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롯데 자이언츠의 지명을 받았던 강속구 투수 유망주가 있었다. 하지만 대학 진학 후 시련을 겪고 결국 지명권마저 포기된 아픈 과거를 지나, 투수 마운드를 포기하고 한화 이글스 신고선수로 입단한 외야수로 남아 있다. 암흑기 시절 대전구장을 지켰던 찐팬이라면 절대 잊지 못할 불굴의 이름이다.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한 2010년 대전구장의 생존기, 정현석의 야구 인생은 시작부터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대학 졸업 후 갈 곳이 없어진 정현석은 입단 테스트라는 좁은 문을 뚫고 독수리 군단의 유니폼을 입었다. 놀라운 점은 투수 출신임에도 빠르게 1군 투수들의 직구에 적응하며 프로 2년 차에 콜업을 이뤄냈다는 사실이다. 2010년 시즌 플래툰 자원으로 낙점되며 무려 114경기에 출장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후 경찰청 야구단에 입대하여 2군 퓨처스리그를 완벽하게 폭격했다. 경찰청 전역 후 곧바로 맞이한 2013년, 정현석은 한화 주전 우익수 자리를 꿰찼다. 방망이를 짧게 쥐고 물고 늘어지는 투지의 아이콘으로, 당시 기록이 이를 증명했다. 121경기 타율 0.287 OPS 0.733 102안타 4홈런 27타점, 득점권에서 물러나지 않는 끈질긴 승부 근성은 한화 더그아웃에 강렬한 메시지를 남겼다.
2014년 겨울 삼성 라이온즈 이적과 청천벽력 같은 위암 판정이 찾아왔고, 이 소식은 곧 현금 트레이드 형태로 대전으로 돌려보내는 것으로 이어졌다. 치료에 전념하라는 구단 차원의 배려였다. 2015년 8월 5일 기적의 만루홈런이 터진 날 팬들은 그라운드가 아닌 병상에서 싸우는 모습을 눈물로 지켜봤다. 초기 발견으로 수술은 성공했고 초인적인 재활 끝에 1군으로 돌아왔다. 복귀 경기에서 첫 만루홈런을 쏘아 올리며 커리어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를 남겼다. 그러나 이후 입지는 점차 줄어 2017년 9경기 출전을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은퇴 직후 곧바로 한화 이글스의 지도자 제안을 수락하며 2막을 열었다. 2018년 육성군 타격코치로 시작해 수많은 유망주의 스윙을 교정했고, 2026년 현재 1군 타격보조코치로 후배들을 이끈다. 바닥부터 기어 올라와 1군을 맛보고 생사의 기로에서 홈런을 쳤던 사나이의 멘탈리티는 지금 한화 이글스의 젊은 타자들에게 돈으로 살 수 없는 최고의 교보재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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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링크 : "위암을 극복한 그 타석의 전율" 한화의 심장 정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