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주의는 고대의 소피스트, 아낙사고라스에서 나타났고 여전히 철학사에 그 이름을 드러낸다. 이 당시의 회의주의는 피론(Pyrrho), 플라톤의 후예들인 중기 및 신아카데미아 학파에서 나타난다.
이들 회의주의는 이성과 감각지각에 대해 신뢰하지 않는다. 이성은 사물들의 내부 실체 안으로 뚫고 들어갈 수 없다고 말했다.[1] 그들은 어떤 것도 확신하지 못했으며 그러므로 가장 확실한 삶의 방식은 모든 판단을 유보한 체 가장 높은 개연성을 따라 사는 삶이다.
중기의 아카데미아의 아르케실라오스는 어떤 표상이든 그 표상에는 강렬한 주관적 확실성이 담지되므로 참된 객관성은 있을 수 없다고 하여 회의주의를 다시금 표방했다. 신아케데미아에서는 키레네의 카르네아데스가 회의주의를 주창했다.
카르네아데스의 회의론도 감각지각의 진리성이 불가하다고 생각했고 이 감각에 근거한 모든 이성판단 또한 오류투성이라 생각했다. 또한 인간은 그 어떠한 것도 증명할 수 없는데, 왜냐하면 모든 증명은 어떤 전제를 필요하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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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링크 : 기독교와 고대철학(15) - 회의주의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