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딩
요청 처리 중입니다...

[아시아 외환위기 1편] 1994년 중국이 당긴 위안화 환율 레버: 선부론, 환율, 수출 드라이브

 [아시아 외환위기 1편] 1994년 중국이 당긴 위안화 환율 레버: 선부론, 환율, 수출 드라이브

1989년 톈안먼 사태 이후 중국의 권력지도가 재정렬되었다. 덩샤오핑이 실권을 쥔 채, 리펑과 ‘상하이 서기’였던 장쩌민이 축을 이루는 덩샤오핑-리펑-장쩌민 삼각 구도가 그려졌다.

군중 시위의 강경 진압 이후 장쩌민은 절충형 리더로 중앙 무대에 올랐고, 경제는 다시 가속페달을 밟기 시작하였다. 정치의 소용돌이와는 별개로, 국가전략의 포커스는 분명했다.

“먼저 부자가 될 지역과 집단이 앞서 달리면, 전체가 따라 오른다.” 덩샤오핑의 이 한 문장은 이후 1990년대 중국의 경제 설계도를 관통하는 신호탄이었다.

이 설계도는 1994년 1월, 단 한 번의 환율 레버 조정으로 세계 시장의 가격지형을 바꿔놓는다. 중국은 이중환율을 통합하며 달러당 5.8위안이던 공식환율을 당시 스왑시장 환율인 8.7위안 수준으로 조정하였다.

하룻밤 사이 약 50% 절하 효과가 발생했고, 이는 노동집약적 제품 중심의 중국 수출에 폭발적 추진력을 제공했다. ※ 스왑시장: 비공식(또는 준시장) 환율이 형성되던 2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