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국어시간, 특히 시를 공부할 때에는 ‘공감각(共感覺)적 심상’이라는 것이 발목을 잡았다.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 - 김광균, <외인촌>, ‘부서지는 얼음소래가 / 날카로운 호적(呼笛)같이 옷소매에 스며든다’ – 김광균, <성호부근(星湖附近)>,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 한용운 시 <님의 침묵> 등 많은 시인들이 여러 감각을 시에 녹여냈다.
그렇지만 나는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을 공부하려니 ‘아 이런 문구에 공감각적 심상이 쓰였구나’ 하고 외우는 것 말고는 답이 없었다. 그래서 공감각을 소유한 사람으로 유명한 고흐나 칸딘스키, 리스트 등을 한 때 동경했던 적도 있었다.
프란츠 리스트는 독일 바이마르 악장에 취임해 “푸르게 연주해 달라”고 주문해 단원들을 당황하게 만든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실제로 공감각 능력을 가진 사람이 23명 중 한 사람은 된다(책 p. 67)고 한다.
대략 4%에 이르는 수치라니 신기한 노릇이다. 대략 10년 전에 유권자의...
원문 링크 : 월간 뉴턴 Newton 부록 중 <당신의 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