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ya_innerjourney의 등록된 링크

키자드에 등록된 총 18개의 포스트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Naver Blog

요가에서 발견한 은유의 미학

아헹가 요가를 처음 접했을 때 낯선 표현들이 눈에 들어왔다. 특히 “날개뼈를 몸 안으로 집어넣어라” 같은 지시는 해부학적으로 다소 어색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몸에 스며드는 미묘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은유적 언어였다. 언어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움직임을 직감적으로 이해하려면, 마치 새로운 문화와 언어를 익히듯 이들의 표현 방식을 수용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도반들과 함께 수련하고 피드백을 나누며 공동체적 확증 과정(캔윌버)을 거치면서 이 언어가 단순한 지시를 넘어 몸과 마음을 연결하고, 몸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열어 주는 통로임 알게되었다. 결국 머리로만은 파악하기 어려운 깊은 이해가, 몸을 통해 반복적으로 탐구하는 과정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이 여정 안에서 은유가 전하는 섬세한 신호를 놓치지 않을 때, 비로소 그 이해는 더욱 선명해진다. 또한 도반과의 상호 피드백을 통해 경험을 나누며 공동체적인 확증 과정을 거치면서 이 언어가 단순한 지시가 아니라 몸에 대한 새로운

Naver Blog

새벽 하타 요가 클래스ㅣIyengar Yoga 기반 소그룹 수련

소그룹 새벽 아헹가 요가 – 맞춤형 지도와 깊은 수련 | 서울 오목교 새벽의 고요 속에서 깊이 있는 요가 수련을 이어갑니다. 아헹가 요가는 보조 도구를 활용하여 아사나(요가 자세)를 단순한 동작이 아닌, 세밀한 탐구의 과정으로 접근합니다. 요가를 처음 시작하는 분부터 오랜 경험이 있는 분까지 신체적 정렬과 정신적 집중이 연결되는 경험을 함께할 수 있습니다. • 수련권ㅣ월(4주) 단위 등록 가능 - 주 3회(12회) 26만원(3개월 75만원) - 주 4회(16회) 32만원(3개월 93만원) ** 연속적인 수련의 흐름을 유지하기 위해 주 1-2회 수련권은 진행하지 않습니다. ** 수련권 이월 및 정지가 불가능합니다. (등록 전, 반드시 본인의 일정과 수련 의지를 충분히 고려한 후 신청해주세요.) • 준비물 - 몸의 정렬을 확인할 수 있도록 너무 헐렁하지 않은 티셔츠 - 무릎이 보이는 바지 착용 필수 - 매트는 구비되어 있습니다. • 신청 방법 : 아래 양식 복사 후 제출 saya.inn

Naver Blog

요가의 스승과 도반

하타요가의 경전은 수련의 방향을 정리하고, 전승 지식의 단절을 막기 위해 등장했다. 누구나 한눈에 흐름을 이해할 수 있도록 체계를 갖추었지만, 그것이 곧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대체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스승과 제자의 전수 방식은 여전히 깊은 의미를 지닌다. 몸으로 배우는 과정은 책 속 문장만으로는 온전히 전해지지 않는다. 요가는 움직임과 호흡의 미세한 차이를 다룬다. 보이지 않는 작은 차이가 부상을 만들고, 깊이를 주는 것이 아니라 균형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만약 ‘더 깊은 후굴이 더 나은 수련’이라고 단순히 해석한다면, 몸은 기대와 다른 방향으로 반응할 수도 있다. 또한, 경전이 보편적인 지침을 제공하지만, 그 해석은 고정되지 않고, 적용은 개별적인 경험 속에서 달라진다. 같은 문장을 읽어도 이해의 결이 다르고, 몸의 상태와 수련의 맥락에 따라 적용 방식도 변하기 때문이다. 모든 몸은 다르다. 신체 조건, 과거의 부상, 가동 범위는 개인마다 차이가 있다. 경전이 정리한

Naver Blog

이름이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무언가를 정의할 때 우리는 이름을 붙인다. 이름이 주어지면 사물은 특정한 방식으로 이해되고, 새로운 정체성을 갖는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본질이 변형되거나 단순화될 위험이 따른다. 요가도 예외가 아니다. ‘빈야사 요가’는 흐름을 강조하고, ‘아쉬탕가 요가’는 정해진 시퀀스를 따른다. ‘리스트러티브 요가’는 회복을 돕는다. ‘소마요가’는 감각을 깨우는 방식이라 하고, ‘인요가’는 깊은 정적 속에서 조직을 열고 이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ㅇㅇ요가‘같은 명칭은 특정한 접근 방식을 강조하지만, 실상은 모두 몸과 마음의 탐구로 이어진다. 본래 요가가 추구하는 자기 관찰, 몸-마음의 통합과 큰 맥락에서는 다르지 않음에도, 이를 새롭고 독특한 용어로 전달하면 사람들이 “오~ 이건 새로운 방식이네?”라고 느낀다. ‘아헹가 요가’도 그렇다. BKS 아헹가는 “이건 그냥 파탄잘리의 요가를 바르게 전수한 것이다”라고 분명히 말했음에도, 세상은 그 가르침에 별도의 이름을 부여했다. 그렇게 한순간에 하

