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테레지아 당시 유럽 대륙은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문제로 혼란스러웠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조의 카를 6세는 남자 후계자가 없어서 딸 마리아 테레지아를 왕위에 올릴 수 있도록 '국사조칙 (Pragmatische Sanktion)'이라는 법을 만들었다. 1740년에 카를이 사망하고 마리아가 왕위를 계승하려고 하자, 합스부르크와 동맹한 에스파냐를 포함한 다른 유럽 왕국들이 반대하고 나서게 되었다.
프랑스가 합류한 것을 기념하는 프로이센 메달 이즈음,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는 오스트리아 왕실의 내란을 기회로 삼아 슐레지엔이라는 오스트리아의 영토를 점령하려고 했다. 이는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을 불가피하게 만들었고, 프랑스도 프로이센과 동맹하여 자기 영향력을 확장하고자 했다.
데팅겐 전투에 참여한 조지 2세가 담긴 메달 한편, 영국은 프랑스의 개입이 유럽 내 권력 균형을 위협하리라 판단하여 오스트리아와 동맹을 맺었다. 이로써 유럽은 오스트리아왕위계승전쟁이라는 장기전에 휘말리게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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