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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 노벨평화상] 알프레드 프리트 · 토비아스 아서 : 법과 언론으로 평화의 토대를 세운 두 거장

 [1911 노벨평화상] 알프레드 프리트 · 토비아스 아서 : 법과 언론으로 평화의 토대를 세운 두 거장

Previous image Next image ️ 화약고 위에 선 유럽, 평화를 외치는 목소리들 1911년의 세계는 거대한 폭풍 전야였다. 빌헬름 2세의 독일은 해군력을 급속도로 증강시키며 영국과 첨예한 긴장을 빚고 있었고, 발칸 반도에서는 오스만 제국의 쇠락과 함께 세르비아, 불가리아, 그리스 등 신흥 민족국가들이 영토 야욕을 불태우고 있었다.

유럽의 주요 열강들은 삼국동맹과 삼국협상으로 나뉘어 서로를 겨냥한 채 촘촘한 동맹망을 구축하고 있었으며, 군비 경쟁은 날로 가속되었다. 1905년의 모로코 위기, 1908년의 보스니아 합병 위기 등 일련의 사건들은 유럽이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화약고임을 거듭 증명하고 있었다. 이러한 불안한 정세 속에서도 평화를 향한 열망의 불꽃은 꺼지지 않았다. 1899년과 1907년, 두 차례에 걸쳐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평화 회의는 그 상징적 정점이었다. 44개국 대표들이 참여한 이 회의에서 국가들은 처음으로 전쟁의 수행 방식에 관한 규범을 성문화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