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11월 5일 뉘른베르크에서 취조받는 구데리안. 심문은 모두 독일어로 이루어졌다.
통역관: 증인이 1944년 7월 21일의 지휘계통을 그린 도표를 넘겼음을 기록한다. 이 도표는 심문관인 사비예키 박사가 보증했다.
증인: 그리고 1945년 3월 28일의 논쟁의 마무리로, 나는 직위에서 해임되었다. 아마 내가 괴링, 리벤트로프, 되니츠에게 종전을 종용했다는 사실을 히틀러가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Q. 실제로 그랬나, 추측인가?
A.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다. 1월 이후로 주요 인사들에게 그런 식의 영향을 주려고 노력했었다.
Q. 언제 전쟁에서 이미 패배했다고 확신했나, 장군?
A. 확실히 말하기 어렵다.
오늘 아침에 말했듯, 러시아에 대한 선전포고는 멍청한 짓이었다. 우리의 분수에 넘치는 일이라고 할 만큼 멍청한 짓이었다.
(얼마간의 비공식 논의 이후, 증인은 계속했다.) 내가 해임되기 전, 브라우히치도 비슷한 이유에서 해임되었다.
전쟁포로들의 사살, 민간인들의 바람직하지 못한 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