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아이를 방관할 때 군대에서 폐급을 따돌리는 것을 방관할 때 다수는 언제나 소수를 두고서 똘똘 뭉쳤다. 정말 똘똘.
내가 연애를 못하는 아니, 안하는 이유는 똘똘 뭉칠 때의 감정이 역겹기 때문이다. 대중은 공감을 바란다.
IQ보다 EQ가 사회 생활에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인간은 언제나 공감을 원하고 공감을 통해서 사람들을 거느린다.
난 개 중에 소수도 다수도 아니였다. 언제나 늘 어떤 집단에 속해 있을테면 속에서 비천한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예전에 다녔던 학원에서 그만 둔 사람들을 보고 똘똘 뭉쳐서 뒷담을 깔 때나 자기들의 잣대를 두고서 함부로 남을 깎아내리며 히히덕 거릴 때나 그렇게 역겨울 수가 없었다. 어째서 공감이 선한 감정이란 것인가.
공감은 또다른 폭력이다. 나는 언제나 소수들을 헤아린다.
왜 그들이 욕을 먹어야 하는가. 그리고 그것이 어째서 정의로운 일인가.
진정 삶에 정답이 있단 말인가. 그런대로 각자의 삶은 각자의 특별...
원문 링크 : 공감같은 소리하고 앉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