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의 콘서트홀은 고요했습니다. 매년 이맘때면 전 세계의 지성이 모여 인류의 위대한 진보를 축하하던 노벨상 시상식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연단은 비어있었고, 수상자의 이름은 호명되지 않았습니다. 1941년, 노벨생리의학상은 그 주인을 찾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1940년에 이어 2년 연속으로 노벨위원회가 수상자 선정을 '보류'한 이례적인 사건이었습니다. 1939년 9월 1일,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며 시작된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쟁 [World War II]의 불길이 전 유럽을 휩쓸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과학자들의 실험실은 연구 대신 전쟁 물자를 생산하고 있었고, 빛나던 지성들은 조국을 위해 총을 들거나, 혹은 박해를 피해 뿔뿔이 흩어져야 했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1941년의 '텅 빈 시상대'는 결코 과학의 진보가 멈췄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인류는 생존이라는 절박한 필요성 아래, 의학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견의 문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