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칸의 분노를 잠재울 수 있는 직언이었으나, 칭기즈칸은 구처기의 거짓 없는 솔직함과 사심 없는 초연함에 큰 감명을 받아 그를 신선이라 부르고 깊은 존경을 표했다. 이후 두 사람은 군막에서 수차례 독대를 하며 천하의 이치와 통치의 도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장춘진인이 설파한 핵심 사상 구처기가 진언한 핵심 사상은 곧 전진교의 철학이자 동양 사상의 정수였다.
청심과욕은 욕망을 비우고 마음을 맑게 하라는 가르침으로, 구처기는 진정한 양생과 수행의 길이 신비한 영약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치닫는 욕망을 줄이고 마음을 맑게 유지하는 데 있음을 강조했다. 끊임없는 정복 전쟁으로 피비린내 나는 살육을 일삼던 칭기즈칸에게도 무한한 탐욕을 경계하고 내면의 평화와 성찰을 촉구했다.
경천애민은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사랑하라는 가르침으로, 노구를 이끌고 서역까지 간 진짜 이유가 몽골군의 무자비한 살육을 멈추게 하기 위함임을 밝힌다. 구처기는 천하를 통일하고자 한다면 살생을 좋아하지 않는 마음을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고 간언했다. 무력과 공포가 아닌 덕과 자비로 백성을 다스려야 우주의 섭리와 하늘의 뜻에 부합한다는 진리를 도교의 언어로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설파했다.
삼교합일은 구처기가 주창한 전진교의 근본 이념으로, 유교의 수기치인(修己治人)과 불교의 명심견성(明心見性), 도교의 전신연기(全身鍊氣)가 하나로 융합되는 융합 정신이었다. 특정 종파의 교조주의에 빠지지 않고 인간과 우주의 보편적 진리를 통합하여 대칸에게 우주적 안목을 열어준 셈이다.
역사적 결실은 거대했다. 칭기즈칸은 구처기의 가르침을 깊이 새겨 불필요한 대규모 학살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고, 전진교 산하의 도관과 도사들에게 세금과 부역을 면제해 주는 파격적 특권을 내렸다. 덕분에 참혹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수많은 백성들이 도관으로 피신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진인도통연계의 우주적 지맥과 도맥의 통일 논리 역시, 이러한 험난한 역사의 현장 속에서 생명과 평화를 지켜내고자 한 장춘진인의 거대한 삼교합일의 우주관이 바탕이 되었기에 동북아시아 신앙인들에게 깊은 영감을 줄 수 있었다.
원문 링크 : 칭기즈칸과 구처기의 만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