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는 소리가 없었다. 아니, 소리가 오기 전이었다. 폭발은 이미 일어났고, 버섯구름은 이미 피어오르고 있었고, 과학자들은 이미 환호하고 있었는데도 소리는 없었다. 크리스토퍼 놀란이 그 장면을 찍은 방식은 빛이 먼저고 충격파가 뒤따른다는 관찰을 보여 준다.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 사이에 시간이 존재한다는 직감이 남고, 침묵을 듣는 듯한 체험은 장면이 끝난 뒤에도 계속 남아 있다.
렌즈를 갈아 끼운 갈릴레오는 맨눈으로 보이지 않던 것을 보았다. 유리를 틀에 끼우자 달과 목성의 위성이 드러났고, 수백 년의 우주관이 흔들렸다. 이성이 세계를 바꾼 것이 아니라,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이 바꾼다는 인식이 자리한다. 한나 아렌트의 말처럼 지구 바깥의 지점을 손에 넣은 사건으로 평가되며, 이는 렌즈라는 도구의 한계를 드러낸다. 실험은 조건을 설정하고 자연의 응답을 요구하는 과정으로, 작동 여부가 진리의 판단 근거가 된다.
뉴멕시코 호르나다 델 무에르토의 트리니티 실험은 조건을 만들고 기다린 끝에 폭발로 작동했고, 입증되었다. 오펜하이머는 그 순간 산스크리트어의 구절이 떠올랐다고 언급했고, 바가바드기타의 말을 빌려 자신이 죽음의 존재로 변모했다는 느낌을 남겼다. 폭발이 가라앉은 뒤 과학자들은 악수했고, 손은 서로를 쥐었다. 그러나 악수하는 얼굴은 기쁨 속에서도 어딘가 냉담한 분위기를 내비쳤고, 그 웃음의 출처를 알 수 없었다.
아렌트의 관점은 인간이 제작하는 존재로 보되, 제작 논리가 인간 사이의 자리를 잠식하는 점을 두려워한다. 악수는 원래 함께 결정하고 책임을 지는 행위여야 하지만, 트리니티의 악수는 설계가 작동했음을 확인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손 너머에는 이미 아무도 없고, 폭발은 모래를 녹여 유리 결정체를 남겼다. 그 유리를 렌즈로 갈면 다시 하늘을 보게 되고, 그것이 무엇을 보여줄지 어디에 닿을지는 만든 이가 알지 못한다. 도구가 완성되면 더 이상 도구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은 세계를 바꿀 예고였다.
감각은 이성의 예측을 벗어나 빠르게 따라오고, 오펜하이머의 죽음의 언어는 실패가 아닌 성공의 증거로 떠올랐다. 이제 그것은 자기 것이 아니며, 사막에는 빛이 먼저 오고, 그 뒤로 충격파가 온다. 인간이 만든 것이 인간의 감각보다 앞섭고, 과학자들은 손을 맞잡아 완성을 인정한다. 매일 일상에서도 되돌릴 수 없는 것들이 만들어진다. 오늘은 무엇을 완성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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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링크 : 소리가 없는 사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