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철학적 상상력이 희곡 형식을 만난 이 작품은 사후 세계를 배경으로 변호사·검사·재판장이 등장해 한 인간의 삶 전체를 법정에서 심판한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대화와 독백으로 구성된 희곡 구조 덕분에 연극의 대본을 읽는 듯한 경험이 흥미를 더하고, 프랑스 문학 전문 번역가 전미연의 번역으로 열린책들을 통해 새롭게 다가온다. 주인공 아나톨은 세상을 떠난 뒤 사후 법정에 서게 되고 현생에서 살아온 삶이 증거로 제출되며, 살아있는 사람들의 법정을 옮겨 놓은 듯한 구도가 이야기의 핵심이 된다. 챕터마다 등장인물들이 뚜렷한 역할을 맡아 연기하듯 이야기를 이끌어가는데, 이 형식은 작품의 주제인 삶과 타인의 시선 앞에서의 평가를 함의한다.
읽고 나서는 희곡 형식 덕분에 속도감이 좋고 지문이 많지 않아 몰입도가 높다. 영화 자막처럼 눈이 빠르게 흐른다. 다만 참신함은 다소 아쉽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이미 국내외에 사후 세계를 다루는 작품이 많아 설정의 신선함이 이전 작품들만큼 크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후반부에선 예상치 못한 감동이 찾아오며 잔잔한 결말의 기대와 다르게 여운을 남긴다. 초반부와 후반부의 개연성이 완벽하게 맞물리지 않는 느낌이 남아 머릿속에 남았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처음 접하는 독자보다는 이미 그의 세계관에 빠진 팬이 새로운 색깔로 즐길 수 있는 작풍이다.
희곡의 형식으로 빠르게 읽히되 베르베르 특유의 참신함은 다소 아쉽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사후 세계를 다루는 여러 작품과의 비교 속에서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지만, 설정의 신선함이 결정적 강점으로 작용하진 않는다. 그래도 소설 후반부의 정서적 울림과 결말에 대한 여운은 분명히 존재한다. 이런 점들로 미루어 보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팬이라면 또 다른 색깔로 즐길 수 있는 작품이며, 희곡이나 연극 대본 형식에 익숙한 이들에게 특히 흥미로울 만한 구성이다. 이와 같은 구성은 독자에게 삶의 무대가 무엇인지를 묻게 하는 매개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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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링크 : 『심판』— 프랑스판 신과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