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폴은 남해회사의 파산으로 인한 정치적 혼란에 개입하게 되었다. 그는 당시 정치적으로 일선에 있지 않았기에 이 사건과 관련된 직접적 책임이 없었다.
이런 연유로 월폴의 재정분야 능력을 익히 알고 있던 왕이 그에게 이 사건의 해결사 역할을 해주기를 요청하자 정치 일선에 다시 들어오게 되었다. 월폴은 다시 재무장관직에 올라 남해회사의 채무를 정리하고, 국민의 불만과 언론의 비난을 완화하는 데 이바지했다.
하원의장 아서 온슬로우 월폴은 기대 이상으로 남해거품사건을 잘 해결하였으며 그런 연유로 휘그당의 당 대표가 되었다. 당 대표가 된 그는 당내 스텐호프와 선들랜드 백작 같은 반대파를 내보내고, 자기의 정치적 파워를 확고히 하였다.
이렇듯, 월폴은 휘그당을 하나로 뭉치자 세간에서 대단한 정치가라고 평가하면서 그의 정치력에 신뢰감도 가졌다. 의회 대변인 아서 온슬로우는 “월폴은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과 기회를 잡았다.
그는 휘그당을 단결시키고 영국민의 존경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17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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