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현의 구법 여정과 걷는다는 것의 의미
399년, 동진의 승려 법현이 장안을 떠났다. 나이는 예순다섯이었다. 함께 출발한 승려 넷과 길에 합류한 이들이 있었다. 목적지는 인도가 목적이었다. 이유는 하나 — 중국에 율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승려가 지켜야 할 계율을 담은 문헌이 온전히 번역되지 않았고, 빠진 데가 있었고, 틀린 데가 있었고, 아예 없는 것도 있었다. 법현은 그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예순다섯에, 걸어서 가기로 했다. 왜 예순다섯이었는가 라고 묻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만, 서른에 알았을 수도 있고, 마흔에도, 쉰에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율장이 없다는 것은 어제오늘의 사실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해, 그 나이에, 발을 뗐다. 그 어느 날이 언제인지는 기록에 없다. 법현도 쓰지 않았다. 그냥 떠났다고 썼다.
돈황을 나서자 사막이 시작됐다. 법현은 그것을 사하라고 불렀다. “사하에는 악령과 뜨거운 바람이 많이 있어서 모두 죽고 단 한 명도 그 목숨을 보전하지 못했다. 하늘에는 새도 날지 않고 땅에는 뛰는 짐승도 없다. 멀리 보아도 눈 닿는 데 없고 갈 곳도 알지 못한다. 다만 죽은 자의 해골이 이정표가 될 뿐이다.” — 불국기. 새가 없다. 짐승이 없다. 눈이 닿는 곳에 아무것도 없다. 법현은 그것들을 차례로 적었다. 감탄도 없고 탄식도 없다. 그런데 마지막 문장에서 멈추게 된다 — 죽은 자의 해골이 이정표가 될 뿐이다. 길 위에서 먼저 죽은 사람의 뼈가 다음 사람에게 방향을 알려준다. 무서운 말인데, 읽다 보면 그 안에 다른 것이 있다. 먼저 간 이가 뒤에 오는 이를 안내한다. 실패가 길이 된다. 법현은 그 뼈들 사이를 걸었고, 살아서 빠져나왔다.
모래 강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그냥 지나치기가 어렵다. 강은 흐른다. 사막도 바람이 불 때마다 흘렀을 것이다, 방향도 없이. 강을 건너는 사람은 저편을 알고 건너고, 사막을 건너는 사람은 저편이 있는지도 모른 채 들어간다. 법현은 그것을 강이라 불렀다. 건널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렇게 불러야 발이 움직였기 때문인지, 알 수 없다. 사막 너머에 파미르 고원이 있었다. 소설산의 북쪽 사면을 오르던 중 찬바람이 갑자기 일었고, 일행 전체가 굳었다. 소리를 낼 수 없다고 법현은 썼다. 그때 혜경이 쓰러졌다. 입에서 흰 거품이 나왔다. 혜경이 법현에게 말했다. “나는 도저히 다시 살아나기는 어렵겠군요. 빨리 가십시오. 머뭇대다간 함께 죽어서는 안 됩니다.” 법현은 혜경의 몸을 어루만졌다. 애통해했다고 썼다. 그리고 걸었다. 사막에서 해골을 봤을 때 아무 말도 쓰지 않았다. 바람이 사람을 죽일 때도 쓰지 않았다. 혜경이 거품을 토하며 쓰러졌을 때, 처음으로 손을 댔다. 어루만졌다고 썼다. 그 손이 몸에서 떨어지는 데 얼마나 걸렸는지 기록은 없다. 다음 날의 이동은 그냥 이어진다. 혜경이 법현을 보낸 것이다. 법현이 혼자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라는 말이 없으면 어떻게 했을지 기록은 거기까지 들어가지 않는다. 여섯 해를 걸어 굽타 제국에 닿았다. 법현은 거기서 범어를 배우고, 율장을 필사하고, 불적을 돌아봤다. 도정은 그곳에 남겠다고 했다. 고국에는 계율다운 계율이 없다고 했다. 돌아가봐야 무엇하겠느냐고 했다. 법현은 그 말을 듣고 혼자 짐을 쌌다. 장안을 함께 떠난 사람이 인도에서 내린다고 했을 때, 법현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록에 없다. 다만 도정은 남았고 법현은 떠났다. 같은 없음을 보고 온 두 사람이, 그 없음 앞에서 다른 발을 내딛었다. 귀로는 배였다. 실론을 거쳐 인도양을 건너는 길이었다. 폭풍이 왔다. 배가 흔들렸고, 상인들이 짐을 버렸고, 법현도 가진 것을 버렸다 — 병과 발우만 남겼다고 썼다. 병과 발우. 승려에게 그것은 몸과 같다. 그것만 들고 파도 위에 있었다. 표류하다 도착한 곳이 어딘지 몰랐다. 해안에 내려 풀과 나무를 보고서야 중국임을 알았다고 썼다. 식물을 보고 고국을 알아봤다는 것 — 그 문장이 길다. 13년 만에 돌아온 사람의 눈이 맨 처음 간 곳이 나무였다. “나 법현은 이 나라들에 머물기도 하고 지나기도 하며 총 서른 개 나라를 거쳤다. 모래와 자갈을 헤치고 산과 강을 넘었다. 여기에 기록하여 전하는 자들이 알게 하고자 한다.” — 불국기. 후기 전하는 자들이 알게 하고자 한다. 법현이 쓴 것 중 가장 짧고 가장 무거운 문장이다. 자신의 여정을 남기는 것이 아니었다. 다음에 걸을 사람을 위해 길을 놓는 것이었다. 걷는 행위가 끝난 자리에서 쓰는 행위가 시작됐다. 발이 밟은 것을 손이 다시 밟았다. 법현이 죽은 것은 422년이다. 귀국 후 10년을 더 살며 율장을 번역했다. 자신이 없다고 느꼈던 것을 직접 채웠다. 그로부터 두 세기가 지나 현장(현장)이 인도로 떠날 채비를 했다. 그의 손에 불국기가 있었다. 법현이 건넌 사막, 법현이 넘은 고원, 법현이 닿은 항구 — 현장은 그것을 읽고 걸었다. 소설산 북쪽 사면에서 혜경이 쓰러진 자리도, 현장은 불국기로 먼저 알고 지나쳤을 것이다. 법현이 어루만졌던 그 자리를, 현장은 걸어서 통과했다. 처음에 그것은 없음이었다 — 율장이 없었고, 길이 없었고, 지도가 없었다. 없는 것을 찾아 걸어간 사람이 돌아와 쓴 것이, 다음 사람의 발이 됐다. 예순다섯에 발을 뗀 이유는 아마 그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발이 결국 그 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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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링크 :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