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서, 차라리 어두워버리기나 했으면 좋겠는데벽촌의 여름날은 지리해서 죽겠을 만치 길다. 동에 팔봉산.
곡선은 왜 저리도 굴곡이 없이 단조로운고? 서를 보아도 벌판, 남을 보아도 벌판, 북을 보아도 벌판, 아이 벌판은 어쩌라고 이렇게 한이 없이 늘어 놓였을꼬?
어쩌자고 저렇게까지 똑같이 초록색 하나로 돼먹었노? 농가가 가운데 길 하나를 두고 좌우로 한 십여 호씩 있다.
휘청거린 소나무 기둥, 흙을 주물러 바른 벽, 강낭대로 둘러싼 울타리, 울타리를 덮은 호박넝쿨, 모두가 그게 그것같이 똑같다. 어제 보던 대싸리나무, 오늘도 보는 김서방, 내일도 보아야 할 흰둥이, 검둥이.
해는 백 도 가까운 볕을 지붕에도, 벌판에도, 뽕나무에도 암탉 꼬랑지에도 내려쪼인다. 아침이나 저녁이나 뜨거워서 견딜 수가 없는 염서(炎署) 계속이다.
나는 아침을 먹었다. 그러나 무작정 널따란 백지 같은 <오늘>이라는 것이 내 앞에 펼쳐져 있으면서, 무슨 기사라도 좋으니 강요한다.
나는 무엇이고 하지 않으면 안...
원문 링크 : 이상, <권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