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각 수반의 정치적 독립성”을 최초로 보인 총리 스펜서 콤프턴, 윌밍턴 백작은 사적으로도 공적으로도 외로운 인물이었다. 콤프턴은 독신으로 가족이 없었고, 자신이 소속된 휘그당의 전임 총리인 월폴을 총리직에서 몰아낸 인물이다 보니 당내에서도 인기가 없었다.
이 때문에 말년을 쓸쓸하게 보내다가 삶을 마감하였다. 콤프턴이 세상을 떠날 즈음, 그에게 호되게 당한 월폴은 독설을 퍼부었었다.
“그는 오직 금전( 돈)의 축적과 먹는 즐거움만 느끼는 인물이었고, 그가 유일하게 알고 있는 것은 형식과 관습뿐이었다. 그가 남에게 보이는 유일한 환심 거리는 굽실거림과 비굴한 웃음뿐이었다”라고 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보면 “총리란 왕과 깊은 관계를 맺어서는 그 역할을 다할 수 없다”라는 선례를 보여준 인물로 알려져 있다. 서퍽주 아이 지방 모습 콤프턴은 3대 노샘프턴 백작의 셋째 아들로, 토리당계 정치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옥스퍼드 대학의 트리니티 칼리지를 졸업하고, 1698년에 서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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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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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각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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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펜서콤프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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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계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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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총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