이버 페이로 전가되기 때문에 코스트는 더 다운된다. 몇 번 해 보니 자신이 생겼나 보다. 이번에는 좀 크게 질렀다. 1만 6천원. 이렇게 되면 판이 좀 바뀐다. 네이버 페이 1000원으로 살 수 있는 재화는 한정적이고 이전에도 한계가 있지만, 16,000원은 좀 다르다. '그까짓 거 몇 푼'이란 문지방을 넘지 못했던 먼지같은 마음이 욕심으로 변할 수 있다. 역치(閾値)를 넘어선다는 것이다. 유령 계정들까지도 부활해서, 터무니 없는 규모로 이벤트가 진행됐나 보다. "다만, 매일매
GS25의 포스터와 관련해, 논란이 생겼다. 포스터 자체만 놓고 보면, 당최 논란이 생길 이유가 없다 싶었다. 그런데 논란의 내용을 확인하고 보니, 포스터가 참 뜬금없다 싶긴 하다. 일종의 프라이밍효과(priming effect)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정도가 심해지면, 거이 병적수준의 Pareidolia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젠 아무 곳에나 여성혐오와 남성혐오가 달라붙는다. 이제 젠더는 어떻게든 시비를 걸면 걸리는 이상한 함정이 되어가는 것 같다. “GS25 손가락 모양이 남성 비하? 그럼 집게로 음식 집나” GS25 논란에 황당해하는 기업들식음료·유통업계 “과도한 몰아세우기”GS25는 점주 대상 사과 중 www.hani.co.kr 거기서 끝난 게 아니다. 이번에는 무신사에서 일이 터졌다. 이게 시비걸릴 일인가 싶은 것에까지 열심히들 시비를 건다. 이쯤 되면 답 안 나오는 백래시다. 국내 1위 온라인 패션 플랫폼 무신사 창업자 조만호, 대표에서 물러나 www.chosun
KBS 드라마, "달자의 봄"이 방영되던 2007년쯤엔 홈쇼핑의 위세가 대단했다. 홈쇼핑 MD는 권력이었고, 끊임없이 갑질 논란의 대상에서 홈쇼핑이 빠지는 일이 없었다. 유통 대기업에서는 이 캐시카우를 획득하려고 부단히도 노력했었다. 그렇게 10년이 흐르고 나니, T커머스라는 용어도 생겨났다. 독점적 지위의 홈쇼핑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하여... 홈쇼핑은 다시금 변신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물론... 그래봐야 유통 공룡들의 체질개선일 뿐이겠지만 말이다. 모바일로 달려가는 홈쇼핑…“플랫폼 공룡 벽을 넘어라” TV 떠나는 젊은 세대홈쇼핑, 미래 먹거리 찾아모바일판 홈쇼핑 속속 출시제한된 플랫폼 경쟁력어떻게 헤쳐나갈지 촉각 www.hani.co.kr
서린동은 시전 부자상인들의 집과 일패기생집으로 유명했다. 그렇다 보니 근처였던 청진동은 반대급부로 목로주점과 해장국집으로 유명해졌다. 청진동이 2000년대 이후 재개발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해장국골목으로도 유명했지만, 지금은 모두 삐까번쩍한 고층빌딩으로 대체됐다. 청진동 재개발을 통해 이렇게 삐까번쩍한 건물들이 종로1가쪽으로 들어섰다. 그 와중에도 수송동 종로구청 남쪽, 그러니까 청진동 북쪽 일부 블록에는 여전히 60년대 건물들이 남아 있다. 2013년에 비해 요식업으로 업종이 전환된 경우가 많다는 것 정도의 차이가 보일 뿐이다. 2013년 종로구청 앞 삼거리 풍경. 2021년 3월 같은 삼거리의 풍경 청진옥의 선지해장국은 그 와중에도 청진동 곳곳을 옮겨다니면서 장사를 계속해왔다. 담백한 맛으로 꾸준한 인기를 누려왔다. 평양냉명이나 선지해장국, 소고기무국 같은 음식들은 맛이 참 미묘하다.
가끔 외신을 번역하는 국내 기사를 보다 보면, 상당한 위화감이 드는 언론사명이 등장하곤 한다. 이를테면 중국의 환구시보는 영문명이 Global Times다. 환구시보 역시 영문 기사를 제공하는데, 이걸 그냥 글로벌 타임스라고 보도하면 몹시 갑갑해진다. 외국 유수의 일간지들은 일요판은 따로 발간한다. 독일의 일간지 빌트 역시 일요판인 "빌트 암 존타크"를 발간한다. 그런데 "일간신문 <빌트 암 손탁>의 여론조사"와 같은 엉터리가 나오면 몹시나 강력한 위화감을 느끼게 된다. 차치하고, 그리하여 직접 찾아가 본 빌트 암 존타크의 기사에서 재밌는 표현을 찾아내게 됐다. 복수의 정당이 선거결과에 따라 연정을 하게 되는 독일다운 정치적 유산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Neue Meinungsumfrage: Grüne steigen weiter – auf Kosten der Union? Im aktuellen Insa-Meinungstrend für BILD verbessern sich CDU/CSU
처음 이커머스 업계에서 무료배송을 선언했을 때부터, 알 만한 사람들은 협력업체에 비용이 전가되고, 결국 소비자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거란 전망을 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커머스 플랫폼은 배송비를 협력업체에 전가하면서, 그만큼 줄어든 마진을 회복하기 위해 업체는 소비자에게 눈속임을 하기 시작했다. 그게 벌써 10년도 더 된 일이다. 그래도 여전하다. 이렇게 상황이 바뀌고 나니, 10년도 전에 각종 이커머스업체들이 협력업체에 보여줬던 갑질들이 고스란히 되살아나고 있다. 엠병신과 마봉춘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MBC도 쿠팡을 까고 나서 보니, 쿠팡만 개새끼가 아니었다는 점을 외면할 수 없었나 보다.
