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한 가지 질문에서 출발한다. 원시 인류는 왜 자기 부족을 동물의 이름으로 불렀는가. 단순한 질문 같지만 프로이트는 이 질문 하나를 붙들고 종교와 도덕과 사회와 예술의 기원까지 끌고 간다. 4장을 읽는 법으로는 먼저 기존 이론들을 따라가되 그것들이 왜 부족한지를 본다. 토템을 설명하려는 앞선 시도들을 명목론적·사회학적·심리학적 이론으로 나눠 차례로 검토한다. 이름을 구별하려는 필요에서 토템이 생겼다는 설(명목론), 식량 자원을 둘러싼 집단의 본능에서 생겼다는 설(사회학), 아룬타 부족의 수태 관념에서 단서를 찾는 설(심리학)까지. 여기서 중요한 건 프로이트가 이 이론들을 소개만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각 이론이 토테미즘의 두 핵심—토템을 죽이지 말 것, 같은 토템의 여자와 결합하지 말 것(족외혼)—을 끝내 함께 설명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짚어낸다. 이 두 금기가 왜 한 몸으로 묶여 있는가. 기존 이론들이 풀지 못한 이 매듭이 프로이트가 비집고 들어가는 자리다.
둘째로 아이의 동물 공포증이라는 단서는 갑자기 화제를 바꾼다. 아이들이 어느 날 특정 동물을 무서워하기 시작하는 현상으로, 말, 개, 닭을 두려워하는 아이들이 있다. 분석해보면 그 공포는 늘 같은 곳을 향한다. 아이가 소년인 경우, 동물 공포의 정체는 매번 아버지였다. 꼬마 한스는 말을 무서워했지만 그 말은 아버지의 대리물이었고, 꼬마 아르파드는 아예 자기가 닭이 되어 닭을 죽이고 또 입 맞추었다. 프로이트는 여기서 결정적인 한 걸음을 내딛는다. 토테미즘의 공식에서 토템 동물 자리에 아버지를 대입하자는 것. 그러면 두 금기는 오이디푸스의 두 죄—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차지하는 것—와 정확히 겹친다.
셋째로 토템 식사와 원시 무리의 살해이다. 이제 프로이트는 로버트슨 스미스의 토템 식사와 다윈의 원시 무리 가설을 끌어와 결합한다. 다윈은 인류가 본래 강한 수컷 하나가 모든 암컷을 독점하고 자란 아들들을 쫓아내는 무리에서 살았으리라 보았다. 프로이트는 여기에 사건 하나를 놓는다. 신경증 환자에게는 생각이 행동을 대신하지만 원시인에게는 행동이 곧 생각이었다는 것. 그래서 그들은 의도한 바를 실제로 했으리라는 것. 프로이트는 확실성을 직접 주장하진 않으면서도 이 자리에 문장 하나를 놓아둔다. 괴테에게서 빌려온 그 한 줄로 4장은 닫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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