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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와 사주명리학..

 박쥐와 사주명리학..

몸이 비실비실하고 겁이 많은 이가 들어가 보지 않았던 미지의 동굴이나 폐광 속에서 꿀잠 자는 박쥐떼의 사진을 찍고 생태를 연구한 경험은 지금도 꿈같은 일로 남아 있다. 핸드폰도 없고 달랑 랜턴 하나 들고 들어가 큰 사고 없이 살아남은 것이 기적처럼 느껴진다. 좁은 굴 속으로 기어 들어가 천장에 매달려 있는 박쥐 집단을 마주했을 때의 환희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해가 저물면 숲의 경계선 위로 새도 쥐도 아닌 기묘한 날갯짓이 시작되는데, 박쥐다. 동물학자들에게 박쥐는 포유류 중 하늘을 나는 경이로운 진화의 산물이지만, 과거에는 기회주의자로 묘사되곤 했다. 이쪽저쪽 눈치보는 존재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명리학의 렌즈로 보면 박쥐는 비겁한 변절자가 아니라 음과 양의 경계를 넘나드는 거대한 중재자이며, 사주의 환절기 글자인 진술축미의 형상으로 해석된다. 특히 박쥐의 생태는 만물을 거두고 저장하는 화개살과 술토를 닮았다고 여겨진다. 활동 시간이 딱 낮과 밤이 교차하는 술시이고 낮에는 빛이 들지 않는 동굴에 거꾸로 매달려 온종일 숨을 죽인다. 이는 화려한 현실의 막을 내리고 깊은 정신 세계로 침잠하는 기운으로 읽힌다. 세상이 양의 에너지를 뽐낼 때 박쥐는 고독한 음지에서 주파수를 가다듬는 수행자가 된다. 어둠 속에서 시각 대신 초음파로 세상을 읽는 생태는 과학의 레이더 시스템이지만, 명리적으로는 외형에 현혹되지 않고 본질의 울림을 듣는 수적 직관의 극치로 여겨진다. 새의 날개와 쥐의 몸을 모두 가져 세상의 편견을 받으면서도 밤하늘의 균형을 잡는 박쥐. 과학과 명리라는 상반된 세계의 경계에 선 존재 역시 세상의 눈에는 박쥐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엇 하나에 갇히지 않고 두 세계의 언어를 모두 품는다는 것은 그 경계에 선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축복이라고 여겨진다. 낮의 논리와 밤의 직관을 모두 품은 채 조용히 세상의 주파수를 읽어 내려가는 이 고독한 여정은 꽤 마음에 드는 삶이다. 동굴에서 찍은 사진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관박쥐 사진은 26살 때 인도에서 열린 세계박쥐학술대회에서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참 젊었다는 말이 적지 않게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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