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4년 12월, 스톡홀름. 이번에는 전쟁이 이유가 아니었습니다. 1916년, 1917년, 1919년의 노벨화학상 공백은 제1차 세계대전의 혼란과 그 여파로 설명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1924년의 공백은 달랐습니다. 세계는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었고, 과학계도 서서히 전쟁의 상처에서 회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1924년에는 화학상 수상자가 없었을까요? 노벨위원회는 단순히 "충분히 뛰어난 후보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오히려 너무 뛰어난 후보들이 있었지만, 그들의 업적 중 어느 것을 먼저 인정해야 할지의 결정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1924년은 화학의 역사에서 여러 혁명적 발견들이 동시에 무르익어 가던 시기였습니다. 노벨위원회는 신중한 판단을 위해 한 해를 더 기다리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1924년의 화학계 — 무르익어가는 발견들 1924년은 화학계에서 여러 중요한 흐름이 교차하던 해였습니다.
콜로이드 화학의 황금기 1924년 전후로 콜로이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