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년은 모순의 해로 남는다. 전쟁을 금지한 최초의 다자 조약인 켈로그-브리앙 조약이 체결된 해였고, 60개국 이상이 서명해 전쟁 포기를 선언했다. 그러나 같은 해 노벨 평화상은 수여되지 않았다. 이는 아무리 훌륭한 조약이라도 강제 수단이 없고 서명국이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진정한 평화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교훈을 남겼다. 위원회는 진정한 평화 기여의 여부, 표면의 낙관과 실질의 간극, 특정 국을 의도적으로 돕는 가능성 등 여러 요인을 냉정하게 따져 침묵을 선택했다.
1928년의 국제 정세는 표면적으로는 로카르노 분위기와 국제 협력의 기류가 흐르는 듯 보였지만, 내부적으로는 위협이 누적되어 있었다. 독일의 극우 민족주의 부상,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정권의 야망, 소련의 권력 강화를 둘러싼 긴장, 일본의 군국주의적 팽창, 미국의 경제 과열 등이 그 그림자를 드리웠다. 1년 뒤 다가온 대공황은 사회적 분노를 키우고 극단주의를 증폭시켜 전쟁 위험을 높였다. thus 켈로그-브리앙 조약은 체결되었으나 강제적 제재 수단이 부족했고, 평화를 견인하기에는 한계가 분명했다.
잊혀진 평화의 선구자들은 1928년에도 존재했다. 프랭크 B. 켈로그는 미국 측 주역으로 다자 외교를 이끌었고, 그의 공로는 인정되었지만 상은 1929년에 주어졌다. 제인 애덤스와 여성 국제 평화자유 연맹의 활동은 시민 사회의 목소리를 높였으나, 위원회는 이들의 노력이 곧바로 평화를 온전히 바꿔놓지 못한다는 판단을 유지했다. 위원회의 판단은 평화의 실질적 전환점을 위한 더 큰 변화를 요구했다.
1928년의 침묵은 세 해의 공백처럼 반복되었다. 평화는 선언이나 조약만으로 성립되지 않는다는 교훈이 남았고, 조약은 국제 연대의 근거가 되었지만 토양이 충분히 준비되지 않으면 약속은 흔들렸다. 일본의 만주 침략과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침공은 조약의 한계를 드러냈고, 제2차 세계대전의 그림자를 예고했다. 다만 이 조약은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의 법적 근거가 되었고 유엔 헌장의 기초가 되었다. 결국 노벨 위원회가 남긴 메시지는 분명했다. 평화는 의지와 제도와 힘이 함께 작용해야 가능하며, 단지 좋은 의도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1928년의 침묵은 그런 메시지로 남아 앞으로의 길을 고덕하게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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