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 정원에서 나는 사랑초를 키우며 해마다 두 차례의 찬스가 찾아온다고 믿는다. 봄에는 추식 구근 식물이 꽃으로 화답하고 가을엔 사랑초의 꽃으로 계절이 끝나간다. 지금이 바로 그 때다. 후덕한 아가씨 같은 땅콩 사랑초가 크리스피 플로라의 다음 순서가 되어 자태를 드러낸다. 지난해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꽃 봉오리가 많이 맺혀 잎사귀도 크고 푸짐하다. 하지만 가장 시원하고 깔끔한 분홍빛 꽃은 여전히 맑다. 노란 바람개비 사랑초도 드디어 피기 시작했고, 나는 이 모든 변화가 어쩌면 구근식물의 성숙과 직결된다고 느낀다. 지금까지 사랑초를 모두 모종으로 들여왔기에 작고 약한 꽃으로 만족해야 했던 때가 있었다. 바람개비는 예전엔 한 송이뿐이었지만 구근을 충분히 얻어 두었기에 앞으로의 기대는 크다. 다만 도화 사랑초만 남아 있었다면 폼폼이 어디 갔는지 헷갈리기도 했다. 화분이 많아 꽃이 지고 잎이 말라 버리면 구분하기 어렵다. 꽃이 피기 전 이름표를 달았는데 피면 빼버리니 이런 일이 생긴다. 지고 나서도 다시 달아두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이제 다글다글한 이파리가 매력적인 도화 사랑초가 남아 있다. 아직 피지 않았고 꽃도 잎처럼 촘촘하게 핼 것이다. 베란다에서 살아내는 식물들을 노지로 옮겨 자연의 힘을 느낀다. 햇빛과 바람이 부족한 환경에서도 아침에 문을 열면 작은 생명들이 가져다주는 기적을 안다. 그래서 좁고 통로가 비좁아도 베란다는 늘 나를 고민하게 한다. 이곳에서도 건강하게 꽃을 피워내려면 무엇이 최선일까를 생각한다. 구근식물이 내게 주는 배움은 커다란 축복이다. 병충해도 많지 않고 수확을 깜박한 채 지나가더라도 다음 해에는 다시 꽃을 피운다. 다행히 햇빛이 충분해 현화식물들이 끝없이 피어 오른다. 파종과 수확의 고된 일들은 뿌리의 흙까지 탈탈 털어 확인하는 과정이자, 거두고 소독하고 새 흙에 다시 심어주며 꽃으로 보답받는 순환이다. 이 시간들 속에서 구근의 갯수를 세는 일도 한층 진실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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