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조선 기록 천총 연간에 후금은 한의 적실로 삼궁 복진 또는 삼위 복진을 정했습니다.
중궁복진, 서궁복진, 동궁복진으로 불렸습니다. 여진족은 동서의 우열 개념이 없어서 먼저 세워진 서궁복진 붐부타이가 제2복진, 나중에 세워진 찰로특박이제길특씨가 제3복진이었죠.
숭덕 연간의 오궁후비는 삼궁복진의 확장판입니다. 비록 중원왕조의 제도를 모방해서 중궁황후의 권위와 의전이 확고해졌지만 다른 사궁도 적실로 인정받았죠.
다음은 유득공의 고운당필기 3권에 실린 심양일기의 관저궁 신비 해란주 장례 기록입니다. 9월 13일 청나라 황제가 돌연 심양으로 돌아갔다. 둘째 부지(夫支) - 부지는 황후이다. - 의 병환이 위중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세자 역시 심양관으로 돌아갔다. 9월 18일 부지가 죽어서 상화지(霜華紙) 100권, 백면지(白綿紙) 1000권, 백지(白紙) 2000권, 단목(丹木) 200근을 부의하였다. 9월 29일 청나라 황제가 북문 밖 부지의 빈소에 갔는데, 세자와 대군도 함께 갔다...
원문 링크 : 청초 삼궁 황후 - 일부다처제의 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