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총통 상황회의에 대한 작전과의 끔찍한 불안감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참모총장은 당연히 히틀러와의 일일 상황 보고에 필요한 문서를 가지고 있어야 했다.
OKH 밖에서 근무하는 우리 같은 일반참모장교들도 그건 잘 알았다. 하지만 총통 회의가 1500시에 시작되었기 때문에 아침 1000시 정도까지의 보고만을 확보할 수 있었고, 그마저도 통신이 제대로 작동한다는 전제하에 군단 수준에서만 가능했다.
구데리안 상급대장은 험악하기로 악명이 자자했다. 이 시점에서 육군 참모총장이라는 그의 위치는 부러운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그 역시 총통 회의 때문에 극심한 압박에 시달리는 상태였다. 상황이 더욱 불투명하고 어려워지면 그가 작전과장과 그 젊은 부하들을 더욱 괴롭혀대던 것은 인간적 차원에서는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관점에도 한계가 있었고, 특히 평범하지 않은 상황에 처한 바이히셀 집단군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랬다. 작전과에서는 사정을 전혀 이해해 주지 않았다.
훈련받은 일반...
원문 링크 : 45년 독일군의 슬픈 중간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