올해 들어 부쩍 관심이 늘어난 분야가 있다. 독립출판과 독립서점 그리고 동네서점과 독서문화 진흥에 관한 것이다. 동네서점이 죽어가고 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온라인서점과 유통과정에서의 비용차이를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독서율이 끊임없이 줄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격년으로 "국민독서실태조사"를 한다. 2019년에 조사를 실시해서 2020년 2월에 발표된 상태인지라, 다음 실태조사는 2022년 2월쯤에야 나올 수 있겠다. 무튼, 2019 실태조사에 따르면, - 만 19세 이상 성인 중 지난 1년간(2018.1 0~2019.9) 교과서·학습참고서·수험서를 제외한 일반도서를 한 권 이상 읽은 연 간 독서율은 ‘종이책’ 기준으로 성인 52.1%, 초·중·고 학생 90.7%임. - ‘종이책과 전자책을 합한 연간 독서율’은 성인 55.4%, 초·중·고 학생 91.9%이며, 직전 조사인 2017년 대비 성인은 6.9%p 감소하고 학생은 1.3%p 감소함. - 201
1. ESG 느닷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2021년 1월 금융위원회는 ESG 공시 의무화에 대한 입장을 표명했다. 환경(E)과 사회(S) 정보를 포함한 지속가능 경영보고서의 거래소 자율공시를 활성화 하고 , 단계적으로 의무화 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2025년까지는 자율공시 활성화를, 2025년부터 2030년까지는 일정 규모 이상 기업(대기업) 의무화를, 2030년까지는 전 코스피 상장사에 의무화하겠다는 계획이다. 개인적으로는 최근 회사 대표의 박사논문 주제가 ESG로 바뀌면서 생전 관심없던 ESG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그렇게까지 관심없는 이야기도 아니었다는 게 함정. 용어가 생소해서 그랬던 거지, 아주 관심없던 분야의 이야기도 아니었다. 기업의 환경 책임(Environment), 기업의 사회적 책임(Social), 기업의 건실한 지배구조(Governance)는 줄곳 우리가 여러 차례 목소리를 높여왔던 이야기다. 두산의 낙동강 페놀 오염사건으로 우리는 기업의 환경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별점에 대한 기억은 90년대 중반에 시네21의 별점과 함께 하는 20자평이었다. 그 이후로도 별 다섯개를 만점으로 하는 별점 평가는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할 수 있었다. 별점은 직관적이면서도 단출해서 꽤나 좋은 척도임에는 틀림없다. 네이버는 자사 서비스인 스마트플레이스와 연계되는 "영수증 리뷰"를 폐지했다. 망고플레이트의 견실한 맛집 리뷰가 탐난 네이버는 스마트플레이스를 활용해서, 자신들만의 리뷰 왕국을 만들어볼 요량으로 2019년 11월에 야심차게 진행한 프로젝트가 부러진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진짜 영수증 리뷰를 가려낼, 어뷰징 방지 대책이 제대로 서지도 않은 상태에서 개문발차했기 때문이다. 네이버는 이런 짓 정말 잘한다. ㅋㅋㅋ 그래서 엄청나게 뚜드려 맞고 올해 3분기부터 개편하기로 했다. 네이버, 맛집 별점 대신 취향 기록하는 ‘태그구름’ 띄운다 ‘별점 평가’ 자리에 가게 특성 키워드 허위·악성리뷰 부작용 줄이기 위한 실험 www.hani.co.k
1.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정말 난감하다. 서울시립미술관의 전시들을 가서 볼 때면, 꽤 자주 드는 생각이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정말 난감하다. 작년에 있었던 "일어나 올라가 임동식"전과 "하나의 사건"전을 관람하고 나서 인스타그램에 남겼던 내 감상은 이랬다. "미술 전시의 큐레이션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느끼게 해준 두 편의 전시. 그나마 계단을 오르기 전의 미혹이 덜했다. 천경자 상설전이나 가나아트 컬렉션이 있어서 현대미술에서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오랜만에 찾았던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몹시나 당황했던 두 개의 전시. "내가 당신들이 하는 이야기를 못 알아들으니, 이건 당신들의 잘못이다." 며칠전 한겨레신문에 기고된 정희진 박사의 글에서 나온 문구다. 정희진 박사가 상대를 조롱하기 위해 굳이 가져다 쓴, 날선 상호 비방에서 오간 아무말 대잔치 중에 나왔을 게 뻔한 이 문장에 크게 공감한 이유는 다른 거 없다. 동감하기 때문이다. 발화자는 수화자의 이해를 환기시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