Naver Blog

새로운 이름, 같은 길

같은 원리를 가르쳐도 방식은 다르다. 도구를 활용해 자세를 쉽게 이해하도록 돕기도 하고, 움직임을 최소화한 채 오랜 정적인 상태에서 감각을 깊이 들여다보게 하기도 한다. 어떤 수업은 근육의 작용과 반응을 단순화해 초보자가 빠르게 개념을 익히도록 돕는다. 모두 같은 원리를 향하지만, 그 길을 걷는 방식은 다르다. 우리는 같은 이야기를 듣고도 각기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다. 누군가는 오래전 배운 원리와 연결해 “결국 같은 이야기군” 하고 깨닫고, 누군가는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다가온다. 배경, 경험, 관심사가 다르면 같은 가르침도 다른 언어로 들린다. 새로운 것에 끌리는 이유는 본능적이다. 익숙한 것보다 낯선 것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하타 요가’보다 ‘소마요가’,‘인요가’라는 이름이 더 신선하게 들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새로운 언어는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이전의 경험에서 벗어나 더 현대적이고 과학적인 무언가를 만날 것 같은 착각을 준다. 그러나 본질은 다르지 않다. 요가를 배우는

Naver Blog

새로운 것인가, 혹은 익숙한 것의 또 다른 얼굴인가

어떤 가르침을 만났을 때, 질문해볼 필요가 있다. - 그것이 완전히 새로운 것인가? - 기존의 원리가 다른 언어와 맥락 속에서 재구성된 것인가? 표면적인 차이에 집중하면 모든 것이 다르게 보이지만, 본질을 바라보면 결국 같은 곳을 향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같은 개념을 듣고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인다. 누군가는 오래전부터 익숙한 이야기를 다시 듣는 듯하지만, 누군가는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다가온다. 그렇다면 질문해볼 수 있다. “저 사람은 어떤 표현을 통해 이 원리를 새롭게 느꼈을까?” 같은 내용을 다르게 설명하는 것은, 지식과 경험 사이의 간극을 연결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차이를 이해하려 할 때, 같은 진리 안에서 더 풍부한 배움을 얻을 수 있다. 이원론을 넘어서는 길은 동서양의 사상 속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불교의 중도는 대립을 넘어 통합으로 나아가는 길이며, 요가(योग) 역시 결합과 연결을 뜻한다. “편견을 넘어 모두를 포용한다”는 법륜 스님의 말처럼,

Naver Blog

요가는 어디를 향하는가ㅣ더 깊은 수련인가, 더 어려운 동작인가

몸이 아픈데도 더 어려운 아사나를 시도하는 것은 단순한 욕망이 아니다. 뇌의 보상 체계는 목표를 달성할 때 도파민을 분비하고, 우리는 그 쾌감을 통해 다시 도전한다. 사회적 인정 욕구는 강한 동작을 수행하는 순간을 기록하게 만들고, 개인적인 정체성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동작을 기준으로 확립된다. 문화와 교육은 이를 미화하고, 성취를 통해 성장한다는 관념을 강화한다. 그렇게 요가는 때때로 자기 초월이 아니라, 자기 증명의 방식이 되어간다. 요가 ‘치타 브리띠 니로다’ 마음의 작용을 멈추는 것. 하지만 많은 이들은 더 화려한 동작을 원하고, 그 모습이 곧 ‘수련’이라고 여긴다. 더 어렵고 깊은 아사나를 할수록 더 나은 수련자라고 믿으며, 내면보다 외적 성취에 집중한다. 그리고 지도자는 그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위치에 놓인다. “더 깊이, 더 어렵게”를 원하는 수련자들 앞에서, 단순한 정렬과 호흡을 강조하는 지도자는 역량이 부족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요가는 어디를 향하는가.

Naver Blog

요가 수련이 보내는 신호 ?

