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식 작가의 『회색 인간』은 기발하면서도 잔혹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던 사회 시스템과 인간성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디스토피아 대비 참고서 같은 책이다. 책을 펼치는 순간, 익숙한 세계가 뒤틀린 폐허 위에서, 인간을 마지막까지 인간답게 만드는 가치는 무엇인지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생존을 넘어, 존재를 증명하는 법 표제작 「회색 인간」은 생존 외 모든 가치를 박탈당한 사람들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지하 세계에 납치된 이들은 점차 웃음과 눈물, 분노와 사랑 같은 모든 감정을 잃고 무표정한 잿빛 존재가 되어간다.
‘땅을 많이 판 사람이 우선적으로 빵을 먹는다’는 암묵적 규칙 아래, 이들은 서로를 경쟁자로 여기며 기계처럼 땅만 팔 뿐이다. 이곳에서 노래나 그림 같은 예술은 생존에 하등 쓸모없는 사치로 취급되어 폭력적으로 제지당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성을 회복시키는 것 또한 바로 그 예술이다. 죽어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