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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여쁘다, 라는 말이 사라진 자리 - 감정의 격동 3

 어여쁘다, 라는 말이 사라진 자리 - 감정의 격동 3

훈민정음 서문의 어엿비 여겨 글자를 만들었다는 말은 단순한 애정의 표현이 아니다. 어여쁘다 안에는 귀여움과 가여움이 함께 살아 있었고, 사랑스러움과 안쓰러움이 한 단어로 묶여 감정의 한 단면을 담아내는 힘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어여쁘다는 오늘날에는 예쁘다로 축약되고, 얼굴이 곱다는 뜻만 남아 버렸다. 가슴을 찌르는 묵직한 감정은 사라져 버리고, 말의 축에 맞춰 겉으로 보이는 아름다움만 남아 버린 셈이다. 종이상자 앞의 작은 고양이가 불러일으켰던 그 복합적 감정은 이제 이름 없이 남아 있다.

반면 옆 나라의 말은 같은 소리로도 서로 다른 뉘앙스를 포섭한다. 일본어 가와이의 경우 작고 무해한 대상 앞에서의 애정과 함께 가엾고 불쌍한 느낌도 한꺼번에 담아낸다. 한 단어로 두 가지 서로 다른 감정을 표기하는 현상은 한국어 안에서도 존재하지만, 가와이는 현재의 한국어 감정 체계에선 더 넓은 스펙트럼을 가능케 한다. 이처럼 감정의 이름은 각 땅의 시대와 입맛을 거치며 굳어지게 마련이고, 그 굳어진 이름이 실제로 느끼는 감정을 분해해 보려 할 때 비로소 그 차이가 보인다.

번역의 어려움도 여기에 있다. 가와이처럼 하나의 말이 여러 감정을 포용할 때, 다른 언어로 옮길 때는 맥락과 뉘앙스를 함께 옮겨야 한다. 프랑스어 르상티망, 독일어 샤덴프로이데처럼 이름을 얻은 감정은 한국말에서 단일한 단어로 다 전해지지 않는다. 감정의 이름이 늘어나면 세상의 색이 촘촘해지는 반면, 이름이 줄어들면 그 깊이는 가볍게 느껴진다. 이를테면 색 이름의 다섯 가지와 다섯 가지가 아닌 한 가지 이름 사이에 느껴지는 하늘의 차이가 달라진다.

감정의 다층성은 말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준다. 말로 옮길 때의 선택이 곧 감정의 구성을 바꾼다. 짜치다처럼 일상화된 표현이 늘어나면, 그 밑에 깔린 누군가의 서운함이나 억울함 같은 복합 감정이 가려지거나 소멸될 위험이 있다. 반대로 미리 감정의 이름을 정확히 붙여 보려 할 때, 각 감정의 경계가 선명해져 더 세밀한 표현이 가능해지지만, 그만큼 말의 수가 필요해진다. 사투리 속의 표현들이 표준어의 간결성에 맞춰 희생되는 사례도 여기에 속한다. 결국 감정의 이름은 단지 언어의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창이며, 말의 수를 늘려 더 정확히 건네려는 노력이 바로 부지런함의 문제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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