아헹가 요가에서 강조하는 정확한 정렬과 도구 사용은 종종 오해된다. ‘교정요가’, 혹은 ‘동작을 쉽게 하기 위한 도구 사용’이라는 이미지로 단순화되곤 한다. 하지만 이는 아헹가 요가의 본질이 아니다. 이 방식의 핵심은 “깊은 자기 관찰”에 있다. 그러나 스스로의 한계를 똑바로 마주하는 일은 낯설고 불편하다. 정확한 정렬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내 몸이 가진 패턴과 무의식적인 습관이 여실히 드러날 때, 그동안 자연스럽다고 여겼던 움직임이 실은 불균형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나 또한 처음부터 이 과정이 익숙했던 것은 아니다. 습관적으로 움직이고 피상적으로 이해했던 몸의 감각을 다시 탐구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수련 기간 중 큰 전환점이 된 순간이고, 나는 여전히 그 과정 속에 있다. 요가는 단순한 움직임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조율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빠른 결과와 가시적인 성취를 중시하는 문화 속에서 이러한 방식은 자칫 ‘지루하고 힘든 요가’로 비춰지기도 한다. 속도를 줄이고 섬

Naver Blog

당신이 요가 수련을 대하는 태도에 대하여

크리슈나마차리아(Krishnamacharya) 모든 현대 요가는 ‘하타 요가(Hatha Yoga)’에서 시작된다. ‘현대 요가의 아버지’라 불리는 ‘크리슈나마차리아(Krishnamacharya)’는 하타 요가가 단순한 신체 훈련이 아니라, 정신적 수련과 영적 성장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발판으로 여겼다. 그는 개인 맞춤형 수련을 강조했는데, 이러한 영향으로 하타 요가는 여러 선생님의 해석과 지도 방식에 따라서 ‘아헹가 요가(Iyengar Yoga)’, ‘빈야사 요가(Vinyasa Yoga)’, ‘아쉬탕가 빈야사 요가(Ashtanga Vinyasa Yoga)’, ‘인 요가(Yin Yoga)’등 현대까지도 다양한 요가 스타일의 발전으로 이어지고 있다. 즉, 현대 요가의 수많은 분파는 결국 같은 뿌리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 중 ‘B.K.S 아헹가(B.K.S Iyengar)의 아헹가 요가’는 정렬과 정확성을 강조하며 벽, 블록, 벨트 등의 도구를 활용하는 수련법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흔히 오해

Naver Blog

요가 수련의 이해

앎을 아는 것은 새로운 노력을 하는 것이 아니라, 노력을 이완하며 주의의 초점을 부드럽게 옮기는 것과 같습니다. 당신의 경험, 특히 몸의 경험을 제 몸이나 다른 몸이 보이는 방식 에 맞추려고 노력하지 마세요. (...) 당신의 몸에 맞게 하세요. 경험 자체가 아사나(자세)입니다.

Naver Blog

하타(हठ)

‘하타 요가(Hatha Yoga)’는 강함과 부드러움, 움직임과 멈춤, 관찰이 흐름이 되는 순간을 탐구하는 과정이다. 균형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의식적으로 조율해야 한다. ‘하타(Ha-Tha)’라는 이름 자체가,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이미 말해주고 있다.

Naver Blog

변화하는 정렬, 변화하는 이해(1)

1960년대 <Light on Yoga> 출간 요가의 철학과 실천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이 책은, 아헹가 요가의 출발점이자 수많은 요가 수련자들에게 지침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요가 디피카>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어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책에서 B.K.S. 아헹가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정렬 기준이 적용될 수 있다는 전제 아래 아사나의 기본 원칙과 정렬법을 명확하게 정의했다. ‘발의 위치’, ‘척추의 직립’, ‘팔과 다리의 균형’등 그는 요가의 구조적 완성도를 정밀하게 제시한다. 그러나 이때의 정렬 개념은 개인의 차이를 반영하기 이전의 것이었다.

Naver Blog

열린 알아차림의 길

우리는 종종 “해탈”, “초월” 혹은 “무아(無我)“라는 개념을 떠올린다. 마치 한계를 넘어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가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으며, 그것을 성장이라 부른다. 특히 요가나 명상을 수련하며 ‘에고(ego)’를 넘어 더 높은 의식 상태로 진화한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 개념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나’를 없애려는 시도, 혹은 ‘초월적 깨달음’이라는 환상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에고’를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삼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다양한 각도에서 투명하게 바라볼 때, 자연스럽게 길들여짐과 왜곡이 사라질 수 있다. 즉, ‘나(ego)’ 자체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을 맹목적으로 붙들지 않는, 보다 열린 알아차림이 더 중요하다. 자기 자신을 억지로 지우려 애쓰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명확하게 바라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초월에 가까운 길이 아닐까.

