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3,550년 전, 황허강 유역의 얼리터우 궁전 정원에는 깊이 1.85미터의 구덩이가 하나 있었다. 그 안에는 사지가 해체된 인골 조각들이 소와 양, 돼지 뼈와 뒤섞여 층층이 쌓여 있었고, 깨진 도기 파편들이 그 사이를 메웠다.
발굴자들은 이것이 장기간에 걸쳐 사용된 쓰레기 구덩이였으며, 아마도 "식인자의 건물 옆"에 있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추정했다.[^1] 같은 시기, 거기서 500킬로미터 떨어진 창장강 유역의 판룽청에서는 전혀 다른 의식이 거행되고 있었다. 사람들은 얕은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장작을 깔아 불을 지폈다.
불이 꺼지고 재가 식으면 다시 깊은 구덩이를 파서, 그 안에 정성스럽게 청동 술잔과 옥기, 점복에 사용한 뼈를 배치했다. 어떤 구덩이에는 58건에 달하는 청동기와 옥기가 묻혀 있었는데, 사람의 유골은 단 하나도 없었다.[^2] 같은 시대, 같은 청동기 문화권, 심지어 같은 '상나라 사람들'이었지만, 이들이 신에게 바친 것은 너무나 달랐다.
한쪽은 인...
원문 링크 : 폭력과 교환(1) - 상나라 정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