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얼굴이 흐릿해야 하는 이유 계단이었다. 3층인지 4층인지, 올라가는 중인지 내려가는 중인지, 그것도 확실하지 않은 계단이었다.
벙커를 찾아 건물 주변을 돌다 다시 차로 돌아가던 사람이 잠깐 멈추고, 위를 올려다보았다. 카메라를 들고 있던 PD와 눈이 맞았다.
그 PD가 움찔했다고, 나중에 말했다. 계엄군이었으니까, 총기를 소지하고 있었을 테니까.
이명세 감독은 영화 1, 2, 3을 그 장면에서 시작했다. 12·3의 서사를 펼쳐놓고 장면을 배열한 것이 아니라, 그 계단의 눈빛 하나로부터 나머지를 다 끌어냈다. 그런데 그 얼굴이 흐릿하다.
카메라가 좋지 않았고 밤이었고 어두웠다. 어떤 감독이라면 후반작업에서 그 충동을 느꼈을 것이다—화질을 높여서, 우리를 똑바로 쳐다보는 그 눈을 선명하게 만들고 싶다는 충동을.
이명세는 그렇게 하지 않았는데, 그 선택이 이 영화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얼굴이 특정되면 그것은 한 개인의 죄가 되고, 흐릿할 때만 거기에 누구든 들어갈 수 있다.
처벌...
원문 링크 : 흐릿한 얼굴, 일상이라는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