Naver Blog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흔히 ‘나’라고 하면 몸과 마음을 떠올린다. 내가 느끼는 감정, 내가 가진 기억, 내 몸이 반응하는 모든 방식이 마치 나를 정의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샹키아 철학은 이 모든 것이 ‘나’가 아니라고 말한다. 샹키아에서는 존재를 두 가지로 나눈다. 푸루샤(Puruṣa) 순수한 의식, 관찰자, 변하지 않는 본질 프라크리티(Prakṛti) 물질적 세계, 몸과 마음, 감각, 우주의 원리 우리는 이 두 개념이 섞인 세계 속에서 살아간다. 몸이 움직이고, 감정이 일어나고, 생각이 떠오르면 그것이 나라고 여긴다. 하지만 샹키아적 시선에서 보면, 이러한 경험들은 단지 프라크리티의 작용일 뿐, 본질적인 ‘나’(푸루샤)는 그 모든 것을 지켜보는 존재다. 이 깨달음은 우리가 가진 가장 깊은 착각을 흔든다. ‘나는 화가 난다’가 아니라, 화라는 감정을 지켜보고 있는 ‘나’가 있다. ‘나는 슬프다’가 아니라, 슬픔이라는 현상을 경험하고 있는 ‘나’가 있다. 즉, 감정과 생각이 내가 아니라, 그

Naver Blog

변화하는 정렬, 변화하는 이해(2)

‘B.K.S. 아헹가’는 시간이 지나 더 많은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정렬이 단순한 법칙이 아니라, “각자의 몸과 상태를 이해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어떤 학생은 선천적으로 유연했지만 힘이 부족했다. 어떤 학생은 강한 근력을 가졌지만 가동 범위가 제한적이었다. 또 어떤 학생은 부상으로 인해 특정한 동작을 수행할 수 없었다. 그 차이를 보며, 그는 정렬을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각자의 몸이 최상의 균형을 찾는 과정으로 보기 시작했다. 정렬은 목표가 아니라, 몸을 더 깊이 이해하고 다듬어 가는 유동적인 탐구 과정이었다. 우리는 종종 ‘정확한 정렬’을 완벽한 형태로 이루어진 아사나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정렬의 의미는 단순한 외형의 정리가 아니다. 아헹가 요가는 신체적 안전과 정렬을 기반으로 수련을 설계한다. 도구를 사용해 정확한 정렬을 체득하고, 점진적으로 몸을 열어 가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긴다. 우리는 수련이 깊어질수록 표준화된 모양이 아닌 나에게 맞는 균형

Naver Blog

몸은 정신을 비추고, 감각은 길을 연다.

B.K.S Iyengar with Yehudi Menuhin ‘B.K.S. 아헹가’는 정렬을 통해 신체의 흐름을 정제하고 의식의 변화를 이끌어낸다고 강조한다. 신체는 정신을 향해 열리고, 정신은 신체를 통해 드러난다. ‘정렬’은 단순한 동작 조정이 아니다. 그것은 ‘집중’을 통해 신체의 흐름을 다듬고, 그 과정에서 의식의 깊은 변화를 유도하는 ‘심리적 접근’이다. 정신은 신체를 통해 드러나며, 신체는 정신을 향해 나아간다. 이 순환 속에서 수련은 지속적으로 깊어지고, 단단해진다. 결국, 저마다의 내면에 잠든 힘을 깨운다.

Naver Blog

“그래서 .. 무슨 요가 수련하세요?”

Patanjali(파탄잘리) “하타요가와 아헹가 요가는 뭐가 다른 거예요?” 10년째 받아 온 이 질문이 .. 내 수련을 돌아보게 했다. 요가는 신체, 호흡, 마음을 함께 다루는 통합적인 수련이다. 하타 요가는 그 큰 줄기 중 하나이며, 아헹가 요가는 하타 요가의 깊이를 탐구하는 ‘한 방식’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이를 오해한다. 아헹가 요가는 도구를 활용한 정렬과 섬세한 탐구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도구의 사용을 쉬운 요가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도구는 아헹가 요가의 본질이 아니다. 오히려 신체를 더 깊이 이해하고, 수련을 보다 정교하게 다듬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여전히 ‘도구 요가=쉬운 요가’라는 편견이 존재한다. 때때로 숙련자조차 아헹가 요가를 피상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모습을 본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되묻는다. “하타 요가를 어떻게 이해하고 계신가요?” 이 질문을 던지는 순간, 더 큰 탐구가 시작된다. 서로 다른 해석과 경험이 오가면서, 익숙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